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의 허사(虛詞) 至 |
至竟 ~의 정도에 이르다 不至 ~할 필요없다 何至 ~할 필요없다 至于 ~의 정도에 이르다 至乎 ~에 관해서는 至夫 ~으로 말하면 至如 ~으로 말하면 至若 ~에 관하여는 至는 副詞와 前置詞 그리고 接續詞로 쓰인다. 王羲之의 《蘭亭集序》에 보이는 “群賢畢至지[여러 賢士들이 모두 모였다]”라는 구절에 쓰인 至는 “모이다”라는 뜻의 동사로 쓰였고, 《論語 泰伯篇》에 보이는 “周之德其可謂至德也已矣[주나라의 덕은 그야말로 지극하다고 말할 수 있다]”라는 문장에 쓰인 至는 형용사로서 “지극하다”란 뜻으로 쓰였다. 위에 든 예는 물론 虛詞로서 쓰인 것이 아니다. 虛詞로 쓰이는 至자 중에는 또한 고정단어로 굳혀진 復音詞가 상당수 있다. 이에 관하여는 해당 부분에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
(1) 至는 부사로서 최고의 정도에 도달했음을 표시한다. “아주” “지극히” “매우”로 해석한다.
¶ 公輸子自以爲至巧. 《墨子 魯問篇》
○ 공수자는 스스로 지극히 교묘하다고 생각했다.
¶ 卓王孫怒曰: “女至不材, 我不忍殺, 不與一錢也.” 《史記 司馬相如列傳》
○ 탁왕손이 화가 나서 말했다: “매우 못된 여식 같으니라고, 내 차마 죽이지는 못하겠고, 일전 한푼 나누어주지 않겠다.”
¶ 同我婦子, 饁彼南畝, 田畯至喜. 《詩經 豳風 七月》
○ 내 아내와 아들과 함께, 저 남쪽 이랑에 들점심 가져가면, 勸農도 와서 보고 매우 기뻐한다네.
(2) 至는 부사로서 어떤 사건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음을 나타낸다. 그 반대는 “不至”이다. 至는 “~의 정도에 이르다” “마침내”로 해석한다.
¶ 貪飮食而惰從事, 衣食之財不足, 使身至有飢寒凍餒之憂. 《墨子 非儒下篇》
○ 유가(儒家)들이란 먹고 마시기를 탐하면서, 일을 하는데에는 게으르고, 헐벗고 굶주림에 빠져, 얼어죽거나 굶어죽을 위험에 노출될 정도에 이른다.
▶餒(뇌):굶주리다
¶ 此之時, 則至治已. 今遂至使民延頸擧踵曰: “某所有賢者” 贏糧而趣之. 《莊子 胠篋篇》
○ 이와 같은 시대야말로, 지극히 잘 다스려진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백성이 목을 길게 늘이고 발돋움을 하며, “어디 어디에 현자가 있다.”라고 말하며, 양식을 싸 짊어지고 그에게 달려가는 세상이 될 정도에 이르렀다.
¶ 湯嘗病, 天子至自視病, 其隆貴如此. 《史記 酷吏張湯傳》
○ 장탕은 일찍이 병을 얻었는데, 그의 고귀함이 천자께서 친히 문병을 할 정도에 이르렀다.
¶ 居邑屋至不見敬, 是吾德不脩也. 《史記 遊俠郭解列傳》
○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은, 내가 덕을 쌓지 못한 연유이다.
¶ 南則荊, 吳之王, 北則齊, 晉之君, 始封于天下之時, 其土地之方未至有數百里也, 人徒之衆未至有數十萬人也. 以攻戰之故, 土地之博至有數千里也, 人徒之衆至有數百萬人. 《墨子 非攻中篇》
○ 남방의 초왕과 오왕, 북방의 제군과 진군은, 천하를 제후로 봉할 당시에는, 그들의 토지는 수백리에 미치지 못했으며, 인구 수도 기십만에 미치지 못했다. 상호간에 공격하고 전쟁을 한 결과, 토지의 넓이는 마침내 수천리로 늘어났고, 인구수도 마침내 기백만으로 증가했다.
☞“至竟”은 “필경” “결국”으로 해석한다.
¶ 至竟江山誰是主? 苔磯空屬釣魚郞. 《杜牧: 題橫江館》
○ 강산의 주인은 필경 누구인가? 새하얀 물가 바위의 선태, 물총새가 주인이지!
¶ 至竟息亡緣底事? 可憐金谷墜樓人. 《杜牧: 題桃花夫人廟》
○ 식나라가 필경 망하게 된 연유는 무엇인가? 가련하다, 누각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이여.
(3) 不至는 “…할 필요가 없다”로, 何至는 “무엇 때문에, 하필”로 해석한다.
¶ 天子嘗欲敎之孫, 吳兵法. 對曰: “顧方略如何耳, 不至學古兵法.” 《史記 霍去病傳》
○ 황제는 일찍이 그에게 손자와 오기의 병법을 가르치고자 했다. 이에 대하여 곽거병은 말하기를: “지금 쓸 전략이 무엇인가만 생각하면 됩니다. 옛 병법을 체득할 필요는 없습니다.”
¶ 爲治者不至多言, 顧力行何如耳. 《史記 儒林列傳》
○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힘써 행하느냐에 달려있을 뿐이다.
¶ 從昆弟假貸猶足爲生, 何至自苦如此. 《史記 司馬相如列傳》
○ 내 형제들에게서 돈을 빌리면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생을하며 살아야 합니까?
¶ 衡曰: “顧當得不耳, 何至嘗書?” 《漢書 匡衡傳》
○ 광형이 말했다: “단지 마땅히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만을 생각하면 되지, 무엇 때문에 상소합니까?”
(4) 至는 前置詞로 쓰이며 “…에, …으로”로 해석한다. 때로는 “自A 至B”의 성구를 이루어 “A로부터 B까지”의 뜻으로 쓰인다.
☞때로는 至于 至乎의 다음절어를 이룬다. 이 두 단어는 같은 뜻으로 “…의 정도에 이르다” “…에 관하여는”으로 해석한다.
¶ 自幽、平之後, 日以陵夷, 至乎阸䧢河、洛之間, 分爲二周. 《漢書 諸侯王表》
○ 유왕과 평왕 이후에 주(서주)나라는 날로 쇠약해지기 시작하여, 황하강과 낙수의 양강 사이에서 근근히 생존하기에 이르러, 2개의 주나라로 나누어졌다.
¶ 自成湯至于帝乙成王畏, 相惟御事, 厥棐有恭, 不敢自暇自逸, 矧曰其敢崇飮? 《書經 酒誥》
○ 성탕으로부터 제을에 이르기까지 천명을 경외하면서 국정을 다스렸다. 그들의 보좌역들 역시 신중하고 성실하여, 감히 스스로 한가하고 스스로 안일함을 탐하지 못하였으니, 하물며 감히 술마시는 것을 숭상한다 하겠는가?
¶ 參始微時與蕭何善, 及爲將相, 有郤. 至何且死, 所推賢唯參. 《史記 曹參世家》
○ 조참이 아직 미천했을 때에는 소하와 사이가 좋았으나, 후에 조참이 장군이 되고 소하가 상국이 되어서는 틈이 벌어졌다. 그런데 소하가 죽음에 임박하여 현명하다고 추천한 사람은 오직 조참 뿐이었다.
¶ 莽于是自謂大得天人之助, 至其年十二月, 遂即眞矣 《漢書 翟義傳》
○ 왕망은 이리하여 스스로 하늘과 사람들의 도움을 크게 얻은 것으로 여겼으며, 그해 12월에 이르러서는 과연 진짜 황제가 되었다.
(5) 至는 他轉連詞로 쓰여, 하나의 상황에서 다른 상황으로 전환됨을 나타낸다. “…에 관해서는” “…으로 말하면” 등으로 해석한다. “至于”와 같다.
☞ 옛사람들은 같은 뜻으로 至于와 至於를 많이 사용했다. 또한 “提挈助詞”인 夫자를 넣어서 만든 至夫도 병용했다. 그리고 至如 至若도 같은 뜻으로 병용했다.
¶ 恬談有趨舍之義, 平安知禍福之計. 而今也玩好變之, 外物引之, 引之而往, 故曰拔.至聖人不然, 一建其趨舍, 雖見所好之物不能引. 不能引之謂不拔.《韓非子 解老篇》
○ 세상의 명리(名利)에 대하여 욕심이 없고 마음을 평안하게 먹으면, 그는 취하고 버림의 길을 그르치지 않으며, 화복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현 세상사는 즐겁고 좋은 물건들이 그의 마음을 유혹하고 변하게 하여 본심을 빼앗아 버리기 때문에, 노자는 이것을 “발(拔:정신을 뽑는다)”[노자 54장]이라고 말했다. 이와는 반대로, 성인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일단 그 취사(取捨)의 길을 결정하면 즐길만한 것을 보고도 결코 마음이 이끌리지 않는 것이다. 노자는 이것을 “불발(정신이 뽑히지 않는다)”이라고 말했다.
¶ 故言九州山川,《尙書》近之矣. 至《禹本紀》、《山海經》所有怪物, 余不敢言之也. 《史記 大宛列傳》
○ 그러므로 구주의 산천에 관한 기록은 《서경》의 기록이 사실에 가깝다. 《우본기》나 《산해경》에 기록되어 있는 기이한 것들에 관해서는 나는 구태여 말하지 않겠다.
¶ 君臣也者, 以計合者也. 至夫臨難必死, 盡智竭力, 爲法爲之. 故先王明賞以勸之, 嚴刑以威之. 《韓非子 飾邪篇》
○ 군주와 신하의 관계는 계산의 관계인 것이다. 신하로 말하면, 난국에 처하여 생명을 버리고, 지식을 동원하여 나라에 헌신하게 되는데 이것은 오직 법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선왕들은 포상을 명백히 하여 신하를 독려하였고, 형벌을 엄격히 하여 신하를 위협했던 것이다.
¶ 丞相洪燕見, 上或時不冠, 至如黯見, 上不冠不見也. 《史記 汲黯列傳》
○ 승상 공손홍이 연회에서 배알할 때 황제는 때로는 관을 쓰지 않고 대면했으나, 급암에 관하여는 관을 쓰지 않고 만나는 법이 없었다.
▶燕:=宴
¶ 韓子曰 : “儒以文亂法, 而俠以武犯禁.” 二者皆譏, 而學士多稱於世云. 至如以術取宰相卿大夫, 輔翼其世主, 功名俱著於春秋, 固無可言者. 《史記 游俠列傳》
○ 한비자가 이르기를: “유가는 문(文)으로 법을 어지럽혔고, 협객은 무(武)로써 금령을 어겼다.”고 말하면서, 유가와 협객을 모두 비방했다. 그러나 대다수 선비들은 세상으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다. 계략을 써서 재상이나 경대부의 지위에 올라, 당시 군주를 보좌하여, 그 공훈과 명예가 역사서에 기록된 사람에 대해서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 夫神農以前吾不知已. 至若《詩》《書》所述, 虞、夏以來, 耳目欲極聲色之好, 口欲窮芻豢之味, 身安逸樂, 而心夸矜, 勢能之榮使俗漸民久矣. 《史記 貨殖列傳》
○ 대저 신농씨 이전의 일에 대해서는 나는 알지 못한다. 《시경》이나《서경》에 쓰여있는 우나라나 하나라 이후의 상황에 관하여 보면, 모두 귀와 눈은 매우 아름다운 소리나 좋은 모습을 보려 하고, 입은 좋은 맛을 보고 싶어 하며, 몸은 안락하고자 하고, 마음은 권력과 재능의 영광스러움을 자랑하려고 했으니, 백성들이 이러한 풍속에 물든 지 오래 되었다.
¶ 然關中, 長安樊仲子 … 雖爲俠, 而逡逡有退讓君子之風. 至若北道姚氏 … 南陽趙調之徒, 此盜跖居民間者耳, 曷足道哉? 《史記 游俠列傳》
○ 그런데 관중 지방의 장안에 사는 번중자, … 등은 비록 협객 노릇을 하면서도 겸손한 군자의 풍모가 있었다. 그러나 장안 북쪽 지방의 요씨나 … 남양의 조조(趙調) 등의 무리들로 말하자면, 그들은 민간에 사는 도척과 같은 도적의 무리일 뿐이었다. 어찌 거론할 가치가 있겠는가?
¶ 霸上棘門軍若兒戱耳, 其將固可襲而虜也. 至于亞夫, 可得而犯耶? 《史記 周勃世家》
○ 이전에 본 패상과 극문의 군대는 아이들 장난과 같았구나. 그곳의 장군은 습격하여 사로잡을 수 있겠지만, 주아부라면 어찌 범할 수 있겠는가?
¶ 元、凱旣登, 巢, 許獲逸. 至于今日, 所謂道之云亡, 邦國殄瘁. 群望喁喁, 實在君侯. 《晉書 賀循傳 元帝遺循書》
○ 팔원팔개는 이미 조정에 들어가 정사를 잘 다스렸고, 소부와 허유는 안일을 택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선인들이 말하는 도는 이미 사라져 없어져 버렸고, 온 나라가 고난에 허덕이고 있다. 모두 한 자리만을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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