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第2章 運筆(운필)) 본문
虛舟는 조항을 나누어 「用筆」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고 「運筆」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
먼저 用語에 관해서 설명해보면 書는 用筆이 근본이다. 書의 技法의 연구는 用筆法의 연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用筆法을 나누면 좁은 의미의 用筆法과 運筆法으로 된다.
이 경우 運筆法은 遲速緩急을 抽出하는 法이고 用筆法은 筆鋒의 변화를 抽出하는 法이다. 그런데 虛舟와 같이 用筆法이라 말하지 않고 運筆法이라 말한 것도 그 運筆法을 나누면 좁은 의미의 運筆法과 用筆法이 된다. 결국 내용은 같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兩法은 하나로 되어서 활동하고 있다.
다만 학습상 분석해서 이해하는 것이매 합해서 깨달아야 한다.
私見을 덧붙인다면 執筆法, 腕法, 姿勢法 따위도 넓은 의미로는 用筆法의 일부이다. 따라서 第1章과 第2章은 깊은 관련이 있다.
1
世人多以捻筆端正爲中鋒 此柳誠懸所謂筆正非中鋒也.
世人은 대다수 捻筆端正을 中鋒이라고 말하나, 이것은 柳誠懸이 말한 筆正이지 中鋒은 아니다.
所謂中鋒者謂運鋒在筆劃之中 平側偃仰惟意所使.
소위 中鋒은 運鋒이 筆劃의 가운데 있어서 平側偃仰을 뜻대로 驅使할 수 있음이다.
及其既定也端若引繩.
筆鋒이 確定되고 나면, 端正하기가 마치 繩을 끄는 것과 같다.
如此則筆鋒不倚上下不偏左右 及能八面出鋒.
이렇게 되면 筆鋒은 上下左右로 기울지 않아서 八面出鋒하게 된다.
筆至八面出鋒 斯無往不當矣.
筆이 八面出鋒하면 筆의 진행에 마땅하지 않음이 없을 터이다.
至以禿穎爲中鋒 只好隔壁聽.
끝이 무지러진 禿筆로써 中鋒을 함은 다만 壁을 사이에 두고 듣는 것일 따름이다.
捻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管을 손가락으로 꼬아 틀어 잡는 것을 말한다. 世人은 붓을 바로 잡음을 中鋒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柳公權이 말한 「筆正」이지 中鋒은 아니라고 虛舟는 말한다.
그렇다면 柳公權의 「筆正」은 무엇인가?
唐의 穆宗이 柳公權을 불러서 用筆의 지극한 뜻을 물었다.
公權은 「心正則筆正」이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마음이 바르면 筆이 바르다」로 읽지 않고 「마음이 바르게 되어야 筆이 바르게 된다」로 읽어서 筆正을 用筆法으로 보아야 한다.
人格이 훌륭하다고 해서 훌륭한 글씨를 쓸 수 있다고 말하는 의미는 아니다. 그 증거는 唐書 「柳公權傳」에 의하면 「心正則筆正」의 뒤에 「筆正乃可法矣, 時帝荒縱故公權及之,帝改容,悟其以筆諫也.」1)라고 했다. 筆正을 用筆의 法으로 삼아야 마땅하다고 公權은 대답했다. 그때 穆宗은 亂行이 많고 政務에 태만했기에 公權은 用筆에비유해서 마음을 단정히 해야 함을 諫했을 터이다. 公權의 대답을 듣고 穆宗은 바로 태도를 고쳐서 正坐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것을 筆諫이라 하며 用筆法으로써 穆宗의 방종함을 간했다는 뜻이다.
마음이 단정하게 되면 筆이 바르게 되므로 用筆의 지극한 뜻은 筆正에 있다고 한 것이다. 그 筆正을 가리켜 世人은 中鋒이라고 생각하나, 그것은 잘못이라고 虛舟는 말한다.
1)「붓이 바르게 됨」은 법으로 삼을 만한 것이다. 당시 穆宗이 정사에 게으르고 방종했으므로 유공권이 그 점을 언급한 것이다. 穆宗이 용모를 고치고서, 유공권이 筆法으로써 諫함을 알아차렸다.
그러면 中鋒이란 무엇인가?
運鋒이 筆劃의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中鋒이 되면 筆毫의 平側偃仰을 뜻대로 할 수가 있다. 만약 運鋒이 筆劃의 가운데에 없고 한쪽으로 치우쳐 있으면 鋒의 全面이 균등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中鋒의 態勢가 정해지면 中心이 잡혀서 筆鋒이 바르게 된다.
이것을 「곧음은 먹줄을 끄는 것과 같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筆鋒은 上下 어느 쪽에도 의지하지 않고 左右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아 四方八方으로 鋒이 나아가게 된다. 그것을 八面出鋒이라고 한다.
고의로 八面出鋒하려고 筆鋒의 끝을 불에 살라 禿筆로 만들어 中鋒으로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이 잘못된 것임은 금방 알 수 있다. 벽을 사이에 두고 들으면 잘 들을 수 없다.
本文에서는 中鋒을 말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筆正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
2
又世人多目禿穎爲藏鋒 非也.
또 世人은 대부분 禿筆로 쓴 글씨를 가리켜 藏鋒이라고 말하지만 틀린 말이다.
歷觀唐宋碑刻 無不芒鎩銛利.
唐宋의 碑刻을 쭉 훑어보면 芒鎩銛利하지 않음이 없다.
未有以禿穎爲工者.
禿筆로써 글씨를 잘 쓴 사람은 없다.
所謂藏鋒旣是中鋒 正謂鋒藏劃中耳.
소위 藏鋒이 中鋒이니 바로 鋒을 劃中에 감춤을 말할 뿐이다.
徐常侍作書對日照之 中有黑綫.
徐常侍가 쓴 글씨를 햇빛에 비추어보니 가운데 黑線이 보였다.
此可悟藏鋒之妙.
여기서 藏鋒의 妙를 깨달을 수 있다.
世人이 禿筆로 쓴 글씨를 보고서 藏鋒이라고 함은 잘못이다.
唐宋의 碑刻을 일일이 관찰해 보면 모두 芒鎩銛利하다.
芒은 鋩으로 창끝을 말한다.
鎩는 긴 창이다.
銛은 칼의 자르는 맛이 좋음이며 利는 예리함인데 모두 날카로움에 비유하고 있다.
禿筆의 鈍鋒으로 썼음이 아니다.
이른바 藏鋒이 中鋒으로 鋒을 劃中에 감추는 것이다.
唐의 徐浩2)가 쓴 글씨를 햇빛에 비추어보니 劃中에 黑線이 있다고 했다. 여기에서 藏鋒의 妙를 깨달을 수 있었다고 虛舟는 말한다.
2)徐浩(703~782): 會稽人, 字季海 書蹟으로는 「大証禪師碑」, 「不空和尚碑」, 「張庭珪墓誌」 등이 있으며 著述로는 「古跡記」,「論書」 등이 있다.
그러나 이것에 관해서 清의 包世臣3)은 「藝舟雙楫」論書1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熟紙를 썼을 때는 그 墨은 모두 兩邊에서 가운데로 이르고 가느다란 一線이 絲髮과 같고 먹빛이 晶瑩하여 보통과 다르고 종이 뒤는 바늘 모양의 劃과 같다. 書道에 있어서 자못 그 神祕를 다한다.」
3) 包世臣( 1775~1855) : 安徽 涇縣人, 字 誠伯 혹은 愼伯. 저서 「安吳四種」에 수록된 「藝舟雙楫」은 비파의 經典이라 칭해진다.
또 같은 論書에 包世臣이 錢伯埛4)에게서 들은 말을 싣고 있다.
「古人은 兎毫를 사용한 까닭에 書에 中線이 있다. 지금은 羊毫를 써서 그 精하게 됨에 이에 雙鉤를 이룬다.」5)
여기서 말하는 雙鉤는 墨이 劃의 兩邊으로 나누어진 것을 말한다. 따라서 中線이라 하거나 雙鉤라고 말함은 筆紙墨의 性質에 起因한다. 반드시 中線이 있어서 中鋒으로 된다는 虛舟의 説은 過論이라 하겠다.
4) 錢伯珦(1738~1812) : 江蘇 陽湖人, 字는 魯斯. 『清史稿』 저서에 『僕射山莊詩集』이 있다.
5) 『藝舟雙楫』 述書 上에 「壬戌秋, 晤陽湖錢魯斯伯埛, 魯斯書名籍甚, 嘗語余曰: 古人用兎毫, 故書有中線; 今用羊毫, 其精者乃成雙鉤, 吾耽此垂五十年, 十才得三四耳」란 글이 있다.
3
如錐劃沙如印印泥.
錐劃沙와 같고 印印泥와 같다.
世以此語擧似沈着非也.
세인들이 이 말을 가지고 沈着과 같다고 여기나 그렇지 않다.
此正中鋒之謂.
이것이 바로 中鋒을 말한 것이다.
解者以此悟中鋒思過半矣.
이해하는 자가 이것으로써 中鋒을 깨달으면, 생각이 半을 넘을 터이다.
錐劃沙란 송곳으로 모래에 劃을 그음이고, 印印泥란 印章을 泥에 찍음이니, 모두 運筆의 比喩이다.
王虛舟는 이것을 中鋒의 比喩라고 말한다. 즉 錐劃沙라 함은 송곳을 모래에 똑바로 세워 송곳의 끝이 劃의 中央을 통과하도록 그음이 中鋒의 用筆과 같다고 말하고, 印印泥란 朱文印6)을 印泥에 누르면 劃의 中央이 가장 깊어짐이 中鋒의 用筆과 같다고 말한다.
6)朱文印은 印面에 陽刻된 印章을 말한다. 이에 반해 陰刻된 印章을 白文印이라 한다.
이 比喩를 沈着의 뜻이 아니라고 말한 것은 아마도 唐나라 褚遂良의 書論에 있는 다음과 같은 글을 指한 것이리라.
「用筆은 마땅히 印印泥, 錐劃沙와 같게 해서 藏鋒이 되면 書는 곧 沈着하게 된다. 用筆은 항상 紙背를 透過하도록 힘써야 한다」
4
筆折乃圓圓乃勁.
筆은 折할 때 도리어 圓하게 하고 圓할 때 도리어 勁하게 한다.
「乃」자는 「도리어」의 뜻이다.
楷書의 用筆에서 折할 때 도리어 圓勢를 사용하고 草書의 用筆에서 둥글게 당길 때는 도리어 骨力을 勁强하게 해야 한다.
5
勁如鐵軟如綿 須知不是兩語.
勁하기는 鐵과 같고 軟하기는 綿과 같음이 兩語가 아님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圓中規方中矩 須知不是兩筆.
圓은 規에 해당하고 方은 矩에 해당함이 兩筆이 아님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筆劃은 勁과 軟을 겸해야 한다.
필획의 가운데에 鐵線의 勁이 있고 이것을 에워싼 솜과 같은 肉이 있다. 이것이 이상적인 필획이다.
兩語가 아니라 함은 다른 말이 아니라 같은 말이라는 뜻이다.
또 用筆에는 圓筆과 方筆이 있으니, 篆書는 圓筆을 대표하고 隸書는 方筆을 대표한다.
그러나 圓筆에 方筆의 직선을 가하고 方筆에 圓筆의 곡선을 가하는 데 用筆의 妙味가 있다. 方과 圓이 별개로 되어서는 안 되므로 兩筆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6
使盡氣力 至於沈勁入骨 筆乃能和.
氣力을 다하게 하여 沈勁함이 人骨하여야 筆이 和할 수 있다.
和則不剛不柔 變化斯出.
和하면 剛하지도 柔하지도 않게 되어 變化가 여기에서 나온다.
故知和者沈勁之至 非軟緩之謂 變者和適之至 非縱逸之謂.
그러므로 和는 沈勁함이 지극한 것이지 軟緩을 말함이 아니며, 變은 和適함이 지극한 것이지 縱逸을 말함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본문은 用筆의 근본을 설명하고 있다.
使盡氣力 至於沈勁入骨은 왕성한 氣力을 筆端에 집중하여 沈着하고 强勁하게 깊이 紙背에 透入함을 말한다. 勁은 芯(심지)가 강함이다.
이것이 用筆의 근본이다. 이 沈勁이 이루어지면 用筆의 和가 이루어진다. 和란 섞여서 융합됨을 말한다. 筆毫가 和하면 剛·柔에 치우치지 않고 자유자재로 筆이 활약하여 千變萬化한다.
筆이 和한다고 말함은 沈勁이 지극한 현상이지 결코 緩함이나 軟함을 말함은 아니다. 또 用筆의 변화란 和가 지극하여 자유자재로 되는 것이지, 멋대로 붓을 휘둘러서 되는 것은 아니다.
虛舟는 또 題跋 中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漢唐의 隷法은 體貌는 다르지만 淵源은 하나이다. 要는 마땅히 古勁沈痛으로써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筆力이 沈痛의 極을 다해서 骨髓에 透入되어야만 찌꺼기 없는 清虛로 되어 곧 超脫하게 된다.」
이 말은 深遠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筆力이 沈勁한 極點에서 찌꺼기가 소멸하여 清虛하게 되고 또 超脫하게 된다고 말한다. 清虛란 바로 순수한 예술적 감흥이다. 遊戱가 사라진 감흥상태로 된다. 여기서 비로소 小我를 超脫하여 入神의 경지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王虛舟는 沈勁·沈痛에 관하여 많은 名言을 남기고 있다.
7
結體欲緊用筆欲寛.
結體는 緊하고 用筆은 寛해야 한다.
一頓一挫能取能舎何有不到古人處?
한번 멈추고 한번 꺾음에 취할 줄도 알고 버릴 줄도 알면 어찌 고인의 경지에 이르지 못함이 있겠는가?
「結體는 緊하게 用筆은 寛하게.」라고 虛舟는 말한다.
書는 用筆이 근본이기 때문에 用筆이 변화하면 당연히 結體가 변화한다. 用筆이 변화하여도 結體가 변화하지 않음은 結體가 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用筆에는 筆意가 있다. 그 筆意가 스스로 結體를 바꾼다. 筆意가 바뀌면서 결체가 바뀌지 않음은 結體가 풀려 있기 때문이다. 筆意에 있어 풀린 결체는 형식의 固定化이고 형식의 固定化에는 긴장이 없다. 긴장은 筆意에서 나오는 것이다.
前文에서 用筆은 沈勁이 근본이라고 말하며 沈勁은 剛도 柔도 아니라고 했다. 그것이 바로 寛인 것이다.
用筆이 寬大해지면 바라는 것을 取할 수 있으며 또 싫어하는 것을 버릴 수도 있다. 반대로 用筆이 협소해지면 古法을 배워 取하려고 해도 取할 수 없으며 我癖을 버리려고 해도 버릴 수 없다. 따라서 「能取能舎」가 되면 古人과 같은 名筆에 도달할 수 있다고 虛舟는 말한다. 이것 또한 지극한 말이다.
8
解得頓挫 斯能跌蕩.
指如懸槌筆如死蚓何有是處?
頓挫를 解得하면 跌蕩할 수 있다.
指가 懸槌와 같고 筆이 死蝴과 같다면 어찌 이런 경지에 처하겠는가?
運筆의 抑揚頓挫를 理解하여 터득하면 跌蕩한 筆勢를 얻을 수 있다. 跌蕩은 法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懸槌는 천정에서 아래로 드리워진 槌(망치)이다. 망치는 손으로 잡아서 위로 들었다가 아래로 놓아야만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단순히 드리워진 추는 아무런 힘도 없다. 손도 역시 긴장해서 움직여야만 힘이 발휘된다. 운필의 抑揚頓挫는 망치의 동작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死蚓은 죽은 지렁이이다. 살아있는 지렁이는 긴장하고 伸縮하지만 죽은 지렁이는 아무런 활동도 없다. 死蚓은 死鋒을 비유한 것이다.
指는 懸槌처럼 다만 드리워져 있어서는 안 되고, 筆은 죽은 지렁이처럼 움츠림이 없어서는 안 된다.
9
顏魯公古釵脚屋漏痕 只是自然.
顔魯公의 古釵脚과 屋漏痕은 다만 自然이다.
董文敏謂是藏鋒 門外漢語.
董文敏이 말한 藏鋒은門外漢의 말이다.
顔眞卿은 用筆法을 『古釵脚』과 『屋漏痕』에 비유하고 있다. 古釵脚은 古代의 비녀 다리이다. 釵는 여인들이 했던 머리 장식품의 일종인데, 髻(상투) 아래에 비스듬히 꽂는 물건으로 2개의 다리가 있는 비녀이다. 이것이 曲折함에 그 曲折의 상태가 篆書 筆劃의 曲折과 비슷하매 안진경은 이것을 用筆에 비유했다. 따라서 古釵脚은 折釵股라고도 말한다. 이것은 篆書의 用筆法을 설명한 것이다.
屋漏痕에 두가지 説이 있다.
하나는 가옥의 벽에 흘러내린 雨漏의 흔적이다. 드리워진 그 흔적을 보면 일직선이거나 멈춘 자취가 없다. 用筆도 抑揚頓挫하되 정지하여 멈춘 자취가 없음을 이에 비유했다.
또 하나는 屋漏에 햇빛이 비치면 광선이 일직선으로 보인다. 그 명쾌한 광선을 筆路의 명쾌함에 비유했다. 이때의 屋漏는 방의 西北隅로 집안에서 가장 깊숙하여 어두운 곳을 가리킨다.
古釵脚과 屋漏痕은 바로 用筆의 자연스러움을 귀중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明의 董其昌7)은 이것을 藏鋒에 비유했지만 그렇지 않다고 虛舟는 말한다.
門外漢語란 비유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의 말이라는 뜻이다.
7)董文敏(1555∼1636) : 字는 玄宰, 號는 思白, 松江 華亭人이다. 著述로 『畵禪室隨筆』 『容臺文集』 등이 있다.
10
釵脚漏痕從熟出.
釵脚·漏痕은 生에서 入하고 熟에서 出한다.
書에는 生書와 熟書가 있다. 書法을 배우기 이전의 書를 生書라 하고 書法을 배운 다음의 書를 熟書라고 한다. 生書는 拙하지만 그 사람을 그대로 나타내기 때문에 生氣가 있고 熟書는 巧하지만 習氣가 있다. 중요한 것은 生書에서 熟書로 들어가서 숙서에서 생서로 돌아나오는 것이다. 「生·熟·生」 이것이 진보의 과정이다.
虛舟의 説에 따르면, 앞에서 설명했던 古釵脚과 屋漏痕처럼 用筆은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말하므로 本文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用筆의 自然이라고 말함은 부자연스러운 生書에서 자연스러운 熟書로 들어가고 부자연스러운 熟에서 자연스러운 生書로 나온다고 말하는 것이다. 入함은 넓은 곳에서 좁은 곳으로 옮기는 것이고 出함은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옮기는 것이다. 書法의 學習이 없으면 부자연스럽게 되고 서법의 학습이 있으면 또한 부자연스럽게 된다. 書法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用筆의 자연스러움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잘 쓰기 어렵다. 用筆을 자연스럽게 하기 위하여 書法을 공부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書法은 자연으로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書法에 익숙해지면 또 부자연스럽게 된다. 自然의 法을 배우면서 왜 부자연스럽게 되는가? 배우는 사람은 이점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술이 숙련되면 기술이 인간에게서 遊離되기 시작한다. 生書의 拙은 拙로 인간과 기술이 일치하지만 熟書로 되면 인간과 기술이 분열한다. 歐陽詢이 아닌데 歐陽詢과 같은 書를 쓰고 顔眞卿이 아닌데 顔眞卿과 같은 書를 쓰기도 한다. 거기에 不自然스러움이 있다. 그 부자연스러움에서 나오기 위하여 다시 生書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熟에서 出한다는 것이다.
11
束騰天潜淵之勢於豪忽之間 乃能縱橫瀟洒不主故常 自成變化.
騰天潜淵의 勢를 豪忽之間에 統一시키면 縱橫瀟酒할 수 있고 故常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스스로 변화를 이룬다.
然正須筆筆從規矩中出.
그러면서도 모든 筆劃은 規矩 중에서 나와야 한다.
深謹之至 奇蕩自生.
깊이 勤愼함이 지극하면 奇蕩은 저절로 나오게 된다.
故知奇正兩端實惟一局
그러므로 奇와 正의 兩端은 사실상 一局임을 알게 된다.
騰天潜淵의 勢는 筆勢의 왕성함을 말한다. 騰天은 의 動이고 潜淵은 龍의 靜이다.
束은 정리하여 統一시킴을 말한다.
豪는 毫와 같다. 毫忽之間은 순간의 뜻이다.
縱橫은 自在함을 말하고 瀟洒는 조금의 구애됨도 없이 상쾌함을 말한다.
主는 守의 뜻이고 故常은 從來의 型이며 觀念이다.
筆筆從規矩中出은 모든 用筆이 法가운데서 나오며 法의 단련을 겪지 않은 筆劃은 없다는 뜻이다.
奇蕩이란 마음속에서 나와 형식을 뛰어넘는 것이다.
一局은 바둑 한판이란 뜻인데 奇正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는 말이다.
原文을 의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龍처럼 動하고 깊은 못에 잠겨있는 龍처럼 靜한 筆勢를 순간의 사이에 통일시킨다. 그곳에서 상쾌한 자유를 얻어 관념에 구속되지 않아 저절로 書風은 변화를 이룬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一筆一筆을 用筆法에 따라서 단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法앞에 겸허함으로써 스스로 형식을 탈피하면 마음에 따라서 나아갈 수 있다. 여기에 이르면 奇와 正의 兩端은 실제로는 매우 가까움을 알 수 있다. 瀟酒한 상태는 안이한 태도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그렇지 않고 激甚한 활약을 통일하여 얻는 곳에서 성립한다. 虛舟의 이 말은 아마도 至言으로 여겨야 할 터이다.
12
以正爲奇 故無奇不法 以收爲縱 故無縱不擒 以虛爲實 故斷處皆連 以背爲向 故連處皆斷.
正을 奇로 여기매 法이 아닌 奇가 없고, 收를 縱으로 여기매 擒이 아닌 縱이 없고, 虛를 實로 여기매 끊어진 곳이 모두 이어지고, 背를 向으로 여기매 이어진 곳이 모두 끊어진다.
學至解得連處皆斷 正正奇奇 無妙不臻矣.
書를 배움이 連處皆斷을 解得함에 이르면 正은 正이며 奇는 奇이면서 妙함이 이르지 않음이 없을 터이다.
이 論法은 대립관념을 들어 고차원에서 통일시키고 있다. 즉 正과 奇, 收와 縱, 虛와 實, 背와 向 등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대립이 있는 상태에서는 正이라 할지라도 차원이 낮다. 奇를 包攝하여 얻은 正, 正을 포섭하여 얻은 奇, 그것이 차원 높은 正이고 奇이다. 「以正爲奇」란 「正即奇」와 같은 개념이다. 이것은 「色即空」 「空即色」과 같은 동양적인 논리이다. 奇는 法에 구속되지 않는 것이지만 「正即奇」의 상태를 깨닫게 되면 어떠한 奇에도 엄격한 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논법으로서 收가 縱이라 할 수 있다. 收는 統合하는 것이고 縱은 放棄하는 것이다. 새를 잡는 사람이 새를 놓아주고 잡아들임을 살펴보면 名匠일수록 많이 놓아준다. 그것은 거두는 기술을 마음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收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縱도 잘한다. 그러므로 「收即縱」이다. 縱은 구속되지 않는 것이지만 「收即縱」의 상태를 깨닫게 되면 어떠한 縱에도 擒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擒은 사로잡는다는 뜻이다. 『漢晋春秋』에 諸葛亮이 孟獲을 收服시킨 記事가 있는데 「七縱七擒」이란 말이다. 일곱 번 적을 놓아주고 일곱 번 적을 사로잡는다는 뜻으로 전략의 교묘함을 칭찬한 말이다. 잡을 수 있으므로 놓아준다. 그것이 「收即縱」이다.
다음에 「虛即實」을 살펴보자. 보이는 필획을 實劃이라 하고 보이지 않는 필획을 虛劃이라 한다. 實劃과 實劃이 氣脈에 의해서 연결된다. 그 연결의 부분은 보이지 않으나, 공중에서 약동하고 있어야 한다. 앞의 實劃에서 뒤의 實劃으로 이어져 간다. 그러므로 實劃이나 虛劃이나 일관된 躍動이고 여기서 一氣貫通의 血脈이 성립한다. 血脈이 있으면 「斷處皆連」이 된다.
다음은「背即向」이다. 背를 向으로 삼음은 그저 向만의 向勢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背를 포함한 向만이 참된 向勢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向勢를 취함에도 그 運筆의 사이에 당기려고 하는 힘이 작용한다. 그것이 背이다. 따라서 連筆은 斷하면서 連한다.피아노의 音이 건반의 하나하나에서 끊어지면서도 音의 流動을 가짐과 같다. 背勢의 경우에도 똑같이 向勢를 내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連處皆斷」이다. 書를 배우는 사람이 이 「連處皆斷」을 깨닫기가 매우 어렵다. 이것을 깨닫게 되면 正은 正이고 奇는 奇이면서 그것이 조화를 이루어 묘미가 끝없음에 이른다고 虛舟는 말한다.
13
以抜山舉鼎之力爲舞女揷花 乃道得個和字.
산을 뽑고 솥을 드는 힘으로 舞女가 꽃을 꽂듯이 함은 바로 「和」자를 터득함을 말한다.
元凱言
優而柔之使自求之 厭而飫之 使自趨之.
若江河之浸 膏澤之潤渙然氷釋 怡然理順.
到此乃是和處
杜元凱가 말하였다.
「넉넉히 부드럽게 하여 스스로 그것을 구하게 하고, 싫도록 배불리 먹여서 스스로 나아가게 한다.
마치 江河의 은택이 浸潤하여 渙然히 얼음이 녹아 태연히 물길이 트임과 같다」. 여기에 이르면 바로 和의 경지이다.
拔山擧鼎의 힘이란 強한 힘을 비유한 말이고, 舞女揷花란 전연 힘을 필요로 하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그곳에 和가 있다.
道는 말한다는 의미이다.
優而柔之와 厭而飫之는 優柔之와 厭飫之의 뜻을 강조한 것이다.
優柔는 부드러운 것, 厭飫는 음식이 너무 많아서 다 먹을 수 없음을 말한다.
江河之浸과 膏澤之潤은 水量이 풍부하여 土壤에 浸潤함을 말한다.
渙然氷釋은 응어리가 풀리듯 얼음이 녹는 것을 말하고 怡然理順은 즐거이 理에 따른다는 말이다.
즉 杜元凱8)의 말은 다음과 같다.
「強한 筆力을 부드럽게 해서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방향으로 하면 筆力이 풍성해져서 自然히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것은 江河의 水量이 풍부해져서 土壤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여 응어리가 풀리듯 筆理가 절로 따라온다.」
8)杜元凱(222 ~284) : 杜陵人, 字는 元凱, 名은 預. 書跡으로는 『歳終帖』 등이 있다.
이렇게 하여 和가 되는 것이다. 강한 筆力 없이는 和를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第2章의 (6)을 다시 읽어보자.
「氣力을 다하게 하여 沈勁함이 入骨에 이르러야 筆은 이에 和할 수 있다. 和하면 剛하지도 柔하지도 않게 되어 변화가 여기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和는 沈勁이 지극함이지 軟緩을 말함이 아니며, 變은 和適이 지극함이지 縱逸을 말함이 아님을 안다. 」
杜元凱의 말은 虛舟의 말과 同工異曲9)이다. 비교하여 음미해 보면 흥미가 있다.
9)同工異曲 : 음악에 있어 재주는 같으나 그 곡조가 다름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는 표현은 다르나 그 취지는 같음을 말한다.
14
能用拙乃得巧 能用柔乃得剛.
拙을 사용할 수 있어야 이에 巧를 얻고, 柔를 사용할 수 있어야 이에 剛을 얻는다.
拙을 사용할 수 있어야 巧를 얻는다는 뜻은 무엇인가? 앞에서 설명한 生書와 熟書를 다시 읽어보기를 바란다. 書는 生·熟·生의 과정을 取하면서 나아간다. 生書는 拙이고 熟書는 巧이다. 그리고 최후의 生書는 拙로 돌아간다. 本章의 能用拙은 최후의 生書의 단계이다. 乃得巧는 이에 巧를 얻는다는 뜻인데 이것은 大巧를 말하는 것이다. 「大巧若拙」10)이라고 老子는 말했다.
拙과 대립해 있는 巧는 大巧가 아니다. 拙을 감춘 巧가 大巧인 것이다. 같은 論理로써 柔와 剛을 이해할 수 있다. 柔를 감춘 剛이 大剛이다. 大剛은 剛·柔 모두에 작용할 수 있다.
10) 『老子』 第四五章에 「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沖 其用不窮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란 글이 있다.
15
用筆沈勁姿態乃至.
用筆이 沈勁하게 되면 姿態는 이에 지극하게 된다.
앞에서 설명한 「沈勁入骨」「變化斯出」이란 말에 대해서 本章에서는 「用筆沈勁」「姿態乃至」란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같은 뜻이다. 「姿態」는 造形의 妙味이다.
본문은 매우 간결하면서도 意味深長하다. 用筆沈勁하게 되면 全身全靈이 筆端에 集中 되어 觀念이 없어진다. 따라서 無心無我의 경지에서 神助를 얻는다. 신조를 얻으면 變態百出하게 된다.
16
須是字外有筆.
모름지기 字外에 筆이 있어야 한다.
大力回旋 空際盤繞如游魚如飛龍.
大力을 갖고 回旋하여 空中에서 盤繞함이 游魚와 같고 飛龍과 같다.
突然一落去來無跡 斯能於字外出力 而向背往來不可端倪矣.
별안간 떨어져서 去來의 자취가 없어지면 字外에 힘이 나타날 수 있어서, 向背往來를 분별할 수 없을 터이다.
字外의 筆은 大力回旋·空際盤繞의 筆이다. 큰힘으로 筆을 돌리되 더구나 공중에서 돌린다. 일종의 「모숀」이긴 하지만 筆路를 예상하면서 運筆의 리듬을 일으키는 운동이다. 이것은 단순한 예비운동이 아니며 이것 없이는 性情이 流露하지 않는다.
初學者는 이 운동을 하지 않고 곧바로 落筆하고 낙필한 후에 생각하므로 活腕의 飛動이 없다. 如游魚는 고기가 水中에서 헤엄치듯이 盤旋함이고, 如飛龍은 龍이 天上을 날아오르듯이 旋回함이다. 그 旋回運動이 점점 急迫하고 작게 되어 힘이 筆端에 집중된 후에 별안간 落筆한다. 공중의 선회이므로 紙面上에는 去來의 자취가 없다. 이것이 이루어지게 되면 글자 밖에까지 筆力이 넘친다. 그와 같은 약동의 筆力이 있기 때문에 無限의 변화가 나타난다. 向背往來란 운필의 가고 오는 것이다. 不可端倪란 分別할 수 없다는 뜻이다. 本章은 實技上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직접 붓을 잡고 체험해 볼 필요가 있다.
17
隔筆取勢空際用力 此不傳之妙.
筆을 隔해서 勢를 取하여 空中에서 힘을 사용하니, 이것은 전할 수 없는 오묘함이다.
筆을 隔해서 勢를 取함은 다른 筆劃을 하나의 氣脈으로 貫通시킴을 말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空中에서 힘을 작용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自得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따라서 不傳之妙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前章과 동일한 것을 요약해서 설명한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18
南唐後主撥鐙法解者殊鮮.
南唐後主의 撥鐙法은 이해하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
所謂撥鐙者逆筆也.
이른바 撥鐙은 逆筆이다.
筆尖向裏則全勢皆逆 無浮滑之病矣.
筆尖이 안으로 向하면 모든 勢가 다 逆으로 되어 浮滑한 病痛이 없어진다.
學者試撥鐙火可悟其法.
공부하는 사람이 시험삼아 鐙火를 다스려보면 그 法을 깨달을 수 있을 터이다.
本章은 執筆法에 관하여 설명한 것이다. 南唐은 5代의 南唐이고 後主는 河南의 李昱이다. 書學에서는 흔히 李後主라고 부른다.
李後主가 著作한 執筆論에 「撥鐙法」이란 것이 있다. 그런데 이 「鐙」字에 問題가 있다. 鐙은 蹬(등자)이라고 하는 설과 燈(등불)이라고 하는 說이 있다.
蹬說에서는 執筆의 要諦는 馬蹬을 얕게 밟아 안으로 향하듯이 한다고 말한다.
燈說에서는 執筆의 요체는 燈火를 다스리듯이 逆勢를 取한다고 말한다.
清의 段玉裁는 그의 著 『述筆法』 中에서 燈說을 채택하고 細井廣澤은 그의 著 『撥蹬眞詮』에서 路說을 채택하고 있다.
한편 鐙의 字議에 관계없이 거위가 발로써 물을 다스림과 같다고 하면서 王右軍이 山陰의 道士에게 거위를 빌린 故事에 결부시켜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牽強附會를 免할 수 없다.
또는 蹬說을 不定하는 論者中에는 神聖한 執筆法을 발로 밟는 馬蹬에 비유했을 리가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科學性을 잃은 것이다. 古代에는 鐙字가 없어서 燈火라고 쓰지않고 鐙火라고 썼다. 鐙은 본디 「登」으로 썼고 熟食을 드리는 그릇인데 籩豆11)와 같다.
11)籩豆(변두) : 제사, 향연에 쓰는 食器의 이름. 籩은 과일이나 乾肉을 담는 竹器이고, 豆는 김치·젓갈을 담는 木器인데 모두 모양이 우승컵과 비슷함,
燭台의 形이 登과 비슷함에서 鐙字가 나왔고 油燈의 뜻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鐙은 그릇이다. 그릇으로써 등불을 나타냄은 豆의 경우와 같다. 이와 같이 字義의 변천에 따라서 나는 馬蹬說을 채택하지 않고 燈火説을 채택한다.
상세히 알고 싶은 사람은 앞에서 든 『述筆法』과 『撥蹬眞詮』 그리고 『漢谿書法通解』 등을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물론 南唐의 李後主 이전에 撥鐙法이란 말은 보이지 않지만 이런 執筆法은 있었을 터이다. 그것이 口傳되어 오다가 李後에 의해서 기록되었으리라 생각한다.
書法은 用筆法을 根幹으로 삼고 用筆法은 執筆法을 根祗로 삼는다. 執筆法과 분리된 用筆法이란 생각할 수 없다. 段玉裁는 『述筆法』의 처음에서 다음과 같이 단정하고 있다.
「書法이 古人에 미치지 못함은 古人의 胸中을 헤아리지 못하고 또 人의 執筆法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執筆이 바르게 되지 못하면 用筆도 바르게 되지 못한다. 剣法에 있어서 剣을 잡는 법이 중요하듯이 書法에 있어서 執筆法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면 撥鐙法을 燈火說에 따라서 설명해 보자.
虛舟가 말한 逆筆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油燈皿에 기름을 넣으면 심지를 적신다. 심지가 젖어있기 때문에 밀어내려고 하면 굽어진다. 불꽃 쪽으로 밀어 넣기가 어려우매 燈掭을 사용한다. 鐙掭을 筆管을 잡듯이 잡고 심지를 불꽃 쪽으로 조용히 밀어 넣을 때의 그 동작이 用筆法의 逆筆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順筆은 筆尖이 뒤에서 따라오게 끌지만 逆筆은 筆尖이 先行한다. 심지를 逆으로 밀어 넣음과 같다. 즉 筆尖이 劃의 안으로 향한다. 안으로 향하면 筆尖이 紙面에 강하게 닿는다. 따라서 浮滑의 病이 없게 되고 用筆은 沈勁하게 된다.
그러나 逆筆은 두드러지게 해서는 안 되고 암암리에 해야 한다고 劉熙載12)는 말하고 있다.
12)劉熙載(1813∼1881) : 字는 伯簡, 號는 融齋라 했으며 福建省 興化人이다. 『持志塾言』,『藝概』,『四音定切』,『說文雙聲』,『說文畳韻」,『昨非集』의 저술이 있다.
19
須有不使盡筆力處
모름지기 筆力을 다 사용하지 않는 곳이 있어야 한다.
筆力을 다 사용함은 筆力의 한계를 다하는 것이다. 一字內의 모든 點劃에 筆力의 한계를 다하려고 하면 지치고 만다. 지쳐버리면 다음 筆劃에 힘을 쓸 수 없다. 그러므로 一字內에서도 筆力을 다 쓰지 않는 곳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결국 筆力에 적극면과 소극면이 있다. 그것이 적당히 나타나서 筆劃이 변화하면 氣力의 여유가 생겨 힘을 다해도 피로하지 않게 된다.
一宇内에서 一劃內에서 그리고 全幅에서도 그러하다. 자동차가 언덕을 올라갈 때는 강하게 엔진을 걸지만 평탄한 길이나 내리막 길을 갈 때는 그럴 필요가 없다. 거기에 緩急이 있고 抑揚이 있다. 모든 움직이는 것에는 消息(變遷)이 있으매 장시간의 운동에 견뎌낼 수 있다. 用筆面에서 보아도 造形에서 보아도 어딘가에 소극면, 즉 쉼이 있기 때문에 統一體가 되는 것이다.
20
工妙之至 至於如不能工 方入神解.
工妙의 至極함이 더이상 工妙하지 못함에 이르러야, 비로소 神解에 들어간다.
此元常之所以勝右軍 魏晋之所以勝唐宋.
이것이 바로 元常이 右軍보다 훌륭하고 魏晋이 唐宋보다 훌륭한 이유이다.
工妙는 巧妙와 같다. 神解는 마음의 深奧한 곳에서 깨달음을 말한다.
觀念上의 이해는 解가 아니다. 神解는 체험을 통해서 비로소 얻는 것이다. 拙에서 巧에로의 단련하는 동안에 여러 가지 체험을 얻는다. 그런데 巧에 이르러버리면 그 이상의 巧에 이를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에 도달했을 때 書의 妙를 神解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 후에는 점점 拙로 되돌아간다. 拙에서 巧, 巧에서 拙에로의 변천 과정이 이것이다. 元常은 魏의 鍾繇13)로서 그의 眞書14)는 右軍15)의 眞書보다 훌륭하다. 이 말에는 누구의 異論도 없다. 魏는 鍾瑤, 晋은 王右軍이 대표자이다. 宋唐에 관해서도 그 대표자를 상상해보면 좋을 것이다.
書에는 巧를 다해서 拙로 되돌아가는 곳에 최고의 세계가 있다고 여기면, 鍾瑤가 右軍보다 훌륭하고 魏晋이 唐宋보다 훌륭하다는 이유를 알게 된다고 虛舟는 말한다
13)鍾繇(151~230) : 字 元常, 穎川長社人으로 벼슬은 相國에 이르렀으며 魏明帝가 太傅에 封하였다. 그의 筆跡으로 「宣示表」「薦季直表」 「賀捷表」 등이 있으나 모두 僞作으로 여겨진다.
14)眞書 : 서체의 하나로 楷書 또는 正書라고도 한다. 漢末에 생겨나 漢隸의 波·磔을 생략하거나 변화시키고 그 대신 鉤·趯을 증가시켜 이룩된 것이다.
15) 右軍(321~379) : 王羲之, 會稽山陰人, 字逸少, 右軍벼슬을 지냈으므로 王右軍이라고 한다. 그의 行書로서 「蘭亭序」,「集字聖教序」가 있으며 草書로는 『十七帖」이 있다. 그밖에 「喪亂帖」「快雪時晴帖」「樂毅論」「東方朔畫讚」「黄庭經」 등이 있으나 거듭된 摹搨으로 그의 眞面目을 찾기가 힘들다.
21
歐多折 顏多轉.
歐體에 折筆이 많고 顔體에 轉筆이 많다.
折須提 轉須撚.
折은 반드시 提하고 轉은 반드시 撚해야 한다.
用筆法에 轉折法이란 말이 있다. 이것은 轉法과 折法을 合한 말이다.
轉法은 篆書筆法에서, 折法은 隷書筆法에서 시작되었다. 그 이후의 草·眞·行의 轉折法은 모두 篆隷의 轉折法에 의거한 것이다.
歐陽詢書에는 折筆이 많고 顔眞卿書에는 轉筆이 많다.
물론 많다고 말할 뿐이지 다른 筆이 전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折筆은 일단 들어서 가볍게 해두고 다음 순간에 筆鋒을 세워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을 折換이라고 말한다.
轉筆은 가볍게 하지 않고 그대로 서서히 방향을 바꾸면서 굴린다. 이것을 轉換이라고 말한다.
轉換할 때는 筆을 꼬듯이 한다. 이것을 撚筆이라고 말한다. 撚筆은 方向轉換할 때 뿐만 아니라 자주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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