送李愿歸盤谷序(송이원귀반곡서)-韓愈(한유)
太行之陽, 有盤谷, 盤谷之間, 泉甘而土肥, 草木叢茂, 居民鮮少.
太行山 남쪽에 盤谷이란 곳이 있으니, 이 골짜기에는 샘물이 달고 토지가 비옥하여 초목이 무성하나 사는 사람은 드물다.
▶ 太行 : 산 이름. 河南省·河北省·山西省에 걸쳐 있음.
▶ 陽 : 산의 남쪽을 말함.
▶ 盤谷 : 地名. 태항산 남쪽 하남성 濟源縣에 있음.
▶ 鮮少 : 매우 드물다. 거의 없다.
或曰: “謂其環兩山之間, 故曰‘盤’,”
或曰: “是谷也, 宅幽而勢阻, 隱者之所盤旋.”
어떤 사람은 이곳이 두 산 사이에 둘러싸여 있어서 盤이라 한다고 하며, 어떤 사람은 이 골짜기가 깊숙이 위치하고 산세가 험하여 隱者들이 배회하는 곳이라고 한다.
▶ 宅幽 : 깊숙한 곳에 위치하다. 宅은 위치하다, 자리잡다의 뜻.
▶ 勢阻 : 산세가 험준함.
▶ 盤旋 : 배회함. 이리저리 거닐며 왔다갔다 함.
友人李愿居之, 愿之言曰:
친구인 李愿이 이곳에 살았는데 원이 말하였다.
“人之稱大丈夫者, 我知之矣.
“사람들이 대장부라고 일컫는 사람에 대하여 나는 알고 있소.
利澤施于人, 名聲昭于時, 坐于廟朝, 進退百官而佐天子出令.
남에게 이익과 혜택을 베풀고 당대에 명성을 빛내며 조정에 앉아 백관을 任免하며 천자를 보좌하여 명령을 내리오,
▶ 廟朝 : 조정. 정부를 말함.
▶ 進退百官 : 모든 관리들을 임명하고 解職함.
其在外則樹旗旄, 羅弓失, 武夫前呵, 從者塞塗, 供給之人, 各執其物, 夾道而疾馳.
그가 외부에 있을 때는 깃발을 세우고 弓失를 벌려놓으며, 무사가 앞에서 辟除하며 수행원이 길을 가득 메우며, 시종이 각자 맡은 물품을 들고 길을 끼고 급히 달리지요.
▶ 樹旗旄 : 깃발을 세우다. 旗는 곰과 범을 그린 기. 일반적으로 旗는 깃발의 총칭으로 쓰임. 旄는 검은 소의 꼬리로 장식한 기.
▶ 前阿 : 辟除함. 귀인이 외출할 때 길 가는 사람의 통행을 금지함.
▶ 塞塗 : 길을 가득 채우다. 사람들이 대단히 많은 모양.
▶ 供給之人 : 귀인의 측근에서 심부름하는 사람. 시종.
喜有賞, 怒有刑, 才畯滿前, 道古今而譽盛德, 入耳而不煩.
그를 기쁘게 하면 상을 주고, 노엽게 하면 벌을 내리며, 俊才가 앞에 가득 모여 古今을 얘기하면서 盛德을 칭송하니, 귀로 들어 거슬리지 않소.
▶ 才畯 : 재주가 뛰어난 사람.
曲眉豊頰, 淸聲而便體, 秀外而惠中, 飄輕裾, 翳長袖, 粉白黛綠者, 列屋而閑居, 妬寵而負恃, 爭姸而取憐.
초승달 같은 눈썹에 도톰한 뺨, 맑은 목소리에 가뿐한 몸가짐, 외모는 수려하고 마음씨 柔順하며 하늘거리는 옷자락 나부끼고 긴 소맷자락 질질 끌며 흰 분 바르고 푸른 눈썹 그린 미녀들이 집안에 늘어서서 한가로이 살면서 총애를 시샘하고 믿고 뽐내며 아름다움을 다투고 사랑을 구한다오.
▶ 便體 : 몸가짐이 가뿐하고 날램.
▶ 秀外而惠中 : 외모는 수려하고 속마음씨는 유순함.
▶ 飄輕裾 : 하늘거리는 옷자락이 걸을 때마다 바람에 나부끼는 모양.
▶ 翳長袖 : 긴 소맷자락을 질질 끌고 다니는 모양. 예는 덮을 폐의 뜻. 소맷자락이 길어 바닥을 덮어 가리는 모양을 말함.
▶ 負侍 : 믿고 의지함. 곧 자신의 아름다움을 믿고 뽐냄.
▶ 取憐 : 총애를 구함.
大丈夫之遇知於天子, 用力於當世者之爲也.
대장부로서 천자에게 知遇를 받고 당세에 권력을 쓰는 자가 하는 일이지요.
吾非惡此而逃之, 是有命焉, 不可幸而致也.
나는 이것이 싫어서 도망한 것이 아니니, 여기에는 운명이 있어서 요행히 도달하지는 못하오.
窮居而野處, 升高而望遠, 坐茂樹以終日, 濯淸泉以自潔.
가난하게 살며 산야에서 지내면서, 높은 곳에 올라가 멀리 바라보기도 하고, 무성한 나무 아래 앉아 하루를 보내기도 하며, 맑은 샘물에 씻어 자신을 깨끗하게 하기도 하오.
▶ 野處 : 山野에서 삶. 《易經》 繫辭 하편에, ‘上古穴居而野處, 後世聖人易之以宮室’이라는 구절이 나옴.
採於山, 美可茹; 釣於水, 鮮可食, 起居無時, 惟適之安.
산에서 나물을 캐면 맛이 좋아 먹음직하고, 물에서 낚시질하면 신선하여 먹음직하며, 생활에 정해진 때가 없으니 오직 편안함에 맞출 뿐이오.
▶ 美可茹 : 맛이 좋아 먹음직하다. 美는 맛이 좋다는 뜻. 茹는 먹을 食의 뜻.
▶ 起居無時 : 기거동작에 정해진 결과가 없다. 起居는 기거동작. 행동거지. 無時는 일정한 때가 없다는 뜻.
與其譽於前, 孰若無毁於其後; 與其樂於身, 孰若無憂於其心.
앞에서 칭찬함으로 어찌 뒤에서 비방하지 않음과 비교하고, 一身을 편하게 함으로 어찌 마음에 근심이 없음과 비교하겠소.
▶ 與其 A 孰若 B : A가 어찌 B만 하리오? 곧 B가 낫다는 뜻. 이런 뜻의 숙어로는, 與其A 不若B, 與其A 不如B, 與其A 寧B 등이 있다.
車服不維, 刀鋸不加, 理亂不知, 黜陟不聞, 大丈夫不遇於時者之所爲也, 我則行之.
車馬나 衣服에 얽매이지 않고, 칼이나 톱이 가해지지 않고, 나라가 잘 다스려지는지 혼란한지 알 바 아니며, 免職이나 승진 소식도 들리지 않으니, 이러한 일은 대장부로서 때를 만나지 못한 자의 행위로서, 내가 바로 그것을 행하고 있소.
▶ 車服不維 : 수레와 의복에 얽매이지 않음. 維는 얽매이다. 구속받다의 뜻.
▶ 刀鋸 : 칼과 톱. 옛날에 칼은 宮刑(: 성기를 자름)에 쓰고, 톱은 刖刑( : 발꿈치를 벰)에 씀. 곧 형벌을 말함.
▶ 理亂 : 나라가 다스려짐과 어지러움.
▶ 黜陟 : 면직과 승진.
伺候於公卿之門, 奔走於刑勢之途. 足將進而趑趄, 口將言而囁嚅, 處穢汚而不羞, 觸刑辟而誅戮.
고관의 집안을 방문하고 벼슬길을 분주히 뛰어다니며, 발은 나아가려고 해도 머뭇거리고, 입은 말을 하려고 해도 어물거리게 되며, 더러운 곳에 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다가 형벌을 받아 사형당하오.
▶ 伺候 : 윗사람을 방문함. 윗사람을 찾아가 안부를 물음.
▶ 公卿 : 三公과 九卿. 즉, 고위관리를 말함.
▶ 形勢之途 : 권세 있는 사람이 있는 곳. 벼슬길. 形勢는 權門勢家.
▶ 趑趄(자저) : 머뭇거리는 모양.
▶ 囁嚅(섭유) : 말을 하려다가 겁이 나서 어물거리는 모양.
▶ 穢(예) : 더러움.
▶ 刑辟(형벽) : 형벌.
▶ 誅戮 : 죄인을 죽임.
僥倖於萬一, 老死而後止者, 其於爲人賢不肖何如也.”
만에 하나 요행을 바라며 늙어 죽게 된 후에야 그친다면, 그 위인이 현명함과 못남 중에 어느 것이겠소?”
▶ 僥倖於萬一 : 만에 하나도 있기 어려운 요행을 바람.
▶ 賢不肖 : 현명함과 어리석음.
昌黎韓愈聞其言而壯之, 與之酒而爲之歌. 曰:
昌黎 韓愈가 그 말을 듣고 장하게 여겨 함께 술을 마시면서 그를 위해 노래하였다.
▶ 昌黎 : 地名. 河北省에 있는 縣 이름. 韓愈가 이곳 태생이므로 그를 창려선생이라고도 부름.
“盤之中, 維子之宮, 盤之土, 維子之稼.
“반곡의 가운데는 그대의 집, 반곡의 땅은 그대의 농토.
▶ 子 : 그대. 즉 상대방을 부르는 호칭.
▶ 稼 : 농사를 지음.
盤之泉, 可濯可沿, 盤之阻, 誰爭子所.
반곡의 샘물은 몸을 씻고 물 따라 거닐기 좋고, 반곡이 험하니 누가 그대 처소를 다투겠나?
▶ 沿 : 물을 따라 감.
窈而深, 廓其有容, 繚而曲, 如往而復.
그윽하고 깊숙하면서도 넓어서 사람을 수용하고, 길은 구불구불 굽이져 가는 듯하다가 되돌아오네.
▶ 廓 : 텅 비고 넓음.
▶ 繚而曲(요이곡) : 구불구불 굽어짐.
嗟盤之樂兮, 樂且無央.
아! 반곡의 즐거움이여! 그 즐거움 다함이 없네.
▶ 無央 : 다함이 없다. 央은 다할 盡. 그칠 已의 뜻.
虎豹遠跡兮, 蛟龍遁藏.
호랑이와 표범도 발길을 멀리함이여, 蛟龍도 달아나 숨어버리네.
鬼神守護兮, 呵禁不祥.
귀신이 수호함이여, 상서롭지 못한 것을 꾸짖어 금하네.
▶ 呵禁(가금) : 꾸짖어 못오게 함.
飮且食兮, 壽而康.
먹고 마심이여, 장수하고 건강하네.
無不足兮, 奚所望.
부족한 것 없음이여, 무엇을 바라리오?
膏吾車兮, 秣吾馬.
내 수레에 기름을 침이여, 내 말도 먹여서
▶ 膏吾車 : 수레에 기름을 침. 곧 수레를 손질함.
▶ 秣(말) : 말에게 먹이를 먹임.
從子于盤兮, 終吾生以徜徉.”
반곡에서 그대를 따름이여, 내 생명 다하도록 逍遙自適하네.
▶ 徜徉(상양) : 배회함. 노님. 逍遙自適함.
해설
李愿은 唐 德宗 때의 충신인 李晟의 아들로서 元和 초에 절도사가 되었다가 穆宗 때에 随州刺史로 쫓겨나서 불우한 가운데 죽은 사람이다.
이 글은 이원이 반곡에 가서 은거하려 하매 한유가 그를 송별하는 뜻으로 지은 것이다. 이 글에서는 대장부로서 출세한 자의 화려한 생활과, 때를 만나지 못한 대장부의 은거생활을 대비하면서, 운명에 따라 은자로서의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의도를 밝히고 있다.
宋의 蘇軾은 이 문장을 극구 칭찬하여,
“唐에는 문장다운 문장이 없다. 오직 退之의 〈送李愿歸盤谷序〉가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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