范增數目項王, 擧所佩玉以示之者三, 項王默然不應. -사기 항우본기
범증이 항우에게 여러 번 눈짓하며 차고 있는 옥결을 들어 보인 적이 세 차례였으나 항우가 말없이 응하지 않았다.
명사의 동사화, 부사화
范增數目項王은 한문 초보자를 당황하게 만드는 구절입니다.
'數'와 '目'을 알고 있고, 범증과 항왕을 사람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어도 해석이 어렵지요. 사전의 대표 뜻을 기본 뜻으로 삼는다면 數가 부사어로, 팀이 서술어로 쓰이면서 그에 맞추어 기본뜻이 변형됐기 때문입니다.
數는 음도 '삭'으로 바뀌게 되지요.
한문은 품사가 가변적인 언어입니다. 일부 허사를 제외하면 단어의 품사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문장 내 위치에 따라 동사, 형용사, 명사를 넘나듭니다.
그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고 때로 음도 바뀌지요.
數가 한 글자가 여러 품사로 쓰이는 품사 겸용의 사례라면 目은 기본 의미와 함께 품사가 달라지는 품사 전성의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문에서 품사 구분은 의미가 없고 실사와 허사 구분만 유의미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문의 품사가 가변적이더라도 제한 조건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한자가 특정품사로 자주 사용되는 빈도나 전성이 가능한 품사의 범위는 관습으로 정해져 있지요.
품사 구분은 이런 양상을 분석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동사가 주로 쓰이는 문법적 조건들 중에 앞장에서 한 번씩 다뤘던 것들입니다. 이 동사 자리에 명사로 자주 쓰이는 한자가 온다면 그 한자는 동사로 풀이합니다.
- 所+(동사)
所는 동사 앞에 와서 동사를 명사구로 만든다. - 동사1 + 而 + 동사2
두 동사 중 하나가 명사라면 그 명사는 동사로 쓰였을 확률이 높다. - 동사 + 之
之가 목적어로 쓰이면 그 앞은 동사이다. - 동사 + [以(於)+목적어]
동사는 以나 於 같은 전치사구를 보어(부사어)로 취한다.
또 명사가 만약 주어와 서술어(동사, 형용사) 사이에서 부사어 구실을 한다면 그 명사는 부사로 해석합니다.
문맥에 따라 '~처럼', ‘~에서’, ‘~으로’ 등을 붙여서 풀이하지요.
다음은 명사가 부사어로 쓰이다가 관용어로 굳어진 예입니다.
- 雲集구름처럼 모임
- 響應 메아리처럼 응함
- 蜂起 벌떼처럼 일어남
연습
▶豕人立而啼 -좌전 장공8년
돼지가 사람처럼 서서 울었다.
-명사가 주어와 서술어 사이에서 부사처럼 사용된 예
▶爲學日益, 爲道日損. -노자 48장
배움은 날마다 더하고 도는 날마다 덜어낸다.
-日이 서술어 앞에서 부사어로 쓰였다.
▶嫂蛇行葡伏, 四拜, 自跪而謝.-전국책 진책
형수가 뱀처럼 엎드려 기어가더니 네 번 절하고, 스스로 무릎 꿇어 사과하였다.
합종책으로 유명한 소진이 재상의 지위에 올라 고향에 돌아오자 과거에 그를 무시하고 구박했던 형수가 소진을 맞이하는 풍경이다. -
-蛇가 부사어 자리에 놓여 부사로 쓰였다.
▶以爲直於君而曲於父, 報而罪之. - 한비자 오두
임금에게 정착했지만 아버지에게 옳지 않았다고 여겨서 판결하고 죄를 주었다.
초나라의 한 재상이 아버지가 양을 훔쳤다고 고발한 아들에게 상을 주지 않고 도리어 처벌했다는 일화이다. 한비자는 이를 법을 어지럽혀 나라를 약하게 만드는 사례로 제시한다.
-報: 재판하다
-이 문장의 생략된 주어는 초나라의 재상이다.
-罪가 之 앞에서 '죄주다' 또는 '처벌하다'는 의미의 동사로 쓰인 예이다.
▶友也者, 友其德也, 不可以有挾也. -맹자 만장하
친구란 그 사람의 덕을 친구삼아야지 의지하려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友其德의 友는 명사가 아니라 其을 목적어로 삼아 동사로 쓰였다.
▶不耕而食鳥獸之肉, 不蠶而衣鳥獸之皮.-소순 역론
경작하지 않고 새와 짐승의 살을 먹으며, 누에치지 않고 새와 짐승의 가죽을 옷으로 입었다.
-食과 달리 衣는 '옷으로 입다'라는 뜻으로 잘 쓰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부정사가 쓰인 不蠶이 서술어가 분명하므로 而 뒤의 衣도 서술어인 동사로 쓰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而의 앞뒤에는 동사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