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가도 성은 시집 성을 따르지 않으며 이성(異姓)의 데릴사위도 처가의 성을 따르지 않고, 심지어 내시가 이성의 양자를 들여도 그 가성(家姓)을 따르지 않았다.
'하느님은 아담으로부터 肋骨 하나를 떼어 내어 그것으로 이브를 만들었다. 이제 그 늑골은 아담에게 돌려줄 때다.'
근대 부인해방운동은 이같이 아담의 늑골 반환에서 시작되고 있다. 19세기 영국에서의 일이었다. 이 '아담의 늑골'은 여자가 시집가면 의당 따르게 마련인 남편의 성(姓)을 의미하였다. 그 남편의 성을 돌려주고 떳떳이 내 본래의 성(maiden name)을 되찾는 것으로 남성우위 사회에서 여권의 초석을 닦으려 들었던 것이다. 1970년대 미국의 맹렬 여성들이 맨 앞에 내세웠던 구호도 바로 '성(性)의 해방, 성(姓)의 해방'이었다. 시집가서도 남편의 성(姓)에 예속되질 않고 본래의 성을 유지하는 '아담의 늑골' 반환으로 이 여권운동은 실효를 거두고도 있다. 언젠가 일본에서도 시집가서 제 성을 지키는 부부별성(夫婦別姓) 운동이 치열해져 거리로까지 번져나가고 있다고 보도된 일이 있었다.
영국이나 미국이나 일본뿐 아니라 이 세상 대다수의 나라들은 시집가면 여성이 자신의 본성(本姓)을 상실하고 남편의 성을 따르는데 예외가 없다. 이탈리아, 서독, 스위스, 오스트리아, 브라질은 민법으로 그것을 못박아 놓고 있고, 영국과 미국은 이 '아담의 늑골' 반환운동으로 부부동성주의(夫婦同姓主義)는 법률상 의무가 아니고 처녀 때의 성을 칭할 수도 있게 했으나 관습을 쉽게 못 버리고 동성을 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소련도 부부의 어느 한쪽 성을 택해도 되고 각자의 혼전 성을 택해도 되게끔 돼 있으나 이 역시 관례를 못 버리고 남편성을 따르는 것이 대세라 한다.
스페인, 포르투갈은 이색적이다. 시집을 가면 남편의 성 아래 아내의 성을 잇는 복합성으로 여자의 성을 살린다. 유명한 스페인의 천재화가 피카소의 본명은 파블로 디에고 루이지 피카소다. 파블로가 이름이요, 디에고가 세례명, 루이지가 부계의 성, 피카소가 모계의 성이다.
중국에서는 대체로 여자의 성명이 없었기에 시집가면 남편의 성을 따르게 마련이었는데 새 민법에서 동성(同姓)을 취하든 별성(別姓)을 취하든 자유롭게 해놓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서 '아담의 늑골'로 만들어지지 않은 유일한 이브가 한국 여성이며, 선진국들에서 아옹다옹 현안(懸安)이 되고 있는 이 여권을 이미 고대부터 누려온 유일한 나라라는 데 긍지를 갖고 또 자랑을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시집을 가도 성은 시집 성을 따르지 않으며 이성(異姓)의 데릴사위도 처가의 성을 따르지 않고, 심지어 내시가 이성의 양자를 들여도 그 가성(姓)을 따르지 않았다. 피의 순수성을 이토록 집요하게 지켜 내려온 민족을 달리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부부가 별성을 지켜 내려온 문화의 배경으로 인류학자 웨스터마크는 부계든 모계든 같은 혈족간의 결혼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외혼제(外婚制)를 든다. 사촌이나 조카와도 결혼하는 내혼제(內婚制), 곧 동물성의 사회가 아닐수록 부부별성 문화가 발달한 것이 된다. 우리가 선진 외국에 과시할 활자 문화, 한글 문화, 청자 문화에 못지않은 모르고 있었던 별성 문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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