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닥칠 일을 예견케 하는 조짐이 나쁘면 좋은 미래가, 그 조짐이 좋으면 나쁜 미래가 약속된다는 相反 思考가 우리 한국인의 독특한 사고방식으로 정착돼 내려 왔던 것이다.
성종 때 학자 성현(成俔, 1439~1504)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 이런 이야기가 적혀 있다.
성안에 소문난 점가(占家)가 있어 과거를 앞둔 세 명의 서생이 흉몽을 꾸고 夢占을 치러 찾아왔다. 때마침 그 점장이가 출타 중이라 그의 아들에게 해몽을 의뢰했다. 한 서생이 거울이 땅에 떨어져 깨진 파경(破鏡)의 꿈을, 다른 서생이 강풍이 불어 떨어지는 낙화(落花)의 꿈을, 그리고 나머지 서생이 허수아비가 거꾸로 매달린 꿈을 이야기하자 모두 상서롭지 못한 꿈으로 해몽을 했다. 낙심하고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돌아왔다. 꿈 이야기를 듣고 나더니 '악몽길조(惡夢吉兆)'라 하며 무릎을 치며 상서로운 조짐으로 해몽을 했고, 이 몽점 대로 세 서생은 대과(大科)에 급제했다.
이처럼 앞으로 닥칠 일을 예견케 하는 조짐[前兆] 이 나쁘면 좋은 미래가, 그 조짐이 좋으면 나쁜 미래가 약속된다는 相反 思考가 우리 한국인의 독특한 사고방식으로 정착되어 내려왔던 것이다. 이를테면 몸에 오물이 묻거나 피가 나면 재물이 생길 길몽인데 반해 비단옷을 입으면 상(喪)을 입을 흉몽이다. 부부가 싸움하는 꿈은 화목해질 길몽이고, 부부가 향응을 받는 꿈은 이혼할 흉몽이다.
꿈뿐만이 아니다. 첫아기 낳는 진통의 산실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면 문 밖에서 시어머니가 '고추냐, 보리냐'고 태어난 아이의 성별을 묻는다. 이때 며느리는 고추(男)일 경우는 보리(女)라고 낭랑하게 대꾸하고, 보리일 경우는 고추라고 풀 죽어 상반되어 대답하게 마련이다. 좋은 일에는 악령이 붙게 마련이기에 아들을 딸로 상반되게 대꾸함으로써 호사다마(好事多魔)를 예방한 것이다.
자손이 희귀한 집의 소중한 아들일수록 악령이 접근하지 못하게끔 惡名으로 아명을 짓는다. 황희(黃喜) 정승의 아명은 황도야지요, 고종의 아명은 이개똥이었다. 쌀을 구입하러 때 쌀을 사러 간다 않고 쌀을 팔러 간다 하는 것이나 돈을 주으면 재수 없다고 하는 것도 바로 호사다마의 마가 따라붙지 않게 하기 위한 상반사고에서 비롯되고 있다. 시집오는 신부의 가마에 검불이나 오물이나 흙을 던지는 것도 악의에서가 아니다. 가게나 택시나 술집의 첫 손님으로 상(喪)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면 재수 좋다고 생각하는 것도 상반사고의 소치인 것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곡식이 아무리 잘 영글어도 거두기 이전에 풍년이란 말을 하는 것은 엄연한 터부(禁忌)였다.
스포츠 경기에서 아무리 자신이 있더라도 이긴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겸손이나 또 아무리 곡식이 잘 영글더라도 풍년 들었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겸손은 굳이 상반사고를 떠나서라도 절실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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