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비행기는 과학적인 근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비행기의 시조는 라이트형제가 아니라 그보다 몇백 년 앞선 우리 한국의 선조들이었던 것이다.
이미 임진왜란 때 우리 선조들이 비행기를 만들어 썼다면 곧이듣지 않을 것이다.
호남 순창에 신경준(申景濬)이란 선비가 있었다. 신숙주(申叔舟)의 형제인 신말주(申末舟, 1429~1503)의 후손되는 사람이다. 이분이 각종 수레를 발달시켜 교통을 편하게 하고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는데 그 상소문 속에 비행기 이야기가 나온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은 왜군에 완전 포위되어 성 안 사람들은 독 안에 든 쥐가 되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을 때 일이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도 있듯이, 성안에 어느 한 재간 있는 사람이 날아다니는 수레를 만들어 자신과 가족을 성 밖으로 탈출시켰고 그의 친구들까지 탈출시켰다는 것이다. 그 상소문에 이 나는 수레를 뭣으로 어떻게 만들었는가는 쓰여 있지 않고, 그저 이상한 기술을 써서 만들었다고만 해서 아깝게도 그 이상은 알 수 없지만 이 사실은 당시 진주성 안팎에 있었던 사람들이 직접 눈으로 보았기로 알고 있는 노인이 많다 하였다.
성능에 대해서는 약 30리를 날았다 하니 12킬로미터나 날아간 우수한 성능을 가졌던 것 같다.
순조 때 강원도 원주에 사는 사람이 나는 수레를 만드는 책을 갖고 있어 이를 보았다는 실학자 이규경(李圭景)이라는 사람은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가죽으로 된 큰 바람 주머니를 만들어 뜨게 하고 마치 독수리 날개 같은 날개를 달아 그 가죽바람의 조작으로 약 백 길 높이로 떠서 날 수 있으며 사람은 네 명까지 탈 수 있다 했다.
또 충청도 노성 사람으로 윤달규(尹達圭)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분은 손재간이 좋아 여러 가지 기계를 만드는 수법을 알고 있었으며 나는 수레 만드는 법도 알고 있었는데 그 비법을 남에게 가르쳐 주지 않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했다.
이 같은 몇 가지 사례를 미루어 보면 진주성에서 탈출용으로 쓰였다던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기는 과학적인 근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비행기의 시조는 라이트 형제가 아니라 그보다 몇백 년 앞선 우리 한국의 선조들이었던 것이다.
나는 수레뿐 아니라 나는 배까지 만든 우리 조상들이었다. 나는 배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비행선이 아니라 종래의 돛단배나 노 젓는 배보다 빨리 달리는 배란 뜻이다.
17세기 사람인 정후조(鄭厚祚)란 분이 이 나는 배를 만드는 법을 그림으로 그려놓고 있으며 18세기 초엽의 실학자 이익(李瀷, 1681~1763)도 그 나는 배를 만드는 법을 적어놓고 있다.
18세기 후엽의 이민수(李民秀)라는 분이 호남 수군절도사로 있을 때 이 나는 배를 표본적으로 한 척 만들어 한양에 올려보내 이대로 많이 만들어서 각 도에 전투선이나 조세 운반선으로 활용할 것을 제의했으나 무슨 영문 때문인지 이 나는 배는 채택되지 못하고 말았다.
아마도 당시 집권자들은 이같이 발달된 전선(船)을 갖는다는 것이 청나라의 눈에 거슬릴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청나라는 주변의 약소 국가들이 발달된 무기를 갖는다는 것을 방해하고 억제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나는 배는 민간에서 더러 만들어 운용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규경이라는 19세기 초의 실학자가 순조 17년 그러니까 1817년 여름에 이 나는 배를 직접 눈으로 보았다고 그가 남긴 글에 써있다. 그에 의하면 일명 차륜선(車輪船) 또는 윤선(輪船)이라고도 불렀다는 이 나는 배는 배의 양쪽에 톱니바퀴로 물린 크고 작은 수레 두개씩이 달려 있는데 그 수레들이 마치 물레방아의 방앗수레처럼 돼 있어 물살을 받아 물레방아처럼 돌게 하고 도는 힘으로 물살을 헤쳐나가는 그런 구조로 돼 있었다 한다. 곧 동력을 물에서 얻는 극히 경제적이고 편리한 구조였던 것이다.
시동은 배 안에서 장정들이 수레의 축에 달린 발판을 밟아 수레를 돌림으로써 시동을 걸었고 일단 시동이 걸리면 무한동력의 원리에 따라 계속 수레가 도는 그 물리를 이용한 것이었다. 영국의 와트가 화력에 의한 증기의 힘으로 차륜(車輪)을 돌려 화륜(輪)선을 만들었다면 우리 선조들은 아무 동력 없이 무한동(無限動)의 물리를 이용해서 차륜을 돌린 것이 된다. 대단한 슬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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