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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고구려-이문진(李文眞)

구글서생 2023. 4. 27.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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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5.이문진(李文眞)

 

노정희 (盧鼎熙)
생몰 연대 미상. 조선사 연구가

삼국을 대표하는 사가(史家) 이문진의 전기를 기술함에는 필자는 너무나 천학(淺學)하다.

더구나 문헌에 남음이 선소(鮮少)한 이 사가의 전기를 작성하노라니 노력으로 보상할 수 없는 소홀이 생긴다.

 

김부식이 저술한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의 기사에 의하면 영양왕 11년 춘정월에 태학박사 이문진에게 명하여 국초에 문물이 미비한 때에 된 「유기(留記)」라는 고사(古史)를 산수(刪修)하여 신집(集) 5권을 편작(編作)케 하였다는 4, 50자에 불과한 기록이 간신히 남아 있다.

1) 산수():쓸데없는 부분을 깎아 내어 정리함.

 

이 몇십 자의 기록이야말로 영영 泯滅한 고구려사 신집 5권이 고대에는 있었던 것이요, 동시에 이문진이 고구려 시대의 사가였던 것을 그래도 우리에게 오늘날까지 전해 주는 미옥(美玉)의 파편이다.

미옥의 파편이 어찌 그 전형(全形)을 우리에게 보여 줄 수 있으랴.

후학(後學)의 수심이 여기 있다.

과거에 있어서 사학에 충실한 선학(先學)의 상심천(傷心泉)이 되었고, 미래에 있어서 생겨 나올 사학의 학도에게도 한없는 수파(愁波)를 던질 것이 아니랴.

 

「삼국사기」의 기록을 轉載하였으리라고 추측되는 기록으로 안정복(安鼎福)이 저작한 「동사강목(東史綱目)」에

“국초에 처음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할 때 기사 백 권을 기록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책의 이름을 유기라 했다. 이에 명을 받아 태학박사 이문진이 신집 5권으로 간략히 하였다."(편집자 역)

라는 일절(一節)이 있으나 이 역시 「삼국사기」에서 찾지 못한 사실을 알려 줌은 아무것도 없다.

 

그 다음 「문헌비고 예문고(文獻備考藝文考)」에 있는 말이 역시 이것과 동일하다.

1,330여 년이라는 시간은 장구하지 않다고 못하리로다.

 

이문진의 일생전(一生傳)은 그가 편작한 「고구려사」 신집 5권과 같이 영영 사라지고 형적이 막연하니, 공벽(孔壁)에서 유전(儒典)이 부생(復生)되듯 염외(念外)의 소득이 생기지 않는 한, 이문진은 누구의 계통이며어디에 출생하여 어디에 묻혔는지 알 길이 없도다.

2)공벽(孔壁):공자가 살던 집의 벽에서 고문상서(古文尙書)가 나온 데서 藏書室을 뜻함.

 

천학한 필자 더 깊은 것을 모르는 탓으로 이문진은 고구려 영양왕시대에 태학박사의 지위에 있어 수사(修史)에 종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하여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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