袁盎鼂錯列傳은 前漢의 관료인 袁盎과 鼂錯(:晁錯)에 대한 合傳이다.
吳楚七國의 난이 일어나자 조조와 평소 원수지간이었던 袁盎이 참소하여 鼂錯를 장안 저잣거리에서 참수하게 하였다.
1.袁盎
원앙은 楚 사람으로 자는 絲이다. 西漢 시대의 대신으로 개성이 강직하고 재간과 담력이 있었다.
呂後 집정 시에 呂祿의 家臣이었지만 漢文帝가 즉위한 후에 그의 형 袁噲가 천거하여 中郎이 되었다.
그는 조정에서 儒家의 禮治思想으로 통치할 것을 강조하였고, 서슴없이 直諫하여 漢文帝의 노여움을 사서 隴西都尉, 吳相으로 좌천되기도 하였다.
漢景帝가 즉위한 후에 吳楚七國의 반란이 일어나자 晁錯를 주살할 것을 간청하여 제후의 원망을 잠재웠다.
그 공으로 太常이 되고, 吳에 사신으로 가서 반란을 평정한 후에 楚相이 되었다.
그 후 梁孝王을 황제의 후사로 결정하는 일을 중지하라고 간언을 올렸다가 安陵의 郭門 밖에서 양효왕이 보낸 자객의 손에 죽임을 당하였다.
袁盎者,楚人也,字絲。
袁盎은 楚 사람으로 자는 絲이다.
父故為群盜,徙處安陵。
아버지는 이전에 떼도둑이었는데, 安陵으로 옮겨와서 살았다.
高后時,盎嘗為呂祿舍人。
高后 때 원앙이 呂祿의 舍人이었던 적이 있었다.
及孝文帝即位,盎兄噲任盎為中郎。
孝文帝가 즉위하자 원앙의 형 噲가 원앙을 추천하여 中郎이 되었다.
絳侯為丞相,朝罷趨出,意得甚。
絳侯가 丞相이 되었는데 조회를 마치고 종종걸음으로 나오는데 매우 득의양양하였다.
上禮之恭,常自送之。
황제도 공손하게 예우하며 항상 친히 배웅하였다.
袁盎進曰:
「陛下以丞相何如人?」
원앙이 진언하였다.
"폐하께서는 승상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上曰:
「社稷臣。」
황제가 말하였다.
"社稷臣이오.“
盎曰:
「絳侯所謂功臣,非社稷臣,社稷臣主在與在,主亡與亡。
원앙이 말하였다.
“絳侯는 이른바 공신이지 사직의 중신은 아닙니다. 사직의 중신이란 군주가 살아 있으면 함께 살아 있고 군주가 죽으면 함께 죽습니다.
方呂后時,諸呂用事,擅相王,劉氏不絕如帶。
呂后 때 呂氏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제멋대로 서로 왕이 되어 劉氏는 띠처럼 겨우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是時絳侯為太尉,主兵柄,弗能正。
이때 絳侯는 太尉로서 병권을 장악하고도 바로잡지 못하였습니다.
呂后崩,大臣相與共畔諸呂,太尉主兵,適會其成功,所謂功臣,非社稷臣。
여후가 붕어하자 대신들이 서로 힘을 합하여 여씨들을 배반함에 태위는 병권을 장악하고 있어서 때마침 성공하였으매, 소위 功臣이지 사직의 重臣은 아닙니다.
丞相如有驕主色。
승상이 군주에게 교만한 기색을 보입니다.
陛下謙讓,臣主失禮,竊為陛下不取也。」
폐하께서는 겸양하시나, 신하와 군주가 예를 잃은 것으로, 삼가 폐하께서 취하실 태도가 아니라고 여깁니다.”
後朝,上益莊,丞相益畏。
그 후로, 조회함에 황제가 점차 위엄을 보였고, 승상은 점차 두려워하였다.
已而絳侯望袁盎曰:
「吾與而兄善,今兒廷毀我!」
그 후 絳侯는 원앙을 책망하며 말하였다.
“나는 너의 형과 친한데도, 네 놈이 조정에서 나를 비방하다니!”
盎遂不謝。
원앙은 사과하지 않았다.
▶ 故 : 종전. 과거.
▶ 高後 : 呂太后. 呂雉. 漢高祖 劉邦의 皇后.
▶ 孝文帝 : 漢文帝. 유방의 넷째 아들 劉恒. 여태후 8년(기원전 180년), 여태후가 죽고 주발 · 진평 · 제애왕 · 성양경왕 등이 여씨 세력을 토벌하고 代王 劉恒을 한문제로 세웠다.
▶ 呂祿 : 고황후의 작은 오라버니 여석지의 아들이며 여칙, 여종의 아우로 전한 혜제 7년(기원전 188년) 혜제가 죽고 고황후가 태황태후로 臨朝稱制하면서 여태, 여산과 함께 남북군을 통제하여 여씨 일족의 專制에 일조하였다.
▶ 舍人 : 家臣.
▶ 任 : 보증하여 추천함.
▶ 降侯 : 周勃을 말한다. 전한 초기의 武將이자, 유방의 부하이다. 패현 사람이다. 유방 궐기 후 함께하여 秦 정벌에 공을 세워서 絳侯에 봉하여졌다. 呂后가 죽은 뒤 陳平 등과 함께 여씨 일족을 주살하였다.
▶ 趨 : 공경의 표시로 종종걸음치다.
▶ 意得甚 : 득의양양하다. 으스대며 만족해하다.
▶ 上 : 皇上. 漢文帝.
▶ 社稷 : 地神과 穀神. 옛날 군주는 토지신과 穀神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후세에 국가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 主在與在 : 황제와 공존함.
▶ 主亡與亡 : 황제와 공멸함.
▶ 用事 : 정권을 장악함.
▶ 不絕如帶 : 끈처럼 끊어지지 않을 정도의 상황. 劉氏 왕조의 명맥이 위험에 처해있다는 뜻.
▶ 主兵柄 : 兵權을 장악함. 柄은 권력.
▶ 正 : 바로잡다.
▶ 適會 : 적당한 때를 만나다.
▶ 莊 : 위엄이 있음.
▶ 望 : 원한.
▶ 而 : 너.
▶ 兒 : 놈. (경멸의 의미)
及絳侯免相之國,國人上書告以為反,徵系清室,宗室諸公莫敢為言,唯袁盎明絳侯無罪。
絳侯가 승상에서 면직되어 封國으로 돌아감에, 봉국의 백성이 上書하여 모반한다고 고발하매, 絳侯를 소환하여 감옥에 구금하였으나, 종실과 대신들이 감히 그를 위하여 변호하지 않았는데, 오직 원앙이 絳侯에게 죄가 없다고 밝혔다.
絳侯得釋,盎頗有力。
絳侯가 석방됨은 원앙이 자못 힘썼기 때문이었다.
絳侯乃大與盎結交。
絳侯가 이에 원앙과 交遊를 맺었다.
淮南厲王朝,殺辟陽侯,居處驕甚。
淮南厲王 劉長이 입조하여 辟陽侯 審食其를 살해하며 행동거지가 매우 교만하였다.
袁盎諫曰:
「諸侯大驕必生患,可適削地。」
원앙이 간언하였다.
“제후가 지나치게 교만하면 필시 환난이 생기니, 적당히 봉지를 삭감함이 좋겠습니다.”
上弗用。
황제가 채용하지 않았다.
淮南王益橫。
회남왕이 더욱 횡포해졌다.
及棘蒲侯柴武太子謀反事覺,治,連淮南王,淮南王徵,上因遷之蜀,轞車傳送。
棘蒲侯 柴武의 태자 柴奇가 모반한 사건이 발각되어 치죄하니, 회남왕도 연루되매 회남왕을 부르고 황제가 그를 蜀으로 유배하려, 죄수를 호송하는 마차에 실어 보내도록 하였다.
▶ 之國 : 자기의 封地로 돌아가다. 之는 도달하다.
▶ 徵系清室 : 소환되어 감옥에 갇히다. 系는 수감되다. 清室은 관리를 전문으로 가두는 감옥.
▶ 結交 : 교제하다.
▶ 淮南厲王 : 淮南 厲王 劉長(기원전 199년 ~ 기원전 174년)은 전한 초기의 제후왕으로 高祖 유방의 7남이다. 한문제의 異母弟이다.
▶ 殺辟陽侯 : 문제 3년(기원전 177년) 평소 심이기를 어머니의 원수로 여겨 원망하던 회남왕이 입조하여 심이기를 찾아가 만나기를 청하였다. 심이기는 회남왕을 만나러 나왔다가 회남왕이 휘두른 철추에 맞았고, 회남왕의 종자 魏敬이 목을 베었다.<사기 권 118. 淮南衡山列傳>
▶ 居處 : 평상시 사람을 대하는 처세.
▶ 益橫 : 거만하고 횡포함이 더해짐.
▶ 棘蒲侯柴武太子 : 柴奇를 말한다. 한 문제 6년(기원전 174년), 극포후 시무의 태자 柴奇가 회남여왕 유장의 반란에 가담했다가 발각되어 주살되었다.<사기 권 118. 淮南衡山列傳>
▶ 治 : 조사하여 처벌하다.
▶ 遷 : 貶謫. 유배하다. 귀양 보내다.
▶ 轞車 : 죄인을 호송하는 수레.
袁盎時為中郎將,乃諫曰:
「陛下素驕淮南王,弗稍禁,以至此,今又暴摧折之。
淮南王為人剛,如有遇霧露行道死,陛下竟為以天下之大弗能容,有殺弟之名,柰何?」
원앙은 당시에 中郎將이었는데 간언하였다.
“폐하께서는 평소에 회남왕이 교만하고 여기고도, 조금도 금하지 않으시매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또 강경하게 그를 꺾어버리려 하십니다.
회남왕은 강직한 사람인데, 도중에 감기에 걸려 죽는 일이 생기면 폐하께서는 천하의 대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결국 포용하지 못하여 아우를 죽였다는 오명을 들을 터인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上弗聽,遂行之。
황제가 듣지 않고 유배를 보냈다.
淮南王至雍,病死,聞,上輟食,哭甚哀。
회남왕이 雍에 이르러 병사하매, 황제가 듣고 식음을 폐하고, 곡하기를 매우 슬프게 하였다.
盎入,頓首請罪。
원앙이 入朝하여 머리를 조아려 죄를 청하였다.
上曰:
「以不用公言至此。」
황제가 말하였다.
“공의 諫言을 듣지 않으매, 이 지경에 이르렀소.”
盎曰:
「上自寬,此往事,豈可悔哉!
且陛下有高世之行者三,此不足以毀名。」
원앙이 말하였다.
“황상께서는 마음을 넓게 가지십시오. 이것은 지난 일이니 어찌 후회할 일이겠습니까!
또 폐하께서 세상에서 고결한 행적을 가짐이 셋이니, 이 일이 폐하의 명성을 훼손시키지 못할 터입니다.”
上曰:
「吾高世行三者何事?」
황제가 말하였다.
“짐이 세상에서 고결한 행적이 셋이라니, 무슨 일이오?”
盎曰:
「陛下居代時,太后嘗病,三年,陛下不交睫,不解衣,湯藥非陛下口所嘗弗進。
원앙이 말하였다.
"폐하께서 代에 계실 때, 太后께서 병들어 3년 동안 앓은 적이 있었는데, 폐하께서는 주무시지 않고 옷을 벗지 아니하고 탕약을 폐하의 입으로 맛본 것이 아니면 올리지 않으셨습니다.
夫曾參以布衣猶難之,今陛下親以王者修之,過曾參孝遠矣。
무릇 曾參은 평민의 신분으로도 어려워하였는데, 그러나 폐하께서는 친히 王者의 몸으로도 실천하셨으니, 증삼의 효도를 초월함이 멉니다.
夫諸呂用事,大臣專制,然陛下從代乘六傳馳不測之淵,雖賁育之勇不及陛下。
여씨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대신들이 정치를 독단하였으나, 폐하께서는 代에서 여섯 역마를 타고 不測之淵으로 달려왔으니 비록 孟賁과 夏育 같은 용사라고 할지라도 폐하에게는 미치지 못할 터입니다.
陛下至代邸,西向讓天子位者再,南面讓天子位者三。
폐하께서 代王의 客館에 도착하여, 서쪽을 향하여 天子의 자리를 사양하심이 두 번이었고, 남면하여 천자의 자리를 사양하심이 세 번이었습니다.
夫許由一讓,而陛下五以天下讓,過許由四矣。
무릇 許由는 한 번 천하를 사양하였고, 폐하께서는 다섯 번 천하를 사양하였으니, 허유보다 네 번이나 더 많습니다.
且陛下遷淮南王,欲以苦其志,使改過,有司衛不謹,故病死。」
또 폐하께서 회남왕을 유배 보내어 그의 뜻에 고통을 주어 잘못을 고치려 하셨는데, 담당 관리가 신중하지 못하매 병사한 것입니다.”
▶ 暴 : 돌연.
▶ 摧折 : 좌절시키다. 꺽다.
▶ 霧露 : 風寒. 감기.
▶ 淮南王至雍,病死 : 회남왕을 태운 수레가 雍에 당도하였을 때, 옹현의 현령이 수레에 봉한 문을 여니 회남왕이 죽어 있었고 그 사실을 황제에게 보고하였다.<사기 권 118. 淮南衡山列傳>
▶ 輟 : 중지하다.
▶ 頓首 : 머리를 땅에 닿도록 숙이고 절하다.
▶ 居代 ; 유항이 황제가 되기 전에 代王이었다.
▶ 太后 : 漢文帝 劉恆의 모친 薄太后.
▶ 交睫 : 눈을 붙이다. 잠들다. 睫(첩): 깜작이다.
▶ 曾參 : 공자의 제자로 효도로 이름이 높았다.
▶ 布衣 : 평민.
▶ 修 : 실행하다.
▶ 乘傳 : 역마. 역참에서 사용하는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
▶ 賁育 : 孟賁과 夏育을 말한다. 孟賁은 力士로 맨손으로 살아 있는 소의 뿔을 뽑았다고 한다. 夏育은 衛 사람으로 1천 鈞을 들 수 있고 소꼬리를 뽑을 수 있었다고 한다.
▶ 邸 : 客館.
▶ 許由 : 중국 고대의 隱者. 許由는 堯임금의 선양을 거절하면서 귀를 더럽혔다 하여 潁水에서 귀를 씻었다.
▶ 有司 : 담당관리. 벼슬아치.
於是上乃解,曰:
「將柰何?」
이에 황제가 마음을 풀고 말하였다.
“장차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盎曰:
「淮南王有三子,唯在陛下耳。」
원앙이 말하였다.
“회남왕에게 아들 셋이 있는데, 오직 폐하께 달려있습니다.”
於是文帝立其三子皆為王。
이에 문제는 그 세 아들을 모두 왕으로 봉하였다.
盎由此名重朝廷。
원앙이 이 일로 말미암아 조정에서 명성을 크게 떨쳤다.
袁盎常引大體慨。
원앙은 항상 大體를 인용하되 慷慨가 있었다.
宦者趙同以數幸,常害袁盎,袁盎患之。
환관 趙談이 여러 차례 황제의 총애를 받았는데, 항상 원앙을 해치려 하매, 원앙이 그것을 우려하였다.
盎兄子種為常侍騎,持節夾乘,說盎曰:
「君與鬬,廷辱之,使其毀不用。」
원앙의 형의 아들 袁種은 常侍騎로서 符節을 지니고 황제의 곁에서 호위하였는데 원앙에게 권고하였다.
“숙부님께서 더불어 싸움에, 조정에서 그를 모욕하여 그의 비방이 쓰이지 않도록 하십시오.”
孝文帝出,趙同參乘,袁盎伏車前曰:
「臣聞天子所與共六尺輿者,皆天下豪英。
今漢雖乏人,陛下獨奈何與刀鋸餘人載!」
孝文帝가 외출함에 조담이 參乘하였는데 원앙이 수레 앞에 엎드리며 말하였다.
“신이 듣기에, 천자께서 육척의 수레에 함께 타는 사람은 모두 천하의 호걸과 영웅이라고 합니다.
비록 漢에 인재가 없으나, 폐하께서 어찌하여 환관 나부랭이와 함께 수레를 타십니까!”
於是上笑,下趙同。
이에 황제가 웃으며 조담을 내리게 하였다.
趙同泣下車。
조담이 눈물을 흘리며 수레에서 내렸다.
文帝從霸陵上,欲西馳下峻阪。
孝文帝가 霸陵 위에서 서쪽의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수레를 몰고 내려가려고 하였다.
袁盎騎,并車擥轡。
원앙이 말을 타고 접근하여 수레를 끄는 말의 고삐를 잡았다.
上曰:
「將軍怯邪?」
황제가 말하였다.
“장군은 겁이 나는가?”
盎曰:
「臣聞千金之子坐不垂堂,百金之子不騎衡,聖主不乘危而徼幸。
今陛下騁六騑,馳下峻山,如有馬驚車敗,陛下縱自輕,柰高廟、太后何?」
원앙이 말하였다.
“신이 듣기에, 천금을 가진 집의 아들은 마루 끝에 앉지 아니하고, 백금을 가진 집의 아들은 누대의 난간에 걸터앉지 않으며, 성군은 위험한 것을 타고서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폐하께서 여섯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몰아 험준한 산비탈을 달려 내려가려고 하시는데, 만일 말이 놀라 수레가 부서지면 폐하 자신의 몸은 가볍게 보시더라도 高廟와 太后를 어찌하시겠습니까?”
上乃止。
황제가 이에 중지하였다.
▶ 淮南王有三子 : 淮南衡山列傳에는 아들이 네 명으로 되어 있다. “효문제 8년(서기전 172년), 황제는 회남왕을 불쌍하게 여겨 모두 일곱 또는 여덟 살에 불과한 회남왕의 아들 4명을 모두 侯로 봉하였다. 劉安을 阜陵侯, 劉勃을 安陽侯, 劉賜를 陽周侯, 劉良을 東城侯로 각각 봉하였다.”<사기 권118. 淮南衡山列傳>
▶ 大體 : 중요한 이치. 大局的 도리를 뜻한다.
▶ 趙同 : 당시 환관이었던 趙談. 司馬遷의 아버지의 이름이 談이었으므로 諱(:높은 사람의 이름)를 피하기 위하여 趙同이라고 하였다.
▶ 以數幸 : 자주 총애를 받다. 數는 ‘자주 삭’. 幸은 총애.
▶ 兄子種 : 형의 아들인 袁種. 조카 원종.
▶ 常侍騎 : 황제를 시종하는 騎士.
▶ 節 : 符節.
▶ 夾乘 : 황제의 좌우에서 호위를 함.
▶ 說 : 설득하다. 권고하다.
▶ 參乘 : 驂乘. 높은 사람을 모시고 陪乘. 경호원
▶ 刀鋸餘人 : 환관을 말한다. 궁형을 받은 사람. 刀鋸은 칼과 톱.
▶ 峻阪 : 몹시 가파른 언덕.
▶ 攬轡 : 말고삐를 잡아당기다. 轡는 고삐.
▶ 坐不垂堂 : (기왓장이 떨어지거나 하면 위험하므로) 처마 밑에 가깝게 앉지 않다. 垂堂은 마루 끝.
▶ 騎衡 : 누대의 난간에 걸터 앉다.
▶ 徼幸 : 僥倖과 같다.
▶ 騑 : 곁마. 마차 옆에 따라가는 말.
▶ 如 : 만약.
▶ 敗 : 부서지다.
▶ 高廟 : 漢高祖 劉邦의 廟.
上幸上林,皇后、慎夫人從。
황제가 上林苑에 행차하였을 때 竇皇后와 愼夫人도 따라갔다.
其在禁中,常同席坐。
그들은 궁중에 있을 때 항상 나란히 앉았다.
及坐,郎署長布席,袁盎引卻慎夫人坐。
앉을 때가 되어 郎署長이 자리를 배치하자, 원앙이 신부인의 좌석을 뒤로 밀어놓았다.
慎夫人怒,不肯坐。
신부인이 노하여 자리에 앉지 않았다.
上亦怒,起,入禁中。
황제 또한 노하여 일어나서 궁중으로 돌아가 버렸다.
盎因前說曰:
「臣聞尊卑有序則上下和。
원앙은 이 때문에 황제 앞으로 가서 설득하였다.
“신이 듣기에, 尊卑에 질서가 있어야 上下가 화목하다고 합니다.
今陛下既已立后,慎夫人乃妾,妾主豈可與同坐哉!
지금 폐하께서는 이미 황후를 책봉하셨으매, 신부인은 첩이니 첩과 正妻가 어찌 함께 나란히 앉겠습니까!
適所以失尊卑矣。
바로 尊卑의 분별을 잃는 것입니다.
且陛下幸之,即厚賜之。
또 폐하께서 신부인을 총애하신다면 그녀에게 후하게 상을 내리십시오.
陛下所以為慎夫人,適所以禍之。
폐하께서 신부인을 위함이 바로 신부인에게 재앙이 되는 까닭입니다.
陛下獨不見『人彘』乎?」
폐하께서 유독 ‘인간 돼지’를 모르십니까?”
於是上乃說,召語慎夫人。
이에 황제가 기뻐하며 신부인을 불러 원앙의 말을 알려주었다.
慎夫人賜盎金五十斤。
이에 신부인은 원앙에게 황금 50근을 하사하였다.
▶ 幸 : 황제가 수레를 타고 행차함을 말한다.
▶ 上林 : 上林苑. 秦과 漢의 황제가 사냥을 하던 곳. 지금의 陝西省 藍田縣 서쪽.
▶ 皇后 : 竇皇后.
▶ 慎夫人 : 漢文帝 劉恆의 첩.
▶ 禁中 : 궁중.
▶ 引卻 : 뒤로 밀어놓다.
▶ 適 : 바로. 마침.
▶ 人彘 : 인간 돼지. 漢高祖는 태자 劉盈이 자신이 총애하던 戚夫人이 낳은 趙王 劉如意만 못하다고 여겨 유영을 폐하고 유如意를 태자로 세우고자 하였으나 張良의 계책으로 태자를 바꾸지 못하였다. 후에 高祖가 죽고 惠帝 유영이 즉위하자 呂太后는 유如意를 수도로 불러들여 독살하고 척부인은 손발을 자르고 귀와 눈을 멀게 하여 돼지우리에서 살게 하여 人彘(:인간 돼지)로 만들었다. <사기 권9 呂太后本紀>
▶ 說 : 悅과 같다. 기뻐하다.
▶ 語 : 알리다.
然袁盎亦以數直諫,不得久居中,調為隴西都尉。
그러나 원앙이 여러 차례 直諫했기 때문에 오래 조정에 머물지 못하고 隴西 都尉로 좌천되고 말았다.
仁愛士卒,士卒皆爭為死。
원앙은 병사에게 인자하고 자애로웠으매, 병사들은 모두 앞다투어 죽으려 했다.
遷為齊相。
齊의 재상으로 승진하였다.
徙為吳相,辭行,種謂盎曰:
「吳王驕日久,國多姦。
今茍欲劾治,彼不上書告君,即利劍刺君矣。
南方卑溼,君能日飲,毋何,時說王曰毋反而已。
如此幸得脫。」
吳의 재상으로 옮겼고, 작별인사하고 吳로 떠남에, 조카인 袁種이 원앙에게 말하였다.
“吳王의 교만함이 오래되었고, 나라에는 간사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죄상을 들추어내고 처벌하려 한다면, 저들은 폐하께 상서하여 고하지 않으면, 날카로운 검으로 숙부님을 찌를 터입니다.
남방은 지대가 낮고 습한 곳이니, 숙부님께서는 그냥 날마다 술이나 드시고, 정사는 일절 거론하지 마시고, 가끔 오왕에게 조정을 배반하지 말라고 권고만 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하여 화를 면하기를 바라십시오.”
盎用種之計,吳王厚遇盎。
원앙이 원종의 계책을 따르니, 오왕이 원앙을 후하게 대접하였다.
▶ 中 : 조정을 말한다.:
▶ 遷 : 여기서는 승진을 말한다.
▶ 吳王 : 劉濞. 劉邦의 형 劉仲의 아들이다. 高祖 12년(기원전 195년) 吳王에 봉해졌다. 吳楚七國의 난을 일으켰다.
▶ 苟 : 만약.
▶ 劾治 : 들추어내어 처벌하다.
▶ 彼不上書告君,即利劍刺君矣: 即은 부사로 쓰여 긍정이나 강조를 나타내는 “곧…이다” “…하면 곧”을 뜻한다. “非此即彼”[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다]가 좋은 예이다.
▶ 卑溼 : 지대가 낮고 습하다.
▶ 毋何 : 일에 대하여 관여하지 않음.
盎告歸,道逢丞相申屠嘉,下車拜謁,丞相從車上謝袁盎。
원앙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승상 申屠嘉를 만남에, 수레에서 내려 배알하였으나, 승상은 수레 위에서 원앙에게 답례하였다.
袁盎還,愧其吏,乃之丞相舍上謁,求見丞相。
원앙이 집으로 돌아오되 자기의 부하 관리에게 부끄러웠으매, 승상의 관저로 가서 명함을 올리고 승상을 뵙기를 청하였다.
丞相良久而見之。
승상은 한참 지나서야 접견하였다.
盎因跪曰:
「願請閒。」
원앙이 인하여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사람들을 물리쳐주십시오.”
丞相曰:
「使君所言公事,之曹與長史掾議,吾且奏之;
即私邪,吾不受私語。」
승상이 말하였다.
“만일 그대가 할 말이 公事이거든 해당 부서에 가서 長史나 아전들과 상의하시오. 내가 황제께 보고하겠소.
만일 사적인 것이라면 나는 사적인 말을 듣지 않겠소.”
袁盎即跪說曰:
「君為丞相,自度孰與陳平、絳侯?」
원앙은 곧 무릎을 꿇은 채 설득하였다.
“상공께서는 승상으로 계시는데, 자신을 헤아리기를 陳平, 絳侯와 비교하여 누가 더 낫습니까?”
丞相曰:
「吾不如。」
승상이 말하였다.
“내가 그들만 못합니다.”
袁盎曰:
「善,君即自謂不如。
원앙이 말하였다.
“좋습니다. 승상께서는 스스로 그들만 못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夫陳平、絳侯輔翼高帝,定天下,為將相,而誅諸呂,存劉氏;
君乃為材官蹶張,遷為隊率,積功至淮陽守,非有奇計攻城野戰之功。
대저 진평과 絳侯는 高帝를 보좌하여 천하를 평정하고, 將相이 되어 여씨들을 주살하여 유씨를 보존하였는데, 승상께서는 재관의 궁노수로서 隊長으로 승진하고, 공을 쌓아 淮陽의 郡守가 되었을 뿐, 기이한 계책으로 성을 공격하여 야전의 공을 세운 것이 아닙니다.
且陛下從代來,每朝,郎官上書疏,未嘗不止輦受其言,言不可用置之,言可受採之,未嘗不稱善。
何也?
또 폐하께서 代에서 오신 이래 조회할 때마다, 郎官이 상주서를 올리면 가마를 멈추고 그들의 의견을 청취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의견이 채용할 만하지 않으면 버려두고, 수용할 만하면 채택하고 칭찬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則欲以致天下賢士大夫。
이런 방법으로 천하의 현명한 선비를 招致하려 하였습니다.
上日聞所不聞,明所不知,日益聖智;
君今自閉鉗天下之口而日益愚。
폐하께서는 날마다 듣지 못하신 바를 들으시고 몰랐던 바를 명확하게 아시게 되어, 날이 갈수록 지혜를 더하시나, 승상께서는 스스로 천하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여 날로 우매해지고 있습니다.
夫以聖主責愚相,君受禍不久矣。」
대저 성군이 우매한 재상을 질책하매 승상께서 재앙을 받음이 오래지 않겠습니다.”
丞相乃再拜曰:
「嘉鄙野人,乃不知,將軍幸教。」
승상이 이에 再拜하고 말하였다.
“제가 비루하고 미개한 사람이라 알지 못한 것을 장군께서 다행히 가르쳐주셨습니다.”
引入與坐,為上客。
이끌어 들여 자리를 함께하고 상객으로 삼았다.
▶ 申屠嘉 : 前漢 梁 사람으로 처음에 劉邦을 따라 項羽를 공격하여 都尉가 되었다. 惠帝 때 淮陽守를 지냈다. 文帝 때 御史大夫로 옮기고 丞相에 임명되어 故安侯에 봉해졌다.
[史記列傳] 권96 張丞相列傳
▶ 請間 : 사람들을 물리치기를 청하다.
▶ 使 : 만일.
▶ 之曹 : 담당 관서에 가다.
▶ 掾 : 아전. 속관.
▶ 即 : 만일.
▶ 私語 : 비밀히 이야기하다.
▶ 度 : 헤아리다. 생각하다.
▶ 孰與 : ~과 비교하여 어떠한가?
▶ 陳平 : 前漢의 정치가로 처음에는 項羽를 섬겼으나, 훗날 高祖를 섬겨 都尉가 되었고, 呂太后가 죽은 후 주발과 힘을 합하여 여씨 일족의 반란을 평정하였다.
▶ 絳侯 : 주발. 前漢의 명신. 시호는 武侯公. 沛縣 사람으로 高祖에 봉사하여 천하 평정의 공을 세우고, 絳侯에 봉하여졌다.
▶ 輔翼 : 보좌하다.
▶ 材官蹶張 : 용감하고 힘이 센 재관 부대의 弓弩手. 材官은 용감하고 힘이 센 병사로 구성된 부대. 蹶張은 蹶張弩(발로 밟는 쇠뇌)를 다루는 무관.
▶ 隊率(대수) : 隊長. 고대에는 백 명이 隊를 이루었다. 率(우두머리 ‘수’)은 帥와 통한다.
▶ 輦 : 황제가 타는 수레.
▶ 閉鉗(폐겸) : 봉쇄하다. 봉하다. 鉗:項鎖
▶ 鄙野 : 비루하고 속되다.
盎素不好鼂錯,鼂錯所居坐,盎去;
盎坐,錯亦去:
兩人未嘗同堂語。
원앙은 평소 鼂錯를 좋아하지 않으매, 조조가 있는 자리에서는 원앙이 떠나고, 원앙이 있는 자리에서는 조조 역시 떠났으니, 두 사람이 同堂에서 대화한 적이 없었다.
及孝文帝崩, 孝景帝即位,鼂錯為御史大夫,使吏案袁盎受吳王財物,抵罪,詔赦以為庶人。
孝文帝가 붕어하고 孝景帝가 즉위하자 조조는 御史大夫가 되었으며, 사신을 보내어 원앙이 吳王 劉濞의 재물을 받은 일을 조사하여 처벌함에, 황제가 조칙을 내려 사면하고 평민으로 만들었다.
吳楚反,聞,鼂錯謂丞史曰:
「夫袁盎多受吳王金錢,專為蔽匿,言不反。
今果反,欲請治盎宜知計謀。」
吳·楚의 반란을 알게되자, 조조가 丞史에게 말하였다.
“대저 원앙은 吳王에게서 금전을 많이 받고, 멋대로 오왕의 죄를 감추며 모반하지 않는다고 증언하였다.
그러나 결국 모반하였으니, 원앙이 모반의 음모를 마땅히 알았음을 治罪하도록 주청하려 한다.”
丞史曰:
「事未發,治之有絕。
今兵西鄉,治之何益!
且袁盎不宜有謀。」
승사가 말하였다.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때 처벌했으면, 반란를 중단시킬 수 있었겠습니다.
그러나 반란군이 서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그를 처벌함이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또 원앙이 모반하였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鼂錯猶與未決。
조조가 망설이며 결정하지 못하였다.
人有告袁盎者,袁盎恐,夜見竇嬰,為言吳所以反者,願至上前口對狀。
누군가 원앙에게 알려주매, 원앙이 두려워서 밤에 竇嬰을 만났다. 오가 모반한 이유를 말하기 위하여 황제 앞에 가서 구두로 진술하고 싶다고 하였다.
竇嬰入言上,上乃召袁盎入見。
두영이 入宮하여 황제에게 보고하자, 황제는 원앙을 불러들여 접견하였다.
鼂錯在前,及盎請辟人賜閒,錯去,固恨甚。
조조가 御前에 있다가 원앙이 사람을 물리치고 단독으로 뵙기를 청하매, 조조는 물러가면서 그 때문에 깊이 원한을 품었다.
袁盎具言吳所以反狀,以錯故,獨急斬錯以謝吳,吳兵乃可罷。
원앙이 吳가 모반한 진상을 상세하게 말하고, 조조가 원인이므로 서둘러 조조를 참수하여 오에게 사과하기만 하면, 오군을 물러가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其語具在吳事中。
그 이야기가 <吳王濞列傳>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使袁盎為太常,竇嬰為大將軍。
원앙을 太常으로, 두영을 大將軍으로 삼았다.
兩人素相與善。
두 사람은 평소 사이가 좋았다.
逮吳反。
오의 반군이 다다랐다.
諸陵長者長安中賢大夫爭附兩人,車隨者日數百乘。
諸陵의 長者와 長安의 현명한 대부들이 다투어 두 사람에게 歸附하니, 뒤를 따르는 수레가 매일 수백 대였다.
▶ 孝景帝 : 漢景帝. 漢文帝의 아들 劉啓.
▶ 吳王 : 劉濞. 漢高帝의 형인 劉仲의 아들이다.
▶ 案 : 按과 통하여 조사 심문하다.
▶ 抵罪 : 죄를 지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다.
▶ 吳楚反 : 吳楚七國의 난
▶ 蔽匿 : 은닉하다. 감추다.
▶ 鄉 : 向과 같다.
▶ 猶與 : 猶豫. 망설이다.
▶ 竇嬰 : 文帝 竇皇后의 조카이다. 문제 때 吳相이 되었다가 병으로 사직하였다. 景帝가 즉위하자 詹事가 되었다. 吳楚가 반란을 일으키자 大將軍이 되어 滎陽을 지키면서 齊와 趙의 병사를 감독하였다. 7國이 격파되자 魏其侯에 봉해졌다.
▶ 對狀 : 訴狀과 구두 진술을 대조하다.
▶ 辟人賜閒 : 다른 사람을 물리쳐 단독으로 회견하다. 辟는 避와 같다.
▶ 固 : 故와 통하여 그때문에.
▶ 具言 : 상세히 설명함.
▶ 獨 : 오로지.
▶ 吳事 : 사기 권 106. 吳王濞列傳을 말한다.
▶ 逮 : 이르다. 다다르다.
▶ 諸陵 : 장안 부근의 長陵, 安陵, 霸陵 등을 말한다.
及鼂錯已誅,袁盎以太常使吳。
조조를 죽이고 나서 원앙이 太常의 신분으로 吳에 사신으로 갔다.
吳王欲使將,不肯。
오왕이 장군으로 삼으려 하였으나 원안이 승낙하지 않았다.
欲殺之,使一都尉以五百人圍守盎軍中。
살해하고자, 都尉 한 명에게 5백 명을 거느리고 軍中에서 원앙을 포위하게 하였다.
袁盎自其為吳相時,有從史嘗盜愛盎侍兒, 盎知之,弗泄,遇之如故。
원앙이 오의 재상일 때부터 부하 관리가 원앙의 시녀를 몰래 사랑하였는데, 원앙이 이를 알고도 누설하지 않고 예전처럼 대하였다.
人有告從史,言
「君知爾與侍者通」,乃亡歸。
누군가 그 관리에게 알려주기를, “재상께서 당신이 시녀와 사통하였음을 알고 있다.”라고 하자, 도망하여 고향으로 가려 하였다.
袁盎驅自追之,遂以侍者賜之,復為從史。
원앙이 말을 몰아서 친히 쫓아가서, 마침내 시녀를 그에게 주고, 다시 관리로 일하게 하였다.
▶ 鼂錯已誅 : 晁錯가 반란의 소식을 듣고 景帝와 함께 이들을 토벌할 계책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竇嬰과 袁盎이 입궐하여 景帝에게 晁錯를 처형하면 제후가 반란을 그칠 것이라고 진언하자, 전쟁을 두려워한 景帝가 이를 받아들여 東廂에 물러나 있던 그에게 저자를 순행하라고 속여, 東市에 보내 처형하게 하니, 晁錯는 朝衣를 입은 채로 영문도 모르고 참수되었다.
▶ 盜愛 : 몰래 정을 통하다. 즉 私通하다.
▶ 侍兒 : 시녀.
▶ 如故 : 종전과 같이.
及袁盎使吳見守,從史適為守盎校尉司馬,乃悉以其裝齎置二石醇醪,會天寒,士卒饑渴,飲酒醉,西南陬卒皆臥,司馬夜引袁盎起,曰:
「君可以去矣,吳王期旦日斬君。」
원앙이 吳에 사신으로 갔다가 포위당함에, 부하 관리가 마침 원안을 지키는 校尉司馬이었는데, 휴대하고 있던 재물을 모두 털어서 독한 술 2섬을 구입하였다. 마침 날씨는 몹시 춥고 병사들은 굶주리고 목이 말랐으매, 술을 마셔 취하게 하니, 서남쪽 산기슭의 병사들이 모두 만취하여 누워 자고 있었다. 교위사마가 밤에 원앙을 일으키며 말하였다.
“군께서 지금 가셔야 합니다. 오왕이 내일 아침을 기하여 군을 참수할 터입니다.”
盎弗信,曰:
「公何為者?」
원앙이 믿지 못하고 물었다.
“그대는 무엇하는 사람이오?”
司馬曰:
「臣故為從史盜君侍兒者。」
사마가 말하였다.
“신은 예전에 從史로서 군의 시녀를 훔쳤던 사람입니다.”
盎乃驚謝曰;
「公幸有親,吾不足以累公。」
원앙이 놀라고 사양하였다.
“그대에게 다행히 양친이 계시니, 나는 그대를 연루시킬 수 없소.”
司馬曰:
「君弟去,臣亦且亡,辟吾親,君何患!」
사마교위가 말하였다.
“공께서는 도피하시기만 하십시오. 저도 즉시 도망가서 저의 양친을 대피시킬 터입니다. 군께서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乃以刀決張,道從醉卒隧直出
그러고는 칼로 군영의 장막을 가르고, 만취한 병사들로부터 인도하여 도로로 나가게 하였다.
司馬與分背,袁盎解節毛懷之,杖,步行七八里,明,見梁騎,騎馳去,遂歸報。
사마교위와 반대방향으로 헤어진 후, 원앙은 節毛를 해체하여 가슴 속에 품고 지팡이에 의지하여 7, 8리를 걸어서 가니, 다음날 새벽녘에 梁의 기병을 만났다. 그들의 말을 타고 달려 마침내 도성으로 돌아오매, 황제에게 보고하였다.
▶ 見守 : 겹겹이 포위되다. 見은 당하다.
▶ 裝齎 : 몸에 휴대하고 있는 재물. 齎는 資와 통하여 휴대한 물건.
▶ 置 : 사다.
▶ 石 : 무게의 단위로 1섬. 10말.
▶ 醇醪 : 진하고 순수한 술. 독한 술.
▶ 陬 : 모퉁이. 산기슭.
▶ 旦日 : 내일 아침.
▶ 弟 : 오로지.
▶ 且 : ~하려 하다.
▶ 수 : 길. 통로.
▶ 分背 : 길을 달리하여 가다.
▶ 節毛 : 節旄. 천자가 임명의 표적으로서 출정하는 장군이나 使節에게 주던 旗.
吳楚已破,上更以元王子平陸侯禮為楚王,袁盎為楚相。
오초의 반군을 격파하고 나서, 황제는 楚元王의 아들인 平陸侯 劉禮를 楚王으로 바꾸고, 원앙을 楚 재상에 임명하였다.
嘗上書有所言,不用。
원앙이 상서하여 진언한 적이 있었으나 채용하지 않았다.
袁盎病免居家,與閭里浮沈,相隨行,鬬雞走狗。
원앙은 병으로 사직하고 집에 삶에, 고향 사람들과 어울려 서로 따르면서 닭싸움이나 개 경주 등을 즐겼다.
雒陽劇孟嘗過袁盎,盎善待之。
洛陽의 劇孟이 원앙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원앙이 잘 대접하였다.
▶ 元王子平陸侯禮 : 楚元王 劉交의 아들인 劉禮.
劉禮는 처음에 平陸侯에 봉해졌었다. 초왕의 작위를 이은 조카 유무가 오초칠국의 난에 가담했다가 패배하고 자결했기에 황실이 원왕의 후사로 삼아 초왕이 되었다.
▶ 閭里 : 고향 마을.
▶ 劇孟 : 前漢의 俠客. 周亞夫 장군이 그를 좋아하였고 魯의 朱家처럼 몰래 남을 도와주었으며, 모친상을 당하였을 때 조문객의 수레 천여 대가 모여들었지만, 그가 죽었을 때 집에 10金의 재산도 없었다 한다.<사기 권124. 游俠列傳>
▶ 過 : 예를 갖추어 방문하다.
安陵富人有謂盎曰:
「吾聞劇孟博徒,將軍何自通之?」
安陵의 어떤 부자가 원앙에게 일렀다.
“나는 극맹이 노름꾼이라 들었는데, 장군께서는 어찌하여 그와 通交하십니까?”
盎曰:
「劇孟雖博徒,然母死,客送葬車千餘乘,此亦有過人者。
원앙이 말하였다.
“극맹이 비록 노름꾼이지만 모친이 돌아가심에, 손님이 장례식에 가져온 수레가 천여 대였는데, 여기에 남보다 뛰어난 면이 있소.
且緩急人所有。
또 급한 일은 사람마다 생기게 마련이오.
夫一旦有急叩門,不以親為解,不以存亡為辭,天下所望者,獨季心、劇孟耳。
어느 날 아침 급히 문을 두드려도, 양친을 이유로 벗어나지 않고, 存亡(삶과 죽음)을 이유로 사절하지 않으니, 천하 사람이 信望하는 자는 오직 季心과 극맹일 따름이오.
今公常從數騎,一旦有緩急,寧足恃乎!」
지금 그대는 항상 몇 騎馬를 거느리지만, 하루아침에 위급한 일이 생기면 정녕 그들을 믿을 수 있겠소!”
罵富人,弗與通。
그 부자를 꾸짖고 그와 通交하지 않았다.
諸公聞之,皆多袁盎。
공경들이 듣고 모두 원앙을 칭송하였다.
▶ 博徒 : 노름꾼.
▶ 緩急 : 급한 일. 본래는 ‘느슨함과 급함’이라는 뜻이지만 초점은 ‘急’에 있다. 大小의 大, 長短의 長, 輕重의 重이 모두 그런 類例이매, 大小는 ‘크기’이며 長短은 ‘길이’이고 輕重은 ‘무게’이다. 高下, 遠近, 美醜 등 무수하다.
▶ 季心 : 西漢 초기의 名臣 季布의 아우.<사기 권100. 季布欒布列傳>
▶ 多 : 칭찬하다.
袁盎雖家居,景帝時時使人問籌策。
원앙이 비록 집에 거처하였으나 景帝는 때때로 사람을 보내어 책략을 자문하곤 하였다.
梁王欲求為嗣,袁盎進說,其後語塞。
梁王이 景帝의 후사가 됨을 추구하였는데, 원앙이 진언하여 설득하매, 그 후에는 논의가 막혔다.
梁王以此怨盎,曾使人刺盎。
양왕은 이 때문에 원앙에게 원한을 품어, 일찍이 사람을 보내 원앙을 암살하게 하였다.
刺者至關中,問袁盎,諸君譽之皆不容口。
자객이 關中에 와서 원앙에 관하여 물어보니, 사람들이 모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였다.
乃見袁盎曰:
「臣受梁王金來刺君,君長者,不忍刺君。
然後刺君者十餘曹,備之!」
자객이 원앙을 뵙고 말하였다.
“저는 양왕에게 금전을 받고 당신을 암살하려고 왔습니다만 당신은 長者인지라 차마 암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후 당신을 암살하려는 자가 10여 曹이니,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袁盎心不樂,家又多怪,乃之棓生所問占。
원앙은 마음속이 편치 못하고, 집안에 또 괴기한 일이 많아서 棓生에게 가서 점을 물었다.
還,梁刺客後曹輩果遮刺殺盎安陵郭門外。
돌아오는 길에 양왕이 보낸 자객 뒷 조가 안릉의 성문 밖에서 원안을 가로막고 암살하였다.
▶ 籌策 : 책략.
▶ 梁王 : 梁 孝王. 한 문제의 둘째 아들이며 한경제의 친동생으로, 오초칠국의 난 진압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경제의 황태제를 노렸으나 이를 좌절시킨 원앙을 암살하여 위기에 몰렸으며, 어머니 효문황후·누나 관도장공주의 도움으로 모면하였다.
▶ 譽之皆不容口 : 원앙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함.
▶ 曹 : 輩.
▶ 棓生 : 점쟁이 배선생.
▶ 遮 : 막다.
▶ 郭門 : 바깥 성의 문.
2.鼂錯
鼂錯는 晁錯로도 쓴다. 漢文帝와 景帝 때의 문신으로 潁川 사람이다. 성품이 강하고 위엄을 앞세웠고 재주와 식견이 뛰어나 좋은 계책을 많이 내었다.
文帝 때에 후일 景帝가 된 太子의 舍人으로 있다가 家令이 되어 태자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나, 각박한 성품 때문에 사람들의 미움을 받았다. 景帝가 즉위하자, 內史에 임명되고 자주 景帝와 독대하여 자신의 계책을 실현하였으며, 御史大夫가 되자 제후들의 세력이 너무 강성해서 장차 나라의 큰 우환이 될까 우려하여 제후들의 봉지를 삭감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여 吳․楚 등 7국이 조조를 처단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반란을 일으켰다.
조조가 반란의 소식을 듣고 경제와 함께 이들을 토벌할 계책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竇嬰과 袁盎이 입궐하여 景帝에게 조조를 처형하면 제후들이 반란을 그칠 것이라고 진언하자, 전쟁을 두려워한 경제가 이를 받아들여 조조에게 저자를 순행하라고 속여 동쪽 시장에 보내 처형하게 하니, 조조는 朝衣를 입은 채로 영문도 모르고 참수되었다.
鼂錯者,潁川人也。
晁錯는 潁川 사람이다.
學申商刑名於軹張恢先所,與雒陽宋孟及劉禮同師。
軹縣의 張恢선생에게 申不害와 商鞅의 刑名學을 배웠으니, 낙양의 宋孟, 劉禮와 같은 스승을 섬겼다.
以文學為太常掌故。
문학으로 太常의 掌故가 되었다.
錯為人陗直刻深。
鼂錯의 사람됨은 엄하고 강직하며 각박하였다.
孝文帝時,天下無治尚書者,獨聞濟南伏生故秦博士,治尚書,年九十餘,老不可徵,乃詔太常使人往受之。
孝文帝 때에는 천하에 <尙書>를 연구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직 濟南의 伏生이 예전 秦의 박사로 <상서>를 연구하였으나 나이가 90여 세로 연로하여 조정으로 부를 수가 없었다. 이에 태상에게 조서를 내려 사람을 보내 복새의 학문을 전수받게 하였다.
太常遣錯受尚書伏生所。
태상이 조조를 파견하여 伏生에게서 <상서>를 전수받게 하였다.
▶ 申商 : 申不害와 商鞅. 申不害는 韓의 명재상이며, 형명지학의 대가였다. 법가 사상 중 術을 강조하였으며, 韓의 昭侯 밑에서 재상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史記列傳 권63 老子韓非列傳>
商鞅은 전국시대 秦의 법가를 대표하는 중요한 정치가였다. 본래의 姓은 姬, 氏는 公孫, 이름은 鞅이다. <史記 卷68 商君列傳>
▶ 刑名 : 刑은 形과 같다. 법으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과 기술. 刑은 形과 통하여 ‘형체’ 또는 事實을 말하며 名은 언론 또는 주장을 말한다.
▶ 文學 : 文章을 말한다.
▶ 太常 : 종묘사직의 예와 의례를 주관하는 부서.
▶ 掌故 : 역사의 제도와 문화 연혁 등을 맡은 관리.
▶ 峭直 : 엄하고 강직하다. 성품이 깔깔하고 곧음.
▶ 刻深 : 가혹하고 엄격하다.
▶ 尚書 : 유교의 五經 가운데 하나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다. 중국의 고대 국가들의 政事에 관한 문서를 공자가 편찬하였다고 전한다. 특히, 주나라의 정치철학을 상세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말한 제일의 자료이다. 전국시대에는 공문서라는 의미로 《書》라고 하였다. 이후, 유학을 숭상하고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漢 시대에서, 당시의 유학자들은 존중하고 숭상해야 할 고대의 기록이라는 뜻에서 《尙書》라고 하였다
▶ 伏生 : 伏勝. 秦 ~ 전한 초의 학자로, 자는 子賤이며 제남군 사람이다. <사기>에는 伏生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는데, 여기서 ‘생’은 학자를 높여 부르는 명칭이다.
還,因上便宜事,以書稱說。
조조가 복생에게 학문을 전수받고 돌아와서 나라에 유익한 일을 상주하고, <상서>를 인용하여 설명하였다.
詔以為太子舍人、門大夫、家令。
황제가 조칙으로 태자의 舍人, 門大夫, 家令으로 임명하였다.
以其辯得幸太子,太子家號曰「智囊」。
언변으로 태자에게 총애를 얻었으며 태자의 궁에서 ‘智囊’이라고 칭하였다.
數上書孝文時,言削諸侯事,及法令可更定者。
孝文帝 때 자주 상서하여 제후의 권한을 삭감하는 일과 법령을 개정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書數十上,孝文不聽,然奇其材,遷為中大夫。
상소를 수십 차례 올렸으나 孝文帝가 청종하지 않았으나 그의 재능을 비범하다고 여겨 中大夫로 승진시켰다.
當是時,太子善錯計策,袁盎諸大功臣多不好錯。
당시 태자는 鼂錯의 계책을 좋다고 여겼으나 원앙을 비롯한 공신들에 조조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많았다.
▶ 稱說 : 일컫다. 칭찬하여 말하다.
▶ 便宜事 : 나라와 백성에 유익한 일.
▶ 智囊 : 슬기주머니. 지혜가 많은 사람.
景帝即位,以錯為內史。
경제가 즉위함에, 조조를 內史로 임명하였다.
錯常數請閒言事,輒聽,寵幸傾九卿,法令多所更定。
조조는 항상 자주 단독으로 정사를 논하였는데, 그때마다 청종하니, 황제의 총애가 九卿을 압도하였고, 법령에 개정된 것이 많았다.
丞相申屠嘉心弗便,力未有以傷。
승상 申屠嘉가 내심 불편하였으나 힘으로 해칠 수가 없었다.
內史府居太上廟壖中,門東出,不便,錯乃穿兩門南出,鑿廟壖垣。
內史府는 太上皇의 사당 바깥담 안쪽 공터에 있었는데, 문이 동쪽으로 나 있어서 출입하기가 불편하매, 조조가 이에 남쪽으로 두 개의 문을 내었는데, 이 때문에 태상황 사당의 바깥담을 뚫었다.
丞相嘉聞,大怒,欲因此過為奏請誅錯。
승상 申屠嘉가 알고 크게 노하여 이번 허물로 인하여 鼂錯의 조조를 죽기를 주청하려고 하였다.
錯聞之,即夜請閒,具為上言之。
조조가 소식을 듣자마자 당일 밤에 단독으로 뵙기를 청하고, 황제에게 자세히 해명하였다.
丞相奏事,因言錯擅鑿廟垣為門,請下廷尉誅。
승상은 정사를 상주하면서 기회를 틈타 조조가 제멋대로 태상황 사당의 담을 뚫어 문을 냈으니, 廷尉에게 내려서 죽이기를 주청하였다.
上曰:
「此非廟垣,乃壖中垣,不致於法。」
황제가 말하였다.
“그것은 태상황 사당의 담이 아니고, 사당 바깥 공터의 담이니 법령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丞相謝。
승상이 사죄하였다.
罷朝,怒謂長史曰:
「吾當先斬以聞,乃先請,為兒所賣,固誤。」
조회를 마치고 승상이 노하여 長史에게 말하였다.
“나는 마땅히 먼저 조조를 참수하고 황제께 보고해야 하였다. 주청을 먼저 하여 애송이에게 놀아났으니 참으로 잘못하였구나.”
丞相遂發病死。
승상이 이 일로 병이 나서 죽었다.
錯以此愈貴。
조조가 이로 인하여 더욱 존귀하게 되었다.
▶ 傾 : 압도하다.
▶ 太上廟 : 高祖 유방의 아버지인 劉太公의 사당.
▶ 丞相申屠嘉心弗便 : 효경제 2년(기원전 155년)에 晁錯가 內史가 되어 총애를 받고 정권을 장악하여 법령제도를 대폭 고치자고 황제에게 주청하고, 잘못을 찾아 처벌하는 방법으로 제후의 권력을 삭감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에 승상 申屠嘉는 자신의 의견이 채용되지 않아 조조를 미워하였다. <史記 권96 張丞相列傳 ④申屠嘉>
▶ 壖 : 성곽 둘레의 논밭이나 공터. 빈 땅.
▶ 壖垣 : 궁 밖의 작은 담.
▶ 具 : 상세히.
▶ 廷尉 : 형벌을 맡아보던 관직으로 九卿의 하나이다.
▶ 丞相遂發病死 : <사기 권 96. 장승상열전>에 이와 유사한 기록이 실려 있다.
조회를 마치고 申屠嘉는 長史에게 말하였다. “내가 먼저 조조를 죽이지 않고 먼저 주청하매 기만당한 것이 후회스럽소.” 집에 이르러 이 때문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 그의 시호를 節侯라 하였다.
遷為御史大夫,請諸侯之罪過,削其地,收其枝郡。
조조가 어사대부가 되자 제후의 죄과에 상응하는 봉지를 삭감하고, 제후국의 변경에 있는 郡도 몰수하자고 주청하였다.
奏上,上令公卿列侯宗室集議,莫敢難,獨竇嬰爭之,由此與錯有卻。
상주문이 올라가자 황제는 公卿, 列侯, 종실들을 모아 토론하게 하였는데, 아무도 감히 나쁘다고 말하지 못하였으나, 유독 竇嬰이 조조와 논쟁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두영은 조조와 사이가 나빠졌다.
錯所更令三十章,諸侯皆諠譁疾鼂錯。
조조가 고친 법령이 30章에 달하였는데, 제후가 모두 시끄럽게 떠들며 조조를 疾視하였다.
錯父聞之,從潁川來,謂錯曰:
「上初即位,公為政用事,侵削諸侯,別疏人骨肉,人口議多怨公者,何也?」
鼂錯의 아버지가 소식을 듣고 영천으로부터 와서 조조에게 일렀다.
“폐하께서 막 즉위하심에 네가 정권을 장악하여 제후의 권한을 침범하고 삭감하여, 남의 혈육을 소원하게 하매, 사람들의 의논에 너를 원망함이 많은데, 무엇 때문이냐?”
鼂錯曰:
「固也。
不如此,天子不尊,宗廟不安。」
조조가 말하였다.
“확실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천자를 존중하지 않고, 종묘가 불안해집니다.”
錯父曰:
「劉氏安矣,而鼂氏危矣,吾去公歸矣!」
鼂錯의 부친이 말하였다.
“劉氏는 평안하겠지만 鼂氏는 위태로울 터이니, 나는 너를 떠나 저세상으로 가야겠다!”
遂飲藥死,曰:
「吾不忍見禍及吾身。」
마침내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면서 말하였다.
“나는 재앙이 내 몸에 미침을 차마 볼 수가 없다.”
死十餘日,吳楚七國果反,以誅錯為名。
자살한 지 10여 일, 과연 吳楚 등 7국이 반란을 일으키되, 조조를 죽임을 명분으로 내걸었다.
及竇嬰、袁盎進說,上令鼂錯衣朝衣斬東市。
두영과 원앙이 진언하여 설득하자, 황제가 명령하여 조조가 朝服을 입은 상태로 동쪽 저잣거리에서 참수하였다.
▶ 枝郡 : 諸侯國 사방 변경에 있는 郡.
▶ 郤 : 隙과 통하여 사이가 벌어짐.
▶ 諠譁 : 시끄럽게 떠들다.
▶ 疾 : 몹시 미워하다.
▶ 上令鼂錯衣朝衣斬東市 : 竇嬰과 袁盎이 입궐하여 景帝에게 진언하기를, 조조를 처형하면 제후가 반란을 그칠 터이라고 하자, 전쟁을 두려워한 景帝가 이를 받아들여 東廂에 물러나 있던 조조에게 저자를 순행하라고 속여 東市에 보내 처형하게 하니, 조조는 朝衣를 입은 채로 영문도 모르고 참수되었다.
鼂錯已死,謁者仆射鄧公為校尉,擊吳楚軍為將。
조조가 죽은 뒤에 謁者僕射 鄧公을 校尉로 임명하고, 오초의 반란군을 진압하는 장수로 삼았다.
還,上書言軍事,謁見上。
등공이 돌아와서 상서하여 軍事를 보고하고, 황제를 알현하였다.
上問曰:
「道軍所來,聞鼂錯死,吳楚罷不?」
황제가 물었다.
군대가 오는 도중에 조조가 죽었음을 알고 오초의 반란군이 퇴각하지 않던가?”
鄧公曰:
「吳王為反數十年矣,發怒削地,以誅錯為名,其意非在錯也。
且臣恐天下之士噤口,不敢復言也!」
등공이 말하였다.
“오왕이 모반한 지 수십 년이며, 봉지를 삭감함에 화가 나서 조조를 죽임을 명분으로 내세웠을 뿐, 뜻이 조조에게 있음이 아닙니다.
또 신은 걱정하기를, 천하의 선비들이 입을 다물고, 다시는 감히 황제께 진언을 올리지 않을 터입니다!”
上曰:
「何哉?」
황제가 말하였다.
“무엇 때문이오?”
鄧公曰:
「夫鼂錯患諸侯彊大不可制,故請削地以尊京師,萬世之利也。
計畫始行,卒受大戮,內杜忠臣之口,外為諸侯報仇,臣竊為陛下不取也。」
등공이 대답하였다.
“대저 조조는 제후가 강대해져서 통제할 수 없을까 염려하였으매, 봉지를 삭감하길 청함으로써 조정을 높이고 萬世의 이익을 도모하려 하였습니다.
鼂錯의 계획이 시행되자마자 갑자기 죽임을 당하여, 안으로 충신의 입을 막고 밖으로 제후의 원수를 갚은 결과가 되었으매, 신은 삼가 폐하께서 취하실 바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於是景帝默然良久,曰:
「公言善,吾亦恨之。」
이에 경제가 말없이 한참 후에 말하였다.
“공의 말이 옳다. 나도 후회하고 있다.”
乃拜鄧公為城陽中尉。
이에 등공을 城陽의 中尉로 임명하였다.
▶ 滕公 : 夏侯嬰. 前漢 高祖의 개국공신. 秦과 전투할 때 兵車를 질풍처럼 몰아쳐 용감히 싸워 滕公의 작위를 받았다. [史記列傳] 권95 樊酈滕灌列傳
▶ 噤 : 입을 다물다. 말하지 않다.
▶ 京師 : 서울. 즉 조정.
▶ 大戮 : 죽이다. 사형하다.
▶ 恨 : 후회하다. 뼈저리게 뉘우치다.
鄧公,成固人也,多奇計。
등공은 成固 사람으로 기묘한 계책을 많이 내놓았다.
建元中,上招賢良,公卿言鄧公,時鄧公免,起家為九卿。
建元 연간에 황제가 賢良을 초빙함에 公卿들이 등공을 추천하니, 그때 등공은 면직되어 있다가 집에서 나와 九卿이 되었다.
一年,復謝病免歸。
1년 후, 다시 병을 핑계하고 벼슬에서 물러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其子章以修黃老言顯於諸公閒。
그의 아들 鄧章은 黃帝와 老子의 학설을 연구하여 대신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았다.
▶ 奇計 : 기묘한 계책.
▶ 建元 : 漢武帝의 첫 번째 年號. 기원전 140년 ~기원전 145년
▶ 賢良 : 현명하고 어진 사람.
▶ 起家 : 집에서 閑居하다가 일어남.
▶ 黄老言 : 黄帝와 老子의 학설. 황노사상은 전국시대 중후기부터 漢 시대까지 약 400년 동안 유행하던 하나의 사상이다. 황제는 전설상의 인물이지만 각종 법률과 규칙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상징되며 노자는 도가사상의 뿌리이자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황노사상은 보통 법가와 도가가 융합된 사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袁盎雖不好學,亦善傅會,仁心為質,引義慨。
“袁盎은 비록 학문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견강부회하는 데에 능하였고, 어진 마음을 바탕으로 삼고 대의를 인용하되 慷慨하였다.
遭孝文初立,資適逢世。
마침 孝文帝 즉위 초기이어서, 그의 자질에 적합한 시대를 맞이하였다.
時以變易,及吳楚一說,說雖行哉,然復不遂。
시대가 변화하여 오초의 반란 때, 한 번 주장하여 주장이 비록 실행되었으나, 다시는 이룬 것이 없었다.
好聲矜賢,竟以名敗。
명성을 좋아하고 현명함을 자랑하였으나, 마침내 명성 때문에 실패하였다.
鼂錯為家令時,數言事不用;
後擅權,多所變更。
鼂錯가 太子家令이 되었을 때 여러 차례 진언하여 채용되지 않았으나, 뒤에 권력을 擅斷하며 법령을 변경한 바가 많았다.
諸侯發難,不急匡救,欲報私讎,反以亡軀。
제후가 반란을 일으킴에, 바로잡아 구제함에 서두르지 않고, 사적인 원한을 갚으려다가 도리어 몸을 망치고 말았다.
語曰
「變古亂常,不死則亡」,豈錯等謂邪!
옛말에 이르기를, ‘古制를 바꾸고 常道를 어지럽히면 죽지 않으면 멸망한다.’라고 하였는데, 어찌 조조와 같은 사람을 이름이 아니겠는가!”
▶ 傅會 : 즉 附會. 牽强附會
▶ 質 : 바탕.
▶ 資 : 재능과 지혜.
▶ 吳楚一說 : 경제에게 조조를 죽여 오초의 난을 그치게 하도록 진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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