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文眞寶(고문진보)

後集2-漁父辭(어부사)

耽古樓主 2024. 2. 29. 18:56

古文眞寶(고문진보)

漁父辭(어부사)-屈原(굴원)

 

屈原旣放, 游於江潭, 行吟澤畔. 顔色憔悴, 形容枯槁.

굴원이 쫓겨나 강호에서 노닐며 못가에서 시를 읊조리고 다니는데, 안색은 초췌하고 모습은 瘦瘠하였다.

: 放逐. 쫓겨남

江潭 : 강과 호수. 江湖.

 

漁父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與? 何故至於斯?”

漁父가 그를 보고 물었다.

“선생은 三間大夫가 아니십니까?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셨습니까?”

三閭大夫 : 의 벼슬 이름. 三閭는 초의 왕족인 ··3. 굴원의 벼슬은 이 3성을 관장하는 대부였다.

: =. 의문조사.

 

屈原曰:

“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 是以見放.”

굴원이 말했다.

“온 세상이 다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는데 나만이 깨어 있으매, 이런 까닭에 쫓겨났다오.”

見放 : 은 피동형. 방축을 당하다.

 

 

漁父曰:

어부가 말했다.

 

“聖人不凝滯於物, 而能與世推移.

“聖人은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따라 변하여 갈 수 있습니다.

凝滯 : 엉기고 막힘. 얽매임.

推移 : 밀치며 옮겨가다. 보조를 맞추다. 세속에 따라 둥글둥글하게 살아감을 뜻함.

 

世人皆濁, 何不淈其泥而揚其波?

세상 사람들이 모두 탁하면 왜 진흙탕을 휘저어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습니까?

淈(굴) : 휘젓다. 흐리게 하다.

 

衆人皆醉, 何不餔其糟而歠其醨?

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다면 어째서 술지게미를 먹고 薄酒를 마시지 않으십니까?

餔其糟而歠其醨(포기조이철기리) : , 과 같다. 는 걸러내고 남은 찌꺼기 술.

 

何故深思高擧, 自令放爲?”

어찌하여 깊이 생각하고 고결하게 처신하여 스스로 쫓겨남을 당하게 하십니까?”

() : 語氣詞가 되어 명령, 감탄, 금지의 어기를 나타낸다. 또한 의문의 어기도 나타내는데 이때에는 爲乎, 爲哉로 연용된다.

의문의 경우 자가 단독으로 쓰이든, 爲乎爲哉처럼 연용으로 쓰이든 간에, 모두 와 같은 별도의 의문사가 필요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卒有病疽者, 起爲吮之. 卒母聞而哭之. 人曰: ", 卒也, 而將軍自吮其疽, 何哭爲?" 史記 孫吳列傳

병졸 가운데 종기를 앓는 자가 생기자 吳起가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었다. 병졸의 어머니가 그 소문을 듣고 소리 내어 우니, 어떤 사람이 이르기를 당신 아들은 병졸에 지나지 않는데 장군께서 친히 종기를 빨아 주었소. 어찌하여 우는 것입니까?”

 

 

한문의 허사(虛詞) 爲

한문의 허사(虛詞) 爲 之爲 구조조사 爲乎 의문어기 爲也 금지어기 爲哉 의문어기 필자는 이 글자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어야만 한문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본래 “爲행할 위”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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屈原曰:

굴원이 말했다.

 

“吾聞之. 新沐者必彈冠, 新浴者必振衣.

“내가 듣기에,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冠을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오.

 

安能以身之察察, 受物之汶汶者乎?

어찌 결백한 몸으로 더러운 것들을 받아들이겠소?

察察 : 淸白.

汶汶 : 더럽고 지저분함.

 

寧赴湘流葬於江魚之腹中, 安能以皓皓之白, 而蒙世俗之塵埃乎?”

차라리 湘江에 가서 물고기 배에 장사지내지, 어찌 결백한 몸으로서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쓰겠소?”

湘流(상류) : 湘江. 洞庭湖로 흘러드는 강.

皓皓 : 결백함.

 

漁父莞爾而笑, 鼓枻而去. 乃歌曰: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어부가 빙그레 웃고 뱃전을 두드리며 떠나면서, 노래을 불렀다.

“滄浪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으면 되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면 될 터인데.”

莞爾 : 莞然. 빙그레 웃는 모양,

鼓枻(고예) : 는 본래 노. 상앗대. 여기서는 뱃전[船舷]의 뜻으로 쓰였다.

滄浪 : 漢水의 하류.

() : 갓끈. 이 노래는 孟子離婁편에 '有子曰'로 시작하여 나온다.

 

 

遂去不復與言.

그리고는 떠나가서 다시는 함께 이야기하지 않았다.

 

 

 

 해설

 

이 글은 《楚辭》에서는 굴원의 작이라 하나, 첫머리가 ‘屈原旣'로 시작됨을 보아 굴원 자신의 작품은 아니며, 후세 사람이 그의 청렴결백한 衷情을 애모하여 지은 것이라고 본다. 굴원은 전국시대 초나라 왕족으로 王의 신임을 얻어 등용되었으나 억울하게 참소당하여 두 차례나 쫓겨나 결국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汨羅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한다.

이 글은 굴원이 유랑생활을 하던 도중 隱士인 한 어부를 만나 속세와 동화될 수 없는 자신의 심정을 묘사한 것으로 문장이 간결하고 아름다우면서도 굴원의 성격이 매우 명료하게 나타나 있다.

문장의 표현기교를 보더라도 漢대의 글임이 분명하다.

현실과 이상의 엄청난 차이에 고뇌하는 이에게 어부와 굴원 두 賢人의 서로 다른 두 가지 가치관을 함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