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說苑(설원) 제7권 정리(政理) 본문

漢詩와 漢文/說苑

說苑(설원) 제7권 정리(政理)

耽古樓主 2023. 11. 23. 19:05


 

〈政理〉篇은 국가를 다스리는 도리를 闡明한 내용이다정치에는 王道와 霸道가 있는데 왕도는 하고 패도는 하다는 思想에서 출발하고 있다.
왕도의 핵심은 仁政과 敎化로써 君子의 은 바람과 같고 小人의 은 풀과 같아서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이 쓰러지는 것처럼 교화의 作用을 提高하였다

한편 패도는 刑法을 중시하고 교화를 輕視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刑法을 否定하는 것이 아니다

형법의 重要性을 인정하면서도 다만 先後와 主客의 문제로 보았다

이는 先王이 德敎를 편 뒤에 刑罰은 부차적으로 사용하여 ‘가르치지 않고 형벌하는 것을 포학이라 한다’는 孔子의 사상과 부합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국가를 다스리는 요건으로 백성의 생활이 보장되어야 하고賞罰을 實情에 맞게 시행해야 하며자신의 德을 수양해야 됨을 밝혔다.

 그래서 賢君이 나라를 다스릴 적에 정치가 淸明하고관리는 가혹하지 않으며세금을 절약하고 자신의 봉양은 하게 하여 治世를 이룬다는 것이다.

 




1. 정치의 세 등급

政有三品:
王者之政化之,霸者之政威之,強者之政脅之;
夫此三者各有所施,而化之為貴矣。
정치에는 세 등급이 있으니,
王者의 정치는 덕으로 백성을 교화하고霸者의 정치는 위력으로 백성을 복종시키며强者의 정치는 형벌로 백성을 위협한다.
이 세 가지는 각기 시행되는 바이니덕으로 교화함이 귀중하다.

夫化之不變而後威之,威之不變而後脅之,脅之不變而後刑之.
교화하여도 백성이 변하지 않으면 그 후에 위력을 쓰고위력을 써도 변하지 않으면 위협하고위협을 하여도 변하지 않은 후에야 형벌을 가한다.

夫至於刑者,則非王者之所得已也。
형벌에 관하며 말하자면 王者가 하고자 함이 아니다.

是以聖王先德教而後刑罰,立榮恥而明防禁;
崇禮義之節以示之,賤貨利之弊以變之;
修近理內政橛機之禮,壹妃匹之際;
則莫不慕義禮之榮,而惡貪亂之恥。
이 때문에 聖王은 덕으로 교화함을 먼저 하고 형벌은 나중에 쓰며영광과 치욕의 표준을 세워놓고 나서 방지하고 금지하는 일을 밝히며,
예의의 節目을 존숭하여 이를 제시하고 재물과 이익의 폐단을 천시하여 백성의 마음을 변화시키며,
신변을 닦고 마음을 다스려 집 안의 예를 바르게 하고 배우자와의 사이를 바르게 한다.
그러면 義禮의 영광을 사모하지 않고탐욕과 혼란의 수치를 미워하지 않는 백성이 없을 터이다.

其所由致之者,化使然也。
그렇게 되는 원인은 德化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 三品 : 3등급.
▶ 王者 : 王道로 다스리는 자. 덕으로 다스리는 德治.
▶ 化 : 敎化. 가르쳐 착한 길로 인도하다.
▶ 霸者 : 霸道로 다스리는 자. 무력으로 천하를 다스림.
▶ 威 : 위력. 위력으로 복종시키다.
▶ 脅 : 협박하다. 위협하다.
▶ 是以 : 이 때문에.
▶ 橛機 : 문의 안, 곧 궁정을 말한다. 橛은 문지방, 機는 틀.
▶ 妃匹 : 배우자. 배필.

2.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小人의 덕은 풀과 같다. <君子之德風,小人之德草>

季孫問於孔子曰:
「如殺無道,以就有道,何如?」
季孫(:계강자)이 공자에게 정치에 관하여 물었다.
만일 무도한 사람을 죽여서 道義가 있는 사람을 오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孔子曰:
「子為政,焉用殺,子欲善而民善矣。
君子之德,風也;小人之德,草也;
草上之風必偃。」
공자가 말하였다.
그대가 정치함에 어찌 살육을 쓰려 합니까그대가 선량해지려 하면 백성도 선량해집니다.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小人의 덕은 풀과 같으니,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항상 쓰러집니다.”

言明其化而已矣,治國有二機,刑德是也;
王者尚其德而布其刑,霸者刑德並湊,強國先其刑而後德。
교화를 밝게 시행해야 할 뿐이라는 말이니나라를 다스림에 두 가지 기틀이 있으니 형벌과 이 그것이다.
王者는 덕을 숭상하되 형벌을 펴고霸者는 형벌과 덕을 아울러 쓰고强暴한 나라는 형벌을 먼저 쓰고 덕을 나중에 쓴다.

夫刑德者,化之所由興也。
형벌과 덕이라는 것은 교화가 일어나게 하는 까닭이다.

德者,養善而進闕者也;
刑者,懲惡而禁後者也;
故德化之崇者至於賞,刑罰之甚者至於誅;
夫誅賞者,所以別賢不肖,而列有功與無功也。
덕은 善行을 길러 결점을 보완하여 나아가게 하는 것이고,
형벌은 악행을 징계하여 후일의 악행을 금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德化가 숭상하는 것은 賞賜에 이르는 것이고형벌이 심함은 사형에 이르는 것이다.
誅罰하거나 상을 줌은 현명한 자와 어리석은 자를 구별하고 유공자와 무공자를 나열하는 방법이다.

故誅賞不可以繆,誅賞繆則善惡亂矣。
그러므로 誅罰과 行賞을 잘못 시행해서는 안 되니주벌과 행상을 잘못 시행하면 善惡이 혼란해진다.

夫有功而不賞,則善不勸,有過而不誅,則惡不懼.
공이 있으나 상을 주지 않으면 선행을 권장할 수 없고잘못이 있으나 주벌하지 않으면 악행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善不勸而能以行化乎天下者,未嘗聞也。
선행을 권하지 않고 천하에 교화를 잘 행함은 일찍이 들어보지 못하였다.

《書》曰:
『畢協賞罰』,此之謂也。
<書經>에 상과 벌을 모두 합당하게 하셨다.”라고 하였으니이것을 이름이다.

▶ 季孫 : 季康子. 노나라의 正卿이다. 춘추시대 말기 魯나라 사람으로 季孫斯의 아들이고, 季孫肥로도 불린다. 아버지를 이어 大夫가 되어 국정을 擅斷하였다.
※ 위 문장은 <論語 顏淵>에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季康子問政於孔子曰:
「如殺無道,以就有道,何如?」
孔子對曰:
「子為政,焉用殺?子欲善,而民善矣。君子之德風,小人之德草。草上之風,必偃。」”
▶ 偃 : 쓰러지다. 눕다.
▶ 湊 : 모이다. 끼어들어 함께 하다.
▶ 繆 : 틀리다. 잘못하다.
▶ 畢協賞罰 : <書經·周書·康王之誥〉에 “상과 벌을 모두 합당하게 하셨다: 惟新陟王畢協賞罰,戡定厥功,用敷遺後人休.”라고 하였다.


3. 물이 탁하면 물고기가 고통을 당한다.<水濁則魚困>
-이 글은 <한시외전> 및 <회남자>에도 기록되어 있다.

水濁則魚困,令苛則民亂,城峭則必崩,岸竦則必阤。
물이 탁하면 물고기가 살기 어렵고법령이 가혹하면 백성이 난을 일으키며성이 가파르면 허물어지기 마련이며언덕이 가파르면 무너지기 마련이다.

故夫治國,譬若張琴,大絃急則小絃絕矣.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림은 비유하면 거문고의 을 조절함과 같아서 큰 현을 지나치게 팽팽히 당기면 작은 현이 끊어진다.

故曰急轡御者非千里御也。
그래서 말하기를 말고삐를 급하게 당기는 마부는 천 리를 달리는 마부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有聲之聲,不過百里,無聲之聲,延及四海;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백 리를 가지 못하지만소리가 나지 않는 소리는 온 천하에 퍼져 나간다.

故祿過其功者損,名過其實者削.
그래서 봉록이 공로를 초과하면 봉록이 줄고명성이 실제를 초과하면 명성이 깎인다.

情行合而民副之,禍福不虛至矣。
실정과 행위가 부합해야 백성이 따르니禍福은 공연히 찾아오지 않는다.

《詩》云:
「何其處也,必有與也;
何其久也,必有以也。」
此之謂也。
<詩經>에서 이르기를
어찌 그리도 마음 편히 있는가분명 함께 출병할 나라 있으리라.
어찌 그리도 오래 걸리는가분명 그럴 까닭이 있으리라.”라고 하였으니이런 경우를 이른 말이다.

▶ 峭 : 가파르다.
▶ 竦(송) : 가파르다. 산이 높고 험하다.
▶ 阤(타) : 무너지다.
▶ 譬若 : 예를 들면. 예컨대.
▶ 四海 : 온 천하.
▶ 《詩》云 : <詩經 邶風 旄丘(:비탈 언덕)>에서 인용한 것이다.
모구는 衛나라에 망명한 黎나라 신하들이 위나라에서 구원병을 내주지 않아 원망한 시이다.


4. 조정이 엄하면 아랫사람들이 입을 다문다.

公叔文子為楚令尹三年,民無敢入朝,公叔子見曰:
「嚴矣。」
公叔文子가 나라의 令尹이 된 지 3백성에 감히 조정에 들어오는 사람이 없자公叔子가 공숙문자를 뵙고 말하였다.
엄하십니다.”

文子曰:
「朝廷之嚴也,寧云妨國家之治哉?」
공숙문자가 물었다.
조정의 엄함이 어찌 국가를 다스림을 방해한다고 하겠소?”

公叔子曰:
「嚴則下喑,下喑則上聾,聾喑不能相通,何國之治也?
공숙자가 말하였다.
엄하면 아랫사람이 입을 다물고아랫사람이 입을 다물면 윗사람은 귀머거리가 됩니다귀머거리와 벙어리는 서로 통할 수 없으니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겠습니까?

順針縷者成帷幕,合升斗者實倉廩,并小流而成江海
바늘에 실을 꿰면 장막을 완성하고되나 말의 곡식을 모으면 창고를 채우고작은 물이 모여 강과 바다를 이룹니다.

明主者有所受命而不行,未嘗有所不受也。」
현명한 군주에게 의견을 받고 실행하지 못함은 있을지언정 의견을 받지 않은 적은 없습니다.”

▶ 公叔文子 : 초나라의 영윤. 公叔은 복성。<논어> 헌문편에서의 공숙문자는 춘추시대 衛나라 靈公 때의 大夫 公叔發이다. 시호가 文이므로 公叔文子라고 하였다.
▶ 令尹 : 춘추전국시대 楚나라의 최고 관직으로 정무를 장악하였다. 당시 秦나라는 丞相, 楚나라는 令尹, 기타 나라는 相國이라 불렀다.
▶ 公叔子 : 초나라 大夫.
▶ 寧 : 어찌.
▶ 喑 : 벙어리.
▶ 聾 : 귀머거리.
▶ 針縷 : 바늘과 실.
▶ 升斗 : 용량의 단위. 한 되와 한 말.
▶ 倉廩 : 창고.


5. 남을 사랑하면 남도 나를 사랑한다.

衛靈公謂孔子曰:
「有語寡人為國家者,謹之於廟堂之上而國家治矣,其可乎?」
衛 靈公이 공자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과인에게 말하기를,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이 조정에서 삼가면 국가가 잘 다스려진다.’라고 하던데그것이 가능합니까?”

孔子曰:
「可。
공자가 말하였다.
가능합니다.

愛人者,則人愛之
남을 사랑하면 남도 그를 사랑하고,

惡人者,則人惡之
남을 미워하면 남도 그를 미워합니다.

知得之己者,亦知得之人
자신에게서 얻을 줄 알면 남에게서 얻을 줄도 압니다.

所謂不出於環堵之室而知天下者,知反之己者也。」
소위 사방을 흙담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나오지 않고도 천하의 사정을 알 수 있다.’란 자신을 돌이켜보아 안다는 것입니다.”

▶ 衛靈公 : 춘추시대 衛나라의 군주로 이름은 元이며, 獻公의 손자다. 혼군으로 이름 높았으며, 남색을 즐겼고 부인 南子는 이복오빠인 송조와 사통하면서 정치에 깊이 개입했으므로 아들인 태자 蒯聵가 영공의 부인 南子를 죽이려다 실패하자 영공의 노여움을 두려워한 괴외가 宋나라로 달아나고, 얼마 뒤 진나라로 들어갔다. 태자가 달아난 것에 화가 난 영공이 少子 郢을 세우려고 하였는데, 영이 사양하였다.[史記 世家] 권37.衛康叔世家
▶ 廟堂 : 朝廷.
▶ 知得之己者,亦知得之人 : 자신에게서 얻을 줄 아는 사람은 남에게서 얻을 줄도 안다. 즉 자기를 아는 지혜를 터득해야 남을 아는 지혜를 얻는다는 뜻.
▶ 不出於環堵之室而知天下者 : 군자는 충성을 바탕으로 삼고 仁으로 스스로를 지켜, 집에서 나가지 않아도 천 리 밖에까지 이름이 난다. <說苑] 제5권 貴德>
▶ 環堵 : 흙담으로 둘러싸인 좁은 집. 비좁고 초라한 방을 말한다.


6. 썩은 말고삐로 달리는 말을 다루듯이 백성을 대하라.

子貢問治民於孔子,孔子曰:
「懍懍焉如以腐索御奔馬。」
子貢이 孔子께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썩은 고삐로 달리는 말을 몰 듯이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

子貢曰:
「何其畏也!」
자공이 여쭈었다.
어찌 그렇게 두려워해야 합니까!”

孔子曰:
「夫通達之國皆人也,以道導之,則吾畜也
不以道導之,則吾讎也,若何而毋畏?」
공자께서 말하였다.
사통팔달의 國都의 모든 사람을 도의로 인도하면 그들이 나를 사랑하고,
도의로 인도하지 않으면 나를 원수로 여길 터이니 어떻게 두렵지 않겠느냐?”

▶ 子貢 : 孔子의 제자. 衛나라 출신. 姓은 端木, 이름은 賜. 子貢은 字.<史記·仲尼弟子列傳〉 공자가 아끼는 제자로서 말솜씨와 정치적 수완이 뛰어나 노나라와 위나라의 재상을 지냈다.
▶ 懔懔(름름) : 삼가고 조심하는 모양.
▶ 腐索 : 썩은 새끼. 썩은 말고삐를 말한다.
※ 予臨兆民,懍乎若朽索之馭六馬 : 모든 백성을 대함에 있어서 두려워하기를 썩은 고삐로 여섯 필의 말을 몰 듯 하라.<書經 夏書 甘誓 五子之歌>
▶ 奔馬 : 달리는 말.
▶ 通達 : 四通八達의 큰 길.
▶ 畜 : 아끼다, 사랑하다. 畜은 ‘기를 휵’
※ 畜畜然仁 : 돌보고 사랑하면서 인을 행함. 백성을 돌보고 사랑한다는 뜻이다. <莊子 雜篇 徐无鬼>


7. 짧은 두레박줄로는 깊은 우물물을 길어 올릴 수가 없다<短綆汲深>

齊桓公謂管仲曰:
「吾欲舉事於國,昭然如日月,無愚夫愚婦皆曰善,可乎?」
齊桓公이 管仲에게 말하였다.
내가 나라 안에서 일을 처리하되 해와 달처럼 밝게 하여어리석은 남녀까지도 모두 잘한다.’라고 말하게 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소?”

仲曰:
「可。然非聖人之道。」
관중이 말하였다.
가능합니다그러나 聖人의 治道는 아닙니다.”

桓公曰:
「何也?」
환공이 말하였다.
무엇 때문이오?”

對曰:
관중이 대답하였다.

「夫短綆不可以汲深井知鮮不可以與聖人言.
짧은 두레박줄로는 깊은 우물물을 길어 올릴 수 없고지식이 적은 사람은 성인과 말할 수 없습니다.

慧士可與辨物,智士可與辨無方,聖人可與辨神明;
夫聖人之所為,非眾人之所及也。
총명한 사람과 함께 사물을 변별할 수 있고지혜로운 사람과 함께 한정 없는 사물을 변별할 수 있으며성인과 함께 천지신명을 변별할 수 있습니다.
성인이 하는 일은 일반 사람은 미칠 바가 아닙니다.

民知十己,則尚與之爭,曰不如吾也,百己則疵其過,千己則唯而不信。
사람들은 자기보다 열 배 나음을 알면 오히려 그와 다투면서 나보다 못하다.’라고 하고자기보다 백 배 나음을 알면 그의 허물을 들추어내고자기보다 천 배 나으면 대답만 하고 信服하지 않습니다.

是故民不可稍而掌也,可并而牧也.
그러므로 일반 사람은 조금씩 장악할 수 없으나모두 합병하여 관리할 수는 있습니다.

不可暴而殺也,可麾而致也
暴壓하여 죽일 수는 없으나지휘하여 보낼 수는 있습니다.

眾不可戶說也,可舉而示也。」
많은 사람을 집집마다 찾아가 설득할 수 없으나사례를 들어서 보여줄 수는 있습니다.”

▶ 齊桓公 : 齊나라의 제16대 후작으로, 성은 姜, 휘는 小白, 姜太公의 12세손이다. 춘추시대 覇王이 되었다. 高傒와 鮑叔의 활약에 의해 공자 糾와의 왕위 계승 분쟁에서 승리해 제나라의 군주가 되었다. 管仲을 재상으로 삼고 제나라를 강대한 나라로 만들었으며, 실권을 잃어버린 東周 왕실을 대신해 회맹을 거행하였다.
▶ 管仲 : 이름은 夷吾이며, 齊桓公과 적대관계였으나 환공의 신하 鮑叔의 추천에 의하여 환공의 신하로서 재상이 된 후 제나라를 춘추시대의 5대 강국 중 제일 가는 강국으로 만든 공적을 세웠다.
▶ 短綆 : 짧은 두레박줄. 綆(경)은 두레박 줄.
※ 短綆汲深 : 두레박의 줄이 짧으면 깊은 우물의 물을 길을 수 없다. 재주가 부족하면서 세상을 속이려 들거나 스스로 무지함을 비유한 말이다.


※ 褚小者, 不可以懷大, 綆短者, 不可以汲深. : 주머니가 작으면 큰 것을 담을 수 없고, 두레박줄이 짧으면 깊은 물을 퍼 올릴 수 없다. [장자] 第18篇 至樂
▶ 慧士 : 총명한 사람.

 



8. 敎化가 가장 중요하다.

衛靈公問於史鰌曰:
「政孰為務?」
衛靈公이 史鰌에게 물었다.
정치에는 무엇을 힘써야 하오?”

對曰:
「大理為務,聽獄不中,死者不可生也,斷者不可屬也,故曰:大理為務。」
사추가 대답하였다.
司法에 힘써야 하니재판의 판결이 공정하지 않으면 죽은 사람을 살릴 수가 없으며신체가 절단된 사람을 이을 수가 없습니다그래서 司法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였습니다.”

少焉,子路見公,公以史鰌言告之,子路曰:
조금 지나 子路가 靈公을 알현하매영공이 사추의 말을 알려주자자로가 말하였다.

「司馬為務,兩國有難,兩軍相當,司馬執枹以行之,一鬥不當,死者數萬.
軍政에 힘써야 하니두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 兩軍이 서로 대치하면 司馬가 북채를 잡고 나가게 하는데한 번의 전투에서 당해내지 못하면 죽는 자가 수만 명이 됩니다.

以殺人為非也,此其為殺人亦眾矣,故曰:司馬為務。」
살인이 나쁘다고 여기면 그것이 살인함이 또한 많겠습니다그래서 군정관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였습니다.”

少焉,子貢入見,公以二子言告之,子貢曰:
조금 지나 子貢이 입궁하여 알현하매영공이 두 사람의 말을 알려주자자공이 말하였다.

「不識哉!
昔禹與有扈氏戰,三陳而不服,禹於是修教一年而有扈氏請服.
識見이 없군요!
옛날 임금과 有扈氏가 전쟁할 때 세 차례 공격했으나 복종하지 않자우임금이 1년 동안 교화를 시행하자 유호씨가 복종하겠다고 요청하였습니다.

故曰:
去民之所事,奚獄之所聽?
兵革之不陳,奚鼓之所鳴?
그래서 말하기를,
백성이 다툴 일을 없애면 무슨 옥사를 판결하겠습니까?
군대를 배치하지 않으면 무슨 북을 울리겠습니까?’라고 합니다.

故曰:教為務也。」
그렇기 때문에 敎化를 힘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 衛靈公 : 춘추시대 衛나라의 군주로 이름은 元이고, 獻公의 손자다.
혼군으로 이름 높았으며, 남색을 즐겼고 부인 南子는 이복오빠인 송조와 사통하면서 정치에 깊이 개입했으므로 아들인 태자 蒯聵가 영공의 부인 南子를 죽이려다 실패하자 영공의 노여움을 두려워한 괴외가 宋나라로 달아났다가 얼마 뒤 진나라로 들어갔다.
▶ 史鰌 : 姓이 史, 이름이 鰌, 字는 子魚로 춘추시대 말기 衛나라의 대부로 전해진다. <論語> <衛靈公>에 “정직하구나 史魚여.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도 화살과 같이 곧았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도 화살과 같이 곧았다[直哉史魚 邦有道如矢 邦無道如矢].”라고 하였다.
▶ 大理 : 典獄署. 고대의 관직명. 형 집행에 관한 일을 맡았다.
▶ 少焉 : 잠시 후. 얼마 안 있어.
▶ 子路 : 仲由. 姓은 仲, 이름은 由, 字는 子路, 또는 季路이다. 공자의 핵심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공자의 천하유세 동안 고난을 끝까지 함께 하였다. 공자와 14년의 천하주유과 망명생활을 함께 했으며,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갈 때 위나라에 남아서 공씨의 가신이 되었으나, 위나라 왕실 계승 분쟁에 휘말려 괴외의 난에 전사하였다.
▶ 司馬 : 軍政官. 軍政과 軍役을 주관하는 벼슬. 주나라 때는 六卿의 하나로 夏官에 속하여 大司馬라 하였다.
▶ 枹(포) : 북채.
▶ 禹 : 夏 나라의 시조라고 전해지는 전설상의 인물. 홍수를 다스려 나라를 구하였다고 한다. 그 공으로 우는 舜 임금으로 왕위를 물려받아 국호를 夏라 정하고 중국 전역을 9州로 나누어 貢賦를 정하였다.
▶ 有扈氏 : 옛 부족명. 지금의 섬서성 호현. 有扈는 夏나라와 同姓 姒氏 姓을 가진 나라이다. <書經> <夏書 甘誓>에는 禹임금의 아들 啓가 有扈氏를 정벌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9. 망아지를 빼앗긴 愚公

齊桓公出獵,逐鹿而走入山谷之中,見一老公而問之曰:
「是為何谷?」
齊桓公이 사냥을 나감에사슴을 쫓아 산골짜기로 들어갔다가 한 노인을 보게 되어 그에게 물었다.
이곳을 무슨 골짜기라고 하오?”

對曰:
「為愚公之谷。」
대답하였다.
愚公의 골짜기라고 합니다.”

桓公曰:
「何故?」
환공이 물었다.
무엇 때문이오?”

對曰:
「以臣名之。」
대답하였다.
저 때문에 그렇게 부릅니다.”

桓公曰:
「今視公之儀狀,非愚人也,何為以公名?」
환공이 말하였다.
지금 그대의 용모와 태도를 보니 어리석은 사람 같지 않은데무엇 때문에 그대의 이름으로 명명하였소?”

對曰:
노인이 대답하였다.

「臣請陳之.
신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臣故畜牸牛生子而大,賣之而買駒,少年曰:『牛不能生馬。』 遂持駒去。
신은 전에 암소 한 마리를 기르다가 송아지를 낳아 크게 자랐기에그것을 팔아서 망아지를 한 마리 샀는데소년이 말하기를 소는 망아지를 낳지 못한다.’하고 망아지를 끌고 가버렸습니다.

傍鄰聞之,以臣為愚,故名此谷為愚公之谷。」
이웃 사람들이 알고 저를 어리석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 골짜기의 이름을 愚公골짜기라고 부릅니다.”

桓公曰:
「公誠愚矣,夫何為而與之?」
환공이 말하였다.
그대는 참으로 어리석구려무엇 때문에 망아지를 주었소?”

桓公遂歸。明日朝,以告管仲,管仲正衿再拜曰:
환공이 궁으로 돌아와서 이튿날 아침에 管仲에게 알려주었더니관중이 옷깃을 여미고 재배하면서 말하였다.

「此夷吾之愚也,使堯在上,咎繇為理,安有取人之駒者乎?
이것은 저 夷吾의 어리석음이니가령 임금이 위에 계시고 咎繇가 법관이었다면어찌 남의 망아지를 빼앗는 일이 있겠습니까?

若有見暴如是叟者,又必不與也.
이 노인처럼 업신여김을 당하하더라도 틀림없이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公知獄訟之不正,故與之耳,請退而修政。」
愚公은 송사가 공정하지 못함을 알았으매 망아지를 주었을 뿐이니저는 물러가서 정치하는 도리를 닦겠습니다.”

孔子曰:
「弟子記之,桓公,霸君也
管仲,賢佐也;
猶有以智為愚者也,況不及桓公管仲者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제자들아기억하라환공은 패업을 이룬 군주이고 관중은 현명한 재상이었다.
그러한데도 그 지혜로움을 어리석다고 여긴 자들인데하물며 환공과 관중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임에랴!”

▶ 儀狀 : 용모와 태도.
▶ 牸牛 : 암소.
▶ 駒 : 망아지.
▶ 傍鄰 : 이웃집.
▶ 衿 : “襟”과 같다. 옷깃. 앞섶.
▶ 夷吾 : 管仲의 이름.
▶ 使 : 만약.
▶ 咎繇 : 皋陶. 舜임금과 禹임금 때의 사법관. 咎陶, 혹은 皋繇라 불리기도 하였다.
▶ 理 : 법관.
▶ 見暴 : 업신여김을 당하다. 暴은 업신여기다.
▶ 獄訟 : 소송사건


10.父子간에 벌인 소송
-이 글은 <한시외전>3권, <孔子家語>始誅, <荀子> 宥坐篇에 기록되어 있다.

魯有父子訟者,康子曰:
「殺之!」
나라에 父子간에 소송하는 자가 있었는데康子가 말하였다.
죽여라!”

孔子曰:
「未可殺也。
夫民不知子父訟之不善者久矣,是則上過也;
上有道,是人亡矣。」
이에 공자가 말하였다.
죽여서는 안 됩니다.
백성이 부자가 소송함이 좋지 않음을 모른 지 오래되었으니이는 윗사람의 잘못입니다.
윗사람에 道義가 있다면 이런 사람은 없을 터입니다.”

康子曰:
「夫治民以孝為本,今殺一人以戮不孝,不亦可乎?」
강자가 말하였다.
백성을 다스림에 효도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니지금 한 사람을 죽임으로써 불효자를 죽임도 옳지 않겠습니까?”

孔子曰:
「不孝而誅之,是虐殺不辜也。
공자가 말하였다.
효로써 가르치지 않고 죽이면 이는 무고한 사람을 학살하는 것입니다.

三軍大敗,不可誅也,
三軍이 대패하여도 패배한 병사를 죽여선 안 되고,

獄訟不治,不可刑也
소송을 잘못 판결하였다고 판결한 사람에게 형벌을 가할 수는 없습니다.

上陳之教而先服之,則百姓從風矣.
윗사람이 교화를 베풀면서 자신이 먼저 실행하면 백성은 바람에 풀이 쓰러지듯이 따를 터입니다.

躬行不從而后俟之以刑,則民知罪矣.
윗사람이 몸소 실행하는데도 백성이 따르지 않은 연후에 형벌로 대비하고 있으면 백성이 자기의 죄를 압니다.

夫一仞之牆,民不能踰,百仞之山,童子升而遊焉,陵遲故也!
한 길의 담을 사람들이 넘지 못하지만 백 길의 산을 어린아이가 올라가서 노는 것은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입니다!

今是仁義之陵遲久矣,能謂民弗踰乎?
지금은 仁義가 완만해진 지 오래되었으니 백성에게 넘지 말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詩》曰:
『俾民不迷!』
<시경>에 일렀습니다.
백성이 미혹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昔者君子導其百姓不使迷,是以威厲而不至,刑錯而不用。」
예전에 군자는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미혹하지 않도록 하였으매威力을 미워하여 미치지 않게 하였고형벌을 버려두어 쓰지 않았습니다.”

於是訟者聞之,乃請無訟。
이에 소송하던 사람이 이 말을 듣고 소송하지 않겠다고 청하였다.

▶ 康子 : 季康子. 춘추시대 말기 魯나라 사람으로 季孫斯의 아들이고, 季孫肥로도 불리며 康子는 시호이다. 아버지를 이어 大夫가 되어 국정을 전담하였다.
<한시외전>에는 康子로 기록되어 있고 <공자가어> 및 <순자>에는 ‘季孫’으로 기록되어 있다. 季孫은 계강자의 아버지인 季孫斯를 말하며, 계손사는 춘추전국시대 노나라의 정권을 잡은 귀족으로 노나라 三桓의 세 대부 중에서 세력이 가장 강했던 계손씨 가문의 수장이다.
▶ 不孝而誅之 : 효로써 가르치지 않고 죽이다. <공자가어>에는 ‘不教以孝而聽其獄“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한시외전>에는 ’不教而聽其獄‘으로 기록하고 있다.
▶ 俟之以刑 : 형벌로 대기하다. 형벌로 대비하다. 俟는 기다리다.
▶ 陵遲 : 경사가 완만하다.
▶ 俾民不迷 : <詩經·小雅·節南山〉에서 인용한 것으로, 이 시는 家父라는 주나라의 大夫가 나라의 어지러움을 한탄한 시이다.
“尹氏大師、維周之氐。秉國之均、四方是維。天子是毗、俾民不迷。不弔昊天、不宜空我師。: 태사윤씨는 주나라의 주춧돌. 나라의 권력 잡아 천하를 지탱하고, 천자를 도와 백성 길 잃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야속한 하늘이여! 우리의 태사 그대로 두면 옳지 않도다.”
▶ 威厲 : 위력을 미워하다. 厲는 ‘미워하다’
▶ 錯 : 두다.


11.정치란 백성을 부유하게 해주고 장수하게 하는 데 달려 있다.

魯哀公問政於孔子,對曰:
「政有使民富且壽。」
魯 哀公이 공자에게 정치에 관하여 묻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정치란 백성이 부유하고 장수하게 함에 있습니다.”

哀公曰:
「何謂也?」
애공이 말하였다.
무슨 말씀입니까?”

孔子曰:
「薄賦斂則民富,無事則遠罪,遠罪則民壽。」
공자가 대답하였다.
세금을 적게 거두면 백성이 부유해지고일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범죄에서 멀어지나니범죄에서 멀어지면 백성이 장수합니다.”

公曰:
「若是則寡人貧矣。」
애공이 말하였다.
그렇게 하면 과인이 가난해집니다.”

孔子曰:
공자가 말하였다.

「《詩》云:『凱悌君子,民之父母』.
未見其子富而父母貧者也。」
“<詩經>에 일렀습니다.
온화하신 임금님백성의 부모로다.’
그 아들이 부유하고 부모가 가난한 사람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 魯哀公 : 춘추시대 말기 노나라의 군주로 이름은 蔣 또는 將이고, 定公의 아들이다. 제나라 田常이 齊簡公을 죽이자 孔子가 田氏를 정벌하자고 주장했지만 듣지 않았다. 재위 중 공자가 衛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왔지만 등용하지 못하였다. 삼환이 강해짐을 걱정하여 제후의 힘을 빌려 억제하려다가 오히려 삼환의 공격을 받아 衛나라로 달아났고, 鄒를 거쳐 越로 갔다. 나중에 나라 사람들이 맞아들여 有山氏 집에서 죽었다.<史記 권33.魯周公世家
▶ 薄 : 감소하다.
▶ 凱悌君子, 民之父母 : <詩經·大雅·泂酌>의 일부분으로 군주의 덕을 칭송하는 노래이다.
“泂酌彼行潦、挹彼注茲、可以餴饎。豈弟君子、民之父母. : 저 멀리 흐르는 물을 떠다가 이곳에 갖다 부어서는 찐밥 술밥 짓는다. 온화하신 임금님, 백성의 부모로다.”
※ 泂酌 : 길에 고인 물. 비록 길가에 흐르는 물도 길어다 제사에 쓸 수 있다는 뜻을 취한 시이다.
▶ 愷悌 : 온화하다. 용모와 기상이 화평하고 단아함.


12.천하를 다스리는 방법 - 周文王과 呂望

文王問於呂望曰:
「為天下若何?」
周文王이 呂望에게 물었다.
천하를 어떻게 다스려야 합니까?”

對曰:
「王國富民,霸國富士;
僅存之國,富大夫;
亡道之國,富倉府;
是謂上溢而下漏。」
대답하였다.
王道의 나라는 백성을 부유하게 만들고霸道의 나라는 武士를 부유하게 만들고,
가까스로 존재하는 나라는 大夫를 부유하게 만들고,
무도한 나라는 창름과 부고를 부유하게 만드니이것을 일러 윗사람에게는 넘치고 아랫사람에게는 빠져나간다고 합니다.”

文王曰:
「善!」
문왕이 말하였다.
좋은 말이오.”

對曰:
「宿善不祥。」
대답하였다.
좋은 것을 묵혀둠은 상서롭지 못합니다.”

是日也,發其倉府,以賑鰥、寡、孤、獨。
그날로 문왕이 국가의 창고를 열어서 홀아비과부고아자식 없는 노인을 구제하였다.

▶ 文王 : 周 文王 姬昌. 기원전 12세기 중국 周의 창건자인 武王의 아버지이다. 성은 姬. 이름은 昌. 西伯은 그의 직위이다.
▶ 呂望 : 姜太公. 太公望. 周나라 때 東海人으로 본성은 姜. 그 선조가 呂에 봉해졌기 때문에 呂尙이라 한다. 늙도록 渭水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는데, 文王이 사냥을 나가서 만나 말을 해보고 “우리 할아버지 太公께서 그대를 기다린 지 오래다.[吾太公望子久矣]”라고 하고 太公望이라 이름 짓고 함께 돌아와 師로 삼았다. 그 후 武王 때 폭군 紂를 멸하고 천하를 장악하여 武王이 師尙父로 삼았으며, 齊에 봉해져 齊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史記 齊太公世家‧ 周本紀˃
▶ 若何 : 어떠한가?
▶ 王國 : 왕도의 정치로 나라를 다스리다.
▶ 僅 : 간신히. 가까스로.
▶ 倉府 : 倉廩(곡식 창고)과 府庫(재물 창고). 즉 나라의 창고.
▶ 賑 : 구제하다. 구휼하다.
▶ 鳏、寡 孤、獨 : <孟子>에 “늙어서 아내가 없음을 鰥이라 하고, 늙어서 남편이 없음을 寡라 하고, 늙어서 자식이 없음을 獨이라 하고, 어려서 부모가 없음을 孤라 하니, 이 네 가지는 천하의 곤궁한 백성으로 하소연할 데가 없는 자이다(老而无妻曰鳏,老而无夫曰寡,老而无子曰独,幼而无父曰孤。此四者,天下之穷民而无告者.)”라고 하였다.<孟子·梁惠王下>


13.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은 백성을 사랑하는 것뿐이다. -周武王과 太公

武王問於太公曰:
「治國之道若何?」
周武王이 太公에게 물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은 어떠해야 합니까?”

太公對曰:
「治國之道,愛民而已。」
태공이 대답하였다.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은 백성을 사랑하면 그만입니다.”

曰:
「愛民若何?」
무왕이 물었다.
백성을 사랑함이란 어찌하는 것입니까?”

曰:
태공이 대답하였다.

「利之而勿害,成之勿敗,生之勿殺,與之勿奪,樂之勿苦,喜之勿怒.
이롭게 하고 해롭게 하지 말며성공하게 하고 실패하게 하지 말며살게 하고 죽이지 말며필요한 물품을 주고 빼앗지 말며즐겁게 하고 괴롭히지 말며기쁘게 하고 노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此治國之道,使民之誼也,愛之而已矣。
이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이고 백성을 부리는 도리이니 백성을 사랑하면 그만입니다.

民失其所務,則害之也;
農失其時,則敗之也;
有罪者重其罰,則殺之也;
重賦斂者,則奪之也;
多徭役以罷民力,則苦之也;
勞而擾之,則怒之也。
백성이 본업을 잃게 하는 것은 해롭게 함이고,
농부가 때를 잃게 하는 것은 실패하게 함이며,
죄 있는 사람에게 처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죽임이며,
세금을 무겁게 부과하는 것은 빼앗음이며,
徭役을 늘려 백성을 고달프게 하는 것은 괴롭힘이며,
피로하게 하고 쉬지 못하게 하는 것은 노하게 함입니다.

故善為國者遇民,如父母之愛子,兄之愛弟,聞其饑寒為之哀,見其勞苦為之悲。」
그래서 나라를 잘 다스리는 사람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형이 아우를 사랑하는 것처럼 백성을 대우하매백성의 饑寒을 들으면 애처로워하고勞苦를 보면 불쌍히 여깁니다.”

▶ 道 : 방법.
▶ 而已 : ~일 뿐이다.
▶ 徭役 : 부역.
▶ 罷 : 고달프다.


14.현명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周武王과 太公

武王問於太公曰:
「賢君治國何如?」
周武王이 太公에게 물었다.
현명한 군주는 나라를 다스리기를 어떻게 합니까?”

對曰:
태공이 대답하였다.

「賢君之治國,其政平,其吏不苛,其賦斂節,其自奉薄.
현명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림에정치는 공평하고 관리는 가혹하지 않고 세금 징수를 절제하고 자신을 받드는 비용은 적게 합니다.

不以私善害公法,賞賜不加於無功,刑罰不施於無罪,不因喜以賞,不因怒以誅.
개인적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국가의 법을 해치지 아니하며공로가 없음에 賞賜를 주지 않으며무죄에 형벌을 시행하지 않으며기쁘다고 상을 주지 않고 노엽다고 죽이지 않습니다.

害民者有罪,進賢舉過者有賞,後宮不荒,女謁不聽.
백성을 해침에 치죄가 있고賢者를 추천하거나 잘못을 적발함에 賞賜가 있고후궁과 황음에 빠지지 않고 여인의 청탁을 듣지 않습니다.

上無婬慝,下不陰害,不幸宮室以費財,不多觀游臺池以罷民,不彫文刻鏤以逞耳目,官無腐蠹之藏,國無流餓之民.
윗사람은 음란하고 사특함이 없고 아랫사람은 음해하지 않으며궁실을 좋아하여재물을 허비하지 않고觀游를 위한 누대나 연못을 늘려 백성을 피곤하게 하지 않으며화려한 조각으로 이목을 즐겁게 하지 않으며관아에 썩거나 좀이 먹는 貯藏物이 없으며나라 안에 유랑하며 굶주리는 백성이 없어야 합니다.

此賢君之治國也。」
이것이 현명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림입니다.”

武王曰:
「善哉!」
무왕이 말하였다.
훌륭한 말입니다!”

▶ 謁 : 청하다.
▶ 婬慝 : 淫匿. 음란하고 사특하다.
▶ 刻鏤 : 조각하다. 鏤는 ‘새기다.’
▶ 逞 : 즐겁다. 과시하다.
▶ 蠹 : 좀. 좀먹다.


15. 여러 차례 법령을 바꾸는 이유.

武王問於太公曰:
「為國而數更法令者何也?」
周武王이 太公에게 물었다.
나라를 다스리면서 자주 법령을 바꿈은 무엇 때문입니까?”

太公曰:
「為國而數更法令者,不法法,以其所善為法者也;
故令出而亂,亂則更為法,是以其法令數更也。」
태공이 대답하였다.
나라를 다스리면서 여러 차례 법령을 바꿈은 법령을 준수하지 않기 때문이니자기가 좋아함을 법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령이 나오면 혼란해지고 혼란해지면 법령을 고쳐 만드니이 때문에 법령을 여러 차례 고칩니다.”

▶ 不法法 : 법을 법으로 여기지 않다. 법령을 준수하지 않다.


16. 백성을 두려워하라.- 如臨深淵,如履薄冰

成王問政於尹逸曰:
「吾何德之行而民親其上?」
周成王이 태사 尹逸에게 정치에 관하여 물었다.
내가 무슨 덕을 행하여야 백성이 나에게 친근하겠소?”

對曰:
「使之以時而敬順之,忠而愛之,布令信而不食言。」
윤일이 대답하였다.
때에 맞게 부리고 공경하여 순종하고충심으로 사랑하며반포하는 명령은 미더워 食言하지 않아야 합니다.”

王曰:
「其度安至?」
성왕이 말하였다.
그 정도는 어디까지입니까?”

對曰:
「如臨深淵,如履薄冰。」
윤일이 대답하였다.
깊은 연못에 하듯이얇은 얼음을 밟듯이 해야 합니다.”

王曰:
「懼哉!」
성왕이 말하였다.
두렵군요!”

對曰:
윤일이 대답하였다.

「天地之間,四海之內,善之則畜之,不善則讎也
천지 사이와 온 나라 안의 백성을 잘 대해주면 그들이 나를 사랑하고잘 대해주지 않으면 그들이 원수로 삼습니다.

夏、殷之臣,反讎桀、紂而臣湯、武,夙沙之民,自攻其主而歸神農氏。
옛날 와 의 신하는 桀王과 紂王을 원수로 여기며 湯王과 武王의 신하가 되었고夙沙國의 백성은 스스로 그들의 군주를 공격하여 神農氏에게 귀순하였습니다.

此君之所明知也,若何其無懼也?」
이는 군주께서도 분명히 아시는 일이니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 成王 : 周成王. 주나라의 제2대 왕. 周武王의 아들로 성은 姬, 이름은 誦이다. 주 무왕이 역성혁명 후 불과 2년 만에 사망하자 뒤를 이어 13살에 즉위하였다. 성왕이 어렸으므로 무왕의 아우 주공 周公 旦이 攝政하였다.
▶ 尹佚 : 주 무왕 때의 史官 본명은 尹佚이지만 주나라 초기인 문왕과 무왕 때 태사직을 역임하였기 때문에 史佚로 불려졌다.<史記 世家 권39.晉世家 (01/24 <唐叔虞>
▶ 食言 : 약속한 말을 지키지 않다.
▶ 如臨深淵, 如履薄氷 : <詩經·小雅·小旻>에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冰. :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 깊은 못에 임하는 듯 하고 엷은 얼음 밟는 듯이 조심하여라.”라고 하였다.
▶ 畜 : 아끼다, 사랑하다. 畜은 ‘기를 휵’
※ 畜畜然仁 : 돌보고 사랑하면서 인을 행함. 백성을 돌보고 사랑한다는 뜻이다. <莊子 雜篇 徐无鬼>
▶ 桀紂 : 폭군. 하나라 桀왕과 은나라 紂왕.
▶ 湯武 : 湯王과 周武王. 탕왕은 은나라의 건국자이며 무왕은 주나라의 건국자이다.
▶ 夙沙 : 고대의 나라 이름. 지금의 山東省 膠東 지역에 있었다.
▶ 神農氏 : 중국 三皇의 하나로 흔히 '炎帝 神農氏'로 불린다. 별칭으로는 烈山氏, 炎帝朱襄氏라고 불리기도 한다.
※ 人之所畏,不可不畏 :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老子 20장>



17. 실천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훌륭한 정치를 할 수 있다.

仲尼見梁君,梁君問仲尼曰:
「吾欲長有國,吾欲列都之得,吾欲使民安不惑,吾欲使士竭其力,吾欲使日月當時,吾欲使聖人自來,吾欲使官府治,為之奈何?」
공자가 梁君을 만남에 양군이 공자에게 물었다.
나는 오래도록 이 나라를 소유하고나는 여러 城邑을 얻고나는 백성이 안정되어 미혹되지 않게 하도나는 가 그들의 능력을 다하도록 하고나는 해와 달이 때에 맞게 운행하도록 하고나는 聖人이 스스로 찾아오게 하고나는 官府가 잘 다스려지게 하고 싶은데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仲尼對曰:
공자가 대답하였다.

「千乘之君,萬乘之主,問於丘者多矣,未嘗有如主君問丘之術也,然而盡可得也。
천승의 제후와 만승의 천자로서 저 에게 묻는 사람이 많되주군처럼 저의 방법을 묻는 사람은 없었으나 모두 이룰 수 있는 일입니다.

丘聞之,兩君相親,則長有國;
君惠臣忠,則列都之得;
毋殺不辜,毋釋罪人,則民不惑;
益士祿賞,則竭其力;
尊天敬鬼,則日月當時;
善為刑罰,則聖人自來;
尚賢使能,則官治。」
제가 듣기에이웃의 두 군주가 서로 친하면 오래도록 나라를 보유하고,
군주가 은혜를 베풀고 신하가 충성하면 여러 성읍을 얻게 되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죄인을 놓아주지 않으면 백성이 미혹되지 않으며,
에게 봉록과 상을 늘리면 그들의 능력을 다하게 하고,
하늘을 높이고 귀신을 공경하면 일월이 때에 맞게 운행하고,
형벌을 잘 집행하면 성인이 저절로 오고,
어진 이를 숭상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임용하면 관부가 잘 다스려진다고 합니다.”

梁君曰:
「豈有不然哉!」
양군이 말하였다.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 梁君 : <孔子家語>에는 宋君으로 기록하고 있다.
▶ 列 : 여럿의.
▶ 千乘之君 : 諸侯. 제후는 병거 천 대를 낼 수 있었기에 제후를 ‘千乘’이라고 하였다.
▶ 萬乘之主 : 天子. 주나라 때 천자가 병거 일 만대를 출동시키던 제도에서 나온 말.


18.정치는 위정자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子貢曰:
子貢이 공자께 여쭈었다.

「葉公問政於夫子,夫子曰:
『政在附近來遠』,
魯哀公問政於夫子,夫子曰:
『政在於諭臣』。
葉公이 선생님께 정치에 관하여 물음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政事는 가까운 곳의 사람을 歸附하게 하고먼 곳의 사람을 오게 함에 있습니다.’라고 하셨고,
魯 哀公이 선생님께 정치에 관하여 물음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政事는 신하를 잘 타이름에 있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齊景公問政於夫子,夫子曰:
『政在於節用』。
齊景公이 선생님께 정치에 관하여 물음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政事는 비용을 절약함에 있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三君問政於夫子,夫子應之不同,然則政有異乎?」
세 군주가 선생님께 政事에 관하여 물음에 선생님의 응답이 같지 않으니그렇다면 政事에 다름이 있습니까?”

孔子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夫荊之地廣而都狹,民有離志焉,故曰在於附近而來遠。
(:)나라는 땅은 넓은데 도읍은 협소하여 백성에게 그곳을 떠날 뜻이 있으매가까운 곳의 사람이 歸附하게 하고 먼 곳의 사람은 오게 함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哀公有臣三人,內比周公以惑其君,外障諸侯賓客以蔽其明,故曰政在諭臣。
애공에게 신하 3인이 안으로 작당하여 군주를 미혹시키고 밖으로 제후들의 빈객을 막아서 군주의 明智를 가리매정치는 신하를 잘 타이름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齊景公奢於臺榭,淫於苑囿,五官之樂不解,一旦而賜人百乘之家者三,故曰政在於節用.
齊景公은 누대와 정자에 사치를 부리고 苑囿에서 향락에 빠져서 五官의 즐거움을 멈추지 않고하루아침에 百乘의 벼슬을 줌이 세 번이매정치는 비용을 절약함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此三者政也,詩不云乎:
『亂離斯瘼,爰其適歸』,
此傷離散以為亂者也.
이 세 가지가 다 政事이니, <詩經>에 이르지 않았더냐?
난리와 근심으로 병이 드니 이 몸 어디로 가야 하나?’라고 하였으니이는 흩어져서 혼란하게 됨을 슬퍼한 것이다.

『匪其止共,惟王之邛』,此傷姦臣蔽主以為亂者也.
사람들 모두 직책에 충실하지 않으니 오직 임금께 괴로움만 될 뿐이네.’라고 하였으니이는 간신이 군주의 총명을 가려 혼란하게 됨을 슬퍼한 것이다.

『相亂蔑資,魯莫惠我師』,此傷奢侈不節以為亂者也.
혼란한 세상을 만나 물자가 부족해도우리 백성을 돌보려 하지 않네.’라고 하였으니이는 사치하여 재물을 절약하지 않아 혼란하게 됨을 슬퍼한 것이다.

察此三者之所欲,政其同乎哉!」
이 세 군주가 원하는 바를 살펴보면 정사가 같을 수 있겠느냐!”

▶ 子貢 : 孔子의 제자. 衛나라 출신. 姓은 端木, 이름은 賜. 子貢은 字. <史記·仲尼弟子列傳〉
▶ 葉公 : 沈諸梁. 자는 子高. 초나라의 대부로 섭현을 다스렸다.
▶ 政 : 나라를 다스리다.
▶ 魯哀公 : 춘추시대 말기 노나라의 군주로 이름은 蔣 또는 將이고, 定公의 아들이다. 제나라 田常이 齊簡公을 죽이자 孔子가 田氏를 정벌할 것을 주장했지만 듣지 않았다. 재위 중 공자가 衛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왔지만 등용하지 못하였다. 삼환이 강해지는 것을 걱정하여 제후의 힘을 빌려 이를 억제하려고 하다 거꾸로 삼환의 공격을 받아 衛나라로 달아났고, 鄒를 거쳐 越로 갔다. 나중에 나라 사람들이 맞아들여 有山氏 집에서 죽었다.
▶ 諭 : (윗사람이)타이르다. 깨우치다.
▶ 齊景公 : 춘추시대 제나라의 군주로 姜杵臼. 景은 시호이다. 齊莊公의 이복동생으로 장공을 살해한 대부 崔杼에 의해 옹립되었다. 궁실을 짓고 사냥개와 말을 모으기를 좋아하였으며 세금과 형벌을 무겁게 하며 사치가 끝이 없었다. 재위 동안 제나라의 公室이 쇠퇴하고 田氏 세력이 대두하였다.
▶ 哀公有臣三人 : 三桓. 삼환은 춘추시대 노나라의 세 卿의 집안, 季孫氏, 叔孫氏, 孟孫氏의 세 귀족 집안을 가리키는 말이다. 노애공은 삼환이 강해짐을 걱정하여 제후의 힘을 빌려 이를 억제하려고 하다 도리어 삼환의 공격을 받아 衛나라로 달아나게 되었다.
▶ 比周 : 작당하다. 파당을 짓다.
▶ 臺榭 : 누대와 정자.
▶ 苑囿 : 고대에 왕후귀족이 수렵을 통해 武를 단련하기 위하여 넓은 지역 주위에 울타리를 치고 새나 짐승을 서식시키는 장소로 황제의 사냥터로 활용되었던 곳.
▶ 邛 : 수고하다. 병들다.
▶ 亂離斯瘼,爰其適歸 : <詩經·小雅·四月>에서 인용한 것으로 이 시는 어지러운 세상을 맞아 자신의 불우함을 한탄하는 시이다.
“秋日淒淒、百卉具腓。亂離瘼矣、爰其適歸。: 가을되어 쌀쌀하니 온갖 초목 시들었네. 난리와 근심으로 병이 드니 이 몸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 瘼은 병들다.
▶ 匪其止共,惟王之邛 : <詩經·小雅·巧言>에서 인용한 것으로 이 시는 소인의 참언에 농락당하는 임금을 비난한 시이다.
“盜言孔甘、亂是用餤。匪其止共、維王之邛。: 소인들의 말을 달콤하게 여기신 까닭에 재난이 더욱 심해지네. 사람들 모두 직책에 충실치 않으니 오직 임금께 괴로움만 될 뿐.”
▶ 相亂蔑資,魯莫惠我師 : <詩經·大雅·板(무심한 하늘>에서 인용한 것이며, 이 시는 관리들이 나라의 일을 올바르게 하고자 훈계하는 시이다.
“民之方殿屎、則莫我敢葵。喪亂蔑資、曾莫惠我師. : 백성 지금 신음하고 있어도 나에게는 감히 귀 기울이지 않는다. 喪亂을 당해 물자가 부족해도 우리 백성을 돌보려 하지 않네.”


19.公儀休의 청렴결백

公儀休相魯,魯君死,左右請閉門,公儀休曰:
「止!
池淵吾不稅,蒙山吾不賦,苛令吾不布,吾已閉心矣!
何閉於門哉?」
公儀休가 나라의 재상이 됨에 노나라 군주가 죽었는데 측근들이 문을 잠그자고 건의하자 공의휴가 말하였다.
그만두시오!
나는 연못에서 나오는 이익에 세금을 징수하지 않았고 蒙山에서 나오는 이익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으며가혹한 법령을 반포하지 않으며나는 이미 사심을 닫았소!
무엇 때문에 문을 잠그겠소?”

▶ 公儀休 : 춘추시대 鲁 穆公 때의 재상으로 公儀子라고도 한다. 청렴결백하여 예물을 받지 않았다.[史記列傳] 권119.循吏列傳
▶ 閉門 : 杜門謝客. 문을 걸어 잠그고 방문객을 사절하다.
▶ 蒙山 : 山東省 蒙陰縣 남서쪽에 있는 산.



20.子產의 현명한 정치 : 인재의 적재적소 배치

子產相鄭,簡公謂子產曰:
「內政毋出,外政毋入。
夫衣裘之不美,車馬之不飾,子女之不潔,寡人之醜也
國家之不治,封疆之不正,夫子之醜也。」
子産이 나라에서 相國으로 있을 때 鄭簡公이 자산에게 말하였다.
宮中의 일은 밖에 내어다 처리하지 말고궁중 밖의 政務는 궁중에 들여서 처리하지 마시오.
의복이 아름답지 못함과 수레가 잘 꾸며지지 않음과 자녀의 품행이 고결하지 않음은 과인의 수치이오.
국가가 잘 다스려지지 못함과 영토의 경계가 바르지 못함은 그대의 수치가 될 터이오.”

子產相鄭,終簡公之身,內無國中之亂,外無諸侯之患也
자산이 정나라의 상국을 지내며 簡公이 죽을 때까지 안으로는 나라에 반란이 없었고밖으로는 제후의 환난이 없었다.

子產之從政也,擇能而使之:
자산이 정치에 종사하며 賢能한 사람을 뽑아서 일을 시켰으니,

馮簡子善斷事,子太叔善決而文,公孫揮知四國之為而辨於其大夫之族姓班位能否,又善為辭令,裨諶善謀,於野則獲,於邑則否.
馮簡子는 큰일을 잘 결단하였고子太叔은 판결을 잘하면서 文采가 있었고公孫揮는 사방 제후국의 정황을 알며 그 나라 大夫의 가족 성씨와 관직작위와 재능 따위를 분별하고 또 外交의 應對를 잘하였고裨諶은 계책을 잘 내어 야외에서 계책을 세우면 딱 들어맞고 성읍에서 내는 계책은 그렇지 못하였다.

有事乃載裨諶與之適野,使謀可否,而告馮簡子斷之,使公孫揮為之辭令.
정사가 있으면 裨諶을 수레에 태우고 함께 야외에 가서 계책의 가부를 모의하게 하고풍간자에게 그 계책을 말해주어 결단하게 하고공손휘에게 외교의 응대를 정하게 하였다.

成乃受子太叔行之,以應對賓客,是以鮮有敗事也。
완성되면 자태숙에게 주고 집행하게 함으로써 외국의 빈객을 응대하게 하매 이 때문에 실패하는 일이 드물었다.

▶ 子産 : 공손교. 姓은 公孫, 이름은 僑, 字는 子産 또는 子美로 鄭子產으로 일컬어진다. 鄭나라의 현명한 大夫로 春秋時代 후기의 뛰어난 정치가이다.[史記 世家] 권42.鄭世家
▶ 簡公 : 鄭 簡公. 춘추시대 정나라의 군주로 이름은 嘉이고, 僖公의 아들이다. 아버지 희공이 재상 자사에게 시해되자, 자사에게 옹립되어 5살에 정나라 군주가 되었다. 공자들이 희공을 시해한 자사를 죽이려고 모의했으나 자사가 미리 알고 선수를 쳐 子狐·子熙·子侯·子丁을 죽였고, 자호의 두 아들 孫擊과 孫惡은 위나라로 달아났다. 그 후 子駟와 子孔이 번갈아가며 執政하였다.<史記 鄭世家>
▶ 封疆 : 국경. 경계.
▶ 馮簡子 : 춘추시대 鄭나라 大夫.<春秋左氏傳 襄公 31년>
▶ 子太叔 : 춘추시대 鄭나라 大夫 游吉. 字가 太叔이다. 世叔으로도 불린다. 簡公과 定公 때 正卿을 지냈다. 典章에 밝았고, 辭令에 뛰어나서 諸侯에 사신으로 가 예에 따라 직분을 온전히 수행해 허점이 없었다. 子産을 執政시켜 仁政을 베풀었다. 鄭定公 8년 자산의 뒤를 이어 국정을 맡았다.
▶ 公孫揮 : 춘추시대 鄭나라 大夫로 字는 子羽이다. 외교 응대에 능하여 외교관이 되었다.
▶ 辭令 : 응대하는 말.
▶ 裨諶 : 춘추시대 鄭나라 大夫. 子産이 집정할 때 정사에 관한 文辭의 초안은 늘 맡아 작성하였다. <春秋左氏傳 襄公 31년> 裨諶은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조용하면 좋은 계책을 내지만 시끄러우면 좋은 계책을 내지 못하였다.


21. 정치의 세 가지 요체

董安于治晉陽,問政於蹇老,蹇老曰:
「曰忠、曰信、曰敢。」
董安于가 晉陽을 다스릴 때 蹇老에게 정치에 관하여 묻자건로가 대답하였다.
과 과 이라 합니다.”

董安于曰:
「安忠乎?」
동안우가 물었다.
어떻게 忠誠합니까?”

曰:
「忠於主。」
건로가 대답하였다.
주군에게 충성합니다.”

曰:
「安信乎?」
동안우가 물었다.
어떻게 미덥게 합니까?”

曰:
「信於令。」
건로가 대답하였다.
정령을 믿게 합니다.”

曰:
「安敢乎?」
동안우가 물었다.
어떻게 과감하게 하오?”

曰:
「敢於不善人。」
건로가 대답하였다.
나쁜 사람에게 과감히 행동합니다.”

董安于曰:
「此三者足矣。」
동안우가 말하였다.
이 세 가지로 충분하겠소.”

▶ 董安于 : 춘추시대 晉나라의 正卿으로 趙簡子의 家臣이다. 字는 阏于. 荀寅과 范吉射가 난을 일으켜 조간자를 치려 하자, 조간자에게 먼저 난에 대비하도록 권하였다. 梁嬰父가 조간자가 먼저 난을 일으킨 죄를 물어 趙氏를 치려고 하자 목을 매어 죽음으로써 화를 면하게 하였다.<史記 趙世家>
▶ 晉陽 : 춘추시대 晉나라의 읍.
▶ 蹇老 : 사람 이름.


22.소문만 듣고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

魏文侯使西門豹往治於鄴,告之曰:
「必全功成名布義。」
魏文侯가 西門豹를 鄴郡에 보내 다스리게 하면서 당부하였다.
반드시 온전한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치고 인의를 베푸시오.”

豹曰:
「敢問全功成名布義為之奈何?」
서문표가 말하였다.
감히 여쭙건대온전한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치고 인의를 베풂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文侯曰:
문후가 말하였다.

「子往矣!
是無邑不有賢豪辨博者也,無邑不有好揚人之惡,蔽人之善者也。
그대가 가보시오!
어질고 호걸스럽고 말 잘하고 박식한 사람이 없는 고을이란 없고남의 악행을 들추어내고 남의 선행을 은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고을이란 없소.

往必問豪賢者,因而親之;
其辨博者,因而師之;
問其好揚人之惡,蔽人之善者,因而察之,不可以特聞從事。
그곳에 가거든 꼭 호걸과 현자를 물어서 그들과 친근하고,
말 잘하고 박식한 사람을 스승으로 삼고,
남의 악행을 들추어내기를 좋아하거나 남의 선행을 은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물어서 그들을 자세히 살피되단지 소문만 듣고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되오.

夫耳聞之不如目見之,目見之不如足踐之,足踐之不如手辨之;
人始入官,如入晦室,久而愈明,明乃治,治乃行。」
귀로 들음은 눈으로 보느니만 못하고눈으로 봄은 발로 밟느니만 못하고발로 밟음은 손으로 辨別함만 못하오.
사람이 처음 벼슬에 나섬은 어두운 방에 들어감과 같아서오래되어야 더욱 밝게 보이고 밝게 보여야 다스릴 수 있고다스려야 政令이 실행되오.”

▶ 魏文侯 : 전국시대 魏의 초대 제후이다. 성은 姬, 씨는 魏, 이름은 斯, 또는 都이다. 李悝·吳起·樂羊·西門豹 등 인재를 등용하였고, 위나라를 전국시대 최초로 覇國으로 만들었다.
▶ 西門豹 : 전국시대의 魏나라 정치가. 12개의 수로를 파서 논으로 강물을 끌어들이는 관개사업을 하여, 농업생산 증대에 이바지하였다. 또 그 고장 사람들이 해마다 미녀를 골라 강물에 던지는 풍습의 폐습을 일소하였다. [史記列傳] 권126 滑稽列傳
▶ 鄴 : 河北省 臨漳縣 일대.
▶ 是無邑 : 是는 夫와 같다.
▶ 特 : 단지.


23.정치는 인재를 활용하여야 한다.

宓子賤治單父,彈鳴琴,身不下堂而單父治。
宓子賤이 單父를 다스림에 한가롭게 거문고만 타고 몸이 대청 아래로 내려가지 않아도 선보가 잘 다스려졌다.

巫馬期亦治單父,以星出,以星入,日夜不出,以身親之,而單父亦治。
巫馬期도 선보를 다스림에별을 보고 나와서 별을 보고 들어가며 밤낮으로 외출하지 않고 몸소 일을 처리하자선보가 역시 잘 다스려졌다.

巫馬期問其故於宓子賤,宓子賤曰:
「我之謂任人,子之謂任力;
任力者固勞,任人者固佚。」
무마기가 복자천에게 그 까닭을 묻자 복자천이 말하였다.
나의 방법을 일러서 남에게 맡김이라 하고그대의 방법을 일러서 自力에 맡김이라 하니,
자력에 맡긴 자는 본래 피곤하고남에게 맡긴 자는 본래 편안하지요.”

人曰宓子賤則君子矣,佚四肢,全耳目,平心氣而百官治,任其數而已矣。
사람들이 말하기를, ‘복자천은 군자이매온몸을 편안히 하고이목을 온전히 하고심기를 평안히 하고도 百官이 잘 다스려졌으니다스리는 규칙에 맡겼을 뿐이다.

巫馬期則不然,弊性事情,勞煩教詔,雖治猶未至也。
무마기는 그렇지 않아서 性情을 피곤하게 하고 해치며 명령을 번거롭게 행하여 비록 잘 다스려졌지만그래도 지극한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였다.’라고 하였다.

▶ 宓子賤 : 宓不齊. 춘추시대 말기 魯나라 사람. 성은 宓이고, 이름은 不齊이며, 자는 子賤이다. 孔子의 제자로 30살 연하다. 單父의 수령을 지냈다. 單父의 재상 벼슬을 지냈는데 백성이 그를 몹시 존경하였다. 그가 스승 공자에게 자신의 정치를 이야기하자 공자는 복부제는 더 큰 지방도 다스릴 수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論語 公冶長 3> [史記列傳] 권67 仲尼弟子列傳
※ 鳴琴而治 : 거문고를 타면서 한가롭게 있어도, 어진 도로써 백성을 다스리면 힘들이지 않고 잘 다스려진다는 말.
▶ 單父 : 춘추시대 魯나라 읍. 지금의 산동성 單縣.
▶ 巫馬期 : 巫馬施.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字는 子期이다. 巫馬는 複姓이고, 이름은 施이며 공자의 제자로 單父를 다스리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史記 권67 仲尼弟子列傳>
▶ 以星出,以星入 : 披星戴月. 달빛을 머리 위에 이고 별빛을 헤치며 밤길을 재촉하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일하다
▶ 數 : 규칙.
▶ 事 : 剚와 통용한다. 사람을 찌른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해치다’로 번역하였다.


24. 어진 이를 등용함은 모든 복을 얻는 근본이다.

孔子謂宓子賤曰:
「子治單父而眾說,語丘所以為之者。」
공자가 宓子賤에게 말하였다.
자네가 單父를 다스리자 사람들이 기뻐하였다 하니나에게 그렇게 한 방법을 말해주게.”

曰:
「不齊父其父,子其子,恤諸孤而哀喪紀。」
복자천이 대답하였다.
저 不齊는 그들의 아버지를 제 아버지로 섬기고그들의 자식을 제 자식으로 양육하고 홀아비와 과부를 救恤하고 喪事를 당하면 슬퍼하였습니다.”

孔子曰:
「善小節也小民附矣,猶未足也。」
공자가 말하였다.
좋기는 하나 작은 節目이라 일반 백성이 따르나 아직 부족하다.”

曰:
「不齊也,所父事者三人,所兄事者五人,所友者十一人。」
복자천이 말하였다.
제가 아버지로 여겨 섬긴 이가 세 사람이고형으로 여겨 섬긴 이가 다섯 사람이며벗으로 대한 이가 열한 사람입니다.”

孔子曰:
「父事三人,可以教孝矣;
兄事五人,可以教弟矣;
友十一人,可以教學矣。
中節也,中民附矣,猶未足也。」
공자가 말하였다.
아버지처럼 섬긴 이가 세 사람이면 를 가르칠 수 있고,
형처럼 섬긴 이가 다섯 사람이면 우애를 가르칠 수 있으며,
벗으로 대한 이가 열한 사람이면 학문을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중간 정도의 節目이라 중류층의 사람이 따르나 아직 부족하다.”

曰:
「此地民有賢於不齊者五人,不齊事之,皆教不齊所以治之術。」
복자천이 말하였다.
그 땅의 백성에 저보다 어진 이가 5이 있어서 제가 그들을 섬기니모두 저에게 정치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孔子曰:
「欲其大者,乃於此在矣。
공자가 말하였다.
큰일을 성취하려면 방법이 바로 여기에 있다.

昔者堯、舜清微其身,以聽觀天下,務來賢人,夫舉賢者,百福之宗也,而神明之主也.
예전에 이 자기의 몸을 청렴하게 하고 낮추어서 천하의 일을 듣고 관찰하여 현인이 오도록 힘썼으니현자를 등용함은 百福의 근원이고천지신명에 이르는 주체이다.

不齊之所治者小也,不齊所治者大,其與堯、舜繼矣。」
不齊가 다스리는 곳이 작았으나부제가 다스리는 곳이 천하와 같이 컸으면 의 정치를 이었을 터이다.”

▶ 單父 : 춘추시대 魯나라 읍. 지금의 산동성 單縣.
▶ 丘 : 孔子.
▶ 小節 : 작은 조치.
▶ 喪紀 : 喪事. 장례.
▶ 弟 : 형을 존경하고 사랑하다.


25. 남의 의견을 단번에 거절하지 말고, 남의 의견을 단번에 찬성하지 말라.

宓子賤為單父宰,辭於夫子,夫子曰:
「毋迎而距也,毋望而許也;
許之則失守,距之則閉塞。
譬如高山深淵,仰之不可極,度之不可測也。」
宓子賤이 單父의 읍재가 되어 공자께 하직 인사를 하자 공자가 말하였다.
맞으며 단번에 거절하지 말고대충 보고 단번에 허락하지 말아라.
허락하면 원칙을 잃고거절하면 言路가 막힌다.
비유하자면 높은 산과 깊은 연못 같아서 우러러보아도 정상을 볼 수 없고 재어보아도 헤아릴 수 없음과 같다.”

子賤曰:
「善,敢不承命乎!」
복자천이 말하였다.
좋은 말씀입니다감히 가르침을 받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宓子賤為單父宰,過於陽晝曰:
「子亦有以送僕乎?」
宓子賤이 單父의 邑宰가 되어 陽晝를 방문하여 말하였다.
그대 역시 나를 전송하며 해줄 말이 있소?”

陽晝曰:
「吾少也賤,不知治民之術,有釣道二焉,請以送子。」
양주가 말하였다.
내가 젊고 미천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은 알지 못하지만 낚시하는 방법 두 가지를 알고 있으니 이걸로 그대를 전송하려고 하오.”

子賤曰:
「釣道奈何?」
복자천이 물었다.
낚시하는 방법은 어떠하오?”

陽晝曰:
「夫扱綸錯餌,迎而吸之者也,陽橋也,其為魚薄而不美;
若存若亡,若食若不食者,魴也,其為魚也博而厚味。」
양주가 말하였다.
낚시줄에 미끼를 꿰어 물에 드리우면 바로 미끼를 무는 것은 陽橋라는 물고기인데그 물고기는 살이 적고 맛이 좋지 않지요.
있는 듯하고 없는 듯하며 미끼를 문 듯하고 물지 않은 듯하기도 한 것은 魴魚라는 물고기인데그 물고기는 살이 두텁고 맛이 좋습니다.”

宓子賤曰:
「善。」
복자천이 말하였다.
좋은 말이오.”

於是未至單父,冠蓋迎之者交接於道,子賤曰:
「車驅之,車驅之。夫陽晝之所謂陽橋者至矣。」
이리하여 길을 떠나 아직 선보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관복을 입고 수레를 타고 맞이하는 관리들이 길에 이어져 있으니복자천이 말하였다.
수레를 빨리 몰아라수레를 빨리 몰아라양주가 말한 양교라는 물고기가 왔다.”

於是至單父請其耆老尊賢者而與之共治單父。
그렇게 하여 선보에 도착해 덕망이 많은 노인과 존귀하고 어진 이를 초청하여 그들과 함께 선보를 다스렸다.

▶ 毋迎而距也~ : <管子·九守篇>에 “聽之術曰:勿望而距,勿望而許,許之則失守,距之則閉塞,高山仰之,不可極也,深淵度之,不可測也。神明之德,正靜其極也。: 정황을 청취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 자세히 살피지 않고 남의 의견을 단번에 거절하지 말고, 자세히 살피지 않고 남의 의견을 단번에 찬성하지 말라. 찬성하게 되면 원칙을 잃게 되고, 거절하게 되면 언로가 막히게 된다. 높은 산은 우러러 보면 정상을 볼 수가 없고, 깊은 못은 측량하여도 바닥을 헤아릴 수가 없다. 천지신명의 덕과 같이해야 하고, 단정함과 냉정함으로 지극히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 失守 : 문어 지킬 것을 지키지 못하다. 정조를 잃다.
▶ 閉塞 : 닫아 막음. 소통되지 않다.
▶ 度 : 헤아리다. 재다.
▶ 陽晝 : 춘추시대 사람. 宓子賤에게 백성을 다스리는 道를 낚시하는 방법에 비유하여 말해주었다.
▶ 過 : 방문하다.
▶ 僕 : 자기 자신의 겸칭.
▶ 錯 : 措와 통용된다. 두다. 놓다.
▶ 陽橋 : 물고기 이름. ‘陽鱎’로도 쓴다.
▶ 若存若亡 : 若有若無.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다.
▶ 魴 : 魴魚. 물고기 이름.
▶ 耆老 : 덕행이 높아 존경받는 노인.




26. 잃은 것 세 가지와 얻은 것 세 가지.

孔子弟子有孔蔑者,與宓子賤皆仕.
孔子의 형의 아들은 孔蔑인데 宓子賤과 함께 벼슬하고 있었다.

孔子往過孔蔑,問之曰:
「自子之仕者,何得、何亡?」
공자가 공멸을 방문하여 물었다.
네가 벼슬을 한 이후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느냐?”

孔蔑曰:
공멸이 대답하였다.

「自吾仕者未有所得,而有所亡者三,曰
:王事若襲,學焉得習,以是學不得明也,所亡者一也。
제가 벼슬한 이래로 얻은 것은 없고 잃은 것이 세 가지입니다.
공무가 계속 이어지니 배운 것을 어떻게 익히겠습니까이 때문에 배운 것을 밝게 터득하지 못하였으니잃은 것 하나입니다.

奉祿少鬻,鬻不足及親戚,親戚益疏矣,所亡者二也。
봉록이 너무 적어서 멀건 죽도 친척에게 공급하기 부족하여 친척들이 더욱 멀어졌으니잃은 것 둘입니다.

公事多急,不得弔死視病,是以朋友益疏矣,所亡者三也。」
공무에 급한 일이 많아서 죽은 이를 조문하거나 병든 이를 문병하지 못하여 이 때문에 벗들이 더욱 멀어졌으니잃은 것 셋입니다.”

孔子不說,而復往見子賤曰:
「自子之仕,何得、何亡也?」
공자가 달갑지 않아 다시 복자천에게 가서 만나 물었다.
자네가 벼슬을 한 이후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느냐?”

子賤曰:
「自吾之仕,未有所亡而所得者三:
복자천이 대답하였다.
제가 벼슬한 이래 잃은 것은 없고 얻은 것이 세 가지입니다.

始誦之文,今履而行之,是學日益明也,所得者一也。
전에 읽었던 글을 지금 이행하매 배움이 날로 밝아졌으니얻은 것 하나입니다.

奉祿雖少鬻,鬻得及親戚,是以親戚益親也,所得者二也。
녹봉이 비록 적지만 멀건 죽이라도 친척들에게 공급하매 친척들이 더욱 친해졌으니얻은 것 둘입니다.


公事雖急,夜勤,弔死視病,是以朋友益親也,所得者三也。」
공무에 급한 일이 많으나 밤에도 부지런히 죽은 이를 조문하고 병든 이를 문병하매 벗들이 더욱 친해졌으니얻은 것 셋입니다.”

孔子謂子賤曰:
「君子哉若人!君子哉若人!
魯無君子也,斯焉取斯?」
공자가 복자천을 평하였다.
군자답다이 사람은군자답다이 사람은!
노나라에 군자가 없었다면 이 사람은 어디서 이런 덕을 배웠겠는가?”

▶ 孔子弟子 : 저본에는 ‘弟’로 되어 있으나, 《孔子家語》 〈子路初見〉에 ‘弟’자가 ‘兄’자로 되어 있고, 孔蔑은 《史記》 〈仲尼弟子列傳〉에 ‘孔忠’으로 되어 있는데, 《孔子家語》 〈七十二弟子解〉에 “忠의 字는 子蔑이니 孔子 형의 아들이다.”로 되어 있어서 ‘兄’으로 해석한다.
▶ 孔蔑 : 孔忠. 공자의 형 孟皮의 아들. 즉, 공자의 조카로 공자의 제자였다. <孔子家譜>
▶ 宓子賤 : 宓不齊. 춘추시대 말기 魯나라 사람. 성은 宓이고, 이름은 不齊이며, 자는 子賤이다. 孔子의 제자로 30살 연하다. 單父의 수령을 지냈다. 單父의 재상 벼슬을 지냈는데 백성이 그를 몹시 존경하였다. 그가 스승 공자에게 자신의 정치를 이야기하자 공자는 복부제는 더 큰 지방도 다스릴 수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論語 公冶長 3>
▶ 王事若襲 : 政事가 계속 이어지다. 襲은 엄습하다.
▶ 君子哉若人 : <論語·公冶長>에 “子謂子賤,「君子哉若人!魯無君子者,斯焉取斯?」 : 孔子께서 子賤을 두고 평하셨다. ‘君子답다, 이 사람이여! 魯나라에 君子가 없었다면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러한 德을 취했겠는가?’”라고 하였다.


27.晏子가 東阿를 다스린 죄

晏子治東阿三年,景公召而數之曰:
「吾以子為可,而使子治東阿,今子治而亂,子退而自察也,寡人將加大誅於子。」
晏子가 東阿를 다스린 지 3齊景公이 불러서 꾸짖었다.
나는 그대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대에게 동아를 다스리게 하였으나그대가 다스리자 어지러워졌으니 그대는 물러나 자신을 살펴보시오과인이 그대에게 큰 벌을 내리겠소.”

晏子對曰:
「臣請改道易行而治東阿,三年不治,臣請死之。」
안자가 대답하였다.
신이 방법과 행동을 바꾸고 동아를 다스리겠으니, 3년이 되어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신이 죽겠습니다.”

景公許之。
경공이 허락하였다.

於是明年上計,景公迎而賀之曰:
「甚善矣!子之治東阿也。」
이렇게 하여 이듬해에 보고서를 올리자경공이 안자를 맞이하면서 축하하였다.
아주 좋군요그대가 동아를 다스림이.”

晏子對曰:
안자가 대답하였다.

「前臣之治東阿也,屬託不行,貨賂不至,陂池之魚,以利貧民。
전번에 신이 동아를 다스릴 때는 청탁이 행해지지 않고 뇌물이 오지 않았으며못의 물고기는 빈민에게 이익이 되었습니다.

當此之時,民無飢,君反以罪臣。
이때는 백성에 굶주리는 자가 없었는데 군주께서는 도리어 신을 책망하셨습니다.

今臣後之東阿也,屬託行,貨賂至,並會賦斂,倉庫少內,便事左右,陂池之魚,入於權家。
그런데 신이 뒤에 동아에 감에는 청탁이 횡행하고 뇌물이 도착하며게다가 세금을 과중하게 징수하나 국고에는 적게 납부되고군주의 측근이 편의로 일을 처리하며못의 물고기는 權勢家에 이익이 되었습니다.

當此之時,饑者過半矣,君乃反迎而賀,臣愚不能復治東阿,願乞骸骨,避賢者之路」
이때는 굶주리는 사람이 반을 넘었는데 군주께서는 도리어 신을 맞이하면서 축하하시니신은 어리석어 다시는 동아를 다스리지 못하매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가서 賢者의 進路를 비켜주고 싶습니다.”

再拜便辟。
재배하고 즉시 떠났다.

景公乃下席而謝之曰:
「子強復治東阿.
東阿者,子之東阿也,寡人無復與焉。」
경공이 이에 자리에서 내려와 사과하였다.
그대는 다시 힘써 동아를 다스리시오.
동아는 그대의 동아이니과인이 다시는 거기에 간여하지 않겠소.”

▶ 東阿 : 춘추시대 齊나라 땅 이름. 지금의 山東省 경내.
▶ 數 : 나무라다. 책망하다.
▶ 上計 : 지방행정장관이 정기적으로 조정에 보고하는 통계 문서.
▶ 屬託 : 청탁하다. 屬은 囑과 통용된다.
▶ 貨賂 : 뇌물.
▶ 陂池 : 물이 괸 땅. 못.
▶ 罪 : 책망하다.
▶ 會賦斂 : 저본에는 ‘會’로 되어 있으나, 《說苑校證》에 “‘會’자는 ‘曾’자의 誤字인 듯하다. ‘曾’은 《說文》에 ‘더하다[益]’라 하였고, 《晏子春秋》에 ‘重’으로 썼으니 ‘曾’과 뜻이 같다.”
▶ 内 : “納”과 통용된다. 바치다.
▶ 便事左右 : 측근이 편리한 대로 하다. 左右는 측근.
▶ 乞骸骨 : : 관리가 연로함을 이유로 퇴직을 요청하는 것으로 자신의 해골이 고향에 돌아가 장사 지낼 수 있게 해달라는 말이다. '乞骸','賜骸骨'이라고도 한다.
▶ 便辟 : 바로 자리를 떠나다. 便은 곧. 辟는 避와 통용된다. 피하다.
▶ 謝 : 사과하다.



28.자로가 포읍을 다스리다<子路治蒲>

子路治蒲,見於孔子曰:
「由願受教。」
자로가 나라 蒲邑을 다스리게 됨에 공자를 알현하고 말하였다.
저 仲由는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孔子曰:
「蒲多壯士,又難治也。
然吾語汝,恭以敬,可以攝勇;
寬以正,可以容眾;
恭以潔,可以親上。」
공자가 말하였다.
포읍에는 壯士가 많고또 다스리기가 어렵다.
그러나 내가 너에게 말하니공손하고 경애하면 용맹한 자를 두렵게 할 수 있고,
너그럽고 올바르면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고,
공손하고 결백하면 윗사람과 친근할 수 있다.”

▶ 子路 : 仲由. 춘추시대 노나라의 학자이자 관료로 자는 子路 또는 季路이며 卞 사람이다. 자로는 공자의 핵심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공자의 천하유세 동안 고난을 끝까지 함께 하였다. 자로는 공자가 살아 있을 때 염구와 함께 노나라의 유력한 정치가였다. 공자와 14년의 천하주유과 망명생활을 함께 했으며,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갈 때 위나라에 남아서 공씨의 가신이 되었으나, 왕실 계승 분쟁에 휘말려 괴외의 난 때 전사하였다.
▶ 蒲 : 춘추시대 衛나라 읍이었으나, 전국시대에는 魏나라에 속하였다. 지금의 河南省 長垣縣 지역에 있었다
▶ 攝 : ‘懾’과 통용한다. ‘두렵게 하다’는 뜻이다.


29. 청렴함과 공평함을 지켜라.
-이 내용은 孔子家語 辯政에 기록되어 있다.

子貢為信陽令,辭孔子而行,孔子曰:
「力之順之,因子之時,無奪無伐,無暴無盜。」
子貢이 信陽 縣令이 되어 공자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떠남에 공자가 말하였다.
힘써서 정치의 도를 따르고천자의 역법을 따르고강제로 빼앗지 말고 무력으로 공격하지 말고사납게 굴지 말며 도둑질하지 말아야 한다.”

子貢曰:
「賜少日事君子,君子固有盜者邪!」
그러자 자공이 말하였다.
저 는 어릴 때부터 선생님을 섬겼는데 선생님도 본래 도둑질한 일이 있습니까!”

孔子曰:
공자가 말하였다.

「夫以不肖伐賢,是謂奪也;
어리석은 사람으로서 賢者를 침을 이라 하고,

以賢伐不肖,是謂伐也;
현자로서 어리석은 사람을 침을 이라 하고,


緩其令,急其誅,是謂暴也;
명령은 느슨하게 해놓고 주살하기를 서두름을 이라 하고,

取人善以自為己,是謂盜也。
남의 공적을 가져다가 자기 것으로 삼음을 라고 이른다.

君子之盜,豈必當財幣乎?
군자의 도둑질이 어찌 꼭 재물에만 해당하겠느냐?

吾聞之曰:知為吏者奉法利民,不知為吏者,枉法以侵民,此皆怨之所由生也。
내가 듣기에 관리의 도리를 아는 자는 백성에게 법을 봉행하여 백성을 이롭게 하되관리의 도리를 모르는 자는 법을 왜곡하여 백성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하니이것이 백성의 모든 원망이 말미암아 생기는 이유이다.

臨官莫如平,臨財莫如廉,廉平之守,不可攻也。
관리가 됨에 공평만 함이 없고재물을 대함에 청렴만 함이 없으매청렴하고 공평을 지키면 그를 공격하지 못한다.

匿人之善者,是謂蔽賢也;
남의 선행을 숨김을 蔽賢이라 이르고,

揚人之惡者,是謂小人也;
남의 악행을 들춰냄을 小人이라 이르고,

不內相教而外相謗者,是謂不足親也。
내부에서는 가르치지 않고 외부에서 비방함을 不足親이라 이른다.

言人之善者,有所得而無所傷也;
남이 선행을 말하는 사람에게 얻음은 있고 잃음은 없으며,

言人之惡者,無所得而有所傷也。
남의 악행을 말하는 사람에게 얻음은 없고 잃음만 있다.

故君子慎言語矣,毋先己而後人,擇言出之,令口如耳。」
그래서 군자는 말을 신중히 하나니자기를 앞세우고 남을 뒤에 두지 말며잘 골라 말하여입이 귀인 듯이 하라.”

▶ 子貢 : 孔子의 제자. 衛나라 출신. 姓은 端木, 이름은 賜. 子貢은 字.
▶ 信陽 : 춘추시대 楚나라의 읍으로 지금의 河南省 信陽縣 남쪽.
▶ 力之順之 : <공자가어>에는 ‘勤之慎之’로 기록하고 있다. 之는 정치의 道.
▶ 因子之時 : (子)[天] : 저본에는 ‘子’로 되어 있으나, 《群書拾補》에 ‘子’를 ‘天’으로 고치면서 “《孔子家語》 〈辨政〉에 ‘奉天子之時’라 하였는데 ‘子’는 衍文이다.” 하였고, 《先聖大訓》 권5와 《太平御覽》 권499에 “因天之時”라 하였으므로 ‘天’으로 해석하였다.
▶ 賜少日事君子 : 저본에는 ‘日’로 되어 있으나, 《群書拾補》에 “宋本에 ‘而’로 되어 있다.” 하였고, 《說苑校證》에는 “明鈔本‧楚府本에 모두 ‘而’로 써서 《孔子家語》와 합치한다.” 하였으므로 ‘而’로 해석하였다.
※ 臨官莫如平,臨財莫如廉 : 治官莫若平,臨財莫如廉。관리를 다스리는 데에는 매사를 공평함 만한 것이 없고, 재물에 임해서는 청렴함 만한 것이 없다. [明心寶鑑 13.立敎篇]08.청렴함과 공평함을 지켜라.


30. 큰 것을 다스릴 사람은 작은 것을 다스리지 않는다.

楊朱見梁王,言治天下如運諸掌然,梁王曰:
「先生有一妻一妾不能治,三畝之園不能芸,言治天下如運諸手掌何以?」

楊朱가 梁王을 뵙고 말하기를천하를 다스림은 손바닥에서 움직임과 같다고 하니양왕이 말하였다.
선생은 부인 하나와 첩 하나도 다스리지 못하고 세 이랑의 작은 채소밭도 제대로 김을 매지 못하면서천하를 다스리기가 손바닥에서 움직임과 같다고 말하니무엇때문이오?”

楊朱曰:
양주가 대답하였다.

「臣有之,君不見夫羊乎?
신에게 그런 일이 있습니다군주께서는 牧羊을 보시지 않았습니까?

百羊而群,使五尺童子荷杖而隨之,欲東而東,欲西而西;
백 마리의 양이 떼를 짓고 五尺童子가 막대기를 둘러메고 따르게 하여동쪽으로 보내고자 하면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보내고자 하면 서쪽으로 갑니다.

君且使堯牽一羊,舜荷杖而隨之,則亂之始也。
군주께서는 또 임금에게 한 마리의 양을 끌게 하면서 임금에게 막대기를 들고 그 뒤를 따르게 하면혼란이 시작될 터입니다.
臣聞之,夫吞舟之魚不遊淵,鴻鵠高飛不就汙池,何則?
신이 듣건대 배를 삼킬 만큼 큰 물고기는 연못에서 놀지 않고큰 기러기는 높이 날며 더러운 못에는 내리지 않는다.’라고 합니다왜 그럴까요?

其志極遠也。
그 뜻이 지극히 원대하기 때문입니다.

黃鐘大呂,不可從繁奏之舞,何則?
黃鍾과 大呂의 音律은 번잡하게 움직이는 춤에는 맞출 수가 없습니다왜 그럴까요?

其音疏也。
그 음이 더디기 때문입니다.

將治大者不治小,成大功者不小苛,此之謂也。」
큰 것을 다스릴 사람은 작은 것을 다스리지 않고큰 을 세울 사람은 작은 일로 번거롭게 하지 않으니이런 것을 이름입니다.”

▶ 楊朱 : 전국시대 魏나라 사람으로 전국시대 초기의 사상가이다. 字는 子居. 개인주의다운 사상인 爲我說을 설하였다. 양주의 학설은 <맹자>, <열자>, <韓非子>, <여씨춘추>, <회남자> 등에 기록되어 있다.
▶ 梁王 : 양 梁 惠王. 전국시대 魏나라의 군주. 魏惠王, 기원전 400년 ~ 기원전 334년은 위나라의 제3대 군주이다. 惠成王으로 불리기도 한다. 맹자에서는 양 梁 惠王으로 기록되었고, 장자에는 文惠君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은 姬. 씨는 魏. 휘는 罃이다.
▶ 諸 : ~에. ~에서. 어조사 ‘저’.
▶ 三畝 : 세 이랑. 畝(무,묘는 이랑.
▶ 芸 : 김을 매다.
▶ 見夫羊乎 : 저본에는 ‘牧’이 없으나, 《說苑纂注》에는 “《列子》에 ‘君見其牧羊者乎’로 되어 있다.” 하였고, 《說苑校證》에는 “‘牧’자가 탈락되었다.”라고 하였으므로 보충하여 해석하였다.
▶ 君且使 : 且는 접속사로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행하는 것을 나타낸다. “…하면서 …하다” <한문의 허사 참조>

 

 

한문의 허사(虛詞) 且

한문의 허사(虛詞) 且 且猶 ~조차 且又 또한 且는 부사, 접속사, 어기사, 대명사 등으로 쓰인다. 부사로서의 且는 당송시대에 “단지” “의연히” “겨우” 등의 새로운 뜻이 생겨났다. 접속사

koahn.tistory.com


▶ 鴻鵠 : 큰 기러기와 고니.
▶ 黃鐘大呂 : 十二律은 한 옥타브의 음역을 12개의 음정으로 구분하여 각 음 사이를 반음 정도의 음정차로 율을 정한 것으로, 중국 周나라 때부터 사용되었다.
▶ 煩奏之舞 : 음률이 빠른 반주에 맞춰 추는 춤.
▶ 䟽 : 드물다. 느리다.
▶ 苛 : 복잡하다. 번거롭다. 성가시다. 까다롭다.

 


31.관리의 도리

景差相鄭,鄭人有冬涉水者,出而脛寒,後景差過之,下陪乘而載之,覆以上衽,晉叔向聞之曰:
景差가 나라 재상일 때정나라 백성 중에 겨울에 물을 건넌 사람이 물에서 나오니 종아리가 시렸는데뒤이어 경차가 그곳을 지나다가 수행원을 내리게 하고 그를 태우고 겉옷을 벗어 덮어주니나라 叔向이 소문을 듣고 말하였다.

「景子為人國相,豈不固哉!
景子는 위인이 國相으로서 어찌 固陋하지 않은가!

吾聞良吏居之三月而溝渠修,十月而津梁成,六畜且不濡足,而況人乎?」
내가 듣기에 훌륭한 관리는 다스린 지 3월이면 도랑을 수리하고, 10월이면 나루와 다리를 조성하여 가축들조차 발을 적시지 않게 한다는데하물며 사람임에랴?”

▶ 景差 : 춘추전국시대 楚나라 사람으로 씨는 景 이름은 差이다. 굴원의 뒤를 이어 宋玉, 唐勒과 함께 賦를 지어 칭송을 받았다. <史記 권84 屈原賈生列傳>
▶ 陪乘 : 윗사람을 모시고 함께 타다. 경호원. 參乘이라고도 한다.
▶ 覆 : 덮다. 덮을 ‘부’.
▶ 晉叔向 : 叔向. 羊舌肹. 羊舌虎의 형. 춘추시대 晉나라의 賢者. 성은 羊舌이고, 이름은 肹 또는 숙힐이며, 字가 숙향이다. 平公의 사부로서 박학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辭令에 밝았다.
▶ 不固 : 鄙陋함. 식견이 좁다.
▶ 六畜 : 말, 소, 양, 닭, 개, 돼지.


32. 놀면서 향락을 탐하는 사람의 봉록은 빼앗아야 한다.

魏文侯問李克曰:
「為國如何?」
魏文侯가 李克에게 물었다.
나라를 다스림은 어떠해야 하오?”

對曰:
「臣聞為國之道,食有勞而祿有功,使有能而賞必行,罰必當。」
대답하였다.
제가 듣기에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은 수고한 사람에게 밥을 먹여주고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봉록을 주며能者를 부리되 반드시 行賞하며벌을 줌에 반드시 합당해야 한다고 합니다.”

文侯曰:
「吾賞罰皆當而民不與,何也?」
문후가 말하였다.
나의 상벌이 모두 합당한데 백성이 따르지 않음은 무엇 때문이오?”

對曰:
대답하였다.

「國其有淫民乎?
나라에 놀면서 향락을 탐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일 터입니다!

臣聞之曰:奪淫民之祿以來四方之士
신이 듣기에 놀면서 향락을 탐하는 사람의 봉록을 빼앗아 사방의 인재를 오게 하다.’라고 합니다.

其父有功而祿,其子無功而食之,出則乘車馬衣美裘以為榮華,入則修竽琴、鍾石之聲而安其子女之樂,以亂鄉曲之教,如此者奪其祿以來四方之士.
아버지에게 공로가 있어서 봉록을 받으면그의 아들은 공로도 없이 봉록을 먹으며외출함에 거마를 타고 좋은 갖옷을 입어 부귀영화로 여기며집에 들어와서는 각종 악기의 음악을 갖추어 자녀의 즐거움에 安住하여鄕里의 敎化를 어지럽히니이와 같은 자에게서 그 봉록을 빼앗아 그것으로 사방의 인재를 오게 해야 합니다.

此之謂奪淫民也。」
이것을 놀면서 향락을 탐하는 사람의 봉록을 빼앗음이라 이릅니다.”

▶ 李克 : 전국시대 초기 魏나라 사람. 子夏의 제자다. 魏文侯가 中山을 멸하고 태자 擊을 中山君에 임명했을 때 翟璜이 천거해 中山相이 되었다.
▶ 使 : 任用하다.
▶ 淫民 : 노력하지 않고 놀면서 향락을 탐하는 사람
▶ 鄉曲之教 : 鄕里의 문화. 鄉曲은 鄕里(:시골 마을)


33. 사당 쥐와 사나운 개<社鼠猛狗>

齊桓公問管仲曰 :
「國何患?」
齊桓公이 管仲에게 물었다.
나라를 다스림에 무엇을 걱정해야 하오?”

管仲對曰:
「患夫社鼠。」
관중이 대답하였다.
祠堂의 쥐를 걱정해야 합니다.”

桓公曰:
「何謂也?」
환공이 물었다.
무엇을 이름이오?”

管仲對曰:
관중이 대답하였다.

「夫社束木而塗之,鼠因往託焉,燻之則恐燒其木,灌之則恐敗其塗,此鼠所以不可得殺者,以社故也。
사당이란 나무를 묶고 칠을 한 곳으로쥐가 그로 인하여 가서 의탁하나불을 피우자니 나무가 탈까 걱정되고 물을 부어 쫓자니 칠이 훼손될까 걱정되니이 쥐를 죽이지 못함은 사당이기 때문입니다.

夫國亦有社鼠,人主左右是也
나라에도 사당의 쥐가 있으니군주의 측근이 그것입니다.

內則蔽善惡於君上,外則賣權重於百姓,不誅之則為亂,誅之則為人主所容據腹而有之,此亦國之社鼠也。
안으로는 군주께서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게 가리고밖으로는 백성에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권력을 팔아먹으나이들을 죽이지 않으면 禍亂을 일으키고죽이려고 하면 군주의 依支를 입고 덮어서 길러주니이들 역시 나라의 사당쥐입니다.

人有酤酒者,為器甚潔清,置表甚長而酒酸不售,問之里人其故,里人云:
『公之狗猛,人挈器而入,且酤公酒,狗迎而噬之,此酒所以酸不售之故也。』
술장수가 있어기물을 매우 깨끗이 닦고 술집을 표시하는 깃발을 높게 걸었으나 술이 쉬도록 팔리지 않으매마을 사람에게 그 까닭을 묻자마을 사람이 말하기를, ‘당신 집의 개가 사나워서 사람이 그릇을 들고 가서 당신의 술을 사려고 하면 개가 맞이하여 무니이것이 술이 쉬도록 팔리지 않는 까닭이오.’라고 하였습니다.

夫國亦有猛狗,用事者也.
나라에도 사나운 개가 있으니 권력을 장악한 자입니다.

有道術之士,欲明萬乘之主,而用事者迎而齕之,此亦國之猛狗也。
도덕과 학문을 갖춘 인재가 萬乘의 군주에게 治國의 도리를 밝히고자 하되권력을 장악한 자가 먼저 맞이하여 무니 이 역시 나라의 사나운 개입니다.

左右為社鼠,用事者為猛狗,則道術之士不得用矣,此治國之所患也。」
측근이 사당의 쥐이고 권력을 장악한 자가 사나운 개이면도덕과 학문을 갖춘 인재가 쓰이지 못할 터이니이것이 치국의 근심거리입니다.”

▶ 國何患 : 저본에는 ‘治’가 없으나, 《說苑校證》의 “《韓非子》와 《晏子春秋》에 의거하여 ‘治’자를 보충해야 된다.”라는 說에 의거하여 보충하여 해석하였다.
▶ 社鼠 : 토지신의 사당에 사는 쥐. 社는 토지신.
▶ 為人主所容據 : 저본에는 ‘容’으로 되어 있으나, 劉台拱의 《經傳小記》에 “《晏子春秋》에 ‘案’으로 썼으니 이를 따라야 한다.”라고 하였고, 《說苑校證》에는 “《群書治要》에 정작 ‘案’으로 썼으니 고쳐야 한다. ‘案’은 ‘依’의 뜻과 같다.” 하였으므로, ‘案’으로 해석하였다.
▶ 腹而有之 : 그들을 감싸 덮어주다. <韓詩外傳>에는 ‘覆而育之’이니 그에 따라 해석하였다.
▶ 置表甚長 : 술집 깃발을 높이 달다. <한비자>에는 ‘縣幟甚高’로 기록하고 있다.
▶ 挈 : 손에 들다.
▶ 噬 : 깨물다.
▶ 齕 : 깨물다.



34. 측근을 선한사람으로 임용해야 한다.

齊侯問於晏子曰:
「為政何患?」
齊景公이 晏子에게 물었다.
정치함에 무엇을 걱정해야 하오?”

對曰:
「患善惡之不分。」
안자가 대답하였다.
선악을 分別하지 못함을 걱정합니다.”

公曰:
「何以察之?」
제경공이 물었다.
무엇으로 그것을 살펴야 하오?”

對曰:
「審擇左右,左右善,則百僚各得其所宜而善惡分。」
안자가 대답하였다.
측근을 자세히 살펴 가려야 하니측근이 선하면 百僚가 각기 마땅한 직위를 얻어 선악이 구분됩니다.”

孔子聞之曰:
「此言也信矣.
善言進,則不善無由入矣;
不進善言,則善無由入矣。」
공자가 듣고 말하였다.
이 말이 믿을만하구나.
선한 사람을 등용하면 선하지 못한 사람이 조정에 들어올 방법이 없고,
선하지 못한 사람이 등용되면 선한 사람이 조정에 들어올 방법이 없다.”

▶ 善言進 : 《晏子春秋》 〈問上 3〉과 《群書治要》에 ‘言’자가 없어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善’은 善人을 말한다. 아래도 같다.


35-1. 나를 성인으로 여기고 있다.

復槁之君朝齊,桓公問治民焉,復槁之君不對,而循口操衿抑心,桓公曰:
復槀의 군주가 나라에 朝見함에 齊桓公이 그에게 治民의 실정을 물으니복고의 군주가 대답하지 않고 입을 쓰다듬으며 옷깃을 잡고 가슴을 누르매환공이 말하였다.

「與民共甘苦饑寒乎?
夫以我為聖人也,故不用言而諭。」
백성과 즐거움과 괴로움굶주림과 추위를 함께함인가?
저 사람은 나를 聖人으로 여기매 말하지 않고 나를 깨우치는구나.”

因禮之千金。
그래서 千金을 예물로 주었다.

▶ 復槁 : 復槀. 나라 이름. 역사적 사실은 미상.
▶ 朝 : 알현하다. 朝見하다.
▶ 循口 : 손으로 입을 쓰다듬다.


35-2.여우와 표범은 가죽 때문에 죽는다.

晉文公時,翟人有獻封狐、文豹之皮者,文公喟然嘆曰:
「封狐文豹何罪哉?
以其皮為罪也。」
晉文公 때 翟人에 큰 여우·검은 표범 가죽을 바친 자가 있었는데문공이 탄식하면서 말하였다.
큰 여우와 검은 표범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 가죽이 죄가 되었구나.”

大夫欒枝曰:
「地廣而不平,財聚而不散,獨非狐豹之罪乎?」
大夫 欒枝가 말하였다.
땅이 넓어도 공평하지 않고 재물을 모으고도 나누어 주지 않으면어찌 여우와 표범의 죄가 아니겠습니까?”

文公曰:
「善哉!說之。」
문공이 말하였다.
훌륭하구나말함이여.”

欒枝曰:
「地廣而不平,人將平之;
財聚而不散,人將爭之。」
난지가 말하였다.
땅이 넓으나 고루 분배하지 않으면 백성이 고르게 분배하려 할 터이고,
재물을 모으고도 나누어 주지 않으면 백성이 쟁탈하려고 할 터입니다.”

於是列地以分民,散財以賑貧。
이에 땅을 떼어 백성에게 나누어주고 재물을 꺼내어 빈민을 구제하였다.

▶ 晉文公 : 春秋 五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성은 姬이고 이름은 重耳이다. 아버지 獻公에게는 寵妃가 많았는데 驪妃를 특히 사랑하여 여비의 소생인 奚齊를 후계자로 삼고자 태자 申生을 죽이고, 중이와 그의 아우 夷吾를 추방하였다. 중이는 狄으로 도망하여, 국외에서 19년을 지내다가 義兄이 되는 秦의 穆公의 원조로 晉으로 돌아와 62세에 즉위하였다.<史記 권39.晉世家>
▶ 翟人 : 陝西 동북부 지방에서 활동하던 隗氏 姓의 소수민족. ‘狄’으로도 통용된다.
▶ 有獻封狐 : 저본에는 ‘獻’이 없으나, 《說苑校證》의 “《韓非子》와 《金樓子》에 모두 ‘獻’자가 있다.”라는 說에 따라 보충하였다.
▶ 封狐 : 큰 여우. <한비자>에는 豐狐로 기록하고 있다. ‘封’은 ‘크다’는 뜻.
▶ 文豹 : 玄豹. 붉은 반점이 있는 흑표범.
▶ 欒枝 : 晉나라의 대부. 춘추시대 晉나라의 上將軍.
▶ 列 : ‘裂’과 통용된다. 분할하다.
▶ 賑貧 : 가난한 사람을 구휼하다.


36.군주의 땅은 백성의 땅이다.

晉文侯問政於舅犯,舅犯對曰:
晉文侯가 舅犯에게 정치에 관하여 묻자구범이 대답하였다.

「分熟不如分腥,分腥不如分地;
割以分民而益其爵祿.
익은 고기를 나누어줌이 날고기를 나누어줌만 못하고날고기를 나누어줌이 땅을 나누어줌만 못하니땅을 쪼개 백성에게 나누어주고 그들의 작록을 더해주어야 합니다.

是以上得地而民知富,上失地而民知貧,古之所謂致師而戰者,其此之謂也。」
이 때문에 군주가 땅을 얻으면 백성이 부유해질 줄 알고군주가 땅을 잃으면 백성도 가난해질 줄을 알게 되니옛날의 소위 군대를 보내 전쟁함이 이것을 이름입니다.”

▶ 晉文侯 : 晉文公. 춘추전국시대 제후국인 晋 獻公의 둘째 아들로 이름은 重耳이다. 헌공의 후처로 들어온 驪姬의 계략에 빠져 형인 申生이 사망하고 자신은 진나라를 떠나 狄나라로 망명하였다. 19년간 천하를 주유하였으며, 긴 망명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秦나라의 도움으로 군사를 이끌고 귀국하여 왕위에 올랐다.
▶ 舅犯 : 咎犯. 진 문공 중이의 외삼촌 狐偃. 진 문공 重耳의 어머니는 翟나라 狐氏의 딸이다. 문공이 망명하여 여러 나라를 떠돌 때 19년 동안 고락을 함께하였으며, 문공이 즉위하여 霸者가 될 때까지 공로가 많았다.
▶ 腥 : 生肉. 날고기.
▶ 致師 : 도전하다. 싸움을 걸다.


37.日蝕의 재앙

晉侯問於士文伯曰:
「三月朔,日有蝕之,寡人學惛焉.
晉侯가 士文伯에게 물었다.
“3월 초하루에 日蝕이 있었는데 과인은 거기에 배움이 어둡소.

詩所謂:『彼日而蝕,于何不臧』者,何也?」
<詩經>의 소위 저 일식은 어디가 잘못된 것인가?’란 무슨 말이오?”

對曰:
「不善政之謂也;
國無政不用善,則自取謫於日月之災,故不可不慎也。
政有三而已:
一曰因民,二曰擇人,三曰從時。」
사문백이 대답하였다.
善政을 행하지 못함을 이른 것입니다.
나라에 정사에 善意를 쓰지 않아서스스로 日月의 재앙에서 견책을 취함입니다그래서 정치에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치에는 세 가지가 있을 뿐이니,
첫째는 백성의 뜻을 따르고둘째는 인재를 가려서 쓰고셋째는 때를 따름입니다.”

▶ 三月朔 : 삼월 초하루. 朔은 초하루.
▶ 晉侯 : 晋 平公. 이름은 彪이고, 悼公의 아들이다. 세금을 지나치게 많이 걷고 백성의 형편을 돌보지 않았으며, 淫樂을 즐겼다. 정치가 趙·韓·魏 三家로 넘어갔다.
▶ 士文伯 : 晋나라의 大夫 士訇.
▶ 彼日而蝕,于何不臧 : <詩經·小雅·十月之交〉에서 인용한 글이다.
“彼月而食、則維其常。此日而食、于何不臧。: 저 달이 줄어든 것은 늘 있는 일이라 하지만, 이 해가 줄어든 것은 어디가 잘못된 것인가?” ‘蝕’은 ‘食’과 통용된다. 臧은 ‘善’의 뜻.
▶ 謫 : 꾸짖다. 견책하다.


38-1. 延陵季子가 晉나라를 평가하다.

延陵季子游於晉,入其境曰:
「嘻,暴哉國乎!」
延陵季子가 나라에 갔을 때 그 국경에 들어서 말하였다.
포악하구나이 나라여!”

入其都曰:
「嘻,力屈哉,國乎!」
도성에 들어서 말하였다.
국력이 쇠했구나이 나라여.”

立其朝曰:
「嘻,亂哉國乎!」
조정에 서서 말하였다.
이 어지럽구나이 나라여!”

從者曰:
「夫子之入境未久也,何其名之不疑也?」
시종이 물었다.
선생님께서 진나라 경내에 든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그 나라를 평판함에 의심하지 않음이 어찌 이러합니까?”

延陵季子曰:
연릉계자가 말하였다.

「然,吾入其境田畝荒穢而不休,雜增崇高,吾是以知其國之暴也。
그렇다내가 이 나라의 국경에 들어옴에 농토가 황폐하여도 김을 매지 않아 잡초가 번성하여 크게 자랐으매내가 이 때문에 이 나라의 포악함을 알았다.

吾入其都,新室惡而故室美,新牆卑而故牆高,吾是以知其民力之屈也。
내가 도성에 드니 새집은 열악한데 옛집은 아름답고새 담장은 낮은데 예전의 담장은 높으매내가 이 때문에 나라의 국력이 쇠함을 알았다.

吾立其朝,君能視而不下問,其臣善伐而不上諫,吾是以知其國之亂也。
내가 이 나라의 조정에 서보니 군주는 신하를 보기만 하고 신하들에게 묻지 않으며신하는 자기 자랑을 잘할 뿐 간언을 올리지 않으매나는 이 때문에 이 나라가 어지러움을 알았다.”

▶ 延陵季子 : 季札. 춘추시대 吳王 壽夢의 네 아들 중 막내로 延陵에 봉해져 延陵季子라고 부른다. 왕의 자리를 넘겨주려 했으나, 계찰은 이를 받지 않고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계찰은 일찍이 중원의 각국을 돌아다니며 禮樂을 학습하였다.
▶ 休 : 《群書拾補》의 “‘休’는 ‘茠’로 써야 되니, ‘茠’는 ‘薅’와 같고 除草함이다.”라는 설에 따라 ‘김매다’로 해석하였다.
▶ 伐 : 자랑하다.

 


38-2. 太公의 현명함이 伯禽보다 못하다.-霸者의 정치와 王道의 정치-

齊之所以不如魯者,太公之賢不如伯禽,伯禽與太公俱受封,而各之國三年,太公來朝,周公問曰:
「何治之疾也?」
나라가 나라보다 못함은 太公의 현명함이 伯禽보다 못했기 때문이니백금과 태공이 함께 封地를 받아 각자 자기 나라에 간 지 3태공이 와서 朝見하자 周公이 물었다.
치세를 이룸이 어찌 이렇게 신속하였소?”

對曰:
「尊賢,先疏後親,先義後仁也。」
태공이 대답하였다.
현자를 존중하고소원한 사람을 우선하고 친한 사람을 뒤로 두고를 먼저 행하고 을 뒤에 행하였습니다.”

此霸者之跡也。
이것은 霸者의 治績이었다.

周公曰:
「太公之澤及五世。」
주공이 말하였다.
태공의 은택은 5세에 이어질 터이다.”

五年伯禽來朝,周公問曰:
「何治之難?」
5년이 되어 와서 조현하니주공이 물었다.
치세를 이룸이 어찌 그렇게 어려웠느냐?”

對曰:
「親親者,先內後外,先仁後義也。」
백금이 대답하였다.
친족을 친애하며안을 먼저 다스리고 밖을 뒤에 다스리며을 먼저 행하고 를 뒤에 행하였습니다.”

此王者之跡也。
이것은 王者의 治績이었다.

周公曰:
「魯之澤及十世。」
주공이 말하였다.
노나라의 은택은 10대까지 이어지겠구나.”

故魯有王跡者,仁厚也;
齊有霸跡者,武政也
그래서 노나라에는 인후한 왕도정치의 자취가 있고,
제나라에는 武事를 힘쓰는 패도정치의 자취가 있게 되었다.

齊之所以不如魯也,太公之賢不如伯禽也。
제나라가 노나라보다 못함은 태공의 현명함이 백금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 伯禽 : 周公 姬旦의 맏아들이며 伯禽은 字이다. 노나라는 周武王이 商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한 뒤 周公을 曲阜에 分封하면서 시작되었다. 주공은 봉지에 부임하지 않고 국도에서 무왕과 무왕의 아들 성왕을 보좌하면서 장남인 伯禽을 봉지로 보내 통치하게 하였다.
▶ 周公 : 周公旦. 周 나라 文王의 넷째 아들로 武王의 아우. 이름은 旦, 시호는 元.
▶ 疾 : 빠르다.
▶ 霸者 : 霸道로 다스리는 자. 무력으로 천하를 다스림
▶ 王者 : 王道로 다스리는 자. 덕으로 다스리는 德治


39. 여인들의 남장 풍습을 금하였지만 그치지 않다.

景公好婦人而丈夫飾者,國人盡服之,公使吏禁之曰:
「女子而男子飾者,裂其衣,斷其帶。」
齊景公이 부인들이 남자 복식을 함을 좋아하여도성의 여인들이 모두 남자 복장을 하게 되자경공이 관리를 시켜 금지하게 하면서 말하였다.
여자이면서 남자 복장을 한 자는 그 옷을 찢고 허리띠를 잘라라.”

裂衣斷帶相望而不止,晏子見,公曰:
「寡人使吏禁女子而男子飾者,裂其衣,斷其帶,相望而不止者,何也?」
옷이 찢기고 허리띠가 잘린 여자들이 거리에 이어졌는데도 남자의 복식은 중지되지 않으매晏子가 알현하자 경공이 물었다.
과인이 관리를 시켜 여자이면서 남자 복식을 함을 금지하여 그 옷을 찢고 허리띠를 잘라버리라고 하였더니거리에 이어지면서고 중지되지 않음은 무엇 때문이오?”

對曰:
「君使服之於內而禁之於外,猶懸牛首於門而求買馬肉也
公胡不使內勿服,則外莫敢為也。」
안자가 대답하였다.
군주께서 궁궐 내에서 입게 하시고 궁궐 밖에서는 금지하시니이는 가게 문에 소머리를 걸어놓고 말고기를 팔려 함과 같습니다.
군주께서는 어찌 궁궐 내의 여자들부터 입지 말도록 하지 않습니까그렇게 하시면 궁 밖에서도 감히 하지 못할 터입니다.”

公曰:
「善!」
경공이 말하였다.
좋은 말씀이오!”

使內勿服,不旋月而國莫之服也。
궁궐 안에서 남자 복장을 하지 못하게 하자한 달이 안 되어 도성에 남자 옷을 입는 여자가 없었다.

▶ 景公 : 齊景公.
※ 안자춘추에는 靈公으로 기록하고 있다. 齊靈公은 춘추시대 제나라의 國君으로 이름은 環이며 頃公의 아들이다.
▶ 婦人而丈夫飾者 : 여자가 男裝을 하다. 飾은 옷차림.
▶ 國人 : 都城의 여인들.
▶ 相望 : 서로 마주보다. 서로 이어지다.
※ 懸牛首賣馬肉 : 가게 앞에 소대가리를 걸어 쇠고기를 파는 것처럼 차려 놓고서 말고기를 팔다.
▶ 買 : <안자춘추>에는 ‘賣’로 기록하고 있다.
▶ 旋 : 오래지 않아. <안자춘추>에는 ‘踰 :넘다’로 기록하고 있다.


40. 晏子가 轂擊놀이를 금지시키다.

齊人甚好轂擊相犯以為樂,禁之不止.
나라 사람들이 수레 바퀴통을 부딪치며 서로 침범함을 좋아하여금하여도 그치지 않았다.

晏子患之,乃為新車良馬出與人相犯也,曰:
「轂擊者不祥,臣其察祀不順,居處不敬乎?」
晏子가 이를 걱정하여 새 수레에 좋은 말을 준비하여 나가서 남의 수레와 서로 부딪치게 하고는 말하였다.
수레 바퀴통이 부딪침은 상서롭지 못하니내가 제사를 잘 지내지 못하고 평소의 생활을 공경히 하지 않은 때문인가?”

下車棄而去之,然後國人乃不為。
그리고는 수레에서 내려 수레를 버리고 가버리니이후로는 사람들이 마침내 수레바퀴 통을 부딪치지 않았다.

故曰:
「禁之以制,而身不先行也,民不肯止,故化其心莫若教也。」
그래서 일렀다.
제도로 금하되 자신이 솔선하지 않으면 백성이 중지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백성의 마음을 감화함에는 몸소 교화함 만한 것이 없다.”

▶ 轂擊 : 수레의 바퀴통과 바퀴통이 서로 맞닿다.
▶ 相犯 : 서로 부딪치다.


41. 작은 것을 살펴 아는 것이 참된 지혜이다.<見小曰明>

魯國之法,魯人有贖臣妾於諸侯者,取金於府
나라의 법에 노나라 사람이 제후 나라에 노예가 된 사람의 몸값을 내면 官府에서 금전을 받게 되어 있었다.

子貢贖人於諸侯而還其金,孔子聞之曰:
子貢이 제후 나라에 속죄금을 내고 그 보상금을 관부에 반납하자공자가 듣고 말하였다.

「賜失之矣.
聖人之舉事也,可以移風易俗,而教導可施於百姓,非獨適其身之行也。
가 실수하였다.
聖人은 어떤 일을 처리함은 풍속을 바꿀 수 있고 백성에게 敎導를 베풀 수 있음이었지단지 개인적인 행위에 맞추지 않았다.

今魯國富者寡而貧者眾,贖而受金則為不廉;
不受則後莫復贖.
지금 노나라에 富者는 적고 貧者가 많으니 속죄금을 내고 보상금을 받으면 청렴하지 않다고 여기고,
받지 않으면 이후로는 다시는 몸값을 내는 사람이 없을 터이다.

自今以來,魯人不復贖矣。」
지금 이후로 노나라 사람이 더이상 贖還하지 않을 터이다.”

孔子可謂通於化矣。
공자는 변화에 통달하였다고 이를 만하다.

故老子曰:
「見小曰明。」
그러므로 老子가 말하였다.
미세한 것을 살펴봄을 이라 한다.”

▶ 贖 : 贖錢. 죄를 벗기 위하여 바치는 몸값 또는 그 행위.
▶ 臣妾 : 노예. 남자 노예를 臣, 여자 노예를 妾이라 한다.
▶ 府 : 國庫
▶ 可以 : ~할 가치가 있다.
▶ 通於化 : <여씨춘추>에는 ‘孔子見之以細,觀化遠也。: 공자는 사물의 미세한 것을 보고도 그 변화가 심원함을 관찰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 見小曰明 : 사소한 것을 보고도 미묘한 변화를 감지해 낼 수 있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이르는 말. <老子> 52장에 “미세한 것을 살펴보는 것을 明이라 하고, 부드러움으로 지켜 나가는 것을 强이라 한다.(見小曰明, 守柔曰强)”라고 하였다.


42-1. 정치는 민심에 순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孔子見季康子,康子未說.
공자가 季康子를 알현하자 계강자가 기뻐하지 않았다.

孔子又見之,宰予曰:
「吾聞之夫子曰:
『王公不聘不動。』
今吾子之見司寇也少數矣。」
공자가 또 만나려고 하자 宰予가 여쭈었다.
제가 선생님께 듣기를
王公이 초빙하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司寇를 만나시려 함이 조금 빈번한 듯합니다.”

孔子曰:
「魯國以眾相陵,以兵相暴之日久矣,而有司不治,聘我者孰大乎?」
공자가 말하였다.
노나라는 대중의 힘을 믿고 서로 능멸하며무력을 믿고 서로 폭력을 쓴 지가 오래되었는데도 관리가 치죄하지 않으니나를 초빙하는 일보다 무엇이 더 크겠느냐?”

於是魯人聞之曰:
「聖人將治,何以不先自為刑罰乎?」
이에 노나라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聖人께서 다스리려고 하시니 어찌 솔선하여 형벌을 멀리하지 않겠는가?”

自是之後,國無爭者。
이 이후로 나라에 다툼이 없어졌다.

孔子謂弟子曰:
「違山十里,蟪蛄之聲猶尚存耳,政事無如膺之矣。」
공자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산에서 10리를 벗어나도 매미 우는 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도는 법이니정사는 민심에 순응함만 한 것이 없다.”

▶ 季康子 : 노나라의 正卿이다. 춘추시대 말기 魯나라 사람으로 季孫斯(:계환자)의 아들이고, 季孫肥로도 불린다. 다만 孔子가 당시 司寇를 맡을 당시에는 계강자의 아버지 季桓子였다.<史記 권47.孔子世家>
▶ 未說 : 不悅. 기뻐하지 않다.
▶ 宰予 : 공자의 제자 가운데 학행이 뛰어난 十哲의 한 사람으로 字는 子我 또는 宰我이다. 일찍이 제나라에서 벼슬하여 임치의 대부가 되었으나 그와 뜻을 같이하지 않았던 원항에 의해 살해된다.<史記·仲尼弟子列傳>
▶ 王公 : 王侯와 公卿.
▶ 吾子 : 그대. 고대에 상대방의 존칭
▶ 司寇 : 刑法과 獄訟을 주관하던 벼슬이다. 夏‧殷시대에도 있었고, 周代에는 六卿의 하나로 秋官大司寇라 하였다. 춘추시대 諸侯國에도 대부분 이 벼슬을 두었다. 여기서는 季康子를 가리킨 것이나 이는 잘못인 듯하다. 《孔子家語》 〈子路初見〉에 “지금 부자께서 司寇가 되신 날짜가 얼마 안 되었다.[今夫子之於司寇也日少]”라 하여 孔子를 司寇라 하였다.
▶ 數 : 자주하다. 여러 번 되풀이하다.
▶ 有司 : 관리. 벼슬아치.,
▶ 為刑罰 : 저본에는 ‘爲’로 되어 있으나, 《孔子家語》 〈子路初見〉에 ‘遠’으로 되어 있고, 《說苑校證》에 “‘爲’를 ‘遠’으로 읽을 수 있다.” 함에 의거하여 ‘遠’으로 해석하였다.
▶ 違山 : 산에서 멀어지다.
▶ 蟪蛄 : 매미.


42-2. 노나라의 풍속

古之魯俗,塗里之閭,羅門之羅,收門之魚,獨得於禮.
옛날 나라의 풍속에 塗里의 마을 문을 지킴과 羅門의 사냥감을 나누는 방식과 收門의 잡은 물고기를 나누는 방식만이 예에 맞았다.

是以孔子善之.
이 때문에 공자가 이를 좋다고 여기었다.

夫塗里之閭,富家為貧者出;
도리의 마을 문을 지킴은 부유한 집이 貧者를 위함에서 나왔고,

羅門之羅,有親者取多,無親者取少;
나문의 사냥감을 나눔은 부모가 있는 사람은 많이 갖고 부모가 없는 사람은 적게 가지며,

收門之漁,有親者取巨,無親者取小。
수문의 잡은 물고기를 나눔은 부모가 있는 사람은 큰 것을 갖고 부모가 없는 사람은 작은 것을 가졌다.

 




43. 四民 : 士‧農‧工‧商

春秋曰:
四民均則王道興而百姓寧所謂四民者,士、農、工、商也。
婚姻之道廢,則男女之道悖,而淫泆之路興矣。
<春秋>에 말하였다.
四民이 균등하면 王道가 흥성하고 백성이 편안해진다이른바 四民이란 이다.
혼인의 예법이 폐기되면 남녀 사이의 도덕이 허물어져 음란하고 방탕한 풍조가 일어난다.”

▶ 四民 : 四民制度. 고대 중국에서는 국민을 士‧農‧工‧商 네 종류로 분류하였다. 士는 학자, 農은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 工은 공업에 종사하는 사람, 商은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
<春秋穀梁傳> 成公 元年에 “옛날에는 四民이 있었는데 士民,商民,農民,工民이 있었다<古者有四民,有士民,有商民,有農民,有工民.>”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근사록집해>에는 “옛날에는 士‧農‧工‧商의 四民이 각각 일정한 직업이 있었는데 농사짓는 자가 10에 8, 9할을 차지하였다.”라고 하였다.<근사록집해 卷九 治法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