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集3-上秦皇逐客書(상진황축객서)-李斯(이사)
臣聞吏議逐客, 竊以爲過矣.
신이 듣건대 관리들이 逐客을 논의한다는데, 삼가 잘못된 일이라 여깁니다.
昔者繆公求士,
西取由余於戎;
東得百里奚於宛;
迎蹇叔於宋;
來邳豹ㆍ公孫支於晉,
此五子者, 不産於秦, 而繆公用之, 幷國二十, 遂覇西戎.
옛날 穆公은 선비를 구함에
서쪽으로 戎에서 由余를 데려왔으며,
동쪽으로 宛에서 百里奚를 얻었으며,
宋나라에서 蹇叔을 맞이하였고,
晉나라에서 邳豹와 公孫支를 오게 하였는데,
이 다섯 사람은 秦나라 출신이 아닙니다마는 목공은 그들을 임용하여 20國을 합병하고, 마침내 西戎의 覇者가 되었습니다.
▶ 繆公(목공) : 繆은 穆과 통하는 글자, 秦나라 임금의 시호. 기원전 624년에 晉나라를 쳐서 西戎의 覇者가 되었다.
▶ 由余 : 본시 晉나라 사람으로 戎으로 들어가 戎王을 섬겼다. 융왕은 秦나라 목공이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유여를 진나라로 보내어 사실을 알아보게 하였다. 목공은 이때 유여를 만나보고 잡아두었다가 뒤에 진의 재상 자리에까지 앉혔다. 그 뒤 융을 칠 계책을 내어 천리의 땅을 개척하게 하고 목공을 西의 패자가 되게 하였다. 《兵法》 6편을 지었다.[《史記》奏本紀·匈奴傳 등]
▶ 百里奚 : 춘추시대 虞나라 사람. 자가 井伯이며 가난하게 자랐으나 뒤에 虞公을 섬기어 대부가 되었다. 晉나라가 虞나라를 멸하였을 때 포로가 되었는데, 秦나라 목공 부인의 媵臣으로 삼으려 하자, 백리해는 치욕을 못 이기어 宛으로 도망쳤다가 楚나라 사람들에게 잡혔다. 진 목공은 그가 현명함을 알고 다섯 장의 검은 양가죽을 주고 백리해를 데려다가 나라의 정치를 맡겼는데, 그가 재상이 된 지 7년 만에 목공을 패자가 되게 하였다 [ 《史記》正義 등 ]
▶ 蹇叔(건숙) : 본시 岐州 사람으로 宋나라에 가 있었는데, 백리해의 추천으로 목공이 후한 폐백을 주고 데려다가 上大夫로 삼았다 [《史記》索隱·正義 등]
▶ 邳豹(비표) : 본시 晉나라 사람으로 秦으로 가서 벼슬했던 사람[《左傳》僖公 10년]
▶ 公孫支 : 본시 岐州 사람. 晉나라에 가 벼슬하다 뒤에 秦나라로 와 대부가 됨. 子桑이라고도 함 [《史記》索隱・正義]
▶ 幷國二十 : 20나라를 합병하다. 《사기》隱索같은 곳에서는 20을 12라 하고 있다.
孝公用商鞅之法, 移風易俗, 民以殷盛, 國以富强, 百姓樂用, 諸侯親服.
孝公은 상앙의 법을 採用하여 풍속을 바로잡고 백성을 잘살게 하고 나라를 부강케 하니, 백성은 쓰임을 즐거워하고 제후들은 친근해지고 복종하였습니다.
▶ 孝公 : 秦나라 임금. 기원전 362~기원전 338 재위.
▶ 商鞅 : 전국시대 衛나라의 庶出 公子로 성은 公孫氏. 刑名法術之學을 좋아하여, 秦나라 孝公의 재상이 된 뒤로 變法自强의 정책을 써서 진나라를 강성하게 하였다. 商 에 봉해져 商君이라고도 불리며, 그가 재상으로 있는 동안 법치가 잘 되었으나, 법이 너무 엄하여 사람들의 원망을 샀으므로 효공이 죽자 車裂의 형을 받고 죽었다 한다.
獲楚魏之師, 擧地千里, 至今治强.
그리고 楚나라와 魏나라의 군대를 쳐부수고 천리의 땅을 더 넓히니, 지금까지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강해졌습니다.
▶ 獲 : 본시 잡는다는 뜻. 그러나 여기서는 상앙이 魏나라 安邑을 쳐서 뺏고, 公子卯를 쳤던 일을 가리킨다.
惠王用張儀之計, 拔三川之地, 西幷巴蜀, 北收上郡; 南取漢中, 包九夷, 制鄢郢, 東據成皐之險, 割膏腴之壤, 遂散六國之從, 使之西面事秦, 功施到今.
惠王은 張儀의 계책을 채용하여 韓나라 三川의 땅을 빼앗고 서쪽으로 巴蜀을 합병하였으며, 북쪽으로 上郡을 거둬들이고, 남쪽으로 漢中을 빼앗았으며, 南夷들을 합병하고 鄢郢을 제압하였으며, 동쪽으로 成皐의 險固에 의지하고 비옥한 땅을 할양받아 마침내 六國의 合從策을 무산시키어, 그들을 西面하여 秦나라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공로는 지금까지 혜택이 미치고 있습니다.
▶ 擧 : 개척의 뜻.
▶ 惠王 : 秦나라 임금. 기원전 338년에 즉위하여 왕이라 자칭하기 시작함.
▶ 張儀 : 전국시대 魏나라 사람. 처음에 蘇秦과 함께 鬼谷子에게 배웠는데, 뒤에 소진이 趙나라 재상이 되었을 때 찾아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秦나라로 갔다. 진나라 惠王은 그를 재상으로 삼았는데, 그는 六國을 유세하여 소진이 내걸었던 合縱策을 깨뜨리고 자기의 連橫策을 따라 진나라를 섬기도록 하였다. 이로 인하여 진나라의 遠交近攻이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였고, 그를 武信君이라 불렀다. 혜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하자 신하들이 그를 모함하였다. 그리고 육국이 다시 합종하여 진나라에 대항하자 장의는 진을 떠나 위나라로 가서 재상이 되었으나 1년 만에 죽었다.
▶ 三川 : 涇水·渭水·洛水의 세 강물. 秦나라에서는 三川郡을 둔 일이 있으며, 모두 황하 중류의 지류들이다.
▶ 巴蜀 : 지금의 成都를 중심으로 한 四川省 지역.
▶ 上郡 : 지금의 陝西省 서북쪽 일대에 걸쳐 있던 땅 이름.
▶ 漢中 : 지금의 섬서성 남부와 湖北省 서북부에 걸쳐 있던 郡 이름.
▶ 包九夷 : 包는 합병함, 九夷는 여러 오랑캐. 초나라 땅에 있던 많은 夷族을 가리킴[《文選》李善注].
《논어》에 나오는 九夷와는 다름.
▶ 鄢郢(언영) : 지금의 호북성 宣城縣 동남쪽에 있던 고을 이름. 보통 鄀이라 불렀다. 楚나라는 한때 도읍을 郢에서 이곳으로 옮겼던 일이 있었다. 李善이 鄢과 郢이 모두 초나라의 고을 이름이라 본 것은 잘못임.
▶ 成皐(성고) : 춘추시대에는 虢國이었고, 뒤에 鄭나라에 소속되었다가 전국시대에는 韓나라 땅이 되었던 전략상의 요지이다. 지금의 河南省 汜水縣 서북쪽임.
▶ 六國之從 : 6국의 합종책. 6국은 전국시대의 秦을 제외한 여섯 나라. 곧 燕·趙·韓·魏·齊·楚임. 이 여섯 나라는 蘇秦의 합종책을 따라 힘을 합쳐 강한 진나라에 대항했다. 張儀는 연횡책을 내세워 이것을 무너뜨렸다.
昭王得范雎, 廢穰侯; 逐華陽, 强公室, 杜私門, 蠶食諸侯, 使秦成帝業.
昭王은 범저를 등용하여, 재상인 穰侯侯 위염을 파면하고 華陽君 芋戎을 쫓아내어, 公室을 강하게 하고 私門을 막았으며, 제후들을 잠식하여 秦나라가 帝業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 昭王 : 秦나라 임금의 시호. 기원전 288년에 西帝라 자칭하여 유명하다.
▶ 范雎(범저) : 전국시대 魏나라 사람. 말을 잘하였으며 처음에 魏나라에서 벼슬하다 실패하여 秦나라로 가서는 昭王에게 遠交近攻策으로 유세하여 뒤에 재상까지 되었고 應侯에 봉해지기도 하였다. 雎를 睢로 쓰고 '수'라 읽기도 하나[《通鑑》胡三省의 注] 잘못임.
▶ 穰侯(양후) : 秦나라 昭王의 어머니 宣太后의 동생 魏冉. 재상 자리에 있었으나 범저가 그의 권세가 제후보다도 더하다고 소왕을 설득시키어 벼슬자리에서 쫓아내게 하였다[《史記》范雎傳]
▶ 華陽 : 穰侯가 소왕의 어머니 선태후의 異父의 큰동생인 데 비하여 華陽君은 同父弟인 芋戎이다. 역시 권세가였으나 범저로 말미암아 關外로 쫓겨났다.
此四君者, 皆以客之功, 由此觀之, 客何負於秦哉.
이 네 임금은 모두 外客의 공로에 의지하였으매, 이로써 본다면 외객이 진나라에 무슨 해코지를 하였습니까?
向使四君, 郤客而不內, 疏士而不用, 是使國無富利之實, 以秦無强大之名也.
만약 네 임금이 외객을 물리치며 들이지 않고, 멀리하고 등용하지 않았더라면, 이것은 나라가 富利를 충실하게 함을 없앰이매, 진나라에 강대한 명성도 없었을 터입니다.
▶ 郤客而不內 : 외객을 물리치고 들이지 않음.
今陛下致昆山之玉, 有隨和之寶, 垂明月之珠, 服太阿之劒, 乘纖離之馬, 建翠鳳之旗, 樹靈鼉之鼓, 此數寶者, 秦不生一焉.
지금 폐하께서는 昆山의 옥을 가져오게 하며, 隨侯의 구슬과 和氏의 옥을 갖고 계시며, 明月의 구슬을 늘어뜨리고, 太阿의 칼을 차고, 纖離의 말을 타고 계시며, 翠鳳의 깃발을 세우고, 신령스런 악어가죽의 북을 달아놓고 계시나, 이 여러 보배는 秦나라에서 하나도 나지 않습니다.
▶ 昆山 : 崑崙山. 황하의 근원이 여기에서 시작되며, 옛날부터 옥의 산지로 유명했다. 지금의 곤륜산맥의 어느 봉우리일 터이다.
▶ 隨和之寶 : 隨侯의 珠와 和氏의 壁. 수후의 주는 수후가 큰 뱀이 두 동강이 남을 보고 약을 발라 고쳐준 일이 있었는데, 1년 뒤에 그 뱀이 물어다 주었다는 明珠로 흔히 隨珠라고 불렀다[《淮南子》說山訓, 《史記》正義]. 화씨의 벽은 초나라 사람인 卞和가 荊山에서 발견했다는 보옥이다[ 《韓非子》 和氏편 ].
▶ 明月之珠 : 밤에도 밝은 달처럼 빛을 발한다는 夜光珠 [ 《淮南子》說山訓]
▶ 太阿之劒 : 초나라(또는 吳나라)의 名匠인 干將이 만들었다는 名劍. 莫邪와 함께 만들어진 명검으로 《吳越春秋》·《搜神記》 등엔 이들에 관한 여러 가지 전설이 실려 있다.
▶ 纖離 : 옛날 좋은 말 이름, 周 穆王의 八駿 중의 하나였다 [ 《荀子》性惡편 ]
▶ 翠鳳 : 비취새 깃으로 봉황새 모양을 만든 깃대 장식. 이 깃발은 천자의 수레에 세웠다 한다.
▶ 靈鼉(영타) : 신령스런 악어, 큰 악어 가죽으로 좋은 북을 만들었다.
而陛下說之, 何也?
그런데도 폐하께서 그것들을 좋아하심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必秦國之所生然後可,
則是夜光之璧, 不飾朝廷;
犀象之器, 不爲玩好;
鄭衛之女, 不充後宮;
而駿良駃騠, 不實外廐:
江南金錫, 不爲用;
西蜀丹靑, 不爲采.
꼭 진나라 所生이어야 한다면,
夜光의 구슬은 조정을 장식하지 못하고,
犀象의 그릇을 愛玩하지 못하고,
鄭衛의 여자로 후궁을 충당하지 못하고,
駃騠 같은 준마가 외양간을 채우지 못하고,
강남의 금과 주석도 쓰지 못하고,
西蜀의 丹靑도 채색으로 쓰지 못할 터입니다.
▶ 犀象(서상) : 외뿔소의 뿔과 코끼리 이빨.
▶ 鄭衛 : 정나라와 위나라. 그곳 노래가 음탕함으로 유명하여 여자들도 잘 논다고 생각했던 듯함. 판본에 따라서는 '趙國’, ‘趙衛’ 등으로 되어 있다.
▶ 駃騠(결제) : 잘 달리는 좋은 말 이름. 낳은 지 7일이 되자 그 어미보다도 빨랐다고 한다《玉篇》
▶ 外廐 : 밖의 마구간.
▶ 金錫 : 금과 주석.
▶ 丹靑 : 옛날 집에 칠하던 빨간 염료와 파란색 염료. 지금의 四川省인 西蜀에서 좋은 물건이 생산되었다.
所以飾後宮, 充下陳; 娛心意, 說耳目者, 必出於秦然後可, 則是宛珠之簪, 傳璣之珥, 阿縞之衣, 錦繡之飾, 不進於前, 而隨俗雅化, 佳冶窈窕趙女, 不立於側也.
후궁을 장식하고 후궁에 채우는 물건이나, 心意를 기쁘게 하고 耳目을 즐겁게 하는 물건이 반드시 진나라 所出이어야 한다면, 宛珠의 비녀와 傳璣의 귀고리와 阿縞의 옷과 錦繡의 장식이 폐하의 앞에 진상되지 않을 터이며, 습속을 좇아 우아함이 변화하여 아름답고 얌전한 趙나라의 미녀도 폐하의 곁에 서 있지 않을 터입니다.
▶ 下陳 : 後列 또는 후궁의 列屋을 가리킴.
▶ 宛珠(완주) : 둥근 구슬[《史記》索隱]. 宛에서 나는 구슬.
▶ 傅璣(부기) : 모난 구슬 [璣]을 붙여 장식함.
▶ 珥(이) : 귀고리, 옛날 귀에 달던 장식 이름.
▶ 阿縞(아호) : 齊나라 東阿에서 나던 희고 고운 비단.
▶ 隨俗雅化 : 습속을 따라 우아함이 변화함 [《文選》李善注].
▶ 佳冶窈窕(가야요조) : 아름답고 얌전한 것.
夫擊甕叩缶, 彈箏搏髀而歌呼嗚嗚, 快耳目者, 眞秦之聲也.
물독을 치고 물동이를 두드리고 箏을 뜯으며, 넓적다리를 두드리고 신나게 노래하고 소리 지름으로써 귀와 눈을 즐겁게 함이 참된 진나라의 노래입니다.
▶ 擊甕(격옹) : 물독을 치면서 박자를 맞춤.
▶ 叩缶(구부) : 토기로 된 동이를 두드리며 박자를 맞춤.
▶ 彈箏(탄쟁) : 箏을 뜯다. 쟁은 瑟처럼 생긴 현악기로 12현 또는 13현이다.
▶ 搏髀(박비) : 자기 넓적다리를 두드림, 넓적다리를 치면서 장단을 맞춤. 髀는 본시 넓적다리뼈의 뜻.
▶ 歌呼嗚嗚(가호오오) : ‘오오’하고 즐거운 소리로 노래함.
鄭衛桑間, 昭虞象武者, 異國之樂也.
鄭나라·衛나라의 노래와 桑間의 노래 및 韶虞와 象武의 음악은 다른 나라의 음악입니다.
▶ 鄭衛 : 정나라와 위나라 노래. 《詩經》 시대부터 음란한 亂世의 음악으로 알려져 왔음.
▶ 桑間 : 역시 망해가는 나라의 음탕한 노래 이름. 보통은 ‘桑間’과 '濮上'을 연이어 놓고 亡國之音을 나타낸다[《禮記》樂記]. 모두 위나라 땅 이름[《漢書》地理志].
▶ 韶虞(소우) : 舜임금의 음악 이름.
▶ 象武(상무) : 象은 周公이 지은 음악, 武는 周武王의 음악.
今棄擊壅叩缶而就鄭衛, 退彈箏而取昭虞, 若是者何也? 快意當前, 適觀而已矣.
그런데 물독을 치고 물동이를 두드림을 버리고 鄭衛를 좇으며, 쟁을 뜯음을 물리치고 소우의 음악을 취하시는데, 그렇게 함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당장에 기분이 좋고 보기에 적합하기 때문일 뿐입니다.
▶ 快意當前 : 당장 마음이 상쾌함. 바로 그 당시 마음이 즐거움.
今取人則不然.
그런데 사람을 씀에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不問可否, 不論曲直, 非秦者去, 爲客者逐.
可否를 묻지 않고 曲直을 따지지 않고서, 진나라 출신이 아니면 내보내고 외객은 내쫓습니다.
然則是所重者, 在乎色樂珠玉, 而所輕者, 在乎人民也, 此非所以跨海內制諸侯之術也.
그러므로 이것은 중히 여김은 여색과 음악과 주옥에 있고, 가벼이 여김은 사람에 있는 셈이매, 이것은 四海에 군림하고 제후들을 제어하는 술법이 되지 못합니다.
▶ 跨海內(과해내) : 四海에 걸쳐 군림하다. 온 천하를 지배함을 뜻함.
臣聞地廣者粟多, 國大多者人衆, 兵强則士勇, 是以泰山不辭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王者不郤衆庶, 故能明其德.
신이 듣건대, 땅이 넓으면 곡식이 많고 나라가 크면 인구가 많으며, 군대가 강하면 병사가 용감하매, 이 때문에 泰山은 흙을 사양하지 않아서 거대해질 수 있고, 河海는 細流라도 가리지 않아서 깊어질 수 있고, 王者는 사람들을 물리치지 않아서 그의 덕을 밝힐 수 있다고 합니다.
▶ 不郤衆庶(불각중서) : 백성을 물리치지 않다.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다.
是以地無四方, 民無異國, 四時充美, 鬼神降福, 此五帝三王之所以無敵也.
그래서 땅에 있어서 사방을 가리지 않고 사람에 있어서 異國을 가리지 않으면, 사철 내내 좋은 일이 충만하여, 귀신도 복을 내려주매, 이것이 五帝와 三王을 적으로 삼는 자가 없었던 방법입니다.
▶ 四時充美 : 사철 봄·여름·가을·겨울 할 것 없이 언제나 물산이 충실하고 풍경이 아름다운 것.
▶ 五帝三王 : 五帝는 옛날 중국의 태곳적 다섯 임금인 黃帝·顯頊·帝·唐堯·虞舜[《史記》], 三王은 3대의 첫 임금. 곧, 夏 禹王·商 湯王·周 文王과 武王.
今乃棄黔首以資敵國, 郤賓客以業諸侯, 使天下之士, 退而不敢西向, 裹足不入秦, 此所謂藉寇兵而齎盜糧者也.
그러나 백성을 버리어 적국의 자산이 되게 하고, 빈객을 물리침으로써 제후의 패업을 돕고, 천하의 선비를 물리쳐서 감히 서쪽으로 향하지 않고 발을 싸매고 진나라로 들어오지 않게 만듭니다. 이것이 소위 ‘적에게 무기를 빌려주고 도둑에게 양식을 대어 줌’입니다.
▶ 黔首(검수) : 백성. 본시 '머리가 검은 사람들', 곧 冠을 쓰지 않은 평민들을 가리키는 말임.
▶ 業 : 일을 도와주다. 業을 돕다의 뜻.
▶ 裹足 : 발을 싸매어 놓다. 곧 발을 움직이지 않음을 가리키는 말 [《史記》范雎傳.]
▶ 籍寇兵 : 도적에게 무기를 대주다. 적에게 무기를 빌려주다.
▶ 齋盜糧 : 도둑에게 양식을 대주다.
夫物不産於秦, 可寶者多; 士不産於秦, 願忠者衆.
물건이 진나라에서 나지 않으면서도 보배가 될 만한 것이 많고, 선비가 진나라 출신이 아니면서도 충성을 바치려는 자가 많습니다.
今逐客以資敵國, 損民以益讐, 內自虛而外樹怨於諸侯, 求國無危, 不可得也.
그런데 외객을 내쫓음으로써 적국에 보탬이 되고, 백성을 버림으로써 원수를 이롭게 한다면, 나라 안은 자연히 허술하게 되고 밖으로는 제후에게 원한을 심을 터이매, 나라에 위태로움이 없기를 구하여도 가능하지 않을 터입니다.
▶ 損民 : 백성을 덜어내다. 백성의 일부를 버리다.
해설
秦始皇(기원전 246~기원전 210) 재위 때 외국 출신 인사들을 벼슬자리에서 쫓아내자는 의견이 일자, 丞相이었던 李斯(?~기원전 208)가 그 의견의 부당함을 간한 글이다. 이사는 정치가였을 뿐만 아니라 진나라를 대표하는 문장가로서, 이 글이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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