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64.젓가락과 포크 본문
서양사람들은 기도할 때 그저 손을 맞붙이거나 맞쥐고 허공을 응시하는 그래서 눈으로 신을 보려 하는데, 한국사람들은 두손을 닳도록 비비대는 이유도 손으로 신을 잡으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 옛 어머니들에게 있어 옷을 누빈다는 것은 시집살이 등 한국여성의 쓰라린 조건이 주는 괴로움, 슬픔, 아픔을 인내케 하는 정신적 인고 습속이었던 것이다. 인고전이라 하여 심적인 괴로움이 있을 때마다 엽전을 표면이 닳도록 손에 굴리며 참는 습속이 있었듯이 이누비 습속을 인고봉이라 불렀으며 여자 평생에 누비옷 몇 벌씩 짓는다는 건 상식이었던 것이다.
어떤 똑같은 일의 계속적인 되풀이는 괴로움이나 슬픔을 참는 방편으로 효과적이라는 것은 현대심리학에서도 입증되고 있지만, 너무나 괴로움이 잦았던 우리 옛 부녀자들이 눈물을 흘리기 이전에, 비명을 지르기 이전에, 그 가혹한 상황을 누비질로 감내했음은 현명한 처방전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누비 폭이 촘촘할수록 인고 효과가 크다 하여 가급적 섬세하고 정밀하게 누비었으며 누비 솜씨의 촘촘함이 시집살이를 잘하고 못 하고의 판가름 기준이 되었던 것은 바로 이 인고 측면에서 서글픈 합리주의가 아닐 수 없다. 보다 길고 많은 실을 들여 옷을 누비면 그 누비옷을 입은 사람이 보다 장수한다는 속전도 누비옷을 촘촘하게 누비게 하는 복합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다. 돌상에 실타래를 얹는 것은 장수를 기원하는 것이듯, 실은 장수를 상징하는 것이기에 보다 긴 실로 장수를 유감시키기 위해 가능한 한 촘촘히 옷을 누빈다.
한국의 누비옷이 기계화된 재봉틀로 누빈 것에 못지않게 촘촘하고 정밀한 이유는 이 같은 한국 여성의 고통의 미분학에도 복합 이유가 있겠으나, 그렇게 누빌 수 있는 한국인의 손재간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인고의 사회적 이유나 장수의 주술적 이유가 이 한국인의별나게 섬세한 손재간을 상기시키는 원인이 돼, 보다 곱고 촘촘한 바느질을 한국인에게 가능케 했을 것이다.
유럽의 박물관에서 옛날 의류를 구경할 때 서양 사람들의 바느질 솜씨를 눈여겨보면 올이 엉성한 것은 고사하고, 들쭉날쭉 고르지 못한 것이 예외 없이 눈에 뜨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1851년 아이작싱거가 재봉틀을 발명한 이래 유럽 사람들은 사실상 바느질을 잊고 살았기에 조포한 바느질 솜씨가 더욱 퇴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그토록 일찍부터 재봉틀을 발명한 이유는 그들의 손재간이 형편없는 데서 비롯된 궁지에서의 보상작용으로도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되지도 않는 일을 자주 되풀이하는 것을 '조선 바늘에 되놈 실 꿰듯 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조선 바늘이 얼마나 섬세하다는 것과 되놈이 얼마나 손재간이 없는가의 개연성을 입증해주는 것이 되기도 한다. 이불 꿰맬 때만 쓰는 길고 굵으며 바늘귀가 큰바늘을 '되바늘'이라 불렀던 것도, 곧 한국 바늘에 비해 섬세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바늘로 밖에 바느질을 할 수 없었던 중국 사람들의 손재간도 가히 짐작할 만한 것이다.
술집에서 썰어대는 등심이나 생선을 빛이 투과할 정도로 종잇장처럼 얇게 저미는 것은 천재적인 손재간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해내지 못할 손재간의 곡예가 요리에도 완연하다.
펄벅 여사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경주에서 한식 밥상을 같이 한 적이 있는데, 무채 썰어놓은 것, 호박전 부쳐놓은 것을 보고 기계로 썰었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비단 음식점의 전문적인 요리사가 아니더라도 한국의 주부라면 1밀리미터 이하로 써는 것쯤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줄 안다. ‘미국 가정의 부엌에서 도마가 사라진 지 오래이긴 하지만 굳이 고기나 야채를 썰어 보라면 1센티미터 폭 이하로는 썰지 못할 것’이라며 현대문명을 유치화(幼稚化)로 파악하려는 D. 조나스 교수의 지적은 일리가 있긴 하지만 유치화 이전에 더 이상 얇게 썰 수 있는 손재간이 결여돼 있다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병아리는 알에서 깨어난 지 45일이 지나야 암수의 특징이 나타나지만 갓 깨어나서는 구별할 수가 없다. 다만 손가락 끝으로 병아리 항문의 아래쪽을 발정시키면 수일 경우 창자 내의 생식기에 해당되는 미세한 돌기물을 지각할 수가 있다 한다.
그렇다면 누구나 암수의 병아리 감별이 가능할 것 같지만 암놈에게도 아직 퇴화하기 이전의 돌기물이 있기에 감별에 골치가 아픈 것이다. 소위 병아리 감별이라는 것은 겨우 0.5 밀리미터의 초미니 ‘남성의 상징’을 두고 초(秒) 단위의 판단을 해야 하는 초정밀의 손재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미세한 돌기물의 약간 크고 작고의 판별뿐 아니라, 그 미세돌기의 단단하고 부드러움, 매끄럽고 거칠음, 따습고 차가움, 메마름과 추짐을 비롯, 그 돌기물 둘레의 느슨함과 팽팽함을 동시에 손가락 끝으로 감촉함으로써 판단해 내야 하니 초감각적인 감(勘)의 작동 없이는 불가능한 손재간인 것이다.
이 병아리 감별의 공인된 최고기록은 1백 마리 1백 퍼센트 적중시키는데, 3분 6초라 하니 한 마리 감별에 2초가 채 못 걸리고 있다.
무서운 스피드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 세상의 그 많은 수천 종족, 수백 국가들 가운데서 그 병아리 감별을 해낼 수 있는 손재간을 지닌 나라 사람이라곤 오로지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뿐이라는 사실이다.
10여 년 전 일이지만 미국 콜로라도의 주정부에서는 병아리 감별기술자를 보급시키기 위해 한국의 병아리 감별사로 하여금 65명의 미국인 지망자에게 감별기법을 6개월에 걸쳐 전수시키게 했던 것이다. 교육 후 감별 테스트를 해본 결과 개인의 우열은 다소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적중률이 63퍼센트였다 한다. 최소한도 적중률이 90퍼센트 이상은 돼야만 감별의 의미가 있는 것이지, 실패율이 37퍼센트나 된다면 감별하나 마나가 된다. 한 한국의 감별사는 15명의 백인제자들을 계속 거느리고 기법을 전수한 결과 그중 세 명이 90퍼센트의 적중률을 내는데 무려 3년간의 세월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래서 병아리 감별이 가능한 것은 이 세상에서 한국사람과 일본사람뿐이라는 게 상식이 돼 있다고 한다.
병아리의 암수 감별을 해낼 수 있다는 한국인의 섬세한 손재간과 직감과 직결된 손의 촉각의 비범함의 개연성이야말로 한국인의 특징이요, 동일성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미국 여행 때 폭설을 만나 스노타이어를 끼우지 않을 수 없어 서비스 공장에 갔던 일이 있다. 뒷바퀴 두 개를 갈아 끼우는 데 한국 같으면 15분 내지 20분이면 갈아 끼울 것을 무려 2시간 10분이나 걸렸던 것이다. 시간급이기에 노닥거리고 게으름피는 탓도 있지만 손재간이 없는 것도 늦어진 큰 이유임을 알 수가 있었다.
너트를 풀고 죌 때 한국 사람 같으면 죈 것을 풀 때와 마지막 죌 때만 공구를 쓰고 나머지는 엄지, 인지, 검지의 세 손가락을 교묘히 굴려 빼고 박곤 한다. 한데 미국의 기능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구로써 덜그럭거리며 또 자주 떨어뜨려 가며 죄고 풀고 하는데, 낭비되는 시간이 대단하였다. 보기가 답답하여 내가 달려붙어 너트를 손가락으로 잽싸게 돌려 빼자 이 친구는 어깨를 으쓱하며 원더풀을 남발하더니
“이 직업에 몇 년간 근무했었느냐?”
고 묻는 것이었다. 얄밉기도 하여 거짓으로 10년간 근무했다고 하니까
“내가 예상했던 체험연수와 꼭 들어맞는 대단한 기교다.”면서 손뼉을 치며 좋아라 하는 것이었다.
우리 한국인은 손가락으로 할 수 없는 부분에만 공구를 쓰는데 비해 미국 사람은 손가락이 할 수 있는 부분도 공구를 쓰는 이유는 그들의 손가락이 공구 쓰는 것만도 능률적이 아니기 때문인 것이다.
흔히들 백인들 젓가락질하는 것을 보고들 웃는다. 그 젓가락질이 서툴고, 서툰 이유는 그들이 어릴 때부터 젓가락질을 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너그럽게 여기고 있기 때문에 웃음이 난다. 하지만 서툰 젓가락질을 두고 웃을 게 아니라 경멸해야 할 줄 안다. 왜냐하면 백인들 젓가락질이 서툴다면 우리 한국인의 포크와 나이프질도 서툴러야 하는데, 대체로 한두 번 양식을 먹어본 한국 사람이면 웃음이 날 정도의 서툰 칼질, 포크질은 하지 않는다. 한데 유럽이나 미국 사람은 한두 번이 아니라 10년, 20년 동안 젓가락질해도 서툴다는 것은 최소한도 미국에 있어서만은 상식이 돼 있는 것이다.
부인이 한국 여자라 한식을 저녁 끼니마다 먹어 왔다는 미국인 가정에 초대받아 간 일이 있는데,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젓가락질을 시켰다는 15세, 13세, 10세의 세 아이들 젓가락질하는 것을 보니 젓가락짝으로 포크질을 하고 있었다.
미국인 피가 섞여 저 꼴이라는 한국인 어머니가 하던 말이 잊혀지질 않는다. 우리 아이들은 대여섯 살만 돼도 젓가락으로 콩자반도 실수없이 잘 집어 먹는데, 곧 손가락 마디마디의 기민성이나 섬세성이 젓가락질을 잘할 수 있도록 구조적으로 돼 있고 않고의 차이지, 어릴 때부터 젓가락질을 하고 안 하고의 숙련성과는 근본적으로 관련이 적은 것이다.
손가락으로 셈할 때도 영국 사람이나 미국 사람은 한국 사람처럼 민첩하게 손가락을 차례로 굽힐 수가 없다. 왼손을 펴들고 오른손의 인지를 들어 왼손의 엄지손가락으로부터 하나씩 가리키며 1, 2, 3 세어 나간다. 6이 되면 오른손과 왼손을 바꿔 센다. 곧 손가락 마디가 무디어 두 손을 총동원, 더디게 세어 봤댔자 10이상 못센다. 우리 한국인은 한 손만으로 굽혔다 폄으로써 10씩 두 손 모아 20을 센다. 병신 육갑 짚는다는 말도 있듯이 우리 옛 선조들은 병신마저도 손가락 마디마디로 60간지를 거뜬히 헤아릴 줄 알았던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손재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열 자리 넘는 수십 줄의 숫자를 읽기가 바쁘게 암산해 내는 한국인의 재간도 이 손재간과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닌 줄 안다. 암산할 때 예외없이 두 손가락을 잽싸게 놀리고 있음을 볼 때, 고도의 기억력과 손가락에 어떤 신경선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국인의 주산이나 암산이 컴퓨터에 비겨 정확도나 속도가 우수하다는 것은 이 비상한 손재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입증해 주고 있는 것이 된다.
우리 한국의 기능들이 기능올림픽에서 10여 년에 가깝게 연패를 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며, 우리 한국인이 앞으로의 국제화 사회에서 발전하고 자부하고 또 우러름 받고 살 수 있는 가장 양질의 동일성을 새삼 발견시켜 주는 중대한 계기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왜 하필이면 한국인에게 인류 가운데 가장 훌륭한 이 같은 손재간이 형성되었는가 따져보고자 한다.
스포츠는 발로 하는 스포츠와 손으로 하는 스포츠로 대별할 수가 있다. 발로 하는 대표적인 스포츠로 축구를 들 수 있다.
물론 아시아에서는 우리 축구가 강세이긴 하나 유럽 축구나 중남미 축구와 비교해 볼 때 세계적인 정상권에 들기란 비관적이 아닐 수 없다. 동계 올림픽을 구경한 적이 있는데, 그 역시 발로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인지 그야말로 족탈불급(足脫不及)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던 것이다. 역시 발의 스포츠인 각종 육상경기에서도 손기정 같은 기적의 인물이 나타나기 이전에는 정상권이란 물건너 동네의 일이다.
한데 손으로 하는 스포츠는 전혀 다르다. 우리 娘子軍이 나갔다 하면 정상권에 드는 스포츠가 예외 없이 손으로 하는 스포츠란 것은 결코 우연한 일치가 아니라고 본다.
이제까지 50억이 겨루는 운동경기에서 정상권에 들었던 스포츠 종목을 헤아려 보자. 농구도 손의 스포츠, 배구도 손의 스포츠다. 탁구도 핸드볼도 손의 스포츠요, 낭자 궁수들이 개가를 올렸던 궁도도 손가락 끝의 감으로 적중시키는 손의 스포츠다. 예상치도 않게 한 한국 소녀가 영국까지 가서 연패를 노리는 백인 선수를 작살내던 배드민턴의 TV중계를 보고, 옳거니 하고 영감 같은 것이 떠올랐던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배드민턴 역시 손의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개개인의 천부적 자질만으로는 이 손의 스포츠의 세계적 우수성을 설명할 수가 없게 된다. 곧 우리 한국인의 유전질 속에는 손을 동작시키는 데 특히 우성이요, 양질인 유전 인자가 작동하고 있지 않나 싶어진다. 주먹을 불끈 쥐고 손목을 안으로 힘들여 굽히면 손목복판 피하에 한줄기 융기물이 돋아난다. 만져보면 뼈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다. 이것이 손재간을 조작하는 장장근(長掌筋)이라고 한다. 한국 사람의 손에는 대체로 이 근육이 발달돼 있으며 이 근육이 결여된 경우란 1백 명에 4명꼴이라 한다. 한데 유럽 사람에게는 이 근육이 덜 발달되었을 뿐 아니라, 이 근육이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 1백 명에 20명꼴이라 한다.
발에도 이에 해당되는 족척근(足蹠筋)이라는 게 있는데 해부해봐야 나타나는 이 근육의 결여는 손과는 달리 한국, 일본 같은 농경민족의 경우 1백 명에 11명꼴로 많은데, 유럽 같은 유목, 상업 민족의 경우 1백 명에 6명꼴이라 한다.
손재간과 발재간을 좌우하는 이 같은 근육 발달의 동·서 비교는 앞서 손으로 하는 스포츠, 발로 하는 스포츠의 우열과 맞춰볼 때 퍽 흥미있는 비교가 아닐 수 없다.
양은 도망치지만 작물은 도망치지 않는다. 곧 목축 민족은 이동성이기에 발을 많이 쓰고 우리 한국인 같은 농경 족은 정착성이기에 손을 많이 쓴다.
영국 의과대학의 필수과목이 돼 있는 J.Z 영의 <인간연구서설>에 보면 수상(樹上) 생활 시대의 사람의 손은 무지근(拇指筋)이 발달하고 물건을 들어 올리게 된 시대에는 손의 삼각근(三角筋)이 발달하며 손의 작업이 필요하게 되면서 장장근이 발달하게 됐다고 손의 진화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곧 우리 한국인이 별나게 손재간이 좋은 이유는 우리 한국인의 생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 된다.
유럽에서는 일찍이 분업이 발달, 농사짓는 사람은 농사만 짓고, 빵만드는 사람은 빵만 굽고, 베짜는 사람은 베만 짜고, 신발 만드는 사람은………… 제각기 분업이 돼 있다. 분업이 발달하면 손의 연장인 기계가 발달하고 기계에 손의 기능을 맡겨 놀리지 않게 되며, 따라서 그 손의 기능이나 재간이 퇴화할 수밖에 없다.
이미 유럽 사람들은 1850년경에 청소기를 발명, 비질에서 손을 해방시켰고, 접시닦이 기계를 발명, 설거지에서 손을 해방시키고 있다. 미국의 TV 인기 뮤지컬인 <히호>에 보면, 개척시대의 기계세탁 장면이 꼭 나오는데 이미 3백여 년 전부터 섬세한 손놀림을 요구하는 빨래와 빨래 짜는 손의 기능을 그 기계화로 퇴화시켜 온 것이다. 그리하여 미국에 있어 1873년까지에는 세탁기계의 특허가 무려 2천여 건에 이르고 있다.
밀가루 반죽이나 계란 노른자 젓는 것쯤 손으로 주무르고 저어도 될 법한데 손을 놀릴 어느 조그마한 것까지 기계화하였고, 1860년에는 사과 껍질 벗기는 기계까지 주방에 등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손의 연장인 기계는 일상화했기에 손의 기능이나 재간이 퇴화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본래 손의 기능이나 재간이 형편없기에 기계화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논리도 배제 못할 것 같다. 어느 요소가 보다 선행된다기보다 이 두 요소가 서로 상승됨으로써 자꾸만 손의 기능을 퇴화시켰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유럽이나 중앙아시아, 아랍 등 유목, 목축, 상업 민족은 농경민족에 비해 손쓸 일이 아주 적다. 같은 농사라도 유럽의 삼포식 농사란 초겨울에 밭갈고 씨앗뿌려 이듬해 여름에 거두기만 하면 되는, 손을 세 번만 쓰면 되는 간편한 농사다.
아열대 작물인 벼농사의 적지인 동남아에서는 우기에 강물이 범람, 논으로 들어갈 때를 기다렸다가 볍씨를 뿌려 거두기만 하면 되는 손을 두 번만 쓰는 간편한 농사인 것이다. 이에 비해 벼농사가 부적한 미작 북쪽 한계에서 시후(時候)에 쫓기면서 각박하게 벼농사를 지어온 우리 선조들은 볍씨를 뿌려 그것이 밥이 되어 입에 들어갈 때까지 속칭 농부의 손을 여든여덟 번 필요로 하는 그런 농사인 것이다. 천문학적인 손가락 관절의 운동 빈도 없이는 한국 땅에서 생존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거기에 분업이 전혀 발달되지 않아 모든 생활용품을 수공업으로 만들어 써야 했다. 그 무엇보다 섬세한 손재간을 요구하는 베도 아낙이 집에서 짜서 자급자족했고, 지붕이며 멍석이며 가마니며 오쟁이며 돗자리며 모든 생활용구를 직접 손으로 엮고 짜고 얽어 썼다. 손수 방아 찧어 확돌에 갈고, 뒤를 가려 키질하고, 쌀을 일어 조리로 걸러 솥에 앉힌 다음 일일이 나무 꺾어 불을 지피고 부지깽이 놀리는 주식 취사 말고도 남새 가꾸어 뜯어다가 잎 하나 뿌리 하나 낱낱이 다듬어 숨을 죽이고 마늘 실고추 곱게 썰어 기름에 버무려 무치는 그 숱한 부엌 취사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게 움직여야 했던 손가락 관절의 운동 빈도……
웬일로 흰옷만 입어내렸는지, 사흘이면 검게 되는 그 옷을 실오라기 낱낱이 뜯어 빨고 말리고 다듬이질, 홍두깨질 거쳐 다시 바느질로 재구성한 다음 다려 입는 그 숱한 되풀이에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하는 손가락 관절의 운동 빈도며………….
북한계(北限界) 미작이라는 번거로운 농사 구조 때문에 한국인은 대체로 손의 기능이 발달되었지만 거기에 한국의 가사 구조가 더하여 유독 여자의 손의 기능이 발달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국제경기에 가서 남자는 정상권에 못 드는데, 우리 낭자군이 손의 경기에서만은 빠짐없이 정상권에 드는 이유가 바로 이 한국의 가사 구조에서 형성된 한국 여성들의 유전적 플러스 알파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쪽 손이 잘리고 없는 사람은 이따금씩 잘리고 없는 손의 부분이 가려워 못 견딜 때가 있다고 들었다. 소외당한 현대인의 상황처럼 없는 부분을 긁을 수 없는 현상학적인 가려움인 것이다.
손이 있었을 때 그 손을 조작했던 대뇌의 피질과 시각, 청각, 미각, 촉각 운동 등 모든 감각을 조작했던 피질과의 사이에 융화 통합된 어떤 제3의 감각이 형성돼 있으며 손은 없어졌어도 그 통합감각 속에는 이미 그 손의 촉각이나 재간으로 연마된 감각이 살아 있기에 그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 통합된 제3의 감각을 勘이라 한다. 흔히들 감을 잡는다,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할 때의 바로 그 감이다. 감(感)으로도 표기되나 깨우친다는 뜻이 있는 감(勘)이 보다 적절할 것 같다.
감(勘)과 유사한 말을 찾아보면 직각(直覺), 육감(六感), 하의식(下意識), 영감(靈感), 이심전심(以心傳心), 그리고 호흡이 맞고 안 맞고 한다할 때 호흡, 남도 사투리에 재를 잡는다 할 때의 재도 이 감(勘)과 유관된 경지랄 것이다.
한국인의 감은 손과 가장 밀접하고 예민하게 작동한 데 비해 서양사람의 감은 눈과 밀접하고 예민하게 작동한다.
퉁소를 불 때 우리 한국 사람은 예외 없이 눈을 감감조름하게 감고 손끝으로 감을 잡는 데 비해 플루트는 눈을 부리부리 뜨고 눈으로 감(勘)을 잡는다.
한국 사람은 죽을 때 다정한 사람의 손을 잡고 죽는데, 유럽 사람은 괴테의 죽음처럼 빛을 찾으며 죽는다. 헨리 밀러의 소설 속에서 섹스 장면은 예외 없이 전등불을 환하게 켜놓고 진행된 데 비해 한국인의 사랑은 컴컴한 공간에서 손더듬이로 진행된다. 비전(Vision)이란 말이 시각이면서 미래상을 뜻하듯이 눈으로 감을 잡는다는 것은 보다 먼 곳을 볼 수 있어 진취적이랄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손으로 감을 잡는다는 것은 현실적이고 따라서 안정되고 확고하다.
그래서 한국인은 손으로 본다. 우리 한국인은 옷 하나 살 때 쌀 한 되 팔 때 반드시 손으로 만져보고 산다. 곧 촉각 구매를 하는데 예외가 없다. 그러기에 가게에서 밖에 내놓은 상품은 대체로 꾀죄죄하게 손때가 묻은 견본이 되기 마련이다.
관광도 눈으로는 성이 차질 않아 반드시 만져본다. 곧 손으로 보기에 손이 닿을 만한 문화재들의 부분 부분마다 손때로 반지르르하다. 손으로 보지 않고는 통합감각 곧 감이 잡히질 않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들은 기도를 할 때 그저 두 손을 맞붙이거나 맞쥐고 허공을 응시하는, 그래서 눈으로 신을 보려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두 손을 닳도록 비비대는 이유도 손으로 신을 잡으려 하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로 서양 사람들은 돈 헤아릴 때 한장 한장 더디게 옮겨놓으며 눈으로 헤아리는데, 우리 한국인은 한 손에 돈다발을 쥐고 촉감으로 헤아린다. 은행의 창구 여직원들이 돈 헤아리는 것이나 위조지폐를 가려낼 때에도 손에 의한 勘으로 헤아리고 가려낸다. 초기 전매청 연초제조창의 아가씨들이 단번에 스무 개비의 담배를 잡아 담았던 오묘함도 바로 손과 감의 초감각적인 연관 기능이 발달돼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뇌에는 좌뇌 우뇌가 있는데 그 사이에 뇌량(腦梁)이라는 신경선유속(神經線維束)이 있다 한다. 이 뇌량의 생리적 기능에 대해 수년 전까지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뇌수술할 때 이 뇌량을 절단해 내도 별반 장애가 없어 유럽 학계에서는 별반 기능이 없는 부분이라 하여 안심하고 절단해 왔다 한다. 한데 미국의 스펠리 가사니가란 학자가 뇌량은 좌뇌 우뇌 기능을 통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정밀 보고를 한 후에 통합 감각, 곧 감을 형성시키는 온상임이 입증된 것이다.
유럽에서 그것을 제거해도 별반 장애가 없었다는 것은 그들에게 감이 별반 발달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한 것이다.
한국인의 뇌량 기능에 대한 비교연구가 시도된다면 아마 질적으로 우수한 통합 능력이 입증될 것이며 이 감이야말로 한국적인 정서 형성의 주요 인자이면서 세계적인 손재간의 기적을 풀어 주는 인수(因數)가 되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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