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文眞寶(고문진보)

後集39-送石洪處士序(송석홍처사서)-韓愈(한유)

耽古樓主 2024. 3. 20. 01:50

古文眞寶(고문진보)

送石洪處士序(송석홍처사서)-韓愈(한유)

 


河陽軍節度使烏公, 爲節度之三月, 求士於從事之賢者, 有薦石先生者, 公曰:
“先生何如?”
河陽軍節度使 烏公이 절도사가 된 지 3월, 從事하는 賢者에게 선비를 찾으라 하니, 어떤 이가 石선생을 추천하매, 오공이 물었다.
“석선생은 어떤 분이오?”
烏公 : 앞의 平淮西碑에 보였던 烏重胤.

 

 

後集30-平淮西碑(평회서비)-韓愈(한유)

平淮西碑(평회서비)-韓愈(한유) 天以唐克肖其德,聖子神孫,繼繼承承於千萬年,敬戒不怠,全付所覆,四海九州,罔有內外,悉主悉臣。 하늘이 唐나라가 선왕의 덕을 잘 본받고, 성스러운 子

koahn.tistory.com

從事 : 그를 따라 일하는 사람. 부하. 屬官.
石先生 : 石洪. 자는 濬川. 洛陽 사람. 湖北省黃州錄事參軍으로 있다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숨어살고 있었다. 이 석홍을 절도사 오중윤에게 참모로 추천함이다.

曰:
그가 대답하였다.

“先生居嵩邙瀍穀之間, 冬一裘, 夏一葛, 朝夕飯一盂, 蔬一盤.
“석선생은 嵩山과 邙山 및 瀍水와 穀水 사이에 살면서, 겨울에는 한 벌의 갖옷, 여름엔 한 벌의 칡베옷, 아침저녁으로 한 그릇의 밥과 한 접시 채소로 삽니다.
嵩邙瀍穀 : 嵩山邙山 瀍水穀水. 모두 낙양 변두리에 있다.
: 갖옷. 짐승 털가죽 옷.
: . 칡베옷.
: 주발. 밥그릇.
: 소반, 쟁반 접시.

人與之錢則辭, 請與出遊, 未嘗以事免, 勸之仕則不應.
사람들이 그분에게 돈을 주면 거절하고, 함께 나가 놀자고 청하면 일이 있다고 사절한 적이 없으며, 벼슬살이를 권하면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坐一室, 左右圖書, 與之語道理, 辦古今事當否, 論人高下, 事後當成敗, 若河決下流而東注也, 若駟馬駕輕車就熟路而王良ㆍ造父爲之先後也, 若燭照數計而龜卜也.”
앉아있는 방 하나는 도서로 채웠고, 그와 더불어 道理를 얘기하고 고금의 일의 當否를 변론하고 인물의 高下와 일의 훗날의 成敗를 논해 보면, 마치 黃河가 터져내려 동쪽으로 흘러가는 듯하고, 駟馬에 멍에를 올린 가벼운 수레로 익숙한 길을 달리며 王良ㆍ造父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듯하고, 또 촛불을 밝혀놓고 갯수를 헤아리고 거북점을 침과 같이 분명합니다.”
以事免 : 일을 핑계로 하지 않다. 일을 핑계로 사양하다.
事後當成敗 : 어떤 일이 뒤에 성공할까 실패할까 얘기함.
駟馬 : 수레 한 대를 끄는 네 마리의 말.
王良造父(왕량조보) : 王良造父. 모두 옛날 유명한 수레꾼. 왕량은 趙簡子를 조보는 周穆王을 섬겼다.
燭照數計 : 촛불을 켜놓고 물건의 수를 헤아림.
龜卜 : 큰 거북 껍질을 말려 두었다가 불로 지져 그 균열을 보고 길흉을 점침.

大夫曰:
“先生有以自老, 無求於人, 其肯爲某來邪?”
烏大夫께서 말하였다.
“석선생은 스스로 늙어갈 방도를 가지고 남에게서 구함이 없는 분인데, 나를 위해 오려 하겠소?”
大夫 : 烏大夫, 오중윤을 가리킴.
自老 : 스스로 늙어 은퇴하여 여생을 편히 살아감.

從事曰:
아랫사람이 대답하였다.

“大夫文武忠孝, 求士爲國, 不私於家.
“대부께서 문무와 충효로써 선비를 구함은 나라를 위함이지, 사적으로 집을 위함이 아닙니다.
私於家 : 집안에서 개인적으로 부리고 씀.

方今寇聚於恒, 師環其疆, 農不耕收, 財粟殫亡.
현재 外寇는 恒州에 모여있고 官軍이 그 疆土를 포위하고 있으매, 농부는 경작하지도 수확하지도 못하고 재물과 식량이 바닥났습니다.
寇聚於恒 : 적군이 桓州에 모이다. 항주는 지금의 河北省 正定縣, 元和 4(809) 成德軍節度使 王士眞이 죽자 그 아들 王承宗이 항주를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다.
師環其疆 : 군사가 그 땅[恒州]을 포위하다.
殫亡(탄망) : 다하여 없어짐.

吾所處地, 歸輸之塗, 治法征謀, 宜有所出.
저희의 처지는 보급품을 수송하는 길이니, 정치의 방법이나 정벌의 모략에 내놓을 의견이 있어야 합니다.
歸輸 : 군수물자를 수송함.
: . 와 통함.

先生仁且勇, 若以義請而强委重焉, 其何說之辭.”
석선생은 어질고도 용감하매 의리로써 요청하고 억지로 重職을 맡기면 그가 무슨 말로 사양하겠습니까?”
以義請 : 義理로써 초청함.
强委重 : 억지로 중요한 직책을 위임함.

於是譔書詞, 具馬幣, 卜日以授使者, 求先生之廬而請焉.
이에 글을 지어 쓰고 말과 幣帛을 갖추고 날을 받아 使者에게 주어 석선생의 움막에 찾아가서 초청하게 하였다.
() : 글을 지음.
馬幣 : 말과 폐백. 말은 초청받은 사람이 타고 올 것이고, 폐백은 初見禮로 보내는 예물.
卜日 : 좋은 날을 점쳐서 잡음.

先生不告於妻子, 不謀於朋友, 冠帶出見客, 拜受書, 禮於門內.
석선생은 처자에게 알리지 않고 친구와 의논하지 않고, 冠帶를 차리고 나와서 손님을 만나보고, 글과 예물을 문 안에서 절하고 받았다.
冠帶 : 관을 쓰고 띠를 맴. 곧 정장을 차려 입음.

宵則沐浴, 戒行李, 載書冊, 問道所由, 告行於常所來往.
밤이 되자 목욕하고 행장을 꾸리고 書冊을 수레에 싣고 거쳐야 할 길을 묻고 나서야, 늘 내왕하는 사람에게 길을 떠난다고 알렸다.
戒行李 : 여행할 짐을 꾸림.
所由 : 경로. 지나갈 길.

晨則畢至, 張筵於上東門外, 酒三行, 且起, 有執爵而言者曰:
“大夫眞能以義取人, 先生眞能以道自任, 決去就, 爲先生別.”
아침이 되니 사람들이 다 왔으매, 上東門 밖에 송별연을 벌여 술이 세 巡杯 돈 뒤, 떠나려고 막 일어서는데, 술잔을 들고 있던 사람이 말하였다.
“대부께서는 참으로 의리로써 사람을 잘 취하시고, 선생께서는 참으로 道義로써 自任하여 거취를 결정하셨으매 선생을 위하여 작별하고자 합니다.”
張筵 : 송별연을 베품.
上東門 : 낙양의 동쪽 성문이름.
酒三行 : 술이 세 巡杯 돌아감.
有執爵而言者 : 술잔을 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술잔을 들고 있던 한 사람이 말하다.

又酌而祝曰:
“凡去就出處何常, 惟義之歸, 遂以爲先生壽.”
또 술잔을 따른 다음 축원하였다.
“모든 거취와 진퇴가 어찌 일정하겠는가? 오직 도의를 따를 뿐이다. 끝으로 선생을 위하여 祝壽하겠소.”
去就 : 벼슬자리에 나아가거나 떠나는 행동.
: 축원하다. 빌다.
出處 : 去就와 비슷한 뜻. 나아가거나 머무는 처신.
: 장수를 빌다. 건강을 빌다. 祝壽

又酌而祝曰:
“使大夫恒, 無變其初, 無務富其家而飢其師, 無甘受佞人而外敬正士, 無味於諂言, 惟先生是聽, 以能有成功, 保天子之寵命.”
또 술잔을 따르고 축원하였다.
“오대부께서 初志를 變改하지 않고, 그 집안을 부유하게 하느라 그 군사를 굶주리게 함이 없고, 간사한 사람을 달갑게 맞고 올바른 선비를 외면함이 없고, 아첨하는 말에 맛을 들이지 않고, 오직 석선생의 의견을 들음으로써 성공하여, 천자가 총애하여 내린 명령을 잘 지키기를!”
甘受 : 달갑게 받다. 좋아하며 받아들이다.
佞人 : 간사한 사람. 뜻에 영합하는 사람.
外儆 : 겉으로만 공경하는 체함.
: 말을 듣고 따름.

又祝曰:
“使先生無圖利於大夫而私便其身.”
또 축원하였다.
“석선생께서는 오대부에게서 이익을 추구하여 그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도모하지 않기를!”
私便 :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함.

先生起拜祝辭曰:
“敢不敬蚤夜, 以求從祝規”
석선생은 일어나 축사에 拜禮하였다.
“감히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몸가짐을 삼가서 축원하시는 훈계를 좇으려 애쓰지 않겠습니까?”
蚤夜 :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쉬지 않고.

於是東都之人, 咸知大夫與先生, 果能相與以有成也.
이에 東都사람들 모두가 오대부와 석선생이 서로 협력하여 공을 이룰 수 있을 줄 알았다.

遂各爲歌詩六韻, 遣愈爲之序云.
마침내 각자가 6韻의 시를 지어, 내게 보내어, 그것을 위하여 序하라고 말하였다.
六韻 : 여섯 구에 운을 밟은 시. 보통 짝수 구절에 운을 밟으므로 곧 12구의 律詩를 뜻함.
: 문장 끝머리에 붙이는 조사. 보통 '~이라 한다'라고 해석되나, 여기서는 순전한 虛辭로 쓰였다.

 

 

 

 해설


이 글은 元和 5년(810), 한유가 43세 되던 해에 지었다 한다.
하양군절도사 오중윤이 현명한 참모를 구하다가벼슬을 버리고 洛陽으로 돌아와 숨어살던 石洪이란 깨끗한 인물을 등용하였다작자는 사람들의 부탁을 받고 석홍을 낙양에서 전송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지은 것이다제목에서 석홍을 處士라 부르고 있는데그것은 벼슬을 않고 지내는 선비에게 붙여주던 존칭이다.

오중윤은 뒤에 석홍을 참모로 삼고 恒州로 가서 반란을 일으킨 王承宗을 무난히 토벌하여 큰 공을 세우게 된다그러나 석홍은 그 후 다시 은퇴한 듯다시는 다른 곳에 그의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