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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58. 깜부기 아이펜슬

구글서생 2023. 6. 16. 03:08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

 

우리 옛 전통 화장품으로 꽃분이 있었다맨드라미나 봉숭아처럼 그다지 예쁘지 않고 밤에만 피는 분꽃 열매속에 들어있는 가루다.

 

요즘 화장품회사 사이에 한방(漢方)바람이 회오리치고 있다 한다. 우리 옛 부녀자들이 써왔던 한방미용이 복고되고 있으며, 한방화장품이 수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바람치고는 좋은 바람이다. 기후와 풍토가 다르고, 피부 빛깔이 다르며, 피부의 성질이 유전적으로 다르기에 화장술은 나라마다 개성을 갖고 발달하게 마련인데, 서양 것이면 무턱대고 다 좋다는 맹신 때문에 서양 화장품이 판쳐온 터에 한방 바람은 문화회귀 현상으로서 주목을 끌게 한다.

 

우리 옛 전통 화장품으로 꽃분이 있었다. 맨드라미나 봉선화처럼 그다지 예쁘지도 않고 밤에만 피는 분꽃 열매 속에 들어있는 가루다. 피부가 희어진다 하여 중국 사신들이 즐겨 수탈해 갔다던 국제적인 화장품이었다. 이런 노래까지 있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월궁항아(月宮姮娥)놀던 달아

밝게 밝게 비추어서

분꽃 속에 스며들라

항아처럼 하얀 얼굴

우리 님이 반기게끔.

 

밤새워 달의 정기를 받아 두었다가 달빛 같은 환상적 미모를 안겨주었던 꽃분인 것이다.

 

중국에서 들여온 鉛粉은 납을 산화시켜 생겨난 흰 가루를 분으로 삼은 것이기에 오래 사용하면 鉛毒에 걸리는 부작용이 있었다. 한말에 명성황후의 얼굴이 푸르스름했다던데 이를 연독일 것으로 본 외국인이 있었다. 한국 여인의 피부에는 광물성 분보다 꽃분 같은 식물성 분이 더 잘 먹었던 것 같다.

 

우리 고유의 화장수(化粧水)도 많았다. 이 화장수는 철철이 달라지는데, 오뉴월에는 창포잎 우려낸 물로 얼굴을 씻고, 한여름에는 복숭아잎 우려낸 물, 가을에는 오말류(吳茉荊)잎 우려낸 물과 노란느릅나무 단풍을 우려낸 물, 겨울에는 유자씨를 절구에 찧어 달인 물로 얼굴을 씻었다. 그러면 얼굴 피부에 탄력이 생기고 잔주름이 없어진다 했다. 남도의 부잣집 마님들은 당귀의 뿌리와 잎을 말려 빻은 가루주머니를 세숫대야에 담가놓고 세수를 했다.

 

보리깜부기를 털어 눈썹을 그렸는데 갈흑색(褐黑色)으로 황인종의 피부에 꼭 들어맞는 미묵(眉墨)이었다.

 

비야 비야 오지 말라

우리 엄마 빨래 걱정

우리 아빠 물꼬 걱정

우리 누나 눈썹 걱정

 

하는 동요도 있듯이 깜부기 아이펜슬도 비에 씻겨 내리는 흠만 보충하면 좋은 화장품일 수 있을 것이다. 상류 사회에서는 유별나게 자색(紫色) 빛깔이 나는 목화 꽃잎을 말려 태운 꽃재〔花灰]를 기름 연기에 재어 눈썹을 그리기도 했다.

 

우리 옛 궁중이나 상류 사회의 미용술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것은 고대 중국의 《의심방(醫心方)》이다. 이것을 보면 얼굴과 피부를 하얗게 하는 법으로서 꿀이 담긴 벌집 서 되와 모유 서 되를 죽통(竹筒) 속에 넣어 응달이 지는 땅속에 묻었다가 20일 만에 꺼내어 얼굴에 바른다 했고, 허리를 날씬하게 하는 데는 복숭아꽃을 응달에 말려 가루 내어 식전에 한 숟갈씩 먹으면 된다 했다. 안색 생기를 돌게 하는 법으로는 살구씨 한 되와 참깨 닷 되를 죽처럼 달여 크림을 만들어 바르면 된다 했다. 한방미용이나 한방화장품을 찾기로 들면 무궁무진하다.

 

문화는 무턱대고 전통을 인습하는 수직문화(垂直文化)시대에서 외래 것이면 다 좋다는 수평문화(垂平文化) 시대로 발전하고 다시 그 외래 문화를 전통문화에 절충 · 조화시키는 역수직문화(逆垂直文化)시대로 발전해 나간다고 한다. 한방화장의 유행은 역수직문화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만 같아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