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의 허사(虛詞) 惟維唯 |
唯獨 “惟오직유” “維맬유” “唯다만유” 이 세 글자는 각각 그 고유의 뜻을 가진 별개의 글자들이지만, 오랜 시일이 흐르는 동안, 그 독음이나 모양이 비슷하고 게다가 이들 세 글자 모두가 허사로 자주 쓰이게 됨에 따라 상호 혼용되었다. 이 글자들은 實詞로 쓰일 때도 예를 들면 思惟, 思唯에 있어서와 같이 혼용되는데 유독 “唯唯諾諾”의 경우에만 “唯다만 유”자를 쓴다. |
(1) 부사로서 獨, 僅의 의미로 쓸 때는 이 세 글자가 모두 단독으로 “다만”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또한 唯獨, 惟獨도 같이 쓰인다.
¶ 子謂顔淵曰: “用之則行, 舍之則藏, 唯我與爾有是夫!” 《論語 述而》
○ 공자가 안연에게 말하기를, “등용되면 나아가 도를 행하고, 버려지면(벼슬자리를 잃거나 등용되지 못하면) 물러나 들어앉는다고 한 말은 오직 나와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 唯善人能受盡言. 《國語 周語下》
○ 오직 선인만이 그에 대한 진심 어린 말을 받아들일 수 있다.
¶ 終鮮兄弟, 維予與女. 《詩經 鄭風 揚之水》
○ 마침내 형제가 적음이라. 오직 나와 너 뿐이로니.
¶ 吳王北會諸侯于黃池, 吳國精兵從王, 惟獨老弱與太子留守. 《史記 越世家》
○ 오왕 부차는 북방의 황지에서 제후들과 회맹했는데, 오나라의 정예 군사들이 그를 따랐고, 오직 노약자들만이 태자와 함께 국경을 수비하고 있었다.
¶ 及高祖崩, 呂氏夷戚氏, 誅趙王, 而高祖后宮 唯獨無寵疏遠者得無恙. 《史記 外戚世家》
○ 한고조가 붕어하자, 여후는 척후 일가를 멸하고, 조왕도 주살했다. 고조의 비첩 중에서 평소 총애를 받지 못했거나 소원했던 자만이 겨우 화를 모면했다.
(2) 원인 부사로서 “바로 …이기 때문에”라는 의미로 쓰인다.¶ 維子之故, 使我不能餐兮. 《詩經 鄭風 狡童》
○ 너 때문에 나는 밥도 먹지 못한다.
¶ 齊大飢, 黔敖爲食于路以待餓者而食之. 有餓者蒙袂輯 屨貿貿然來. 黔敖左奉食, 右执飮, 曰: “嗟! 來食!” 揚其目而視之, 曰: “予唯不食 ‘嗟來’ 之食以至于斯也!”《禮記 檀弓下》
○ 제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었을 때, 검오(黔敖)가 길에서 밥을 지어가지고 굶주린 자들을 기다려서 먹게 했다. 한 굶주린 사람이 소매로 낯을 가리고 발을 절면서, 머리를 기운 없이 떨어뜨린 채 걸어오고 있었다. 검오가 왼손에 밥을 들고 오른손에 마실 것을 들고 말했다. “아, 가엾어라. 어서 와서 먹어라.”고 하였더니, 그가 눈을 치켜 올리고 검오를 보면서 말하기를 “나는 아직 ‘아, 가엾어라, 먹어라’ 하고 말하며 주는 음식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렀다.”라고 말했다.
¶ 唯不信, 故質其子. 《左傳 昭公20年》
○ 바로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자식을 인질로 삼았다.
¶王承恩者,懷宗之近侍也,宮人私向之問寇警. 承恩曰: “若居深禁, 何用知此?” 宮人曰: “惟居深禁, 不可不知而豫爲計也.” 《陸次雲: 費宮人傳》
○ 왕승은은 명나라 회종의 근시(近侍)였는데, 어느 날 궁인이 은밀하게 그에게 전쟁 상황에 관하여 물어 왔다. 승은이 말하기를: “그대는 궁중 금구에 살면서 어찌하여 이러한 상황을 알고자 하는가?” 궁인이 말하기를: “바로 궁중 금구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을 빨리 알아내어 미리 대처해야 합니다.”
(3) 唯, 唯唯는 모두 응답하는 말이다. 단독으로 성구가 된다.
☞때로는 唯라고 대답한 다음 然이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唯와 然은 각각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즉 唯는 다만 알아들었다는 뜻을 “예!”하고 정중하게 응답하는 말일 뿐이고 가부를 표시하는 말이 아니다. 然이 바로 긍정의 뜻, 즉 “맞다!”, “그렇다!”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따라서 唯와 然은 구별해서 써야 한다. 반드시 먼저 唯하고 대답한 다음에 然해야 한다.
¶ 子曰: “參乎! 吾道一以貫之.” 曾子曰: “唯.” 《論語 里仁》
○ 공자께서 말씀했다: “증삼아! 나의 학설은 하나의 기본 관념이 그것을 관통한다.” 증자가 말했다. “예”
¶ 秦王曰: “先生何以幸敎寡人?” 範睢曰: “唯唯.” 若是者三. 《史記 範睢傳》
○ 진왕이 말했다: “선생께서는 장차 나를 어떻게 가르치려 하오?” 범수가 말했다: “예! 예!” 이와 같이 세 차례 문답했다.
¶ 楚襄王問於宋玉曰: “先生其有遺行與? 何士民衆庶 不譽之甚也?” 宋玉對曰: “唯, 然, 有之.” 《戰國策 楚策》
○ 초나라 양왕이 송옥에게 묻기를, “선생께서 잘못한 행동이 있습니까? 선비들과 백성들이 왜 당신을 칭찬하지 않습니까?” 송옥이 대답하기를, “예 있습니다.”
¶ 意曰: “此病得之, 當浴流水而寒甚, 已則熱.” 信曰: “唯, 然.” 《史記 倉公列傳》
○ 의가 말했다: “이 병을 얻으면, 반드시 흐르는 물에 몸을 담겨서 충분히 식혀야 한다. 한 참 지나면 열이 난다.” 신이 말했다. “예 맞습니다.”
(4) 唯는 讓步連詞로 쓰인다. “설령 … 일지라도” 虽然,纵使,即令,即使와 같다.
¶ 唯子, 則又何求? 《左傳 成公2年》
○ 설사 너라 하더라도 또한 무엇을 요구하겠는가?
¶ 唯其人之贍知哉, 亦會其時之可爲也. 《揚雄 解嘲》
○ 비록 그러한 사람들이 지모가 뛰어나다 할지라도, 그 시기를 만나게 된다면 역시 그러할 것이다.
¶ 須賈問曰: “孺子岂有客習于相君哉?” 范睢曰: “主人翁習知之; 唯睢亦得謁.” 《史記 範睢列傳》
○ 수가가 범수에게 물었다: “당신 같은 소인배가 설마 진나라 승상과 아는 사이는 아니겠지?” 범수가 말했다. “객점 주인이라도 그를 잘 알고 있습니다. 설사 나라고 할지라도 그를 알현하겠습니다.”
¶ 不識天下之以我備其物與? 且惟無我而物無不備者乎? 《淮南子 精神訓》
○ 천하는 내가 있어야만 만물을 구비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없다 할지라도 만물은 만물로서 구비될 수 있는 것일까?[그것은 모두 알 수가 없는 일이다.]
(5) 維, 惟, 唯 이 세 글자는 모두 語頭助詞로 쓰이는 경우가 있지만, 아무런 뜻이 없다.
☞이 의미가 없는 어두조사는 상고시대 때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답습되어 내려왔는데, 현대 중국어에 와서야 비로소 쓰이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무의미 어두조사는 번역을 할 수도, 필요도 없다.
¶ 互鄕難與言, 童子見, 門人惑. 子曰: “人潔己以進, 與其潔也, 不保其往也. 與其進也, 不與其退也. 唯何甚!” 《論語 述而》
○ 호향의 사람들은 더불어 말하기도 힘든 사람들인데,그 곳 꼬마가 공자님 뵙기를 청하므로 문인들이 당혹스러워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제 몸을 깨끗이 하고 나오면, 그 깨끗함을 인정해 주되,과거의 것들은 들추지 말아야 한다. 그가 전진한다면 함께 하면 되고,물러선다면 함께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대저 무엇이 걱정할 것이 있겠느냐!”
¶ 維此文王, 小心翼翼. 《詩經 大雅 大明》
○ 문왕께서는 삼가시고 힘쓰셨다.
¶ 惟十有三祀, 王訪子箕子. 《尙書 洪苑》
○ 13년에 왕은 기자를 방문했다.
(6) 維와 惟는 等立連詞로 쓰여 “… 와” “… 과”의 뜻을 가진다. 상고 시대에만 쓰였다.
¶ 齒革牛毛惟木. 《尙書 禹貢》
○ 상아, 물소 가죽, 조류, 야크의 꼬리 털 그리고 경(梗), 재(梓), 예장나무 등 목재.
¶ 虡業維樅, 賁鼓維鏞, 於論鼓鍾, 於樂辟廱. 《詩經 大雅 靈臺》
○ 종과 경을 매다는 틀에, 큰 북과 큰 종이 달려 있도다. 아아, 질서 있게 종을 쳐서, 아아, 천자님 공부하는 곳에 즐겁게 들린다.
상고 시대에 쓰여진 維자와 惟자의 용례 중에는 현재까지도 그 확실한 뜻을 헤아리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면,
①《尙書 皐陶謀》에 나오는 “百工維時” 또는 “百工惟時”의 구문에서 維 또는 惟자가 보이고 있으며,
②《召誥》에 보이는 “無疆惟休[한없이 복되기도 하려니와] 亦無疆惟恤[또한 한없이 걱정되기도 하니]”과 같은 구절, 그리고
③《酒誥》에 보이는 “勿庸殺之[그들을 죽일 것 없이] 姑惟敎之[오직 잠시 가르쳐라]”
④《詩經 小雅 魚麗》에 보이는 “物其多矣 維其嘉矣[음식이 많도다, 그것들은 훌륭하도다]” “物其旨矣 維其偕矣[음식이 맛있도다, 바다와 육지 음식 모두 있도다]” “物其有矣 維其時矣[음식이 많기도 하다, 때 맞추어 있도다]”와 같은 구절이 그것이다.
학자들은 이에 대하여 혹자는 언급하지 않았고, 혹자는 주석을 남기고 있는데, 예를 들면, 鄭玄 같은 이는 《魚麗》에 대하여 “魚旣多, 又善” 운운 하는 주석을 남기고 있는데, 요컨대 그는 이 주석에서 維자를 부사로 보고 그 뜻을 “또한(又)”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한편 黃以周는 《釋維》라는 일문에서 상기 정현의 논지에 찬동하고 있다. 또한 楊樹達 선생은《詞詮》에서 이에 대한 언급 없이 “維”자를 “語中助詞”라고 말하고 있다.
필자로서는 지금까지 위에서 언급하고 있는 학자들의 소견에 찬동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이러한 해석에 대한 방증을 다른 어떤 소스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필자로서도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정확하게 파악하여, 보다 확실하고 적절한 해석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維자에 대한 이러한 용법이 상고시대의 극소수 문헌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지긋이 접어두어도 별문제는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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