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文眞寶(고문진보)

後集10-後出師表(후출사표)-諸葛亮(제갈량)

耽古樓主 2024. 3. 3. 12:33

古文眞寶(고문진보)

後集10-後出師表(후출사표)-諸葛亮(제갈량)

 


先帝慮漢賊不兩立, 王業不偏安, 故託臣以討賊也.
先帝께서는 漢과 賊國인 魏는 양립할 수 없으며, 王業은 한구석에서 안일하게 지내서는 안 된다고 여겼으므로, 신에게 討賊을 분부하셨습니다.
王業 : 제왕으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위대한 사업.
偏安 : 한구석에서 만족하고 편안히 지냄.

以先帝之明, 量臣之才, 固知臣伐賊, 才弱敵强也.
선제께서 밝은 안목으로 신의 재능을 헤아려보고, 신이 伐賊하기에는 재주가 약하고 敵은 강함을 아셨습니다.

然不伐賊, 王業亦亡, 惟坐而待亡, 孰與伐之, 是故託臣而弗疑也.
그렇지만, 伐賊하지 않으면 왕업 또한 없으니, 가만히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림과 伐賊 중 어느 것이 낫겠습니까? 그래서 저에게 분부하시되 의심하지 않으셨습니다.

臣受命之日, 寢不安席, 食不甘味.
臣은 분부를 받은 날부터 잠을 자도 잠자리가 편치 않았고, 밥을 먹어도 맛있게 먹지 못하였습니다.
甘味 : 달게 먹음. 맛있게 먹음.

思惟北征, 宜先入南. 故五月渡瀘, 深入不毛, 幷日而食.
北征하려면 먼저 남방을 쳐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5월에 瀘水를 건너 불모지로 깊이 쳐들어가서 하루 치 식량을 이틀 동안 먹는 고전을 벌였습니다.
幷日而食(병일이식 : 하루치 식량을 이틀에 나누어 먹다.

臣非不自惜也, 顧王業, 不可得偏安於蜀都, 故冒危難, 以奉先帝之遺意, 而議者謂爲非計.
신도 제 몸을 아끼지 않음은 아니나, 왕업을 돌아보니 蜀都에 偏在하여 안일하여서는 안 되겠기에 危難을 무릅쓰고 선제의 유지를 받들고 있는데, 논자들이 좋은 계책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今賊適疲於西, 又務於東.
지금 적은 마침 서쪽에서 피폐하고, 동쪽에서 힘을 쏟고 있습니다.
: 마침.
疲於西 : 서쪽에서 피폐해 있다. 建興 5년 제갈량이 祁山을 공격하자, 南安·天水·安定 3군이 모두 를 배반하고 에 항복한 사건을 말함.
務於東 : 동쪽에서 애쓰다. 曹休陸孫石亭에서 싸워 대패한 사건을 말함.

兵法, 乘勞, 此進趍之時也.
병법에 '피로함을 틈타라.'라고 하였으니, 이때야말로 진격할 시기입니다.
兵法 : 孫子가 지은 병법서인 孫子兵法을 가리킴.
乘勞 : 적이 피로한 틈을 타서 공격하다.

謹陳其事如左.
삼가 그 사정을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高帝明幷日月, 謀臣淵深, 然涉險被創, 危然後安.
高帝의 英明하심은 日月과 나란하고, 신하들의 지략은 연못처럼 깊었으나, 위험을 겪고 상처를 입어 위험한 후에야 안정되었습니다.
高帝 : 漢 高祖 劉邦을 가리킴.
涉險被創 : 漢 高祖가 숱한 위험을 겪고 상처를 입으면서 천하를 통일함을 말한다. 은 고조가 廣武의 싸움에서 항우의 화살을 맞고 부상함을 말함.

今陛下未及高帝, 謀臣不如良ㆍ平.
지금 폐하께서 고제에 미치지 못하고, 謀臣도 張良과 陳平만 못합니다.
謀臣 : 지략있는 신하.
淵深 : 연못처럼 깊음.
良平 : 고조 때의 공신인 張良陳平을 말함.

而欲以長策取勝, 坐定天下, 此臣之未解一也.
그런데도 좋은 계책으로 승리를 얻어 앉아서 천하를 평정하려고 하니이것이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첫 번째입니다.
長策 : 좋은 계책. 원대한 계책.

劉繇ㆍ王朗各據州郡, 論安言計, 動引聖人, 群疑滿腹, 衆難塞胸.
劉繇와 王朗은 각자 주군에 웅거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安危를 논하고 계책을 이야기하면서, 걸핏하면 聖人의 말씀을 인용하니, 숱한 의문이 배 속에 가득하고 많은 어려움이 가슴에 메어 있습니다.
劉繇 : 자는 로 삼국시대 나라 牟平 사람이다. 楊州 태수로 曲阿縣에 있었으나, 孫策에게 쫓겨 丹徒로 달아났다.
王朗 : 자는 景興으로 삼국시대 나라 사람. 會稽 태수를 지내다가 손책의 공격을 받아 대패했다.
論安言計 : 安危를 의논하고 계책을 이야기하다.
: 걸핏하면, 툭하면.

今歲不戰, 明年不征, 使孫策坐大, 遂幷江東, 此臣之未解二也.
금년에 싸우지 않고 내년에 정벌하지 않음은, 孫策이 가만히 앉아서 영토를 확장하여 결국 江東 지방을 합병하게 하는 꼴이니, 이것이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두 번째 일입니다.
孫策 : 나라 孫堅長子이며 孫權의 형으로 자는 伯符이다. 손견이 죽자 남은 병력을 몰아 각처에서 승전하여 마침내 江東 지방을 평정하였다.
江東 : 揚子江 동쪽 지금의 江蘇省 지방.

曹操智計殊絶於人, 其用兵也, 髣髴孫ㆍ吳.
曹操의 智計는 남보다 훨씬 뛰어나서, 그의 용병은 孫武와 吳起에 방불합니다.
殊絶 : 훨씬 뛰어난, 특별히 뛰어남.
髣髴(방불) : 서로 비슷하여 구별하기 어려움.
孫吳 : 춘추시대 孫武와 전국시대 吳起. 둘 다 병법에 정통한 사람이므로 용병에 뛰어난 자를 孫吳라 한다.

然困於南陽, 險於烏巢, 危於祁連, 偪於黎陽, 幾敗北山, 殆死潼關, 然後僞定一時爾.
그런데도, 南陽에서 곤란하였고, 烏巢에서 위험하였으며, 祁連에서 위기를 만났으며, 黎陽에서 쫓겼으며, 北山에서 거의 패망의 지경에 이르렀고, 潼關에서는 거의 죽을 뻔하고 나서, 황제라 자칭하면서 한때 안정을 얻었습니다.
困於南陽 : 南陽에서 곤란함을 당하다. 建安 2년 조조가 남양에서 張繡와 싸우다가 빗나간 화살에 맞은 사건을 말한다.
險於烏巢 : 烏巢에서 위험을 겪다. 袁紹가 조조의 군대를 官渡에서 막고 오소에 많은 군량과 무기를 모아 대비하고 있었다. 조조는 군량이 떨어져서 도저히 싸울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오소의 군량과 무기를 불태우고 도망했다.
危於祁連 : 祁連에서 위기를 만나다. 기련은 都司城 서남쪽에 있는 산으로 조조는 이곳에서 흉노와 고전을 벌였다. 혹은 조조가 기련에서 袁尙을 포위공격할 때의 일을 말한다고 한다.
偪於黎陽(핍어여양) : 黎陽에서 쫓기다. 조조가 을 공격하기 위해 출정하자 여양에 주둔하던 袁譚이 배후공격을 하여 궁지에 몰렸던 일을 말한다.
幾敗北山 : 北山에서 거의 패망의 지경에 이르다. 북산은 伯山. 夏候淵이 패하자 조조는 漢中을 공격하기 위해 북산에 수많은 군량미를 운반해 놓았다. 蜀漢趙雲이이들을 만나자 진영 안에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이에 조조는 싸우지 않고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데 돌연 우레와 같은 북소리가 일어나고 화살이 비오듯 쏟아져 조조의 군대가 대패한 사건을 말한다.
殆死潼關 : 潼關에서 거의 죽을 뻔하다. 조조가 동관에서 자신을 배반한 馬超·韓遂를 토벌하려고 황하를 넘어 정예부대 백여 명을 거느리고 남쪽 강기슭에 올랐다. 이에 마초가 만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빗발치듯 화살을 쏘며 공격해 오매 허저가 화살을 막으며 조조를 배에 태워 목숨을 건졌다.
僞定 : 조조가 천자 행세를 하며 천하를 평정함을 말함.

況臣才弱, 而欲以不危而定之, 此臣之未解三也.
하물며 신는 재능이 약한데 위험을 겪지 않고 천하를 평정하려 하니, 이것이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세 번째 일입니다.

曹操五攻昌覇不下, 四越巢湖不成, 任用李服, 而李服圖之; 委任夏侯, 而夏侯敗亡.
조조는 다섯 번이나 昌覇를 공격하였으나 함락하지 못하였고, 네번이나 巢湖를 넘었으나 성공하지 못하였고, 李服을 임용했으나 이복이 그를 죽이려 하였으며, 夏侯를 임용했으나 夏侯는 패하여 죽었습니다.
五攻昌覇不下 : 昌覇를 다섯 번이나 공격해도 함락되지 않다. 昌覇東海郡에 있는 지명. 조조에게 반기를 들고 유비에게 돌아서자 조조가 여러 차례 병사를 이끌고 공격했으나 함락되지 않았다. 는 항복하다. 함락되다라는 뜻.
四越巢湖不成 : 네 번이나 巢湖를 넘었으나 성공하지 못하다. 소호는 合肥 동남쪽에 있는 호수 이름. 조조는 합비를 전략적인 요충지로 여기고 네 번이나 소호를 건너 합비를 포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李服 : 三國志에 전기가 실려있지 않아 불확실하다. 董承과 함께 조조를 죽이려고 도모했던 李服이라고도 한다.
夏侯 : 조조의 사촌누이의 사위인 夏侯淵을 말함. 漢中을 그에게 맡겨 다스리게 했으나 후에 유비의 장수 黃忠의 공격을 받아 죽고 한중을 빼앗겼다.

先帝每稱操爲能, 猶有此失.
선제께서는 매번 조조가 유능하다고 칭찬하셨는데도 이런 실패기 있었습니다.

況臣駑下, 何能必勝. 此臣之未解四也.
하물며 신은 우둔하고 남보다 처지는데 어떻게 항상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네 번째 일입니다.
駑下 : 둔한 말처럼 우둔하고 남보다 처진다는 뜻으로 자기를 낮추어 일컫는 말.

自臣到漢中, 中間朞年耳.
신이 漢中에 도착한 지 그동안 1년이 지났습니다.
朞年 : 1.

然喪趙雲ㆍ陽群ㆍ馬玉ㆍ閻芝ㆍ丁立ㆍ白壽ㆍ劉郃ㆍ鄧銅等, 及曲長ㆍ屯將七十餘人, 突將無前, 賨叟ㆍ靑羌, 散騎武騎一千餘人.
그런데, 趙雲·陽群·馬玉·閻芝·丁立·白壽·劉郃·鄧銅 등과 部曲의 長 및 屯將 70여명, 그리고 突將으로 無前인 南蠻 출신의 長·西夷 출신의 長·散騎·武騎 천여 명을 잃었습니다.
趙雲 : 자는 子龍으로 유비가 조조에게 쫓겨 처자식을 버리고 남쪽으로 달아났을 때 유비의 아들 을 안고 甘夫人을 보호하여 무사히 구출해낸 충신이다.
陽羣·馬玉·閻芝·丁立·白壽·劉郃·鄧銅 : 모두 촉한의 장군들. 삼국지에 전기가 실려있지 않아 자세한 것을 알 수 없다.
曲長 : 部曲, 行伍.
屯將 : 주둔부대의 장군.
突將 : 돌진하는 용감한 장수.
無前 : 향하는 곳에 맞설 적이 없음. 앞을 가로막는 적이 없음.
賨叟(종수) : 南蠻 출신의 .
靑光 : 西夷 출신의 .
散騎·武騎 : 둘 다 기마대의 부대 이름.

此皆數十年之內, 所糾合四方之精銳, 非一州之所有.
그들은 모두 수십년 동안 사방에서 糾合한 정예부대로서 한 고을이 가진 병사들이 아니었습니다.
精銳 : 뛰어나게 날랜 군사.

若復數年, 則損三分之二也, 當何以圖敵, 此臣之未解五也.
만약 다시 수년이 지난다면 3분의 2를 잃을 터이니, 무엇으로 적을 도모해야 하겠습니까? 이것이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다섯 번째 일입니다.

今民窮兵疲, 而事不可息.
지금 백성은 곤궁하고 군사는 疲勞하나, 그렇다고 대업을 그만둘 수 없습니다.

事不可息, 則住與行, 勞費正等.
대업을 그만둘 수 없다면, 머물러 방어함과 나아가 싸움에 노력과 비용은 꼭 같습니다.

而不及蚤圖之, 欲以一州之地與賊持久, 此臣之未解六也.
그런데도 어서 적을 토벌할 생각은 않고, 1州의 땅으로 적과 지구전을 하려고 함이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여섯 번째 일입니다.

夫難平者事也.
무릇 천하를 평정하는 대업은 어려운 일입니다.

昔先帝敗軍於楚, 當此時, 曹操拊手謂, 天下已定.
옛적 선제께서 楚에서 패하실 당시에 조조는 손뼉을 치면서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先帝敗軍於楚 : 建安 12, 劉璋이 유비에게 항복하자 유비는 항복한 군대를 거느리고 楚地襄陽으로 갔다. 조조는 유비가 군용물자가 있는 江陵에 웅거하리라 예측하고 유비의 군대를 추격하여 대패시켰다.
拊手(부수) : 손뼉을 치면서 기뻐함.

然後先帝東連吳越, 西取巴蜀, 擧兵北征, 夏侯授首.
그 후 선제께서 동쪽으로 吳越과 동맹을 맺고, 서쪽으로 蜀을 점령하였고 군대를 일으켜 북방을 정벌하니 夏侯가 머리를 내놓게 되었습니다.
連吳越 : 吳越과 동맹을 맺다. 敗走하던 유비가 夏口에 이르러 제갈량을 보내 孫權과 동맹을 맺었다.
西取巴蜀 : 서쪽으로 을 점령하다. 파촉은 益州를 말함. 建安 19, 유비가 成都를 포위하여 유장을 항복시키고 익주를 점령하였다.
北征 : 북쪽의 조조를 토벌함.
授首 : 목을 내놓다. , 斬首되다.

此操之失計, 而漢事將成也.
이것은 조조의 실책으로, 漢의 대사는 곧 이루어지려고 하였습니다.
失計 : 잘못 세운 계책. 실책.

然後吳更違盟, 關羽毁敗, 秭歸蹉跌, 曹丕稱帝, 凡事如是難可逆見.
그 후에 吳가 다시 맹약을 어겨 關羽가 참패하였으며 秭歸縣은 적에게 빼앗겼고 曹丕는 稱帝하였으매, 모든 일이 이렇게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吳更違盟 : 나라가 다시 맹약을 어김, 과 동맹을맺고 있던 오나라가 조조의 계략에 의해 맹약을 어기고 관우를 습격하여 죽이고 를 차지했다.
毁敗 : 쳐부수다. 깨뜨리다.
秭歸 : 秭歸縣. 지금의 湖北省 歸州.
蹉跌 : 발을 헛디뎌 넘어짐. , 실패하여 적의 손에 넘어감을 말함.
曹丕 : 조조의 長子. 後漢獻帝를 추방하고 나라를 세워 황제를 자칭했다
逆見 : 미리 추측함. 예측함.

臣鞠躬盡瘁, 死而後已, 至於成敗利鈍, 非臣之明所能逆覩也.
신은 몸을 굽히고 온갖 노력을 다하여 죽은 후에야 그만둘 터이고, 성공과 실패, 이익과 손해는 신의 지혜로 예측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鞠躬 : 존경하는 뜻으로 몸을 굽힘.
盡瘁 : 몸이 파리해지도록 마음과 힘을 다함.
利純 : 날카로움과 무딤. , 이익과 손해.
逆覩(역도) : 逆見과 같은 뜻.

 

 

 해설


이 글은 앞에 수록된 〈出師表〉에 이어 建興 6228에 지은 것이다.
당시 魏 曹休의 군대가 吳와 싸워 패하였으므로 이를 돕기 위해 군대가 동으로 내려가서 關中이 허술하였다. 제갈량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관중을 공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군신들이 주저하며 불안해하자 제갈량은 이 表를 올리고 출전하였다.

이에 蜀漢의 군대가 散關을 나와 陳倉을 포위하였으나 魏의 장군 曹眞이 방어를 잘하였다. 게다가 蜀漢의 군량이 바닥나서 제갈량은 돌아오고 말았다.


이 글에서는 魏·蜀이 양립할 수 없는 적대관계이므로 위를 토벌해야 한다는 논지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제갈량은 군신들이 주저하는 점을 하나하나 비판하며 위의 공격을 앉아서 기다리기보다 中原에 나아가 싸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