滕定公薨. 世子謂然友曰:
「昔者孟子嘗與我言於宋, 於心終不忘.
今也不幸至於大故, 吾欲使子問於孟子, 然後行事.」
滕定公이 죽거늘 世子가 然友에게 말하였다.
“孟子께서 宋나라에서 나와 말씀하신 적이 있었는데, 내 마음에 끝내 잊지 않았습니다.
이제 不幸히 大故를 당하였으니, 나는 선생께서 孟子에게 물은 뒤에, 장례를 행하고자 합니다.”
▲전국시대까지 죽음에 관한 표현
崩(천자) 薨(제후) 卒(대부) 不祿(士)
定公, 文公父也.
定公은 文公의 아버지이다.
然友, 世子之傅也.
然友는 世子의 (덕행을 가르치는)스승이다.
▲太師(敎詩書) 太傅(敎德行)
大故, 大喪也.
大故는 大喪이다.
事, 謂喪禮.
事는 喪禮를 이른다.
然友之鄒問於孟子.
然友가 鄒 땅에 가서 孟子에게 喪禮를 물었다.
孟子曰:
「不亦善乎!
孟子가 말하였다.
“(이렇게 상례를 물으니) 좋지 않습니까?
親喪固所自盡也.
어버이의 喪禮은 본래 자신의 힘을 다해야 합니다.
曾子曰:
『生, 事之以禮; 死, 葬之以禮, 祭之以禮, 可謂孝矣.』
曾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살아 계시면 섬기기를 禮로써 하며,
돌아가시면 葬禮하기를 禮로써 하며, 祭祀하기를 禮로써 하면 孝라고 이를 수 있다.’
諸侯之禮, 吾未之學也;
雖然, 吾嘗聞之矣.
諸侯의 喪禮는 내 아직 배우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러나 나는 제후의 상례를 들은 적은 있습니다.
三年之喪, 齊疏之服, 飦粥之食, 自天子達於庶人, 三代共之.」
三年喪, 齊蔬의 喪服을 입음, 미음과 죽을 먹음은, 天子로부터 庶人에 이르기까지 三代가 공통입니다.”
當時諸侯莫能行古喪禮, 而文公獨能以此爲問, 故孟子善之.
당시 諸侯 중에 옛 喪禮를 행하는 자가 없는데, 文公이 홀로 이것을 질문하니, 孟子가 그것을 좋게 여겼다.
又言
父母之喪, 固人子之心所自盡者.
蓋悲哀之情, 痛疾之意, 非自外至, 宜乎文公於此有所不能自已也.
또 말하였다.
‘父母의 喪은 본래 자식된 마음이 자신을 다하는 것이다.
슬퍼하는 情과 아파하는 뜻은 밖으로부터 이르는 것이 아니므로, 文公이 大故를 당하여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는 바가 있음은 당연하다.’
但所引曾子之言, 本孔子告樊遲者, 豈曾子嘗誦之以告其門人歟?
다만 引用한 曾子의 말은 본래 孔子께서 樊遲에게 말씀해 준 것이니, 曾子가 항상 암송하여서 그 門人에게 말하지 않았겠는가?
三年之喪者, 子生三年, 然後免於父母之懷. 故父母之喪, 必以三年也.
三年의 初喪은 자식이 태어나 三年이 지난 뒤에 부모의 품을 벗어나므로 父母의 喪을 반드시 三年으로 한다.
齊, 衣下縫也. 不緝曰斬衰, 緝之曰齊衰.
齊는 옷의 아랫자락이니, 꿰매지 않은 것이 斬衰이고, 꿰맨 것은 齊衰이다.
疏, 麤也, 麤布也.
疏는 거침이니 거친 삼베이다.
飦, 糜也.
飦은 미음이다.
喪禮: 三日始食粥. 旣葬, 乃疏食.
喪禮에 三日이 되어야 비로소 죽을 먹고, 葬禮를 지낸 뒤에 거친 밥을 먹었다.
▲3일이 되면 大殮을 하고 죽을 먹음.
▲殯에 있으면 死이고 葬을 마치면 亡이다
此古今貴賤通行之禮也.
이것은 古今과 貴賤에 通行하는 禮이다.
然友反命, 定爲三年之喪.
然友가 復命하여, 三年喪을 하기로 정하였다.
父兄百官皆不欲, 曰:
「吾宗國魯先君莫之行, 吾先君亦莫之行也, 至於子之身而反之, 不可.
且志曰:
『喪祭從先祖.』」
종친인 父兄과 百官이 모두 원하지 않아서 말하였다.
“우리의 宗主國인 魯나라 先君도 행하지 않으셨고, 우리 先君도 또한 행하지 않으셨으니, 전하(孤子)의 몸에 이르러 이것을 뒤집는 것은 불가하나이다.
또 옛 기록에 이르기를,
‘喪禮와 祭禮는 先祖를 따르라.’라고 하였습니다.”
曰:
「吾有所受之也.」
또 말하였다.
“우리에게 전수받은 바가 있나이다.”
父兄, 同姓老臣也.
父兄은 同姓의 늙은 臣下이다.
滕與魯俱文王之後, 而魯祖周公爲長, 兄弟宗之, 故滕謂魯爲宗國也.
滕나라와 魯나라는 함께 文王의 後孫이되, 魯나라 祖上인 周公이 손 위가 되니, 兄弟의 예로 높였으므로 滕나라가 魯나라를 일러 宗國이라 하였다.
然謂二國不行三年之喪者, 乃其後世之失, 非周公之法本然也.
그러나 두 나라가 三年喪을 行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은, 곧 그들의 後世가 잘못한 것이요, 周公의 法이 本來 그러한 것은 아니다.
志, 記也, 引志之言而釋其意. 以爲所以如此者, 蓋爲上世以來, 有所傳受;
雖或不同, 不可改也.
志는 기록한 책이다.
기록한 책의 말을 인용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말하기를, 喪祭를 이와 같게(선군의 例처럼) 하는 것은 대개 上世 이래로 傳受받은 바가 있기 때문이니, 비록 或 (禮經과) 같지 않으나 고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然志所言, 本謂先王之世舊俗所傳, 禮文小異而可以通行者耳, 不謂後世失禮之甚者也.
그러나 記錄에 말한 것은, 본래 先王 시대의 옛 풍속이 전하는 것이 禮經의 글과는 조금 달라도 通用할 수 있음을 말했을 뿐이요, 後世 失禮하기를 甚히 하도록 말한 것은 아니다.
▲禮經: 三禮(禮記.周禮.儀禮)
謂然友曰:
「吾他日未嘗學問, 好馳馬試劍.
今也父兄百官不我足也, 恐其不能盡於大事, 子爲我問孟子.」
세자가 연우에게 말하였다.
“내가 지난날에 학문한 적이 없고 말 달리기와 칼 쓰기를 좋아하였습니다.
오늘날에 부형과 백관들이 나를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아서, (부형과 백관이) 大事에 禮를 다하지 못할 듯하니, 선생께서는 나를 위하여 맹자에게 물어보십시오.”
▲試: 쓰다
▲不我足也:不爲我足也
然友復之鄒問孟子.
연우가 다시 추 땅에 가서 맹자에게 물었다.
孟子曰:
「然.
맹자가 말하였다.
“그럴 터입니다.
不可以他求者也.
다른 데서 찾아서는 안 됩니다.
孔子曰:
『君薨, 聽於冢宰.
歠粥, 面深墨. 卽位而哭, 百官有司, 莫敢不哀, 先之也.』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임금이 죽으면 백관들이 명령을 冢宰에게 듣는다.
(세자가) 죽을 먹고 얼굴이 짙은 흑색이 되어 喪位에 나아가 곡을 하면 백관과 유사들이 감히 슬퍼하지 않음이 없음은 윗사람이 솔선수범하기 때문이다.’
上有好者, 下必有甚焉者矣.
윗사람에게 좋아함이 있으면, 아랫사람에게는 필시 그보다 더 심한 것이 있습니다.
『君子之德, 風也; 小人之德, 草也. 草尙之風必偃.』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이니, 풀 위에 바람이 가해지면 틀림없이 쓰러진다.’라고 하였습니다.
是在世子.」
이것은 세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不我足, 謂不以我滿足其意也.
不我足은 내가 그들의 뜻을 滿足시키지 못함을 말한다.
然者, 然其不我足之言.
然이란 그들이 나를 만족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을 옳다고 여긴 것이다.
不可他求者, 言當責之於己.
不可他求란 마땅히 자신을 責해야 함을 말하였다.
冢宰, 六卿之長也.
冢宰는 六卿의 우두머리이다.
歠, 飮也.
歠은 마심이다.
深墨, 甚黑色也.
深墨은 심한 黑色이다.
卽, 就也.
卽은 나감이다.
尙, 加也. 論語作上, 古字通也.
尙은 가함이니, 論語 顔淵篇에는 上으로 되어 있으나 古字에 통용된다.
偃, 伏也.
偃은 엎드림이다.
孟子言
但在世子自盡其哀而已.
孟子는 말하였다.
‘단지 世子가 스스로 그의 슬픔을 다함에 달려 있을 뿐이다.’
然友反命, 世子曰:
「然.
是誠在我.」
然友가 복명하자, 세자가 말하였다.
“그렇다.
이것은 진실로 나에게 달려 있다.”
五月居廬, 未有命戒.
다섯 달 동안 廬幕에 거처하며 명령과 경계함을 내리지 아니하였다.
百官族人可謂曰知.
百官과 族人들이 다 말하기를 禮를 안다고 하였다.
及至葬, 四方來觀之, 顔色之戚, 哭泣之哀, 弔者大悅.
葬禮함에 이르러 사방에서 와 구경하더니, 얼굴빛이 슬퍼함과 울기를 슬퍼함에 弔問하는 자들이 크게 흡족해하였다.
▲제후는 5월葬. 大夫는 3월장, 士는 逾月장, 서민(士農工商)은 5일장
諸侯五月而葬, 未葬, 居倚廬於中門之外.
諸侯는 五個月 만에 葬禮하니 장례하지 않았을 때는 中門의 밖 廬幕에 거처한다.
居喪不言, 故未有命令敎戒也.
居喪중에는 말하지 않으므로 命令과 敎誡를 내리지 않는다.
▲居喪=讀禮
▲親喪=丁憂
▲往弔=匍匐
▲廬幕=倚廬
▲詩禮之敎=아버지의 가르침.
▲居喪中의 自稱=고자.애자.고애자
可謂曰知, 疑有闕誤. 或曰:
「皆謂世子之知禮也.」
“可謂曰知”는 의심컨대 闕文이나 誤字가 있는듯하다. 或者는 ‘모두들 世子가 禮를 안다고 말하였다.’라고 풀이하였다.
林氏曰:
「孟子之時, 喪禮旣壞, 然三年之喪, 惻隱之心, 痛疾之意, 出於人心之所固有者, 初未嘗亡也.
惟其溺於流俗之弊, 是以喪其良心而不自知耳.
文公見孟子而聞性善堯舜之說, 則固有以啓發其良心矣, 是以至此而哀痛之誠心發焉.
及其父兄百官皆不欲行, 則亦反躬自責, 悼其前行之不足以取信, 而不敢有非其父兄百官之心.
雖其資質有過人者, 而學問之力, 亦不可誣也.
及其斷然行之, 而遠近見聞無不悅服.
則以人心之所同然者, 自我發之, 而彼之心悅誠服, 亦有所不期然而然者.
人性之善, 豈不信哉?」
林氏가 말하였다.
‘孟子 당시에 喪禮가 이미 무너졌으나, 三年喪에 惻隱하는 마음과 매우 아파하는 뜻은 人心의 고유한 것에서 나오니, 애당초 없어진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流俗에 弊端에 빠졌을 뿐이고, 이 때문에 그 良心을 喪失하여 스스로 알지 못할 뿐이다.
文公이 孟子를 뵙고 性善說과 堯舜의 말씀을 들으니, 진실로 그 良心을 啓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때 이르러 애통해하는 진실한 마음이 發露되었다.
父兄과 百官들이 모두 행하려 하지 않는데도, 또 자신을 돌아보아 自責하여 그 지난날의 행동이 족히 남에게 信任을 받을 수 없음을 슬퍼하였고, 감히 父兄과 百官을 비난하는 마음을 갖지 않았다.
비록 그의 資質에 남보다 뛰어남이 있었으나, 學問의 힘도 숨길 수 없다.
斷然코 삼년상을 행함에 이르러서, 遠近에서 보거나 듣고 悅服하지 않음이 없었다.
인심이 똑같이 여기는 것을 자신으로부터 나타내어, 저들의 心悅誠服함에 또한 그러하기를 기대하지 않아도 그러함이 있었다.
人性의 善함을 어찌 믿지 않겠는가?’
▲有以: (…할) 방법이 있다. (…할) 수가 있다.
▲誣: 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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