淳于髡曰:
「先名實者, 爲人也; 後名實者, 自爲也.
夫子在三卿之中, 名實未加於上下而去之, 仁者固如此乎?」
淳于髡이 말하였다.
“名(名聲)과 實(事功)을 우선하는 자는 人民을 위하고, 名과 實을 뒤로 하는 자는 자신을 위합니다.
夫子께서 三卿의 지위에 계시면서, 名과 實을 上下에 加하지 못하고 떠나셨으니, 仁者가 본래 이와 같습니까?”
▶淳于髡: 韓盧와 東郭䞭의 고사(犬免之爭)를 말한 사람. 韓盧는 풍산개라고 하는 설이 있음
名, 聲譽也.
名은 名聲과 名譽이다.
實, 事功也.
實은 공적이다.
言
以名實爲先而爲之者, 是有志於救民也; 以名實爲後而不爲者, 是欲獨善其身者也.
‘名과 實을 우선하여 행하는 것은 백성을 구제함에 뜻을 둔 것이고,
名과 實을 뒤로 여겨서 행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몸만을 善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名實未加於上下, 言上未能正其君, 下未能濟其民也.
名實未加於上下이란, 위로 君主를 바로잡지 못하고 아래로 百姓을 구제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孟子曰:
孟子가 말하였다.
「居下位, 不以賢事不肖者, 伯夷也;
五就湯, 五就桀者, 伊尹也;
不惡汙君, 不辭小官者, 柳下惠也.
三子者不同道, 其趨一也.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 어짊으로써 어질지 못한 이를 섬기지 않은 사람은 伯夷이다.
다섯 번 湯王에게 출사하였고 다섯 번 桀에게 출사한 사람은 伊尹이다.
더러운 君主를 싫어하지 않고 微官을 사양하지 않은 사람은 柳下惠이다.
이 세 분은 道(出處之道)는 같지 않았으나, 그 지향함은 한가지이다.
一者何也?
曰仁也.
한가지라는 것은 무엇인가?
仁을 말한다.
君子亦仁而已矣, 何必同?」
君子는 또한 仁하면 그만이니, 어찌 굳이 같아야 하겠는가?”
仁者, 無私心而合天理之謂.
仁은 私心이 없어 天理에 合함을 이른다.
楊氏曰:
「伊尹之就湯, 以三聘之勤也.
其就桀也, 湯進之也.
湯豈有伐桀之意哉?
其進伊尹以事之也, 欲其悔過遷善而已.
伊尹旣就湯, 則以湯之心爲心矣;
及其終也, 人歸之, 天命之, 不得已而伐之耳.
若湯初求伊尹, 卽有伐桀之心, 而伊尹遂相之以伐桀, 是以取天下爲心也.
以取天下爲心, 豈聖人之心哉?」
楊氏가 말하였다.
‘伊尹이 湯王에게 나아간 것은 湯王이 세 번 招聘한 은근함 때문이었다.
桀王에게 나아간 것은 湯王이 그를 천거해서이다.
湯王이 어찌 桀王을 칠 뜻이 있었겠는가?
伊尹을 薦擧하여 섬기게 한 것은 桀王이 개과천선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伊尹이 湯王에게 나아갔으니 湯王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았을 터이고,
그러다가 그 종말에 이르러 사람이 귀부하고 하늘이 명하니, 不得已 桀王을 정벌했을 뿐이다.
만일 탕왕이 처음 伊尹을 求得하자 즉시 桀王을 칠 마음이 있어서, 伊尹이 이에 그를 도와서 桀王을 정벌했다면, 天下를 취함을 본심으로 삼은 것이다.
天下를 취함을 본심으로 삼는다면, 어찌 聖人의 마음이겠는가?’
▶勤=懃 은근하다. 정성을 다하다
曰:
「魯繆公之時, 公儀子爲政, 子柳·子思爲臣, 魯之削也滋甚.
若是乎賢者之無益於國也!」
淳于髡이 말하였다.
“魯나라 繆公의 때에 公儀子가 정사를 보았고 子柳와 子思가 신하가 되었으나, 魯나라의 侵削됨이 더욱 심하였습니다.
이러하니 賢者는 나라에 有益함이 없습니다.”
公儀子, 名休, 爲魯相.
公儀子는 이름이 休이니 魯나라 政丞이 되었다.
子柳, 泄柳也.
子柳는 泄柳이다.
削, 地見侵奪也.
削은 땅이 侵奪을 당하는 것이다.
髡譏孟子雖不去, 亦未必能有爲也.
淳于髡이 기롱하기를, 孟子가 비록 떠나지 않더라도, 반드시 큰일을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曰:
「虞不用百里奚而亡, 秦穆公用之而霸.
不用賢則亡, 削何可得與?」
孟子가 말하였다.
“虞나라는 百里奚를 등용하지 않아 亡하였고, 秦穆公은 그를 등용하여 覇者가 되었다.
賢人을 쓰지 않으면 나라가 亡하리니, 侵削됨을 어찌 따지겠는가?”
(나라가 망하는데 침삭따위를 논할 것이 있겠는가라는 뜻이다)
百里奚, 事見前篇.
百里奚는 일이 前篇(萬章下)에 보인다.
曰:
「昔者王豹處於淇, 而河西善謳;
綿駒處於高唐, 而齊右善歌;
華周·杞梁之妻善哭其夫, 而變國俗.
有諸內必形諸外.
爲其事而無其功者, 髡未嘗睹之也.
是故無賢者也, 有則髡必識之.」
淳于髡이 말하였다.
“옛적에 王豹가 淇水가에 處함에 河西지방이 短歌를 잘하고,
綿駒가 高唐에 처함에 齊나라 서쪽 지방이 長歌를 잘 불렀고,
華周와 杞梁의 아내가 그 남편의 喪에 哭을 잘함에 나라의 風俗이 변했습니다.
안에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밖에 나타나는 법입니다.
그러한 일을 하고서 그러한 功效가 없는 자를 제가 일찍이 보지 못했습니다.
이러므로 이 세상에는 賢者가 없습니다. 있다면 제가 틀림없이 알 터입니다.”
王豹, 衛人, 善謳.
王豹는 衛나라 사람이니 短歌를 잘하였다.
淇, 水名.
淇는 물 이름이다.
綿駒, 齊人, 善歌.
綿駒는 齊나라 사람이니 長歌를 잘 불렀다.
高唐, 齊西邑.
高唐은 齊나라 서쪽 고을이다.
華周·杞梁, 二人皆齊臣, 戰死於莒. 其妻哭之哀, 國俗化之皆善哭.
華周와 杞梁은 두 사람 모두 齊나라 신하인데 莒땅에서 戰死하자, 그 아내의 哭이 애통하니, 나라의 풍속이 변화하여 모두 哭을 잘하게 되었다.
髡以此譏孟子仕齊無功, 未足爲賢也.
순우곤이 이것으로써 기롱하기를, 孟子가 齊나라에 벼슬하여 功이 없었으니, 賢者가 되기에 부족하다고 하였다.
曰:
「孔子爲魯司寇, 不用, 從而祭, 燔肉不至, 不稅冕而行.
不知者以爲爲肉也.
其知者以爲爲無禮也.
乃孔子則欲以微罪行, 不欲爲苟去.
君子之所爲, 衆人固不識也.」
孟子가 말하였다.
“孔子께서 魯나라 司寇가 되셨을 때, 공자의 말을 듣지 않자 魯君을 좇아서 제사하였는데, 제사고기가 공자에게 이르지 않거늘, 冕旒冠을 벗지 않고 떠났다.
孔子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고기 때문에 떠났다고 하였다.
孔子를 아는 자들은 (魯君이) 無禮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孔子께서는 하찮은 罪로써 구실삼아 떠나고자 하셨고, 구차하게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君子가 하는 바를 衆人은 본래 알지 못한다.”
按史記:
「孔子爲魯司寇, 攝行相事.
齊人聞而懼, 於是以女樂遺魯君.
季桓子與魯君往觀之, 怠於政事.
子路曰:
『夫子可以行矣.』
孔子曰:
『魯今且郊, 如致膰于大夫, 則吾猶可以止.』
桓子卒受齊女樂, 郊又不致膰俎于大夫, 孔子遂行.」
史記를 살펴보았다.
“孔子께서 魯나라 司寇가 되시어 政丞의 일을 대행하셨다.
齊나라 사람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에 女樂(美女의 樂師)을 魯나라 君主에게 보내주었다.
季桓子와 魯君이 가서 이를 구경하고 政事에 태만하였다.
子路가 말하였다.
‘夫子께서 떠날 만하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魯나라가 지금 郊祭祀를 지낼 터이니, 만일 제사고기를 大夫들에게 보낸다면, 나는 오히려 떠나기를 멈출 수 있다.’
季桓子가 마침내 齊나라 女樂을 받고 郊祭를 지내고도 제사고기를 大夫에게 주지 않으니, 孔子께서 마침내 떠나시었다.”
孟子言
以爲爲肉者, 固不足道; 以爲爲無禮, 則亦未爲深知孔子者.
蓋聖人於父母之國, 不欲顯其君相之失, 又不欲爲無故而苟去.
故不以女樂去, 而以膰肉行.
其見幾明決, 而用意忠厚, 固非衆人所能識也.
孟子가 말하였다.
‘고기 때문이라고 한 자들은 본래 족히 말할 것도 못되고, 無禮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자들도 또한 孔子를 깊이 안 자가 아니다.
聖人이 父母의 나라에 대해서 그 君主와 宰相의 過失을 드러내고자 하지 않았고, 또 연고없이 구차히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女樂 때문에 떠나지 아니하고 祭祀고기를 구실삼아 떠나셨다.
그 幾微를 봄이 밝고 결단성이 있으며 뜻을 씀이 忠厚하시니, 참으로 중인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다.’
然則孟子之所爲, 豈髡之所能識哉?
그러니 孟子께서 하신 바를 어찌 淳于髡이 알 수 있겠는가?
尹氏曰:
「淳于髡未嘗知仁, 亦未嘗識賢也, 宜乎其言若是.」
尹氏가 말하였다.
‘淳于髡은 仁을 알지 못하였고 또한 賢者를 알지 못했으니, 그의 말이 이와 같음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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