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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11.비타산적 시나브로이즘

구글서생 2023. 6. 13. 08:43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

 

한국인이 오히려 번거로운 쪽을 택해 살아온 이유는 일이 반드시 괴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일에는 삶의 뜻을 주는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나브로이즘' 하면 시나이반도에 기인한 유태주의를 연상하거나 등산용 버너를 연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시나이반도와 버너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처음 이 지면에서 선보이는 신조어임을 밝혀둔다. 곧 우리나라 말의 부사인 시나브로 + 이즘[主義]으로, 한국 사람의 노동관을 밝혀주는 한국적인 한 슬기의 표현이다.

 

시나브로란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으로 풀이되어 있다. 곧 두껍게 짧게 않고, 가늘게 길게 한다는 뜻이다.

 

시나브로와 비슷한 말로 '시난고난하다'는 있다. 말이 병이나 어떤 증세가 심하지 않으면서 오래 끈다 할 때 쓰는 말이다. 옛 어른들이 일을 시킬 때는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효과적으로 하기보다 오랜 시간에 조금씩 꾸준히 하라고 시켰다.

 

곧 일의 결과보다 일의 과정을 중요시했으며, 일을 시간으로 제약시키기보다 시간을 초월시켜 일을 시켰다.

 

옛날 농촌에 '머리나이' 혹은 '수총각(首總角)’으로 불린 특출난 장정이 있었다. 머리나이는 힘도 세고 짐도 여느 장정의 갑절을 지며 무거운 짐을 지고 잘도 달린다. 수확 철에 들판의 나락을 타작마당에 운반할 때 지주들은 이 머리나이를 여느 장정 품값보다 갑절이나 주고 품을 산다. 그리하여 나락 짐 옮기는 여타 품꾼 대열의 맨 앞에 이 머리나이를 세워 달리게 함으로써 단시간에 보다 많은 나락들이를 노리는 관습이 있었다. 체질적으로 우수한 머리나이의 운반속도를 뒤따라야 하기 때문에 여느 평범한 품꾼들은 과로하게 되고 과로한 만큼 품을 사는 사람이 이득을 보는 일종의 착취관습에 이 머리나이가 이용되었던 것이다.

 

한데 주의를 끄는 것은, 머리나이가 우대받고 갑절의 품값을 받는 것은 나락들이 같은 극소수의 단체운반 노동에 국한될 뿐 여느 다대수의 개별 노동에는 오히려 품을 사길 꺼려했으며 더욱이 머슴으로서 고용당한다는 법은 거의 없었다. 그러기에 머리나이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없기에 지극히 가난하게 살거나 비농업적인 생업, 이를테면 거간장이나 돼지 밀도살, 송장 염하는 일을 하게 되고, 술이나 마시며 노름이나 하는 농촌에서 성실치 못한 퇴폐층을 이루곤 했던 것이다.

 

왜 힘도 세고 잘 달리는 양질의 노동체질을 가졌는데 고용에서 소외당해야 했을까? 그것은 한국의 농사가 그 구조상 '시나브로이즘'을 요구하기에 이 시나브로이즘과 반대되는 요인을 거부했기 때문인 것이다. 머리나이들은 대체로 힘이 세고 건장하기에 무슨 일이든 빨리 해내는 장점이 있다. 빨리 한다는 장점은 지속성이 없고 권태가 빠르다는 결점이 따른다. 곧 일의 속효(速效) 면에서는 탓할 것이 없지만 일의 속효(續效) 면에서는 결점이 많다. 빨리 효율적으로 일을 해내고 시간을 벌어 쉰다는 것은 노동 자체를 괴로운 레이버(labour)로 여기게 하고, 시나브로로 일을 한다는 것은 노동을 괴로운 것만 아니라 그것에서 삶의 가치를 찾는 워크(work)로 여기게 한다. 단시간의 효율로는 머리나이가 좋지만 장기적으로 봐서는 시나브로이즘이 체질화된 여느 평범한 일꾼이 한결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기에 머리나이를 고용에서 소외시켰을 것이다.

 

한 마지기라면 2백 평 남짓의 별반 넓지 않은 땅이다. 한 사람이 하루에 소를 몰고 갈 수 있는 논밭의 넓이가 한 마지기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지극히 비능률적인 노동밀도임을 알 수가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하루에 세 마지기도 네 마지기도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하루에 한 마지기라는 저밀도 노동을 기준으로 삼았던 것은 그만한 시나브로이즘 노동이 가장 이상적이고 또 장기적으로 봐 효과적이기 때문에 한 마지기라는 면적 단위의 노동기준이 생겼을 것이다.

 

농사를 둔 한국인의 의식구조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으로 그 농사에서 이윤을 추구하거나 경제성을 별반 따지려 들지 않는다는 것을 들수 있다. 그러하기에 다수확을 위한 농사개량이나 농사기계화에 둔감하고 더디다. 만약 한국 농민들이 경제적 타산만 갖고 농사를 지었다면 요즈음 같은 손해나는 농사라면 한 사람도 남김없이 집어치워버렸을 것이다. 오르기만 하는 품삯에 비싼 비료값, 비싼 농약값을 따지면 한국 농사는 타산이 맞지 않는다.

 

한데도 계속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곧 타산이 한국인에게 박약하기 때문이다.

 

개화기 때 한국에 온 구미의 선교사들이 그 번거롭고 자상해야 하며 꾸준이 손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한국의 농사를 보고 '농사가 아니라 원예'라고 그 인상들을 적고 있다. 곧 농사는 노동이 아니라 한국인에게 있어 서예, 수예하듯한 농예(藝)요, 다도, 역도하듯 한농도(農道)다. 농사도 원예나 서예에서 느끼는 듯한 어떤 보람을 느끼고, 선도(禪道)나 다도에서 터득하듯한 정신적 경지를 추구한다.

 

한 농사지도원에게 들은 바로 한국의 전통적 농부들이 자신들이 짓는 농사가 오로지 경제성의 추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농사를 짓고 싶은 의욕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한국인의 노동관은 비단 농민의 발상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직업관에 깊이 침투되어 있는 개연성이라고 본다.

 

모든 직장에서는 우리 한국인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라는 생각 이외에 그 직장에서 뭣인가 보람을 찾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생계 이외의 어떤 뭣에 지배받고 있다. 단지 스스로의 노동력을 팔아 임금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 근로의욕을 잃고 권태와 무기력속에서 일을 하게 된다.

 

목사는 밥벌이냐 성직이냐, 의사는 밥벌이냐 인술이냐, 신문기자는 밥벌이냐 사회의 목탁이냐 하는 의논이 생긴 것은 구미 문화와 구미가치관이 도입된 근대화 과정에서 제기된 의논이지 도입 그 이전에는 문제가 될 수 없었던 쟁점들이었다.

 

곧 농사를 비롯, ‘일’로 통칭되는 한국인의 직업은 '거래'가 아니요, 돈과 사람만을 상대로 하고 있질 않았다. 농민은 대자연과 작물을 상대로 하였고 장(匠)이들은 재료와 도구를 상대로 하였다.

 

그러기에 부작(不作)이라도 또 실패작이라도 자신에게 탓을 돌리거나 자신의 어떤 인과(因果)에 내린 하늘의 겁벌(劫罰)로 이해할 뿐이지 남의 탓을 하거나 돈으로 따져 보는 법이 없었다. 또한 이윤만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있기에 그저 그 일에 붙어 있기만 하면 사는 보람도 생기고, 또 잘 먹건 잘 못 먹건 간의 차원을 초월, 그럭저럭 먹고 살 수가 있었다. 물론 생기는 잉여나 이득을 부정하는 법도 없다.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추구하는 것을 부정할 따름이다.

 

이 같은 농사관이나 노동관이기에 일을 시간과 결부시켜 단위시간에 생산효율을 높인다든가 노동시간을 단축조절한다든가, 하는 것을 거부하고 그저 시나브로 그 과정을 메워간다.

 

따지고 보면 한국의 농사구조가 어느 시한 속에서 꼭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한의 연속으로 돼 있기에 일을 많이 해서 시한을 앞당길 수도, 또 일을 미루어 후에 한꺼번에 할 수도 없게 되어 있다.

 

길일을 잡아 작년 섣달 臘日에 받아둔 눈 녹인 물에 볍씨를 담가둔다. 사흘 만에 건져서 하루 동안 응달에 둔다. 그럼 싹이 틀랑말랑 할 때 못자리에 뿌린다. 사흘을 넘겨도 싹이 돋고 또 하루를 넘겨 말려도 싹이 돋아 가뭄에 약한 묘가 된다.

 

못자리에 뿌린 뒤 사흘 만에 물을 넣어 주어야지 하루만 앞당겨도 근착이 되질 않아 씨앗이 떠내려간다. 싹이 두 갈래지기 시작할 바로 그 시기에 피사리를 하지 않으면 감수를 가져오고…………. 이처럼 씨앗을 뿌려서 거둘 때까지 나날이 변하는 시후에 맞추어 꼭 그 시기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시한의 연속 구조이기에 시후에 맞추어 시나브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성급하다 하여 또 노동력이 남아 있다 하여 하루만에 씨앗을 담갔다 못자리를 하고 피사리까지 할 수는 없으며, 또 바쁜 일이 있다 하여 초벌 김 두벌 김을 맬 시한을 넘겼다가 세벌 김맬 때 한꺼번에 매려 했다간 이미 잡초가 자라 실농을 하고 만다. 벼농사가 가능한 북한계(北限界)의 부적지에서 벼농사를 지어온 한국의 농사구조가 한국인에게 시나브로이즘을 체질화시켰다고 본다.

 

우리 농촌의 영세 농민들은 보리를 도정해서 정곡(精穀)으로 만들어 놓고서 밥을 지어 먹는 법이 없었다. 조곡(粗穀)을 그대로 저장해 두었다가 그날 먹을 분량만큼만 떠다가 절구질을 해서 밥을 지어먹곤 했던 것이다.

 

누구나 한꺼번에 도정을 해놓고 먹으면 한결 번거롭지 않고 편리하다는 것을 몰라서 굳이 끼니마다 일을 사서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에게 일이라는 것이 서양 사람처럼 형벌받듯 괴로운 것이라면 알곡으로 만들어 놓고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이 오히려 번거로운 쪽을 택해 살아온 이유는 일이 반드시 괴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일에는 삶의 뜻을 주는 그 뭣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게다. 시나브로이즘이 체질화되면 일하지 않는 여가가 오히려 괴로워지며 이 괴로운 시간을 소외시키기 위해 일부러 일을 사서 하는 관례가 적지않이 채집되고 있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 플랜트 수출한 한국의 한 방직공장에 들렀을 때 들은 이야기인데, 현지인 직공들에게 급료를 두 배 인상해 주면 일을 두 배 많이 하기는커녕 오히려 2분의 1밖에 일하지 않게 되는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종전 생계로 하루에 절반만 일해도 하루 먹을 벌이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소득만 따지는 일을 둔 사상은 이 같은 역설의 논리까지 타당케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의 시나브로이즘은 구미적 견지에서 볼 때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이랄지 모르지만 한국 경제의 발달 속도가 구미의 그것에 비겨 한결 빠르다는 그 원인이 바로 이 비타산적 시나브로이즘에 있으며 훗날 우리나라가 경제대국이 될 수 있는 가장 큰 원천도 바로 이시나브로이즘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