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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76. 미역과 김

耽古樓主 2023. 6. 16. 03:27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

 

<초학기>에서도 고래가 새끼를 낳으면 미역을 뜯어 먹음으로써 상처가 아물게 하는 것을 보고 고려 사람들이 산부에게 먹인다고 했다.

 

몇 년 전에 발생한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原電) 폭발로 유럽 사람들의 공포가 대단했던 것 같다. 오염이 예상되는 야채와 우유는 시장에 산적된 채 썩어 문드러지고, 대신 일상생활에서 천대받던 통조림이 동이 났으며, 아예 뉴스를 접한 날부터 단식한 사람도 수두룩했다 한다. 나들이할 때 볕이 내리쬐는데도 우산을 받고 나가고 신발에 비닐 덧신을 신고 다니기도 했다. 기형아를 두려워하여 낙태하려는 부인이 줄지어 서고 돈 많은 사람은 남미로 피난을 떠나기도 했다 한다.

 

낙진(落塵) 오염에 가장 예민한 인체의 부위가 갑상선(甲狀腺)이며 이를 예방하는 데 요드 성분이 많은 해조류(海藻類)가 좋다는 소문이 나도는 가운데 폴란드에서 국민학생들에게 미역과 김을 배급했다는 소식이 겹쳐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만을 상대로 해서 파는 미역과 김이 동나고 암거래까지 되었다 한다. 근간에 소련이 미역과 김을 대량 수입해 갔으며 동해의 연해주(沿海州)에 양식장을 만들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 역시 방사능 노이로제의 일환이 아닌가 싶어진다.

 

언젠가 테헤란의 한 호텔에서 김을 안주로 해서 술을 마신 일이 있었다. 한 이란의 청소부가 이를 보았는지 검은 종이를 먹는 이상한 인종이 나타났다고 광고를 하여 수십 명의 청소부들이 방안을 들여다보느라 법석을 떨었다. 검은 종이가 아니라 남편들에게 좋은 스태미나 식품이라 하자 너나 할 것 없이 앞을 다투어 반쪽씩 얻어갔다. 그리고 이튿날 한 중년의 청소부가 몰래 찾아와 손수건만한 페르시아 수직포(手織布)를 주면서 그 스태미나 식품을 더 줄 수 없느냐고 간절하게 부탁하던 일이 생각난다.

 

미역과 김 등 해조류를 먹는 민족은 이 세상에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밖에 없다. 명나라 때 문헌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보면 미역은 신라와 고려에서 나는 것으로 국을 끓여 먹으면 기(氣)를 내린다 했고, 《초학기(初學記)》에서도 고래가 새끼를 낳으면 미역을 뜯어 먹음으로써 상처가 아물게 하는 것을 보고 고려 사람들이 산부(産婦)에게 먹인다고 했다.

 

고려 충선왕(忠宣王, 1275~1325)이 원나라 황태후에게 미역을 바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미역의 한국사는 유구하다. 1400년대인 조선조 성종 연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 전라도 광양(光陽)에선 이미 4백 년 전부터 김을 토산물로 소중히 여겼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김의 한국사도 미역의 한국사에 못지않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김은 여인들의 얼굴을 예쁘게 한다 하여 '옥조(玉藻)'라는 미명으로 옛시에서 읊어지고 있기도 하다. 근간 미국 신문, 잡지의 요리 난에 김이 미용식으로 소개되어 수요가 늘고 있다는데, 체르노빌 사고 이후 한국의 미각 식품인 미역과 김이 세계적인 미각 식품으로 보편화될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미래소설(小說) 《멋진 신세계》에서는 병의 유발을 예방하고 근심 걱정을 해소시키는 '소마'라는 행복정제(幸福劑)를 먹고 산다 했는데, 바로 그 소마의 원료는 해조물이라 했으니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