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집주

맹자집주 등문공장구 하 제3장

耽古樓主 2023. 3. 22. 20:10

孟子集注(맹자집주)) 등문공장구 하 제3장
孟子集注

 

周霄問曰:
「古之君子仕乎?」
周霄가 물었다.
옛날 君子는 벼슬을 하였습니까?”

孟子曰:
「仕.
傳曰:
『孔子三月無君則皇皇如也出疆必載質.』
公明儀曰:
『古之人三月無君則弔.』」
孟子가 말하였다.
“벼슬하였다.
옛 기록에 이르기를, [孔子께서는 3개월 동안 벼슬하여 임금을 섬길 수 없으면皇皇한 듯하여 국경을 나갈 적에 반드시 幣帛을 싣고 떠났다.]라고 하였고,
공명의가 말하기를, [옛사람은 3개월 동안 벼슬하여 임금을 섬길 수 없으면 그를 위로했다.]라고 하였다.”

周霄, 魏人.
周霄는 魏나라 사람이다.

無君, 謂不得仕而事君也.
無君은 벼슬하여 仁君을 섬길 수 없음을 이른다.

皇皇, 如有求而弗得之意.
皇皇은 求하는 것이 있되 얻지 못하는 뜻과 같다.

出疆, 謂失位而去國也.
出疆은 지위를 잃고 나라를 떠남을 이른다.

, 所執以見人者, 如士則執雉也.
質(지)는 손에 잡고 남을 만나보는 물건이니, 하급 관료(士)가 꿩을 잡는 것과 같다.
: =, =

出疆載之者, 將以見所適國之君而事之也.
出疆載之者는 그 폐백을 가지고 장차 가는 나라의 군주를 뵙고 그를 섬기려고 함이다.

「三月無君則弔不以急乎?」
주소가 물었다.
“3개월 동안 벼슬하여 임금을 섬길 수 없다고 위로함은 너무 조급하지 않습니까?”

周霄問也.
주소가 물었다.

·已通, 太也.
以는 已와 通하니 ‘너무, 매우’의 뜻이다.

後章放此.
後章도 이와 비슷하니라.
▲放: 仿 (비슷하다)

曰:
「士之失位也猶諸侯之失國家也.
禮曰:
『諸侯耕助以供粢盛;
夫人蠶繅以爲衣服.
犠牲不成粢盛不潔衣服不備不敢以祭.
惟士無田則亦不祭.』
牲殺器皿衣服不備不敢以祭則不敢以宴亦不足弔乎?」
孟子가 말하였다.
“士가 지위를 잃음은 諸侯가 나라를 잃은 것과 같다.
禮記에 이르기를,
‘諸侯가 밭을 갈면 백성들이 도와서 粢盛(제수)을 이바지하고제후의 夫人은 누에를 치고 고치를 켜서 衣服(祭服)을 만든다.
犧牲이 잘 자라서 살이 찌지 못하며粢盛이 잘 익어서 정결하지 못하며衣服이 구비되지 못하면 감히 祭祀를 지내지 못한다.
하급관리는 圭田이 없으면곧 또한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라고 하니,
牲殺과 器皿과 衣服이 갖추어지지 못하여 감히 제사를 지내지 못하면감히 飮福宴도 하지 못하나니 족히 위로할 만하지 않은가?”

禮曰:
諸侯爲藉百畝, 冕而靑紘, 躬秉耒以耕, 而庶人助以終畝.
收而藏之御廩, 以供宗廟之粢盛.
使世婦蠶于公桑蠶室, 奉繭以示于君, 遂獻于夫人.
夫人副禕受之, 繅三盆手, 遂布于三宮世婦, 使繅以爲黼黻文章, 而服以祀先王先公.
禮에 일렀다.
‘諸侯가 藉田 百畝에 농사를 지어 冕旒冠을 쓰고 푸른 갓끈을 매고 몸소 쟁기를 잡고 밭을 갈면, 庶人들이 도와 밭일을 마친다.
곡식을 수확해서 御廩에 보관하여, 宗廟의 粢盛으로 이바지하였다.
世婦로 하여금 公桑蠶室에서 누에를 치게 하여, 고치를 받들어 君主에게 보이고 마침내 夫人에게 바친다.
夫人이 副褘(예복)를 입고 받아서 세 번 손으로 동이에 담아 실을 켜고, 三宮의 부인과 世婦에게 나누어 주어 실을 켜서 黼黻 文章을 만들게 하여 이것을 입고서 先王과 先公에게 제사한다.’라고 하였다.
:과 통한다.
御廩:임금의 곡식 창고
世婦: 천자는 13夫人 927世婦 81어첩
제후는 1夫人 35世婦

又曰:
士有田則祭, 無田則薦.
또 일렀다.
‘士가 祭田이 있으면 제사하고, 제전이 없으면 薦(간략히 올림)한다.’
薦新
새로 농사지은 과일이나 곡식을 먼저 사직이나 조상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드리는 의식을 지칭하는 용어.
[ 가묘 천신]
가묘는 私家의 사당을 말하며, 예제에 따르면 제후(諸侯)5(), ()3, 대부와 1묘로 되어 있고, 서인은 없다. 1묘 이상의 가묘가 있는 사람은 1년에 네 번으로 나누어 천신을 한다.
한식·단오·추석·동지로 나누어서 새로 나온 물품을 그때마다 골라서 사당에 천신하는 예를 올리고, 서민은 추석에 한 번 햇과일과 햇곡식을 가져다가 떡도 하고 술도 빚는 등 음식을 차려서 조상의 음덕에 감사하는 차례를 지낸다.
천신하는 물건은 시대에 따라 많이 변천해 왔다. 교통이 미비하고 문명이 개화되지 못한 상고 시대에는 토지에서 생산되는 산품이 수량도 적고 품종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형식에 그쳤으나, 차차 문명이 발달되면서부터 각 지방의 산물이 교역되고 심지어 외국에서 수입되는 과일이나 음식물이 많아졌기 때문에 가세의 형편에 따라 천신품도 다양해졌다.
특히, 천신하는 추석의 차례 행사는 요즈음에는 크나큰 민족의 행사로 전환되었고, 추석 때가 되면 천신을 위해 귀향하는 사람들로 민족 대이동의 역사를 창조하기도 한다. 조상에 천신하는 차례 행사는 풍속의 변천에 따라 많이 달라졌는데, 가묘에서 일 년에 네 번 하던 행사가 가묘가 없어진 오늘날에는 한 번으로 줄었다. 그것도 왜치(倭治)의 감시하에서는 뜻대로 하지 못해 일시에 명절로 치르지 못했다. 기호 지방에서는 추석에, 영남과 호남 지방에서는 신곡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중구(重九)99일에 행사를 하였다. 다행히 광복이 되고 우리 것을 찾자는 운동이 전개되면서 추석이 명절로서 공휴일로 지정되자, 명실상부한 추석 천신 행사가 그 의의와 목적을 분명히 하면서 잃어버렸던 고유의 가치를 찾게 되었다. 문헌에 의하면 천신은 오래전부터 전해 오는 전통 있는 풍습이다.
예기』 「단궁(檀弓)에 보면 천신은 초하룻날 지내는 삭전(朔奠)과 동일하게 취급할 것을 지시하였고, 망자가 있어 장사지내기 전에는 새로운 음식물을 얻으면 반드시 천신할 것을 가르쳤다. 대청통례(大淸通禮)에는 그 해의 명절을 만나면 반드시 새로운 산물을 천신하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문헌에는 분명하지 않으나 상고 시대부터 천신해 왔음을 민속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이 차례 행사로 굳어진 시기는 고려사1108(예종 3) 종묘에 천신하였다는 기록이 나오지만, 그 이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천신(薦新))]

黍稷曰粢, 在器曰盛.
黍稷을 粢라 하고, 그릇에 담은 것을 盛이라고 한다.

牲殺, 牲必特殺也.
牲殺은 犧牲을 반드시 죽이는 것이다.

, 所以覆器者.
皿은 그릇을 덮는 것이다.

出疆必載質何也?
“國境을 나감에 반드시 幣帛을 싣고 감은 무슨 까닭입니까?”

周霄問也.
주소가 물은 것이다.

曰:
「士之仕也猶農夫之耕也農夫豈爲出疆舍其耒耜哉?」
孟子가 말하였다.
사가 벼슬하는 것은 農夫가 농사를 짓는 것과 같으니농부가 어찌 國境을 나가면서 농기구를 버리고 가겠는가?”

曰:
「晉國亦仕國也未嘗聞仕如此其急.
仕如此其急也君子之難仕何也?」
周霄가 말하였다.
“晉나라도 벼슬할 만한 나라이지만벼슬하기를 이와 같게 서두르는 것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벼슬하기를 이렇게 급히 할 진댄君子(맹자)께서 벼슬하기를 어렵게 여기는 것은 어찌해서입니까?”

曰:
「丈失生而願爲之有室女子生而願爲之有家.
父母之心人皆有之.
不待父母之命·媒妁之言鑽穴隙相窺踰牆相從則父母國人皆賤之.
古之人未嘗不欲仕也又惡不由其道.
不由其道而往者與鑽穴隙之類也.」
맹자가 말하였다.
“丈夫가 태어나면 그를 위하여 室이 있기를 원하며여자가 태어나면 그를 위하여 媤家가 있기를 원한다.
부모의 마음에 사람마다 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부모의 말씀과 중매쟁이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구멍을 뚫고 서로 엿보며 담을 넘어 따라가면父母와 國人이 모두 賤하게 여길 터이다.
옛사람들이 벼슬하고자 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또한 正道를 따르지 않는 것을 미워하였다.
정도를 따르지 않고 찾아가는 것은 구멍을 뚫고 틈으로 만남을 허용하는 부류이다.”

晉國, 解見首篇.
晉國은 해설이 수편(양혜왕장구)에 보인다.

仕國, 謂君子游宦之國.
仕國은 君子가 가서 벼슬하는 나라를 말한다.

霄意以孟子不見諸侯爲難仕.
周霄는 생각하기를, 孟子가 諸侯를 만나보지 않기 때문에 벼슬하기가 어렵다고 여겼다.

故先問古之君子仕否, 然後言此以風切之也.
그러므로 먼저 옛 君子가 벼슬하였는지 묻고 나서, 이것을 말하여 風切(諷刺하여 切責함)하였다.

男以女爲室, 女以男爲家.
男子는 여자를 室(아내)로 삼고, 여자는 남자를 媤家로 삼는다.

, 亦媒也.
妁도 중매이다.


爲父母者, 非不願其男女之有室家, 而亦惡其不由道.
부모 된 자가 그의 아들딸들이 室家가 있기를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또한 그들이 정도를 따르지 않음을 싫어한다고 말하였다.

蓋君子雖不潔身以亂倫, 而亦不殉利而忘義也.
대개 군자는 비록 자신의 몸을 潔白히 하고자 人倫을 어지럽히지 않으나, 또한 이익을 좇아서 의리를 잊는 짓도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