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篇에서 말한 復恩은 임금과 신하, 主人과 奴僕 사이의 관계를 위주로 제시하였다.
신하가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고 자신의 私利만을 도모하는 것은 禍를 초래하는 근원이고, 반대로 임금이 신하의 공로에 보답하지 않고 賞을 줌을 꺼리는 것도 혼란을 부르는 기틀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復恩은 국가의 安定과 盛衰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이다.
임금이 된 사람은 祿俸을 懸示하여 기다리고, 신하가 된 사람은 자기의 능력을 다하여 그 은혜를 갚아야 君臣이 和協하고 국가가 안정을 이룰 수 있음을 말하였다.
이런 관점에 부합하는 例事를 두루 뽑아 그 결과를 보인다.
또 남에게 은덕을 베풀지 않을 뿐 아니라, 荒淫無道하여 報應을 받는 反面的 例事도 提示하였다.
1. 덕을 베풂을 은덕이라 여기지 않아야 한다.
孔子曰:
「德不孤,必有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
夫施德者貴不德,受恩者尚必報;
덕을 베푼 사람은 덕이라 하지 않음을 높여야 하고, 은혜를 입은 사람은 반드시 보답하기를 숭상하여야 한다.
是故臣勞勤以為君而不求其賞,君持施以牧下而無所德.
이 때문에 신하는 군주를 위하여 부지런히 노력하되 상 주기를 바라지 않으며, 군주는 은덕 베풀기를 주장하며 아랫사람을 다스리되 은덕을 베풀었다고 여기지 않는다.
故《易》曰:
「勞而不怨,有功而不德,厚之至也。」
그래서 <周易>에 일렀다.
“수고로워도 원망치 않으며 공로가 있어도 덕으로 여기지 않음이 후덕의 지극함이다.”
君臣相與以市道接,君縣祿以待之,臣竭力以報之;
逮臣有不測之功,則主加之以重賞,如主有超異之恩,則臣必死以復之。
군주와 신하가 함께함은 시장의 방식으로 대접하나니, 군주가 녹봉을 제시하여 신하를 대우하면 신하가 힘을 다해 보답하며,
신하가 뜻밖의 공을 세움에 이르면 군주는 많은 상을 내려주며, 만일 군주가 특별한 은혜를 주면 신하는 반드시 죽음으로써 보답해야 한다.
孔子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北方有獸,其名曰蟨,前足鼠,後足兔,是獸也,甚矣其愛蛩蛩巨虛也,食得甘草,必齧以遺蛩蛩巨虛,蛩蛩巨虛見人將來,必負蟨以走.
“북방에 짐승이 있어 그 이름을 蟨이라고 하며, 앞발은 쥐와 같고 뒷발은 토끼와 같은데 이 짐승은 蛩蛩‧巨虛를 매우 사랑하여 甘草를 만나 먹게 되면, 반드시 이 풀을 씹어서 공공‧거허를 먹여주고, 공공‧거허는 사람이 옴을 보면 반드시 蟨을 업고 달아난다.
蟨非性之愛蛩蛩巨虛也,為其假足之故也,二獸者亦非性之愛蟨也,為其得甘草而遺之故也。
蟨은 천성이 공공‧거허를 사랑함이 아니라 공공‧거허의 발을 빌리기 위함 때문이고, 두 짐승도 천성이 蟨을 사랑함이 아니라 蟨이 감초를 얻어 먹여주기 때문이다.
夫禽獸昆蟲猶知比假而相有報也,況於士君子之欲與名利於天下者乎!」
금수와 곤충조차 서로 친하고 도움을 주면서 서로 보답할 줄을 아는데, 하물며 士君子로서 천하에 명리를 얻으려는 자이랴!”
夫臣不復君之恩而苟營其私門,禍之源也;
君不能報臣之功而憚刑賞者,亦亂之基也。
신하가 군주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고 구차하게 자기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이는 禍難을 초래하는 근원이요,
군주가 신하의 공로에 보답하지 않고 형벌과 상 주기를 꺼림도 역시 화란을 초래하는 기틀이다.
夫禍亂之原基,由不報恩生矣。
화란의 근원과 기틀은 은혜에 보답하지 않음에서 생긴다.
▶ 德不孤,必有鄰 :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論語 里仁>에서 인용한 것이다. 德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그 同類가 따름이 있는 것이니, 거주하는 곳에 이웃이 있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 施德者貴不德 : <노자 도덕경 38장> “최상의 덕은 덕을 의식하지 않으므로 덕이 있는 것이고 하급의 덕은 덕을 잃지 않으려 하므로 덕이 없게 된다.(上德不德, 是以有德. 下德不失德, 是以無德.”라고 하였다.
▶ 勞而不怨~ : 수고로워도 원망치 않으며 공로가 있어도 덕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지극히 후덕한 일이다. <周易 계사 繫辭 上> 8장에서 인용한 것이다.
「勞謙君子,有終吉。」 子曰:「勞而不伐,有功而不德,厚之至也,語以其功下人者也。」
“공로가 있으면서 겸손한 군자이니 끝에 길함이 있을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공로가 있으나 자랑하지 않으며, 공이 있어도 덕이라 하지 않으니 두터움이 지극한 것이다. 그 공을 사람들에게는 낮추어서 말한다.”라고 하셨다.
▶ 蟨 : 전설상의 짐승 이름으로 蛩蛩‧巨虛와 항상 짝을 지어 다닌다.
“西方有比肩獸焉。與邛邛岠虛比,為邛邛岠虛齧甘草,即有難,邛邛岠虛負而走,其名謂之蹷。: 서쪽 지방에 어깨를 나란히 붙이고 다니는 짐승이 있다. 공공거허와 짝을 지어 다니는데 공공거허에게 감초를 씹어서 준다. 재난이 있을 경우 공공거허가 업고 달리는데 그 이름을 궐이라 한다.”<爾雅 釋地>
“北方有獸,名曰蹶,鼠前而兔後,趨則跲,走則顛,常為蛩蛩距虛取甘草以與之。蹶有患害也,蛩蛩距虛必負而走。此以其所能託其所不能。
북쪽 지방에 짐승이 있는데, 이름을 蹶이라고 부른다. 몸뚱이의 앞부분은 쥐와 같고 뒷부분은 토끼와 같으므로 급하게 달리면 고꾸라지고 빠르게 달리면 자빠진다. 그러나 항상 蛩蛩距虛를 위하여 甘草를 뜯어다 준다. 그러다가 蹶이 환난으로 생기는 해로움이 있게되면 蛩蛩距虛가 반드시 궐을 등에 업고 달린다. 이것이 그 할 수 있는 것에다가 할 수 없는 것을 부탁하는 것이다.” <呂氏春秋·慎大覽·不廣>
▶ 蛩蛩巨虛 : 蛩蛩駏虛라고도 한다. 전설상의 공공과 거허 두 짐승을 말하며 한 짐승이라는 주장도 있다. 蛩蛩은 본 바탕이 흰 짐승으로 말같이 생겼고, 巨虛는 距虛로도 쓰며 노새같이 생겼는데 작다고 한다. 이들은 항상 蟨이라는 짐승의 부양을 받고 살아가므로 患難에 서로 의지함을 비유한 것이다.
“有素獸焉, 狀如馬,名曰蛩蛩.”<山海經 海外北經>
▶ 士君子 : 지식인. 학자.
2. 곤경에 처했을 때 군신간의 예의를 잃지 않은 高赫
趙襄子見圍於晉陽,罷圍,賞有功之臣五人,高赫無功而受上賞,五人皆怒,張孟談謂襄子曰:
「晉陽之中,赫無大功,今與之上賞,何也?」
趙襄子가 晉陽에서 포위당하였다. 포위를 풀고 나서 공로가 있는 신하 다섯 사람을 포상함에, 高赫에게 공로가 없는데도 최고의 상을 받으니 다섯 사람이 다 화를 냈고, 張孟談이 襄子에게 말하였다.
“진양의 전투에 고혁에게 큰 공로가 없는데, 최고의 상을 줌은 무슨 까닭입니까?”
襄子曰:
「吾在拘厄之中,不失臣主之禮唯赫也。
子雖有功皆驕,寡人與赫上賞,不亦可乎?」
양자가 대답하였다.
“내가 곤경에 처함에 君臣의 예의를 잃지 않음은 고혁 뿐이었다.
그대들에게 공로가 있으나 모두 교만하였으매, 과인이 고혁에게 최고의 상을 줌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는가?”
仲尼聞之曰:
「趙襄子可謂善賞士乎!
賞一人而天下之人臣,莫敢失君臣之禮矣。」
공자께서 듣고 말씀하셨다.
“조양자는 관리에게 상을 잘 준다고 말할 만하구나!
한 사람에게 상을 주니, 천하의 신하에 감히 군신의 예를 잃는 자가 없구나.”
▶ 趙襄子 : 毋卹. 趙簡子의 아들. 춘추시대 晉나라의 대부가 되며 조씨 가문의 수령으로 전국시대에 趙나라의 창시자가 된다. 시호가 양자이므로 조양자라고 칭한다. [史記 世家] 권43.趙世家.
※ 晉陽之難 : 기원전 453년에 晉나라의 3卿인 韓虎:韓康子, 魏駒:魏桓子, 趙孟:趙無恤이 당시 晉나라의 최대 실권자이자 최대의 영토를 보유한 知伯 瑤를 晉陽에서 죽이고 知氏 일문을 멸문시킨 다음 그 영토를 공평하게 나눔으로써 사실상 晉나라를 삼분하였다
▶ 高赫 : 전국시대 趙나라 사람이다. <사기 조세가>에는 高共으로 기록하고 있다. 趙襄子가 晉陽에서 智伯에게 포위당했을 때 신하들이 모두 배반할 마음을 품고 양자에 대한 예의가 갈수록 느슨해졌으나 오직 高共만은 감히 예를 잃지 않았다.<史記 趙世家>
▶ 張孟談 : 전국시대 趙나라 사람으로 襄子의 家臣이다. <史記 趙世家>에는 張孟同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司馬遷이 아버지의 이름 談을 피하여 同으로 썼다 한다.
※ 張孟談計 : 조양자가 진양에서 지백에게 포위되어 있을 때, 장맹동은 몰래 한나라와 위나라의 두 군주를 만나 “듣기에,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脣亡則齒寒).’라고 합니다. 지금 智伯이 당신네 두 나라 군대를 인솔하여 우리 趙나라를 치고 있으니, 조나라는 망할 것입니다. 우리 조나라가 망하고 나면 두 임금의 나라가 다음 차례가 됩니다.”라고 설득하여 결국 韓나라와 魏나라 두 군주는 지백을 배반하였다.
3-1. 晉文公의 復恩
晉文公亡時,陶叔狐從,文公反國,行三賞而不及陶叔狐,陶叔狐見咎犯曰:
晉文公이 망명할 때 陶叔狐가 따라갔었는데, 문공이 귀국하여 세 차례나 賞賜하면서도 도숙호에게 미치지 않자 도숙호가 咎犯을 만나 말하였다.
「吾從君而亡十有三年,顏色黎黑,手足胼胝.
“나는 군주를 따라 망명하기 13년, 얼굴색은 새까맣게 타고 손발에는 굳은살이 박였소.
今君反國行三賞而不及我也,意者君忘我與!
그런데 군주께서 귀국하여 세 차례나 상을 내리면서 나에게는 미치지 않으니, 생각하기에 군주께서 나를 잊은 듯하오!
我有大故與!子試為我言之君。」
나에게 큰 잘못이 있는가요! 그대는 나를 위해 군주께 말해보시오.”
咎犯言之文公,文公曰:
「嘻,我豈忘是子哉!
구범이 문공에게 말하자 문공이 말하였다.
“아, 내 어찌 이 사람을 잊었겠소!
夫高明至賢,德行全誠,耽我以道,說我以仁,暴浣我行,昭明我名,使我為成人者,吾以為上賞;
총명하여 매우 현명하며, 덕행이 완전하고 성실하여 나를 도로써 즐겁게 하고 仁으로써 설득하며, 나의 행위를 고결하게 변화시키고 나의 명성을 밝게 드러내어 나를 완전한 사람으로 만든 자에게 나는 최고의 상을 주었소.
防我以禮,諫我以誼,蕃援我使我不得為非,數引我而請於賢人之門,吾以為次賞;
禮로써 나의 잘못을 예방하고, 도의로써 나의 잘못을 간하고, 나를 보호하고 도와서 내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고, 자주 나를 인도하여 현인의 집에 가서 가르침을 청하게 한 자에게 나는 두 번째의 상을 주었소.
夫勇壯強禦,難在前則居前,難在後則居後,免我於患難之中者,吾又以為之次。
용감하고 强忍하여 환난이 앞에 닥치면 앞에 나서고, 환난이 뒤에 있으면 뒤에 남아서 나를 환난에서 벗어나게 한 자에게 나는 또 그다음의 상을 주었소.
且子獨不聞乎?
死人者,不如存人之身;
亡人者,不如存人之國;
더구나 그대만 듣지 못했소?
남을 위해 죽음은 남의 생명을 보존함만 못하고,
남을 도망치게 함은 남의 나라를 보존함만 못하다.
三行賞之後,而勞苦之士次之,夫勞苦之士,是子固為首矣,豈敢忘子哉!」
세 번 行賞하고 나서 勞苦한 사람에게 그다음의 상을 내릴 터인데, 勞苦한 사람 중에는 이 사람이 단연 으뜸이 되니, 어찌 감히 이 사람을 잊겠소!”
周內史叔興聞之曰:
「文公其霸乎!
昔聖王先德而後力,文公其當之矣.
《詩》云:『率履不越』,此之謂也。」
周나라의 內史 叔興이 이 일을 듣고 말하였다.
“문공은 霸者가 되겠다!
예전에 聖王은 덕을 우선하고 힘을 뒤에 두었는데, 문공이 여기에 해당한다.
<詩經>에 ‘예법에 따라 어김없으셨다.’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 陶叔狐 : 춘추시대 晉나라 사람이다. 진 문공이 망명하여 여러 나라를 떠돌 때 동행하였다. 陶狐,陶氏,이름은 狐,排行이 叔이다. <史記 晉世家>에는 壺叔으로 기록하고 있다.
▶ 咎犯 : 舅犯. 진 문공 중이의 외삼촌 狐偃. 진 문공 重耳의 어머니는 翟나라 狐氏의 딸이다. 문공이 망명하여 여러 나라를 떠돌 때 19년 동안 고락을 함께하였으며, 문공이 즉위하여 霸者가 될 때까지 많은 공을 세웠다.
▶ 黎黑 : 거멓게 되다.
▶ 胼胝 : (손발에 생기는) 못. 굳은살.
▶ 意者 : 혹시. 혹은.
▶ 暴浣 : 햇볕에 쬐어 말려서 더러운 것을 말끔히 씻어 버리다.
▶ 蕃援 : 호위하여 보조하다. 보호하고 돕다.
▶ 內史 : 왕의 고문. 爵祿의 廢置 등에 관한 정사를 관장하였다.
▶ 叔興 : 춘추시대 周나라의 內史. 평생 행적은 자세하지 않다.
▶ 率履不越 : <詩經·商頌·長發>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시는 湯王의 정치를 찬양한 시이다.
“玄王桓撥、受小國是達、受大國是達。率履不越、遂視既發。相土烈烈、海外有截。
契께서는 늠름하고 굳세어 작은 나라 맡아서도 잘 다스리시고 큰 나라 맡아서도 잘 다스리셨다. 예법에 따라 어김없으시어 행동에 나타나 보이시고 위엄 있고 용맹하신 손자 상토께서는 멀리 나라 밖까지 평정하셨다.”
▶ 履 : 禮와 통용된다.
3-2.晉文公의 復恩
晉文公入國,至於河,令棄籩豆茵席,顏色黎黑,手足胼胝者在後.
晉文公이 晉나라로 들어옴에 河水에 이르러 그동안 사용했던 그릇과 돗자리를 버리게 하고, 안색이 새까맣고 손발에 굳은살이 박인 사람들을 뒷자리에 있게 하였다.
咎犯聞之,中夜而哭,文公曰:
「吾亡也十有九年矣,今將反國,夫子不喜而哭,何也?
其不欲吾反國乎?」
咎犯이 이를 듣고 한밤중에 곡을 하니 문공이 말하였다.
“내가 망명한 지 19년이나 되어 이제야 還國하려는데 선생께서 기뻐하지 않고 곡함은 무슨 까닭이오?
내가 換局함을 바라지 않소?”
對曰:
구범이 대답하였다.
「籩豆茵席,所以官者也,而棄之;
“그릇과 돗자리는 밥을 먹고 휴식하며 늘 쓰던 것인데 버리고,
顏色黎黑,手足胼胝,所以執勞苦,而皆後之;
안색이 새까맣고 손발에 굳은살이 박임은 노고에 종사한 까닭인데 모두 뒷자리에 있게 했습니다.
臣聞國君蔽士,無所取忠臣;
大夫蔽遊,無所取忠友;
제가 들으니 군주가 선비를 버리면 충신을 얻을 수 없고,
대부가 벗을 버리면 충직한 벗을 얻을 수 없다고 합니다.
今至於國,臣在所蔽之中矣,不勝其哀,故哭也。」
지금 나라에 도착함에 제가 버림받는 사람들 속에 있으니,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하여 곡하였습니다.”
文公曰:
「禍福利害不與咎氏同之者,有如白水!」
문공이 말하였다.
“禍福과 이해를 외삼촌과 공유하지 않는다면 황하의 신이 있소!”
祝之,乃沈璧而盟。
이렇게 축원하고 곧 벽옥을 황하에 빠뜨려 맹세하였다.
▶ 晉文公 : 춘추전국시대 제후국인 晋 獻公의 둘째 아들로 이름은 重耳이다. 헌공의 후처로 들어온 驪姬의 계략에 빠져 형인 申生이 사망하고 자신은 진나라를 떠나 狄나라로 망명하였다. 19년간 천하를 주유하였으며, 긴 망명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秦나라의 도움으로 군사를 이끌고 귀국하여 晉文公에 올랐다.
▶ 河 : 河水. 황하.
▶ 咎犯 : 舅犯. 진 문공 중이의 외삼촌 狐偃. 진 문공 重耳의 어머니는 翟나라 狐氏의 딸이다. 문공이 망명하여 여러 나라를 떠돌 때 19년 동안 고락을 함께하였으며, 문공이 즉위하여 霸者가 될 때까지 많은 공을 세웠다.
▶ 籩豆 : 대나무와 나무로 만든 祭器. 대나무로 만든 것을 籩이라하고 나무로 만든 것을 豆라 한다. 여기서는 사용하던 그릇을 말한다.
▶ 茵席 : 풀을 엮어 만든 자리. 돗자리.
▶ 官者 : 밥을 먹고 휴식하며 늘 쓰던 것. <한비자>에는 “籩豆所以食也,席蓐所以臥也”로 기록하고 있다.
▶ 蔽 : 물리치다. 폐기하다.
▶ 禍福利害不與咎氏同之者, 有如白水 : 禍福과 이해를 외삼촌과 공유하지 않는다면 저 황하의 신이 증인이 될 것이오.
<춘추좌씨전>에는 “所不與舅氏同心. 有如白水. : 만약 내가 외삼촌과 마음을 한가지로 하지 않는다면 白水의 신이 증인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 有如白水 : 맹세하는 말이다. 白水의 神이 있어 증인이 된다는 뜻으로, 《詩經》 〈王風 大車〉의 “밝은 해가 있어 증인이 될 것이다.[有如皦日]”와 같은 뜻이다. ‘有如’는 맹서하는 말에 많이 쓰는 복합동사로 증명할 대상을 이른다.
▶ 祝 : 기도하다.
▶ 乃沈璧而盟 : 황하의 신에게 신의를 입증하기 위해 璧玉을 던진 것이다.
3-3.晉文公의 復恩
介子推曰:
「獻公之子九人,唯君在耳.
天未絕晉,必將有主,主晉祀者非君而何?
唯二三子者以為己力,不亦誣乎?」
介子推가 말하였다.
“獻公의 아들은 9명이었는데 오직 주군만이 살아계신다.
하늘이 晉나라를 없애지 않으니 틀림없이 나라의 주인이 있게 할 터인데, 진나라의 제사를 주재할 사람이 주군이 아니고 누구란 말인가?
다만 몇몇 사람은 자신들의 덕택이라 여기니 어찌 기만이 아니겠는가?”
文公即位,賞不及推,推母曰:
「盍亦求之?」
문공이 즉위하여 賞賜가 개자추에게 미치지 않으니, 개자추의 어머니가 말하였다.
“어찌하여 너도 賞賜를 요구하지 않느냐?”
推曰:
「尤而效之,罪又甚焉。
且出怨言,不食其食。」
개자추가 말하였다.
“허물을 알면서도 그것을 본받으면 죄는 더욱 심해집니다.
더구나 원망하는 말을 하였으니 그 녹봉을 먹지 않겠습니다.”
其母曰:
「亦使知之。」
그의 어머니가 말하였다.
“다만 주군이 알도록 해라.”
推曰:
「言,身之文也;
身將隱,安用文?」
개자추가 말하였다.
“말이란 사람의 몸을 꾸미는 것입니다.
몸을 숨기려 하는데, 어찌 말로써 꾸미겠습니까?”
其母曰:
「能如是,與若俱隱。」
그의 어머니가 말하였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나도 너와 함께 숨어버리겠다.”
至死不復見推,從者憐之,乃懸書宮門曰:
「有龍矯矯,頃失其所,
五蛇從之,周遍天下,
龍饑無食,一蛇割股,
龍反其淵,安其壤土,
四蛇入穴,皆有處所,
一蛇無穴,號於中野。」
죽을 때까지 다시는 개자추를 보지 못하였는데, 개자추를 따르던 사람이 가련하게 여겨 글을 궁문에 걸어놓았다.
“날래고 씩씩한 용이 있었는데, 잠시 제자리를 잃었구나.
다섯 마리 뱀이 그를 따르며 천하를 두루 다녔다네.
용이 굶주리나 먹을 것이 없자, 뱀 한 마리가 허벅지 살을 베어 먹였다네.
용은 연못으로 돌아와, 옛 땅에서 편안히 지내고,
뱀 네 마리는 굴에 들어가 모두 살 곳이 있건만,
뱀 한 마리는 굴이 없어서, 들에서 울고 있구나!”
文公出見書曰:
「嗟此介子推也。
吾方憂王室未圖其功。」
문공이 궁문을 나서다가 글을 보고 말하였다.
“아, 이는 개자추다.
내가 한창 왕실의 일에 마음을 쓰느라 그의 공로를 고려하지 못하였다.”
使人召之則亡,遂求其所在,聞其入綿上山中。
사람을 보내 불렀으나 그가 달아나고 없으매, 그의 소재를 찾으니 綿上의 산에 들어갔음을 알았다.
於是文公表綿上山中而封之,以為介推田,號曰介山。
이에 문공은 면상의 산에 있는 땅을 표시하고 봉지로 주어 개자추의 祭田으로 삼게 하고 산 이름을 介山이라 불렀다.
▶ 介子推 : 介之推, 介推라고도 하는데 후일 존경의 의미에서 子를 더해 ‘개자추’가 되었다. 개자추는 진문공을 따라 19년 동안 망명하였는데, 문공이 즉위한 후 다른 공신에게는 상작을 내렸으나 그는 누락되어 어머니와 함께 綿山으로 은거하였다. 문공이 뒤늦게 깨닫고 그를 찾으려고 산에 불을 질렀으나 나타나지 않고 마침내 불에 타 죽었다. <韓詩外傳>에는 “晉文公이 曹나라를 지나갈 때 이부수가 따르다가 중이의 재물을 도적질하여 도망가니, 중이는 식량이 없어서 굶주려 갈 수 없었다. 介子推가 다리 살을 베어서 중이에게 먹인 연후에 잘 갈 수 있었다.” 하였다.
<國語>와 <春秋左氏傳> 등에는 介之推라고 표기되어 있고, <史記>에는 介推로도 표기되어 있다.
▶ 獻公 : 진 헌공. 진 문공 중이의 아버지.
▶ 二三子 : 몇몇 사람. 진 문공을 따라 도망했던 신하들을 말한다.
▶ 誣 : 속이다.
▶ 盍 : 어찌 ~않는가.
▶ 尤 : 허물. 과실.
▶ 文 : 장식하다. 꾸미다.
▶ 有龍矯矯~ : 이 시는 <龍蛇歌>라고도 칭해진다. 說苑, 呂氏春秋, 史記, 新序 등에 유사한 기록이 있으며 약간의 차이가 있다.
<史記 권39.晉世家>에는 “龍欲上天,五蛇為輔。龍已升雲,四蛇各入其宇,一蛇獨怨,終不見處所. : 용이 하늘에 오르고자 하여 다섯 마리의 뱀이 보좌하였다. 용은 구름에 올랐고 뱀 네 마리는 각자 집으로 들어갔거늘 한 마리만 원망하여 끝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구나.”라고 기록하고 있다.
▶ 矯矯 : 날래고 씩씩한 모습.
▶ 五蛇 : 晉文公이 망명생활을 할 때 따르던 다섯 신하를 비유한 말이다. 곧 狐偃‧趙衰‧魏武子‧司空季子‧介子推를 이른다.
▶ 綿上 : 지금의 山西省 介休縣 동남쪽.
▶ 田 : 祭田. 제사를 받들기 위해 설정한 땅.
4.진 문공의 復恩
晉文公出亡,周流天下,舟之僑去虞而從焉,文公反國,擇可爵而爵之,擇可祿而祿之,舟之僑獨不與焉.
晉文公이 망명하여 천하를 두루 떠돎에, 舟之僑는 虞나라를 떠나 그를 따라다녔으되, 문공이 還國하여 작위를 줄 만한 사람을 골라 작위를 주고 봉록을 줄 만한 사람을 골라 녹봉을 주었으나 주지교만 거기에 끼지 못하였다.
文公酌諸大夫酒,酒酣,文公曰:
「二三子盍為寡人賦乎?」
문공이 대부들과 술을 마심에, 술이 거나해지자 문공이 말하였다.
“그대들은 어찌 과인을 위해 시를 읊지 않는가?”
舟之僑曰:
「君子為賦,小人請陳其辭,辭曰:
有龍矯矯,頃失其所;
一蛇從之,周流天下,
龍反其淵,安寧其處,
一蛇耆乾,獨不得其所。」
주지교가 말하였다.
“군자는 시를 읊으나 小人은 말씀으로 진술하겠습니다. 그 말씀은 이렇습니다.
‘날래고 씩씩한 용이 있었는데, 잠시 제자리를 잃었구나.
뱀 한 마리 그를 따라 천하를 두루 떠돌았다네.
용은 연못으로 돌아와, 예전 처소에서 편안히 지내건만,
뱀 한 마리는 늙고 말라서, 그만이 살 곳을 얻지 못하였다.’”
文公瞿然曰:
「子欲爵耶?請待旦日之期;
子欲祿邪?請今命廩人。」
문공이 화들짝 놀라 말하였다.
“그대가 작위를 원하는가? 그러면 내일 아침을 기약하고 기다려라.
그대가 녹봉을 원하는가? 그러면 지금 당장 창고 관리인에게 명하겠다.”
舟之僑曰:
「請而得其賞,廉者不受也;
言盡而名至,仁者不為也。
今天油然作雲,沛然下雨,則曲草興起,莫之能禦。
今為一人言施一人,猶為一塊土下雨也,土亦不生之矣。」
舟之僑가 말하였다.
“청하여 상을 받음에, 청렴한 사람은 받지 않고,
말을 극진히 하여 명예가 옴에, 어진 이가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하늘에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 억세게 비가 쏟아지면 곡식 싹과 풀들이 쑥쑥 자라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을 터입니다.
지금 한 사람의 말에 의하여 한 사람에게 베푼다면, 한 덩이의 흙에만 비가 내림과 같아서 땅에서도 싹이 자라지 않을 터입니다.”
遂歷階而去。
이어 계단을 내려가 떠나버렸다.
文公求之不得,終身誦甫田之詩。
문공이 그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여 죽을 때까지 <詩經> <甫田>의 시를 외웠다.
▶ 舟之僑 : 춘추시대 虢나라 大夫이다. 虢公이 犬戎을 위수가에서 패배시키자, 괵나라 대부 주지교는 누구보다도 먼저 패망의 조짐을 알고 虢나라를 등지고 晉나라로 달아나서 화를 면하였다고 하였으니 ‘虞’는 ‘虢’으로 고쳐야 한다.<春秋左氏傳 閔公 2年> 그러나 그 뒤, 城濮의 전투에서 진 문공의 戎右(:兵車의 오른쪽에 앉는 무사)가 되어 싸우다가 소임을 저버리고 군진을 떠나 군사를 버리고 귀향하니, 진 문공이 그를 목 베어 晉나라에 조리돌렸다.<春秋左氏傳 閔公 2年>
▶ 二三子 : 몇 사람. 그대들.
▶ 盍 : 어찌 아니하다.
▶ 有龍矯矯~ : 이 시는 <龍蛇歌>라고도 칭해진다. 說苑, 呂氏春秋, 史記, 新序 등에 유사한 기록이 있으며 약간의 차이가 있다.
▶ 瞿然 : 깜짝 놀라는 모양.
▶ 今天油然作雲~莫之能禦 : <孟子 양혜왕 梁惠王 上>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구절은 맹자가 양혜왕에게 간언한 말이다.
“天油然作雲,沛然下雨,則苗浡然興之矣。其如是,孰能禦之? : 하늘에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 비가 억세게 쏟아지면 싹은 힘차게 살아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되면 누가 능히 막을 수 있겠습니까?”
▶ 油然 :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는 모양.
▶ 沛然 : 비가 억세게 쏟아져 내리는 모양.
▶ 甫田 : <詩經·齊風·甫田:넓은 밭>의 시. 이 시는 먼 곳에 가 있는 남편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시이다.
“無田甫田、維莠驕驕。無思遠人、勞心忉忉。無田甫田、維莠桀桀。無思遠人、勞心怛怛。婉兮孌兮、總角丱兮。未幾見兮、突而弁兮。넓은 밭 가는 이 없어 강아지풀만 무성하게 자란다. 멀리 있는 사람 생각지 마라. 마음만 아프게 괴로워하리라. 넓은 밭 가는 이 없어 강아지풀만 커다랗게 자란다. 멀리 있는 사람 생각지 마라. 마음만 애타게 괴로우리라. 앳되고 예쁘던 두 갈래 총각 머리 얼마 만에 만나면 어느새 관 쓴 어른.”
5. 漢宣帝에게 음덕을 베푼 邴吉
邴吉有陰德於孝宣皇帝微時,孝宣皇帝即位,眾莫知,吉亦不言.
邴吉이 孝宣皇帝가 미천할 때 陰德을 베풀었으되, 효선황제가 즉위함에 大衆에 아는 이가 없었고 병길도 말하지 않았다.
吉從大將軍長史轉遷至御史大夫,宣帝聞之,將封之,會吉病甚,將使人加紳而封之, 及其生也.
병길이 大將軍 長史에서 御使大夫로 승진하니, 宣帝가 듣고 작위를 봉하려고 하다가, 마침 병길의 병이 심하여, 사람을 보내 그가 살았을 때 띠를 몸에 올려놓고 봉하였다.
太子太傅夏侯勝曰:
「此未死也.
臣聞之,有陰德者必饗其樂以及其子孫;
今此未獲其樂而病甚,非具死病也。」
그가 살아나자 太子太傅 夏侯勝이 말하였다.
“이 사람은 죽지 않을 터입니다.
신이 듣기에, 음덕이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즐거움을 누려 자손에게까지 미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즐거움을 거두기도 전에 병이 심하니, 죽을병을 갖추지 않았습니다.”
後病果愈,封為博陽侯,終饗其樂。
뒤에 병이 과연 나았고, 博陽侯에 봉해져서 종신토록 그 즐거움을 누렸다.
▶ 邴吉 : 前漢 魯나라 사람으로 자는 少卿이다. 律令을 배워 처음에는 獄吏가 되고, 나중에 廷尉監에 올랐다. 征和 2년(기원전 91년) 巫蠱의 옥사 때 크게 활약하여 戾太子의 손자인 劉詢(:宣帝)의 목숨을 구하였다. 유순이 제위에 오르자 太子太傅와 御史大夫를 거쳐, 之節 3년(기원전 67년) 丞相이 되었다. 시호는 定이다.<漢書 魏相丙吉傳>, <史記 권96 張丞相列傳>
▶ 孝宣皇帝 : 宣帝. 前漢의 9대 황제. 武帝의 증손자. 지방 백성들의 사정을 밝게 알고 전한의 여러 황제 가운데 가장 어진 황제로 손꼽히고 있다
▶ 陰德 : 남에게 알려지지 아니한 덕행.
▶ 微時 : 지위가 낮아 미천하던 때.
▶ 大將軍長史 : 관직명으로 장군의 속관이다.
▶ 紳 : 큰 띠. 사대부가 예복에 갖추어 매던 큰 띠.
▶ 夏侯勝 : 전한 東平 사람. 字는 長公이고, 夏侯始昌의 族子이다. 昭帝 때 博士를 거쳐 光祿大夫를 지냈다. 宣帝가 즉위하자 長信少府로 옮겼다. 선제가 武帝를 높이는 것에 대해 비난하여 투옥되었다. 나중에 사면을 받고 諫大夫給事中이 되었다가 장신소부로 복직하고 太子太傅로 옮겼다.
6. 魏文侯의 공로
魏文侯攻中山,樂羊將,已得中山,還反報文侯,有喜功之色.
魏文侯가 中山國을 공격함에 樂羊이 장군이었는데, 중산국을 차지한 후 돌아와서 문후에게 보고함에 공을 세워 기뻐하는 기색이 있었다.
文侯命主書曰:
「群臣賓客所獻書操以進。」
문후가 문서를 주관하는 관리에게 명령하였다.
“신하들과 빈객이 올린 글들을 가져와서 올려라.”
主書者舉兩篋以進,令將軍視之,盡難中山之事也,將軍還走北面而再拜曰:
「中山之舉也,非臣之力,君之功也。」
문서를 주관하는 관리가 두 상자의 글을 바치자, 장군 악양에게 보도록 명하니, 모두 중산국 공격의 일을 비난하였으매, 장군이 몸을 돌려 몇 걸음 물러나서 북면하여 재배하고 말하였다.
“중산국을 거사는 신의 역량이 아니라, 군주의 공로입니다.”
▶ 魏文侯 : 전국시대 魏나라의 초대 제후로 성은 姬, 씨는 魏, 이름은 ‘斯’, 또는 ‘都’이다. 李悝·吳起·樂羊·西門豹 등 인재를 등용하였고, 위나라를 전국시대 최초로 패국으로 만들었다.
▶ 中山 : 周나라의 諸侯國 이름으로 전국시대에 中山國이었다. 趙武靈王에게 멸망되었다.
▶ 樂羊 : 기원전 408년에 魏文侯가 樂羊을 시켜 中山을 쳐부수게 하였다. 그때 악양의 아들이 중산국에 있었는데, 중산국의 군주가 악양의 아들을 삶아 그 국물을 악양에게 보냈다. 악양은 幕下에 앉아 이를 받아 한 잔을 모두 마셔 버렸다. 결국 악양이 중산국을 깨뜨리자 문후는 그 공으로 상을 주면서도 악양의 마음을 의심하였다. <戰國策 魏策> [史記列傳] 권80 樂毅列傳
▶ 主書 : 문서를 담당하는 관리.
7. 平原君이 덕을 베풀어 秦나라를 이기다
平原君既歸趙,楚使春申君將兵救趙,魏信陵君亦矯奪晉鄙軍往救趙.
平原君이 趙나라에 돌아오자 楚나라는 春申君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조나라를 구원하였으며, 魏나라의 信陵君도 晉鄙의 군대를 속임수로 빼앗아 조나라를 구원하러 갔다.
未至,秦急圍邯鄲,邯鄲急且降,平原君患之.
이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때, 秦나라가 서둘러 邯鄲을 포위하여 한단이 위급하여 항복할 지경이 되니 평원군이 근심하였다.
邯鄲傳舍吏子李談謂平原君曰:
「君不憂趙亡乎?」
한단 傳舍 관리의 아들 李談이 평원군에게 말하였다.
“군께서는 조나라가 망함을 걱정하지 않습니까?”
平原君曰:
「趙亡即勝虜,何為不憂?」
평원군이 대답하였다.
“조나라가 망하면 나 勝은 포로가 될 터인데 어찌 걱정하지 않겠느냐?”
李談曰:
「邯鄲之民,炊骨易子而食之,可謂至困;
이담이 말하였다.
“한단의 백성이 사람의 뼈를 태워서 자식을 바꾸어 먹고 있으니, 지극히 곤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而君之後宮數百,婦妾荷綺縠,廚餘粱肉;
士民兵盡,或剡木為矛戟;
그런데 군께서는 後宮들이 100명이고, 처첩들은 비단옷을 입고, 부엌에는 쌀밥과 고기가 남아돌고 있으며,
병사와 백성은 무기가 바닥나서 어떤 사람은 나무를 깎아 창을 만들기도 합니다.
而君之器物鐘磬自恣,若使秦破趙,君安得有此?
그런데도 군께서는 器物과 鐘磬을 마음껏 가지니, 만약 진나라가 조나라를 무찌르면 군께서는 어떻게 이것들을 소유하겠습니까?
使趙而全,君何患無有?
만약 조나라가 온전할 수 있다면, 군께서는 어찌 이런 것들이 없어질까 걱정하겠습니까?
君誠能令夫人以下,編於士卒間,分工而作之,家所有盡散以饗食士,方其危苦時易為惠耳。」
군께서 진실로 부인과 아랫사람들을 병사들에 편입하여 일을 나누어 작업하고, 집안의 재물을 모두 풀어서 병사들을 먹이면, 병사들은 위태롭고 괴로운 처지이므로, 쉽게 은혜를 베풀 수 있습니다.”
於是平原君如其計,而勇敢之士三千人皆出死,因從李談赴秦軍,秦軍為卻三十里,亦會楚魏救至,秦軍遂罷。
이에 평원군이 그 계책대로 시행하니 용감한 병사 3천 명이 모두 죽기를 각오하고 나서서 이담을 따라 秦軍에게 달려드니 秦軍이 30리를 퇴각하였고, 또 마침 楚·魏의 구원병이 도착하매 秦軍이 마침내 철병하였다.
李談死,封其父為孝侯。
이담이 전사했기에 그의 아버지를 李侯에 봉하였다.
▶ 平原君旣歸趙 : 平原君은 전국시대 趙나라 公子이다. 이름은 勝, 武靈王의 아들로 惠文王의 아우이다. 平原에 봉해졌고, 食客이 매우 많았다. 惠文王과 孝成王을 도와 여러 차례 국가의 위기를 구하여 孟嘗君‧春申君‧信陵君과 함께 戰國 四公子로 일컬어진다. 歸趙는 혜문왕 9년(B.C. 292년)에 秦나라 군대가 조나라 수도 邯鄲을 포위하자 楚나라에 가서 구원을 요청하여 合從하는 맹약을 맺고 조나라로 돌아온 일을 이른다. 《史記 平原君列傳》
▶ 春申君 : 전국시대 楚나라의 정치가이며, 성은 黃, 이름은 歇이며 莊王의 아우이다. 楚나라의 태자 完과 秦나라에 볼모로 갔었으며, 뒤에 完이 돌아와 즉위하여 考烈王이 되자 春申君이 되었다. <史記列傳] 권78 春申君列傳>
▶ 信陵君 : 위나라 공자 魏無忌. 전국시대 위나라의 저명한 군사가로 기원전 276년 信陵에 봉해지면서 信陵君으로 불리었다. 4공자 중 가장 어질고 능력 있는 인물로서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조나라 평원군이 매형이었으며 조나라를 도와 楚, 趙, 韓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 군대를 크게 격퇴하였다. 위공자병법이 전해지고 있으며 진나라의 이간으로 위나라 왕의 미움을 사서 술로 지내다 술독으로 죽었다.
▶ 矯奪晉鄙軍 : 晉鄙는 전국시대 魏나라 장군. 조나라의 邯鄲이 포위당하자 위나라에서 晉鄙 보내 조나라를 구하게 했지만 진비는 병사를 주둔시켜 둔 채 사태를 관망만 하였다. 이에 信陵君이 侯生의 계책을 써서 如姬를 통해 虎符를 훔쳐 力士 朱亥를 시켜 그를 살해하게 하고, 병권을 빼앗아 조나라를 구원하였다.<사기 권77, 魏公子列傳>
▶ 傳舍吏 : 驛站의 客舍를 관리하는 하급관리를 이른다. 傳舍는 行人들이 쉬거나 묵어가도록 역참에 지은 객사이다. 《戰國策 魏策 4》
▶ 李談 : 한단 傳舍吏의 아들. 사기에서는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李同으로 기록하고 있다.<史記 平原君虞卿列傳>
▶ 炊骨易子 : 뼈로 밥을 짓고, 자식을 바꾸어 먹다. 饑饉의 참상을 형용한 것이다.
▶ 綺縠 : 호사스러운 옷. 綺는 비단, 縠은 주름 비단.
▶ 粱肉 : 쌀밥과 고기반찬. 粱은 좋은 곡식.
▶ 褐衣 : 거친 베옷.
▶ 剡 : 깎아서 날카롭게 하다.
▶ 鐘磬 : 종과 경쇠. (악기의 종류)
▶ 使 : 만약. 가령.
▶ 饗食士 : 군사들에게 음식을 먹임.
▶ 孝侯 : 《群書拾補》에 “《太平御覽》 권201에 ‘李’자로 썼다.” 하였고, 《說苑校證》에 ‘李’자로 교정하였다. 《史記》 〈平原君列傳〉에 ‘李侯’로 썼는데, 徐廣은 “河內의 成皐에 李城이 있다.” 하였다.
8. 秦繆公의 준마
秦繆公嘗出,而亡其駿馬,自往求之,見人已殺其馬,方共食其肉.
秦繆公이 일찍이 외출하여 자신의 준마를 잃고 직접 가서 찾다가, 사람들이 이미 그 말을 죽여 바야흐로 함께 그 고기를 먹음을 보았다.
繆公謂曰:
「是吾駿馬也。」
목공이 말하였다.
“이것은 나의 준마이다.”
諸人皆懼而起,繆公曰:
「吾聞食駿馬肉,不飲酒者殺人。」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일어나자 목공이 말하였다.
“내가 듣기에 준마의 고기를 먹이고 술을 마시게 하지 않음이 사람을 죽인다고 한다.”
即以次飲之酒,殺馬者皆慚而去。
즉시 차례대로 술을 마시게 하니, 말을 죽인 자들이 모두 부끄러워하면서 떠났다.
居三年,晉攻秦繆公,圍之,往時食馬肉者,相謂曰:
「可以出死報食馬得酒之恩矣。」
3년이 지나, 晉나라가 진목공을 공격하여 포위하니, 지난날 준마의 고기를 먹은 사람들이 서로 말하였다.
“나가서 죽기로 싸워서 말고기를 먹이고 술까지 마시게 해준 은혜에 보답함이 옳겠다.”
遂潰圍。
이에 포위를 무너뜨렸다.
繆公卒得以解難,勝晉獲惠公以歸,此德出而福反也。
목공이 마침내 어려움을 해결하여 晉에 승리하고 晉惠公을 사로잡아 돌아가니, 이는 은덕을 베풀어 복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 秦繆公 : 嬴任好. 진나라의 군주. 繆은 穆으로도 쓴다. 이름은 任好이고, 秦德公의 셋째 아들이며, 春秋五覇의 한 사람이다. 재위 동안 어진 인재를 힘써 구해 百里奚과 蹇叔 등을 등용해 謀臣으로 삼았고, 올바른 정치에 전력을 기울여 국세가 날로 강해졌다.
▶ 亡 : 잃다.
▶ 晉惠公 : 춘추시대 진나라의 군주로 이름은 夷吾이며, 獻公의 셋째 아들이다. 헌공이 총희 驪姬의 참언으로 태자 申生이 자살하자 자신에게도 위해가 닥칠까 두려워해 梁나라로 달아났다. 여희의 소생 奚齊가 즉위하자, 신하 里克이 해제와 卓子를 죽이고 그를 맞았다. 秦繆公에게 河西의 땅을 주겠다면서 귀국하기를 부탁하였다.
9. 楚 莊王이 갓끈을 끊게 하다-楚王絕纓
楚莊王賜群臣酒,日暮酒酣,燈燭滅.
楚莊王이 신하들에게 주연을 베풀었는데, 날이 저물고 술이 거나해짐에 등불이 꺼졌다.
乃有人引美人之衣者,美人援絕其冠纓,告王曰:
「今者燭滅,有引妾衣者,妾援得其冠纓持之,趣火來上,視絕纓者。」
이때 누군가 美人의 옷을 잡아끌자, 美人이 그의 갓끈을 잡아당겨 끊고 왕에게 말하였다.
“지금 촛불이 꺼지자 소첩의 옷을 끄는 자가 있기에, 첩이 그의 갓끈을 당겨 끊어서 가지고 있으니, 빨리 불을 가져오게 하여 갓끈이 끊어진 사람을 살펴보십시오.”
王曰:
「賜人酒,使醉失禮,奈何欲顯婦人之節而辱士乎?」
장왕이 말하였다.
“사람들에게 술을 내려 취하여 실례하게 해놓고, 어찌 부인의 정절을 드러내고자 신하를 욕보이겠는가?”
乃命左右曰:
「今日與寡人飲,不絕冠纓者不懽。」
그러고는 座中에 명하였다.
“오늘 과인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갓끈을 끊지 않는 자는 마음껏 즐기지 않은 것이다.”
群臣百有餘人皆絕去其冠纓而上火,卒盡懽而罷。
신하들 백여 명이 모두 그들의 갓끈을 끊어버리고 나서 불을 밝혔고, 끝까지 즐거움을 한껏 누리고 연회를 파하였다.
居三年,晉與楚戰,有一臣常在前,五合五奮,首卻敵,卒得勝之.
3년이 지나, 晉나라와 楚나라가 전쟁을 함에 한 신하가 항상 앞에 나서서 다섯 차례 교전에서 다섯 번 돌격하여 머리를 베고 적군을 물리쳐 끝내 승리하였다.
莊王怪而問曰:
「寡人德薄,又未嘗異子,子何故出死不疑如是?」
장왕이 괴이하게 여겨 물었다.
“과인은 덕이 박하고 또 그대를 특별히 대하지도 않았는데, 그대는 무슨 까닭으로 나가서 죽기로 싸우며 조금도 망설이지 않음이 이러한가?”
對曰:
「臣當死,往者醉失禮,王隱忍不加誅也;
臣終不敢以蔭蔽之德而不顯報王也,常願肝腦塗地,用頸血湔敵久矣.
臣乃夜絕纓者。」
그 신하가 대답하였다.
“신은 마땅히 죽을 목숨이었습니다. 종전에 제가 술에 취하여 실례함에 왕께서 감추고 참으며 죽음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신은 끝내 대왕께서 신의 죄를 가려주신 은덕을 드러나게 보답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항상 간담과 뇌수를 땅에 바르고 頸血을 敵에게 뿌리려 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신이 바로 밤에 갓끈이 끊겼던 자입니다.”
遂敗晉軍,楚得以強,此有陰德者必有陽報也。
마침내 晉나라 군대를 이겼고 초나라는 이 때문에 강성해졌으니, 이것이 음덕이 있는 사람에게 틀림없이 陽報가 있다는 것이다.
▶ 楚莊王 : 초나라의 제22대 군주로 이름은 侶이다. 성왕의 손자이자 穆王의 아들이다. 춘추오패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 援 : 끌어당기다.
▶ 冠纓 : 관의 끈.
▶ 趣 : 促과 같다. 재촉하다. 서두르다.
▶ 奮 : 떨치다. 분발하다.
▶ 隱忍 : 꾹 참다.
▶ 蔭蔽 : 숨기다. 은폐하다.
▶ 湔 : 뿌리다.
▶ 陽報 : 분명한 보답. 눈에 보이는 보담.
10.작은 은덕이라도 베풀어야 한다.
趙宣孟將上之絳,見翳桑下有臥餓人不能動.
趙宣孟이 絳邑으로 가려 함에, 말라죽은 뽕나무 아래에 누워있는 굶주린 사람을 보았는데 움직이지 못하였다.
宣孟止車為之下湌 自含而餔之,餓人再咽而能視.
宣孟이 그를 위하여 수레를 멈추고 음식을 내려 스스로 씹어서 먹이니 굶주린 사람이 두 번 삼키고 나서 볼 수 있었다.
宣孟問:
「爾何為饑若此?」
선맹이 물었다.
“너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굶었느냐?”
對曰:
「臣居於絳,歸而糧絕,羞行乞而憎自致,以故至若此。」
대답하였다.
“저는 絳邑에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가다가 양식이 떨어졌으나, 걸식함이 부끄럽고 스스로 음식 조달함이 싫었기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宣孟與之壺湌,脯二胊,再拜頓首受之,不敢食,問其故,對曰:
「向者食之而美,臣有老母,將以貢之。」
선맹이 한 병의 국과 밥, 그리고 두 가닥의 脯를 주자, 이마가 땅에 닿도록 재배하고 받더니 감히 먹지는 못하매 선맹이 그 까닭을 묻자, 대답하였다.
“조금 전에 먹어보니 맛이 좋으므로, 제게 노모가 계셔서 갖다 드리려고 합니다.”
宣孟曰:
「子斯食之,吾更與汝。」
선맹이 말하였다.
“너는 이것을 먹어라, 내가 다시 너에게 음식을 주겠다.”
乃復為之簞食,以脯二束與錢百。
그러고는 다시 그를 위해 도시락의 밥, 포 두 묶음과 백 전의 돈을 주었다.
去之絳,居三年,晉靈公欲殺宣孟,置伏士於房中,召宣孟而飲之酒,宣孟知之,中飲而出,靈公命房中士疾追殺之.
강읍으로 간 지 3년이 지나, 晉靈公이 선맹을 죽이려고 방 안에 무사를 매복시키고 선맹을 불러 술을 먹였는데, 선맹이 알아차리고 술을 마시다가 나가버리자, 영공이 방 안의 무사에게 명하여 빨리 쫓아가서 죽이라고 하였다.
一人追疾,既及宣孟,向宣孟之面曰:
「今固是君邪!請為君反,死。」
한 사람이 빠르게 쫓아가서 남 먼저 선맹을 따라잡아 선맹의 얼굴을 보더니 말하였다.
“아, 진실로 당신이었군요! 당신을 위하여 돌아가서 죽겠습니다.”
宣孟曰:
「子名為誰?」
선맹이 물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오?”
及是且對曰:
「何以名為?
臣是夫桑下之餓人也。」
몸을 돌려 달려가면서 말하였다.
“이름을 알아 뭣하겠습니까?
저는 바로 뽕나무 아래에서 굶주리던 사람입니다.”
遂鬥,而死,宣孟得以活,此所謂德惠也。
그러고는 되돌아가서 싸우다가 죽었고, 선맹은 이 때문에 살 수 있었으니 이것이 소위 德惠(덕택과 은혜)이다.
故惠君子,君子得其福;
惠小人,小人盡其力;
夫德一人活其身,而況置惠於萬人乎?
그러므로 군자에게 은혜를 받으면 군자는 복을 얻고
소인에게 은혜를 베풀면 소인은 힘을 다해 은혜를 갚으니,
한 사람에게 덕을 베풀어도 자신의 생명을 살리는데, 하물며 만인에게 은혜를 베풂이랴?
故曰德無細,怨無小,豈可無樹德而除怨,務利於人哉!
그래서 “덕을 베풂에 작다고 여기지 말고, 원한을 삼에 작다고 여기지 말라.”라고 하였으니, 어찌 은덕을 심고 원한을 제거하여 남을 이롭게 함에 힘쓰지 않음이 옳겠는가!
利施者福報,怨往者禍來,形於內者應於外,不可不慎也,此書之所謂德無小者也。
이로움을 베푼 사람은 복으로 보답을 받고 원한을 보낸 사람에게 재앙이 오나니, 마음에 형성된 것이 외부에 호응함을 삼가지 않을 수 없으니, 이것이 <書經>의 소위 “덕에 작은 것이 없다.”이다.
《詩》云:
「赳赳武夫,公侯干城。」
「濟濟多士,文王以寧。」
人君胡可不務愛士乎!
<詩經>에
“씩씩한 무사는 나라의 干城이로다.”라고 하였고,
“이 많은 선비 있어 文王께서 이로써 편안했도다.”라고 하였으니,
군주로서 어찌 선비를 사랑함에 힘쓰지 않겠는가!
▶ 趙宣孟 : 趙盾. 趙宣子. 이름은 盾이며 존칭으로 조맹 혹은 宣孟이라 불리었다. 춘추시대 晉나라의 대부로 趙衰의 아들이다.
襄公 7년 中軍元帥가 되어 국정을 장악하였다. 양공이 죽자 先蔑과 士會를 시켜 공자 公子 雍을 秦나라에서 맞으려 했는데 양공의 부인 穆嬴으로 인하여 靈公(:이고)을 세우고 공자 옹을 세우려는 秦나라 군대를 방어하였다. 진 영공이 즉위하여 음란하고 폭압을 일삼자 간언을 올렸지만 뜻이 맞지 않고 오히려 죽이려고 하자 도망하여 망명길에 올랐다. 그가 아직 국경을 넘지 않았을 때 조돈의 동생 趙穿이 영공을 시해하자 晉나라로 돌아왔다. [史記 世家] 권43.趙世家
▶ 絳 : 춘추시대 晉나라의 도읍.
▶ 翳桑 : 뽕나무가 말라죽다. 翳는 말라죽다.
▶ 餔 : 먹이다.
▶ 咽 : 삼키다.
▶ 胊 : 脯와 같다. 말린 고기.
▶ 向者 : 이전. 조금 전.
▶ 簞食 : 도시락 밥.
▶ 晉靈公 : 춘추시대 晉나라의 군주로 이름은 夷皐이며, 襄公의 아들이다. 진 영공이 즉위하여 음란하고 폭압을 일삼자 조돈이 간언을 올렸지만 뜻이 맞지 않고 오히려 죽이려고 하였다.
▶ 桑下之餓人 : 조돈이 평소 사람을 아꼈는데 일찍이 뽕나무 아래에 굶주려 있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준 적이 있던 이 사람이 몸을 돌려 막아 조돈을 구해 조돈이 도망갈 수 있었다.<사기 趙世家>
▶ 德惠 : 은덕.
▶ 德無細, 怨無小 : 작은 은덕이라도 베풀어야 하고, 작은 원한이라도 맺어서는 안 됨을 이른 말이다.
▶ 此書之所謂德無小者也 : <書經·商書·伊訓>에 “爾惟德罔小,萬邦惟慶;爾惟不德罔大,墜厥宗. : 당신께서 덕을 행하시면 그것이 아무리 적은 것일지라도 천하의 만국이 그것을 믿고 기뻐할 것입니다. 당신께서 덕 아닌 일을 행하시면 비록 큰일이 아니더라도 선조 이래의 종사를 망치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 德幾無小 : 덕을 베풂에 작은 것이란 없다.
▶ 《詩》云 : <詩經·周南·兎罝>에서 인용한 것으로 국가의 간성인 무사를 찬미한 시이다. “肅肅兔罝、椓之丁丁。赳赳武夫、公侯干城。: 빽빽이 짜인 토끼그물 말뚝 박는 소리 쨍쨍 울린다. 씩씩한 무사는 나라의 간성.”
▶ 濟濟多士,文王以寧 : <詩經·大雅·文王>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많은 선비 있어 문왕께서 이로써 편안했도다. 濟濟는 많은 모양. 문왕은 신하들이 잘 보좌하므로 안녕하다는 뜻.
11.袁盎의 陰德
孝景時,吳楚反,袁盎以太常使吳,吳王欲使將不肯,欲殺之.
孝景皇帝 때 吳‧楚가 반란을 일으키자, 袁盎은 太常의 신분으로 오나라에 사신으로 갔는데, 吳王이 원앙을 장군을 시키려 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자, 오왕이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使一都尉以五百人圍守盎;
한 명의 都尉를 시켜 군사 5백 명을 거느리고 원앙을 포위하여 지켰다.
盎為吳相時,從史與盎侍兒私通,盎知之不泄,遇之如故.
원앙이 오나라 재상일 때 부하 관리가 원앙의 시녀와 私通했는데, 원앙이 알고도 누설하지 않고 그를 예전처럼 대하였다.
有告從史,從史懼亡歸,盎自追,遂以侍兒賄之,復為從史。
누군가 부하 관리에게 알려주니 부하 관리가 두려워하여 도망쳐 집으로 돌아갔는데, 원앙이 직접 쫓아가서 시녀를 그에게 보내주고 다시 종사로 삼았다.
及盎使吳見圍守,從史適為守盎校司馬,夜引盎起曰:
「君可以去矣,吳王期旦日斬君。」
원앙이 오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겹겹이 포위당함에, 그 종사가 마침 원앙을 지키는 校司馬이더니, 밤에 원앙을 찾아가 일으키고 말하였다.
“당신은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오왕이 내일 아침을 기하여 당신을 죽이려 합니다.”
盎不信,曰:
「公何為者也?」
원앙은 믿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이오?”
司馬曰:
「臣故為君從史盜侍兒者也。」
司馬가 대답하였다.
“저는 예전에 당신의 종사가 되어 몰래 시녀와 정을 통한 사람입니다.”
盎乃敬對曰:
「公見親,吾不足以累公。」
원앙이 이에 깜짝 놀라 거절하였다.
“그대는 어버이가 살아 계시니 나는 그대를 연루시킬 수 없소.”
司馬曰:
「君去,臣亦且亡, 避吾親, 君何患!」
이에 사마가 말하였다.
“당신이 이곳을 떠나면 저도 도망쳐서 우리 어버이를 피신시킬 터인데 당신은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乃以刀決帳,率徒卒道出,令皆去,盎遂歸報。
그러고는 곧 칼로 군영의 장막을 찢고, 만취해 쓰러진 병사들 사이로 인도하여 빠져나와 다른 방향으로 떠났으므로, 원앙이 마침내 돌아와서 보고하였다.
▶ 孝景 : 漢나라 제5대 황제 景帝이다. 이름은 劉啓이며, 文帝의 長子이다. 아버지를 이어 善政을 베풀어 文景之治를 이루었다. 《漢書 景帝紀》 어머니는 孝文皇后이다. 晁錯의 계책을 써서 諸侯王들의 封地를 삭감하였으며, 자주 법령을 바꾸고 제후왕의 세력을 억압했기 때문에 경제 3년(기원전 154년)에 吳와 楚 등 7국이 난을 일으켰다. [史記 本紀] 권11.孝景本紀
▶ 吳王 : 劉濞. 漢高帝의 형인 劉仲의 아들이다. 황실이 제후국을 견제하는 것에 반발하여 오초칠국의 난을 일으켰다.
▶ 吳楚反 : 漢 景帝 때 吳王 劉濞와 楚王 劉戊 등 일곱 제후들이 연합하여 “천자의 측근을 청소한다.”는 명분과 鼂錯를 죽이겠다는 구실로 일으킨 반란사건이다. 《史記 鼂錯傳》‧《漢書 景帝紀》
▶ 袁盎 : 袁盎 : 漢나라 때 楚나라 사람이다. 景帝 때 吳相으로 있을 때 御史大夫 鼂錯에 의해 庶人으로 쫓겨났다. 뒤에 吳楚七國의 반란이 일어나자 반란의 빌미를 제공한 조조를 죽일 것을 건의하여 처형하였다. 梁孝王을 천자의 후계로 삼는 일을 반대하다가 양효왕의 자객에게 살해되었다. 《史記 袁盎鼂錯列傳》‧《漢書 袁盎鼂錯傳》
▶ 都尉 : 장군보다 낮은 무관. 正三位에서 從四位까지의 무관.
▶ 從史 : 하급관리.
▶ 侍兒 : 시녀.
▶ 如故 : 종전과 같이.
▶ 見守 : 겹겹이 포위당하다. 見은 당하다.
▶ 旦日 : 내일 아침.
▶ 敬對 : 《史記》‧《漢書》에 모두 ‘驚謝’로 되어 있다.
▶ 見親 : 《群書拾補》에 ‘有’자로 고쳤고, 《史記》‧《漢書》에는 ‘公幸有親’으로 되어 있다.
▶ 率徒 : 《群書拾補》에 “宋本에 醉從으로 되어 있는데, 잘못되어 거꾸로 놓였다.” 하였고, 《史記》에는 ‘從醉卒隧出’로, 《漢書》에는 ‘道從醉卒直出’로 되어 있다.
▶ 令皆 : 《史記》‧《漢書》에 모두 ‘分背’로 되어 있다.
12. 豫讓의 報恩
智伯與趙襄子戰於晉陽下而死,智伯之臣豫讓者怒,以其精氣能使襄主動心,乃漆身變形,吞炭更聲.
智伯이 趙襄子와 晉陽城에서 싸우다가 죽자, 지백의 신하 豫讓이 분노하여 자신의 정기가 조양자의 마음을 동요시킬 수 있다고 여겨, 마침내 몸에 옻을 칠하여 변장하고 숯을 삼켜 목소리를 바꾸었다.
襄主將出,豫讓偽為死人,處於梁下,駟馬驚不進,襄主動心,使使視梁下得豫讓,襄主重其義不殺也。
양자가 외출하려 함에 예양이 죽은 사람으로 위장하여 다리 아래에 있었는데, 말이 놀라 앞으로 나아가지 않자 양자는 마음이 동요되어 사람을 시켜 다리 밑을 살펴보게 하여 예양을 잡았으나, 양자가 그의 의리를 존중하여 죽이지 않았다.
又盜,為抵罪,被刑人赭衣,入繕宮,襄主動心,則曰必豫讓也,襄主執而問之曰:
「子始事中行君,智伯殺中行君,子不能死,還反事之;
今吾殺智伯,乃漆身為癘,吞炭為啞,欲殺寡人,何與先行異也?」
또 도둑질하여 죄를 지어 붉은 죄수복을 입고 양자의 궁중에서 집을 수리하고 있었는데, 양자가 가슴이 두근거리자 말하기를 “틀림없이 예양일 것이다.”하고 양자가 잡아다가 심문하였다.
“그대는 처음에 中行君을 섬겼으며, 智伯이 중항군을 죽였는데, 너는 중항군을 위해 죽지 않고 도리어 지백을 섬겼다.
그런데 내가 지백을 죽이자 몸에 옻을 발라 문둥이가 되고 숯을 삼켜서 벙어리가 되어 과인을 죽이려고 하니 어째서 이전의 행동과는 다른가?”
豫讓曰:
「中行君眾人畜臣,臣亦眾人事之;
智伯朝士待臣,臣亦朝士為之用。」
예양이 대답하였다.
“중항군은 보통 사람으로 저를 대우하였으니, 저도 보통 사람의 신분으로 섬겼고,
지백은 조정의 신하로 저를 대하였으니, 저도 조정의 신하로 그에게 쓰였소.”
襄子曰:
「非義也, 子壯士也!」
양자가 말하였다.
“의리는 아니나 그대는 壯士로구나!”
乃自置車庫中,水漿毋入口者三日, 以禮豫讓,讓自知,遂自殺也。
이에 스스로 車庫에 들어가서 3일 동안 물을 입에 들이지 않으며 예양에게 경의를 표하니, 예양이 이를 알고 마침내 자살하였다.
▶ 智伯 : 춘추시대 말 전국시대 초기의 晉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瑤이고, 智襄子라고도 부른다. 진나라 말기 유력 씨족들이 분열해서 서로 다투게 됐을 때 자체 세력을 형성하여 趙襄子를 공격했지만 멸망하였다.
▶ 趙襄子 : 毋恤. 趙簡子의 아들. 無恤은 본래 毋卹로 쓴다. 춘추시대 晉나라의 대부가 되며 조씨 가문의 수령으로 전국시대에 趙나라의 창시자가 된다. 시호가 襄子이므로 조양자라고 칭한다. 晉出公 17년에 趙, 韓, 魏와 함께 范氏와 中行氏의 땅을 나눠 邑으로 삼았다. 나중에 한, 위와 함께 趙襄子를 공격해 晉陽을 포위하고 물을 부어 넣었다. 조양자가 밤에 孟談을 시켜 한, 위와 합세하여 물을 끌어들여 지요의 군대에 부어넣어 軍中에서 지백을 살해한 뒤 知氏를 멸족시켰다.
▶ 豫讓 : 春秋 말기 晉나라 智氏의 가신이다. 처음에 范氏와 中行氏를 섬기다가 뒤에 智伯을 주인으로 섬겼는데, 지백이 그를 매우 존경하고 총애하였다. 趙襄子가 智伯을 살해하자, 예양은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하여 죽는다.”하고 보복을 맹세한 뒤 죄인으로 가장하여 비수를 품고 조양자의 변소에 잠입하여 그를 죽이려다가 발각되었다. 조양자는 그를 義人이라 생각하고 석방하였다. 그 뒤 예양은 몸에 옻을 칠하여 나환자로 변장하고, 벙어리·거지의 행세를 하며 다시 기회를 기다렸다가 조양자가 외출할 때 다리 밑에 숨어서 그를 찔러 죽이려고 하였으나, 말이 놀라는 바람에 다시 붙들렸다. 조양자가 이번에는 그를 용서하지 않자, 예양은 조양자에게 간청하여 그의 옷을 받아 칼로 3번 친 뒤, “내가 지백에게 보답할 수 있게 되었구나!”라고 말하고, 칼에 엎어져 자결하였다.[史記列傳] 권86 刺客列傳
▶ 駟馬 : 한 채의 수레를 끄는 네 마리의 말을 이른다. 顯貴한 사람이 타는 높은 수레를 이른다. 《史記 管晏列傳》‧《淮南子 說山訓》
▶ 動心 : 마음이 동요되다. 마음이 설레다.
※ 漆身吞炭 : 몸에 옷칠을 하고 피부에 종기를 만들어 나병환자처럼 하고 숯을 삼겨 목소리를 쉬게 만들다. 숯을 삼키고 몸에 옷칠을 하는 고난을 견디며 복수를 기다린다는 뜻의 고사성어.
▶ 赭衣 : 고대에 죄수가 입는 붉은 옷.
▶ 中行君 : 中行氏. 荀氏를 말한다. 荀寅의 조부 荀偃이 中軍을 통솔하였으며, 중군이 中行으로 개칭되어 荀氏는 中行氏로 칭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晉나라의 卿 荀寅을 말한다.
▶ 畜 : 대우하다. 기르다
▶ 朝士 : =朝臣. 조정에서 벼슬하는 신하.
※ 斬衣三躍 : 三躍擊之. 예양이 조양자 암살에 실패하고 자결하기에 앞서 조양자의 옷을 벨 기회를 달라 청하였다. 예양의 의리에 감동한 조양자가 자신의 겉옷을 벗어주자 예양은 칼을 뽑아 껑충 뛰어오르며 세 번 옷을 찌른 다음 스스로 칼을 찌르고 자결하였다.
13. 3대째 받은 은혜
晉逐欒盈之族,命其家臣有敢從者死,其臣曰:
「辛俞從之。」
晉나라 범선자가 欒盈의 일족을 축출함에 그의 가신들에게 명령하기를, 감히 그를 따르는 자가 있으면 죽이겠다고 하니, 그의 신하가 말하였다.
“辛兪가 따라갔습니다.”
吏得而將殺之,君曰:
「命汝無得從,敢從何也?」
관리가 신유를 잡아서 죽이려고 함에 晉君이 물었다.
“너에게 난영을 따르지 말라고 명령했는데 감히 따라가니 무슨 까닭이냐?”
辛俞對曰:
「臣聞三世仕於家者君之,二世者主之;
事君以死,事主以勤,為之賜之多也。
今臣三世於欒氏,受其賜多矣,臣敢畏死而忘三世之恩哉?」
신유가 대답하였다.
“신이 듣건대, 3대에 걸쳐 大夫家의 가신이 된 사람은 대부를 군주로 모시고, 2대에 걸쳐 가신이 된 사람은 대부를 주인으로 모신다고 합니다.
죽음으로써 군주를 섬기고 근면으로써 주인을 섬김은 그가 주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은 3대째 欒氏를 모시고 있으니 받은 것이 많습니다.
신이 감히 죽음을 두려워하여 3대에 받은 은혜를 잊겠습니까?”
晉君釋之。
진군이 신유를 석방하였다.
▶ 欒盈 : 춘추시대 晉나라 下卿. 欒逞으로도 쓴다. 欒黶의 아들이고, 시호는 懷이다. 晉平公이 처음 즉위했을 때 그를 公族大夫로 삼았다. 어머니 欒祁는 范宣子의 딸이었는데, 난염이 죽은 뒤 음행을 저질렀다. 어머니의 음행을 난영이 걱정하자 이를 두려워해 범선자에게 난영이 범씨 집안을 원망해 나쁜 일을 꾸민다고 모함하였다. 범선자가 이 말을 믿고 난영을 죽이려 하자 楚나라로 도망갔고, 다시 齊나라로 갔다. 평공 8년에 몰래 제나라 사신을 따라 晉나라에 들어와 난을 일으켰지만 싸움에 져서 曲沃으로 달아났다. 진나라 사람이 포위해서 함락시키고 난씨 일족을 모두 죽였다.<春秋左氏傳 魯襄公 21‧23년><史記 世家 권39.晉世家>
▶ 辛兪 : 欒盈의 家臣.
14. 진 시황제에게 복수를 한 留侯 張良.
-이 글은 <史記 留侯世家>에서 인용되었다.
留侯張良之大父開地相韓昭侯、宣惠王、襄哀王, 父平相釐王、悼惠王。
留侯 張良의 할아버지 張開地는 韓나라 昭侯‧宣惠王‧襄哀王의 재상을 지냈고, 아버지 張平은 釐王‧悼惠王의 재상을 지냈다.
悼惠王二十三年平卒,二十歲秦滅韓,良年少未宦事韓。
도혜왕 23년에 장평이 죽고, 장평이 죽은 지 20년에 秦나라가 韓나라를 멸망시키니, 장량은 나이가 어려서 韓나라에서 벼슬하지 못하였다.
韓破,良家僮三百人,弟死不葬,良悉以家財求刺客刺秦王,為韓報仇,以大父、父,五世相韓故.
韓나라 멸망함에 장량의 집 노복이 3백 명이었으나, 아우가 죽어도 장사지내지 않고 장량이 家財를 모두 털어 자객을 구하여 秦王을 죽여 韓나라를 위해 복수하려 함은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등 5대 동안 韓나라의 재상을 지냈기 때문이었다.
遂學禮淮陽,東見滄海君,得力士, 為鐵椎, 重百二十斤.
마침내 淮陽에서 예법을 배우고 동방으로 가서 滄海君을 만나 力士를 얻고 철퇴를 만드니 무게가 120근이었다.
秦皇帝東遊,良與客狙擊秦皇帝於博浪沙,誤中副車.
秦始皇이 동쪽으로 순시함에, 장량이 자객과 함께 진황제를 博浪沙에서 저격하였으나, 잘못하여 뒤따르는 수레를 맞히고 말았다.
秦皇帝大怒,大索天下,求購甚急.
진시황이 크게 노하여 천하를 대대적으로 수색하며, 현상금을 걸어 매우 급하게 자객을 잡으러 나섰다.
良更易姓名,深亡匿,後卒隨漢報秦。
장량이 성명을 바꾸고 깊은 곳으로 도망쳐 숨었다가 후일 마침내 漢나라를 따르며 秦나라에 보복하였다.
▶ 留侯張良 : 張良의 字는 子房이며 시호는 文成公이다. 博浪沙에서 秦始皇을 습격했으나 실패하고 下邳에 은신하고 있을 때 黃石公으로부터 <太公兵法書>를 물려받았다. 陳勝·吳廣의 난이 일어났을 때 유방의 진영에 속하였으며, 후일 項羽와 유방이 만난 '홍문의 會'에서는 유방의 위기를 구하였다. 선견지명이 있는 策士로서 한나라의 서울을 秦나라의 故地인 關中으로 정하고자 한 劉敬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蕭何와 함께 책략에 뛰어나 한나라 창업에 힘썼다. 그 공으로 留侯에 책봉되었다. 韓信, 蕭何와 더불어 漢初三傑로 일컬어진다. [史記 世家] 권55.留侯世家
▶ 大父 : 祖父
▶ 韓昭侯, 宣惠王, 襄哀王, 釐王, 悼惠王 : 三晋 분립 후의 한나라의 6대~10대 군주.
▶ 父平 : 장량의 아버지 張平.
▶ 淮陽 : 漢나라 때의 땅 이름. 지금의 河南省 淮陽縣 남서쪽
▶ 倉海君 : 秦나라 때 東夷의 君長. 기원전 218년 장량이 창해군에게서 大力士를 얻어 秦始皇을 철퇴로 저격하였다.
▶ 博浪沙 : 옛 땅 이름. 지금의 河南省 原陽縣 東關.
▶ 鐵椎 : 철퇴.
▶ 副車 : 황제를 隨行하는 수레.
15.管鮑之交
鮑叔死,管仲舉上衽而哭之,泣下如雨,從者曰:
「非君父子也,此亦有說乎?」
鮑叔이 죽자 管仲이 앞섶을 걷어 띠에 꽂고 통곡하여 눈물을 비 오듯이 흘리니, 시종이 물었다.
“君과 父子 사이가 아닌데, 여기에 또한 이유가 있습니까?”
管仲曰:
관중이 말하였다.
「非夫子所知也.
“자네가 알 바가 아니다.
吾嘗與鮑子負販於南陽,吾三辱於市,鮑子不以我為怯,知我之欲有所明也;
내가 일찍이 포숙과 함께 南陽에서 봇짐장사를 함에 내가 세 차례나 저자에서 모욕을 당하여도 포숙이 나를 겁쟁이라 여기지 않았으니, 이것은 나의 욕망에 증명하려 함이 있음을 알아준 것이다.
鮑子嘗與我有所說王者,而三不見聽,鮑子不以我為不肖,知我之不遇明君也;
포숙이 일찍이 나와 세 차례 왕에게 유세하여 세 번 다 따라주지 않아도, 포숙이 나를 어리석다고 여기지 않았으니, 이것은 내가 明君을 만나지 못했음을 알아주었기 때문이다.
鮑子嘗與我臨財分貨,吾自取多者三,鮑子不以我為貪,知我之不足於財也。
포숙이 일찍이 나와 재물을 두고 돈을 나눔에, 내가 많이 가지기가 3번이었으나, 포숙이 나를 탐욕스럽다 여기지 않았으니, 이것은 내가 재물이 부족함을 알아주었기 때문이다.
生我者父母,知我者鮑子也。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요,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이다.
士為知己者死,而況為之哀乎!」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기도 하는데, 하물며 그를 위해 애통해함이랴!”
▶ 鮑叔 : 鮑叔牙. 春秋時代 濟나라의 정치가. 管鮑之交라 일컬어지는 친구 管仲을 濟나라의 桓公에게 추천하여 桓公의 정치를 도왔다.
▶ 管仲 : 管仲의 이름은 夷吾이며, 齊桓公과 적대관계였으나 환공의 신하 鮑叔의 추천에 의하여 환공의 신하로서 재상이 된 후 제나라를 춘추5패 중 제일의 강국으로 만든 공적을 세웠다.
▶ 擧上衽 : 深衣의 앞섶을 허리띠에 꽂다. 擧는 꽂는다는 뜻이고, 上衽은 深衣의 앞섶이다. 《禮記》 〈問喪〉에 “어버이가 막 돌아가셨을 때 비녀를 꽂아 천으로 머리를 싸고 맨발을 하며 심의의 앞섶을 허리띠에 꽂고 손을 마주 잡고 곡한다.[親始死 鷄斯 徒跣 扱上衽 交手哭]”라 하였다.
▶ 說 : 설명. 이론. 학설.
▶ 嘗 : 일찍이. 이전에
▶ 負販 : 행상. 봇짐장사
▶ 三見 : 세 번 당하다. 見은 ‘당하다’의 의미.
▶ 不肖 : 현명하지 않다. 못나다.
16. 趙氏 孤兒
-이 글은 <史記 趙世家>에서 인용한 글이다.
晉趙盾舉韓厥,晉君以為中軍尉;
趙盾死,子朔嗣為卿。
晉나라 趙盾이 韓厥을 천거하니 晉君이 中軍尉로 삼았고,
조돈이 죽자 아들 趙朔이 계승하여 卿이 되었다.
至景公三年,趙朔為晉將,朔取成公姊為夫人,大夫屠岸賈,欲誅趙氏.
景公 3년(기원전 597년)에 조삭은 晉將이 되었고, 晉成公의 누이를 부인으로 삼았는데, 대부 屠岸賈가 조씨를 없애려고 하였다.
初趙盾在, 夢見叔帶持龜要而哭甚悲,已而笑拊手且歌.
당초 조돈이 살아 있을 때 꿈에 보기를, 叔帶가 손으로 허리를 잡고 매우 슬프게 곡하다가 얼마 뒤에 웃고 손뼉을 치며 노래하였다.
盾卜之占,垂絕而後好,趙史援占曰:
此甚惡非君之身,及君之子,然亦君之咎也。
조돈이 점을 쳐보니 龜甲에 나타난 균열이 끊어졌다가 뒤에 좋아졌는데, 조씨의 사관 援이 점괘를 풀이하였다.
“이 꿈의 매우 나쁨이 그대 자신이 아니라 그대의 아들에 미치지만, 역시 그대의 허물로 인한 것입니다.”
至子趙朔,世益衰.
아들 조삭에 이르러 가세가 갈수록 쇠약해졌다.
屠岸賈者,始有寵於靈公,及至於晉景公,而賈為司寇,將作難,乃治靈公之賊, 以至趙盾, 遍告諸將曰:
「趙穿弒靈公,盾雖不知, 猶為首賊.
臣殺君,子孫在朝,何以懲罪,請誅之!」
屠岸賈는 처음에 晉靈公의 총애를 받다가, 晉景公 때에 이르러 司寇가 되어 반란을 일으키려 하여, 영공을 시해한 역적을 다스림에 조돈을 연루시키고 장수들에게 두루 알렸다.
“趙穿이 영공을 시해함에 조돈이 비록 몰랐으나 그래도 역적의 우두머리이오.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였는데 자손이 조정에 있으니 무슨 수로 죄인을 징벌하겠소? 그들을 주살하기를 청하오!”
韓厥曰:
「靈公遇賊,趙盾在外,吾先君以為無罪,故不誅;
今諸君將誅其後,是非先君之意而後妄誅;
妄誅謂之亂臣,有大事而君不聞,是無君也。」
韓厥이 말하였다.
“영공이 해를 입음에 조돈은 외지에 있었으매, 우리 선군께서 무죄라고 여겨 죽이지 않았소.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그의 후손을 죽이려는 함은 선군의 뜻이 아닌데도 뒤늦게 함부로 죽이는 것이오.
함부로 사람을 죽임을 亂臣이라 하고, 큰일이 있는데도 군주가 알지 못하면 군주를 무시함이오.”
屠岸賈不聽,厥告趙朔趨亡,趙朔不肯,曰:
「子必不絕趙祀,朔死且不恨。」
도안가가 듣지 않자 한궐이 조삭에게 급히 도망치라고 말했으나 조삭은 따르려 하지 않고 말하였다.
“그대가 기필코 조씨의 제사를 끊어지지 않게 해준다면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소.”
韓厥許諾,稱疾不出.
한궐이 허락하고 병을 핑계로 외출하지 않았다.
賈不請而擅與諸將攻趙氏於下宮,殺趙朔、趙括、趙嬰齊,皆滅其族;
도안가는 경공에게 주청하지 않고 마음대로 장수들과 下宮에서 조씨를 공격하여 趙朔‧趙同‧趙括‧趙嬰齊를 죽이고 그 일족을 모두 멸하였다.
朔妻成公姊有遺腹,走公宮匿,後生男, 乳,朔客程嬰持亡匿山中.
조삭의 아내는 成公의 누나로 유복자를 임신 중이었는데, 경공의 궁으로 달아나 숨어 있다가 나중에 아들을 낳으니, 젖먹이 때에 조삭의 門客 程嬰이 이 아이를 데리고 도망하여 산속에 숨었다.
居十五年,晉景公疾,卜之曰:
「大業之後不遂者為祟。」
15년이 지나, 진 경공이 병이 나서 점을 치니 점괘에 일렀다.
“大業의 후손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자가 빌미가 되었다.”
景公疾問韓厥,韓厥知趙孤在,乃曰:
경공이 급히 한궐에게 묻자, 한궐은 조씨의 孤兒가 살아 있음을 아는지라 말하였다.
「大業之後,在晉絕祀者,其趙氏乎!
“大業의 후손으로 晉나라에서 제사가 끊어진 것은 조씨이겠습니다!
夫自中衍皆嬴姓也,中衍人面鳥喙,降佐殷帝太戊及周天子,皆有明德.
中衍으로부터 모두 嬴姓인데, 중연은 사람의 얼굴에 새의 부리로 나서 그 후손은 殷帝 太戊를 보좌하고 周 天子까지 보좌함에 모두 밝은 덕행이 있었습니다.
下及幽厲無道,而叔帶去周適晉,事先君文侯,至於成公,世有立功,未嘗有絕祀;
후대에 幽王과 厲王이 무도함에 이르러, 叔帶가 周나라를 떠나 晉나라로 와서 선군 文侯를 섬겼고 成公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공을 세우면서 일찍이 제사가 끊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今及吾君獨滅之,趙宗國人哀之,故見龜策,唯君圖之。」
그런데 우리 군주에 이르러 유독 멸족하니 조나라 종실과 국민이 애통해하매, 귀책에 나타났으니, 군주께서는 그 점을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景公問曰:
「趙尚有後子孫乎?」
경공이 물었다.
“조씨 집안에 아직 후손이 있소?”
韓厥具以實對,於是景公乃與韓厥謀立趙孤兒,召而匿之宮中.
한궐이 자세히 사실대로 대답하자, 경공이 한궐과 모의하기를 조씨의 고아를 세우기로 하고, 불러서 궁중에 숨겨두었다.
諸將入問疾,景公因韓厥之眾,以脅諸將而見趙孤,孤名曰武.
장수들이 入宮하여 문병하자, 경공이 한궐의 병력을 이용하여 장수들을 협박해서 가서 조씨 고아를 만나게 하고, 고아의 이름을 武라 하였다.
諸將不得已乃曰:
「昔下宮之難屠岸賈為之,矯以君令,并命群臣,非然孰敢作難.
장수들이 하는 수 없어서 말하였다.
“옛날 下宮의 난은 도안가가 한 짓으로, 君令이라 사칭하여 아울러 신하들에게 명령하였으니, 그렇지 않았다면 누가 감히 난을 일으키겠습니까?
微君之疾,群臣固且請立趙後,今君有令,群臣之願也。」
군주께서 병이 나지 않았으면 신하들이 본래 조씨의 후손을 세우자고 요청하려 했으매, 군주께서 명령하심이 신하들의 바람입니다.”
於是召趙武、程嬰遍拜諸將軍,將軍遂返與程嬰趙武攻屠岸賈,滅其族,復與趙武田邑如故。
이에 趙武와 程嬰을 불러 장군들에게 두루 절을 올리게 하니, 장수들이 마침내 돌아가서 정영, 조무와 함께 도안가를 공격하여 그의 일족을 멸하고, 조무에게 원래의 田地와 采邑을 회복하여 주었다.
故人安可以無恩,夫有恩於此故復於彼;
非程嬰則趙孤不全,非韓厥則趙後不復。
그러니 사람이 어떻게 은혜를 베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곳에서 은혜를 베풀면 저곳에서 보답을 받는다.
程嬰이 아니었으면 조씨의 고아가 보전되지 못하고, 韓厥이 아니었으면 조씨의 후예는 회복되지 못하였을 터이다.
韓厥可謂不忘恩矣。
한궐은 은혜를 잊지 않았다고 이를 만하다.
▶ 趙盾(조돈) : 趙宣子. 趙宣盟. 이름은 盾이며,시호는 宣,존칭으로 조맹 혹은 선맹이라 불리었다. 춘추시대 晉나라의 대부로 조최의 아들이다.
▶ 韓厥 : 춘추시대 晉나라 卿이다. 韓獻子 또는 헌자라 한다. 齊나라를 정벌한 공으로 新中軍將이 되었고, 都岸賈가 趙氏를 멸할 때 살아남은 趙朔의 아들 趙武를 도와 조씨의 田邑을 되찾게 하였다.
▶ 景公 : 晉 景公. 춘추시대 晉나라의 군주로 이름은 獳이다. 據라는 설도 있다. 진성공의 아들로 아버지가 초나라와 강화한 陳나라를 토벌하기 위해 연합군을 이끌고 출전하였다. 사망하자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 趙朔 : 조돈의 아들. 시호가 莊이고, 趙莊子라 한다. 조돈이 죽자 아들 朔이 뒤를 이었다. 趙朔은 진나라 경공 3년(기원전 597년)에 진나라의 下軍을 거느리고 정나라를 구원하러 갔다가 楚莊王과 황하 가에서 싸웠다. 趙朔은 晉나라 성공의 누나를 부인으로 맞았다. 屠岸賈가 조씨를 멸할 때 살해되었는데, 그의 유복자 趙武가 살아남아 재기하였다.
▶ 趙朔妻成公姊 : 조삭의 처는 성공의 누이로 莊姬이다. 成公은 춘추시대 晉나라 군주로 이름은 黑臀이며 文公의 아들이다.
▶ 屠岸賈 : 晉나라 경공 시기의 간신. 暗君인 晉景公에게 부화뇌동해 온갖 아첨과 술수, 참소 등을 일삼으면서 진나라 조정을 혼란과 퇴폐로 이끌었다. 기원전 584년에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던 趙朔을 비롯해 趙氏 일문 전체를 몰살하는 일대 참극을 벌였으나 그 후 趙武와 程嬰의 공격을 받아 멸족되었다.
▶ 初趙盾在 : 初趙盾在時. 《群書拾補》에는 “宋本‧元本‧楚府本에 모두 ‘時’자가 있다.” 하였고, 《說苑校證》에는 “明鈔本에 ‘時’자가 있고, 《史記》 〈趙世家〉에도 있어 보충한다.” 하하였다.
▶ 叔帶 : 趙氏의 시조인 趙造父의 7대손이다. 周幽王이 무도하자, 周나라를 떠나 晉나라에 들어와 文侯를 섬겨 조씨 가문을 처음 晉나라에 세웠다.
▶ 龜要 : 要는 腰와 같다. 허리. 龜는 연문. 《史記》 〈趙世家〉에도 ‘龜’자가 없다.
▶ 拊 : 손바닥으로 치다.
▶ 卜之占 : 거북의 등딱지를 불에 지져서 생기는 균열로 길흉을 점친 것을 말한다.
▶ 史援 : 이름이 援인 사관.
▶ 趙史援 : 조씨 집의 史官. 援은 이름이다.
▶ 晉靈公 : 춘추시대 晉나라의 군주로 이름은 夷皐이며 襄公의 아들이다. 어린 나이로 즉위하여 장성하자 사치하고 난폭해져 마구 사람을 죽였다. 조돈의 동생 趙穿에게 살해당하였다.
▶ 致 : 연루시키다.
▶ 靈公之賊 : 晉靈公을 시해한 역적.
▶ 趙穿弑靈公 : 趙穿은 춘추시대 晉나라의 대부로 趙盾의 조카이다. 영공이 趙盾을 죽이려고 하자 조돈은 달아났으며, 趙穿이 영공을 시해한 뒤에 돌아와 영공의 동생 黑臀(:成公)을 옹립하였다.
▶ 下宮 : 조상의 신주를 모신 사당. 後宮.
▶ 趙朔, 趙括, 趙嬰齊 : 조최의 아들들로 趙盾의 아우이다. 《史記》 〈趙世家〉와 《新序》 〈節士〉에 ‘趙同’ 두 글자가 있어 이를 따라 보충하였다.
▶ 程嬰 : 程嬰은 진나라의 재상인 趙朔의 친구이며, 公孫杵臼는 조삭의 門客이다. 진나라 대부 屠岸賈는 晉景公에게 온갖 아첨과 참소 등을 일삼으면서 진나라 조정을 혼란과 퇴폐로 이끌었으며, 진 경공 3년(기원전 584년)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던 趙朔을 비롯해 趙氏 일문 전체를 몰살하는 일대 참극을 벌였다. 이 당시 조삭의 아내 莊姬가 유복자를 낳았는데 程嬰과 公孫杵臼가 계략을 세워 공손저구가 남의 자식을 대신 조씨 孤兒(:조무)로 속이고 함께 죽는 비상수단을 써 조삭의 유복자 趙武를 구사일생으로 구출하였다. 정영이 조무를 데리고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었다가 15년 후에 韓厥의 도움으로 조무를 조씨의 後嗣로 세우게 하였다
훗날 동진의 시인 陶淵明은 공손저구와 정영의 일을 讀史述九章에 기록하여 칭송하였다.<史記 趙世家>
[陶淵明集] 讀史述九章 중 제4장 - 陶淵明
▶ 大業 : 秦나라와 趙나라의 시조. 秦나라의 선조는 顓頊帝의 후대 손녀인 女修이다. 여수가 베를 짜고 있는데 제비가 알을 떨어뜨려서 여수가 이 알을 삼키고 아들 大業을 낳았다. <史記 本紀 권05. 秦本紀>
▶ 祟 : 빌미. 귀신이 사람에게 내리는 재앙
▶ 趙孤 : 趙氏 孤兒. 趙武. 조삭의 아내 莊姬가 낳은 유복자. 程嬰‧公孫杵臼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뒤에 卿이 되고 조씨를 중흥하였다. 시호는 文子이다.
▶ 中衍 : 中衍. 殷나라 사람으로 秦나라의 조상.
▶ 鳥喙 : 새의 부리.
▶ 降 : 이후.
▶ 殷帝太戊 : 은나라의 제9대 왕으로 성은 子이며, 이름은 太戊, 王號는 中宗이다. 현인 伊陟을 재상으로 삼아 상나라를 부흥시켰다.
▶ 幽厲 : 周나라 幽王과 厲王을 말한다. 幽王은 周 宣王의 아들로 周나라 12대왕으로 정치에는 관심이 없이 여흥과 주색만을 탐닉하다 서주 왕실을 망하게 하였다. 厲王은 주나라 10대왕으로 이름은 胡이다. 재물을 탐하고 비방하는 사람을 감시하는 등 포학과 사치로 폭동이 일어나자 彘로 달아나 그곳에서 죽었다.
▶ 文侯 : 晉文侯. 춘추시대 진나라의 제11대 군주로 이름은 仇이고, 穆侯의 아들이다. 목후 때 태자가 되었다. 목후가 죽고 동생 殤叔이 즉위하자 달아났다. 나중에 무리를 이끌고 상숙을 기습한 뒤 진나라 군주가 되었다.
▶ 龜策 : 고대에 거북이의 등껍질과 蓍草로 점을 치는 것을 말한다. 蓍草는 가새풀로 점을 치는 데 사용한 것을 말하며 후에는 대나무를 깎아 시초 대신 점을 쳤으므로 筮竹이란 말이 생기게 되었다.<참고>[史記列傳] 권128 龜策列傳
16-1. 蘧伯玉
-저본에는 이 章이 없으나, 《群書拾補》에서 宋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기에 이에 따라 보충하였다. 《說苑校證》에는 明鈔本에도 “이 장이 있다.” 하였다.
蘧伯玉得罪於衛君, 走而之晉, 晉大夫有木門子高者, 蘧伯玉舍其家.
蘧伯玉이 衛君에게 죄를 얻어 달아나서 晉나라로 가니, 晉의 大夫 중에 木門子高라는 사람이 있어서 거백옥이 그의 집에 묵었다.
居二年, 衛君赦其罪而反之, 木門子高使其子送之, 至於境.
2년이 지나, 衛君이 그의 죄를 사면하고 돌아오게 하자, 목문자고는 그의 아들을 시켜 거백옥을 전송하여 국경에 이르렀다.
蘧伯玉曰
「鄙夫之 子反矣。」
거백옥이 말하였다.
“내가 갈 테니 그대는 그만 돌아가라.”
木門子高後得罪於晉君, 歸蘧伯玉, 伯玉言之衛君曰
「晉之賢大夫木門子高 得罪於晉君 願君禮之。」
목문자고가 후일에 晉君에게 죄를 얻어 거백옥에게 의탁하자, 거백옥이 衛君에게 말하였다.
“진나라의 賢大夫 목문자고가 晉君에게 죄를 얻었으니 군주께서는 禮遇하십시오.”
於是衛君郊迎之, 竟以爲上卿.
이에 衛君이 郊外에 나가 맞이하고 마침내 上卿으로 삼았다.
▶ 蘧伯玉 : 춘추시대 衛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瑗이다. 伯玉은 字이다. 靈公 때의 大夫이다. 50세에 지난 49년간의 잘못을 깨달았다고 하며, 자신에게 엄격하여 자기 계발과 改過에 힘썼다. 《論語 憲問》‧《孔子家語 弟子行》‧《淮南子 原道訓》
▶ 木門子高 : 木門은 晉나라 邑 이름이다. 《春秋左氏傳 襄公 27년》 子高는 複姓인데 평생 행적은 미상이다.
17. 晏子의 은혜를 갚은 北郭騷
-이 글은 <晏子春秋 雜上>과 <呂氏春秋 士節>에 기록되어 있다.
北郭騷踵見晏子曰:
「竊悅先生之義,願乞所以養母者。」
北郭騷가 晏子의 집에 가서 안자를 만나 말하였다.
“삼가 선생의 도의를 좋아하오니 어머니를 봉양할 것을 주시기 바랍니다.”
晏子使人分倉粟府金而遺之,辭金而受粟。
안자가 사람을 시켜 창름의 곡식과 창고의 돈을 나누어주자, 돈은 사양하고 곡식만 받았다.
有間,晏子見疑於景公,出奔,北郭子召其友而告之曰:
「吾悅晏子之義而嘗乞所以養母者。
吾聞之曰:養其親者,身更其難;
今晏子見疑,吾將以身白之。」
얼마 뒤에 안자가 景公에게 의심을 받아 도망치니, 북곽소가 그의 벗을 불러 말하였다.
“내가 안자의 도의를 좋아하여 어머니를 봉양할 것을 달라고 한 적이 있었네.
내가 듣기에 ‘그의 어버이를 봉양한 자에게는 자신의 몸으로 그의 환난을 갚아야 한다.’라고 하네.
지금 안자가 의심을 받고 있으니 나는 내 몸으로 그의 억울함을 밝히려 하네.”
遂造公庭求復者曰:
「晏子天下之賢者也, 今去齊國,齊國必侵矣.
方必見國之侵也,不若先死請絕頸以白晏子。」
이어 경공의 궁정에 가서 말을 고할 자를 찾아서 말하였다.
“안자는 천하의 현자인데, 齊나라를 떠났으니 제나라는 틀림없이 침략을 받을 터입니다.
나라가 곧 침략을 당할 것이 틀림없어서 먼저 죽음만 못하매, 저의 목을 끊어 안자의 억울함을 밝히겠습니다.”
逡巡而退,因自殺也。
몇 걸음 뒤로 물러나서 그대로 자살하였다.
公聞之大駭,乘馳而自追晏子,及之國郊,請而反之.
경공이 듣고 몹시 놀라더니, 역마를 타고 직접 안자를 쫓아가서 국경에서 그를 따라잡아 돌아가자고 청하였다.
晏子不得已而反之,聞北郭子之以死白己也,太息而歎曰:
「嬰不肖,罪過固其所也,而士以身明之,哀哉!」
안자가 부득이 돌아와서 북곽소가 죽음으로써 자신의 억울함을 밝혔음을 알고 길게 한숨을 쉬며 탄식하였다.
“내가 어리석으니 벌을 받음이 본래 마땅한데, 선비가 자신의 몸으로 나의 억울함을 밝혔으니 슬프도다!”
▶ 北郭騷 : 춘추시대 齊나라 사람으로 北郭은 複姓, 騷는 이름이다.
▶ 踵 : 이르다. 도달하다. <안자춘추>에는 踵門으로 기록하고 있다.
▶ 晏子 : 晏嬰. 춘추시대 齊의 명재상으로 자는 仲, 시호는 平이다. 齊나라 靈公, 莊公, 景公 3대를 섬긴 재상으로서 절약 검소하고 군주에게 기탄없이 간언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 竊 : 남몰래. 마음속으로.
▶ 見疑 : 의심받다.
▶ 景公 : 齊 景公. 춘추시대 제나라의 국군 姜杵臼. 궁실을 짓고 사냥개와 말을 모으기를 좋아하였으며 세금과 형벌을 무겁게 하며 사치가 끝이 없었다. 재위 동안 제나라의 公室이 쇠퇴하고 田氏 세력이 대두하였다.
▶ 身更 : 몸으로 갚다. 更은 갚다. 배상하다.
▶ 造 : 이르다. 다다르다.
▶ 復者 : 전달 담당자.
▶ 逡巡而退 : 머뭇거리며 물러나다. 逡巡은 뒤로 멈칫 물러나다.
▶ 乘馳 : <안자춘추>에는 乘馹로 기록하고 있다. 驛馬를 타다.
▶ 國郊 : 국경.
18. 衛나라의 길을 빌려 지나간 보답
吳赤市使於智氏,假道於衛,甯文子具紵絺三百製,將以送之.
吳나라의 赤巿이 晉나라 智氏에게 사신으로 가려고 衛나라 길을 빌림에, 위나라 大夫 甯文子가 모시와 갈포 3백 制를 마련하여 보내주려고 하였다.
大夫豹曰:
「吳雖大國也,不壞交假之道,則亦敬矣,又何禮焉!」
大夫 豹가 말하였다.
“오나라가 비록 대국이지만 친교를 허물지 않고 길을 빌려주어 경의를 표하였는데 또 무슨 예물을 보낸단 말입니까!”
甯文子不聽,遂致之吳赤市。
甯文子가 듣지 않고 마침내 예물을 오나라 적불에게 보내었다.
至於智氏,既得事,將歸吳,智伯命造舟為梁,吳赤市曰:
「吾聞之,天子濟於水,造舟為梁,諸侯維舟為梁,大夫方舟。
方舟,臣之職也,且敬太甚必有故。」
적불이 지씨에게 도착하여 일을 마치고 오나라로 돌아가려 함에, 智伯이 배다리를 만들라고 명하자 吳의 적불이 말하였다.
“내가 듣기에 천자는 물을 건넘에 배다리를 만들고, 제후는 네 척의 배로 다리를 만들며, 대부는 두 척의 배를 이어서 건넌다고 한다.
두 척의 배가 나의 신분에 맞는데 공경함이 몹시 심하니, 필시 이유가 있을 터이다.”
使人視之,視則用兵在後矣,將亦襲衛。
사람을 보내 살펴보니 後面에 군대를 거느려 위나라를 습격하려 하였다.
吳赤市曰:
「衛假吾道而厚贈我,我見難而不告,是與為謀也。」
吳의 적불이 말하였다.
“위나라는 나에게 길을 빌려주고 많은 선물까지 주었는데, 내가 재난을 알면서 알려주지 않음은 지백의 謀議에 참여한 게 된다.”
稱疾而留,使人告衛,衛人警戒,智伯聞之,乃止。
병을 핑계로 머물면서 사람을 보내 위나라에 알려주니, 위나라 군주가 경계를 강화하매 지백이 알고 계획을 중지하였다.
▶ 吳赤巿 : 吳나라 大夫
▶ 智氏 : 智伯. 춘추시대 말 전국시대 초기의 晉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瑤이며, 荀瑤 또는 智襄子라고도 부른다. 晉出公 17년에 趙, 韓, 魏와 함께 范氏와 中行氏의 땅을 나눠 邑으로 삼았다.
▶ 甯文子 : 전국시대 衛나라 大夫. <戰國策 衛策>에는 南文子로 기록하고 있다.
▶ 紵絺三百製 : 紵는 모시베. 絺는 올이 가는 葛布이며 製는 制와 통용되며 고대 布帛의 길이를 재는 단위로 1丈 8尺이 1制이다.
▶ 造舟爲梁 : 물가에서 배를 만들어 나란히 물에 띄운 다음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 다리를 만들어 통행하는 것으로, 후대의 浮橋이다. 배를 나란히 연결시키는 것을 造舟라고 한다.
▶ 維舟爲梁 : 네 척의 배를 나란히 매어 연결해 浮橋를 만드는 것.
▶ 方舟 : 두 척의 배를 나란히 매어 연결함을 이른다.
19.淳于髡의 지혜
楚魏會於晉陽,將以伐齊,齊王患之,使人召淳于髡曰:
「楚魏謀欲伐齊。願先生與寡人共憂之。」
楚나라와 魏나라가 晉陽에서 회맹하여 齊나라를 토벌하려고 하자, 齊威王이 이를 걱정하여 사람을 보내 淳于髡을 불러 말하였다.
“초나라와 위나라가 우리 제나라를 토벌하려고 모의하니, 선생은 과인과 근심을 함께하기 바라오.”
淳于髡大笑而不應,王復問之,又復大笑而不應,三問而不應.
순우곤이 크게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으니, 왕이 다시 물었으나 또 크게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으며, 세 번 물었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王怫然作色曰:
「先生以寡人國為戲乎?」
왕은 발끈 화를 내고 얼굴을 붉히며 말하였다.
“선생은 과인의 나라를 장난 거리로 여기오?”
淳于髡對曰:
「臣不敢以王國為戲也.
臣笑臣鄰之祠田也,以奩飯與一鮒魚。
其祝曰:下田洿邪,得穀百車,蟹堁者宜禾。
臣笑其所以祠者少而所求者多。」
순우곤이 대답하였다.
“신은 감히 대왕의 나라를 장난거리로 여기지 못합니다.
신이 웃은 것은 이러합니다.
신의 이웃 사람이 농지의 신에 제사 지내는데 한 그릇의 밥과 한 마리의 붕어를 제물로 썼습니다.
축원하기를, ‘낮은 곳의 나쁜 농지에는 백 수레의 곡식을 얻게 하시고, 높은 곳의 농지에는 벼가 잘 자라게 해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그가 제사에 쓰는 제물은 적은데 요구함이 많은 것을 웃었습니다.”
王曰善,賜之千金,革車百乘,立為上卿。
왕이 “좋소.”라고 말하고, 천금과 전차 일백 대를 내려주고, 순우곤을 上卿으로 삼았다.
▶ 齊王 : 齊威王. 전국시대 제나라의 군주로 성은 媯이고, 씨는 田, 이름은 因齊이다. 田齊桓公 午의 아들이다. 재임 중에 개혁을 통하여 부국강성한 나라를 만들었고, 스스로 王으로 칭하였다. 魏나라를 포위하여 趙나라와 韓나라를 구원하여 覇主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 淳于髡 : 익살과 다변으로 유명했던 전국시대 제나라의 변론가이며 滑稽를 잘하여 여러 차례 제후에게 사신으로 갔으나 굴욕을 당하지 않았다. 齊威王을 설득하여 따르게 하고, 제나라 주변의 제후들이 齊나라를 침략하자 기지로 이를 막아냈다.
“淳于髡은 齊나라 사람의 데릴사위였다. 키는 일곱 척도 못되지만 익살스럽고 변설에 능해 제후들에게 자주 사신으로 갔으나 굴욕을 당한 적이 없었다. 제나라 威王 때 위왕이 수수께끼를 좋아했으며, 음탕하게 놀면서 밤새워 술 마시기를 즐겨하여 술에 빠져서 나랏일을 돌보지 않고 정사를 경대부에게 맡겼다. 문무백관들이 문란해지고 제후들이 잇따라 침입하여 나라의 멸망이 위기에 봉착하여 일순간에 놓여 있었으나 측근들은 감히 간언하지 못하였다.”<史記列傳 권126 滑稽列傳>
▶ 怫然作色 : 벌컥 화를 내며 얼굴을 붉히다.
▶ 奩飯與一鮒魚 : 한 그릇의 밥과 한 마리의 붕어
▶ 汙邪 : 움푹 패인 논밭. 토질이 나쁜 농지.
▶ 蟹堁 : 蟹螺. 지세가 높은 땅.
▶ 革車 : 보급 전차. 운반용 수레.
20. 찔레를 심은 자는 여름에 그 아래에서 쉬지 못한다.
陽虎得罪於衛,北見簡子曰:
「自今以來,不復樹人矣。」
陽虎가 衛나라에서 죄를 지어 북으로 가서 趙簡子를 만나 말하였다.
“지금 이후로 다시는 인재를 양성하지 않겠습니다.”
簡子曰:
「何哉?」
조간자가 물었다.
“무엇 때문이오?”
陽虎對曰:
「夫堂上之人,臣所樹者過半矣;
朝廷之吏,臣所立者亦過半矣;
邊境之士,臣所立者亦過半矣。
今夫堂上之人,親郤臣於君;
朝廷之吏,親危臣於眾;
邊境之士,親劫臣於兵。」
양호가 대답하였다.
“朝堂 위에 있는 사람에는 제가 양성한 사람이 절반이 넘고,
조정의 관리에는 제가 발탁한 사람이 역시 절반이 넘으며,
변경의 壯士는 제가 발탁한 사람이 역시 절반이 넘습니다.
그런데 조당 위에 있는 사람은 직접 군주에게 저를 배제하라고 하고,
조정의 관리는 직접 大衆으로 저를 위협하였으며,
변경의 장사는 직접 무력으로 저를 협박하였습니다.”
簡子曰:
조간자가 말하였다.
「唯賢者為能報恩,不肖者不能。
“賢者만이 은혜를 갚을 수 있으며, 어리석은 사람은 은혜를 갚지 못하오.
夫樹桃李者,夏得休息,秋得食焉。
복숭아와 자두를 심은 사람은 여름에 그늘에서 쉬고 가을에 과실을 먹을 수 있소.
樹蒺藜者,夏不得休息,秋得其刺焉。
찔레를 심은 사람은 여름에 그 아래에서 쉬지 못하고 가을에 그 가시를 얻을 뿐이오.
今子之所樹者,蒺藜也,自今以來,擇人而樹,毋已樹而擇之。」
지금 그대가 심은 것은 찔레이니 지금 이후로는 사람을 가려서 양성하고 이미 양성하고 나서는 가리지 마시오.”
▶ 陽虎 : 춘추시대 말기 魯나라 사람. 자는 貨이고, 얼굴이 孔子와 닮았다고 한다. 季氏의 家臣으로, 季平子를 섬겼다. 계평자가 죽자 권력을 장악하였다. 일찍 季桓子를 잡아 강제로 동맹을 맺게 하였다. 魯定公 8년에 三桓을 제거하고 삼환의 嫡子들을 모두 죽이려다가 실패하고 陽關으로 달아났다. 다음 해에 삼환이 양관을 공격하자 齊나라로 달아났고, 다시 晉나라로 달아났다. 趙盾에게 귀의하여 趙簡子의 謀臣이 되었다. [史記 世家] 권33.魯周公世家
▶ 簡子 : 趙簡子. 趙鞅. 춘추시대 말기 晉나라 사람으로 趙孟 또는 志父로도 불린다. 진나라 내부에서 6卿이 세력 다툼을 벌일 때 2경인 范氏와 中行氏를 몰아내고 趙나라를 일으키는 바탕을 마련하였다.
※정공 11년(기원전 501년)에 노나라의 陽虎가 晉나라로 도망쳐오자 趙鞅簡子가 거처를 내주었다. <史記 권39.晉世家>
▶ 樹人 : 인재를 양성하다.
▶ 蒺藜 : 찔레. 科의 일년초. 황무지에서 자라며 온몸에 거센 털이 있다.
21. 東閭子가 거지가 된 사연
東閭子嘗富貴而後乞,人問之,曰:
「公何為如是?」
東閭子는 일찍이 부귀를 누렸으나 뒷날 빌어먹고 살았는데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공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소?”
曰:
동려자가 대답하였다.
「吾自知吾嘗相六七年未嘗荐一人也;
“나 스스로 안다오, 내가 일찍이 6, 7년 동안 재상을 지냈으나 한 사람도 추천하지 못했고,
吾嘗富三千萬者再,未嘗富一人;
내가 일찍이 3천만 석의 부자가 됨이 두 번이었으나, 한 사람도 부유하게 하지 못했소.
不知士出身之咎然也。
선비가 자신을 세우지 못한 허물 때문이오.
孔子曰:
『物之難矣.
小大多少各有怨惡,數之理也,人而得之,在於外假之也。』」
공자께서 말씀하시었소.
‘사물이란 헤아리기 어렵다.
크고 작고 많고 적음에 각기 원한과 싫어함이 있음은 운수의 이치이니, 사람이 이를 얻음은 외물을 빌려 쓰는 데 달려 있다.’”
▶ 東閭子 : 춘추시대 사람 이름. 동려는 제나라의 동문 이름이라고도 한다.
▶ 咎 : 저지른 잘못. 죄과.
▶ 外物 : 外界의 사물, 마음에 접촉되는 객관적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
22. 田子方이 전쟁을 반대하다. <田子方反戰>
魏文侯與田子方語,有兩僮子衣青白衣,而侍於君前,子方曰:
「此君之寵子乎!」
魏文侯가 田子方과 대화함에, 두 어린아이가 푸른 옷과 흰옷을 입고 위 문후의 앞에서 모시고 있으니, 전자방이 말하였다.
“이 아이는 군주께서 사랑하는 아들이로군요!”
文侯曰:
「非也.
其父死於戰,此其幼孤也,寡人收之。」
문후가 말하였다.
“아니오.
그의 아버지가 전쟁에서 죽었으매 이 아이가 그의 고아라서 과인이 거두었소.”
子方曰:
「臣以君之賊心為足矣,今滋甚.
君之寵此子也,又且以誰之父殺之乎?」
전자방이 말하였다.
“신은 임금의 사람을 해치는 마음이 충족되었으리라 여겼는데, 지금 보니 더욱 심하십니다.
임금께서 이 아이들을 총애하시니 장차 또 누구의 아버지를 죽이시렵니까?”
文侯愍然曰:
「寡人受令矣。」
문후가 가엾이 여기면서 말하였다.
“과인이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自是以後,兵革不用。
이 일이 있은 이후로는 군대를 쓰지 않았다.
▶ 魏文侯 : 전국시대 魏나라의 초대 제후로 성은 姬, 씨는 魏, 이름은 ‘斯’, 또는 ‘都’이다. 李悝·吳起·樂羊·西門豹 등 인재를 등용하였고, 위나라를 전국시대 최초로 패국으로 만들었다
▶ 田子方 : 魏나라의 현인으로 이름은 無擇이며 魏 文侯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데 공자의 제자인 子夏 계열의 유학자로 추정된다.<참고> <莊子 外篇 第21篇 田子方>
▶ 幼孤 : 유자녀.
▶ 賊心 : 사람을 해치는 마음.
▶ 愍然 : 불쌍히 여기다. 가엾이 여기다.
23. 吳起가 부하의 종기를 빨아주다.
吳起為魏將,攻中山,軍人有病疽者,吳子自吮其膿,其母泣之.
吳起가 魏나라 장군이 되어 중산국을 공격함에, 군인 중에 종기를 앓는 자가 있어서, 오기가 직접 그 고름을 빨아주자, 그의 어머니가 소문을 듣고 흐느껴 울었다.
旁人曰:
「將軍於而子如是,尚何為泣?」
곁에 있던 사람이 물었다.
“장군이 그대의 아들을 이처럼 돌봐주는데 어찌하여 오히려 흐느껴 우시오?”
對曰:
「吳子吮此子父之創而殺之於注水之戰,戰不旋踵而死;
今又吮之,安知是子何戰而死.
是以哭之矣!」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오기 장군이 이 아들의 아버지 상처를 빨아주어 涇水의 전쟁에서 죽었는데, 전투가 벌어지자 발을 돌릴 틈도 없이 대번에 전사하였소.
그런데 또 자식의 종기를 빨아주니 아들이 어느 전쟁에서 죽을지 어찌 알겠소?
그래서 내가 곡을 하오!”
▶ 吳起 : 吳子로 불리운다. 전국시대 군사 지도자이며 정치가였다. 위나라 사람으로 노나라, 위나라, 초나라를 섬겼다. 魏나라에서 그는 많은 큰 전투를 지휘하여 많은 공을 세웠으며, 후에 楚나라로 도주하여 悼王에 의해 재상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초나라에서 봉건 혁명을 이끌어 초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혁명이 초나라 귀족들을 노하게 하여 楚悼王이 죽은 뒤 대신들에 의해 피살되었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吳子兵法이 있다. [史記列傳] 권65 孫子吳起列傳
▶ 病疽 : 악성 종기
▶ 吮(연,전) : 빨다.
▶ 旋踵 : 등지고 돌아섬. 踵은 발꿈치 ‘종’.
※ 吮疽之仁 : 장수가 자기 부하의 종기를 빨아서 고쳐 나았다는 말의 사자성어.
24. 무도한 齊懿公의 최후
齊懿公之為公子也,與邴歜之父爭田,不勝。
齊懿公이 公子였을 때 邴歜의 아버지와 사냥의 포획물을 다투다가 이기지 못하였다.
及即位,乃掘而刖之,而使歜為僕;
즉위하자 병촉 아버지의 시체를 파내어 발목을 자르고 병촉을 마부로 삼았고,
奪庸織之妻,而使織為參乘;
庸織의 아내를 빼앗고 용직을 參乘으로 삼았다.
公游於申池,二人浴於池,歜以鞭抶織,織怒,歜曰:
「人奪女妻,而不敢怒;
一抶女,庸何傷!」
懿公이 申池에 유람할 때 병융과 용직 두 사람도 신지에서 목욕하고 있었는데, 병촉이 말채찍으로 용직을 치니 용직이 노하였는데 병촉이 말하였다.
“남이 네 마누라를 빼앗아가도 감히 노하지 않더니
너를 한 번 친 것이 뭐가 해로우냐!”
織曰:
「孰與刖其父而不病,奚若?」
용직이 말하였다.
“자기 아버지의 발목을 잘랐는데도 원한을 품지 않음과 비교하면 어떠하냐?”
乃謀殺公,納之竹中。
두 사람이 모의하여 의공을 시해하고 시체를 대나무 숲에 버렸다.
▶ 齊懿公 : 춘추시대 제나라의 제21대 후작이며, 성은 姜이고 휘는 商人이다. 제환공과 밀희의 아들이다. 효공의 뒤를 이은 이복 형인 소공이 기원전 612년에 죽고 소공의 아들인 舍가 군위에 올랐다. 商人이 무리와 함께 소공의 무덤 앞에서 제나라의 군주 舍를 시해하고 스스로 군주에 올랐다.<史記 齊太公世家>
▶ 公子 : 제후의 자제
▶ 邴歜 : 사람 이름. <사기 제태공세가>에는 丙戎으로 기록하고 있다.
▶ 爭田 : 丙戎의 아버지와 사냥을 나갔다가 포획물로 다투다 빼앗지 못한 일이 있었다. <제태공세가>에는 ‘與丙戎之父獵,爭獲不勝’으로 기록하고 있다.
▶ 刖 : 刖刑. 고대의 발꿈치를 자르는 혹형.
▶ 庸織 : 사람 이름.
▶ 仆 : 마부.
▶ 參乘 : 驂乘. 고대에 수레를 탈 때, 지위가 높은 사람은 왼쪽, 마부는 중앙, 모시는 사람이 오른쪽에 타는데, 이를 參乘이라 한다. 陪乘이라고도 한다.
▶ 申池 : 춘추전국시대 齊나라 수도 臨淄의 申門 밖에 있던 연못
25.公子宋과 公子家가 鄭靈公을 시해하다.
楚人獻黿於鄭靈公.
楚나라 사람이 鄭靈公에게 자라를 바쳤다.
公子家見公子宋之食指動,謂公子家曰:
「我如是必嘗異味。」
公子家가 영공에게 조회를 드리려는데 子宋의 집게손가락이 움직이자, 공자가에게 말하였다.
“내 손가락이 이처럼 움직이면 틀림없이 기이한 음식을 맛보았었다.”
及食大夫黿,召公子宋而不與;
영공이 대부들에게 자라탕을 먹일 때 공자송을 불러놓고 요리를 주지 않았다.
公子宋怒,染指於鼎,嘗之而出,公怒欲殺之。
공자송이 화가 나서 솥 안에 손가락을 넣어서 맛을 본 다음 나가버리자, 영공이 노하여 죽이려고 하였다.
公子宋與公子家先遂殺靈公。
공자송과 공자가가 먼저 영공을 시해하였다.
子夏曰:
「春秋者,記君不君,臣不臣,父不父,子不子者也;
此非一日之事也,有漸以至焉。」
子夏가 말하였다.
“<춘추>는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며,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비가 아비답지 못하며, 자식이 자식답지 못한 일을 기록한 것이다.
이런 일은 하루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차츰차츰 변화하여 그런 지경에 이른 것이다.”
▶ 黿 : 자라.
▶ 靈公 : 鄭靈公. 춘추시대 정나라의 군주로 이름은 夷이며, 穆公의 아들이다. 처음 등극하자 楚나라에서 자라를 바쳤는데, 이것으로 국을 끓여 먹었다. 大夫 子家와 子公이 입조하여 자공이 맛을 보려고 했지만 영공이 주지 않았다. 자공이 화가 나서 손가락을 솥에 넣어 맛을 보고는 나갔다. 화가 난 영공이 자공을 죽이려고 했는데, 자공과 자가가 먼저 살해하였다. 1년 동안 재위하였다.<춘추좌씨전 魯宣公 4년(기원전 605년)>
▶ 公子家 : 子家. 정나라의 공자 歸生.
▶ 公子宋 : 子公. 정나라의 공자 宋. 字가 子公이다.
▶ 食指動 : 집게손가락이 움직인다는 말로 어떤 일에 대한 욕망과 야심을 품는다는 뜻으로 쓰인다. 食指는 집게손가락.
▶ 子宋而不與 : 공자송을 불러놓고 요리는 주지 않았다. 정 영공이 자송의 손가락이 움직인 것을 효험이 없게 하고자 한 것이다.
▶ 染 : 담그다. 적시다.
▶ 子夏 : 전국시대 衛나라 사람으로, 성명은 卜商이다. 孔子의 제자로, 공자보다 44살 연하였다. 孔門十哲의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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