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陳商書(답진상서)-韓愈(한유)
愈白.
愈가 말씀드립니다.
辱惠書, 語高而旨深, 三四讀, 尙不能通曉, 茫然增愧赧.
욕되게도 보내주신 편지는 語句가 고상하고 뜻이 심원하여, 서너 차례 읽었으나 아직도 밝게 이해하지 못해 망연히 부끄러움에 얼굴 붉히기를 더합니다.
▶ 白 : 말씀드리다. 고하다의 뜻.
▶ 辱惠書: 욕되게도 편지를 보내다. 辱은 남이 편지를 보내줌을 겸손하게 표현한 것. 惠書는 남의 편지를 높여서 하는 말.
▶ 語高而旨深 : 語句가 고상하고 뜻이 심원하다. 이 말은 陳商의 글을 칭찬하는 말 같지만, 속뜻은 그의 문장이 애매하고 난해함을 비난하고 있다.
▶ 通曉 : 밝게 이해하다. 曉는 知의 뜻.
▶ 茫然 : 멍한 모양.
▶ 愧赧 :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힘.
又不以其淺弊無過人智識, 且喩以所守, 幸甚 愈敢不吐露情實.
더욱이 淺薄하고 결점 많으며 남다른 지식이 없다고 여기지 않고, 지니신 법도로써 깨우쳐 주시어 매우 다행한데, 제가 감히 실정을 토로하지 않겠습니까?
▶ 不以 : ~하다고 여기지 않다.
▶ 淺弊 : 천박하고 결점이 많음.
▶ 過人智識 : 남보다 뛰어난 지식.
▶ 喩以所守 : 지키던 바로써 깨우쳐 주다. 즉 진상이 평소 자신의 법도로 삼는 것을 가지고 한유를 깨우쳐 주다.
▶ 幸 : 대단히 감사하다.
▶ 情實 : 진실한 감정.
然自識其不足補吾子所須也.
그러나 그대가 바라는 바를 채워주기에는 부족함을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 吾子 : 그대. 동년배나 子弟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 여기서는 동년배라 '선생'이라 옮겼다.
▶ 所須 : 바라는 바.
齊王好竽, 有求仕於齊者, 操瑟而往, 立王之門三年, 不得入, 叱曰:
“吾瑟鼓之, 能使鬼神上下, 吾鼓瑟合軒轅氏之律呂.”
齊王은 竿를 좋아하였고, 제나라에 벼슬을 구하려는 사람이 슬을 가지고 가서 궁문에 서 있기 3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니 꾸짖어 말하였습니다.
“내가 슬을 뜯으면 귀신도 오르내리게 할 수 있으니, 나의 슬 연주는 黃帝의 가락과 부합한다.”
▶ 齊王好竽(제왕호우) : 齊나라 왕이 竽(우)를 좋아하다. 우는 큰 笙簧. 《韓非子》 說 上篇에는 제나라 宣王이 竽를 좋아하였는데 3백 명이 일제히 불게 했다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제나라 왕이 좋아하지 않는 瑟을 가지고서 제나라에 벼슬을 구하는 이야기는 한유가 지어낸 것이라 한다. 《韓昌黎集》 蔣之翹의 주에 이를 두고 “비유가 매우 적절하다. 참으로 《戰國策》의 문장에 필적한다.”라고 칭찬하였다.
▶ 瑟 : 거문고와 비슷한 현악기, 25현 琴.
▶ 叱 : 꾸짖다.
▶ 軒轅氏 : 고대 五帝의 한 사람인 黃帝. '헌원'은 황제가 살았던 언덕 이름이나, 황제의 이름과 號로 쓰인다. 그의 신하 伶倫이 명을 받고 六律과 六呂를 정하였는데, 陽의 음을 율이라 하고, 陰의 음을 여라 한다《前漢書》律曆志.
客罵之曰:
“王好竽, 而子鼓瑟, 瑟雖工, 如王之不好何?”
누군가 꾸짖었습니다.
“왕께선 우를 좋아하시는데 그대는 슬을 연주했으니 슬 연주가 비록 공교롭다 해도 왕께서 좋아하지 않음을 어이하겠소?"
▶ 罵 : 꾸짖다.
▶ 子 : 그대,
▶ 鼓瑟 : 슬을 뜯다. 슬을 연주하다.
▶ 如王之不好何 : 왕이 좋아하지 않음을 어찌할 것인가? 여하'는 '어찌할 것인가?'의 뜻인데, 如와 何 사이에 목적어를 넣은 구문이다.
是所謂工於瑟而不工於求齊也.
이것이 소위 ‘슬 연주에는 뛰어나나, 제나라에서 벼슬을 구하기에 서툴렀다.’입니다.
▶ 求齊 : 제나라에서 벼슬을 구함.
今擧進士於此世, 求祿利行道於此世, 而爲文必使一世人不好, 得無與操瑟立齊門者比歟.
지금 그대는 當世에 進士가 되어 당세에서 벼슬을 구하고 도를 행하고자 하면서, 문장을 지음에 있어선 한결같이 세인이 좋아하지 않게 하니, 슬을 가지고 제나라 궁문 앞에 서 있음과 같지 않겠습니까?
▶ 求祿利 : 녹봉을 구하다, 즉 벼슬자리를 얻으려 하다.
▶ 得無與 ~ 比歟 : ~과 같지 않겠는가? 與는 ~와. 比는 같다. 歟는 疑問語氣辭.
文誠工, 不利於求, 求不得, 則怒且怨, 不知君子必爾爲不也.
문장이 실로 공교로워도 벼슬을 구함에는 이롭지 못하니, 구하다가 얻지 못하면 곧 노하고 원망하니, 군자로서 꼭 그렇게 해야 할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 求不得則怒且怨 : 구하여도 얻지 못하면 곧 노하고 원망한다. 이는 벼슬자리를 얻으려고 進士 시험에 응시하나, 문장이 시험관의 구미에 맞지 않아 낙방하면 자기의 문장 솜씨를 알아주지 못한다고 화내고 원망하게 된다는 말이다. 아마도 한유가 받은 진상의 편지에는, 자기의 문장이 인정받지 못함을 난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무지 탓으로 원망하는 내용이 씌어 있었던 듯하다.
▶ 必爾爲不 : 반드시 그래야 하는지 아니면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지. 爾는 然의 뜻. 이 말의 뜻은, 세상에서 벼슬을 구하려는 군자라면, 굳이 시험관이 요구하는 문장을 쓰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문장을 고집함으로써 시험에 떨어지고 그리하여 남을 원망함이 옳은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한유의 본심은 군자라면 마땅히 그 정도의 상식은 갖고 시험관이 알아줄 수 있는 문장을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데 있다.
故區區之心, 每有來訪者, 皆有意於不肖者也.
그러므로 구구한 마음으로 매양 찾아오는 이가 모두 못난 저에게 구하는 바가 있었습니다.
▶ 區區之心 : 區區한 마음. 區區는 작고 변변치 못한 모양.
▶ 有意 : 뜻하는 바가 있다. 구하는 바가 있다.
▶ 不肖者 : 못난 사람. 한유가 자기를 겸칭한 말.
略不辭讓, 遂盡言, 惟吾子諒察.
대개 사양치 않고 마침내 말을 다 하니, 선생께서 너그러이 살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 遂 : 드디어, 마침내
▶ 盡言 : 남김없이 다 말하다.
▶ 諒察 : 너그러이 생각하고 살펴주다.
해설
이 글은 唐 德宗 때, 馬山에 은거하던 陳商이란 사람에게 답한 편지이다. 진상은 학식이 풍부해 그를 찾아 배우는 사람이 많았으며, 후에 황제까지 소문을 듣고 조서를 내려 그에게 등용시험을 치르게 했다 한다.
그가 벼슬길에 오르기 전에는 몹시 난해한 문장을 즐겨 썼으며, 그 자신도 그러한 문장이 세상에 맞지 않음을 알고 한유에게 가르침을 청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한유는, 竿를 좋아하는 齊나라 왕에게 슬을 가지고 가서 벼슬을 구하는 사람의 설화를 비유로 들며, 그의 문장을 세상 사람들이 좋아할 스타일로 바꾸도록 권유하고 있다.
寓話의 수법을 구사하여 설득력을 높이고 있는 점은 先秦시대 諸子哲學의 문장기법을 연상케 해주며, 한유의 탁월한 문장 능력을 알게 한다.
다음은 작자미상의 해설이다.
以明理之文, 而求仕於當世, 不投時好, 如操瑟而立於齊門, 不能投合齊王之好竽.
이치를 밝히는 문장을 가지고 당세에 벼슬을 구한다면, 시속의 기호에 합치하지 않나니, 마치 비파를 잡고 제나라 문에 서 있으며, 제나라왕이 젓대를 좋아함에 투합하지 못함과 같다.
然君子之所守, 不隨時而爲之遷就.
그러나 군자가 고수하는 바는 시속을 따라서 그를 위해 옮기며 성취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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