師說(사설)-韓愈(한유)
古之學者必有師, 師者所以傳道ㆍ授業ㆍ解惑也.
옛날의 학자에게는 반드시 스승이 있었으니, 스승이란 도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치며 의혹을 풀어주는 자이다.
▶ 道 : 인간이 행하여야 할 올바른 도리.
▶ 授業 : 학업을 가르쳐 주다. 業은 詩·書·禮·易·春秋·樂의 六經의 학술을 말한다.
▶ 惑 : 마음속의 의문.
人非生而知之者, 孰能無惑?
사람은 生而知之者가 아니매, 누구에게 의혹이 없을 수 있겠는가?
▶ 生而知之者 : 나면서부터 아는 자. 《中庸》 19장에 ‘或生而知之, 學而知之, 或困而知之, 及其知之一也’라는 구절이 있다.
惑而不從師, 其爲惑也, 終不解矣.
미혹되고도 스승을 따르지 않으면 그의 미혹됨은 끝내 풀리지 않을 터이다.
生乎吾前, 其聞道也, 固先乎吾, 吾從而師之, 生乎吾後, 其聞道也, 亦先乎吾, 吾從而師之, 吾師道也, 夫庸知其年之先後生於吾乎?
나보다 먼저 태어나고, 그의 도를 앎도 실로 나보다 앞섰다면 나는 그를 따르며 스승으로 삼고, 나보다 뒤에 태어났더라도 도를 앎이 역시 나보다 앞섰다면 나는 그를 따르며 스승으로 삼으매, 내가 도를 스승으로 삼음에 어찌 그 나이가 나보다 앞서 태어나고 늦게 태어남을 따지겠는가?
▶ 固 : 원래. 물론.
▶ 聞道 : 도를 듣다. 《論語》 里仁에 朝聞道夕死可矣라는 말이 있다.
▶ 庸 : 어찌. <허사 庸> 참조
是故無貴無賤, 無長無少, 道之所存, 師之所存也.
이런 까닭에 귀하다거나 천하다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할 것 없이 도가 있는 곳이 스승이 있는 곳이다.
嗟乎! 師道之不傳也久矣, 欲人之無惑也難矣.
아! 스승의 도가 전해지지 않은 지 오래되매, 사람이 의혹을 없애려 함이 어려운 일이구나!
▶ 嗟乎 : 감탄사
▶ 師道 : 스승의 道.
古之聖人, 其出人也遠矣, 猶且從師而問焉, 今之衆人, 其下聖人也亦遠矣, 而恥學於師.
옛날의 성인은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나고도 스승을 따르며 물었는데 오늘날의 사람들은 성인보다 훨씬 뒤떨어지면서도 스승에게 배우기를 부끄러워한다.
是故聖益聖, 愚益愚, 聖人之所以爲聖, 愚人之所以爲愚, 其皆出於此乎.
이런 까닭에 성인은 더욱 聖明해지고 어리석은 이는 더욱 어리석게 되니, 성인이 성명해지고 愚人이 어리석어지는 까닭이 모두 이것에서 나온 것이다!
▶ 出人 : 남보다 뛰어남.
▶ 猶且 : 오히려. 猶는 오히려의 뜻. 且는 猶와 같은 뜻.
愛其子, 擇師而敎之, 於其身也, 則恥師焉惑矣.
자식을 사랑하매 스승을 골라서 가르쳐 주면서도, 그 자신에 있어서는 스승을 모시기를 부끄러워하니 미혹된 일이다.
彼童子之師, 授之書而習其句讀者也, 非吾所謂傳其道, 解其惑者也.
저 童子의 스승은 책을 가르치고 그것을 읽는 법을 익숙하게 하는 자이지, 나의 소위 ‘도를 전하여 미혹을 풀어주는 자’는 아니다.
▶ 句讀(구두) : 책을 읽기 편하도록 어조에 따라 숨을 쉬거나 말을 끊음.
句讀之不知, 惑之不解, 或師焉, 或不焉, 小學而大遺, 吾未見其明也.
책 읽는 법을 모름에는 스승을 모시는 사람이 있고, 의혹이 풀리지 않음에는 스승을 모시는 자가 없어, 작은 것을 배우되 큰 것을 버리므로 나는 그들이 현명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 句讀之不知 : 이 구절은 '句讀之不知, 或師焉, 惑之不解, 或不焉'으로 해석해야 한다. 읽을 줄을 모르면 스승을 찾아가 배우나 미혹이 풀리지 않는데도 스승을 찾지 않는다는 뜻.
▶ 見 : ‘견해를 가지다.’ ‘여기다’로 해석함이 자연스럽겠다.
巫醫樂師百工之人, 不恥相師, 士大夫之族, 曰師曰弟子云者, 則群聚而笑之.
무당·의사·樂師와 온갖 職工은 서로 스승을 삼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데, 사대부란 족속은 스승이니 제자니 말하는 자가 있으면 무리를 지어서 그들을 비웃는다.
問之則曰:
“彼與彼年相若也, 道相似也”,
位卑則足羞, 官盛則近諛.
까닭을 물으면
“저이와 저이는 나이가 서로 같고 道도 서로 비슷하다.”라고 말하며
스승의 지위가 낮으면 부끄러운 일이라 여기고 스승의 벼슬이 높으면 아첨에 가깝다고 한다.
鳴呼! 師道之不復可知矣.
아! 스승의 도가 회복되지 않았음을 알만하구나.
巫醫百工之人, 君子齒之, 今其智乃反不能及, 可怪也歟.
무당이나 의사와 온갖 직공을 君子가 업신여기나, 그들의 슬기에는 도리어 미치지 못하니 괴이하게 여길 일이다.
▶ 百工 : 百官이란 뜻도 있고, 각종 직공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여기서는 후자의 뜻으로 쓰였다.
▶ 復 : 회복되다.
聖人無常師.
聖人인 孔子에게는 일정한 스승이 없었다.
孔子師郯子ㆍ萇弘ㆍ師襄ㆍ老聃, 郯子之徒, 其賢不及孔子.
공자는 郯子ㆍ萇弘ㆍ師襄ㆍ老聃에게 배웠으되, 담자의 무리는 현명함이 공자에 미치지 못하였다.
▶ 郯子(담자) : 鄭나라의 자작. 《左傳》에는 孔子가 그에게서 官職에 대하여 배웠다고 되어 있다.
▶ 萇弘(장홍) : 周 敬王의 대부. 《禮記》와 《孔子家語》에 의하면 공자가 장홍에게 樂에 대하여 배웠다고 한다.
▶ 師襄(사양) : 樂官. 《공자세가》에는 공자가 사양에게서 琴을 배웠다고 되어 있다.
▶ 老聃(노담) : 老子. 《공자가어》에는 공자가 노자에게서 禮를 배웠다고 되어 있다.
孔子曰:
‘三人行, 則必有我師.’
是故弟子不必不如師, 師不必賢於弟子.
공자가 말하기를,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고 하였으므로 제자가 꼭 스승만 못하지도 않고 스승이 꼭 제자보다 낫지도 않다.
聞道有先後, 術業有專攻, 如斯而已.
道를 앎에 선후가 있고 학술과 직업에 전공이 있어서 이러할 따름이다.
李氏子蟠, 年十七. 好古文, 六藝經傳皆通習之, 不拘於時, 請學於余, 余嘉其能行古道, 作「師說」以貽之.
李氏의 아들 蟠은 나이 열일곱으로 古文을 좋아하여 六藝의 경전을 모두 익혀 통달하였다. 時俗에 구애되지 않고 내게 배우기를 청하니 나는 그가 능히 古道를 행함을 갸륵히 여겨 〈사설〉을 지어 주는 바이다.
▶ 李氏子蟠 : 李蟠. 唐 貞元 19년에 進士가 되었다.
▶ 古文 : 周·秦의 경전이나 제자백가, 漢代의 史傳의 문체처럼 질박하고 힘찬 문장, 한유는 고문운동을 제창하였다.
▶ 六藝經傳 : 육예는 육경인 詩·書·易·禮·春秋·樂을 말한다. 經은 육경의 본문 傳은 육경에 대한 주석서.
▶ 貽(이) : 주다.
해설
유종원은 한유의 師說에 대해 辱書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魏·晉 이래 사람들이 스승을 섬기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스승이 있다 함을 듣지 못하였다. 있다면 비웃거나 미친 사람으로 여겼다. 다만 한유 만이 세속의 비웃음이나 모욕을 돌보지 않고 학생을 불러모으고 〈사설〉을 지었으며 얼굴을 치켜들고 스승이 되었다.’
한유의 〈사설〉은 이러한 시속을 개탄하고 스승의 필요를 역설한 글이다.
洪曰:
홍이 말했다.
“柳子厚與韋中立書云
“자후 유종원이 위중립에게 준 편지에 썼다.
‘韓愈奮不顧流俗, 作「師說」, 因抗顔而爲師’
‘한유는 분발하여 풍속을 돌아보지 않고 「사설」을 지어, 얼굴을 치켜들고 스승이 되었다.’
又報嚴厚輿書云
또 엄중려에게 보낸 편지에 썼다.
‘僕才能勇敢, 不如韓退之, 故不爲人師’
‘저의 재능과 용감함이 한퇴지만 못하기 때문에, 남의 스승이 되지 못합니다.’
余觀退之「師說」, 云:
내가 한퇴지의 「사설」을 관찰해보니 이러하다.
‘弟子不必不如師, 師不必賢於弟子.’
‘제자라 해서 꼭 스승만 못하지는 않고, 스승이라 해서 꼭 제자보다 현명하지는 않다.’
其言, 非好爲人師者也.”
그것은 남의 스승이 되길 좋아함은 아니라는 말이다.”
○ 唐人, 不知事師, 此最可怪.
당나라 사람은 스승을 섬길 줄 몰랐으니 이것이 가장 괴이하다.
退之云: ‘若世無孔子, 僕不當在弟子之列,’ 當時, 宜爲師者, 非韓公, 其誰?
언젠가 퇴지는 ‘만약 세상에 공자님이 없으셨다면, 나는 마땅히 제자의 열에 있지 못했을 거다.’라고 했는데, 당시에 스승이 되어야 할 사람이 한공이 아니면 누구였겠는가?
韓門, 如李翶ㆍ張籍ㆍ皇甫湜ㆍ孟郊, 公雖不耳提面命而爲之師, 然誘掖作成, 宗主之造, 非師而何?
한유 문하의 이고ㆍ장적ㆍ황보식ㆍ맹교 따위는 공이 비록 귀를 끌어대고 얼굴을 맞대어 가르침을 주며 스승이 되지는 않았으나, 이끌어서 도와주며 성공을 이루어 종주로 나아가게 하였으니, 스승이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柳子雖屢謂:
‘韓公不合欲爲人師.’
유종원 비록 자주 말하였다.
‘한공께서는 남의 스승이 되시려 해선 안 됩니다.’
然柳在柳州, 士凡經子厚口講指書, 皆有師法, 非師而何?
그러나 유종원이 유주에 있을 적에, 선비들이 무릇 유종원이 입으로 강설하고 지시한 것을 거쳐서만 모두 스승의 법을 가졌으니, 이것이 스승이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但惜乎二子之爲人師, 不過詞章之師耳.
다만 애석해 하나니, 두 사람의 스승됨이 사장(과거시험의 문장 기술)의 스승에 불과할 뿐이다.
雖以道爲說, 而終非道統淵源之師也.
비록 道를 가지고 주장하였으나, 끝끝내 도통 연원의 스승은 아니었다.
詳見柳子厚 「答韋中立書」.
자세한 것은 유자후의 「答韋中立書」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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