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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20.놀부의 심사부

구글서생 2023. 6. 13. 08:52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

 

아무리 세상이 험하고 어렵다 해도 그 어려움과 험한 속에서 놀부만한 의지와 집념을 가지고 임한다면 어떠한 난국도 타개할 수 있는 것이다.

 

흥부는 박을 타서 나온 쌀로 밥을 지어 남산만큼 쌓아놓고 아들 스물다섯을 불러댄다. 놈들은 철환처럼 이 밥의 산에 박혀 보이지도 않고 그저 꿈틀꿈틀하며 그 많은 밥을 먹어치운다.

 

다른 박에서 청금단(靑錦緞), 흑공단(黑貢殺) 비단이 쏟아진다. 흥부 내외를 비롯 스물다섯 아이들이 마냥 한 필씩 들고 몸에 감아댄다.

 

'뺨과 턱을 휘둘러서 목덜미를 감은 뒤에 왼쪽 어깨에서 시작하여 손목까지 내려감고 도로 감아 올라와 오른쪽 어깨 손목까지 내려감고 ………겨드랑이에서 불두덩까지 감아 내려와서는 두 다리 갈라 감고…………’ 이렇게 감아놓고 보니 진상(進上)가는 청대 죽물(竹物) 같고 성황당 나무 같았으며 숨 막혀 죽으려 드는 놈까지 생긴다.

 

치부한 흥부는 고루거각(高樓巨閣), 오간팔작(五間八作), 천창만호(千窓萬戶)의 호화주택을 짓고 별당에 천하절색 양귀비를 첩으로 들어 앉힌다.

 

일자무식인 흥부이면서 서방(書房)을 차리고 《시경》·《서경》 등 사서삼경에 《고문진보(古文眞寶)》, 백가어(百家語) 등 책을 갖추어놓는다.

 

물론 <흥부전>의 모티브는 착하고 어질게 산 데 대한 응보로서 이 같은 호화로운 장면이 묘사되었지만 그 전체적인 모티브를 떠나 생각하면 박을 탄 다음에 벌어지는 흥부의 소행은 오늘날 사회에서 흔히 벌어지는 개연성과 너무나 부합되고 있음을 본다.

 

우리 한국인은 항상 보다 잘 먹고 보다 잘 입고 보다 좋은 집에서 잘 살려 하는 외형상의 상향의식이 강한 편이다. 그러기에 어떤 부나 재물을 얻으면 흥부처럼 그 외형적인 상향을 서슴없이 한다. 상향을 하고 보면 어떤 인격적인 상향도 하고 싶어져 일자무식인 흥부가 사서삼경을 들여놓듯이 보지도 않는 전집류, 사전류 외 장서들로 허세를 핀다.

 

바탕이나 기초가 없는 상향을 하기에 그 상향은 항상 불안하고 붕괴할 위기에서 허덕인다. 우리는 이 바탕 없는 상향 때문에 빚어진 비극이 보편화된 사회현상으로 깔려있음을 너무나 자주 보아온 것이다. 왜 흥부는 그 부(富)나 재(財)를 외형 상향으로 낭비하지 말고 보다 뜻있고 밀도 높은 내형 상향으로 쓰지 못했던가 하는데 <흥부전>의 교훈이 도사린다고 본다.

 

물론 박 타기 이전처럼 가난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다. 분수에 맞게 살고 그 여분의 부와 재는 자기처럼 가난했던 주변 사람이나 또 자기나, 자기 일가나, 자기 마을이나, 고을이나, 자기 나라를 위해 뜻있게 썼던들 아마 강남 제비는 해마다 박씨를 물어다 주었을 것이다.

 

한국에 대물린 부자가 드물다는 개연성은 바로 흥부처럼 외형상향을 노리기 때문이다. 가장 길게 간 부자로 소문난 경주의 최진사는 일만 석 이상의 이윤을 해마다 주변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가통이 있었다. 곧 내형상향의 그 가통 때문에 십대만석 십대진사의 전례없고 유례없는 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흥부전>의 속편을 사리대로 더 써 나간다면 흥부의 부는 당대에 모두 없어지고 스물다섯이나 되는 그의 아들 세대에는 다시 쪽박을 차고 빈 집이나 물레방앗간을 전전하는 거지가 됐을 것이 분명하다.

 

반면에 <흥부전>에서 악인 일색으로 시종되어 있는 놀부에게서는 긍정적인 측면을 찾아볼 수가 있다.

 

놀부가 타는 박은 흥부가 타는 박과 대조적으로 지극히 흉악한 재앙의 연속이다. 첫 밖에서는 한 노인이 나와 속전(贖錢)을 받아내는데 그 속전 주머니에 벼 천 석 쌓은 노적가리, 심지어 뒷간 거름을 모두 다 쓸어 넣어도 반도 안 찬다. 이렇게 해서 첫 박에 모든 가산을 소실한다.

 

박 타던 일꾼들이 이 꼴을 보고 돌아가려 하자 놀부는 애써 붙들고 다시 박을 탄다. 줄본사 5, 6백 명을 비롯 곰배팔이, 앉은뱅이, 새앙손이 갖은 병신이 몰려들어 6천 냥의 돈을 빼앗아간다. 그래도 놀부의 집념은 꺾이지 않는다.

 

‘선흉후길이요, 고진감래며 삼령오신(三令五申)이라니……‘하고 계속 박을 탄다.

 

첫째 통 상전(上典)통, 둘째 통 걸인통, 셋째 통 흡악통, 세간을 다 빼앗겨 온 집안이 허통우세를 하도 하니 처자들이 모두 애통, 생각하고 생각하니 내 마음이 절통……… 하면서 또 넷째 통, 다섯째 통, 여섯째 통 집념을 버리지 않고 박을 타 나간다. 끝내는 천병만마를 거느린 팔척장사 앞에 놀부는 묶여 재판을 받는 것으로 <흥부전>은 끝나고 있다.

 

이 놀부 박 타는 대목이 현대인에게 어필하고 감동을 주는 것은 그 잇따른 불행과 재앙의 연속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타 나가는 그 강인한 집념이다. 어떤 현대인이 그 불행의 연속에서 그만한 집념을 가질 수 있겠는가.

 

권선징악의 모티브를 떠난다면 이 놀부의 집념은 현대의 한국인이 잊어버리고 있는 가장 소중한 전통적 유산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세상이 험하고 어렵다 해도 그 어려움과 험한 속에서 놀부만한 의지와 집념을 가지고 임한다면 어떠한 난국도 타개할 수 있는 것이다.

 

<흥부전>의 맨 첫머리에, '사람마다 오장육부로되 놀부는 오장 칠부(七府)인 것이 심사부(心思腑)하나가 왼편 갈비 밑에 병부(兵符)주머니 차듯 달리어 있어………….’했다.

 

곧 놀부의 심사부는 모티브에 따라 심술도 되겠지만 바로 그 억척스런 집념의 원천도 그 칠부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현대인은 이 같은 심술이 탈색된 집념의 칠부 인간이 돼야 하지 않나 역설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