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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19.한국적인 것의 재음미

구글서생 2023. 6. 13. 08:51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

 

박해받고수난받고때려 부수고발로 짓밟아도 길 복판에 피어나는 질경이처럼 강인하게 살아난 이 민족의 '기억이 무엇인가.

 

미국 사람은 미국적인 것을 자랑한다.

영국 사람은 영국적인 것에 긍지를 갖는다. 프랑스 사람도 그렇고 중국 사람도 그렇다. 물론, 유태인도 유태적인 것에 긍지를 갖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역사가 긴 민족이나 강대한 나라들은 스스로의 고유한 것에 긍지를 갖고 있다. 그 긍지가 바로 힘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민은 한국적인 것에 긍지를 갖고 있지 않다. 옛날에도 그러했고 오늘날도 예외없이 그렇다. 학교 교육에서도 한국적인 것이 좋다고는 별반 가르치고 있지 않다. 긍지나 자랑은커녕 한국적인 것은 빨리 없애버릴수록 좋다는 그런 열등감을 갖는 데 예외가 없다.

 

옛날 우리 선조들이 중국 문화의 아류에서 헤어나지 못했지만 중국적인 것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지금도 한국인은 미국에서 배우고 미국 문물을 몸에 지닐 수는 있어도 미국적인 것을 우리의 것으로 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의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청바지를 입히고 또 록음악을 밤낮으로 들려주며 끼니마다 햄버거를 먹인다 해도 미국의 역사적인 체험이나 생활 문화를 체질화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또 내 귀여운 딸에게 피아노를 사주고 조석으로 모차르트나 쇼팽의 음악을 치게 한다 해서 생활 체험이 터득된다는 법은 없다.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안경을 사고 루이 뷔통의 핸드백을 사고 뒤퐁 라이터를 로렉스 시계를 산다 해서 유럽의 정신까지 사지는 것은 아니다.

 

각기 그 민족에게는 그 민족 나름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은 그 민족의 전통 속에 기생한다. 전통 속에 기생하기에 자칫 그 전통과 기억을 혼동하기 쉽고 일괄해 버리기 쉽지만 전통과 기억은 밀접하면서 서로 다르다.

 

마치 어머니로부터 태어나 어머니의 품속에서 자란 아이가 어머니와 같은 인물이 아닌 것과 같다.

 

미국인의 기억이 곧 미국적인 것이요, 프랑스인의 기억이 프랑스적인 것이다.

 

유태인의 어린이들은 《구약성서》와 《탈무드>라는 민족 고유의 경전을 배우게끔 의무지어져 있다. 이 성전들의 이해 없이는 유태인이 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것은 수천 년 동안의 전통이었다.

 

이처럼 유태인들에게 있어서 과거는 현재나 미래만큼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람을 동료로부터 구분하는 기준은 사람이 어디로 가는가를 의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태인에게 있어 성서나 탈무드는 수천 년 전에 쓰여진 서물(書物)이 아니라 매일 아침 문간에 배달되는 신문만큼 신선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왜냐하면 과거의 그 속에 민족의 기억이 생동하고 있고 그 생동하는 기억을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가 항상 구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한국에서는 과거란 잘라서 버리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기에 민족의 기억이 애써 기생할 모태가 없다. 유태인의 성서나 탈무드 같은 것이 우리 민족에게는 없다.

 

오늘날 한국에서 한국적인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긍지를 가지려 하는 자는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사상적으로 편협한 자로 생각해 버리기 일쑤다. 그래서 우리의 역사와 전통은 과거의 파괴로 일관되고 있다.

 

교통에 장애가 된다 하여 옛 성벽을 모두 헐어 버리고 옛 다리는 좁다고 뜯어 버렸다. 요지에 자리잡은 고가는 헐어 버리고 그곳에다 빌딩을 지었다.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는 서구적인 가치관은 절대선이기에 윗사람은 먼저 태어났다는 차이, 선생은 먼저 배웠다는 차이만을 인정할 뿐 평등한 인간이라는 사고가 지배, 윗사람이나 선생을 공경하는 과거의 전통적 가치관을 말끔히 씻어 없었다. 그래서 어른을 폭행하고 선생을 때리는 새 풍조가 생겨 형법으로 다스린다고까지 검찰 당국이 공포를 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유월 유두날, 옛 어머니들이 동네 숲거리에서 모여 놀 때는 너울너울 고유한 춤을 추며 즐겼던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유원지에서 부녀자들 노는 것을 보면 할머니들까지도 발은 고고 리듬에 손만 옛 춤을 추고 있다.

 

문물, 문화, 사고방식, 정신구조 모든 측면에서 과거의 전통은 촌단당해 왔고 그것을 모태로 하여 자양을 섭취해 오던 민족의 기억은 창백하게 영양실조에 걸려 빈사상태에 놓여 있다.

 

우리 한국만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다른 나라들은 그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데, 우리 한국만은 왜 그 기억의 바탕을 표변시켜 왔을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그 하나는 한국의 풍토적 조건이 과거를 부정하는 의식구조를 촉매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사철이 각각 변하는 몬순 지대에 속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환경이 자주 변하는 소수의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 변화무쌍한 기후 아래 농사를 지어먹고 살아온 한국인은 기후의 변화에 따라 사라지고 새로 생긴 것에 재빠른 적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후 변화가 별반 없는 유럽의 밭농사는 씨앗을 뿌리고 그것이 자라면 거둬들이는 두 번 일로 끝난다. 중간에 응어리진 흙을 깨주는 정도의 단 한 번의 손질만 가하면 된다.

 

하지만 한국의 벼농사는 씨앗을 뿌려서 거둬들일 때까지 속칭 여든여덟 번이나 손을 써야 한다. 각각이 변하는 기후의 어느 짧은 시한 안에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농사가 안 되거나 감수를 가져온다. 이 같은 풍토적 여건은 한국인의 의식 속에 빨리 사라지고 빨리 생겨나는 데 대한 적응성과 지향성을 형성시켜 놓았음 직하다. 새로운 것, 이전에 없었던 것에 대한 흡수력과 적응력이 강해지면서 이 같은 의식구조가 오늘날 구미 문물에 대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 기후의 경계목에 위치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한국의 대기 속에는 많은 습기와 건조의 되풀이가 격심하다. 이 건습의 심한 반복은 우리나라에 있는 물질의 소멸을 재촉한다.

 

곧 썩어서 사라지는 것이 한국에 있어 존재의 조건이다. 집을 지을 때 서양 사람처럼 몇백 년의 내구성을 전제하고 짓는다는 법은 없다. 몇십 년이 고작이다. 낡아서 사라지고 사라져 버릴 만큼 낡은 것은 버려 버린다. 과거에 상정하는 시간의 거리가 한국인은 굉장히 짧다. 유럽 사람들은 TV, 냉장고, 자동차 같은 소비 내구재는 10년 이상 20년까지도 고쳐 쓰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한국인은 대개 5년도 못 넘기는 것이 고작이다.

 

전통은 내구의식의 다른 표현이다. 내구의식이 없는 한국인에게 있어 전통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또 다른 이유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중화사상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 전통 모멸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항성의 변경에서 위성 구실을 해내린 것이다.

 

많은 변경 문화권은 그 약체의 전통문화를 상실했을 때 나라가 망하고 있다.

 

나라가 망하더라도 그 나라다운 전통문화를 보유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소생하지만 아무리 경제적으로 유복하더라도 전통문화를 상실한 민족의 소생은 세계사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수천 년 동안 변경 문화권에서 전통문화가 수난받아 왔으면서도 우리 민족의 명맥이 유지되어 온 것은 빈약한 대로 어딘가 이 전통유지에 대한 우리 민족의 저력이 있었기 때문이며 이 저력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애써 찾아 누려야 할 소중하고도 소중한 황금이 아닐 수 없다.

 

박해받고, 수난받고, 때려 부수고, 발로 짓밟아도 길 복판에 피어나는 질경이처럼 강인하게 살아난 이 민족의 '기억'이 무엇인가.

 

전통문화가 무엇인가는 쉽게 알 수 있지만 이 전통문화에 기생하는 '기억'은 이해하기 어려울 줄 안다.

 

물리에 있어 원리는 '기억'이요, 그 원리의 응용물은 '전통문화'인이다. 응용물은 부숴버려도 원리는 생각나는 그런 전통의 본질이 기억이다.

 

이 기억만 확고하게 누리고 있으면 어떠한 외래문화에 접해도 외래화된다는 법은 없다. 그 외래문화의 장점만을 흡수하여 그 기억을 토대로 점층된 새로운 문화가 형성된다.

 

이를테면 블루진이라는 외래의 옷이 들어왔다 하자. 민족의 '기억'이 없으면 그 블루진을 아무런 개조없이 고스란히 입어버림으로써 외래성에 고유성을 떠맡겨 버린다. 사실 한국 사람의 체구에 블루진은 불편하다.

 

또한 서서 사는 문화의 옷이지, 앉아 사는 문화의 옷으로는 부적합한 옷이다. 그런데도 외래성에 고유성이 먹혀 버린다.

 

개화기 때 이화학당에서 여학생에게 체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당시 집안에 갇혀 살던 규수들을 모아다가 외래문화인 망칙스런 체조를 가르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 없이는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당시 여자들이 입고 있던 치마는 고작 동체를 뒤감아 맨 것이기에 체조 시간에 몇 번 뛰고 나면 치마가 벗어지곤 했던 것이다. 체조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던 당시 사회에서는 양(洋)것들이 처녀들 데려다가 치마를 벗겨 들여다본다고 풍문이 돌았다.

 

학부모들이 학당에 몰려가 딸들을 업어와 버려 학교가 비게 되고 한성부에서도 공식으로 체조를 가르치지 말라고 통고까지 했던 것이다.

 

이것이 곧 이화학당의 체조 파동인 것이다.

 

그러나 페인 학당장은 집념이 있었던 분이었던 것 같다.

 

이 여론에 억눌려 한국 여성에게 체조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한국여성의 육체적, 사회적 발전을 기할 수가 없다고 여기고 치마가 내려가지 않게 하는 방법을 모색했던 것이다. 그러나 페인 학당장은 체조를 해도 좋은 서양의 스커트를 직수입해서 입힌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민족의 '기억'을 살려 종래의 치마에다 서양의 의상 스타일인 조끼 양식을 도입, 절충 융합해서 조끼 치마를 고안해 여학생들에게 입힌 것이다.

 

블루진을 그대로 입는 행위와 이처럼 조끼 치마로 절충 융합해 입는 행위를 비교해 보자.

 

전자는 바로 민족의 '기억'을 죽이는 행위, 후자는 민족의 '기억'을 살려서 발전하는 시대에 적응해 가는 행위인 것이다.

 

곧 전통문화를 고스란히 재생하는 것은 발전하는 시대적 상황과 당착되고 모순이 되지만 이 전통문화에 기생하는 전통의 본질, 곧 민족의 '기억'은 아무리 시대적 상황이 달라지고 변모한다 해도 그 상황에 조화되고 융합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주어진 역사의 의무 가운데 이 민족의 '기억'의 정립과 이 정립된 기억으로 날로 국제화하고 발전하는 현대 사회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의 자세 정립을 들 수 있다. 이 의무를 소홀히 한다면 먼 후세의 자손들에게 지탄받는 역사적 죄인 세대가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