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集9-出師表(출사표)-諸葛亮(제갈량)
先帝創業未半, 而中道崩殂.
선제께서 창업하시고 半도 이루지 못한 채 崩御하셨습니다.
▶ 先帝 : 蜀漢의 劉備를 말함.
▶ 創業 : 처음으로 나라를 세움. 여기에서는 유비가 蜀을 세워 漢室부흥의 왕업을 시작한 것을 말함.
▶ 崩殂(붕조) : 천자가 죽음. =崩御.
今天下三分, 益州疲弊, 此誠危急存亡之秋也.
지금 천하는 셋으로 나누어져 있고 益州는 피폐하매, 이때는 참으로 危急과 存亡이 걸린 때입니다.
▶ 天下三分 : 당시 천하가 曹조의 魏, 孫權의 吳, 劉禪의 蜀으로 三分됨을 말함.
▶ 益州 : 四川省 成都府의 지명.
▶ 疲弊 : 피로하여 쇠약해짐. 여기에서는 수차례의 전쟁에 의해 피폐해진 것을 말함.
▶ 秋 : 때, 시기.
然侍衛之臣, 不懈於內; 忠志之士, 忘身於外者, 蓋追先帝之殊遇, 欲報之於陛下也.
그런데 선제를 모시고 지키던 신하들이 안에서 나태하지 않고, 충성스럽고 지조 있는 선비들이 밖에서 자신의 몸을 잊고 있음은, 대개 선제의 恪別한 대우를 추모하여 폐하께 보답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 侍衛 : 임금을 모시며 호위함.
▶ 殊遇 : 특별한 대우.
誠宜開張聖聽, 以光先帝遺德, 恢弘志士之氣.
진실로 성군의 견문을 넓히시어 선제께서 남기신 덕망을 빛내시고 뜻있는 人士들의 氣槪를 넓히셔야 합니다.
▶ 聖聽 : 천자의 견문
▶ 恢弘 : 크게 넓힘.
不宜妄自菲薄, 引喩失義, 以塞忠諫之路也.
망령되이 자신을 변변치 못하다고 여기시고 사리에 맞지 않는 비유를 들어 忠諫의 길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 菲薄 : 박하고 변변치 않음.
▶ 引喩失義 : 사리에 맞지 않은 비유를 듦․
▶ 忠諫 : 충성을 다해 간함.
宮中府中, 俱爲一體, 陟罰臧否, 不宜異同.
궁중과 府中은 一體이니, 잘잘못의 상벌이 달라서는 안 됩니다.
▶ 宮中 : 천자가 있는 궁궐 안.
▶ 府中 : 재상이 집무하는 관아.
▶ 陟罰 : 상으로 官位를 올려줌과 벌로 官位를 내림.
▶ 異同 : 다름. 따지자면 ‘다름과 같음’이나 포인트는 다름에 있다. 大小(크기) 長短(길이) 輕重(무게) 厚薄(두터움) 遠近(거리) 등등 유사한 사례가 많다.
若有作奸犯科, 及爲忠善者, 宜付有司, 論其刑賞, 以昭陛下平明之理, 不宜偏私, 使內外異法也.
만약 作奸 또는 犯科하는 자와 忠善을 행하는 자가 있으면, 유사에게 넘겨 그 상벌을 論定함으로써, 폐하의 공평하고 밝은 다스림을 밝히셔야지, 사사로움에 치우쳐서 안팎으로 법도를 달리하면 안 됩니다.
▶ 犯科 : 범법, 즉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함. 科는 법률, 법령.
▶ 有司 : 담당하는 관리.
▶ 偏私 : 한쪽으로 치우쳐 불공평하고 사사로움. 즉 편파적임.
侍中侍郞, 郭攸之ㆍ費褘ㆍ董允等, 此皆良實, 志慮忠純, 是以先帝簡拔, 以遺陛下.
侍中인 郭攸之와 費禕, 侍郎인 董允 등은 모두 선량하고 착실하며 志慮가 忠純하므로, 선제께서 선발하시어 폐하께 남겨주신 사람들입니다.
▶ 侍中 : 천자를 측근에서 모시며 顧問·응대하는 직책.
▶ 侍郎 : 궁중의 門戶를 경비하고 車騎를 호위하는 직책.
▶ 志慮忠純 : 志가 忠하고 慮가 純함. 뜻이 충성스럽고 思慮가 純一함
▶ 簡拔 : 선발함. 가려냄.
愚以爲, 宮中之事, 事無大小, 悉以咨之, 然後施行, 必能裨補闕漏, 有所廣益.
신이 생각하기에, 궁중의 일은 일의 대소를 막론하고, 모두 그들에게 諮問하신 후에 시행하시면, 반드시 빠진 것을 보충할 수가 있어서 널리 유익함이 있을 터입니다.
▶ 愚 :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자신에 대한 겸칭.
▶ 咨 :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의견을 물음.
▶ 裨補(비보) : 도와서 모자란 점을 보충함.
▶ 闕漏 : 빠짐, 빠뜨림.
將軍向寵, 性行淑均 曉暢軍事, 試用於昔日, 先帝稱之曰能, 是以衆議, 擧寵爲督.
장군 向寵은 성품과 행동이 훌륭하고도 공평하며 군사에 밝으므로, 옛날에 試用하고 선제께서 유능하다고 칭찬하시매, 그런 까닭에 여럿이 의논하여 向寵을 都督으로 임명하였습니다.
▶ 性行 : 성품과 행동,
▶ 淑均 : 선량하고 공평함.
▶ 曉暢 : 환히 앎. 자세히 앎.
愚以爲, 營中之事, 事無大小, 悉以咨之, 必能使行陣和睦, 優劣得所也.
신이 생각하기에, 陣中의 일은 일의 대소를 막론하고, 모두 그에게 諮問하시면, 반드시 陣中을 화목하게 운영하고 優劣이 제자리를 얻게 할 수 있을 터입니다.
▶ 營中 : 진영 안, 陣中.
▶ 優劣 : 우수한 자와 열등한 자
親賢臣, 遠小人, 此先漢所以興隆也;
親小人, 遠賢臣, 此後漢所以傾頹也.
賢臣을 가까이하고 소인배를 멀리함이 바로 前漢이 흥성한 이유이며, 소인배를 가까이하고 賢臣를 멀리함이 바로 後漢이 기운 이유입니다.
▶ 傾頹(경퇴) : 기울어 무너짐.
先帝在時, 每與臣論此事, 未嘗不歎息痛恨於桓ㆍ靈也.
선제께서 생전에 저와 이런 일들을 의논할 적마다, 桓帝와 靈帝 때의 일을 탄식하고 통한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 桓靈 : 後漢의 孝桓帝와 孝靈帝. 환관이 발호하고 정치가 문란하여 국세가 기울기 시작한 때이다. 陳蕃·李膺 등의 학자가 환관의 횡포에 반발하자, 환관들이 終身禁錮에 처한 黨錮의 사건이 일어나 많은 인재를 잃었다.
侍中尙書ㆍ長史ㆍ參軍, 此悉貞亮死節之臣, 願陛下親之信之, 則漢室之隆, 可計日而待也.
侍中과 尙書·長史·參軍은 모두 마음이 곧고 신의가 있으며 절개를 위해 죽을 신하들이니 폐하께서는 그들을 친애하고 믿으시면 漢 황실의 융성은 날짜를 세면서 기다릴 수 있겠습니다.
▶ 尙書 : 천자와 신하간의 文書受授를 맡은 직책. 당시 陳震이 맡고 있었다.
▶ 長史 : 황궁 및 각 성의 長. 당시 張裔가 맡고 있었다.
▶ 參軍 : 군사회의에 참여하는 직책. 당시 蔣琓이 맡고 있었다.
▶ 貞亮 : 마음이 곧고 신의가 있음.
▶ 計日而待 : 날짜를 세면서 기다리다. 즉 며칠 내에 이루어질 수 있다는 뜻.
臣本布衣, 躬耕南陽, 苟全性命於亂世, 不求聞達於諸侯.
臣는 본래 布衣로 南陽에서 몸소 밭을 갈며 난세에 구차하게 생명을 보전하되 제후에게 나아가 명성이나 벼슬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 布衣 : 베옷. 벼슬하지 않는 사람이 입는 옷이므로 평민을 가리킴.
▶ 南陽 : 河南省 南陽縣.
▶ 聞達 : 명성을 떨치고 높은 지위에 오름.
先帝不以臣卑鄙, 猥自枉屈, 三顧臣於草廬之中, 咨臣以當世之事, 由是感激, 遂許先帝以驅馳.
선제께서는 저를 비천하다고 여기지 않고, 외람되이 몸을 굽혀 왕림하여, 누추한 움막으로 세 번이나 저를 찾아오셔서, 당세의 일을 저에게 자문하셨으매, 이런 일로 인해 감격하여 선제께 부지런히 일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 卑鄙 : 신분이 낮음. 비천함.
▶ 枉屈 : 몸을 굽혀 방문함. 왕림함. 남의 방문에 대한 경칭.
▶ 草廬 : 초가집. 누추한 움막.
▶ 驅馳 : 남의 일로 분주히 돌아다님.
後値傾覆, 受任於敗軍之際, 奉命於危難之間, 爾來二十有一年矣.
그 후에 나라가 기울어져 전복되려는 위기를 만나서, 패전한 때에 임무를 맡고 위급한 때에 명을 받든 지 21년이 지났습니다.
▶ 値傾覆 : 나라가 기울어 뒤집히려는 상황을 만남.
▶ 敗軍 : 建安 13년(208) 유비가 當陽의 長阪에서 曹操에게 크게 패함.
▶ 奉命於危難之間 : 위급한 시기에 명을 받들다. 즉, 유비가 조조의 군대에 대패하여 추격을 당하자, 유비는 吳의 孫權에게 가서 援軍을 청하라는 명을 제갈량에게 내렸다. 그리하여 오와 촉의 연합군이 조조의 대군을 赤壁에서 크게 무찔렀다.
先帝知臣謹愼, 故臨崩寄臣以大事也.
선제께서는 신을 신중하다고 아시므로 임종하실 적에 제게 大事를 맡기셨습니다.
受命以來, 夙夜憂嘆, 恐託付不效, 以傷先帝之明.
명을 받은 이후로 밤낮 근심하며, 부탁하신 일을 이루지 못하여 선제의 明德을 손상시킬까 걱정하였습니다.
故五月渡瀘, 深入不毛, 今南方已定, 兵甲已足, 當獎率三軍, 北定中原.
그래서 5월에 瀘水를 건너 불모의 땅에 깊이 쳐들어갔던 것이며, 이제는 남방이 평정되었고 군사와 무기도 이미 풍족하니 마땅히 三軍을 거느리고 북으로 中原을 평정해야 합니다.
▶ 中原 : 漢族의 발상지인 황하 유역을 말함. 지금의 河北·河南·山東·陝西省 지방.
庶竭駑鈍, 攘除姦凶, 興復漢室, 還于舊都, 此臣所以報先帝, 而忠陛下之職分也.
저의 駑鈍함을 다하여 姦凶을 물리치고 漢왕실을 부흥하여, 옛 도읍지로 돌아가는 것이 신이 선제의 은혜에 보답하는 방법이고, 폐하께 충성을 다하는 직분입니다.
▶ 駑純 : 재주가 없음. 아둔함.
至於斟酌損益, 進盡忠言, 則攸之ㆍ禕ㆍ允之任也.
손익을 살펴 충언을 올림은 곽유지 · 비의 · 동윤 등의 책임입니다.
▶ 斟酌 : 사정을 미루어 살핌.
願陛下託臣以討賊興復之效. 不效則治臣之罪, 以告先帝之靈.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제게 盜賊을 토벌하여 漢 왕실을 부흥시키는 공효를 맡겨 주시되, 효과가 없으면 신의 죄를 다스려 선제의 영전에 고하십시오.
若無興德之言, 責攸之ㆍ禕ㆍ允等之咎, 以彰其慢.
만약 덕을 일으키는 進言이 없다면 곽유지·비의·동윤 등의 허물을 꾸짖어 그 태만함을 드러내십시오.
陛下亦宜自謀, 以諮諏善道, 察納雅言, 深追先帝遺詔.
폐하께서도 자신을 살펴 善道를 자문하고 바른말을 살펴 받아들여서 선제의 遺命을 깊이 추종하셔야 합니다.
▶ 諮諏 : 諮問.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의견을 물음.
▶ 察納 : 자세히 살펴서 받아들임.
▶ 雅言 : 바른말 正言.
▶ 遺詔 : 임금이 죽을 때 내리는 詔命.
臣不勝受恩感激.
저는 선제께 받은 은혜를 감당하지 못해 감격합니다.
今當遠離, 臨表涕泣, 不知所云.
이제 멀리 떠남에, 表를 쓰려니 눈물이 흐르고, 말씀드릴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해설
諸葛亮(181~234)의 자는 孔明으로 琅琊 사람이다. 三顧草廬에 의해 정계에 진출하여 유비를 도와 蜀漢의 부흥에 힘쓴 사람이다.
《三國志》 諸葛亮傳에 '5년(227)에 군대를 이끌고 漢水에 주둔하다가 출발에 즈음하여 疏를 올렸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때 올린 소가 바로 이 출사표이다.
이 글에서는 선제의 은혜에 대한 감격과 국가에 대한 충성 및 後主에 대한 간절한 부탁이 구구절절이 배어 있어 읽는 이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다음은 선인들의 출사표에 대한 독후감이다.
陳靜觀云:
陳靜觀이 말했다.
“前段起處, 便提先帝中道崩殂, 後面又繼以深追先帝遺詔,
“앞 단락의 일으키는 곳에선 곧 선제가 중도에 崩御함을 제시하되, 후면에선 또한 깊이 선제의 남겨진 명령을 追念함을 이었으며
後段提起先帝臨崩, 寄臣以大事, 後面又繼以不効, 告先帝之靈,
뒷 단락에선 선제가 붕어함에 다다라 제갈량에게 대사를 부탁한 일을 제시하되, 후면에선 또한 효험이 없다면 선제의 영령에게 알리라는 것을 이었으니,
此最是感激痛苦懇切處.
이것이 가장 감격스럽고 고통스러우며 간절한 곳이다.
盖緣先帝臨崩, 祗分付後主孔明兩人, 今日如何忘得?”
대체로 선제가 붕어함에 다다르자 다만 후주와 공명 두 사람에게 분부하였으니, 붕어하여 시간이 지난 지금이라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 大槪後主此時, 自有危急存亡之懼, 付天下於無復可爲者矣.
대체로 후주는 이때 스스로 ‘危急存亡의 두려움’을 느끼고, 천하를 다시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故孔明此篇專謂, 事勢固是如此, 然坐待其弊, 如先帝付託何?
그러므로 공명은 이 글에서 온전히 말하였다.
‘일의 형세가 진실로 이와 같지만, 앉아서 피폐해지길 기다린다면 선제의 부탁을 어찌해야 합니까?’
故前一段, 專是提撕後主精神, 使盡興隆漢室之道,
그러므로 앞의 한 단락은 오로지 말하기를, 후주의 정신을 분발시켜, 한나라 왕실을 부흥시키는 도리를 다하라고 하였고,
後一段, 專是感激, 自任以興復漢室之功.
뒤의 한 단락은 오로지 말하기를, 감격하여 한나라 왕실을 부흥시키는 공적을 자임한다고 하였다.
大槪終篇之意, 歸重後主身上意重,
若後主裏面, 不自振刷,
孔明獨力在外, 亦理會不得.
대체로 끝부분의 뜻은 후주 자신의 의지가 중요함에 귀착시켰으니,
만약 후주가 내심 스스로 진작하여 쇄신하지 않는다면
공명이 홀로 바깥에서 힘쓰더라도 성공할 수 없다고 하였다.
此意良可哀也.
이 뜻이 진실로 서글퍼할 만하다.
아래 문장도 출사표에 대한 독후감인데 누구의 所作인지 알지 못한다.
예로부터 제갈공명의 出師表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忠臣이 아니며, 李密의 陳情表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孝子가 아니고, 韓愈의 祭十二郞文을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는 우애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였다.(世稱 3대 名文) 여기에서도 비슷한 말을 인용하고 있다.
段段提先帝兩字,
盖謂臣惟念及先帝, 所以不敢辭興復之責, 後主倘念及先帝, 亦如何不自念興隆之道.
단락마다 先帝 두 글자를 제시하였으니,
추측하건대,
‘신이 오직 선제를 생각하여 감히 復興할 책임을 사양할 수 없되, 후주도 혹시 선제를 생각한다면 그 또한 어찌 興隆할 방법을 생각하지 않겠는가?’라는 말일 터이다.
前輩謂:
“讀此表, 不隕淚者, 是眞無人心.”
선배들이 말했다.
“이 표문을 읽고서 눈물을 떨구지 않으면 참으로 人心이 없는 것이다.”
仔細看來,
孔明之志, 眞可隕英雄之淚於千載之下者.
자세히 읽어보면,
공명의 뜻은 참으로 1000년 이후에 영웅의 눈물을 떨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盖此時事勢, 以孔明之智, 豈不知其不可爲?
추측하건대, 공명의 지혜로써 이때의 事勢가 不可爲임을 어찌 몰랐겠는가?
獨以草廬驅馳之許, 難食言也,
臨崩大事之屬, 尙在耳也,
務北伐以報先帝, 孔明惟盡吾心而已.
다만 초려에서 驅馳를 허락하였으매 식언하기 어려웠고,
붕어함에 대사를 부탁한 일이 아직도 귀에 남았기 때문에,
북벌에 힘써서 先帝에 보답하고자 공명은 오직 자신의 마음을 다하였을 뿐이다.
雖然,
孔明之師出矣, 亦必後主能追先帝遺詔, 事事振刷否乎?
비록 그러하나,
공명의 군사가 출진함에, 후주가 선제의 遺詔를 추념하여 일마다 진작하고 쇄신할 것인지 기필하겠는가?
若孔明旣行之後,
宮府之事, 不能必後主施行之審,
臣下賢否, 不能必後主用舍之精,
則孔明外焉興復之志雖勤, 後主內焉興隆之志全靡,
天下事亦終付之無可奈何而已.
만약 공명이 출진한 후에,
宮中과 府中의 일을 후주가 시행하기를 살피리라 기필하지 못하고,
신하의 賢否를 후주가 用舍하기를 정밀하리라 기필하지 못하면
공명이 바깥에서 부흥하려는 뜻을 힘써더라도, 후주는 안에서 부흥하려는 뜻이 전혀 없는 것이니,
천하의 일이 또한 끝내 어쩌지 못하는 데로 부쳐질 뿐이다.
故臨行一疏,
述吾今日所以不敢不北伐之由, 勉後主今日所以不可自菲薄之意.
그러므로 출진을 앞두고 한 번 상소함에
자신이 오늘 감히 북벌하지 않아선 안 되는 이유를 서술하고, 후주가 오늘 스스로 약해져선 안 된다는 뜻을 권면하였다.
務使後主專以興隆漢室爲心, 孔明專以興復漢室爲責,
求相與以濟危急存亡之會,
而實有所不能必者.
힘써 후주는 漢室의 興隆에만 마음을 두게 하고, 공명은 漢室의 부흥에만 책임을 져서,
함께 危急存亡의 때를 구제하려 하였으나,
실제로 기필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故終之曰:
“願陛下託臣以討賊之效.”
그러므로 끝맺으며 말하였다.
“폐하께서 신에게 討賊의 공효를 맡기소서.”
而又繼之曰:
“不效, 告先帝之靈.”
또 이어서 말하였다.
“공효가 없으면 선제의 영령께 알리소서.”
又曰:
“陛下亦宜自謀.”
또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또한 자신을 관리하소서.”
繼之曰:
“追先帝之遺詔.”
이어서 말하였다
“선제의 遺詔를 추종하소서.”
孔明此謨, 亦是不負先帝之遺詔,
其責 皆有所不可逃者.
공명의 이 계책은 선제의 遺詔를 저버리지 못한 까닭도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그 책임 모두에는 피할 수 없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幾行斷簡, 萬古凄涼,
此吾所以有感於不隕淚無人心之說也.
몇 줄의 끊어진 簡牘이 만고에 처량하니,
이것이 내가 ‘눈물을 떨구지 않으면 人心이 없는 것이다.’라는 주장에 감동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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