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篇에서 말하는 德은 統治者가 涵養해야 할 政治의 德을 말한다. 통치자는 時世의 어려움을 슬퍼하며 백성의 疾苦를 가엽게 여기는 마음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덕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德政을 行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대략 여덟 가지로 요약하여 제시하고 있다.
첫째 백성의 衣食을 해결해야 함,
둘째 백성을 사랑하되 보답을 구하지 않음,
셋째 遺亡을 당한 사람이 없이 모든 백성이 즐거워야 함,
넷째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됨,
다섯째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누려야 됨,
여섯째 刑罰을 너그럽게 시행해야 함,
일곱째 백성의 농사철을 빼앗지 않아야 함,
여덟째 貪慾을 경계하고 榮辱을 알아 소박하고 성실한 마음을 지켜야 함,
끝으로 智伯이 멸망한 교훈을 제시하여 경계함으로써 德의 貴함을 천명하였다.
1-1. 통치자가 갖추어야 할 정치의 덕 - 召公 姬奭
聖人之於天下百姓也,其猶赤子乎!
聖人은 천하의 백성에 갓난아이 같이 대하는구나!
饑者則食之,寒者則衣之;
將之養之,育之長之;
惟恐其不至於大也。
굶주린 사람에게 밥을 먹이고, 추운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보살피고 길러주고, 양육하고 성장시키며,
오직 크게 되지 못할까 걱정한다.
《詩》曰:
「蔽芾甘棠,勿剪勿伐,召伯所茇。」
<詩經>에 말하였다.
“우거진 팥배나무 자르지도 베지도 마라. 召伯님이 머무르시던 곳.”
傳曰:
自陝以東者周公主之,自陜以西者召公主之。
<春秋公羊傳>에 일렀다.
“陝縣 동쪽은 周公이 다스리고, 섬현 서쪽은 召公이 다스린다.”
召公述職當桑蠶之時,不欲變民事,故不入邑中,舍于甘棠之下而聽斷焉,陜間之人皆得其所, 是故後世思而歌誄之。
召公이 뽕잎을 따서 누에를 치는 직무를 수행할 때, 백성의 농사일에 변화를 주지 않으려고 邑에 들어가지 않고 팥배나무 아래에 거주하면서 訟事를 판결하니, 陝 사람들이 모두 살 곳을 얻었으매, 후인이 그를 사모하여 애도하며 노래하였다.
善之,故言之;
言之不足,故嗟嘆之;
嗟嘆之不足,故歌詠之。
훌륭히 여겨 칭찬하였고,
칭찬함만으로는 부족하매 탄식하였고,
탄식만으로는 부족하매 노래하였다.
夫詩思然後積,積然後滿,滿然後發,發由其道而致其位焉;
百姓嘆其美而致其敬,甘棠之不伐也,政教惡乎不行!
詩란 사모한 뒤에 쌓이고, 쌓인 연후에 가득 차며, 가득 찬 연후에 발현하니, 바른 도리를 따라 발현하여 제 자리를 찾는다.
백성이 그의 미덕을 찬탄하며 그를 공경하게 되어 팥배나무조차 베지 못하게 하였으니, 政令과 敎化가 어찌 시행되지 않으랴!
孔子曰:
「吾於甘棠,見宗廟之敬也。
甚尊其人,必敬其位,順安萬物,古聖之道幾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시경>의 <甘棠> 시에서 그들이 종묘에서 매우 공경했음을 알았다.
그 사람을 매우 존경하면 반드시 그가 쉬어간 자리까지 공경하는 법이니, 만물을 유순하고 편안하게 하면 옛 聖人의 도에 가까울 터이다!”
▶ 其猶赤子乎 : 老子 <도덕경> 49장에 “百姓皆注其耳目,聖人皆孩之。백성이 모두 聖人의 이목을 주시하지만, 성인은 모든 백성을 어린아이처럼 다룬다.”라고 하였다.
▶ 食之 : ‘~에게 먹게 하다’의 의미이므로 ‘사’로 읽어야 한다.
▶ 將 : 보살펴 주다. 돕다.
▶ 《詩》曰 : <詩經·召南·甘棠>. 召公 姬奭을 기리는 노래로 召伯이 섬서지방을 순행하여 文王의 政令을 펼 적에 甘棠 아래에서 정사를 처리하였다. 소공 석이 세상을 떠나자 백성은 그의 선정을 흠모하여 송사와 정사를 처리하던 감당나무를 소중히 여기고 돌보았으며, 〈감당〉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어서 그의 공덕을 노래하였으며 전문은 아래와 같다.
“蔽芾甘棠, 勿翦勿伐, 召伯所茇。
蔽芾甘棠, 勿翦勿敗, 召伯所憩。
蔽芾甘棠, 勿翦勿拜, 召伯所說。”
“우거진 팥배나무, 자르지도 베지도 마라. 소백님이 머무르시던 곳.
우거진 팥배나무, 자르지도 꺾지도 마라. 소백님이 쉬시던 곳.
우거진 팥배나무, 자르지도 휘지도 마라. 소백님이 지내시던 곳.”
※ 甘棠 : 팥배나무. 杜梨라고도 하며 열매가 흰 것을 棠이라 하고 붉은 것을 杜라 한다.
▶ 蔽芾 : 무성한 모양. 작거나 어린 모양. 朱熹는 ‘蔽芾’를 ‘무성한 盛貌’이라고 풀이하였고 모시정의에서는 ‘막 돋아나는 蔽芾其樗’라고 풀이하였다.
작은 모양은 ‘비’나 ‘패’로 읽고 우거진 모양은 ‘불’로 읽는다.
▶ 召公奭 : 姬姓으로 이름은 奭이다. 召公, 召伯, 召伯 奭, 召康公으로도 불린다. 주무왕의 동생으로 召나라와 燕나라의 초대 군주이다. 제 태공, 주공 단과 함께 주나라를 개국한 공신 중 하나로 형인 무왕이 소 강공을 召 땅에 봉하고 제후로 삼았다. 그 후 무왕 姬發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召康公 奭을 燕의 제후에 봉하고, 도읍을 薊로 정하게 하였다. 무왕이 세상을 떠나고 어린 성왕이 서자 소 강공은 그를 보좌하기 위해 자신의 장남인 克으로 하여금 연나라 제후가 되게 하였고 자신은 서주의 수도인 鎬京과 원래 봉국인 소나라에 머물렀다. 문왕, 무왕, 성왕, 강왕의 4명의 군주를 섬겼다. 성왕 치세 때, 三公이 되었고, 이어서 太保가 되었다. [史記 世家] 권34.燕召公世家
▶ 自陝以東 : 주나라 첫 해에 무왕의 형제 주공과 소공 사이의 알력으로 하남성 서부의 섬현을 경계로 하여 동서를 주공과 소공이 나누어 가지면서 섬동, 섬서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春秋公羊傳 隱公 5년>
▶ 述職 : 주요 업무를 보고하다. 복명하다.
▶ 聽斷 : 송사를 자세히 듣고 판결하다. 사건을 심리하다.
▶ 歌誄 : 애도하며 노래하다. 誄는 애도하다.
▶ 嗟嘆 : 탄식하다. 감탄하다.
▶ 歌詠 : 노래하다. 시가를 읊다.
▶ 孔子曰 : <孔子家語 好生>에 孔子曰:「吾於《甘棠》,見宗廟之敬也甚矣。思其人,必愛其樹;尊其人,必敬其位,道也。」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시경의 감당편에 이르러 그들이 종묘에서 매우 공경했음을 알았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그가 심어놓은 나무까지도 사랑하게 되며, 그 사람을 존경하면 그가 쉬어간 자리까지도 공경하게 된다는 것이 바로 도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1-2.통치자가 갖추어야 할 정치의 덕-孔子
仁人之德教也,誠惻隱於中,悃愊於內,不能已於其心;
어진 사람이 덕으로 가르치는 것은 진실로 마음속에 측은함을 지니고 內心에는 至誠을 지니고 있어서 그의 마음에서 그만두지 못해서이다.
故其治天下也,如救溺人,見天下強陵弱,眾暴寡, 幼孤羸露,死傷係虜,不忍其然.
그래서 천하를 다스릴 때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듯이 하여, 천하의 강자가 약자를 능멸함, 다수가 소수에게 횡포를 부림, 어린 고아가 허약하고 수척함, 죽거나 다치고 포로가 된 사람을 보면, 차마 그런가 보다 하지 못하였다.
是以孔子歷七十二君,冀道之一行而得施其德,使民生於全育,烝庶安土,萬物熙熙,各樂其終,卒不遇.
이 때문에 공자께서 72명의 제후에게 두루 유세하시어, 자기가 지닌 道를 한번 실행하고 덕정을 베풀어서, 백성이 보전되고 양육되어, 뭇 백성이 자기 땅에서 편안히 살며, 만물이 화락하여 각기 즐겁게 생을 마치게 하기를 바랐으나, 끝내 그런 군주를 만나지 못하였다.
故睹麟而泣,哀道不行,德澤不洽.
그래서 기린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자기의 道가 실현되지 못하고 덕의 은택이 미흡함을 슬퍼하셨다.
於是退作春秋,明素王之道,以示後人,恩施其惠,未嘗輟忘.
이리하여 물러나 <春秋>를 지어 素王의 道를 밝혀서 후세 사람에게 보여주셨으니, 그 은혜를 널리 베풀어야 함을 중지하거나 잊은 적이 없었다.
是以百王尊之,志士法焉,誦其文章,傳今不絕,德及之也。
그래서 모든 왕이 존경하고 志士들이 법도로 삼고 그 문장을 읽어서 지금까지 전승되어 끊어지지 않았으니, 그의 은덕이 여기에 이르렀다.
《詩》曰:「載馳載驅,周爰咨謀。」
此之謂也。
<詩經>에 “달리고 달려서, 두루 묻고 의논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를 이른 말이다.
▶ 悃愊 : 至誠. 誠實
▶ 羸露 : 뼈를 드러낼 정도로 허약하고 수척하다. 몹시 마르다.
▶ 睹麟而泣 : 기린은 聖人이 이 세상에 나면 나타난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을 말한다. 魯 哀公 14년(기원전 481년), 공자 71세 때에 노나라 서쪽에서 기린이 잡혔는데, 처음엔 그것이 무슨 동물인지 사람들이 의아해하여 孔子도 그것이 무슨 동물인지 구경갔다가 그것이 기린임을 알고 눈물을 흘렸다 한다.[史記世家] 권47.孔子世家
▶ 素王 : 王位는 없지만 왕의 德을 갖춘 사람. 여기서는 공자를 지칭한다.
▶ 《詩》曰 : <詩經·小雅·皇皇者華〉에 “我馬維騏、六轡如絲。載馳載驅、周爰咨謀。: 내 말은 검푸른 준마, 여섯 고삐 실처럼 가지런하다. 달리고 달려서 두루 묻고 의논한다.”라고 하였다. 이 시는 왕의 명을 받고 사신이 사방으로 출사하여 두루 민정을 살피는 것을 노래한 시이다.
▶ 載馳載驅 : 수레와 말이 질주하다.
1-3. 남모르게 덕을 쌓아야 한다. - <淮南子 人間訓>에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聖王布德施惠,非求報於百姓也;
郊望禘嘗,非求報於鬼神也。
聖王이 은덕을 은혜를 베풂은 백성에게 보답을 구함이 아니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산천과 종묘에 제사를 지냄은 귀신에게 報應을 구함이 아니다.
山致其高,雲雨起焉;
水致其深,蛟龍生焉;
君子致其道德而福祿歸焉。
산이 일정한 높이에 이르면 구름과 비가 거기에서 발생하고,
물이 일정한 깊이에 이르면 蛟龍이 거기에 살고,
군자가 일정한 도덕에 이르면 福祿이 거기에 모인다.
夫有陰德者必有陽報,有隱行者必有昭名.
陰德이 있는 사람에게 반드시 陽報가 있고, 남모르게 은혜를 베푼 사람은 반드시 드러나는 명성이 있게 마련이다.
古者溝防不修,水為人害,禹鑿龍門,闢伊闕,平治水土,使民得陸處;
옛날에 수로와 제방을 정비하지 않아 홍수가 인간에게 재해를 끼치자, 禹임금이 龍門을 뚫고 伊闕을 열어 홍수를 다스리고 땅을 고르게 하여 백성을 육지에서 편안히 살게 하였다.
百姓不親,五品不遜,契教以君臣之義,父子之親,夫婦之辨,長幼之序;
백성이 서로 親和하지 않고 오륜에 순화되지 못하자, 契이 군신간의 의리와 부자간의 친애와 부부간의 분별과 長幼간의 질서를 가르쳤다.
田野不修,民食不足,后稷教之,闢地墾草,糞土樹穀,令百姓家給人足;
논밭이 황폐해지고 백성의 양식이 부족하자, 后稷이 가르쳐서 황무지를 개간하여 풀을 제거하고 거름을 주어 곡식을 심어서 백성의 집집이 풍족하게 하였다.
故三后之後,無不王者,有陰德也。
그러므로 세 군왕의 후예가 왕이 되지 않음이 없음은 陰德이 있기 때문이었다.
周室衰,禮義廢,孔子以三代之道,教導於後世,繼嗣至今不絕者,有隱行也。
周나라 왕실이 쇠퇴하여 예의가 폐기되니, 孔子께서 三代의 도덕으로 후세를 교육하시어 그 후손이 지금까지 끊어지지 않음은 남모르는 선행이 있어서이다.
▶ 郊望禘嘗 : 고대의 제왕이 지내는 네 가지 제사 이름. 郊는 天地의 제사를 말하며, 望은 멀리서 산천을 바라보면서 산천의 신에게 지내는 제사로 당시 제후는 망제를 행하였다. 禘嘗은 체례와 상례를 말하며, 周禮에 의하면 禘는 종묘의 여름에 지내는 제사이며 嘗은 가을에 지내는 제사라고 하였다.
▶ 禹 : 夏禹. 중국 고대 하나라를 개국한 우 임금. 성은 姒, 이름은 文命, 자는 高密이다. 大禹, 帝禹 등으로 일컬어진다. 요임금의 말년 홍수가 일어나 우의 아버지인 곤에게 치수를 맡겼으나 곤이 치수에 실패하였고, 순이 우를 천거하여 우가 치수 사업에 몰두하여 성공함으로써 그 공으로 순임금이 죽은 후 왕위에 오르고, 하 왕조를 열어 이후 17대에 이어졌다. [史記 本紀] 권02. 夏本紀
▶ 龍門 : 황하의 상류에 있는 산 이름으로 夏나라 禹임금이 계곡을 파서 물길을 내어 이로 인하여 큰 폭포가 생겼는데, 물고기들이 이 폭포를 올라가면 龍이 된다는 전설이 있어 龍門이라 이름하였으며, 이 때문에 사람이 출세하는 것을 登龍門이라고도 표현하게 되었다.
▶ 伊闕 : 지금의 하남성 낙양시 남쪽에 있는 산 이름.
▶ 五品不遜 : 오륜으로 순화되지 못하다. 五品은 다섯 가지 큰 윤리로 五常이라고도 한다.
▶ 契 : 고대 전설상의 帝王 高辛氏 帝嚳의 아들. 舜 임금 때 司寇 벼슬을 하였다. 禹 임금을 도와 물을 다스려 공을 세우고, 商나라에 봉해져서 상나라의 始祖가 된다.
▶ 后稷 : 周王朝의 전설적 시조. 姓은 姬, 이름은 棄. 農耕神으로 오곡의 신이기도 하다.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잉태해 낳아서 상서롭지 못하다고 하여 세 차례나 내다 버렸으나 그때마다 구조되었다. 후에 요임금의 農官이 되었고 순임금은 기를 邰에 봉하고 후직이라 부르는 한편 姬氏 성을 별도로 내렸다.
▶ 三代 : 夏, 商, 周의 3代.
1-4.모든 사람이 즐거워야 한다.
《周頌》曰:
「豐年多黍多稌,亦有高廩,萬億及秭.
為酒為醴,烝畀祖妣,以洽百禮,降福孔偕。」
<詩經 周頌>에 일렀다.
“풍년이라 기장과 벼가 많아서, 높다란 곳간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쌓였네.
술을 빚고 단술을 만들어 조상들께 바쳐 온갖 예를 빠짐없이 갖추니, 내리는 복 두루 미치리.”
《禮記》曰:
「上牲損則用下牲,下牲損則祭不備物。」
<禮記>에 일렀다.
“上牲이 부족하면 下牲을 쓰고, 下牲마저도 부족하면 제사에 祭物을 갖추지 않는다.”
以其舛之為不樂也。
이는 수확이 어그러진 때에 제사하면 神이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故聖人之於天下也,譬猶一堂之上也。
그래서 聖人이 천하를 다스릴 때는 비유하면 한 堂 위에 앉아있는 사람들로 여겼다.
今有滿堂飲酒者,有一人獨索然向隅而泣,則一堂之人皆不樂矣;
聖人之於天下也,譬猶一堂之上也,有一人不得其所,則孝子不敢以其物薦進。
지금 堂 가득히 술을 마시는 사람에, 한 사람만 눈물을 흘리면서 한쪽 모퉁이를 향해 울고 있다면 堂 위의 사람이 모두 즐겁지 않을 터이다.
성인이 천하를 다스림은 비유하면 한 堂 위의 사람과 같아서, 한 사람이라도 살 곳을 얻지 못하면 효자라도 감히 제물을 바치지 못함과 같다.
▶ 周頌 : <詩經> 3三頌의 하나로, 周나라 때 宗廟 제사에서 부르던 樂章이다. 주로 先王의 덕을 칭송하였다.
“豐年多黍多稌。亦有高廩、萬億及秭。為酒為醴、烝畀祖妣、以洽百禮。降福孔皆。: 풍년이라 기장과 벼가 많아서, 높다란 곳간에 헬 수 없이 많이 쌓였네, 술을 빚고 단술을 만들어 조상들께 바쳐 온갖 예를 빠짐없이 갖추니, 내리는 복 두루 미치리.”
▶ 多黍多稌 : 기장과 벼가 많다. 黍는 기장. 稌는 찰벼.
▶ 萬億及秭 : 헬 수 없이 많다. 秭는 숫자 兆를 말한다.
▶ 醴 : 단술. 감주.
▶ 烝畀 : 祭物을 올리다.
▶ 祖妣 : 남녀 조상.
▶ 洽 : 흡족하다. 넉넉하게 하다.
▶ 孔 : 매우.
▶ 偕 : 두루. <시경>에는 皆로 기록하고 있다.
▶ 禮記曰 : 이 구절은 현재의 <大戴禮記>와 <小戴禮記>에는 기록이 없다.
▶ 上牲 : 상등급의 犧牲. 犧牲은 옛날 제물용 소·양·돼지 따위.
▶ 舛 : 어긋나다. 어그러지다.
▶ 索然 : 눈물을 흘리는 모양.
▶ 薦進 : 바치다. 추천하다.
2.나라를 지키기에 험준한 지형은 군주의 덕행만 못하다.
이 글은 <史記 孫子吳起列傳>에 기록되어 있다.
魏武侯浮西河而下,中流顧謂吳起曰:
「美哉乎!河山之固也,此魏國之寶也。」
魏 武侯가 西河에서 배를 타고 내려올 때 중간 지점에 이르러 吳起를 돌아보면서 말하였다.
“아름답구나! 강과 산의 험준함이여. 이는 魏나라의 보배로다!”
吳起對曰:
「在德不在險。
그러자 오기가 대답하였다.
“나라의 보배는 군주의 덕에 있지, 지형의 험준함에 있지 않습니다.
昔三苗氏左洞庭,右彭蠡,德義不修,而禹滅之;
옛날 三苗氏의 나라는 왼쪽에 동정호가 있고 오른쪽에는 팽려호가 있었으나, 덕행과 신의를 닦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라의 禹임금에게 멸망하였습니다.
夏桀之居,左河濟,右太華,伊闕在其南,羊腸在其北,修政不仁,湯放之;
夏나라 桀王의 거처는 黃河와 濟水가 왼쪽에 있고, 오른쪽은 太華이며, 伊闕이 그 남쪽에 있고 羊腸山이 그 북쪽에 있었으나, 어진 정치를 베풀지 않아 湯王이 축출하였습니다.
殷紂之國,左孟門而右太行,常山在其北,太河經其南,修政不德,武王伐之。
殷나라 紂王의 국도는 孟門山이 왼쪽에 있고, 太行山이 오른쪽에 있었으며, 常山이 그 북쪽에 있고 큰 黃河가 그 남쪽으로 흘러갔으나, 덕으로써 정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周 武王이 토벌하였습니다.
由此觀之,在德不在險。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나라의 보배는 군주의 덕에 있지, 지형의 험준함에 있지 않습니다.
若君不修德,船中之人盡敵國也。」
만일 군주께서 덕을 닦지 않으시면 이 배 안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敵國입니다.”
武侯曰:
「善!」
위 무후가 말하였다.
“옳은 말이로다.”
▶ 魏武侯 : 전국시대 위나라의 군주로 文侯의 아들이다. 무후 11년(기원전 403년) 韓나라, 趙나라와 함께 晉나라 영토를 삼분하였다. 16년 동안 재위하였다.
▶ 吳起 : 吳子로 불리며, 전국시대 군사 지도자이며 정치가였다. 위나라 사람으로 노나라, 위나라, 초나라를 섬겼다. 위나라에서 많은 전투를 지휘하여 공을 세웠으며, 후에 楚나라로 도주하여 悼王에 의해 재상으로 임명되었다. 초나라에서 봉건 혁명을 이끌어 초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혁명이 초나라 귀족들을 노하게 하여 楚悼王이 죽은 뒤 대신들에게 피살되었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吳子兵法이 있다.
사마천은 “오기가 위 무후에게 험준한 지형이 군주의 덕행만 못하다고 말했으나 초나라에서 행한 일은 각박하고 몰인정하였다. 그로 인해 목숨을 잃었으니 슬픈 일이다.”라고 평하였다.[史記列傳] 권65 孫子吳起列傳
▶ 三苗 : 중국 고대의 나라 이름. 삼묘는 강수, 회수, 형주 지역에 살면서 자주 반란을 일으켰다<史記 五帝本紀>. 우임금은 八元과 八愷를 등용하고 사방을 巡行하면서 鯀과 共工, 驩兜, 三苗 등 四惡을 제거하였다.
▶ 洞庭 : 湖南省 북동쪽에 있는 호수.
▶ 彭蠡 : 江西省 북쪽에 있는 호수이다. 鄱陽湖의 다른 이름으로, 중국 5대 호수의 하나이다.
▶ 河濟 : 黃河와 濟水
▶ 太華 : 陝西省 華陰縣 남쪽에 있는 산.
▶ 伊闕 : 지금의 河南省 洛陽市 남쪽. 두 개의 산이 대궐처럼 마주보고 있고 그 사이로 伊水가 통과하고 있기 때문에 이궐이라 불렀다.
▶ 羊腸 : 羊腸山. 산이 구불구불한 것이 마치 양의 창자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孟門 : 山西省 吉縣의 서쪽, 陝西省 宜川縣의 북동쪽에 있는 산.
▶ 太行 : 太行山. 主峰은 山西省 晉城縣 동남부에 있으며, 河北과 河南의 경계가 되며, 산을 오르는 길이 험준한 것으로 유명하다.
▶ 常山 : 恒山. 五嶽 중의 北嶽으로 山西省에 있다.
▶ 舟中敵國 : ‘한배를 탄 사람들이 적이 되다'라는 뜻으로, 군주가 덕을 닦지 않으면 자기편일지라도 모두 적으로 변할 수 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3. 백성의 과실은 위정자의 책임이다. <百姓有過,在予一人>
武王克殷,召太公而問曰:
「將奈其士眾何?」
周武王이 殷나라를 함락하고 나서 太公을 불러 물었다.
“앞으로 은나라의 관리와 백성을 어떻게 처리해야 되겠소?”
太公對曰:
「臣聞愛其人者,兼屋上之烏;
憎其人者,惡其餘胥;
咸劉厥敵,使靡有餘,何如?」
태공이 대답하였다.
“신이 듣건대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 집 지붕에 앉은 까마귀도 같이 사랑하고,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은 그 집의 담벼락조차 같이 미워한다고 합니다.
敵을 모두 죽여서 남은 사람이 없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王曰:
「不可。」
무왕이 말하였다.
“안 되오.”
太公出,邵公入,王曰:
「為之奈何?」
태공이 나가고 召公이 들어오자 무왕이 말하였다.
“어떻게 처리해야 되겠는가?”
邵公對曰:
「有罪者殺之,無罪者活之,何如?」
소공이 대답하였다.
“죄 있는 사람은 죽이고
죄 없는 사람은 살려주면 어떻겠습니까?”
王曰:
「不可。」
무왕이 말하였다.
“안 된다.”
邵公出,周公入,王曰:
「為之奈何?」
소공이 나가고 周公이 들어오자 무왕이 말하였다.
“어떻게 처리해야 되겠는가?”
周公曰:
「使各居其宅,田其田,無變舊新,唯仁是親,百姓有過,在予一人!」
주공이 말하였다.
“그들이 각자 자기 집에서 살고 자기의 농토에서 농사짓게 하며 그들이 살던 관습대로 변함없이 대하여 오직 仁德으로 친근히 하며 백성에게 과실이 있거든 나에게 잘못이 있다고 여기십시오!”
武王曰:
「廣大乎,平天下矣。
무왕이 말하였다.
“도량이 넓고도 크구나. 천하를 태평하게 할 수 있겠구나!
凡所以貴士君子者,以其仁而有德也!」
士君子를 귀중하게 여기는 까닭은 그 사람이 仁愛하면서 덕을 갖추었기 때문이로다!”
▶ 武王 : 西周의 國君. 성은 姬이고, 이름은 發이다. 文王의 아들로 西伯의 직위를 이었다. 商나라를 멸망시키라는 문왕의 유지를 받들어 제후들과 孟津에서 會盟하고 군대를 일으켜 상나라 紂임금을 정벌하였다. 牧野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어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周王朝를 건설하였다. 鎬를 도읍으로 정하고, 제후들에게 分封하였다.
▶ 太公 : 太公望. 周나라 초기의 정치가이자 공신.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하였으며 齊나라 시조가 되었다. 본명은 姜尙으로, 그의 선조가 呂나라에 봉하여졌으므로 呂尙이라 불렸고, 태공망이라고 불렀지만 강태공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주나라 文王의 초빙을 받아 그의 스승이 되었고, 武王을 도와 商나라 紂王을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하였다.<史記 齊太公世家>
▶ 士 : 西周 때 관직을 군주 밑으로 卿, 大夫, 士의 三級으로 설치하였다. 士는 일반 관리.
▶ 餘胥 : 벽. 담.
▶ 咸劉 : 모두 죽이다. 劉는 죽이다.
▶ 厥 : 그
▶ 靡 : 없다. 아니다.
▶ 邵公 : 召公奭. 姬姓으로 이름은 奭이다. 召公, 召伯, 소백 召伯 奭, 召康公으로도 불린다. 주 무왕의 동생으로 召나라와 燕나라의 초대 군주이다. 제 태공, 주공 단과 함께 주나라를 개국한 공신 중 하나로 형인 주 무왕이 소 강공을 召 땅에 봉하고 제후로 삼았다.
▶ 周公 : 周公旦. 주나라 文王의 넷째 아들로 武王의 아우. 이름은 旦, 시호는 元.
▶ 百姓有過,在予一人 :
<書經> <盤庚>편에 “나라가 잘되면 너희 백성 때문이고 나라가 잘되지 못하면 나 한 사람의 실수이다[邦之臧 惟汝衆 邦之不臧 惟予一人有佚罰].”라 했고,
<論語> <堯曰>편에 “만방의 유죄는 그 죄가 내 몸에 있고……백성이 과실을 저지른 것은 책임이 나 한 사람에게 있다[萬方有罪 罪在朕躬……百姓有過 在予一人].”라고 하였다.
▶ 士君子 : 군자. 사회적 지위가 있으며, 덕행이 높고 학문에 통달한 사람
4. 은덕을 베풀지 않으면 처자도 보전할 수 없다.
孔子曰:
「里仁為美,擇不處仁,焉得智!」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仁者의 마을에 거주함이 아름다움이 되니, 살 곳을 선택함에 인자의 마을에 거주하지 않으면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
夫仁者,必恕然後行,行一不義,殺一無罪,雖以得高官大位,仁者不為也。
어진 사람은 반드시 관대함이 있고 나서 행동하니, 한 가지라도 不義한 일을 행하거나 한 사람이라도 죄 없는 이를 죽여서 비록 높고 큰 벼슬을 얻을지라도, 仁者는 행하지 않는다.
夫大仁者,愛近以及遠,及其有所不諧,則虧小仁以就大仁。
크게 어진 사람은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여 멀리 있는 사람에게 미치니, 화합하지 못하는 곳에 이르면 작은 仁을 희생하여 큰 仁을 이룬다.
大仁者,恩及四海;
小仁者,止於妻子。
큰 仁義는 은택이 천하에 미치고
작은 인의는 은택이 아내와 자식에만 그친다.
妻子者,以其知營利,以婦人之恩撫之,飾其內情,雕畫其偽,孰知其非真.
은택이 아내와 자식에만 그치고 마는 사람은 그의 지혜로 이익을 꾀하고 부인 같은 작은 은혜로 남을 다독이는 척하면서 마음속의 진정을 꾸미고 허위를 아름답게 수식하니, 누가 그것이 진실이 아님을 알겠는가?
雖當時蒙榮,然士君子以為大辱.
당시에는 영광을 얻을지라도 士君子는 큰 치욕으로 여긴다.
故共工、驩兜、符里、鄧析,其智非無所識也,然而為聖王所誅者,以無德而苟利也。
그러므로 共工‧驩兜‧符里‧鄧析 등은 그들의 지혜로 모르는 것이 없었으나 聖王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덕이 없고 이익만을 탐했기 때문이다.
豎刁、易牙,毀體殺子以干利,卒為賊於齊。
豎刁‧易牙는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고 자식을 죽여가면서 이익을 구하였으나, 끝내 齊나라에 위해를 당하고 말았다.
故人臣不仁,篡弒之亂生;
人臣而仁,國治主榮;
明主察焉,宗廟大寧;
夫人臣猶貴仁,況於人主乎!
그러므로 신하가 어질지 않으면 찬탈하고 시해하는 환난이 일어나고,
신하가 어질면 나라가 태평하고 군주는 영광을 누리며,
명철한 군주가 이런 사리를 잘 살피면 종묘가 대단히 평안하게 되므로,
신하도 오히려 어진 덕을 귀중히 여겨야 하는데 하물며 군주이겠는가!
故桀紂以不仁失天下,湯武以積德有海土,是以聖王貴德而務行之。
그래서 夏나라 桀王과 商나라 紂王은 인후하지 못했기 때문에 천하를 잃었고, 湯王‧武王은 仁德을 쌓았기 때문에 천하를 얻었으며, 이 때문에 聖王은 인덕을 귀중히 여겨 실행에 힘쓴다.
孟子曰:
「推恩足以及四海;
不推恩不足以保妻子。
古人所以大過人者無他焉,善推其所有而已。」
孟子께서 말씀하셨다.
“은덕을 널리 베풀면 천하를 소유할 수 있고,
은덕을 베풀지 않으면 처자도 보전할 수 없다.
옛 聖王이 남보다 크게 뛰어난 까닭은 다른 이유가 없으며, 자기가 가진 어진 마음을 잘 베풀었을 뿐이다.”
▶ 里仁為美,擇不處仁,焉得智!: 거주할 곳을 선택하여 인자의 마을에 거주하지 않으면 어찌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論語 里仁>
▶ 里仁 : 인자가 거주하는 곳. 里는 거주하는 곳.
▶ 恕 : 관대함.
▶ 諧 : 화합하다.
▶ 虧 : 저버리다. 손해보다.
▶ 四海 : 온 천하.
▶ 共工 : 神農氏의 후예. 물의 신으로 물과 관련된 사업을 담당한 水官, 9개의 머리와 뱀의 몸을 가진 하인 相繇와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 驩兜(환두) : 요순시대에 제위를 노렸던 요의 아들을 말한다. 홍수의 신 共工, 요순시대에 제위를 노린 요의 아들인 단주 驩兜, 단주와 함께 역란을 일으킨 남방의 만족 三苗, 동이 부족의 신이었던 鯀을 四罪(:四凶)라 부른다.
우임금은 八元과 八愷를 등용하고 사방을 巡行하면서 鯀과 共工, 驩兜, 三苗 등 四惡을 제거하였다.
▶ 符里 : 付里乙, 史附里로도 쓴다. 춘추시대 제나라 사람으로 사악한 말로 대중을 현혹시켜 管仲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 鄧析 : 鄭나라의 大夫. 등석은 子産과 함께 정나라의 국정에 임하였으나, 자산이 지은 법령의 자구해석을 둘러싸고 일일이 자산과 다투어 마침내 자산에게 살해당했다고 여씨춘추에 기록되어 있다.
▶ 苟 : 탐하다.
▶ 豎刁 : 豎刀. 宦官으로 寺人을 지냈다. 齊桓公의 총애를 받았다. 管仲이 생각이 정상적이지 않다면서 마땅히 멀리하고 배척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환공이 듣지 않았다. 관중이 죽자 易牙와 開方 등과 함께 권력을 독차지했고, 다섯 公子가 태자가 되겠다며 다투었다.
▶ 易牙 : 狄牙. 齊桓公의 음식을 만들던 요리사로, 당대 제일가는 요리 솜씨를 지녔다고 한다. 환공이 늘 새롭고 기이한 음식을 맛보기를 원하자 나중에는 자기 자식을 죽여서 음식을 만들어 바쳤다.
▶ 干利 : 이익을 구하다.
▶ 推恩足以及四海, 不推恩不足以保妻子 : 은덕을 널리 베풀면 천하를 보유할 수 있고, 은덕을 베풀지 않으면 처자도 보전할 수 없다. <孟子 卷1 梁惠王章句上>
05. 즐거움이란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함께하는 것이다. <與民同樂>
晏子飲景公酒,令器必新,家老曰:
「財不足,請斂於民。」
晏子가 齊景公을 청하여 술을 마시려 함에, 그릇을 반드시 새것으로 준비하라고 명하자, 家臣이 말하였다.
“집안에 돈이 부족하니 백성에게 징수하십시오.”
晏子曰:「止。
夫樂者,上下同之.
故天子與天下,諸侯與境內,自大夫以下各與其僚,無有獨樂;
今上樂其樂,下傷其費,是獨樂者也,不可。」
안자가 말하였다.
“그만두어라!
즐거움이란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함께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자는 천하 사람들과 함께 즐거움을 누리고, 제후는 경내의 백성과 함께 즐거움을 누리며, 대부 이하는 각기 屬僚와 함께 즐거움을 누려서, 혼자만 즐김이 없어야 하는데,
윗사람만 그의 좋아함을 즐기고 아랫사람은 그 비용으로 재산에 손해를 입으면, 이는 혼자만 즐김이니 안 된다!”
※ 위의 내용은 <晏子春秋 제5권 内篇雜上>에 실려 있다.
▶ 晏子 : 晏平仲. 晏嬰. 춘추시대 齊의 명재상으로 자는 仲, 시호는 平이다. 齊나라 靈公, 莊公, 景公 3대를 섬긴 재상으로서 절약·검소하고 군주에게 기탄없이 간언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晏子春秋는 춘추시대 제나라 안영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다. 사마천은 안영을 용기가 있는 자이며, 군주에게 기탄없이 간언하였으니 충신이라고 평하고 안자가 같은 시대에 산다면 그의 마부가 될지라도 기꺼이 그를 흠모할 것이라고 하였다.<사기열전 권 62.管晏列傳>
▶ 齊景公 : 춘추시대 제나라의 국군 姜杵臼. 景은 시호이다. 齊莊公의 이복동생으로 장공을 살해한 대부 崔杼에 의해 옹립되었다. 궁실을 짓고 사냥개와 말을 모으기를 좋아하였으며 세금과 형벌을 무겁게 하며 사치가 끝이 없었다. 재위 동안 제나라의 公室이 쇠퇴하고 田氏 세력이 대두하였다.[史記 世家] 권32.齊太公世家
▶ 家老 : 춘추시대 卿大夫의 家臣의 우두머리.
※ 與民同樂 :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하다. 즉, 백성과 동고동락하는 통치자의 자세를 의미한다. <孟子>제1편 제2장 梁惠王章句 下
6. 齊桓公이 燕莊公에게 땅을 할애하다.
齊桓公北伐山戎氏,其道過燕,燕君逆而出境,桓公問管仲曰:
「諸侯相逆固出境乎?」
齊桓公이 북쪽의 山戎氏를 공격함에, 그 길이 燕나라를 지나게 되매 연나라 군주가 국경 밖에까지 나와서 맞이하니, 환공이 管仲에게 물었다.
“제후가 맞이함에 본래 국경 밖에까지 나오는 법이오?”
管仲曰:
「非天子不出境。」
관중이 말하였다.
“천자가 아니면 국경을 나가지 않는 법입니다.”
桓公曰:
「然則燕君畏而失禮也.
寡人不道而使燕君失禮」
환공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연나라 군주가 두려워서 실례한 것이구려.
과인이 무도하여 연나라 군주가 실례하게 하였구려.”
乃割燕君所至之地以與燕君。
그러고는 연나라 군주가 넘어온 만큼의 땅을 분할하여 연나라 군주에게 주었다.
諸侯聞之,皆朝於齊。
제후들이 이 소문을 듣고 모두 제나라에 조회하였다.
《詩》云:
「靖恭爾位,好是正直,神之聽之,介爾景福。」
此之謂也。
<詩經>에 “그대 직책을 소중히 여기고 삼가 정직한 사람을 좋아한다면 신께서도 어여삐 받아들여 그대에게 큰 복 내려 주시리라.”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이름이다.
▶ 齊桓公 : 齊나라의 제16대 후작으로, 성은 姜, 휘는 小白, 姜太公의 12세손이며, 시호는 桓公이다. 춘추시대 覇王이 되었다. 高傒와 鮑叔의 활약에 의해 공자 糾와의 왕위 계승 분쟁에서 승리해 제나라의 군주가 되었다. 管仲을 재상으로 삼고 제나라를 강대한 나라로 만들었으며, 실권을 잃어버린 東周 왕실을 대신해 회맹을 거행하였다.
▶ 山戎氏 : 北狄. 서융이라고 하며 주로 감숙성 일대에 거주하던 이민족이다.
▶ 燕君 : 燕 莊公. 춘추시대 燕나라의 제17대 군주. 연나라 군주는 처음으로 ‘公’이라고 칭하기 시작하였다. 公은 고대 5작위 중 최고의 작위이다. 연 장공 27년(기원전 664년), 山戎이 연나라를 침범하자 연 장공은 齊桓公에게 구원을 청하였다.
▶ 逆 : 맞이하다. 마중하다.
▶ 《詩》云 : <詩經·小雅·小明>에서 인용하였다. 大夫가 한 해가 다되도록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슬픔을 노래한 시로 전해진다.
“嗟爾君子、無恆安息。靖共爾位、好是正直。神之聽之、介爾景福。: 아아, 그대 항상 편히 쉬려 마오. 그대 직책을 소중히 여기고 삼가 정직하고 곧은 이를 좋아한다면 신께서도 어여삐 받아들여 그대에게 큰 복 내려 주시리라.”
▶ 靖恭 : 조용히 삼가다. 직무를 소중히 여기고 삼가다.
7. 어린 참새를 살려 준 齊景公
景公探爵鷇,鷇弱故反之.
齊 景公이 참새 새끼를 잡았다가 새끼가 너무 어려서 도로 둥지에 넣어주었다.
晏子聞之,不待請而入見,景公汗出惕然.
晏子가 이 일을 듣고 부르기를 기다리지 않고 들어가 뵙자, 경공이 땀을 흘리며 두려워하였다.
晏子曰:
「君胡為者也?」
안자가 물었다.
“임금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景公曰:
「我探爵鷇,鷇弱故反之。」
경공이 말했다.
“내가 참새 새끼를 잡았다가 새끼가 너무 어려서 도로 둥지에 넣어주었소.”
晏子逡巡北面再拜而賀之:
「吾君有聖王之道矣。」
안자는 뒤로 물러나 북면하여 재배하고 경하하였다.
“우리 군주께서는 聖王의 도를 지니셨습니다.”
景公曰:
「寡人入探爵鷇,鷇弱故反之,其當聖王之道者何也?」
경공이 말했다.
“과인이 손을 넣어 참새 새끼를 잡았으나 새끼가 어려서 도로 둥지에 넣어주었는데, 그것이 성왕의 도에 해당함이란 무엇 때문이오?”
晏子對曰:
「君探爵鷇,鷇弱故反之,是長幼也;
吾君仁愛,禽獸之加焉,而況於人乎?
此聖王之道也。」
안자가 대답했다.
“군주께서 참새 새끼를 잡았다가 새끼가 어려서 도로 둥지에 넣어주셨으니, 이것은 어린 것을 성장시킴입니다.
우리 군주의 仁愛가 금수에까지 미쳤는데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성왕의 도입니다.”
▶ 爵鷇 : 참새 새끼. 爵은 雀과 통용된다(안자춘추에는 雀으로 기록하고 있다).
▶ 惕然 :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모양.
▶ 逡巡 : 물러나다. 머뭇거리다.
▶ 長幼 : 어린 것을 어여삐 여겨 길러준다는 뜻이다.
8. 걸식하는 어린아이
景公睹嬰兒有乞於途者,公曰:
「是無歸夫?」
齊景公이 어린아이가 길에서 구걸함을 보고 말하였다.
“이 아이는 의탁할 곳이 없는가?”
晏子對曰:
「君存何為無歸,
使養之,可立而以聞。」
晏子가 대답하였다.
“군주께서 계시는데 어찌 의탁할 곳이 없겠습니까?
관리를 시켜 양육하면 잘 기를 터이고, 그로 인하여 군주의 명성이 알려지겠습니다.”
9.굶주린 노인을 보고 불쌍히 여기다.
景公遊於壽宮,睹長年負薪而有饑色,公悲之,喟然嘆曰:
「令吏養之。」
齊景公이 壽宮에서 놀다가, 나이 많은 사람이 땔나무를 지고 가는데 굶주린 안색이 있음을 보고, 경공이 슬퍼하면서 한숨을 쉬고 탄식하였다.
“관리를 시켜 봉양하게 하라.”
晏子曰:
「臣聞之,樂賢而哀不肖,守國之本也;
今君愛老而恩無不逮,治國之本也。」
晏子가 말하였다.
“신이 듣기에 어진 사람을 좋아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불쌍히 여김은 나라를 지키는 근본이라고 합니다.
지금 군주께서 노인을 사랑하여 은혜가 이르지 않음이 없으니, 이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입니다.”
公笑有喜色。
경공이 이 말을 듣고 웃으면서 기쁜 안색이 있었다.
晏子曰:
「聖王見賢以樂賢,見不肖以哀不肖;
今請求老弱之不養,鰥寡之不室者,論而供秩焉。」
안자가 말하였다.
“聖王은 어진 사람을 보면 어진 사람을 좋아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보면 어리석은 사람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러하니 봉양할 사람이 없는 노약자와 집이 없는 홀아비와 과부를 찾아서, 그들의 실정에 등급을 매겨 물품을 공급하시기 바랍니다.”
景公曰:
「諾。」
경공이 말하였다.
“좋소.”
於是老弱有養,鰥寡有室。
이리하여 노약자는 봉양하는 사람이 있게 되었고, 홀아비와 과부는 집이 있게 되었다.
▶ 壽宮 : 춘추전국시대 齊나라의 離宮이다.
▶ 喟然嘆 : 한숨을 쉬며 서글프게 탄식하는 모양.
▶ 樂 : 좋아하다.
▶ 不肖 : 현명하지 못하다.
▶ 逮 : 도달하다. 이르다.
▶ 鳏寡 : <孟子>에 “늙어서 아내가 없는 것을 鰥이라 하고, 늙어서 남편이 없는 것을 寡라 하고, 늙어서 자식이 없는 것을 獨이라 하고, 어려서 부모가 없는 것을 孤라 하니, 이 네 가지는 천하의 곤궁한 백성으로 하소연할 데가 없는 老而无妻曰鳏,老而无夫曰寡,老而无子曰独,幼而无父曰孤。此四者,天下之穷民而无告者.”라고 하였다.<孟子·梁惠王下>
▶ 論而供秩焉 : 생활의 실정을 평가하여 생활용품을 공급함이다.
10. 혼자 살아가는 늙은이
桓公之平陵,見家人有年老而自養者,公問其故,對曰:
「吾有子九人,家貧無以妻之,吾使傭而未返也。」
齊桓公이 平陵에 가서 백성에 나이 늙어서 혼자 사는 사람이 있음을 보고, 桓公이 그 까닭을 물으니 노인이 대답하였다.
“제게 아홉 명의 자식이 있으나 집이 가난하여 장가들이지 못하고 품팔이를 보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桓公取外御者五人妻之,管仲入見曰:
「公之施惠不亦小矣。」
환공과 잠자리를 함께하지 않은 궁녀 다섯 사람을 골라 노인의 아들에게 시집을 보내자 管仲이 들어와 환공을 뵙고 말하였다.
“공께서 베푸는 은혜가 너무 작지 않습니까?”
公曰:
「何也?」
환공이 말하였다.
“무엇 때문이오?”
對曰:
「公待所見而施惠焉,則齊國之有妻者少矣。」
관중이 대답하였다.
“공께서 사람을 보고 나서 은혜를 베푼다면, 齊나라에는 아내를 가진 사람이 적을 터입니다.”
公曰:
「若何?」
환공이 말하였다.
“어찌하면 되겠소?”
管仲曰:
「令國丈夫二十而室,女子十五而嫁。」
관중이 말하였다.
“전국의 남자는 스무 살이면 장가들고, 여자는 열다섯 살이면 시집가도록 명령하십시오.”
▶ 平陵 : 춘추시대 齊나라의 읍.
▶ 傭 : 고용되다. 품팔이하다.
▶ 妻 : 장가가다.
▶ 外御者 : 궁녀로 있으나 잠자리를 모시지 못한 여자. 御는 군왕과 동침하는 여자를 말한다.
▶ 丈夫三[二]十而室 : 남자는 스무 살이면 장가들다, <韓非子>에는 20[二]살로 기록하고 있다. 室은 장가들다.
11. 덕을 숭상하고 형벌을 너그럽게 하라는 상서. <尚德緩刑書 : 路溫舒>
孝宣皇帝初即位,守廷尉吏路溫舒上書,言尚德緩刑,其詞曰:
漢 宣帝의 즉위 초에 守廷尉史 路溫舒가 황제에게 상서하여 덕을 숭상하고 형벌을 완화하기를 말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陛下初即至尊,與天合符,宜改前世之失,正始受之統,滌煩文,除民疾,存亡繼絕,以應天德,天下幸甚。
“폐하께서 처음 지존의 자리에 오르시니 천도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전대의 잘못을 고치시고 처음 받으신 大統을 바르게 시작하셔야 하니, 잡다한 법조문을 없애고 백성에게 해로운 것을 제거하고, 멸망의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하고, 하늘의 뜻에 순응하시면 천하 백성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臣聞往者秦有十失,其一尚存,治獄吏是也;
신이 듣기에 ‘지난날 秦나라에 열 가지 잘못이 있었는데, 그중 한 가지 잘못이 아직도 남아있다.’라고 하니, 獄事를 다스리는 관리가 그것입니다.
昔秦之時,滅文學,好武勇,賤仁義之士,貴治獄之吏,正言謂之誹謗,謁過謂之妖言.
옛날 秦나라 때에는 文學을 없애고 武勇을 좋아했으며, 仁義가 있는 선비를 천시하고 옥사를 다스리는 관리는 귀하게 여겨, 바른말을 비방이라 하고 잘못을 아룀을 요망한 말이라 하였습니다.
故盛服先生,不用於世,忠良切言,皆鬱於胸,譽諛之聲,日滿於耳,虛美薰心,實禍蔽塞,此乃秦之所以亡天下也。
그래서 의관을 정제한 유생이 세상에 중용되지 못하고, 충성스럽고 선량한 사람의 간절한 말은 모두 가슴속에 답답하게 쌓였고, 칭찬하여 아첨하는 소리는 날마다 황제의 귀에 가득 차서, 허위로 찬미하는 말이 마음을 미혹시키고, 실제적인 災禍가 가리어 드러나지 않았으니, 이것이 바로 秦나라가 천하를 잃은 까닭입니다.
方今海內賴陛下厚恩,無金革之危,饑寒之患,父子夫婦戮力安家,天下幸甚;
然太平之未洽者,獄亂之也。
지금 천하가 폐하의 후한 은덕에 힘입어 전쟁의 위험과 굶주림과 추위의 근심이 없어서, 부자와 부부가 힘을 합하여 집안을 편안하게 하니, 천하 사람들이 매우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만, 태평성세에 미흡함은 獄事가 그것을 어지럽히기 때문입니다.
夫獄天下之命,死者不可生,斷者不可屬.
옥사는 천하 백성의 목숨에 관계되는 일이매, 죽은 사람은 살릴 수가 없으며, 신체가 절단된 사람은 이을 수가 없습니다.
《書》曰:
『與其殺不辜,寧失不經。』
<書經>에서 일렀습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기보다는 차라리 법을 지키지 않는 잘못을 저질러라.’
今治獄吏則不然,上下相驅,以刻為明,深者獲公名,平者多後患;
오늘날 刑獄의 관리는 그렇지 않아서, 상하가 서로 몰아붙여 각박함을 明察이라고 여기며, 가혹하게 적용하는 자는 공평하다는 명성을 얻고 법을 공평한 자에게 후환이 많습니다.
故治獄吏皆欲人死,非憎人也,自安之道,在人之死.
이 때문에 옥리는 모두 사람을 죽이려 하는데, 이는 남을 증오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전하는 방법이 죄인을 죽임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是以死人之血,流離於市;
被刑之徒,比肩而立,大辟之計,歲以萬數.
그래서 죽임을 당한 사람의 피가 저자를 적시고,
형벌을 받은 무리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으며, 사형을 당한 사람의 숫자가 한 해에 만 단위로 헤아릴 정도입니다.
此聖人所以傷太平之未洽, 凡以是也。
이것이 聖人이 슬퍼하는 것이고, 태평이 되기에 미흡함이 모두 이것 때문입니다.
人情安則樂生,痛則思死,捶楚之下,何求而不得;
인정은 편안하면 삶을 즐기고 고통스러우면 죽음을 생각하는 법이니, 채찍과 몽둥이로 고문하는 아래에서 무엇을 구한들 얻지 못하겠습니까?
故囚人不勝痛,則飾誣詞以示之.
그래서 죄수가 고통을 견디지 못할 지경이면 사실이 아닌 말을 꾸며 보입니다.
吏治者利其然,則指道以明之,上奏恐卻,則鍛煉而周內之.
옥리는 그것이 유리하면 지시하고 인도하여 罪案을 명확히 하고, 上奏하여 기각될까 걱정되면 없는 罪名을 꾸며 빈틈없이 만들어 바칩니다.
蓋奏當之成,雖皋陶聽之,猶以為死有餘罪,何則?
상주하여 판결할 罪案이 완성되면 비록 皐陶가 판결하더라도 오히려 사형에 처하고도 남는 죄가 있다고 여길 터이니, 왜 그렇겠습니까?
成鍊之者眾而文致之罪明也。
죄명을 날조하는 자가 많고 법문을 적용하여 구성한 죄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是以獄吏專為深刻,殘賊而無理,偷為一切,不顧國患,此世之大賊也.
이러므로 옥리는 오로지 〈형벌을〉 엄혹하게 하여, 잔인하고 포학하게 다루어 일체를 구차스럽게 처리하면서, 나라의 근심은 고려하지 않으니, 이것이 세상의 크게 해로운 사람입니다.
故俗語云:
『畫地作獄,議不可入;
刻本為吏,期不可對。』
그 때문에 속담에,
“땅에 금을 그어 감옥을 만들어도 들어가면 안 된다고 수군거리고,
나무를 깎아 獄吏라 해도 기필코 대면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此皆疾吏之風,悲痛之辭也。
이는 모두 옥리를 미워하는 諷刺이고 悲痛한 말입니다.
故天下之患,莫深於獄,敗法亂政,離親塞道,莫甚乎治獄之吏.
그래서 천하의 우환으로 형옥보다 각박한 것이 없고, 법이 파괴되고 정치가 혼란하여 친척을 離散시키고 正道를 막음이 형옥을 다스리는 관리보다 심한 경우가 없습니다.
此臣所謂一尚存也。
이것이 臣의 소위 아직 秦나라의 한 가지 잘못이 남았다고 함입니다.
臣聞鳥鷇之卵不毀,而後鳳凰集;
誹謗之罪不誅,而後良言進.
신이 듣기에 ‘새의 알을 훼손하지 않아야 봉황이 모여들고,
비방한 죄를 벌주지 않아야 유익한 진언을 한다.’라고 합니다.
故傳曰:
『山藪藏疾,川澤納污。
國君含垢,天之道也。』
그래서 《春秋左氏傳》에 일렀습니다.
‘山藪는 해독을 끼치는 짐승을 숨겨주고 川澤은 더러운 물건을 받아들인다.
임금은 추악한 것을 포용해야 하니, 이것이 하늘의 법도이다.’
臣昧死上聞, 願陛下察誹謗,聽切言,開天下之口,廣箴諫之路,改亡秦之一失,遵文武之嘉德.
신은 죽음을 무릅쓰고 이 말씀을 올리오니, 폐하께서는 비방하는 말을 밝게 살피시고 간절한 말을 따르시어 천하 사람들의 言路를 여시고 경계하여 간하는 길을 여시며, 멸망한 秦나라가 행한 한 가지 잘못을 고치시고 문왕과 무왕의 아름다운 덕행을 존숭하십시오.
省法制,寬刑罰,以廢煩獄;
則太平之風可興於世,福履和樂,與天地無極,天下幸甚。」
법제를 줄이고 형벌을 너그럽게 하며 옥사의 적폐를 폐기하시면,
태평한 기풍이 세상에 충만하여 복록을 받고 화락한 생활을 천지와 함께하여 다함이 없어서, 천하 백성이 매우 행복할 터입니다.”
書奏,皇帝善之.
상서가 황제에게 올라가자, 황제는 이를 훌륭하게 여겼다.
後卒於臨淮太守。
路溫舒는 뒤에 臨淮太守로 재직 중에 죽었다.
▶ 孝宣皇帝 : 漢宣帝 劉詢. 전한의 제10대 황제. 처음 이름은 病已이고, 자는 次卿이다. 할아버지 戾太子 劉據가 巫蠱의 일에 걸려 자살하고 부모가 모두 해를 당하자 민간에서 길러졌다. 이 때문에 민심의 동정을 잘 알았다. 昭帝가 죽자 霍光이 昌邑王 劉賀를 영입했지만 얼마 뒤 荒淫하다는 이유로 폐위하고 유순을 옹립하였다. 즉위한 뒤 통치를 마음을 쏟아 賢能한 사람을 기용하고 吏治를 중시하여 覇道와 王道를 적절하게 사용해 명실상부한 정치를 꾀하였다.
▶ 守廷尉吏 : 守廷尉史. 刑獄을 주관하는 벼슬.
▶ 路溫舒 : 西漢의 저명한 사법관. 자는 長君. 鋸鹿 東里 사람이다. 유가의 학설을 신봉하여 일찍이 율령을 익혀 縣獄吏, 郡決曹史 등이 되었다. 宣帝 때 〈尙德緩刑書〉를 올려 덕을 숭상하고 형벌을 완화할 것을 주장하여 선제의 인정을 받았다. 이후 거듭 승진하여 右扶風丞이 되었다. 후에 臨淮太守가 되어 훌륭한 치적을 쌓았으나 재임 중에 죽었다. <前漢書 卷51 路溫舒傳>
▶ 尚德緩刑 : 덕을 숭상하고 형벌을 너그럽게 하다.
▶ 始受命 ; 처음 즉위하다.
▶ 滌煩文 : 잡다한 법조문을 제거하다.
▶ 存亡繼絕 : 멸망의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하다.
▶ 盛服先生 : 儒生을 이른 말이다. 유생은 자락이 넓은 옷을 입고 큰 冠을 쓰기 때문에 盛服先生이라 하였다.
▶ 金革 : 兵革. 전쟁을 말한다.
▶ 戮力 : 힘을 합하다. 힘을 다하다.
▶ 與其殺不辜 : <서경>에 “무고한 사람을 죽이기보다는 차라리 법을 지키는 태도를 굽히겠다.(與其殺不辜, 寧失不經”라고 하였다. <書經·虞書·大禹謨〉
▶ 不經 : 규범에 맞지 않다.
▶ 驅 : 몰아붙이다.
▶ 大辟 : 사형.
▶ 捶楚(추초) : 捶는 ᅎᅢ찍질하다, 楚는 회초리.
▶ 鍛鍊 : 혹리가 법을 왜곡하여 죄를 날조함을 비유한 말이다.
▶ 周 : 주도면밀하다.
▶ 内 : 納과 같다. 받아들이다. 감옥에 가두다.
▶ 皋陶 : 舜임금과 禹임금 때의 사법관. 咎陶, 혹은 皋繇라 불리기도 하였다.
▶ 成鍊 : 각종 죄명을 구성하다.
▶ 文致 : 죄를 지은 것으로 꾸미다.
▶ 賊 : 해치다.
▶ 偷 : 슬그머니. 얼버무리다.
▶ 畫地 : 땅바닥에 그리다. 畫은 ‘그을 획’
▶ 鳥鷇 : 새 새끼. 어린 새. <고문관지>에는 烏鳶(오연:까마귀와 솔개)으로 기록하고 있다.
▶ 傳曰 : <春秋左氏傳> 宣公 15년 伯宗이 晉나라 군주에게 간언한 말이다. “강과 호수는 더러운 물을 받아들이고 산과 늪은 독충이 숨어 살도록 하며, 아름다운 玉도 하자를 숨기고 있으니 군주도 치욕을 견디는 것이 하늘이 常道이다.(川澤納汚, 山藪藏疾, 瑾瑜匿瑕, 國君含垢, 天之道也.”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작은 일을 참지 못하면 큰 계획을 어지럽힌다는 뜻이다.
▶ 山藪藏矣 : 矣는 疾의 오기이다. 산과 늪은 독충이 숨어 살도록 하다. 藪는 늪. 疾은 해독을 끼치는 것.
▶ 含垢 : 치욕을 참다. 垢는 치욕.
▶ 箴 : 경계하다. 충고하다.
▶ 臨淮 : 지금의 安徽省 盱眙縣 지역.
12. 다스리는 것은 백성을 양육하는 일이다.
晉平公春築臺,叔向曰:
晉平公이 봄에 누대를 건축하자, 叔向이 말하였다.
「不可。
古者聖王貴德而務施,緩刑辟而趨民時;
今春築臺,是奪民時也。
“안 됩니다.
옛날 聖王은 덕을 숭상하고 선행을 베푸는 데 힘써서 형벌을 완화하고 농사철에는 농사를 재촉하였는데,
지금 봄에 누대를 건축하면 이는 농사철을 빼앗는 것입니다.
夫德不施,則民不歸;
刑不緩,則百姓愁。
덕을 베풀지 않으면 백성이 따르지 않고,
형벌을 완화하지 않으면 백성이 근심합니다.
使不歸之民,役愁怨之百姓,而又奪其時,是重竭也;
따르지 않는 백성을 부리고 근심하는 백성을 사역시키며 또 농사철을 빼앗으면, 이는 거듭 백성의 힘을 고갈시키는 것입니다.
夫牧百姓,養育之而重竭之,豈所以安命安存,而稱為人君於後世哉!」
백성을 다스림은 백성을 양육함인데 거듭 그들의 힘을 고갈시키면, 어떻게 그들의 생명을 안정시키고 몸을 편안히 보존하여 후세에 군주라 칭송되겠습니까!”
平公曰:
「善!」
乃罷臺役。
평공이 “좋다.”라고 하며
곧 누대 건축 공사를 중지하였다.
▶ 晉平公 : 춘추시대 晉나라의 군주로 姬姓 이름은 彪이고, 悼公의 아들이다. 평공 3년에 제후의 군대를 이끌고 魯나라를 구하기 위해 齊나라를 공격하여 수도를 포위하였다. 다음 해 제후들과 督揚에서 모여 대국이 소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조약을 맺었다. 세금을 지나치게 많이 걷고 백성의 형편을 돌보지 않았으며, 淫樂을 즐겨, 정치가 趙·韓·魏의 三家로 넘어갔다. 26년 동안 재위하였다.
▶ 叔向 : 羊舌肹. 춘추시대 晉나라의 賢者. 성은 羊舌이고, 이름은 肹 또는 숙힐이며, 字가 숙향이다. 晉平公의 사부로서 박학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辭令에 밝았다. 齊의 晏嬰, 吳의 季札, 鄭의 자산과 함께 당대의 대표적인 현인으로 불렸다.
▶ 刑辟 : 형법. 형벌.
▶ 趨 : 재촉하다.
▶ 民時 : 농사철
13. 趙簡子가 누대 건축을 중지시키다.
趙簡子春築臺於邯鄲,天雨而不息,謂左右曰:
「可無趨種乎?」
趙簡子가 봄에 邯鄲에 누대를 건축함에 비가 내려 그치지 않자 측근에게 말하였다.
“백성에게 파종하라고 재촉하지 않아서 되겠는가?”
尹鐸對曰:
「公事急,厝種而懸之臺;
夫雖欲趨種,不能得也。」
尹鐸이 대답하였다.
“公事가 급하여 파종하는 일은 놔두고 누대를 건축에 매달려 있으니,
파종을 재촉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簡子惕然,乃釋臺罷役曰:
「我以臺為急,不如民之急也,民以不為臺,故知吾之愛也。」
조간자가 두려운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누대를 건축을 포기하고 役事를 중지시키고 말하였다.
“내가 누대 건축을 급한 일로 여김이 백성의 급함만 못하니, 백성이 내가 누대를 짓지 않는 연유로써 내가 백성을 사랑함을 알 터이다.”
▶ 趙簡子 : 趙鞅. 춘추시대 말기 晉나라의 大夫. 趙孟 또는 志父로도 불린다. 진나라 내부에서 6卿이 세력 다툼을 벌일 때 2경인 范氏와 中行氏를 몰아내고 趙나라를 일으키는 바탕을 마련하였다.
▶ 趨 : 재촉하다.
▶ 尹鐸 : 춘추시대 晉나라 사람이다. 趙簡子가 晉陽을 다스리게 하자, 戶數를 줄여 세금을 감면하고 너그러운 행정으로 민심을 얻어, 뒤에 智伯에게 포위당한 趙襄子가 승리하는 토대를 제공하였다. 《國語 晉語 9》
▶ 厝(조)種 : 파종을 방치하다.
▶ 懸之臺 : 누대를 건축하는 일에 매달리다.
▶ 惕然 :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모양.
14.덕이 부족한 왕은 근심이 많다.
中行獻子將伐鄭,范文子曰:
「不可。
得志於鄭,諸侯讎我,憂必滋長。」
中行獻子가 鄭나라를 공격하려고 하자 范文子가 말하였다.
“안 됩니다.
정나라 공격에서 뜻을 이룬다면 제후들이 우리를 원수로 삼을 터이니, 근심이 틀림없이 더욱 커질 터입니다.”
卻至又曰:
「得鄭是兼國也,兼國則王,王者固多憂乎?」
郤至가 말하였다.
“정나라를 얻음은 나라를 겸병하는 것이고, 나라를 겸병하면 왕 노릇할 수 있습니다. 왕 노릇하는 사람은 본래 근심이 많습니까?”
文子曰:
「王者盛其德而遠人歸,故無憂;
今我寡德而有王者之功,故多憂。
今子見無土而欲富者樂乎哉?」
범문자가 말하였다.
“왕 노릇하는 사람은 성대한 덕을 쌓아서 먼 지방의 사람들까지 歸附하기 때문에 근심이 없으나,
그러나 우리는 덕이 부족한데 왕 노릇하는 사람의 공을 가지려 하매 근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대는 땅이 없으면서 부유하기를 바라는 자가 즐거워함을 보았소?”
▶ 中行獻子 : 中行偃. 춘추시대 晉나라의 정치가로, 씨는 荀 혹은 中行. 荀偃이라고도 하며, 시호는 獻으로 中行獻子다. 字는 伯游이다. 난서와 함께 진 여공을 시해하고 도공을 옹립하여 中軍將이 되었다.
※ 厲公 : 晉厲公. 춘추시대 晉나라의 군주로 이름은 壽曼이며 景公의 아들이다. 鄭나라가 晉나라를 배신하고 楚나라와 동맹을 맺자 여공 6년 군사를 이끌고 정벌하였다.[史記 世家] 권39.晉世家
▶ 將伐鄭 : 《說苑校證》에 “《春秋左氏傳》 成公 16년에는 ‘晉侯가 鄭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였다.[晉侯將伐鄭]’로, 《晉語 6》에는 ‘厲公이 鄭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였다.[厲公將伐鄭]’로, 《史記》 〈晉世家〉에는 ‘厲公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厲公自將]’로 되어 있으니, 이 章이 《晉語》의 내용을 인용한 것인 만큼 ‘中行獻子’는 ‘厲公’의 잘못이다.”라 하였다.
▶ 范文子 : 춘추시대 晉나라 大夫 士燮으로, 士會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范을 食邑으로 받았기 때문에 范氏가 되었다. 文子는 시호이다. 景公 때 郤克을 따라 齊나라 군대를 격파하였고, 厲公 때 鄢陵에서 楚나라 군대를 크게 패배시켰다. 《春秋左氏傳 成公 2‧4‧8‧12~17년》‧《史記 晉世家》
▶ 郤至 : 춘추시대 晉나라의 외교가 및 장수로 형인 郤錡, 숙부인 郤犨와 함께 三郤으로 불리었다. 温 땅에 봉해져서 温季, 季子로 일컬었다.
▶ 又 : 衍文.
15. 仁者愛人
季康子謂子游曰:
「仁者愛人乎?」
季康子가 子游에게 말하였다.
“어진 사람은 남을 사랑합니까?”
子游曰:
「然。」
자유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人亦愛之乎?」
계강자가 말하였다.
“남도 그를 사랑합니까?”
子游曰:
「然。」
자유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康子曰:
「鄭子產死,鄭人丈夫舍玦珮,婦人舍珠珥,夫婦巷哭,三月不聞竽琴之聲。
仲尼之死,吾不閒魯國之愛夫子奚也?」
계강자가 말하였다.
“鄭나라 子産이 죽음에 정나라의 남자들은 玦珮를 풀었고 부인들은 귀걸이를 떼어놓았으며, 부부가 골목에 나와 哭하여 3개월 동안 악기 소리를 듣지 못하였소.
孔子가 죽음에 나는 魯나라 사람들이 공자를 그렇게 사랑하였음을 듣지 못했으니, 무엇 때문이오?”
子游曰:
자유가 말하였다.
「譬子產之與夫子,其猶浸水之與天雨乎?
“子産과 공자를 비유하자면, 아마도 논에 물을 댐과 비가 내림과 같습니다.
浸水所及則生,不及則死.
논에 대는 물이 미치는 곳은 벼가 생장하고, 미치지 못하는 곳은 벼가 죽고 맙니다.
斯民之生也必以時雨,既以生,莫愛其賜.
이 백성이 삶에는 반드시 때맞은 비가 필요하나, 비로써 살만해지면 내리는 비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故曰:
譬子產之與夫子也,猶浸水之與天雨乎?」
그러므로 제가
‘子産과 공자를 비유하자면, 아마도 논에 물을 댐과 비가 내림과 같다.’라고 말하였습니다.”
▶ 季康子 : 춘추시대 말기 魯나라 사람으로 季孫斯의 아들이고, 季孫肥로도 불리며 康子는 시호이다. 아버지를 이어 大夫가 되어 국정을 전담하였다.
▶ 子游 : 춘추시대 魯나라 사람이다. 일설에는 吳나라 사람이라고도 한다. 성명은 言偃, 子游는 字이다. 孔子의 제자로, 孔門四科에서 文學에 들었다. 魯나라에서 벼슬하여 武城宰가 되었을 때 禮樂으로 백성을 가르치자, 孔子가 칭찬하였다. 《論語 學而‧公冶長》‧《史記 仲尼弟子列傳》
▶ 仁者愛人 : 仁을 마음에 지닌 사람은 남을 사랑한다.
※ <孟子> 離婁下 28 : “仁者愛人,有禮者敬人。愛人者人恆愛之,敬人者人恆敬之。: 어진 사람은 남을 사랑하며, 예가 있는 사람은 남을 공경한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들이 항상 그를 사랑하며, 남을 공경하는 사람은 남들이 항상 그를 공경한다.”
▶ 鄭子產 : 子産. 공손교. 姓은 公孫, 이름은 僑, 字는 子産 또는 子美로 鄭子產으로 일컬어진다. 鄭나라의 현명한 大夫로 春秋時代 후기의 뛰어난 정치가이다. 당시 楚나라와 晉나라 같은 강대국 사이에서 압박받던 鄭나라를 교묘한 외교정책과 내정개혁을 통해 유지함으로써 공자에 의해 군자로 칭송되었다.
▶ 玦珮 : 둥근 모양으로 만들어 한쪽을 터놓은 玉佩
▶ 珠珥 : 진주 따위의 구슬을 꿰어 만든 귀걸이.
▶ 竽琴 : 피리와 거문고. 여기서는 악기를 말한다.
▶ 浸水 : 논에 대는 물.
16 中行穆子가 항복을 불허하다.
中行穆子圍鼓,鼓人有以城反者,不許,軍吏曰:
「師徒不勤,可得城,奚故不受?」
中行穆子가 鼓나라를 포위하고 공격하자, 고나라 사람에 성을 바쳐 모반하는 자가 있었으나 중항목자가 허락하지 않자, 軍吏가 말하였다.
“군대가 헛되이 힘쓰지 않고도 성을 얻을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받지 않으십니까?”
曰:
중항목자가 말하였다.
「有以吾城反者,吾所甚惡也;
人以城來,我獨奚好焉?
“우리의 성을 바쳐 모반함은 우리가 매우 미워하는 바이다.
남이 성을 가지고 온다고 우리가 어찌 좋아하겠는가?
賞所甚惡,有失賞也,若所好何?
매우 미워함에 상을 주면 行賞을 잃은 것이니, 좋아함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不賞,是失信也,奚以示民?」
상을 주지 않으면 이는 신의를 잃는 것이니, 무엇을 백성에게 보여주겠는가?”
鼓人又請降,使人視之,其民尚有食也,不聽.
고나라 사람이 또 항복하겠다고 요청하자, 중항목자가 사람을 보내 살펴보게 하여, 백성에게 아직 식량이 있기에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鼓人告食盡力竭而後取之,克鼓而反,不戮一人。
고나라 사람들이 식량이 다 떨어지고 힘이 다하였다고 하자 고나라를 취하니, 고나라를 이기고 돌아옴에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다.
▶ 中行穆子 : 中行 吳. 춘추시대 晉나라의 정치가이다. 씨가 荀 혹은 中行이므오 荀吳라고도 하며, 시호는 穆이다. 중항헌자의 아들이며, 중항문자의 아버지다. 기원전 527년 가을, 선우를 쳤다. 鼓 땅을 포위했는데, 그곳 사람 중 혹자가 모반하여 성을 바치려 했으나 허락하지 않았고, 오히려 고 사람으로 하여금 모반자를 죽이고 다시 정비하여 수비하게 하였다. 포위한 지 석 달이 지나자 고 사람이 항복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마침내 고 사람들이 양식이 다하고 힘이 다하였다고 말하자 그제서야 그 땅을 취하였는데,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다. 고나라 자작 鼓子 鳶鞮를 데리고 돌아왔다.<위키백과>
▶ 鼓 : 춘추시대 나라 이름으로 白狄의 일족이다. 기원전 527년 晉나라에게 멸망당하였다.
17.남에게 베풀기를 힘쓰는 사람은 聖人이다.
孔子之楚,有漁者獻魚甚強,孔子不受,獻魚者曰:
「天暑遠市賣之不售,思欲棄之,不若獻之君子。」
孔子가 초나라에 갔을 때 어부가 심히 억지로 물고기를 드렸으나 공자가 받지 않으매 물고기를 바치는 어부가 말하였다.
“날씨는 덥고 시장은 멀어서 팔아도 팔리지 않아 버리려고 생각했으나, 군자께 바침이 낫겠습니다.”
孔子再拜受,使弟子掃除將祭之,弟子曰:
「夫人將棄之,今吾子將祭之,何也?」
공자가 재배하고 받더니 제자들에게 땅을 쓸고 제사 지내게 하매, 제자가 여쭈었다.
“남이 버리려고 하던 것을 지금 선생님께서 제사를 지내려 하시니 무슨 까닭입니까?”
孔子曰:
「吾聞之,務施而不腐餘財者,聖人也, 今受聖人之賜,可無祭乎?」
공자가 대답하였다.
“내가 듣기에, ‘남에게 베풀기를 힘써서 남은 재물을 썩히지 않는 사람은 聖人이다.’라고 하였는데, 지금 성인의 하사를 받고 제사 지내지 않아야 하겠느냐?”
▶ 售 : 팔다.
▶ 祭之 : 고대에 음식을 먹기 전에 음식을 처음 만든 신에게 드리는 예를 이른다.
▶ 吾子將祭之 : <공자가어>에는 “夫子以祭之”로 기록하고 있다.
18. 마부를 홀대한 대가
鄭伐宋,宋人將與戰,華元殺羊食士,其御羊斟不與焉,及戰,曰:
「疇昔之羊羹,子為政;今日之事,我為政。」
鄭나라가 宋나라를 공격하니 송나라가 맞아 싸우려 할 때 華元이 양을 잡아 병사들을 위로하며 먹이되 그의 마부 羊斟에게는 주지 않자, 접전에 이르러 마부가 말하였다.
“지난번 양고기 국물을 먹인 일은 당신이 주관하였으니,
오늘 병거를 모는 일은 제가 주관하겠습니다.”
與華元馳入鄭師,宋人敗績。
화원과 함께 정나라 군대 속으로 달려 들어가니 송나라가 크게 패배하였다.
▶ 華元 : 춘추시대 송나라의 대신으로 宋 戴公의 5대손이다. 華督의 증손이다. 정 목공 21년(기원전 607년)에 초나라와 송나라의 華元이 정나라를 공격하였다. 화원이 정나라의 포로로 잡혔으나 송나라가 속죄금을 주고 화원을 데려오려 했으나 화원이 도망친 뒤였다.<史記 世家 권38.宋微子世家>
※ 춘추좌씨전 魯宣公 2년(기원전 607년).
2년 봄 周王 2월 壬子日에 宋나라 華元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鄭나라 公子歸生이 거느린 군대와 大棘에서 교전하다가 宋軍이 대패하니, 鄭軍이 송나라 화원을 생포하였다.(二年,春,王二月,壬子,宋華元帥師,及鄭公子歸生帥師,戰于大棘,宋師敗績,獲宋華元。)
▶ 食士 : 병사들을 위로하며 먹이다. 食는 먹이다.
▶ 羊斟 : 춘추시대 宋나라 사람으로 華元의 마부.
※ 華元은 이름난 대부였으나 양을 잡아 병사들에게 먹이면서 자기 전차를 모는 마부에게는 주지 않았고, 霍去病은 훌륭한 장군이었으나 고기를 남기면서도 사졸들이 굶주린 기색을 띠게 하였다. 이들은 그러고서도 능력을 칭송받아 지금까지 전해진다.<당송팔대가문초 卷6 유종원>
▶ 疇昔 : 이전. 그렇게 오래지않는 옛적. 疇는 이전.
▶ 敗績 : 대패하다.
19. 군자의 품행
楚王問莊辛曰:
「君子之行奈何?」
楚王이 莊辛에게 물었다.
“군자의 품행은 어떠해야 하오?”
莊辛對曰:
「居不為垣牆,人莫能毀傷;
行不從周衛,人莫能暴君。
此君子之行也。」
장신이 대답하였다.
“사는 집에 담을 치지 않아도 남들이 상해를 입힐 수 없으며,
다님에 호위를 거느리지 않아도 남들이 군자에게 폭력을 쓸 수 없습니다.
이것이 군자의 품행입니다.”
楚王復問君子之富奈何?
초왕이 다시 ‘군자가 富裕하면 어찌해야 하오?’라고 물었다.
對曰:
장신이 대답하였다.
「君子之富,假貸人不德也,不責也;
其食飲人不使也,不役也;
親戚愛之,眾人喜之,不肖者事之;
皆欲其壽樂而不傷於患。
此君子之富也。」
“군자가 부유하면 남에게 물건을 빌려줌에 은덕이라 여기지 않고, 요구하지 않으며,
남에게 먹고 마시게 한 뒤에 일을 시키거나 부리지 않습니다.
친척이 사랑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며 그보다 못한 사람이 그를 섬겨서,
모두 그가 장수하며 즐겁게 살며 환란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군자의 부유함입니다.”
楚王曰善。
초왕이 ‘좋은 말이오.’라고 하였다.
▶ 楚王 : 楚襄王. 楚 頃襄王. 초나라의 군주로 이름은 橫이다. 楚懷王이 죽은 뒤 큰아들인 頃襄王이 즉위하였다.<史記 권40.楚世家>
<戰國策·楚策>에는 장신이 초 양왕에게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古文觀止]<4권 秦文,楚辭>08.莊辛論幸臣 <출전:戰國策·楚策 >
▶ 莊辛 : 楚莊王의 후예여서 莊을 성으로 삼았다고 한다. 陽陵君에 봉해졌다. 방탕과 사치를 일삼는 楚襄王에게 간하였으나 따르지 않자 趙나라로 망명하였다. 秦나라의 침략을 당한 襄王이 불러 계책을 묻자, 소인을 멀리하고 국정에 힘쓸 것을 건의하였다.<戰國策 楚策>
▶ 為 : 건축하다.
▶ 垣牆 : 담.
▶ 周衛 : 禁衛士兵
▶ 假貸 : 빌려주다.
▶ 責 : 요구하다.
20. 東海 孝婦의 억울한 죽음
-이 글은 <漢書 于定國傳>의 일부분이다
丞相西平侯于定國者,東海下邳人也。
승상 西平侯 于定國은 東海 下邳縣 사람이다.
其父號曰于公,為縣獄吏決曹掾;
決獄平法,未嘗有所冤,郡中離文法者,于公所決,皆不敢隱情.
그의 아버지의 이름은 于公인데 縣의 獄吏 決曹掾이었다.
소송을 법에 따라 공정하게 판결하니 원통하게 여기는 일이 있은 적이 없어서, 동해군에서 법에 걸린 사람이 우공의 판결에 모두 감히 속사정을 감추지 못하였다.
東海郡中為于公生立祠,命曰于公祠。
동해군 사람들이 우공을 위해 살아 있을 때 사당을 세워 于公祠라고 이름하였다.
東海有孝婦,無子,少寡,養其姑甚謹,其姑欲嫁之,終不肯,其姑告鄰之人曰:
「孝婦養我甚謹,我哀其無子,守寡日久.
我老累丁壯奈何?」
동해군에 孝婦가 있었는데 자식이 없고 젊어서 과부가 되어 정성을 다해 시어머니를 봉양하니, 그 시어머니가 그녀를 재가시키려 하였으나 끝내 따르지 않자 시어머니가 이웃 사람에게 말하였다.
“효부가 나를 봉양하기를 몹시 정성스러우나, 나는 며느리가 자식도 없고 과부로 지낸 지가 오래됨을 애처롭게 생각한다.
나는 늙었는데 젊은 며느리가 나에게 얽매이니 이를 어쩔꼬?”
其後母自經死,母女告吏曰:
「孝婦殺我母。」
그 후 시어머니가 목을 매어 자살하자 시어머니의 딸이 관리에게 고발하였다.
“효부가 우리 어머니를 살해했습니다.”
吏捕孝婦,孝婦辭不殺姑,吏欲毒治,孝婦自誣服.
관리가 효부를 체포하자 효부는 시어머니를 살해하지 않았다고 부인하였으나, 관리가 혹독하게 치죄하려고 하자 효부는 스스로 거짓 자백을 하고야 말았다.
具獄以上府,于公以為養姑十年之孝聞,此不殺姑也,太守不聽,數爭不能得.
관리가 판결문을 갖추어 上府에 보고하니, 于公은 ‘시어머니를 10년 봉양하여 효성으로 알려졌으니 이 사람은 시어머니를 살해하지 않았다.’라고 하였으나, 태수가 듣지 않으매 여러 차례 다투어 말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於是于公辭疾去吏,太守竟殺孝婦。
이리하여 우공이 병을 핑계로 관직을 떠나니, 태수가 끝내 효부를 사형에 처하였다.
郡中枯旱三年,後太守至,卜求其故,于公曰:
「孝婦不當死,前太守強殺之,咎當在此。」
동해군에 가뭄이 들기 3년, 후임 태수가 부임하여 그 까닭을 점쳐 묻자, 우공이 말하였다.
“효부는 사형에 해당하지 않았는데 전임 태수가 억지로 죽였으니, 허물이 응당 여기에 있습니다.”
於是殺牛祭孝婦冢,太守以下自至焉,天立大雨,歲豐熟,郡中以此益敬重于公。
이에 소를 잡아 효부의 무덤에 제사를 지내며 태수 이하의 관리가 직접 제사에 참여하자, 하늘이 큰비를 내려 그해에 풍년이 드니, 郡民이 이 때문에 더욱 우공을 공경하고 존중하였다.
于公築治廬舍,謂匠人曰:
「為我高門.
我治獄未嘗有所冤,我後世必有封者,令容高蓋駟馬車。」
우공이 집을 지을 때 목수에게 당부하였다.
“나를 위해 대문을 높게 지어라.
내가 옥사를 처리함에 일찍이 원통함이 없어서, 나의 후대에 틀림없이 封爵을 받는 자가 있을 터이매, 높은 마차와 사두마차를 수용하게 하라.”
及子封為西平侯。
아들에 이르러 西平侯에 봉해졌다.
▶ 于定國 : 字는 曼倩이며 東海郡 郯縣 사람으로 西漢 때의 관원이다. 아버지가 于公으로 칭해졌으며, 현의 옥리로서 옥사를 공정하게 처리하여 于公祀라는 사당이 세워졌다.
▶ 東海下邳 : 東海郡 下邳縣
▶ 決曹掾 : 決曹에 속한 하급 관리로, 決曹는 漢나라 때 현의 형법을 주관하던 벼슬이다. 掾은 그 결조의 屬官이다.
▶ 冤 : 억울하다. 원통하다.
▶ 離文法 : 법에 걸리다. 文法은 法令條文. 離는 만나다.
▶ 隱情 : 속사정. 말못할 사실이나 원인.
▶ 姑 : 시어머니.
▶ 謹 : 공손히.
▶ 累 : 결박하다.
▶ 丁壯 : 건장하다.
▶ 母 : 여기에서는 婆母, 즉 시어머니를 말한다.
▶ 自經死 : 스스로 목매어 죽다
▶ 毒治 : 엄한 형벌로 심문하다.
▶ 誣服 : 억지로 自服하다.
▶ 具獄 : 판결문을 갖추다
▶ 咎 : 허물. 저지른 잘못.
▶ 駟馬 : 사두마차. 한 수레를 끄는 네 필의 말.
21. 때맞추어 내리는 비와 같은 敎化 <時雨之化> - 春風風人, 夏雨雨人 -
孟簡子相梁并衛,有罪而走齊,管仲迎而問之曰:
「吾子相梁并衛之時,門下使者幾何人矣?」
孟簡子가 梁나라와 衛나라의 재상을 겸하다가 죄를 지어 齊나라로 달아나자 管仲이 맞이하며 물었다.
“그대는 양과 위의 재상을 겸할 때 門下에 부리는 사람이 몇 명이었소?”
孟簡子曰:
「門下使者有三千餘人。」
맹간자가 대답하였다.
“문하에 부리는 사람이 3천여 명이 있었지요.”
管仲曰:
「今與幾何人來?」
관중이 물었다.
“지금 몇 사람과 함께 왔소?”
對曰:
「臣與三人俱。」
맹간자가 대답하였다.
“저는 3인과 함께 왔습니다.”
仲曰:
「是何也?」
관중이 물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오?”
對曰:
「其一人父死無以葬,我為葬之;
一人母死無以葬,亦為葬之;
一人兄有獄,我為出之。
是以得三人來。」
맹간자가 대답하였다.
“그중 한 사람은 아버지가 죽었으나 장사지내지 못하매 내가 장례를 치러주었고,
한 사람은 어머니가 죽었으나 장사지내지 못하매 또 장례를 치러주었으며,
한 사람은 형이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내가 나오게 해주었지요.
이 때문에 세 사람을 얻어 왔습니다.”
管仲上車曰:
「嗟茲乎!我窮必矣.
吾不能以春風風人;
吾不能以夏雨雨人,吾窮必矣。」
관중이 수레를 타면서 말하였다.
“아! 내가 곤궁해짐은 틀림없겠구나.
나는 때맞추어 부는 봄바람처럼 남에게 불어주지 못했고,
나는 만물을 적시는 여름비처럼 남에게 적셔주지 못했으니, 내가 곤궁해짐은 틀림없겠구나.”
▶ 孟簡子 : 춘추시대 梁나라 재상.
▶ 梁 : 梁나라. 기원전 340년 魏나라는 齊나라와의 전쟁에 패하여 安邑에서 동쪽인 大梁으로 천도하게 되며, 그 이후 魏나라는 梁나라로 불리게 되었다.
▶ 衛 : 周武王의 동생 康叔을 시조로 하는 諸侯國이다. 戰國時代에 이르러서 강국인 秦·魏 사이에 끼어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가 기원전 209년 衛君 角 때 진나라의 2세 황제에 의해 멸망하였다.
▶ 春風風人 : 때맞추어 부는 봄바람처럼 남에게 불어주다. 교육이 주는 감화와 은택을 비유한 것이다.
▶ 夏雨雨人 : 만물을 적시는 여름비처럼 남에게 적셔주다. 제때에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22. 군자는 이익에 대해 말함을 부끄러워한다.
-이 글은 <春秋繁露 玉英編>의 일부분이다.
凡人之性,莫不欲善其德,然而不能為善德者,利敗之也;
故君子羞言利名,言利名尚羞之,況居而求利者也。
사람의 본성은 자기의 德性을 선하게 하려고 하지 않는 이가 없으나, 선한 덕을 행하지 못함은 이익이 그것을 이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자는 이익과 명예에 대해 말함을 부끄러워하고, 이익과 명예를 말함조차 부끄러워하는데, 하물며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랴!
23. 덕을 귀중히 여기고 이익을 천시함으로써 아랫사람을 인도해야 한다.
周天子使家父毛伯求金於諸侯,春秋譏之;
周나라 천자가 家父와 毛伯을 보내어 제후에게 재물을 요구하니 <春秋>에서 이 일을 나무랐다.
故天子好利則諸侯貪,諸侯貪則大夫鄙,大夫鄙則庶人盜,上之變下,猶風之靡草也.
그래서 천자가 이익을 좋아하면 제후는 탐욕하고, 제후가 탐욕하면 대부는 비루하고, 대부가 비루하면 서민은 도둑질하니,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변화시킴은 바람이 풀을 눕게 함과 같다.
故為人君者明貴德而賤利以道下,下之為惡,尚不可止;
그래서 군주 된 사람은 덕을 귀중히 여기고 이익을 천시함을 밝힘으로써 아랫사람을 인도하나, 아랫사람의 악행을 그래도 제지할 수가 없다.
今隱公貪利而身自漁濟上而行八佾,以此化於國人,國人安得不解於義.
지금 隱公은 이익을 탐하여 몸소 濟水에서 물고기를 잡고, 八佾舞를 거행하면서 백성을 교화하였으니, 백성이 어찌 도의를 행함에 게으르지 않겠는가?
解於義而縱其欲,則災害起而臣下僻矣,故其元年始書螟,言災將起,國家將亂云爾。
도의를 행함에 게으르면서 자기의 욕망대로 방종하면 재해가 발생하고 신하는 편벽해지므로, 은공 원년에 螟蟲의 재해를 기록하였으니, 앞으로 재해가 발생하고 국가가 어지러워지겠다는 말이다.
▶ 周天子使家父毛伯求金於諸侯 : 춘추시대에 周王이 노나라 제후에게 재물을 요구한 일이 세 차례 있었다.
1.魯隱公 3년 : 주나라 大夫 武氏의 아들이 노나라에 와서 周平王을 장사지내려고 賻儀를 요구하였다. “武氏子來求賻”<춘추좌씨전 魯隱公 3기원전 720년>
2.魯桓公 15년 : 봄에 天王이 家父를 魯나라에 보내 수레를 요구하였으니 이는 禮가 아니다. 제후는 수레와 의복을 進貢하지 않고, 천자는 사사로이 재물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十有五年春二月, 天王使家父來求車”<춘추좌씨전 魯桓公 15년(기원전 697년)>
3.魯文公 9년 : 봄에 毛伯이 魯나라에 와서 재물을 요구하였다. “九年春, 毛伯來求金 <춘추좌씨전 魯文公 9년(기원전 618년)> 周襄王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재물을 요구한 것이다.
▶ 隱公 : 노나라의 제14대 군주로 이름은 息姑이다. 노 혜공의 서장자로, 어머니는 聲子이며, 혜공이 죽자 태자인 아우 윤의 나이가 어려 노나라 사람들에게 옹립되어 섭정하였다.[史記 世家] 권33.魯周公世家
▶ 身自漁 : 觀漁於棠. 은공 5년(기원전 718년), 노나라 棠 땅에서 물고기 잡는 것을 보러 갔다. 장희백은 자연에서 물품을 직접 생산하는 일은 임금의 직분이 아니라고 말렸으나, 은공은 핑계를 대고 갔다. 이 해 장희백이 죽자, 은공은 장희백이 간언을 듣지 않음을 한탄하며 후히 장례를 치렀다.<춘추좌씨전 노은공 5년(기원전 718년)>
이것은 은공이 직접 물고기를 잡아 백성과 이익을 다투려고 했기 때문에 비난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古文觀止] <1권 周文>04.臧僖伯諫觀魚<출처:左傳, 작자:左丘明>
※ 棠 : 노나라 땅. 지금의 산동성 魚台縣 동쪽.
▶ 解 : 게을리하다.
▶ 行八佾 : <춘추> 魯 隱公 5년에 “仲子의 사당을 완성하고 처음으로 六羽를 바쳤다.(考仲子之宮, 初獻六羽)”라고 하였는데, <춘추공양전>에서 이를 “천자의 예를 僭用하여 八佾舞를 춘 것인데 노 은공의 악을 숨기기 위하여 ‘六羽’라고 표현하였다.”라고 하였다.
‘六羽’는 춤추는 사람이 여섯 줄로 늘어서서 羽를 잡고 춘다는 뜻으로, ‘六佾’과 같은 말이다. 八佾舞는 여덟 사람이 여덟 줄로 64명 춤춤을 말한다.
▶ 元年始書螟 : <춘추> 隱公 元年에는 螟의 발생을 쓰지 않았고, 隱公 5년에 처음으로 螟의 발생을 기록하였으니, ‘元年’은 ‘五年’의 잘못인 듯하다.
▶ 螟 : 벼 줄기의 속을 파먹는 벌레
24.싸움질을 하는 사람들은 추악하다<荀子>
-이 글은 <荀子·榮辱篇>을 인용한 글이다.
孫卿曰:
孫卿(:荀子)이 말하였다.
「夫鬥者忘其身者也,忘其親者也,忘其君者也;
“싸우는 사람은 자기 몸을 잊어버린 사람이며, 자기 부모를 잊어버린 사람이며, 자기의 군주를 잊어버린 사람이다.
行須臾之怒,而鬥終身之禍,然乃為之,是忘其身也;
잠시의 노여움을 풀고자 죽을 때까지 화란을 모으며 싸우되, 그런데도 싸움질을 하니 자기의 몸을 잊은 것이요,
家室離散,親戚被戮,然乃為之,是忘其親也;
집안사람이 흩어지고 친척이 죽임을 당하되, 그런데도 싸움질을 하니 자기의 부모를 잊은 것이다.
君上之所致惡,刑法上所大禁也,然乃犯之,是忘其君也。
군주가 싫어하는 바이고, 형법에서도 크게 금지하는 바이되, 그런데도 이를 범하니 자기의 군주를 잊은 것이다.
今禽獸猶知近父母,不忘其親也;
人而忘其身,內忘其親,上忘其君,是不若禽獸之仁也。
그런데 禽獸조차 부모를 친근히 할 줄을 알아서 자기의 부모를 잊지 않는데,
사람이면서 자기의 몸을 잊고 안으로는 자기의 부모를 잊으며 위로는 자기의 군주를 잊음은, 금수의 仁愛만도 못하다.
凡鬥者皆自以為是而以他人為非,己誠是也,人誠非也,則是己君子而彼小人也;
대체로 싸우는 사람은 모두 자기는 옳고 남은 그르다고 여기니, 자기는 옳고 남은 그르다면 자기는 군자이고 남은 소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夫以君子而與小人相賊害,是人之所謂以狐亡補犬羊,身塗其炭,豈不過甚矣哉!
군자로서 소인과 서로 싸워 해친다면, 이것은 사람들의 소위 ‘여우로 도망친 개나 양을 대신하고 몸에 숯가루를 바름’이니, 어찌 잘못됨이 심하지 않은가!
以為智乎,則愚莫大焉;
以為利乎,則害莫大焉;
以為榮乎,則辱莫大焉;
人之有鬥何哉?
지혜로 여긴다면 이보다 큰 어리석음이 없고,
이익으로 여긴다면 이보다 큰 손해가 없고,
영광으로 여긴다면 이보다 큰 치욕이 없는데도,
사람들이 싸움은 무엇 때문인가?
比之狂惑疾病乎,則不可面目人也,而好惡多同.
미쳤거나 질병에 견줄 것인가?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면목은 사람이고 좋아하고 싫어함이 대부분 똑같기 때문이다.
人之鬥誠愚惑夫道者也。
사람들이 싸움은 도리에 대해 진실로 어리석고 미혹되었기 때문이다.
《詩》云:
『式號式呼,俾晝作夜』,言鬥行也。」
<詩經>에서 이르기를
‘호통치고 소리치며 밤낮도 없이 지낸다.’라고 하였으니, 싸우는 행위를 말함이다.”
文王曰
咨、咨女殷商。
天不湎爾以酒、不義從式。
既愆爾止、靡明靡晦。
式號式呼、俾晝作夜。
문왕께서 말하였다.
아아, 아아 그대들 은나라여!
하늘이 그대들 술에 빠져들지 말라 했어도 올바르지 못한 일만 하고 있다.
그대들 행동에 허물이 많아서 밤과 낮 가리지 않는다.
호통치고 소리치며 밤낮도 없이 지낸다.
▶ 孫卿 : 荀子.
전국시대 趙나라의 학자(B.C.313~B.C.238)로, 성은 荀 이름은 況.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여 荀卿 또는 孫卿이라 하였다. 저서에 <荀子> 20권이 있다. 그는 공자의 학문을 표준으로 하여, 인간의 타고난 성품은 악한데, 그것을 禮와 義를 통해 바로 잡아야 선하게 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性惡說을 주장하였다.[史記列傳] 권74 孟子荀卿列傳
▶ 則不可面目人也 : <荀子·榮辱篇>에는 “則又不可,其形體又人,而好惡多同。: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그들의 형체가 또한 사람이면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도 여느 사람과 많이 같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 《詩》云(<시>운 : 詩經 大雅 蕩>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시는 은나라가 망하게 된 세태를 풍자한 노래이다.
▶ 式 : 助詞
▶ 俾晝作夜 : 밤낮 없이 소리치며 나쁜 행동만 일삼고 있다.
25. 칼보다는 仁義로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
子路持劍,孔子問曰:
「由,安用此乎?」
子路가 劍을 지니고 있으니 공자께서 물으셨다.
“由야! 그 검을 어디에 쓰려느냐?”
子路曰:
「善,古者固以善之;
不善,古者固以自衛。」
자로가 대답하였다.
“선의로 대하는 사람은 저도 굳게 선의로 대하고,
선의로 대하지 않는 사람은 저도 굳게 자신을 지키려 합니다.”
孔子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君子以忠為質,以仁為衛,不出環堵之內,而聞千里之外;
“군자는 충성을 바탕으로 삼고 仁을 護衛로 삼아, 집에서 나가지 않아도 천 리 밖에까지 알려진다.
不善以忠化寇,暴以仁圍,何必持劍乎?」
나쁜 사람은 정성으로 적을 감화하고, 포학한 사람을 만나면 仁으로 막아야지, 하필 검을 지녀야 하느냐?”
子路曰:
「由也請攝齊以事先生矣。」
자로가 말하였다.
“저 由가 공손하며 예의바르게 선생님을 섬기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 子路 : 仲由. 姓은 仲, 이름은 由, 字는 子路, 또는 季路이다. 공자의 핵심 제자의 한 사람으로, 공자의 천하유세 동안 고난을 끝까지 함께하였다.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갈 때 위나라에 남아서 공씨의 가신이 되었으나, 위나라 왕실 계승 분쟁에 휘말려 괴외의 난 때 전사하였다.
▶ 古人 : 옛사람. 자기 자신을 말한다. ‘古’를 ‘吾’로 고쳐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 環堵 : 흙담으로 둘러싸인 좁은 집.
▶ 攝齊 : 옷자락을 잡다. 고대 관원들이 계단을 오를 때 옷자락을 들어 올리고 계단을 올랐다. 여기서는 공손하고 예의가 바름을 말한다. 齊는 옷자락 ‘자’.
26. 어진 마음과 어질지 못한 마음
-이 글은 <韓非子·說林上>에 실려 있다.
樂羊為魏將,以攻中山,其子在中山,中山縣其子示樂羊,樂羊不為衰志,攻之愈急.
樂羊이 魏나라의 장수가 되어 中山을 공격함에 그의 아들이 중산에 있었는데, 중산 사람이 그의 아들을 매달아서 악양에게 보였으나, 악양은 투지가 약화되지 않고 더욱 급히 공격하였다.
中山因烹其子而遺之,樂羊食之盡一杯,中山見其誠也,不忍與之戰,果下之.
중산국에서 이 때문에 그의 아들을 삶아서 보내니, 악양은 한 그릇의 국을 모두 마셔버리니, 중산 사람들이 그의 정성을 보고 차마 그들과 교전하지 못하여 결국 항복하였다.
遂為魏文侯開地,文侯賞其功而疑其心。
이어 魏 文侯를 위해 영토를 개척하매, 문후가 악양의 전공에 대하여 상주면서도 그의 마음을 의심하였다.
孟孫獵得麑,使秦西巴持歸,其母隨而鳴,秦西巴不忍,縱而與之.
孟孫이 사냥하여 새끼 사슴을 잡아 秦西巴에게 가지고 돌아가게 하였더니, 사슴의 어미가 따라오면서 슬피 울자 진서파가 참지 못하고 놓아서 보내 주었다.
孟孫怒逐秦西巴,居一年召以為太子侍,左右曰:
「夫秦巴有罪於君,今以為太子傅,何也?」
맹손이 노하여 진서파를 내쫓았다가, 1년이 지나서 불러서 태자의 스승으로 삼자 측근이 물었다.
“진서파에게 주군에 대한 죄가 있는데도 태자의 스승으로 삼음은 무슨 이유입니까?”
孟孫曰:
「夫以一麑而不忍,又將能忍吾子乎?」
맹손이 대답하였다.
“사슴 새끼 한 마리도 잔인한 마음으로 대하지 못하는데, 또 장차 어찌 내 아들에게 잔인한 마음으로 대하겠느냐?”
故曰:
『巧詐不如拙誠』.
그래서 일렀다.
“교묘하게 속이는 것은 우매한 성실함 만 못하다.”
樂羊以有功而見疑,秦西巴以有罪而益信;
由仁與不仁也。
악양은 공을 세웠으나 의심을 받았고, 진서파는 죄가 있어서 더욱 신임을 받았으니, 仁과 不仁에 연유한 것이다.
▶ 樂羊為魏將,以攻中山 : 기원전 408년에 魏나라 文侯가 樂羊을 시켜 中山을 쳐부수게 하였다. 그때 악양의 아들이 중산국에 있었는데, 중산국의 임금이 악양의 아들을 삶아 그 국물을 악양에게 보냈다. 악양은 幕下에 앉아 이를 받아 한 잔을 모두 마셔 버렸다. 결국 악양이 중산국을 깨뜨리자 문후는 그 공으로 상을 주면서도 악양의 마음을 의심하였다. <戰國策 魏策> [史記列傳] 권80 樂毅列傳
▶ 中山 : 周나라의 諸侯國 이름으로 전국시대에 中山國이었다. 趙 武靈王에게 멸망되었다.
▶ 魏文侯 : 전국시대 魏나라의 초대 제후로 성은 姬, 씨는 魏, 이름은 ‘斯’, 또는 ‘都’이다. 李悝·吳起·樂羊·西門豹 등 인재를 등용하였고, 위나라를 전국시대 최초로 패국으로 만들었다.
▶ 孟孫 : 魯나라 三桓의 하나이다. 三桓은 춘추시대 노나라의 세 卿의 집안 季孫氏, 叔孫氏, 孟孫氏의 세 귀족 집안을 가리키는 말이다. 각 집안의 시조는 모두 노 환공의 아들들로 계손씨는 공자 季友, 숙손씨는 공자 淑牙, 맹손씨는 공자 慶父의 자손이며, 이 때문에 桓公의 자손인 세 집안이란 의미로 삼환이라고 한다
▶ 秦西巴 : 노나라 孟孫의 家臣.
▶ 麑 : 사슴의 새끼.
▶ 巧詐 : 교묘하게 속이다.
▶ 拙誠 : 우매한 성실.
▶ 由仁與不仁也 : 仁과 不仁에 연유한다.
※ 仁者의 허물은 항상 후함과 사랑에 있고, 不仁한 자의 허물은 항상 박함과 잔인함에 있다.<근사록집해>
※ 공자께서도 말씀하시기를 ‘길은 둘이니, 仁을 하는 것과 인을 하지 않는 것뿐이다.’ 하셨다.<맹자집주>
27. 智果가 知襄子에게 간언하다
-이 글은 <國語 晉語9>에 기록되어 있다.
智伯還自衛,三卿燕於藍臺,智襄子戲韓康子而侮段規,智果聞之諫曰:
「主弗備難,難必至。」
智伯이 衛나라에서 돌아오니 三卿이 藍臺에서 잔치를 열었는데, 智襄子(:智伯)가 韓康子를 희롱하고 段規를 모욕하더니, 智果가 이를 듣고 간하였다.
“주군께서 재난을 미리 대비하지 않으시면 재난이 틀림없이 닥칠 터입니다.”
曰:
「難將由我,我不為難,誰敢興之。」
지백이 말하였다.
“재난은 나로부터 비롯될 터인데, 내가 재난을 일으키지 않으면 누가 감히 재난을 일으키겠느냐?”
對曰:
「異於是,夫郤氏有車轅之難,趙有孟姬之讒,欒有叔祁之訴,范中行有函冶之難,皆主之所知也。
지과가 대답하였다.
“말씀하신 것과는 다릅니다. 郤氏 집안에 車轅의 재난이 있었고, 趙氏 집안에 孟姬의 참소가 있었으며, 欒氏 집안에 叔祁의 誣陷이 있었고, 范氏와 中行氏는 函冶의 재난이 있었음은, 모두 주군께서 아시는 바입니다.
夏書有之曰:
『一人三失,怨豈在明,不見是圖。』
<書經 夏書>에 일렀습니다.
‘한 사람의 잘못이 많은데 원망이 어찌 겉으로 밝혀지랴? 원망은 보이지 않을 때 도모해야 한다.’
《周書》有之曰:
『怨不在大,亦不在小。』
<書經 周書>에 일렀습니다.
‘원한은 큰일에 있지 않으며, 작은 일에만 있지도 않다.’
夫君子能勤小物,故無大患;
今主一謀而媿人君、相,又弗備,曰不敢興難,毋乃不可乎?
군자는 작은 일에 애를 힘쓰기 때문에 큰 환난이 없습니다.
지금 주군은 한 번의 잔치에서 남의 주군과 재상을 부끄럽게 만들고도 미리 방비하지 않고 ‘감히 재난을 일으키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시니, 옳지 않은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嘻!不可不懼,蚋蟻蜂蠆皆能害人,況君相乎?」
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 되니, 모기‧개미‧벌‧전갈 같은 것들도 모두 사람을 해치는데 하물며 인군과 재상이겠습니까?”
不聽,自是五年而有晉陽之難,段規反而殺智伯于師,遂滅智氏。
지백이 듣지 않더니, 이로부터 5년 뒤에 晉陽의 난이 일어나서, 단규가 지백을 배반하여 군중에서 지백을 죽이고 마침내 智氏를 멸망시켰다.
▶ 智伯 : 춘추시대 말 전국시대 초기의 晉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瑤이며, 荀瑤 또는 智襄子라고도 부른다. 晉出公 17년에 趙, 韓, 魏와 함께 范氏와 中行氏의 땅을 나눠 邑으로 삼았다. 趙襄子가 한, 위와 함께 知氏를 멸족시켰다.
▶ 還自衛 : 魯 悼公 4년(기원전 464년)에 知襄子가 鄭나라를 정벌하고 衛나라 길로 돌아온 것이다.
▶ 三卿 : 晉나라의 卿인 智伯, 韓康子, 魏桓子
▶ 藍臺 : 晉나라의 地名
▶ 韓康子 : 이름은 虎이다. 춘추전국시대 진나라 한씨의 영수로 한 장자의 아들이다.
▶ 段規 : 韓康子의 家臣. <國語> <晉語 9>에는 ‘知伯國’으로 기록하고 있다.
▶ 郤氏有車轅之難 : 郤氏가 長魚矯에게 멸망당한 재난. 郤氏는 晉나라의 大族으로 郤錡, 郤犫, 郤至가 모두 大夫였다. 郤犨가 長魚矯와 전답을 다투었는데, 郤犨가 장어교를 잡아 수갑을 채우고, 그의 부모와 처자까지 한 대의 수레 끌채에 함께 묶어두어 욕을 보인 일이 있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장어교가 晉厲公의 총애를 받게 되자, 三郤으로 불리던 세 郤氏를 모두 멸망시켰다. <春秋左氏傳 成公 17년>
▶ 趙有孟姬之讒 : 孟姬의 참소로 趙同과 趙括이 죽은 일을 이른다. 孟姬는 趙文子의 어머니인 莊姬를 말하며, 맹희가 媤叔父가 되는 趙嬰과 간통하고 지내자, 嬰의 형인 同과 括이 嬰을 쫓아냈다. 맹희가 이를 원망하여 친정오라비인 景公에게 참소하자, 경공이 조동과 조괄을 죽였다.<春秋左氏傳 成公 4‧5‧8년>
▶ 欒有叔祁之訴 : 叔祁가 친정아버지에게 참소하여 欒氏 집안을 멸망시킨 일을 이른다. 欒은 당시 晉나라의 세력가 欒盈, 叔祁는 欒盈의 어머니로 范宣子의 딸이다. 叔祁가 가신의 우두머리인 州賓과 간통하자, 아들 난영이 이를 근심하였는데, 숙기가 범선자에게 참소하여 欒氏 집안을 멸망시켰다. <春秋左氏傳 襄公 21년>
▶ 范中行有函冶之難 : 范皐夷가 范氏와 中行氏를 멸망시킨 일을 이른다. 范은 范吉射이다. 中行은 中行寅이다. 函冶는 范皐夷의 식읍이었다. 범길사의 서자인 皐夷는 아버지의 총애를 받지 못하자, 韓氏‧魏氏와 연합하여 아버지의 지위를 빼앗으려고 난을 일으켜 노 魯 定公 13기원전 497에 그들을 축출하였다. <春秋左氏傳 定公 13‧14‧15년>
▶ 夏書有之曰 : <書經> <夏書 五子之歌>에서 인용한 것이다. “一人三失,怨豈在明,不見是圖. : 한 사람이 세 번 실수를 하였으니 원망이 어찌 겉으로 밝혀지랴? 원망은 보이지 않을 때 도모해야 하는 것이네.”
※ 하나라의 왕 太康이 나라를 돌보지 않아 나라를 잃게 되자 그의 다섯 아우가 태강을 원망하며 부른 노래이다. [書經]권3 夏書 甘誓 五子之歌-후안무치[厚顔無恥]
▶ 周書有之 : <書經> <周書 康誥〉에서 인용한 것이다. <康誥>는 상서의 편명이며 康은 문왕의 아홉째 아들이며, 무왕의 동생으로 이름을 봉이라 하는데 그가 제후로 책봉될 때 성왕이 강공에게 훈시한 내용이다. <尙書 周書 康誥>
▶ 謀 : 《國語》 〈晉語 9〉에는 ‘晏’자로 썼다. 《說苑校證》에 “‘謀’는 본래 ‘讌’자였는데, 모양이 비슷하여 謀자가 되었고, ‘燕’‧‘讌’과 ‘晏’이 모두 통용이다.”라 하였다.
▶ 晉陽之難 : 기원전 453년에 晉나라의 3卿인 韓虎:韓康子, 魏駒:魏桓子, 趙孟:趙無恤이 당시 晉나라의 최대 실권자이자 최대의 영토를 보유한 知伯 瑤를 晉陽에서 죽이고 知氏 일문을 멸문시킨 다음 그 영토를 공평하게 나눔으로써 사실상 晉나라를 삼분하였다 [史記 世家] 권43.趙世家<趙襄子> [史記 世家] 권39.晉世家
28.높은 산과 가파른 언덕에는 초목이 자라지 않는다.
-이 글은 <國語 晉語9>에 기록되어 있다.
智襄子為室美,士茁夕焉,智伯曰:
「室美矣夫!」
智襄子가 집을 아름답게 지었는데 士茁이 저녁에 지양자를 찾아뵈었다.
智伯(:智襄子)이 말하였다.
“집이 아름답구나!”
對曰:
「美則美矣,抑臣亦有懼也。」
사줄이 대답하였다.
“아름답기는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두려움만 있습니다.”
智伯曰:
「何懼?」
지백이 물었다.
“무엇이 두려운가?”
對曰:
사줄이 대답하였다.
「臣以秉筆事君,記有之曰:
高山浚源,不生草木,松柏之地,其土不肥.
“신이 붓을 잡고 문서를 담당하며 주군을 모시는데 옛 기록에 일렀습니다.
‘높은 산과 가파른 언덕에는 초목이 자라지 않고, 松柏이 자라는 땅은 그 토양이 기름지지 않다.’
今土木勝,臣懼其不安人也。」
그런데 토목공사가 훌륭하니 신은 그것이 사람을 편안히 해주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室成三年而智氏亡。
집을 완성한 지 3년 만에 智氏가 멸망하였다.
▶ 智伯 : 춘추시대 말 전국시대 초기의 晉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瑤이며, 荀瑤 또는 智襄子라고도 부른다. 晉出公 17년에 趙, 韓, 魏와 함께 范氏와 中行氏의 땅을 나눠 邑으로 삼았다. 趙襄子가 한, 위와 함께 知氏를 멸족시켰다.
▶ 士茁 : 智伯의 家臣.
▶ 抑 : 그러나. 다만.
▶ 浚源 : 《國語》 〈晉語 9〉에 ‘峻原’으로 되어 있고, 《藝文類聚》 권88‧《太平御覽》 권174‧458 등에 모두 ‘峻原’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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