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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63. 수놓는 여자

구글서생 2023. 6. 16. 03:13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인고수를 보고 며느리가 그 어떤 일로 어느 만큼 마음을 아파했는지를 알았으며그 아픔을 참아가는 과정을 한눈에 읽을 수 있었다 한다.

 

우리의 옛 부도(婦道)에 사군자(四君子) 수(繡)를 한 벌 다 놓고 난 다음에야 인생을 알기 시작한다는 가르침이 있다. 매(梅)·국(菊)·난(蘭)·죽(竹)을 병풍 크기로 놓은 수를 사군자수라 한다.

 

왜 자수(刺繡)가 인생의 터득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

 

참을 '인(忍)'자를 곰곰이 뜯어 보면 뜻이 깊음을 알 수 있다. 칼[刃] 이 마음[心]을 옴짝달싹할 수 없게끔 위에서 짓누르고 있는 회의문자임을 알 수 있다. 마음이 위로 솟으려 하거나 옆으로 빠져나가려 하거나 하면 날카로운 칼날에 당장 베일 것만 같은, 그래서 당장 마음이 피라도 흘릴 것 같은 형상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고락(苦樂)도 있고 희비(喜悲)도 있고 애노(哀怒)도 있다. 내킨 대로 마음이 동하고 동한 대로 행동을 하면 파멸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 남성 우위의 전통 사회에서 죽어 지낼 수밖에 없었던 우리 부녀자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반드시 사내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쓸모와 소처럼 일해야 하는 노동력의 쓸모, 그 두 가지 쓸모밖에 인정받지 못했던 전통 사회에서 그저 숨쉬는 동물이게끔 규범적 강요를 받아온 우리 부녀자들에게 있어 참는다는 것은 억울하고 통탄해야 할 미덕이 아닐 수 없다.

 

너무나 많은 경우를 참아야 했기에 참게 하는 어떤 보조 수단, 곧 인내 매체가 필요했다. 그것이 사군자수였다. 일명 괴로움을 참는 수라 하여 인고수(忍苦繡)라고도 했다.

 

마음에 고통을 받으면 그것을 밖으로 풀어 버리지 못하고 안방으로 뛰어 들어온다. 벽장 속의 수틀을 꺼내어 숨을 짓누르며 수를 놓는다. 눈물이 앞을 가리면 치마를 들어 눈물을 닦아가며 수를 놓고, 울음을 참느라 목이 굳어 오르면 찬물을 마셔가며 수를 놓고, 손끝이 떨리면 아랫목에 녹여 가면서 수를 놓았던 것이다.

 

이렇게 응어리진 마음을 한 바늘 수를 여러 번 미분(微分)하여 흩어버렸던 것이다.

 

올이 고르지 않아도 된다. 또 수실이 겹쳐 놓이고 색조가 맞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인고수를 보고 며느리가 그 어떤 일로 어느 만큼 마음을 아파했는지를 알았으며, 그 아픔을 참아 가는 과정을 한눈에 읽을 수 있었다 한다.

 

자수로써 참아낸 우리 옛 부녀들의 또 다른 고통이 있었다. 그것은 할 일이 없다는 고통이었다. 대부분의 양가집 규수는 거의 평생을 시집의 울타리 안에서 갇혀 살아야 했다. 갇혀 살면서 할 일이 없다는 무료는 가혹한 고문이었다. 《여사서(女四書)》에 보면, 집에서 아녀자가 할 일이 없다는 것은 할 일이 많다는 것보다 참기 어려운 것이니 어머니는 할 일이 없지 않게끔 일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덕이라고 했음은 진리가 아닐 수 없다.

 

도덕적으로도 갇히고 물리적으로도 갇힌 죄수 같은 몸으로 그 가공할, 할 일 없는 시간을 메우는 매체로도 이 사군자수는 큰 의미를 가졌던 것이다.

 

수바늘에 그 무료함을 한뜸 두뜸 날려 보냈던 것이다.

 

이렇게 난을 수놓고 매화를 수놓고 국화를 수놓고 마지막으로 대를 수놓고 나면 시집살이가 뭣인가를 터득하게 되고 또 시집살이라는 틀에 정신적, 심정적으로 부적(不適)했던 오돌오돌한 돌기들이 매끄러워지곤 했던 것이다.

 

곧 자수는 우리 한국 부녀자의 슬프디슬픈 존재 증명이었다.

 

그리하여 남의 집 며느리를 품평할 때, 그 며느리 수를 잘 놓는다든지 수를 많이 놓는다든지 하면 좋은 며느리란 뜻이 되었고, 바람직하지 못한 며느리를 말할 때 수솜씨가 형편없느니, 수를 전혀 놓을 줄 모르느니 했다.

 

또한 시집갈 딸에게 수를 가르쳤음은 그 자수로써 생활도구를 만들기 위한 실용성이나 정서를 함양시킨다는 예능성보다, 시집가서 밀어닥칠 그 숱한 고통들을 감내하는 정신공학적 효용이 가장 컸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