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87. 흙집 본문

한글 文章/살리고 싶은 버릇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87. 흙집

耽古樓主 2023. 6. 17. 05:36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

 

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진리는 세상이 좁아지면서 왕성해지고 있는 문물 교류에 중대한 슬기를 암시해 주고 있다.

 

적화(赤化) 이전의 사이공에서 한국의 고추씨를 뿌린 고추밭을 본 일이 있다. 놀랐던 것은 그것이 고추밭이 아니라 고추나무숲을 이루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 땅에서는 겨우 한 자 남짓 자라는 풀에 불과하지만, 같은 씨앗인데도 기후 풍토가 다르면 키를 넘는 나무가 되는 것이다. 무명(木棉)도 그렇다. 남방 작물인 무명은 목면(綿), 목화(木花)란 이름이 말해주듯이 사람이 올라가 따야 하는 나무였다. 그것을 기후와 풍토가 다른 한국 땅에 옮겨 심었을 때는 한 자 남짓밖에 자라지 않는 풀이 되고 만다. 강남의 귤을 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이 진리는 세상이 좁아지면서 왕성해지고 있는 문물 교류에 중대한 슬기를 암시해 주고 있다.

 

이를테면 1년의 3분의 2 이상이 겨울이요, 짧은 여름에도 스웨터를 입어야 하는 날이 많은 고위도(高緯度)의 유럽에서는 집열효과(集熱效果)가 큰 돌, 벽돌, 시멘트가 建材로서 십상일 수밖에 없다. 한데 1년의 절반 동안 남태평양의 따가운 열기단(熱氣團)이 내려깔고 있는 한국 땅에선 열을 끌어 오랫동안 뿜어대는 집열성 건재는 여름 나는 데 참을 수 없는 고달픈 건재일 수밖에 없다. 한데도 서양것이면 무턱대고 좋고 편리하다는 이상한 가치관의 범람 때문인지 우리나라 집들의 거의가 이 걸맞지 않은 건재들로 짓고 있으니, 옛 선조들에 비해 현대인은 한결 쾌적하지 못한 주택 공간에서 살고 있는 것이 된다. 寒暑의 차이가 극심한 우리 한국 풍토에 가장 알맞은 건재는 더울 때는 더운 외기(外氣)를, 추울 때는 추운 외기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단열효과가 큰 건재다.

 

이 세상에서 단열효과가 가장 뛰어난 건재는 흙이요, 그래서 옛집에 벽이건 천장이건 바닥이건 간에 흙을 두툼하게 깐 이유는 이에 있는 것이다. 흙집은 냉기나 삼복의 열기가 거의 전도되지 않기에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포근하다. 또한 우리나라는 습도의 기폭도 심해 90퍼센트에서 30퍼센트까지 오르내리는데, 흙집은 방안이 過濕하면 이를 머금었다가 건조하면 뿜어주는 에어컨디셔너 구실까지도 한다.

 

다만 흙은 그 유약성 때문에 현대식 공간 구성에 알맞지 않다는 약점이 없지는 않다. 이 취약점을 현대 건축이론으로 보완한 현대식 흙집이 대전에서 첫선을 보인 바 있고, 연전에 열린 건축학회 학술대회에서 미네소타 대학의 한·미 두 교수가 그 우수성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에 의하면 이 흙집은 외기의 온도차가 13도의 기폭을 보이는데도 방안 온도차는 1도 미만에 그쳤다 했다. 그래서 그렇지 않은 집보다 23퍼센트의 에너지 절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름의 더위 차단에 습도조절까지 감안하면 이 현대식 흙집은 일석오조(一石五鳥)가 아닐 수 없다. 일석오조 때문이 아니라 외래문물을 수용할 때면 이 같은 우리 풍토에서 형성된 슬기를 수렴해야 한다는 본보기로서 이 흙집에 각광을 비추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