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서>에 보면 고려 사람들은 걷는 것을 달리듯 한다 했고, 연나라 모용초 집권 때 고구려로부터 '천리인(千里人)'으로불리는 선주자(善者走) 10명을 초빙해 통신에 썼다 했다.
신빙할 만한 페르시아 전쟁 기록인 헤로도투스의 《역사(歷史)》에 마라톤 전쟁이 상세히 기록돼 있는데, 마라톤전(戰) 직전에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원군을 청하고자 피디피데스라는 한 건각(健脚)을 달려가게 했다고 적혀 있다. 그는 아테네, 스파르타간의 1백 60킬로미터를 출발한 이튿날에 도착하고 있다. 초인적인 러너였음에 틀림없다.
이 희랍의 건각은 최소한도 이틀 만에 1백 60킬로미터를 주파하여 역사상의 영웅이 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한국에는 2백 킬로미터를 12시간에 달린 건각이 있다. 한말에 왕실의 재정을 주물렀던 이용익(李容翊) 대감이 바로 피디피데스를 능가한, 능가해도 파격적으로 능가한 장본인이다.
명성황후의 친정 조카인 민영익(閔泳翊)이 전주, 한양 5백 리 길을 당일로 달려 편지를 전한 사람이 있다고 명성황후에게 말했다. 이에 흥미를 느낀 고종과 명성황후는 전라감사로 하여금 전주에서 봉서(封書)를 띄운 시각을 적어 이 사람에게 들려 보내라고 했다. 진시(辰時, 오전 8시)에 띄운 그 봉서가 고종의 손에 전달된 것은 당일 戌時(오후 8시)였다.
12시간 중 세끼 밥 먹는 데 2시간을 소비했다 쳐도 시속 20킬로미터로 달린 것이 되며, 이 초인적인 주력(走力) 때문에 임오군란 때 장호원(長湖院)에 피난가 있던 명성황후와 고종 사이의 정보를 신속히 날라댄 공으로 대신 반열로까지 출세하고 있다. 비단 이용익 대감뿐 아니라 우리 한국인은 예로부터 잘 달리기로 주변 국가들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중종 때 재상 김광준(金光準)의 종은 9일 걸리는 한양과 합천 사이 9백 리 길을 사흘에 주파하고 있다고 이를 실제 목격한 박동량(朴東亮)이 그의 문집에 적고 있다. 이 종은 하루에 3백 리를 달린 것이 된다.
<후한서(後漢書)>에 보면 고려 사람들은 걷는 것을 달리듯 한다 했고, 연(燕)나라 모용초(慕容超)집권 때 고구려로부터 '천리인(千里人)'으로 불리는 선주자(善走者) 10명을 초빙해 통신에 썼다 했다. 천리인은 하루에 천리길을 달릴 수 있는 사람이라 했으니 동서고금에 이를 능가하는 마라토너가 있었던가 싶다.
《설문(說文)》이란 중국 고대 문헌에선 조선 땅은 동방이기에 기(氣)가 동(動)하고, 기가 동하기에 발랄하게 잘 달린다고 철학적 해석을 하고 있고, 《풍속통(風俗)》에선 이 동동설(東動說)에 기초를 두고 동이족(東夷族)인 조선 사람들은 어찌나 날래고 잘 달리는지 사슴도 뒤쫓아가 잡는다고 했다. 근세의 실학자 홍대용(洪大容)의 청국(淸國)기행문 《연행잡기(燕行雜記)》에 보면 조선 아이들이 잘 달리고 뛰어노는 것을 전혀 달리지 않고 노는 중국 아이들과 실감나게 비교함으로써 행동학설(行動學說)로 선주(善走)의 근거를 삼고 있다.
역시 실학자 이규경(李圭景)은 ‘동인선주설(東人善走說)’에서 조선 땅은 들판이 적고 산과 언덕배기투성이라 말타기나 수레가 발달하지 않아 힘겹게 걸어다녀야 했기에 잘 달리게 됐다는 지정학설(地政學說)을 내세우고도 있다. 아무튼 우리 한국인은 잘 달릴 수 있는 '천리인'의 유전질을 지니고 있다. 한국 마라톤이 숙원인 12분대를 돌파, 10분대를 목표로 삼게 됐다는데, 천리인의 잠재된 유전질을 감안하면 세계 기록도 약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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