雙忠實紀 重刊 跋文
위 최씨쌍충록은 곧 소호, 소계 두 분의 창의토적(倡義討賊)하신 사실로써 시간(始刊)은 재거(再去)한 계미년이었다.
그 유문(遺文)과 의적(懿蹟)이 응당 여기에 그치지 않을 것인데도 병화의 나머지 많이 산일(散逸)되어 전하지 아니한다.
그리하여 공의 여러 후손들이 이를 개탄하여 다시 원근을 두루 찾아 여러 해가 지나 무릇 사적을 보완해야 할 것을 얻은 것이 십수조(十數條)이다.
아울러 후래(後來), 제가(諸家)가 찬술한 것도 함께 원록(原錄)에 붙였다.
이에 흥락(興洛)이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한마디의 말을 그 말미에 붙인다.
돌이켜 보건대 노폐(老弊)하고 무문(無文)이기 때문에 이 일을 감내할 수 없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공의 형제는 우리 선조 문충공(文忠公)과 함께 난리의 틈에 서로 따라 죽음을 무릅쓰고 토적하셨고, 함께 간위(艱危)한 나라를 건졌으니 전후로 진양의 승첩에 공께서 실제로 유력(有力)하였다.
선군자(先君子)께서도 일찍이 청해 보시고 그 충절을 권장하였고 녹훈을 기록하는 자리를 열었을 때 그 공훈을 조정에 올렸다.
공의 형제가 또한 스스로 말하기를,
“일찍 김영공(金令公)을 따라 위국안민(衛國安民)하는 실제에 뜻을 두었다”
라 하였고, 지금 실록 가운데에도 선군자를 언급한 것이 한두 마디에 그치지 아니하니 이를 봉독(奉讀)하고는 추연히 격신(隔晨)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겠다.
그러므로 삼가 이 글을 써서 돌려드린다(歸之).
문소(聞韶) 김흥락(金興洛)은 삼가 기록한다.
▶김흥락: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계맹(繼孟), 호는 서산(西山). 안동 출신.
본문에서 여러차례 등장하며 의병활동의 후원인 김성일(金誠一)의 주손(胄孫). 아버지는 능주목사(綾州牧使) 김진화(金鎭華)이며, 어머니는 이원상(李元祥)의 딸이다. 유치명(柳致明)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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