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列傳

列傳권99-劉敬叔孫通列傳(유경숙손통열전)

耽古樓主 2023. 9. 4. 06:18




 

이篇은 의 초엽에 주요 관료였던 劉敬과 叔孫通의 合傳이다.

 




1. 劉敬

劉敬은 前漢 때 齊 사람으로 본래의 은 婁였는데漢高祖 때 長安으로 도읍을 정할 것을 주장하여 高祖가 이를 받아들이고 劉氏 성을 하사하여 劉敬이라 불리고 奉春君에 봉해졌다.
나중에 關內侯에 봉해졌고建信侯란 호를 받았다高祖가 白登에서 匈奴의 冒頓單于에게 패한 뒤 북방의 변란 때문에 괴로워할 때 화친정책을 제안하고 사신으로 가서 조약을 매듭지었다.

劉敬者,齊人也。
劉敬은 齊 사람이다.

漢五年,戍隴西,過洛陽,高帝在焉。
漢高帝 5(기원전 202), 隴西로 수자리를 가면서 낙양에 들렀는데高帝도 그곳에 있었다.

婁敬脫輓輅,衣其羊裘,見齊人虞將軍曰:
「臣願見上言便事。」
婁敬은 몰고 가던 수레의 횡목을 풀어 놓고 양가죽 갖옷을 입고 齊 출신 虞將軍을 뵙고 말하였다.
제가 황제를 뵙고 국가에 이로운 일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虞將軍欲與之鮮衣,婁敬曰:
「臣衣帛,衣帛見;
衣褐,衣褐見:
終不敢易衣。」
우장군이 누경에게 화려한 옷을 주려고 하자 누경이 말하였다.
제가 비단옷을 입고 있으면 비단옷을 입은 채로 폐하를 뵙고,
베옷을 입고 있으면 베옷을 입은 채로 뵙겠습니다.
절대 옷을 바꿔 입지 않겠습니다.”

於是虞將軍入言上。
이에 우장군이 안으로 들어가서 황제에게 고하였다.

上召入見,賜食。
황제가 누경을 불러들여 접견하고 음식을 하사하였다.

已而問婁敬,婁敬說曰:
「陛下都洛陽,豈欲與周室比隆哉?」
식사를 마치자누경에게 물으니 누경이 설명하였다.
폐하께서는 낙양에 도읍하려 하신다는데나라 왕실과 융성함을 견주려 하십니까?”

上曰:
「然。」
황제가 말하였다.
그렇다.”

婁敬曰:
「陛下取天下與周室異。
누경이 말하였다.
폐하께서 천하를 얻음은 주나라 왕실과 다릅니다.

周之先自后稷,堯封之邰,積德累善十有餘世。
주나라의 선조는 后稷으로부터 시작하는데임금이 그를 에 봉하니그곳에서 덕을 쌓고 선정을 베푼 지 10여 대가 지났습니다.

公劉避桀居豳。
公劉는 나라의 桀王을 피하여 에서 살았습니다.

太王以狄伐故,去豳,杖馬箠居岐,國人爭隨之。
의 太王은 오랑캐가 침략하매빈을 떠나 말채찍을 잡고 에서 살게 되었는데 백성이 앞을 다투어 그를 따랐습니다.

及文王為西伯,斷虞芮之訟,始受命,呂望、伯夷自海濱來歸之。
文王이 西伯이 되어 와 의 송사를 해결해주고비로소 천명을 받자 呂望과 伯夷가 바닷가에서 찾아와서 귀의하였습니다.

武王伐紂,不期而會孟津之上八百諸侯,皆曰紂可伐矣,遂滅殷。
武王이 殷紂王을 정벌할 때 기약하지 않았는데도 孟津에서 회맹한 8백 제후가 모두 주왕을 쳐야 한다고 말하매마침내 은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成王即位,周公之屬傅相焉,乃營成周洛邑,以此為天下之中也,諸侯四方納貢職,道裏均矣,有德則易以王,無德則易以亡。
成王이 즉위함에 周公 등의 무리가 보좌하여 洛邑에 成周를 세웠는데이곳은 천하의 중심이기 때문에사방의 제후가 조공을 바치기에 오는 길의 거리가 비슷하매덕이 있으면 왕 노릇 하기 쉬웠고덕이 없으면 망하기 쉬웠습니다.

凡居此者,欲令周務以德致人,不欲依阻險,令後世驕奢以虐民也。
무릇 낙읍에 도읍을 정함은 주나라가 덕으로써 천하 백성을 감화시키려 함이고험준한 지형을 믿고 후세가 교만과 사치로 백성을 학대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及周之盛時,天下和洽,四夷鄉風,慕義懷德,附離而并事天子,不屯一卒,不戰一士,八夷大國之民莫不賓服,效其貢職。
주나라가 흥성할 때에는 천하가 화합하고사방의 오랑캐가 바람에 쏠리듯이 의를 사모하고 덕을 흠모하며다 함께 依附하여 천자를 섬겼습니다.
한 사람의 병사도 주둔시키지 않고 한 사람의 병사도 싸우지 않고도팔방 대국의 민족들 가운데 복종하고 공물을 바치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及周之衰也,分而為兩,天下莫朝,周不能制也。
주나라가 쇠퇴하자나뉘어 西周와 東周로 되었고천하에 朝見하는 제후도 없었으며주나라도 그들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非其德薄也,而形勢弱也。
그들의 덕이 박함이 아니라형세가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今陛下起豐沛,收卒三千人,以之徑往而卷蜀漢,定三秦,與項羽戰滎陽,爭成皋之口,大戰七十,小戰四十,使天下之民肝腦涂地,父子暴骨中野,不可勝數,哭泣之聲未絕,傷痍者未起,而欲比隆於成康之時,臣竊以為不侔也。
지금 폐하께서는 의 豊邑에서 일어나서 3천 명의 군사를 모으고지름길로 진군하여 蜀漢을 석권하고三秦을 평정하고 項羽와 滎陽에서 교전하고成皐의 요새를 쟁탈하고자 70차례의 큰 전투와 40차례의 작은 전투를 치르시매천하 백성이 간과 뇌수를 땅에 쏟게 하고父子가 뼈를 들판에 뒹굴게 함이 이루 헤아릴 수 없고곡하며 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부상한 사람들이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는데成王과 康王 때와 융성함을 견주려 하시나은 삼가 같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且夫秦地被山帶河,四塞以為固,卒然有急,百萬之眾可具也。
한편의 땅은 산으로 에워싸이고 黃河를 끼고 있어서 사방의 요새를 險固로 삼으매갑자기 위급함이 있더라도 1백만의 군사를 갖출 수 있었습니다.

因秦之故,資甚美膏腴之地,此所謂天府者也。
의 옛 터전에 의지하여 매우 비옥한 땅을 자산으로 삼으면이것이 이른바 天賦의 곳간입니다.

陛下入關而都之,山東雖亂,秦之故地可全而有也。
폐하께서 入關하여 그곳에 도읍하신다면山東에 비록 난리가 나도 의 옛 땅을 온전하게 소유할 수 있겠습니다.

夫與人鬬,不搤其亢,拊其背,未能全其勝也。
대저 남과 싸우면서 목을 조르고 등을 치지 않으면 완전하게 이길 수 없습니다.

今陛下入關而都,案秦之故地,此亦搤天下之亢而拊其背也。」
그러하니 폐하께서 入關하여 도읍하고 의 옛 땅을 제압함이것이 천하의 목을 조르고 그 등을 치는 것입니다.”

▶ 漢五年 : 漢高帝 5년, 기원전 202년.
▶ 婁敬 : 劉敬. 前漢 齊 사람으로 漢高祖 때 長安으로 도읍을 정할 것을 주장하였다. 나중에 劉氏 성을 하사받아 劉敬이라 불렸다.
▶ 戍隴西 : 농서의 수자리. 戍는 수자리로 국경을 지키는 일 또는 그런 병사를 말하며, 隴西는 지금의 甘肅省 寧夏回族自治區 일대를 말한다.
▶ 輓輅 : 輓은 끌다. 輅는 수레의 끌채에 가로로 댄 나무.
▶ 便事 : 大事. 국가에 이로운 일.
▶ 鮮衣 : 화려한 의복.
▶ 褐 : 거친 베옷.
▶ 說 : 설득하다.
▶ 后稷 : 전설상의 주나라 姬씨의 조상이다. 神農과 더불어 중국에서 농업의 신으로 숭배되는 인물이다.
▶ 公劉 : 周나라 王朝의 건설자라고 이르는 后稷 棄의 증손자이자 不窋의 손자. 곧 鞠陶의 아들. 공유는 비록 戎狄의 땅에 가까이 살았으나 다시 后稷의 業을 일으켜서 백성이 넉넉하게 되었으므로 마땅한 땅을 잘 살펴서 豳谷에 나라를 세웠음.
▶ 太王 : 古公亶父. 성은 姬이고, 이름은 亶父이다. 商나라 시대 周族의 수장으로 古公이라고 불려 흔히 이름과 함께 古公亶父라고 한다. 뒷날 증손자인 武王이 太王으로 추존하여 周太王이라고도 불린다. 아버지는 公祖이고, 생모에 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太姜을 아내로 맞이하여 太伯과 虞仲, 季歷을 낳았다.
▶ 狄 : 고대 북방의 민족.
▶ 馬箠 : 말채찍.
▶ 西伯 : 서쪽 제후의 우두머리. 周文王은 주나라 첫 임금인 武王의 아버지로 西伯昌이다.
▶ 受命 : 하늘의 명령을 받다.
▶ 呂望 : 姜太公. 주나라 문왕, 무왕의 스승이자 장인이며 齊의 태공이 되었다.
▶ 伯夷 : 商나라 孤竹君의 아들.
▶ 殷紂王 : 은나라의 제31대 왕으로 마지막 군주이다. 달기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고 성격이 난폭하여 간언하는 사람을 그 자리에서 살해하였으며, 궁궐이 초라하다고 하여 화려하게 만들고, 술로 만든 호수를 만드는 酒池肉林에 국가예산을 낭비하였으며, 사람을 숯불에 태워 죽이는 炮烙之刑을 새로 제정하여 원성을 샀다고 전해진다.
▶ 成王 : 周成王. 주나라의 제2대 왕으로 성은 姬, 이름은 誦이다. 주무왕의 아들이다.
▶ 成周 : 成周城을 말한다.
▶ 貢職 : 贡赋(土貢과 세금); 贡品.
▶ 道裏 : =道里. 路程. 长度距离
▶ 王 : 왕이라 칭하다. 왕 노릇 하다.
▶ 四夷 : 고대에 중국이 인접 국가들을 얕잡아 일컫던 말로 東夷, 西戎, 南蠻, 北狄을 말한다.
▶ 鄉風 : 귀화하다. 귀순하다.
▶ 附離 : 附着. 의부
▶ 賓服: 賓=服(복종하다)
▶ 效 : 바치다. 진상하다.
▶ 分而為兩 : 전국시대에 西周가 西周와 東周의 소국으로 분열되었다.
▶ 朝 : 알현하다. 배알하다.
▶ 肝腦塗地 : 간장과 뇌수가 땅에 쏟아진다는 뜻으로 끔찍한 죽음을 통한 희생 또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바치는 모습을 뜻한다. 涂地는 진흙처럼 땅에 어지러이 흩어지다.
▶ 暴骨中野 : 들판에 뼈를 드러내놓다. 暴은 曝과 같다.
▶ 傷痍 : 부상하다. 상처.
▶ 成康之時 : 서주의 성왕과 강왕 때의 전성시대.
▶ 侔 : 가지런하다. 같다.
▶ 卒然 : 돌연히, 갑자기.
▶ 資 : ~에 의지하다.
▶ 天府 : 땅이 비옥하고 천연자원이 풍부한 지역. 자연적으로 요새를 이룬 땅.
▶ 關 : 函谷關.
▶ 搤 : 조르다.
▶ 亢 : 목. 목줄기.
▶ 拊 : 치다. 두드리다.
▶ 案 : 按과 통하여 제압하다.

高帝問群臣,群臣皆山東人,爭言周王數百年,秦二世即亡,不如都周。
高帝가 신하들에게 물으니신하들이 모두 山東 사람이매앞다투어 말하기를주나라는 수백 년 왕 노릇을 하였으나은 2대 만에 멸망하였으니 주나라의 낙양에 도읍함이 낫다고 하였다.

上疑未能決。
高祖는 주저하며 결정하지 못하였다.

及留侯明言入關便,即日車駕西都關中。
留侯가 入關함이 유리하다고 분명히 말함에 미쳐그날로 수레를 서쪽으로 몰아 關中에 도읍하였다.

於是上曰:
「本言都秦地者婁敬,『婁』者乃『劉』也。」
이에 高祖가 말하였다.
본래 땅에 도읍하자고 말한 자는 婁敬이다. ‘가 바로 이다.”

賜姓劉氏,拜為郎中,號為奉春君。
劉氏 성을 하사하고 郎中에 제수하여 奉春君이라고 불렀다.

▶ 張良 : 漢 高祖 유방의 명신. 자는 子房, 시호는 文成이다. 陳勝·吳廣의 난이 일어났을 때 유방의 진영에 속하였으며, 후일 項羽와 유방이 만난 '홍문의 회'에서 유방의 위기를 구하였다. 선견지명이 있는 책사로서 漢의 서울을 秦의 고지인 관중으로 정하고자 유경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 婁者乃劉 : 婁(lóu)는 劉(liú)와 발음이 비슷하여 高祖가 자신의 성인 劉를 하사한 것이다.

漢七年,韓王信反,高帝自往擊之。
高祖 7년에 韓王 信이 반란을 일으키자 高祖가 몸소 가서 공격하였다.

至晉陽,聞信與匈奴欲共擊漢,上大怒,使人使匈奴。
晉陽에 도착하여 漢王 신이 匈奴와 함께 을 공격하려 함을 듣자高祖가 크게 노하여 흉노에 사신을 보냈다.

匈奴匿其壯士肥牛馬,但見老弱及羸畜。
흉노는 그들의 장사와 살찐 牛馬를 숨기고 노약자와 야윈 가축만을 보여주었다.

使者十輩來,皆言匈奴可擊。
열 명의 사신이 돌아와 모두 말하기를흉노를 공격할 만하다고 하였다.

上使劉敬復往使匈奴,還報曰:
「兩國相擊,此宜夸矜見所長。
今臣往,徒見羸瘠老弱,此必欲見短,伏奇兵以爭利。
愚以為匈奴不可擊也。」
高祖가 유경을 다시 흉노에 사신으로 보내니돌아와서 보고하였다.
두 나라가 서로 싸우려 함에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신이 가서 단지 지치고 여윈 노약자만을 보았으니이것은 필시 단점을 보이고 奇兵을 숨겨두었다가 승리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저는 흉노를 공격하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是時漢兵已踰句注,二十餘萬兵已業行。
이때 漢軍은 이미 句注山을 넘어 20여만 군사가 행군하고 있었다.

上怒,罵劉敬曰:
「齊虜!
以口舌得官,今乃妄言沮吾軍。」
高祖가 노하여 유경을 욕하였다.
齊 땅의 못난 놈아!
주둥이를 놀려 벼슬을 얻더니 이제는 망령된 말로 나의 군대를 가로막는구나.”

械系敬廣武。
유경을 형구에 채워서 廣武에 가두었다.

遂往,至平城,匈奴果出奇兵圍高帝白登,七日然後得解。
이어서 계속 秦軍하여 平城에 도착함에흉노는 과연 기병을 내어 白登山에서 高祖를 포위하였고, 7일 후에 포위를 풀었다.

高帝至廣武,赦敬,曰:
「吾不用公言,以困平城。
吾皆已斬前使十輩言可擊者矣。」
高祖는 광무로 가서 유경을 사면하고 말하였다.
내가 그대의 말을 채용하지 않으매 평성에서 곤경에 빠졌구려.
내가 이미 전에 흉노를 공격하여도 좋다고 말한 열 명의 사신을 모두 참수했소.”

乃封敬二千戶,為關內侯,號為建信侯。
이에 유경에게 2천 호에 봉하고 關內侯로 삼고 建信侯라고 불렀다.

▶ 漢七年 : 漢高帝 7년, 기원전 200년.
▶ 韓王信 : 韓王 韓信. 성은 姬, 씨는 韓, 이름은 信이다. 전국시대 韓 襄王의 후손으로, 漢의 高祖 유방에 의하여 韓王으로 봉해졌으나, 흉노와 화친하려 함을 漢이 오해하자, 흉노의 군대를 이끌고 漢의 변경을 쳐들어왔다. <史記 권93 韓信盧綰列傳>
▶ 見 : 現과 같다. 드러내다.
▶ 羸 : 여위고 허약하다. 수척하다.
▶ 誇矜 : 자랑하고 칭찬함.
▶ 羸瘠 : 지치고 여위다.
▶ 愚 : 자기의 겸칭.
▶ 虜 : 남을 경멸하여 하는 말.
▶ 械系 : 범인에게 형구를 채우다.

 

高帝罷平城歸,韓王信亡入胡。
高帝가 평성에서 군대를 거두어 돌아왔고漢王 信은 도망하여 흉노 땅으로 들어갔다.

當是時,冒頓為單于,兵彊,控弦三十萬,數苦北邊。
이때 冒頓이 單于가 되고 군사가 강하여 활 잘 쏘는 군사 30만으로 자주 북방 변경을 괴롭혔다.

上患之,問劉敬。
高祖가 이것을 근심하며 유경에게 물었다.

劉敬曰:
「天下初定,士卒罷於兵,未可以武服也。
冒頓殺父代立,妻群母,以力為威,未可以仁義說也。
獨可以計久遠子孫為臣耳,然恐陛下不能為。」
유경이 대답하였다.
천하가 이제 막 평정되어 군사들이 전투에 지쳐 있으매무력으로는 복종시킬 수 없습니다.
묵특은 아비를 죽이고 선우가 되어아비의 첩들을 아내로 삼았고무력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으니인의로는 설득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의 자손을 영원히 의 신하로 삼는 계책이 가능할 뿐이나폐하께서 아마 그것을 행하지 못하실 터입니다.”

上曰:
「誠可,何為不能!
顧為柰何?」
高祖가 말하였다.
진실로 옳다면 무엇을 할 수 없겠소!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오?”

劉敬對曰:
유경이 대답하였다.

「陛下誠能以適長公主妻之,厚奉遺之,彼知漢適女送厚,蠻夷必慕以為閼氏,生子必為太子。代單于。
폐하께서 만일 본처 소생의 맏공주를 묵특에게 시집을 보내고 후한 예물을 내리면그는 이 본처 소생의 공주를 보내고 예물이 후함을 알고오랑캐로서도 필시 공주를 존중하여 閼氏로 삼을 터이고아들을 낳으면 반드시 태자로 삼아 선우를 잇게 할 터입니다.

何者? 貪漢重幣。
왜냐하면 의 많은 예물을 탐하기 때문입니다.

陛下以歲時漢所餘彼所鮮數問遺,因使辯士風諭以禮節。
폐하께서는 철마다 에는 남아도나 그들에게는 드문 물건으로 자주 위문하고그때마다 변사를 보내 예절로써 은연중에 가르치십시오.

冒頓在,固為子婿;
死,則外孫為單于。
묵특이 살아 있으면 확고히 폐하의 사위가 되고,
죽으면 외손이 선우가 되는 것입니다.

豈嘗聞外孫敢與大父抗禮者哉?
외손이 감히 할아버지와 抗禮함을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兵可無戰以漸臣也。
군대가 싸우지 않고도 점차 신하로 만들 수 있습니다.

若陛下不能遣長公主,而令宗室及後宮詐稱公主,彼亦知,不肯貴近,無益也。」
만일 폐하께서 맏공주를 보내실 수 없어서종실 또는 후궁을 공주라고 사칭하면 그도 눈치채고 귀하게 여겨 친근하지 않을 터이므로 이익이 없습니다.”

高帝曰:
「善。」
高祖가 대답하였다.
좋다

欲遣長公主。
맏공주를 보내려고 하였다.

呂后日夜泣,曰:
「妾唯太子、一女,柰何棄之匈奴!」
呂太后가 밤낮으로 울면서 말하였다.
첩에게는 오직 태자와 딸 하나가 있는데어찌하여 흉노에 버리려 하십니까!”

上竟不能遣長公主,而取家人子名為長公主,妻單于。
高祖는 결국 맏공주를 보내지 못하고家人子를 뽑아 맏공주라고 이름하며 선우에게 시집보냈다.

使劉敬往結和親約。
유경을 사신으로 보내 화친의 약속을 맺게 하였다.

▶ 控弦 : 활을 잘 쏘는 병사.
▶ 數 : 자주. 누차.
▶ 罷 : 疲와 통하여 고달프다.
▶ 冒頓 : 冒頓單于를 匈奴로서 일컫는 이름. 匈奴의 冒頓單于는 일찍이 북방을 통일하고 秦將 蒙恬에게 빼앗긴 흉노의 옛 땅을 수복하였으며, 漢을 위협하였다.
▶ 誠 : 만약 정말이라면.
▶ 顧 : 그런데.
▶ 適 : 嫡과 같다. 正妻. 본처.
▶ 閼氏 : 漢代에 匈奴族이 君主의 正室을 일컫던 말. 閼은 흉노의 왕비.
▶ 歲時 : 일년 四季. 철마다.
▶ 風諭 : 권고하다. 일깨우다. 風은 諷과 통한다.
▶ 大父 : 祖父. 여기서는 外祖父를 말한다.
▶ 抗禮 : 대등한 지위나 예의로써 대하다.
▶ 宗室 : 皇族.
▶ 家人子 : 황손의 처첩. 宮女.

劉敬從匈奴來,因言
유경이 흉노에서 돌아와서 말하였다.

「匈奴河南白羊、樓煩王,去長安近者七百里,輕騎一日一夜可以至秦中。
흉노의 河南 白羊王과 樓煩王은 長安에서 가깝게는 7백 리 정도에 떨어져 있지 않으니輕騎로 하루 밤낮을 달리면 秦中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秦中新破,少民,地肥饒,可益實。
진중은 최근 파괴되어 백성이 적지만 토지가 비옥하매 백성을 더 채울 수 있습니다.

夫諸侯初起時,非齊諸田,楚昭、屈、景莫能興。
대저 제후가 처음 일어남에제의 田氏·초의 昭氏·屈氏·景氏가 아니면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今陛下雖都關中,實少人。
지금 폐하께서 비록 관중에 도읍하셨으나 사실 사람이 적습니다.

北近胡寇,東有六國之族,宗彊,一日有變,陛下亦未得高枕而臥也。
북쪽으로는 흉노와 가까이 접하고동쪽으로는 6국의 종족이 있는데그들 종족이 강하여 어느 날 변란이 있으면폐하도 베개를 높이 베고 누워있을 수 없을 터입니다.

臣願陛下徙齊諸田,楚昭、屈、景,燕、趙、韓、魏後,及豪桀名家居關中。
신이 바라건대폐하께서 의 전씨 일족과 의 소씨·굴씨·경씨 및 연···위의 후손 및 호걸과 명문가를 관중으로 이주시켜 살게 하십시오.

無事,可以備胡;
諸侯有變,亦足率以東伐。
무사할 때는 흉노를 대비할 수 있고,
제후에 변란이 있을 때는그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정벌할 수 있습니다.

此彊本弱末之術也」。
이것은 根本을 튼튼히 하고 枝葉을 약화하는 방법입니다.”
上曰:
「善。」
高祖가 말하였다.
좋소.”

乃使劉敬徙所言關中十餘萬口。
이에 유경을 보내어 그가 말한 대로 관중에 10여 만을 이주시켰다.

▶ 諸侯初起時 : 陳勝의 난이 일어났을 때 따라 일어난 여섯 제후국.
▶ 齊諸田 : 齊 田氏 일가.
▶ 昭、屈、景 : 楚의 왕족이었던 昭, 屈, 景의 세 성씨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들을 관장하는 것이 三閭大夫의 임무였다.
▶ 關中 : 關中平原은 북쪽의 蕭關, 동쪽의 函谷關, 남쪽의 武關, 서쪽의 大散關 사이를 가리키는 지명으로, 주나라와 秦의 발상지이다. 현재의 중국 산시성 중부와 허난성 서단을 포함한다.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관문은 관중과 화베이 평원을 분리하는 동쪽의 函谷關이었다.
▶ 諸侯 : 한나라 초기에 봉하였던 유씨 성이 아닌 제후왕.
▶ 強本弱末 : 중앙의 권력을 강화하고 지방의 세력을 약화함을 말한다.

 

2. 叔孫通

叔孫通은 秦 말기 전한초기의 관료로 薛縣 사람이다
처음에는 의 二世皇帝를 섬겨 博士를 지내다가 위태로움을 알고 달아나 項梁과 項羽를 섬겼다가 劉邦에게 귀순하여 박사가 되고稷嗣君으로 불렸다
유방이 천하를 차지한 뒤에 의 유생들을 불러 나라의 예법을 다시 만들 것을 설득하여 漢의 예악과 조정의 예법을 새롭게 제정하였다
高祖 7년(기원전 200년長樂宮이 완공되자 제후와 신하들이 예법에 맞게 조회를 하도록 주도하여 太常에 임명되었다
후에 太子太傅가 되었고高祖에게 태자를 바꾸지 말라고 간하였다
惠帝 때 다시 太常으로 宗廟儀法을 제정하였다.

사마천은 “叔孫通은 세상에 잘 쓰여지기를 희망하여 자신의 임무를 찾아내어 예법의 제정에 힘쓰고또한 시세의 변화에 따라 나아가고 물러나 마침내 漢 유학의 宗師가 되었다.”라고 평하였다.

叔孫通者,薛人也。
叔孫通은 나라 薛縣 사람이다.

秦時以文學徵,待詔博士。
나라 때 文學으로 부름을 받고 待詔博士가 되었다.

數歲,陳勝起山東,使者以聞,二世召博士諸儒生問曰:
「楚戍卒攻蘄入陳,於公如何?」
몇 년 뒤에 陳勝이 산동에서 일어나자 사자가 그것을 보고하니二世는 박사와 儒生들을 불러 물었다.
의 戍卒이 蘄縣을 공격하고 陳縣까지 이르렀다 하니공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博士諸生三十餘人前曰:
「人臣無將,將即反,罪死無赦。
願陛下急發兵擊之。」
박사와 유생 30여 명이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신하된 자는 병사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병사를 가짐은 곧 반역이라 죄는 사형에 해당하고 사면이 없습니다.
폐하께서 급히 군사를 일으켜 그들을 치시기 바랍니다.”

二世怒,作色。
2세가 노하여 얼굴색이 변하였다.

叔孫通前曰:
「諸生言皆非也。
숙손통이 앞으로 나아가 말하였다.
유생들의 말이 모두 옳지 않습니다.

夫天下合為一家,毀郡縣城,鑠其兵,示天下不復用。
천하가 통일되어 한 집이 됨에각 군현의 성을 허물었으며무기를 녹여 천하에 보이기를다시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且明主在其上,法令具於下,使人人奉職,四方輻輳,安敢有反者!
또 위로는 밝은 군주가 계시고아래로는 법령이 갖추어져 있어서사람들은 각자 직업에 충실하게 하니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데어찌 감히 반란을 일으키는 자가 있겠습니까!

此特群盜鼠竊狗盜耳,何足置之齒牙閒。
이것은 단지 도둑떼로서 쥐도둑개도둑일 뿐이니어찌 말할 가치가 있겠습니까?

郡守尉今捕論,何足憂。」
郡守들과 郡尉들이 지금 잡아들여 죄를 다스리고 있으니어찌 족히 걱정하겠습니까?”

二世喜曰:
「善。」
2세가 기뻐하며 말하였다.
좋소.”

▶ 待詔 : 황제의 명령을 기다림.
▶ 聞 : 보고하다.
▶ 二世 : 秦 2세 황제. 진시황의 막내아들 胡亥.
▶ 戍卒 : 수비병. 변경을 지키던 군졸.
▶ 作色 : (화가 나서) 안색이 변하다.
▶ 鑠 : 녹이다.
▶ 輻輳 : 모여들다. 집결하다.
▶ 特 : 단지.
▶ 何足 : 무슨 ~할 가치가 있는가.
▶ 何足置之齒牙 : 말할 것이 못된다. 置之齒牙는 掛齒, 언급하다. 제기하다.
▶ 捕論 : 잡아서 죄를 따지다.

 

盡問諸生,諸生或言反,或言盜。
유생들에게 모두 물어보니혹 반란이라 말하고혹 도적이라고 말하였다.

於是二世令御史案諸生言反者下吏,非所宜言。
이에 2세는 御史에게 조사하게 하여유생 중 반란이라고 말한 자를 형리에게 넘기니적합한 말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諸言盜者皆罷之。
도적이라고 말한 사람은 모두 그대로 두었다.

乃賜叔孫通帛二十匹,衣一襲,拜為博士。
이에 숙손통에게 비단 20필과 옷 한 벌을 하사하고 박사로 임명하였다.

叔孫通已出宮,反舍,諸生曰:
「先生何言之諛也?」
숙손통이 궁전을 나와 숙사로 돌아오자 유생들이 말하였다.
선생은 어찌 그렇게 아첨하는 말을 하셨습니까?”

通曰:
「公不知也,我幾不脫於虎口!」
숙손통이 말하였다.
공들은 모르오나는 거의 虎口에서 벗어나지 못할 뻔하였소!”

乃亡去,之薛,薛已降楚矣。
그러고는 도망하여 薛縣으로 갔으나 설현은 이미 에 투항한 뒤였다.

及項梁之薛,叔孫通從之。
項梁이 설현에 이르자 숙손통은 項梁을 따랐다.

敗於定陶,從懷王。
項梁이 定陶에서 패하자 懷王을 따랐다.

懷王為義帝,徙長沙,叔孫通留事項王。
懷王이 義帝가 되어 長沙로 옮기자 숙손통은 남아서 項王를 섬겼다.

漢二年,漢王從五諸侯入彭城,叔孫通降漢王。
漢 2(기원전 205), 漢王이 다섯 제후를 이끌고 彭城에 들어오자 숙손통은 漢王에게 투항하였다.

漢王敗而西,因竟從漢。
漢王이 패하여 서쪽으로 물러가자 끝까지 漢王을 따랐다.

▶ 案 : 審問.
▶ 一襲 : 一套. 한 벌
▶ 反 : 返과 같다.
▶ 諛 : 아첨하다. 아부하다.
▶ 楚懷王 : 楚義帝(? ~ 기원전 206년) 熊心. 서초의 황제이며 춘추전국시대 楚懷王의 서얼 후손이었다. 楚의 군주, 기원전 206년에 項羽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 項王 : 項羽.
▶ 漢二年 : 漢王 2년, 기원전 205년.

 

叔孫通儒服,漢王憎之;
乃變其服,服短衣,楚製,漢王喜。
숙손통이 유생의 옷을 입으매漢王이 몹시 싫어하였다.
이에 짧은 옷으로 갈아입었는데의 복식이라 漢王이 기뻐하였다.

叔孫通之降漢,從儒生弟子百餘人,然通無所言進,專言諸故群盜壯士進之。
숙손통이 에 항복함에유생과 제자 1백여 명을 거느렸으나 숙손통은 추천을 말함이 없었고오로지 과거의 도적떼와 壯士를 천거하였다.

弟子皆竊罵曰:
「事先生數歲,幸得從降漢,今不能進臣等,專言大猾,何也?」
제자들이 모두 마음속으로 숙손통을 욕하였다.
선생을 섬긴 지 수년다행히도 선생을 따라 에 항복하였는데그런데도 우리를 천거하지 않고 오로지 크게 교활한 자만을 천거하니 무슨 까닭인가?”

叔孫通聞之,乃謂曰:
「漢王方蒙矢石爭天下,諸生寧能鬬乎?
故先言斬將搴旗之士。
諸生且待我,我不忘矣。」
숙손통이 듣고 말하였다.
漢王이 지금 矢石을 무릅쓰고 천하를 다투는데여러분이 어찌 싸울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선 敵將을 베고 敵旗를 빼앗을 수 있는 병사를 천거하였소.
여러분은 잠시 나를 기다리시오내가 잊지 않겠소.”

漢王拜叔孫通為博士,號稷嗣君。
漢王이 숙손통을 박사에 임명하고 稷嗣君이라고 불렀다.

▶ 進 : 추천.
▶ 大猾 : 대단히 교활한 사람.
▶ 蒙矢石 : 화살과 돌을 무릅쓰다.
▶ 搴旗 : 깃발을 빼앗다. 搴(건): 빼내다. 뽑아내다.

 

 

漢五年,已并天下,諸侯共尊漢王為皇帝於定陶,叔孫通就其儀號。
高祖 5(기원전 202),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제후가 함께 定陶에서 漢王을 황제로 추대하였는데숙손통이 禮儀와 名號를 맡았다.

高帝悉去秦苛儀法,為簡易。
高帝가 지나치게 엄한 의 의례를 모두 없애고 간편하고 쉽게 하였다.

群臣飲酒爭功,醉或妄呼,拔劍擊柱,高帝患之。
신하들은 술을 마시면 공을 다투고취하면 함부로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칼을 뽑아 기둥을 치기도 하였으므로 高祖는 이를 걱정하였다.

叔孫通知上益厭之也,說上曰:
「夫儒者難與進取,可與守成。
臣願徵魯諸生,與臣弟子共起朝儀。」
숙손통은 황제가 이것을 갈수록 싫어함을 알고 황제를 설득하였다.
대저 선비는 나아가 천하를 빼앗음에 함께하기 어렵지만守成에는 함께할 수 있습니다.
신이 원하건대魯 땅의 선비들을 불러 신의 제자들과 함께 조정의 의례를 起草하겠습니다.”

高帝曰:
「得無難乎?」
高祖가 말하였다.
어렵지 않겠소?”

叔孫通曰:
「五帝異樂,三王不同禮。
禮者,因時世人情為之節文者也。
故夏、殷、周之禮所因損益可知者,謂不相復也。
臣願頗采古禮與秦儀雜就之。」
숙손통이 말하였다.
五帝는 음악을 달리하였고三王은 예법을 달리하였습니다.
예법은 시대와 인정에 따라 제정하는 예절 규범입니다.
··의 禮法은 그 起因을 증감하였음을 알 수 있으니중복되지 않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원하건대古禮를 많이 採用하고 의 의례와 배합하여 만들겠습니다.”

上曰:
「可試為之,令易知,度吾所能行為之。」
高祖가 말하였다.
시험 삼아 만들어보시오내가 실행할 수 있는지 고려하여알기 쉽도록 하시오.”

▶ 漢五年 : 漢高祖 5년, 기원전 202년.
▶ 儀號 : 의식. 예절.
▶ 苛 : 지나치게 엄하다.
▶ 朝儀 : 조정의 儀禮.
▶ 五帝 : <史記>의 五帝本記에서는 黃帝, 顓頊, 帝嚳, 堯, 舜을 가리킨다.
▶ 三王 : 중국 古代의 세 임금. 곧 夏의 禹王과 殷의 湯王과 周의 文王<또는 武王>을 일컫는 말.
▶ 節文 : 예절의 규정.
▶ 度 : 헤아리다.

於是叔孫通使徵魯諸生三十餘人。
이에 숙손통이 가서 의 유생 30여 명을 徵召하였다.

魯有兩生不肯行,曰:
의 선비 두 명이 가려 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公所事者且十主,皆面諛以得親貴。
공이 섬긴 사람이 거의 10명의 군주인데모두 面前에서 아첨하여 친분과 존귀함을 얻었습니다.

今天下初定,死者未葬,傷者未起,又欲起禮樂。
지금 천하가 갓 평정되매죽은 사람은 아직 장례도 치르지 않았고부상한 사람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는데또 禮樂을 起草하려고 하십니다.

禮樂所由起,積德百年而後可興也。
예악은 시작되고 나서 1백 년 동안 積德한 후에야 흥기하는 것입니다.

吾不忍為公所為。
우리는 당신이 하는 바를 차마 할 수 없습니다.

公所為不合古,吾不行。
당신이 하는 일은 옛 예법에 부합하지 아니하매우리는 가지 않겠습니다.

公往矣,無汙我!」
당신은 가시어 우리를 더럽히지 마십시오!”

叔孫通笑曰:
「若真鄙儒也,不知時變。」
숙손통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그대들은 참으로 고루한 선비라 시대의 변화를 모르는구려.”

遂與所徵三十人西,及上左右為學者與其弟子百餘人為綿蕞野外。
마침내 징집한 30명의 유생들과 함께 서쪽으로 돌아왔다황제의 좌우에서 배우는 사람들과 숙손통의 제자 1백여 명이 함께 야외에서 띠풀로 사람을 만들었다.


習之月餘,叔孫通曰:
「上可試觀。」
한 달여 예식을 연습하고 숙손통이 말하였다.
폐하께서 시험해보십시오.”

上既觀,使行禮,曰:
「吾能為此。」
황제가 보고나서 예식을 행하게 하고 말하였다.
짐도 이것은 할 수 있소.”

乃令群臣習肄,會十月。
이에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예식을 익혀서 10월 조회에 모이기로 하였다.

漢七年,長樂宮成,諸侯群臣皆朝十月。
高祖 7長樂宮이 완성되자 제후와 신하들이 모두 10월에 조현하였다.

儀:
先平明,謁者治禮,引以次入殿門,廷中陳車騎步卒衛宮,設兵張旗志。
의례를 시작하였다.
날이 밝기 전에 謁者가 예를 주관하여순서에 따라 殿門에 들어오게 하였으며궁궐 마당에는 전차·기병·보병과 근위병을 배열하고병기를 설치하고 旗幟를 세웠다.

傳言
「趨」。
알자가 말하였다.
나와라

殿下郎中俠陛,陛數百人。
궁전 아래에 계단을 끼고 郎中들이 도열하였는데 계단마다 수백 명이었다.

功臣列侯諸將軍軍吏以次陳西方,東鄉;
文官丞相以下陳東方,西鄉。
공신·列侯·장군·軍吏들은 서열에 따라 서쪽에 열을 지어 동쪽을 향하였고,
문관인 丞相 이하는 동쪽에 열을 지어 서쪽을 향하였다.

▶ 且 : 거의 ~에 가깝다.
▶ 若 : 너. 너희들.
▶ 綿蕞 : 야외에서 예를 학습시킬 때 띠를 베어 묶어서 세워놓고 尊卑의 차례를 표시함을 말한다.
▶ 習肄 : 학습. 연습.
▶ 漢七年 : 漢高祖 7년, 기원전 200년.
▶ 長樂宮 : 西漢의 궁전. 장락궁은 漢 高祖가 모후를 받들기 위하여 세운 궁전이다.
▶ 謁者 : 군주에게 보고를 담당하는 자.
▶ 治 : 주관한다.
▶ 陳 : 배열.
▶ 旗志 : =旗幟. 깃발.
▶ 趨 : 종종걸음 치는 것을 말하며 공경의 뜻을 나타낸다.
▶ 俠 : 夾과 통하여 끼다.
▶ 鄉 : 向과 통하여 향하다.

 

大行設九賓,臚傳。
大行은 아홉 명의 빈객을 모셔 황제의 명령을 전달하게 하였다.

於是皇帝輦出房,百官執職傳警,引諸侯王以下至吏六百石以次奉賀。
이때 황제가 龍輦을 타고 방에서 나오니백관이 깃발을 들어 경계함을 알리며제후왕 이하 봉록이 6백석인 관리까지 인도하여 차례대로 황제께 하례를 올렸다.

自諸侯王以下莫不振恐肅敬。
제후왕 이하는 두려워 떨며 엄숙하고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至禮畢,復置法酒。
의식이 끝나자 다시 주연을 示範한다.

諸侍坐殿上皆伏抑首,以尊卑次起上壽。
대전에 앉은 시종이 모두 엎드려 있다가머리를 들고 존비의 서열에 따라 일어나서 황제에게 축수하였다.

觴九行,謁者言
「罷酒」。
술잔이 아홉 순배가 돌자謁者가 말하였다.
주연을 마친다!”

御史執法舉不如儀者輒引去。
어사는 법대로 거행하되의례를 준수하지 않은 사람은 즉시 끌고 나갔다.

竟朝置酒,無敢讙譁失禮者。
조회를 마치고 주연을 베푸는 동안 감히 떠들거나 失禮하는 사람이 없었다.

於是高帝曰:
「吾乃今日知為皇帝之貴也。」
이에 高帝가 말하였다.
나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황제의 존귀함을 알았소.”

乃拜叔孫通為太常,賜金五百斤。
그러고는 숙손통을 太常에 임명 황금 5백 근을 하사하였다.

▶ 大行 : 빈객을 관장하는 대신.
▶ 九賓 : 임금이 우대하는 아홉의 손님. 公ㆍ侯ㆍ伯ㆍ子ㆍ男ㆍ孤ㆍ卿ㆍ大夫ㆍ士의 일컬음.
▶ 臚傳 : 전하다. 알리다.
▶ 職 : 幟와 통하여 깃발.
▶ 法酒 : 조정의 정식 연회.
▶ 上壽 : 장수를 축하하다.
▶ 觴 : 술잔. 술을 권하다.
▶ 讙譁 : 시끌시끌하다.

 

叔孫通因進曰:
「諸弟子儒生隨臣久矣,與臣共為儀,願陛下官之。」
숙손통이 이 기회를 틈타 진언하였다.
제자인 유생들이 신을 따른 지가 오래되었으며신과 함께 의례를 만들었으니 폐하께서 그들에게 관직을 내려주십시오.”

高帝悉以為郎。
高帝가 모두 郎官으로 삼았다.

叔孫通出,皆以五百斤金賜諸生。
숙손통이 出宮하여 5백 근의 황금을 모두 유생들에게 나누어주었다.

諸生乃皆喜曰:
「叔孫生誠聖人也,知當世之要務。」
유생들이 모두 기뻐하며 말하였다.
숙손 선생님은 참으로 성인이시라 당대의 중요한 일을 모두 알고 계신다.”

漢九年,高帝徙叔孫通為太子太傅。
한 高祖 9(기원전 198), 高帝가 숙손통을 太子太傅로 삼았다.

漢十二年,高祖欲以趙王如意易太子,叔孫通諫上曰:
「昔者晉獻公以驪姬之故廢太子,立奚齊,晉國亂者數十年,為天下笑。
秦以不蚤定扶蘇,令趙高得以詐立胡亥,自使滅祀,此陛下所親見。
今太子仁孝,天下皆聞之;
呂后與陛下攻苦食啖,其可背哉!
陛下必欲廢適而立少,臣願先伏誅,以頸血汙地。」
高祖 12(기원전 195), 高祖가 趙王 如意를 태자로 바꾸려 하자 숙손통이 황제에게 간언하였다.
옛날에 晉獻公은 驪姬 때문에 태자를 폐하고 奚齊를 태자로 세우매나라는 수십 년 동안 혼란스러웠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은 扶蘇를 일찍 태자로 정하지 않으매趙高가 황제의 명을 사칭하여 胡亥를 태자로 세워 스스로 제사를 끊어지게 하였는데이것은 폐하께서 친히 보신 일입니다.
지금 태자께서 어질고 효도함을 천하 사람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呂后께서 폐하와 함께 힘들게 생활을 하셨는데 어찌 저버리겠습니까!
폐하께서 굳이 적자를 폐하고 어린 아들을 세우시려면먼저 신을 죽여 頸血로 땅을 더럽히십시오.”

高帝曰:
「公罷矣,吾直戲耳。」
高帝가 말하였다.
공은 그만하시오짐이 단지 농담하였을 뿐이오.”

叔孫通曰:
「太子天下本,本一搖天下振動,柰何以天下為戲!」
숙손통이 말하였다.
태자는 천하의 근본으로 근본이 한번 흔들리면 천하가 진동하는데어떻게 천하를 가지고 농담하십니까!”

高帝曰:
「吾聽公言。」
高帝가 말하였다.
짐은 공의 말을 따르겠소.”

及上置酒,見留侯所招客從太子入見,上乃遂無易太子志矣。
황제가 주연을 베풂에留侯가 초청한 빈객들이 태자를 따르며 알현함을 보고高祖는 마침내 태자를 바꾸려는 생각을 접었다.

高帝崩,孝惠即位,乃謂叔孫生曰:
「先帝園陵寢廟,群臣莫習。」
高帝가 붕어하고 孝惠帝가 즉위하자 叔孫生에게 말하였다.
선제의 園陵과 寢廟의 예절에 관하여 신하들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徙為太常,定宗廟儀法。
숙손통을 太常으로 옮겨 종묘의 예법을 제정하게 하였다.

及稍定漢諸儀法,皆叔孫生為太常所論箸也。
의 여러 예법이 점차 갖추어지니모두 叔孫生이 태상이 되어 판정하고 지은 것이다.

▶ 要務 : 중요한 일.
▶ 漢九年 : 漢高祖 9년, 기원전 198년.
▶ 漢十二年 : 漢高祖 12년. 기원전 195년.
▶ 趙王如意 : 劉如意를 말한다. 유방의 셋째 아들로 戚姬의 소생이다.
▶ 戚姬 : 高祖의 寵姬로, 趙王 如意를 낳았다. 高祖가 태자 유영을 폐하고 如意를 태자로 삼으려고 하였다. 呂后가 張良의 계책을 써서 商山四皓를 불러 태자 劉盈의 빈객으로 삼으니, 결국 태자를 바꾸지 않게 되었다.
▶ 晉獻公 : 晋의 21대 군주이며 휘는 詭諸이다. 군주권을 위협하는 곡옥백의 자손들을 주살하고 종가의 권위를 확립하였으며, 霍 · 魏 · 虞 · 虢 등을 병탄하여 秦을 강성하게 만들었으나, 헌공 5년(기원전 672년), 驪戎을 정벌하여 첩으로 여희를 얻었고. 말년에 첩 여희와 그 아들 해제를 총애하여 해제의 즉위에 방해되는 다른 아들들을 탄압했다가 그 반작용으로 진문공 즉위 전까지 나라가 혼란에 빠지는 단초를 만들었다.
▶ 蚤 : 早와 통하여 일찍.
▶ 滅祀 : 조상의 제사가 단절되다.
▶ 攻苦食啖 : 힘들게 생활함을 말한다.
▶ 適 : 嫡長子. 正室이 낳은 장자. 適은 嫡과 같다.
▶ 直 : 단지.
▶ 振動 : 震動과 같다.
▶ 留侯 : 張良을 말한다.
▶ 所招客 : 呂后가 張良의 계책을 써서 商山四皓를 불러 태자 劉盈의 빈객으로 삼으니, 결국 태자를 바꾸지 않게 되었다. 商山四皓는 秦 말기 시황제의 학정을 피하여 상산에 은둔하였던 네 노인으로 東園公ㆍ夏黃公ㆍ綺里季ㆍ甪里先生을 이르는데, 나이가 80을 넘어 머리가 희었으므로 四皓라 칭하였다.
▶ 園陵 : 왕릉.
▶ 寢廟 : 宗廟. 제사를 지내는 집.
▶ 稍 : 점차.
▶ 箸 : 著와 통하여 이루다.

 

孝惠帝為東朝長樂宮,及閒往,數蹕煩人,乃作複道,方筑武庫南。
孝惠帝가 동쪽에 있는 장락궁에서 조회하거나 간혹 들름에자주 통행을 금지하여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므로 複道를 만들기로 하였는데 武器庫의 남쪽에 만들었다.

叔孫生奏事,因請閒曰:
「陛下何自筑複道高寢,衣冠月出游高廟?
高廟,漢太祖,柰何令後世子孫乘宗廟道上行哉?」
叔孫生이 정사를 보고하며남몰래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어째서 高帝의 침묘에 복도를 쌓고의관을 매월 高廟로 옮기려 합니까?
고묘는 漢 太祖의 廟堂인데어찌하여 후손이 종묘의 길 위로 수레를 타고 다니게 할 수 있습니까?”

孝惠帝大懼,曰:
「急壞之。」
효혜제가 매우 두려워하며 말하였다.
급히 그것을 헐어버리시오.”

叔孫生曰:
「人主無過舉。
今已作,百姓皆知之,今壞此,則示有過舉。
願陛下原廟渭北,衣冠月出游之,益廣多宗廟,大孝之本也。」
숙손통이 말하였다.
군주에게는 과오가 없어야 합니다.
지금 복도를 이미 지었음을 백성이 모두 알고 있으매지금 이것을 헐어버린다면 과오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 渭水의 북쪽에 별도로 사당을 만들고高帝의 의관을 매월 그리로 옮기도록 하십시오종묘를 더 넓히고 많이 지음은 大孝의 근본입니다.

上乃詔有司立原廟。
효혜제가 이에 有司에게 조서를 내려 별도의 사당을 세우도록 하였다.

原廟起,以複道故。
高帝의 별도 사당을 세움은 복도 때문이었다.

孝惠帝曾春出游離宮,叔孫生曰:
「古者有春嘗果,方今櫻桃孰,可獻,願陛下出,因取櫻桃獻宗廟。」
효혜제가 일찍이 봄에 離宮으로 놀러 나갔을 때 叔孫生이 말하였다.
옛날에는 봄에 햇과일을 바쳤습니다지금 앵두가 익어 바칠 만하고폐하께서 놀러 나오셨으니 앵두를 가져다 종묘에 바치시기 바랍니다.”

上乃許之。
황제가 허락하였다.

諸果獻由此興。
온갖 과일을 종묘에 바치는 일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 東朝長樂宮 : 동쪽의 長樂宮의 呂太后를 알현하다. 당시 혜제는 未央宮에 거처하였으며 여태후는 長樂宮에 기거하였다.
▶ 間往 : 간혹 들르다.
▶ 蹕(필) : 제왕이 행차할 때 통행을 금하는 것. 길을 치우다.
▶ 復道 : 天橋를 말한다. 이층 구름다리.
▶ 武庫 : 무기고.
▶ 高寢 : 高帝의 사당.
▶ 過舉 : 잘못된 거동.
▶ 原廟 : 다시 지은 사당. 본래의 사당 이외의 별도로 지은 사당.
▶ 離宮 : 황제가 거동길에 머무는 별궁.
▶ 孰 : 熟과 같다. 익다.

太史公曰:
語曰
「千金之裘,非一狐之腋也;
臺榭之榱,非一木之枝也;
三代之際,非一士之智也。」
信哉!
태사공은 말한다.
옛말에 천금 나가는 갖옷은 여우 한 마리의 겨드랑이털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높은 누대의 서까래는 한 나무의 가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三代의 태평성대도 한 사람의 지혜로써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맞는 말이다!

夫高祖起微細,定海內,謀計用兵,可謂盡之矣。
무릇 高祖는 미천한 신분에서 일어나 천하를 평정하였으니 계책과 용병술이 지극하였다고 할 만하다.

然而劉敬脫輓輅一說,建萬世之安,智豈可專邪!
그러나 劉敬은 수레를 끄는 횡목을 풀어 놓고 한 번 유세하여 만세의 안정을 세웠으니지혜를 어찌 한 사람이 전유할 수 있겠는가!

叔孫通希世度務,制禮進退,與時變化,卒為漢家儒宗。
叔孫通은 세상에 영합하여 자신의 임무를 찾아내어 예법의 제정에 힘쓰고또한 시세의 변화에 따라 나아가고 물러나서 마침내 나라 유학의 宗師가 되었다.

「大直若詘,道固委蛇」,蓋謂是乎?
참으로 곧은 것은 굽은 듯하고는 원래 구불구불하다.’라고 하였는데 아마도 이를 말함인가?”

▶ 腋 : 겨드랑이.
▶ 榭 : 台 위에 지은 집.
▶ 榱 : 서까래.
▶ 三代 : 夏, 殷, 周.
▶ 微細 : 미천한 신분.
▶ 輓輅 : 輓은 끌다. 輅은 수레의 끌채에 가로로 댄 나무.
▶ 希世 : 정세의 변천을 보아 가며 행동하다. 迎合世俗;世所罕有
▶ 宗 : 宗師. 사람들이 높이 우러러보는 스승.
▶ 大直若詘 : 참으로 곧은 것은 굽은 것 같다. 노자 도덕경을 인용한 것이다.
“大成若缺,其用不弊。
크게 완성된 것은 缺落된 듯하나, 그 사용에 폐단이 없다.
大盈若沖,其用不窮。
크게 참은 빈 듯하나 그 사용에 다함이 없다.
大直若屈,大巧若拙,大辯若訥。
크게 곧음은 굽은 듯하고, 큰 기교는 서툰 듯하고, 유창한 웅변은 더듬거리는 듯하다.
躁勝寒靜勝熱。
분주하게 움직이면 추위를 이기고 고요히 있으면 더위를 이긴다.
清靜為天下正。
그러므로 맑고 고요함이 천하의 바른 것이다.”
<참고> 列子 8.說符篇
▶ 委蛇 : =逶迤. 구불구불함. 구불구불 멀리 이어진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