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文眞寶(고문진보)

後集12-蘭亨記(난정기)-王羲之(왕희지)

耽古樓主 2024. 3. 3. 22:03

古文眞寶(고문진보)

後集12-蘭亨記(난정기)-王羲之(왕희지)


永和九年歲在癸丑暮春之初, 會于會稽山陰之蘭亭, 修禊事也.
永和 9년 계축년(353년), 3월 초승에 會稽 山陰縣의 蘭亭에 모여서 禊事를 행하였다.
永和九年 : 353, 영화는 東晉의 다섯 번째 穆帝의 연호.
歲在癸丑 : 그 해의 간지가 계축임.
暮春 : 음력 3, 晩春.
: 3일을 말한다.
修禊事 : 3월 삼짇날 물가에 가서 흐르는 물에 몸을 깨끗이 씻고 신께 빌어 재앙을 없애고 복을 기원하는 祭祀를 행함. 는 행함. 禊事는 계제사의 일.

群賢畢至, 少長咸集.
賢士들이 다 모이고 소년과 장년이 모두 모였도다.
畢至 : 모두 모임.

此地有崇山峻嶺, 茂林修竹, 又有淸流激湍, 映帶左右, 引以爲流觴曲水, 列坐其次.
이곳은 높은 산과 가파른 고개, 무성한 숲과 길게 자란 대나무가 있으며, 또 맑은 물과 격동치는 여울이 허리띠를 두른 듯이 좌우로 이어지고, 春光이 그 위에 반짝이며 흐르고 있으매, 이 물줄기를 끌어다가 流臨曲水를 만들고 차례에 따라 벌려 앉았다.
崇山峻嶺 : 높은 산과 험준한 고개.
茂林脩竹 : 무성한 숲과 긴 대나무.
淸流激湍 : 맑은 시냇물과 급격히 흐르는 여울.
映帶 : 서로 비치고 어울려 있음.
流觴曲水 : 음력 삼월 삼짇날, 九曲流水에 잔을 띄워놓고, 술을 마시며 시를 짓는 놀이. 은 술잔, 曲水는 이리저리 구부러져 흐르는 물.
其次 : 각자가 앉아야 할 자리. 순서

雖無絲竹管絃之盛, 一觴一詠, 亦足以暢敍幽情.
비록 絲竹管絃의 성대한 연주는 없으나 술 한 잔 마시고 시 한 수 읊조리니 그윽한 마음속 情懷를 풀어내기에 足하도다.
絲竹管絃 : 는 현악기, 은 관악기. 통칭 음악을 말한다.
一觴一詠 : 술 한 잔에 시 한 수. 자기 앞에 흘러온 잔을 받아 술을 마신 다음, 그 잔을 물에 띄워 보내고, 다시 그 잔이 돌아오기 전까지 시를 완성하는 流觴의 놀이를 말한다.
暢敍幽情 : 그윽한 정을 충분히 펴냄.

是日也天朗氣淸, 惠風和暢, 仰觀宇宙之大, 俯察品類之盛, 所以遊目騁懷, 足以極視聽之娛, 信可樂也.
이날이야말로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고 大氣는 맑았으며, 봄바람은 따스하고 부드럽게 불었는데, 우러러 宇宙의 넓음을 觀望하고, 굽혀서 만물의 풍성함을 살펴보니, 눈가는 대로 바라보다가 想念의 나래를 펴기도 하며, 보고 듣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니, 실로 즐겁기 그지없노라.
惠風 : 봄바람. 향기로운 바람.
品類之盛 : 만물이 한없이 무성함. 品類禽獸草木을 비롯한 만물을 가리킨다.
遊目騁懷 : 눈길을 들어 자유로이 바라보고, 마음에 품은 생각을 자유로이 마음껏 구사함.
視聽之娛 :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즐거움. 여기서는 경치를 즐김을 말한다.
: 진실로

夫人之相與俯仰一世, 或取諸懷抱, 悟言一室之內; 或因寄所託, 放浪形骸之外.
무릇 사람들이 서로 더불어 一世를 俯仰함에, 어떤 이는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가지고 마주 앉아 깨달은 바를 이야기하기도(悟言) 하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자신을 맡겨, 육체의 밖에서 자유롭게 노닐기도 한다.
(무릇 인간이 서로 더불어 한 세상을 살아감에, 어떤 사람은 유교의 가르침을 따라 좁은 방 안에서 깨달은 바를 토론하며 살아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도교의 가르침을 받아 세상이나 육신의 속박을 벗어나 유유자적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俯仰一世 : 아래를 보기도 하고, 위를 보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인간생활. 1는 사람이 생존해 있는 한 세상.
取諸懷抱 : 자기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을 끌어냄.
悟言 : 晤言과 같음. 는 만나서 이야기함.
因寄所託 : 자기에게 기탁되어 있는 사상을 근거로 하여.
放浪形骸之外 : 육체의 밖에서 마음대로 떠돌게 함. 현실의 여러 가지 속박에서 벗어나 마음을 자유롭게 한다는 뜻.

雖取舍萬殊, 靜躁不同, 當其欣於所遇, 暫得於己, 快然自得, 曾不知老之將至.
비록 취향은 만 가지로 다르고 성격에 따라 조용함과 시끄러움(靜操)이 같지 않지만, 자신이 처한 경우가 기쁘면, 잠시나마 자신의 뜻을 얻었다고 自得하여, 곧 늙음이 닥쳐옴도 모르고 지낸다.
取舍萬殊 : 나아가고 물러서는 취향이 만 가지로 다름. 인심의 進退가 하나같지 않음을 뜻함.
靜蹂不同 : 고요함과 시끄러움이 같지 않음. 사람들의 각기 다른 몸가짐을 말한다.
所遇 : 만나는 일.
暫得於己 : 잠시 자신의 기분에 듦. 과 같은 글자임.
快然 : 매우 즐거워함, 유쾌한 모양.
不知老之將至 : 늙음이 다가옴을 모름.

及其所之旣倦, 情隨事遷, 感慨係之矣.
그러나 그의 위치에 권태를 느끼거나, 감정이 사태에 따라 옮겨가면, 여러 가지 감회가 이어 나온다.
: 권태로움. 흥이 가심.
感慨係之 : 감개가 그를 따라 일어남.

向之所欣, 俛仰之間, 以爲陳迹, 尤不能不以之興懷.
이전의 즐거웠던 일이 잠깐 사이에 낡은 자취가 되어버리니, 감회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向之所欣 : 지난날의 즐거움. 과 같은 뜻으로, 전의.
俛仰之間 : 머리를 숙였다 다시 드는 사이. 즉 짧은 시간. 와 같은 뜻.
陳述 : 오랜 옛 자취.

況修短隨化, 終期於盡, 古人云死生亦大矣, 豈不痛哉.
하물며 (목숨이) 길건 짧건 자연의 조화를 따라 마침내 다함을 기약함에랴! 옛사람이 生死는 매우 큰 일이라고 말하였으니, 어찌 가슴 아프지 않겠는가!
脩短隨化 : 생명의 긺과 짧음이 모두 자연의 조화를 따른다.
死生亦大矣 : 삶과 죽음은 인생의 중대사임. 莊子德充符에 나오는 말.
豈不痛哉 : 어찌 가슴 아프지 않겠는가.

每攬昔人興感之由, 若合一契, 未嘗不臨文嗟悼, 不能諭之於懷.
나는 옛사람들이 감회를 일으켰던 까닭을 알게 될 적마다, 마치 두 개의 符節을 하나로 맞춘 듯 내 생각과 똑같음을 깨달으매, 고인의 문장을 대할 때마다 탄식하고 슬퍼하지 않을 수 없고, 정회를 달랠 수가 없다.
若合一契 : 하나의 符節을 맞춘 것 같음. 符契, 또는 부절. 나무쪽 또는 대나무로 만든 符信으로 한쪽은 조정에 두고, 한쪽은 使臣 등이 지니고 다녔던 것. 부절을 맞춘 것 같다 함은 똑같다는 뜻.
嗟悼 : 탄식하고 슬퍼함.
不能諭之於懷 : 마음을 타일러 달랠 수 없음. 슬퍼하지 않으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뜻.

固知一死生爲虛誕, 齊彭ㆍ殤爲妄作.
生死를 同一視함이 虛荒되고, 彭祖와 殤을 같다고 함도 망언임을 잘 알고 있다.
: 참으로
一死生 : 살고 죽음이 하나임. 죽음도 삶도 본질적으로는 같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 黃의 사상이다.
虛誕 : 虛荒되고 근거없음.
齊彭殤 : 장수한 彭祖와 일찍 죽은 아이가 같음. 는 같다는 뜻. 임금 때부터 까지 7백년을 살았다는 팽조. 은 어려서 죽음. 莊子齊物論7백세를 산 팽조도 무한한 본체의 세계에서 본다면 지극히 짧은 인생이며, 어려서 죽은 아이도 하루살이와 비교한다면, 오래 산 것이라 하였다.
妄作 : 망령된 짓.

後之視今, 亦猶今之視昔, 悲夫.
후세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를 보는 것이, 지금의 우리가 옛날 사람을 보는 것과 같으리니, 슬프도다!
猶今之視昔 : 마치 지금 우리가 옛것을 봄과 같음.

故列敍時人, 錄其所述.
그래서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이름을 순서대로 적고 그들의 시를 수록하였다.
列敍時人 : 蘭亭의 잔치에 모인 사람들의 이름을 차례로 기록함.

雖世殊事異, 所以興懷, 其致一也, 後之覽者, 亦將有感於斯文.
비록 세상이 달라지고 사정도 변하겠지만, 감회를 일으키는 이치는 한가지이매, 후세에 이 글을 읽는 사람도 이 문장에 대하여 감회가 없을 수 없을 터이다.
世殊事異 : 세상이 달라지고 세태가 변함.
其致 : 감흥을 일으키는 이치.

 

 

 해설

난정집서


蘭亭은 지금의 浙江省 紹興縣 남서쪽에 있는 정자의 이름이다. 정자는 없어지고 天章寺라는 절만이 지금까지 남아있다고 한다.
東晉 穆帝 永和 9년(353) 3월 3일, 당시 그곳 會稽內史로 있던 王羲之(321~379)를 비롯하여 孫綽·謝安 등 당시의 명사 42인이 모여 禊事를 행하고는 여럿이 모여 曲水에 띄운 술잔을 마시며 시를 짓는 曲水流觴을 베풀어 그때 지은 시를 모아 시집을 만들고, 그 서문으로 쓴 것이 난정기이다. 따라서 〈蘭亭集序〉라 함이 옳은데, 후세에 잘못 난정기로 전해져 記類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글은 왕희지가 鼠鬚筆(쥐의 수염으로 만든 붓)로 蠶絹紙에 쓴 글씨로 더욱 유명하다. 술에 취하여 즉석에서 썼으므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왕희지가 술이 깨어 淨書하려 하여, 여러 번 반복하여도 원래의 글씨보다 낫게 써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글을 쓴 왕희지의 글씨는 고금에 다시없는 명필인데, 왕희지의 글씨 중에서도 이 난정집서가 뛰어나다고 한다.

이 글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인생을 즐기면서 영원을 동경하는 인간의 애절한 소망, 유한한 인생의 덧없음을 슬퍼하는 마음이 통절히 표현된 名文이다.

桑世昌의 《蘭亭考》 上에는 이 서문 다음에, 그날 지어진 시를 싣고 있는데, 4언·5언의 시를 한 수씩 지은 사람으로 왕희지·사안 등 11인(모두 22수), 4언이나 5언시 중 하나만 지은 王豊之 등 15인, 도합 37수가 실려있다. 王獻之 등 16인은 시를 짓지 못해 당시의 관습대로 罰酒 三巨觥(: 벌주를 큰 잔으로 석 잔 마심)에 처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작자 왕희지는 晉 會稽 사람으로 자를 逸少라고 한다. 벼슬은 右軍將軍·회계내사 등을 지냈으매 王右軍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무엇보다도 서예의 대가로 이름이 높다.
아들 獻之도 명필이어서 더불어 二王이라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