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본의 생각이 없으면 부모가 애지중지 길러주고 피땀 흘려 먹여 주고 가르쳐 주는 것마저도 부모의 당연한 의무로 여기게 되어 어떤 고마움이나 은혜 같은 것도 느끼지 않게 된다.
무대는 알제리. 뫼르소의 어머니가 양로원에서 죽었다. 숨을 거둔 정확한 일시는 듣긴 했는데, 잊어버렸고 어머니의 나이도 정확하게 외고 있진 않지만 그런 것쯤 뫼르소에게는 별반 문제가 되는 것들이 아니다.
밤샘하는 자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셨으며 눈물 같은 건 흘리지 않았다. 이 역시 그에게 별반 의미없는 일들이다.
장례 집행인이 시체를 확인할 겸 마지막 이별인 상면(相面)을 위해서 관 뚜껑을 열어 보이려 했을 때 뫼르소는 거절을 한다.
장례식의 바로 이튿날 뫼르소는 해수욕을 하러 가서 그곳에서 여자친구인 메리와 만난다. 둘이서 喜劇 영화를 구경하면서 실컷 웃고 그날 밤 그녀와 관계를 맺는다.
그는 결국 알제리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살인을 하고 만다. 원인은 '태양 때문'이라고 뫼르소는 말한다.
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異邦人)'은 부조리의 묘사이긴 하지만 주인공 뫼르소가 어머니를 양로원에 집어넣고 어머니의 죽음에 눈물을 보이기는커녕 밤샘하는 동안 술과 담배를 입에 댔으며 상면도 않고 장례식 이튿날에 해수욕에 갔다가 여인과 정을 통하는 이 상황은 현대인이 치닫고 있는 그런 개연성이란 점에 주목하게 된다.
현대 문명은 경제적으로 생산력이 부족한 사람을 박대하는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다. 그 비생산자가 자기의 친부모라도 예외는 아니다. 요즈음 일부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는 표피적인 구미 문화 사조는 자기가 이 세상에 있게 된 것은 생물학적 필연이며, 심지어는 부모들의 쾌락의 부산물이라고까지 여기고들 있다. 곧 자기를 이 세상에 있게 해준 것에 대해 어떤 고마움이나 은혜를 느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현대 문화는 報本의 부정 문화인 것이다.
이 보본(報本)이 부정받는 토양에서는 어떤 형태의 효(孝)도 뿌리내릴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보본의 생각이 없으면 부모가 애지중지 길러주고 피땀 흘려 먹여 주고 가르쳐 주는 것마저도 부모의 당연한 의무로 여기게 되어 어떤 고마움이나 은혜 같은 것도 느끼지 않게 될 것은 뻔한 일이요, 오히려 남보다 잘 못 먹여 준다, 남보다 잘 못 가르쳐 준다, 남보다 용돈을 적게 준다고 원망만 쌓아 올린다.
일본의 국민학교 도덕 과정에서는 고아원이나 고아병원을 견학하는 현장실습이 끼여 있다고 한다. 이 현장실습이 노리는 교육 효과는 뻔한 일이다. 곧 자신의 報本에 대한 자각을 일깨워 주는 말 없는 교육인 것이다.
부모가 없다는 것이 주는 불행을 체험케 하고 자신이 있게 된 본(本)과 자신이 먹고 입고 배우는 것이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라는 자각 교육인 것이다.
만약 이 같은 또래의 불우 어린이들을 보고 돌아온 한 어린이가 자전거를 사달라고 어머니에게 졸랐다 하자.
'아빠 엄마가 없으면 누구에게 자전거를 사 달라겠느냐.’
는 질문은 이 어린이에게 보은(報恩) 체질을 심어놓는 것이 된다.
'네가 없으면 자전거가 열대 있어도 소용이 없지 않느냐’
고 내가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서 네가 있게 된 것은 누구 때문이냐고 묻는다. 아빠 엄마가 없으면 나는 없다는 그런 보본(報本)체질을 심어 준다.
오늘날 가정 교육이나 학교 교육에서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 이 보본(報本)이며, 이 보본(報本)의 증발 때문에 청소년들은 아버지 어머니를 거부하고 끝내는 증오심까지 품는 소위 오이디푸스 시대(時代), 파파 알리바이 시대를 형성해 놓고 만 것이다.
아버지 거부 현상은 오늘날 사회 병폐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음을 본다. 프로이트의 제자 폴 훼데른은 그의 저서 《아버지 없는 사회(社會)》에서 이 아버지를 거부하는 데서 비롯된 각종 社會相에 날카로운 메스를 가하고 있다.
사회학자 듀르켐도 그의 유명한 《자살론(自殺論)》에서 종전의 부자간의 거리 상실도 그지없이 자기중심적인 欲求 추구를 하게 되고 이 욕구 추구는 좌절을 가져오며 이 좌절이 복합되면 아노미형(型) 퍼스낼러티에 빠지게 되고 이 아노미형 성격이 사람을 자살로 유도한다고 했다.
《고독(孤獨)한 군중(群衆)》의 저자인 미국의 사회학자 리스만도 이 아노미형 인간을 기초로 하여 현대 사회의 아버지 없는 아이들의 불행과 문제성을 고발하고 있다.
사가(史家) 오스카 핸드린도 《뿌리 뽑힌 사람들》이란 저서에서 이민 가족의 붕괴를, 부친과 아이들 간의 거리 상실에서 빚어지는 과정으로 적시하고 있다.
곧 아버지 거부현상이 가져오는 비극과 경고들인 것이다.
이와 같은 현대 사회의 비극과 불행은 우리나라에서도 회오리치고 있다. 등록금을 마련해 주지 않는다고 딸이 어머니를 목졸라 죽이는 모친살해사건이 있었다. 아버지가 다소 바람을 피웠기로 그 아버지를 집 기둥에 묶어 사흘을 굶겨 빈사에 빠지게 한 상해사건도 있었다.
이 같은 윤상(倫常) 사건은 날로 늘어나게끔 모든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회의 부정적 측면과 비극의 극소화는 곧 보본(報本)교육으로서만 가능할 줄 안다.
보본의 덕목이 체질화되면 나에게 베풀어진 은혜에 대해 보답해야 한다는 덕목은 자연적으로 형성될 줄 안다.
내가 어릴 때는 독립할 수 없기에 부모에게 의존한다. 그 의존한 대가는 보은(報恩)으로, 성장해서 갚는다. 그리고 일생 동안 자기에게 주어진 어떤 정신적, 물질적 혜택도 갚는다는 능동체로서만이 떳떳한 것이다. 이 갚는다는 능동 행위가 바로 보은(報恩)이다.
보은(報恩)의 본이 부모에, 스승에, 이웃에, 친구에 저변 확대될 때 이상적 사회의 인간 조직이 형성되는 것이다. 현대에 있어 효(孝)개념의 정립은 이처럼 보본(報本)과 보은(報恩)을 초석으로 해야 하며 이것은 또한 해방 후 구미 문화의 영향으로 무미건조해진 인간 몰락과 그 인간 부재 때문에 형성된 사회 병폐를 제거하고 인간을 부활시키는 한 효과적인 방편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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