논어집주

論語集註 公冶長 第五(논어집주 공야장 제오) 第十八章

구글서생 2023. 3. 9.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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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十八章

子張問曰:
「令尹子文三仕為令尹,無喜色;三已之,無慍色。
舊令尹之政,必以告新令尹。何如?」
子張이 물었다.
“令尹인 子文이 세 번 出仕하여 令尹이 되었으되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고, 세 번 벼슬을 그만두게 하였는데도 노한 기색이 없었습니다.
옛날 자신이 맡아보던 令尹의 정사를 반드시 새로 부임해온 令尹에게 알려주었으니, 어떻습니까?”

子曰:
「忠矣。」
孔子께서 대답하셨다.
“충성스럽다.”

曰:
「仁矣乎?」
물었다.
“仁이라고 할 만합니까?”

曰:
「未知,焉得仁?」
대답하였다.
“모르겠다. 어찌 仁이 될 수 있겠는가?”

令尹,官名,楚上卿執政者也。
令尹은 벼슬 이름이니, 나라의 上卿으로 정권을 잡은 자이다.

子文,姓鬥,名谷於菟。
子文, 이름은 穀於菟(누오도)이다.

其為人也,喜怒不形,物我無閒,知有其國而不知有其身,其忠盛矣,故子張疑其仁。
그의 사람됨이 기뻐함과 성냄을 나타내지 않고 남과 자기 사이에 간격이 없어 국가가 있음만을 알고 자신이 있음을 알지 못하였으니, 그의 충성이 대단하여 子張인가 의심하였다.

然其所以三仕三已而告新令尹者,未知其皆出於天理而無人慾之私也,是以夫子但許其忠,而未許其仁也。
그러나 그가 세 번 벼슬하였다가 세 번 그만두고 물러나면서 새로 부임해온 令尹에게 옛 정사를 말해준 것이 모두 天理에서 우러나와 人慾의 사사로움이 없었는지 알 수 없으므로 이 때문에 夫子께서 다만 그의 만을 허여하시고 그의 은 허여하지 않으셨다.

「崔子弒齊君,陳文子有馬十乘,棄而違之。
至於他邦,則曰:『猶吾大夫崔子也。』 違之。之一邦,則又曰:『猶吾大夫崔子也。』 違之。何如?」
“崔子가 齊나라 임금을 弑害하자, 陳文子는 말 10乘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것을 버리고 그 곳을 떠났습니다.
다른 나라에 이르러 말하기를 ‘이 사람도 우리나라 大夫 崔子와 같다.’하고 그곳을 떠났으며, 또 한 나라에 이르러서도 또 말하기를 ‘이 사람 역시 우리나라 大夫 崔子와 같다.’하고 떠나갔으니, 어떻습니까?”

子曰:
「清矣。」
孔子께서 대답하였다.
“청백하다.”

曰:
「仁矣乎?」
물었다.
“仁이라고 할 만합니까?”

曰:
「未知。焉得仁?」
대답하였다.
“모르겠다. 어찌 仁이 될 수 있겠는가?”

崔子,齊大夫,名杼。
崔子나라 大夫이니, 이름은 이다.

齊君,莊公,名光。
나라 임금은 莊公이니, 이름은 이다.

陳文子,亦齊大夫,名須無。
陳文子나라 大夫이니, 이름은 須無이다.

十乘,四十匹也。違,去也。
1040필이다. 위는 떠남이다.

文子潔身去亂,可謂清矣,然未知其心果見義理之當然,而能脫然無所累乎?抑不得已於利害之私,而猶未免於怨悔也。
文子가 자기 몸을 깨끗이 하고 어지러운 나라를 떠났으니, 청백하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과연 義理의 당연함을 보고 훌훌 벗어버려 한 바가 없었는지, 아니면 利害의 사사로움에 마지못한 것이어서 아직도 원망과 후회를 면치 못한 것이었는지 알 수 없다.

故夫子特許其清,而不許其仁。
이 때문에 夫子께서 다만 그의 청백함만을 허여하시고 그의 은 허여하지 않으셨다.

愚聞之師曰:「當理而無私心,則仁矣。今以是而觀二子之事,雖其制行之高若不可及,然皆未有以見其必當於理,而真無私心也。
子張未識仁體,而悅於苟難,遂以小者信其大者,夫子之不許也宜哉。」
내가 先生[延平 李侗]께 들으니 이치에 합당하고 私心이 없으면 이다. 이제 이 말씀을 가지고 두 사람의 일을 관찰하면 그 행실의 높음은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모두 그것이 꼭 이치에 합당하고 참으로 私心이 없었는지를 볼 수 없다.
子張의 본체를 알지 못하고 어려운 일을 구차하게 행함을 좋아하여 끝내 작은 것을 큰 것으로 믿었으니, 夫子께서 허여하지 않으심이 당연하다.”

讀者於此,更以上章「不知其仁」、後篇「仁則吾不知」之語並與三仁夷齊之事觀之,則彼此交盡,而仁之為義可識矣。
독자는 이에 대해서 다시 위 장의 그가 한지는 모르겠다不知其仁.” 하신 말씀과 뒤 편[憲問篇]그가 한지는 내가 모르겠다.” 하신 말씀과 아울러 <微子篇> 三仁伯夷叔齊의 일을 가지고 관찰하면 저것과 이것이 서로 다하여 의 의의를 알 수 있을 터이다.

今以他書考之,子文之相楚,所謀者無非僭王猾夏之事。
지금 다른 책을 가지고 살펴보면, 子文나라를 도울 적에 도모한 것들이 모두 을 참칭하고 華夏를 어지럽히는 일이 아님이 없었다.

文子之仕齊,既失正君討賊之義,又不數歲而復反於齊焉,則其不仁亦可見矣。
文子는 齊나라에 벼슬할 때에 이미 임금을 올바르게 인도하고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를 잃었고, 또 몇 년이 못 되어 다시 나라로 돌아갔으니, 하지 못함을 또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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