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第3章 結字(결자) 본문
1
結字須令整齊中有參差 方免字如算子之病.
結字는 모름지기 整齊한 가운데 參差가 있게 해야 하나니, 그때야 바야흐로 글자가 算子와 같은 病을 免한다.
逐字排比 千體一同 便不成書.
글자마다 나란히 벌여 놓아서 千體가 한결같으면 곧 書가 되지 못한다.
結字란 書의 構成이다.
구성에는 한 字의 구성법이 있고, 한 行의 구성법이 있고, 또 全幅의 구성법이 있다. 本文은 한 字의 구성법에서 全幅의 구성법에 이르기까지 그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構成은 整齊中에 參差함이 있어야 한다.
參差는 整齊의 對立概念으로, 뒤섞여 있으며 짝이 맞지 않음을 말한다.
算子는 주판의 알로서, 주판알은 整齊만을 중히 여긴다.
그러나 書의 구성은 整齊만으로는 아무런 멋이 없다. 어느 정도의 參差가 포함되어 있어야만 感興이 일어나므로, 書에 있어서 整齊의 美는 參差를 포함한 整齊이어야 한다. 活字나 筆耕의 眞書에는 거의 參差가 없다.
逐字排比는 지붕의 기와가 정연하게 줄지어 있듯이 한 字 한 字를 순서에 따라 나란히 쓴 것으로, 職人의 技이지 書의 美는 아니다.
千體一同도 같은 뜻이다.
書의 구성에 氣脈이 貫通해져 있으면 參差의 풍부함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요즈음 書家들은 行草에서는 參差를 연구하지만 眞書에서는 逐字排比·千體一同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鍾繇나 王右軍의 眞書를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2
作字不須豫立間架.
글자를 쓸 때 모름지기 間架를 미리 定해서는 안 된다.
長短大小字各有體 因其體勢之自然與爲消息.
大小長短에 있어서 字에는 固有의 體가 있으므로, 그 體勢의 自然에 따라서 함께 변화한다.
所以能盡百物之情狀 而與天地之化相肖.
百物의 情狀을 모두 나타내고 天地의 造化와 相肖하는 이유이다.
有意整齊與有意變化 皆是一方死法
整齋에 意圖를 두고 變化에 意圖를 두면 모두 한결같이 死法에 지나지 않는다.
글자를 쓸 때 間架를 豫想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한결같은 장단에 편승하면, 前文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排比一同으로 된다. 그러므로 그 間架의 예상에 문제가 있다.
字에는 각각 나름대로의 體가 있다. 이것을 造形上의 個性이라고 말해도 좋다. 〈因其體勢之自然〉이란 各字의 개성에 따라서 造形된다는 뜻이다.
消息이란 옮기어 변화하는 것이므로 한 字 한 字 써가는 가운데 자연히 各字의 개성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百物에는 각각 다른 形이 있다. 동물이나 식물만 보더라도 모두 다르다. 하물며 書는 만물의 形을 암시하는 힘을 갖고 있으므로 千體一同이면 좋은 書라고 할 수 없다.
百物의 情狀1)을 모두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된다.
1)情狀: 情은 마음 속에 있는 것이며 狀은 마음 밖에 나타나는 것임.
그것이 天地의 化育과 相肖하여야 하고, 이것이 바로 書란 天地의 化育에 참여하는 예술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本文은 여기에서 百尺竿頭進一步하여 整齊에 의도가 있거나 또는 변화에 의도가 있으면 모두 한결같이 死法이라고 말하고 있다.
有意란 意圖가 있다는 뜻이다. 意圖가 있으면 整齊도 변화도 있을 수 없다. 먼저 各字의 개성을 예상은 하지만 자연히 변화가 나타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관념을 갖고변화를 意圖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관념상의 型은 死法이다. 活法은 그때 그때의 自然에 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書作의 結字는 예정이 아니라 예상인 것이다. 예상에는 臨機應變의 자유가 있다.
「豫」字를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3
純肉無骨女子之書.
肉만 있고 骨이 없는 것은 女子의 書이다.
能者矯之而過至於枯朽骨立 所謂楚則失矣齊亦未爲得者也.
能者는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하지만 너무 지나쳐서 枯朽骨立에 이르니, 이른바 「楚하면 잃게 되고 齊하더라도 역시 얻을 수 없다」이다.
古人之書鮮有不具姿態者 雖峭勁如率更 遒古如魯公 要其風度 正自和明悦暢.
古人의 書에는 姿態를 갖추지 않은 것이 드물어서, 비록 峭勁함이 率更과 같고 遒古함이 魯公과 같다 하더라도 그 風度를 연구해보면 바로 和明悅暢하다.
一涉枯朽即筋骨具而精神亡矣.
일단 枯朽하면 筋骨은 갖추어져 있다 할지라도 精神은 없어져 버린다.
作字如人然 筋骨血肉精神氣脈 八者備而後爲全人 闕其一行屍耳.
글자를 씀도 사람과 같아서, 筋骨血肉 精神氣脈의 여덟 가지가 갖추어진 후에 全人이 되고 그중 하나라도 빠지면 行屍일 뿐이다.
不欲爲行屍惟學乃勉.
行屍가 되지 않으려면 오직 배움에 힘쓸 수밖에 없다.
純肉無骨이란 肉뿐이고 骨이 없는 筆劃을 말한다.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純肉無骨의 病을 싫어하여 筋骨旺盛한 筆劃을 만들려고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서 글씨가 枯朽骨立이 되어서도 안 된다.
「楚則失矣 齊亦未爲得」은 出典을 모르나, 그 의미는 가시덤불의 가시처럼 되어서는 안 되고 또 모양만 단정해도 안 된다는 뜻이다.
古人의 書에는 모두 姿態가 있어서 바라보고 있으면 즐겁다. 歐陽詢은 峭勁하다 하고 顔眞卿은 遒古하다고 하지만 어느 것이라도 古人의 書에는 和明悅暢의 風度가 있다.
姿態라는 것은 造形을 말하고 風度라는 것은 인격을 말한다. 따라서 만약 枯朽로 되어버리면 筋骨이 갖추어졌다 할지라도 정신이 없게 된다.
즉 書는 인간과 같은 것이다. 形을 말하면 筋骨血肉, 心을 말하면 精神氣脈의 여덟 가지가 갖추어져야 비로소 全人이 되고, 그중 하나라도 빠지면 屍體와 같다.
시체가 되지 않으려면 오직 배우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여기에 나오는 筋骨血肉에 관해서 설명하면, 書線 즉 筆劃을 사람의 손가락과 같이 살아있는 것으로 볼 때, 筋은 힘줄이며 骨을 활동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骨은 筋에 의해서 움직여지지만 운동의 중심이 된다. 血은 筋骨肉을 양육하는 血脈이고 精神上에서 말하면 氣脈과 같다. 肉은 살로서 다만 부착되어 있지만 그 가운데에는 精力을 저축하여 다른 요소에 공급하고 있다. 따라서 筋과 骨은 活躍上에서 보아 一體이고 筋과 肉은 精力의 貯蓄上에서 보아 一體이다.
4
有意求變即不能變.
變化를 求함에 뜻을 두면 變化할 수 없다.
魏晋名家無不各有意外巧妙 惟其無心於變也.
魏晋의 名家는 各各 意外의 교묘함을 가지지 않음이 없으니, 오직 변화에 마음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唐人各自立家皆欲打破右軍鐵圍 然規格方整轉不能變.
唐人은 각각 스스로 一家를 세워 모두 右軍의 鐵圍를 打破하려 하였으나, 규격이 方整할 뿐 변화를 나타낼 수 없었다.
此有心無心之別也.
이것이 有心과 無心의 구별이 된다.
然欲自然 先須有意 始於方整 終於變化.
그렇지만 자연스러우려면 먼저 의도함을 가져야 하니 方整에서 시작하여 變化에서 마쳐야 한다.
積習久之自有會通處故 欲求魏晋之變化正須從唐始.
積習이 오래되면 자연히 會通하는 곳이 있으므로 魏晋의 변화를 구하려면 반드시 唐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眞書를 쓰면 규격에 얽매여 方整하게 된다. 흥미가 없기 때문에 변화를 구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有意求變이다. 그러나 有意로써는 변화를 구할 수 없다. 鍾繇나 二王(왕희지·왕헌지 父子)과 같은 魏晋의 名家는 어느 것을 보아도 의외의 기묘함이 있으니 바로 의도하지 않는 바의 묘미이다. 그것은 변화에 대해서 무심하기 때문이다.
無心의 상태에서는 筆者의 全生命이 작용하지만, 有心의 상태에서는 관념상의 것밖에 작용할 수 없다.
唐의 名家는 각자 一家를 세워 모두 右軍의 鐵圍와 같은 法을 打破하려 했으나, 관념적 규격의 方整함은 점점 깊이를 더하여 변화할 수 없었다. 여기에 有心과 無心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無心한 書를 구하려면 먼저 有에서 書法을 실천해야 하고, 方整에서 시작하여 변화에 끝마쳐야 한다는 것이다. 學習을 오래 쌓아가면 자연히 「이것이다」라고 깨달을 때가 있다. 그러므로 魏晋의 書의 변화를 구하려면 唐의 書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本節은 書의 학습상에서 有心과 無心을 論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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