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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3.할머니의 눈깔사탕

耽古樓主 2023. 6. 13. 05:32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

 

비단 우리 할머니뿐 아니라 한국인은 그것이 전혀 쓸모없는 지푸라기 하나물 한 됫박이라도 버리는 법이 없었던 전통적 유전질을 우리 할머니가 대행했을 뿐이다.

 

6·25사변 때 국에 종군했던 영국 군인 두 명과 음악 동호 클럽 멤버로서 교제한 일이 있었다. 그때 놀란 것은 이 군인들이 입고 나오는 외출 군복의 무릎 부분이며 팔꿈치 부분 등 잘 해어지는 부분마다 기워져 있는 것을 보고 약간의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손수 기워 입느냐고 물었더니 부대 안에 옷을 입는 부서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몰락 과정에 있다고는 하지만 대영제국(大英帝國)의 군인인데, 군비가 모자라 군복을 기워 입게 하리라고는 도시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없어서 기워 입는 것이 아니라 있으면서도 기워 입게 하는 어떤 정신적 플러스 알파가 있기 때문이었다.

 

서독 여행 때 그곳에 사는 한 친구 부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백화점에 가서 소학교에 입학하는 아들놈 랜드셀을 사려 했을 때 일이다. 이것 저것 보고 나서 기왕이면 좋은 것을 사주려고 피혁제의 좋는 놈을 선택, 값을 물었다. 그런데 연만한 그 여점원은

"값만 비싸고 실용적이지 못하니 이놈으로 쓰시오.”

하고 값이 싸보이는 비닐제를 권하는 것이었다.

 

“랜드셀이란 기껏해야 2년만 쓰면 고작인데 그렇게 비싸게 주고 살 필요가 없다.”

라고 하면서 2년이면 이 비닐제로도 충분하다면서 끝내 우겨대더라는 것이었다.

 

우리 한국 사람 같으면 마진이 높은 값비싼 것을 팔려고 노력할 것이다. 한데 장사하는 사람이 자신의 이익보다 물건 사 가는 사람의 근검까지 배려하는 이 정신적 전통은 서독 사회에서 보편적인 것이다.

 

서독에 유학했던 한 친구는 언젠가 독일 학생들과 학교 도서관 모퉁이를 돌아오는데, 건물에서 멀리 떨어져 원회(遠廻)를 한 일이 있었다 한다. 한 독일 친구가 구둣바닥이 더 닳는 일을 왜 하느냐고 충고하더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이런 말을 들으면 어디까지나 장난말로 간주하겠지만 독일 사람들의 심성에는 이같은 소비절약을 둔 정신적 유전자가 체질화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 주부들이 계란 요리를 할 때 계란을 깨어 속을 쏟고는 껍데기는 버린다. 하지만 독일 주부들은 계란을 깨어 속을 쏟은 다음 작은 스푼으로 껍데기 속에 묻은 진득진득한 흰자위를 긁어낸 다음 버린다.

 

서독 사람들이 우리 한국 사람들보다 가난해서 그렇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줄 안다.

 

소비절약에 대한 정신적 유전자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국이나 서독 사람에 비겨 한결 잘살지못하면서도 무릎이나 팔꿈치를 기워 입고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되며, 또 값비싼 것은 사지 말도록 권하는 물건 파는 사람이 얼마나 되며, 가깝게 갈 수 있는 길을 약간 원한다 하여 신바닥이 더 닳는다 하는 의식 속에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며, 계란 껍질 속에 묻은 흰자위까지 실용화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다.

 

우리 한국인의 정신적 전통 속에는 그 같은 근검, 절약, 절용(節用)에 대한 유전질이 없었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우리 전통 속에서 서구의 그것보다 더 강력한 절용, 근검에 관한 유전자가 면면히 흘러왔던 것이다.

 

나는 개화(開化) 또는 근대화로 불리우는 서구 문물에 전혀 때묻지 않은 그런 전통적 자질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산골짜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언젠가 할머니를 따라 밭에 갔다 오던 때의 일이다. 할머니는 길가에 버려진 헌 짚신짝 하나를 주워 들었다. 어린 마음이지만 그런 해진 짚신짝 따위를 주워드는 할머니가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할머니의 손을 쥐고 걷던 나는 손을 살며시 잡아 빼고 짚신짝을 들고 걷는 할머니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걸었던 생각이 난다. 헌 짚신짝이 아쉬울 만큼 우리 집이 가난했던 것이 아니었다. 또 그 짚신짝이 꼭 필요한 것만도 아니었다. 한데 할머니는 그것을 주웠다. 집에 돌아와서는 그 짚신 올을 낱낱이 풀어 부드럽게 손으로 비볐다. 그리고 그 체온이 스민 부드러운 검불을 개집에 깔아 주는 것이었다.

 

비단 우리 할머니뿐 아니라 한국인은 그것이 전혀 쓸모없는 지푸라기 하나, 물 한 됫박이라도 버리는 법이 없었던 전통적 유전질을 우리 할머니가 대행했을 뿐인 것이다.

 

할머니는 손자를 위해 겉보리 반 되 가량을 주고 눈깔사탕 여남은 개를 사서 선반 위에 얹어 놓는다. 내가 보채도 그 눈깔사탕을 통째로 주는 법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다 빠지고 몇 개 없는 그 이빨 사이로 눈깔사탕을 반으로 쪼개느라 잉잉하며 오만상을 찌푸린다. 그 찌푸린 할머니의 오만상을 보고 나도 따라서 오만상을 찌푸렸던 기억이 선하다. 그렇게 힘들여 쪼갠 반쪽만 주고 그 나머지 반쪽은 다시 선반 위에 얹어 놓곤 했던 것이다.

 

또 할머니가 색연필을 사줄 때는 내가 쓰던 연필 길이가 새끼손가락 길이보다 짧아진 것을 재어보고 확인한 다음에야 사주었던 기억도 선하다.

 

반드시 물자가 부족해서 또 성격이 인색해서 할머니가 눈깔사탕을 쪼개고, 연필 길이를 잰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할머니의 절약은 아낀다는 곧 절용에 대한 한국의 전통적 가치의 평범한 발로에 불과한 것이다.

 

절용에 대한 이 전통적 가치를 체험했고 그 유전자가 지배하는 환경 속에서 뼈가 굵은 나로서는 오늘날의 버리는 문화, 낭비의 문화, 사치 상향(上向)의 문화는 이질적이고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일전 한 친구의 집에 들렀을 때 고장난 고물 냉장고를 어떻게 버리느냐 하는 것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느끼는 것이 컸다. 헌 짚신짝을 줍는 것과 헌 냉장고를 버리는 이 아찔한 공백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왜 이만한 공백이 벌어졌는가. 절용에 대한 정신적 유전자가 왜, 언제, 어떻게 해서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첫째, 근대화를 구미화로 잘못 받아들였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전통적 요소는 모두가 열등한 것이므로 무작정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 버려왔기에 절용에 관한 그토록 훌륭한 자질마저도 후진적인 요인으로 버림받았던 것이다.

 

둘째, 구미 문화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그 표피적인 물질주의만을 도입했고 그 이면에 깊이 도사린 정신을 도입하지 않았던 데서 구미의 절용에 관한 정신적 전통 같은 플러스적 가치는 도입되지 않았던 것이다. 곧 물질적 악화(惡貨)만 들어오고 정신적 양화(良貨)는 들여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곧 열매만 따오고 뿌리는 캐어오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