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文眞寶(고문진보)

後集38-送楊巨源少尹序(송양거원소윤서)-韓愈(한유)

耽古樓主 2024. 3. 20.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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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文眞寶(고문진보)

送楊巨源少尹序(송양거원소윤서)-韓愈(한유)

 


昔疏廣ㆍ受二子, 以年老, 一朝辭位而去.
옛날에 疏廣·疏受 두 사람은 年老하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벼슬자리를 버리고 떠났다.
疏廣: 나라 宣帝 때 사람인 疏廣疏受. 소광은 자가 仲翁으로, 선제 때 太子太傅를 지냈고, 소수는 소광의 형의 아들로 자가 公子이며 太子少傅 벼슬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만년에는 사촌형제가 함께 하루아침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漢書. 이들은 名利에 초연했던 현명한 인물로 후세에 칭송되고 있다.

于時公卿, 設供帳祖道都門外, 車數百兩, 道路觀者, 多歎息泣下, 共言其賢.
그때 公卿이 포장을 치고 음식을 마련하여 도성 문밖에서 송별연을 벌였는데, 수레의 숫자가 100輛이었고, 길거리에서 구경하는 사람이 대부분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의 현명함을 함께 얘기하였다.
供帳 : 장막을 치고 여러 가지 잔치 준비물을 갖추어 놓은 것.
祖道 : 祖道는 본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을 위해 길제사를 지내는 것. 그러나 아울러 전송하는 잔치도 베풀었으므로 길제사와 송별연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로 발전함.
都門 : 도성 문, 장안 성문.

漢史旣傳其事, 而後世工畵者, 又圖其迹, 至今照人耳目, 赫赫若前日事.
漢나라 역사가 그 일을 전하고 있거니와 또 후세에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그러한 자취를 그림으로 그리어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이목에 비치고 있어, 어제 일인 듯 분명하다.
漢史 : 班固漢書를 가리킴.
赫赫 : 분명한 모양. 밝은 모양.

國子司業楊君巨源, 方以能詩, 訓後進, 一旦, 以年滿七十, 亦白丞相, 去歸其鄕.
國子司業 楊巨源은 마침 시를 잘 지어 後進을 훈도하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나이가 70이 찼다는 이유로 역시 승상에게 아뢰고 벼슬자리를 떠나 그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國子司業 : 교육기관인 國子監에 있어서의 차관급에 해당하는 벼슬.
: 방금. 마침.
白丞相 : 승상에게 아뢰다.
: 벼슬을 떠나.

世常說
“古今人不相及.”
今楊與二疏, 其意豈異也?
세상에서 늘 말하기를
“옛사람을 지금 사람이 따를 수가 없다.”라고 하나,
지금 양거원과 二疏는 그 뜻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古今人不相及 : 옛사람과 지금 사람이 서로 미치지 못한다. 실제로는 옛사람을 지금 사람이 따르지 못한다는 뜻.

予忝在公卿後, 遇疾不能出, 不知楊侯去時, 城門外送者幾人, 車幾兩, 馬幾駟, 道傍觀者亦有歎息知其爲賢與否.
나는 욕되게도 공경의 末席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병이 나서 나가보지도 못하였으매, 양거원이 떠날 적에 성문 밖에서 전송한 이가 몇 사람인지, 수레는 몇 輛인지, 말은 몇 필인지, 길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역시 탄식하면 그의 현명함을 알아주었는지 어쩐지 알지 못한다.
() : 욕된 것. 부끄러운 것.
公卿後 : 공경 중의 말석. 이때 한유는 吏部侍郞 벼슬로서 이는 吏部의 차관이니 결코 낮은 벼슬이 아니었으나 겸손하여 이런 표현을 쓴 것이다.
: 수레 한 대를 끄는 네 마리의 말. 따라서 一駟는 네 마리의 말임.

而太史氏又能張大其事爲傳, 繼二疏蹤跡否. 不落莫否.
그러니 史官이 또 그 일을 과장하여 전함으로써 二疏의 行蹟을 계승하게 한 것은 아닐까? 쓸쓸하기는 않았는가?
太史氏 : 나라에서 역사를 기록하는 史官의 우두머리.
張大 : 크게 늘이다. 과장하다.
二疏蹤跡 : 나라 소광과 소수의 발자취.
落莫 : 쓸쓸한 것. 적막한 것.

見今世, 無工畵者, 而畵與不畵, 固不論也.
지금 세상을 보면 그림을 잘 그리는 이가 없으니, 그 광경을 그리고 그리지 않음은 굳이 따지지 않겠다.

然吾聞楊侯之去, 丞相有愛而惜之者, 白以爲其都少尹, 不絶其祿, 又爲歌詩以勸之, 京師之長於詩者, 亦屬而和之.
그러나 내가 듣건대, 양거원이 떠날 적에 승상께서 그를 애석히 여겨, 천자께 아뢰어 그의 고을의 少尹으로 삼아 그의 녹봉이 끊이지 않도록 하고, 더욱이 시를 지어 노래하며 격려하매, 장안의 시를 잘 짓는 사람들 역시 詩를 지어 和韻하였다 한다.
楊侯 : 양거원을 높이어 부른 말
: 천자에게 사건을 아룀.
其都少尹 : 그 고을의 소윤. 그는 고향인 山西省 河中府의 소윤을 제수받았다. 소윤은 府尹 밑의 부관으로, 실제 직책은 없고 봉록만을 받도록 예우를 한 것이다.
勸之 : 그를 권면하다. 그를 격려하다.
屬而和之 : 시를 지어 거기에 화하다. 그에 따라 를 짓다. 은 글을 짓는다는 뜻.

又不知當時二疏之去, 有是事否. 古今人同不同未可知也.
더욱이 옛날 二疏가 떠날 적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매, 옛사람과 지금 사람이 같은지 같지 않은지 알 수 없다.

中世士大夫, 以官爲家, 罷則無所於歸.
中世의 사대부들은 관청을 집으로 삼고 있어서 벼슬을 그만두면 돌아갈 곳이 없었다.
中世 : 唐代의 글이므로 後漢 무렵을 가리킨다.

楊侯始冠, 擧於其鄕, 歌「鹿鳴」而來也. 今之歸, 指其樹曰:
“某樹吾先人之所種也, 某水某丘吾童子時所釣遊也,”
鄕人莫不加敬, 誡子孫,
“以楊侯不去其鄕爲法,”
양거원은 약관이 되자 고향에서 천거되어 鹿鳴을 노래하며 과거를 보러 왔는데, 지금 귀향함에 그곳의 나무를 가리키며
“저 나무는 나의 선친께서 심으신 것이다. 저 냇물과 저 언덕은 내 어렸을 적에 낚시하며 놀던 곳이다.”라고 말하매,
고향 사람에 더욱 존경하지 않는 이가 없어서, 자손에게 훈계하였다,
“양거원이 그의 고향을 버리지 않았음을 본받으라.”
始冠 : 옛날에는 스무살에 冠禮를 치르고 어른 행세를 시작하였으므로, 스무살이 막 되었다는 말.
擧於其鄕 : 그의 고향에서 과거를 볼 鄕貢으로 추천됨. 唐代에는 國學의 학생과 향공이 된 사람만이 중앙에서 시행하는 과거시험을 볼 자격이 있었다.
鹿鳴 : 詩經小雅의 첫머리 시. 조정에서 잔치를 벌이며 손님을 대접할 때 부르던 노래이다. 지방 장관이 그 고장의 鄕貢을 과거를 보러 장안으로 보낼 때 전송하는 연회 자리에서도 불렀다 한다.
加敬 : 더욱 존경함.


古之所謂 ‘鄕先生沒而可祭於社’者, 其在斯人歟. 其在斯人歟.
옛날의 소위 '고향 선배로서 죽은 다음 社에서 제사를 올릴 사람'이란, 바로 이 사람이리라. 바로 이 사람이리라!
鄕先生 : 고향의 선배. 향리의 선배.
: 땅의 신을 모시는 사당. 크게는 나라에서부터 시작하여 작게는 마을 단위에 이르기까지 여러 등급의 가 나라에 있었다. 그 고장에 큰 공적이 있는 사람은 그 고장의 토지신과 合祀되었다.

 

 

 

 

 해설


만년에 國子司業이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河中府의 少尹 벼슬의 예우를 받았던 楊巨源의 귀향을 전송하는 글이다. 양기원은 貞元 5년(789)의 진사로 시를 잘 지었으며, 白居易와도 사귀었다.

글 제목은 양거원을 전송하는 글이지만, 실제 내용은 양거원이 고향으로 돌아감에, 벼슬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나이가 많아지자 깨끗이 棄官歸鄕한 그의 인품을 칭송한 것이다. 長慶 2~3년(822~823), 한유가 55~6세 때 吏部侍郞으로 있으면서 지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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