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 ~ 기원전 257년 11월)는 중국 전국시대 秦의 장군이다.
秦 昭襄王 때에 趙 · 魏 · 韓 · 楚 등의 나라들과 싸워서 많은 승리를 거두고 秦의 영토를 크게 넓혔다. 그러나 말년에는 소양왕과의 갈등 끝에 실각하고 자살을 강요당하여 죽었다. 《전국책》에서는 그의 이름을 公孫起라고도 하였다. 武安君의 칭호를 받았다.
王翦(? ~ ?)은 중국 전국시대 秦의 장군이다.
전국시대 秦의 대표적인 명장으로 평가받는 인물로, 시황제 때에 조 · 연 · 초 등의 나라들을 공격해서 차례로 멸망시키며 중국의 통일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아들인 왕분과 손자인 왕리 또한 3대에 걸쳐 명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白起者,郿人也。
白起는 郿 사람이다.
善用兵,事秦昭王。
용병에 뛰어나 秦昭王 嬴稷을 섬겼다.
昭王十三年,而白起為左庶長,將而擊韓之新城。
秦昭王 13년, 左庶長이 되어 군대를 이끌고 韓의 新城을 쳤다.
是歲,穰侯相秦,舉任鄙以為漢中守。
그 해에 양후가 秦의 재상이 되어 任鄙를 천거해 漢中의 태수로 삼았다.
▶ 任鄙: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288년에 죽은 전국시대 秦의 대력사 출신의 무장이다.장사였던 秦武王이 힘겨루기를 좋아했으므 자신을 스스로 천거하여 秦武王의 총애를 받았다.
秦昭王 때 상국 穰侯가 그를 한중태수로 천거하였다. 秦 사람들은 힘에는 임비이고 지혜는 저리라고 칭하였다.
其明年,白起為左更,攻韓、魏於伊闕,斬首二十四萬,又虜其將公孫喜,拔五城。
그 이듬해, 백기는 左更이 되어 韓ㆍ魏를 伊闕에서 공격하여 24만을 참수하고, 또 그 장수 公孫喜를 포로로 잡고 다섯 城을 함락하였다.
起遷為國尉。
백기가 國尉가 되었다.
涉河取韓安邑以東,到乾河。
黃何를 건너 韓의 安邑에서 동쪽으로 乾河에 이르는 땅을 빼앗았다.
明年,白起為大良造。
이듬해, 백기는 大良造가 되었다.
攻魏,拔之,取城小大六十一。
魏를 공격해 함락하고 빼앗은 城이 대소 61개이었다.
明年,起與客卿錯攻垣城,拔之。
이듬해, 백기는 客卿 司馬錯과 垣城을 공격해 점령하였다.
後五年,白起攻趙,拔光狼城。
5년 후, 백기는 趙를 공격해 光狼의 성을 점령하였다.
後七年,白起攻楚,拔鄢、鄧五城。
7년 후, 백기는 楚를 공격해 鄢과 鄧을 비롯한 다섯 개의 성을 점령하였다.
其明年,攻楚,拔郢,燒夷陵,遂東至竟陵。
그 이듬해, 楚를 공격해 楚의 도읍인 郢을 점령하고 夷陵을 불태웠으며, 마침내 동쪽으로 竟陵에 이르렀다.
楚王亡去郢,東走徙陳。
楚頃襄王은 郢을 버리고 도망쳐 동쪽의 陳으로 도읍을 옮겼다.
秦以郢為南郡。
秦는 郢을 南郡으로 삼았다.
白起遷為武安君。
백기는 승진하여 武安君이 되었다.
武安君因取楚,定巫、黔中郡。
무안군은 楚의 도읍을 빼앗고 巫郡과 黔中郡을 평정하였다.
昭王三十四年,白起攻魏,拔華陽,走芒卯,而虜三晉將,斬首十三萬。
秦昭王 34년, 백기가 魏를 공격해 華陽을 점령하고 芒卯를 달아나게 하였으며, 三晉의 장수를 포로로 잡고 13만을 참수하였다.
與趙將賈偃戰,沈其卒二萬人於河中。
趙 장수 賈偃과 싸워서 그 병사 2만을 황하에 빠뜨려 익사시켰다.
昭王四十三年,白起攻韓陘城,拔五城,斬首五萬。
秦昭王 43년, 백기가 韓의 陘을 공격해 다섯 성을 점령하고, 5만을 참수하였다.
四十四年,白起攻南陽太行道,絕之。
秦昭王 44년, 백기가 南陽을 공격해 太行山의 길을 끊었다.
四十五年,伐韓之野王。
45년, 한의 野王을 공격하였다.
野王降秦,上黨道絕。
야왕 秦에 항복하자 上黨의 길이 끊겼다.
其守馮亭與民謀曰:
「鄭道已絕,韓必不可得為民。
秦兵日進,韓不能應,不如以上黨歸趙。
趙若受我,秦怒,必攻趙。
趙被兵,必親韓。
韓趙為一,則可以當秦。」
그 태수 馮亭이 백성과 의논하며 말하였다.
「鄭으로 통하는 길은 이미 끊겼으니 韓은 틀림없이 우리를 백성으로 여기지 않을 터이오.
秦軍이 날로 다가오는데 韓은 대응하지 못하니, 상당을 趙에 바치고 귀순함이 좋겠소.
趙가 만약 우리를 받아들인다면 秦은 노하여 필시 趙를 공격할 터이오.
趙가 공격받으면 필시 韓과 가까워질 터이오.
韓과 趙가 하나가 되면 秦에 當敵할 수 있을 터이오.」
因使人報趙。
그리하여 사람을 보내 趙에 알렸다.
趙孝成王與平陽君、平原君計之。
趙孝成王과 平陽君 趙豹ㆍ平原君 趙勝이 이를 살펴보았다.
平陽君曰:
「不如勿受。受之,禍大於所得。」
평양군 조표가 말하였다.
「받지 않음이 좋습니다.
받으면 이익보다도 재앙이 크겠습니다.」
平原君曰:
「無故得一郡,受之便。」
평원군 조승이 말하였다.
「까닭 없이 1郡을 얻으므로, 받음이 좋습니다.」
趙受之,因封馮亭為華陽君。
趙는 상당을 받았으며, 풍정을 華陽君에 봉하였다.
四十六年,秦攻韓緱氏、藺,拔之。
46년, 秦이 韓의 緱氏와 藺을 공격해 점령하였다.
四十七年,秦使左庶長王龁攻韓,取上黨。
47년, 秦이 좌서장 王龁을 보내 韓를 공격하고 상당을 빼앗았다.
上黨民走趙。
상당 백성이 趙로 달아났다.
趙軍長平,以按據上黨民。
趙는 군대를 長平에 보내 상당 백성을 보호하였다.
四月,龁因攻趙。
4월, 왕흘이 이로 인하여 趙를 공격하였다.
趙使廉頗將。
趙는 廉頗를 장수로 삼았다.
趙軍士卒犯秦斥兵,秦斥兵斬趙裨將茄。
趙軍의 士卒이 秦의 斥候兵을 공격했으나, 秦의 척후병이 趙의 부장 茄를 베었다.
六月,陷趙軍,取二鄣四尉。
6월, 趙軍을 무너뜨리고 두 개의 보루를 빼앗고 도위 4명을 잡았다.
七月,趙軍筑壘壁而守之。
7월, 趙軍은 보루를 쌓아 굳게 지켰다.
秦又攻其壘,取二尉,敗其陣,奪西壘壁。
秦이 또 그 보루를 공격해 도위 2명을 잡고 그 진을 무너뜨렸으며, 서쪽의 보루를 빼앗았다.
廉頗堅壁以待秦,秦數挑戰,趙兵不出。
염파는 보루를 튼튼하게 쌓아서 秦에 대비하였으며, 秦이 여러 차례 싸움을 걸었음에도 趙軍 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趙王數以為讓。
조효성왕이 싸움을 피한다며 염파를 꾸짖었다.
而秦相應侯又使人行千金於趙為反閒,曰:
「秦之所惡,獨畏馬服子趙括將耳,廉頗易與,且降矣。」
한편 秦 재상 應侯는 趙에 사람을 보내 많은 돈을 써서 反間計를 펼쳤다.
「秦이 두려워함은 오직 馬服君 趙奢의 아들 趙括이 장수가 됨이며, 염파는 숩게 상대할 수 있으니 곧 항복할 터이다.」
趙王既怒廉頗軍多失亡,軍數敗,又反堅壁不敢戰,而又聞秦反閒之言,因使趙括代廉頗將以擊秦。
조효성왕은 염파의 군대에 죽은 자나 도망친 자가 많고, 군대가 여러 번 지고도 도리어 굳게 지킬 뿐 감히 싸우지 아니하기 노하였는데, 또 秦이 반간하는 말을 듣자 조괄을 염파 대신 장수로 삼고 秦를 쳤다.
秦聞馬服子將,乃陰使武安君白起為上將軍。
秦는 마복군의 아들 조괄이 장수가 되었음을 알고, 은밀히 무안군 백기를 상장군으로 삼았다.
而王龁為尉裨將,令軍中有敢泄武安君將者斬。
왕흘을 副將으로 삼아 군중에 명령을 내려 감히 무안군이 장수가 됨을 발설하면 목을 베겠다고 하였다.
趙括至,則出兵擊秦軍。
조괄이 趙軍에 이르자 곧 출병하여 秦軍을 쳤다.
秦軍詳敗而走,張二奇兵以劫之。
秦軍이 패하는 척 달아나면서 두 갈래의 奇兵을 매복하여 趙軍를 기습하기로 하였다.
趙軍逐勝,追造秦壁。
趙軍은 승리를 좇아 秦의 보루까지 쫓았다.
壁堅拒不得入,而秦奇兵二萬五千人絕趙軍後,又一軍五千騎絕趙壁閒,趙軍分而為二,糧道絕。
보루가 굳게 막으니 들어갈 수가 없었는데 秦의 奇兵 2만 5천이 趙軍의 후방을 끊고, 또 5천 명의 기병 한 부대가 趙軍과 보루 사이를 끊으니, 趙軍은 둘로 나뉘고 糧道도 끊어졌다.
而秦出輕兵擊之。
秦는 날랜 병사를 내어 이를 쳤다.
趙戰不利,因筑壁堅守,以待救至。
趙는 싸움에서 불리해지자 보루를 쌓고 굳게 지키며 구원군이 오기를 기다렸다.
秦王聞趙食道絕,王自之河內,賜民爵各一級,發年十五以上悉詣長平,遮絕趙救及糧食。
秦昭王은 趙의 보급로가 끊어졌음을 알고, 왕이 친히 황하 이북 땅으로 가서 백성의 작위를 1계급씩 올리고, 15살 이상인 사람을 뽑아 모두 장평 땅으로 보내 趙의 구원과 식량이 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至九月,趙卒不得食四十六日,皆內陰相殺食。
9월이 되자 趙 병사가 식량을 받지 못한 지 46일이나 되자, 모든 병사가 서로 잡아먹을 지경이었다.
來攻秦壘,欲出。
秦의 보루를 공격해서 탈출하려고 하였다.
為四隊,四五復之,不能出。
군대를 네 부대로 나뉘고, 너댓번을 반복해 시도했으나 벗어나지 못하였다.
其將軍趙括出銳卒自搏戰,秦軍射殺趙括。
장군 조괄이 정예병을 이끌고 선두에서 싸웠으나, 秦軍이 조괄을 사살하였다.
括軍敗,卒四十萬人降武安君。
조괄의 군대가 패하자 병사 40만 명이 무안군에게 항복하였다.
武安君計曰:
「前秦已拔上黨,上黨民不樂為秦而歸趙。
趙卒反覆。
非盡殺之,恐為亂。」
무안군이 생각하였다.
「예전에 秦이 상당을 점령함에, 상당의 백성은 秦에 속함을 싫어하여 趙에 의탁하였다.
趙ᄋힹ 병사는 줏대가 없어 언행을 이랬다저랬다 한다.
모조리 죽여버리지 않으면 아마도 난을 일으킬 터이다.」
乃挾詐而盡阬殺之,遺其小者二百四十人歸趙。
이에 간사하게도 모조리 구덩이에 파묻어 죽이고, 나이 어린 240명만을 남겨서 趙로 돌려보냈다.
前後斬首虜四十五萬人。
전후하여 포로 45만 명을 참수하였다.
趙人大震。
趙 사람들은 크게 경악하였다.
四十八年 十月,秦復定上黨郡。
48년 10월, 秦는 다시 상당을 평정하였다.
秦分軍為二:王龁攻皮牢,拔之;司馬梗定太原。
秦는 군대를 둘로 나누어, 왕흘은 皮牢을 공격하여 점령하게 하고, 司馬梗은 太原 평정하게 하였다.
韓、趙恐,使蘇代厚幣說秦相應侯曰:
韓과 趙가 두려워하며 蘇代에게 후한 예물을 주고 秦 재상 응후를 설득하게 하였다.
「武安君禽馬服子乎?」
「무안군이 마복군의 아들을 잡았습니까?」
曰:
「然。」
응후 범수가 말하였다.
「그렇소.」
又曰:
「即圍邯鄲乎?」
또 소대가 말하였다.
「곧바로 邯鄲을 포위할 터입니까?」
曰:
「然。」
응후 범수가 말하였다.
「그렇소.」
「趙亡則秦王王矣,武安君為三公。
「趙가 망하면 진왕은 천하의 왕이 되고, 무안군은 三公이 될 터입니다.
武安君所為秦戰勝攻取者七十餘城,南定鄢、郢、漢中,北禽趙括之軍,雖周、召、呂望之功不益於此矣。
무안군이 秦를 위해 싸워서 이기고 70여 성을 공격해 빼앗았으며, 남쪽으로 언ㆍ영ㆍ한중을 평정하고, 북쪽으로는 조괄의 군대를 모두 사로잡았음은, 비록 周公ㆍ召公ㆍ太公望의 공적도 이것보다 더하지 않습니다.
今趙亡,秦王王,則武安君必為三公,君能為之下乎?
그런데 趙가 망하고 진왕이 천하의 왕이 되면 무안군이 필시 삼공이 될 터인데, 그대는 그의 아래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雖無欲為之下,固不得已矣。
비록 그 밑에 있지 않으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을 터입니다.
秦嘗攻韓,圍邢丘,困上黨,上黨之民皆反為趙,天下不樂為秦民之日久矣。
秦이 일찍이 韓를 공격해 邢丘을 포위하고 상당을 곤궁하게 했을 때, 상당의 백성은 오히려 모두 趙로 갔으니 천하가 秦의 백성이 됨을 싫어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今亡趙,北地入燕,東地入齊,南地入韓、魏,則君之所得民亡幾何人。
지금 趙를 멸망시키면 북쪽 땅은 燕으로 편입되고, 동쪽 땅은 齊로 편입되며, 남쪽 땅은 韓과 魏에 편입될 터이니, 그대가 얻을 백성은 몇 사람밖에 없을 터입니다.
故不如因而割之,無以為武安君功也。」
그러므로 趙의 땅을 할양받고 무안군이 공을 세우지 못하게 함이 낫습니다.」
於是應侯言於秦王曰:
「秦兵勞,請許韓、趙之割地以和,且休士卒。」
이에 응후가 秦昭王에게 말하였다.
「秦軍은 지쳤으니, 韓ㆍ趙의 땅을 할양받고 화친을 맺어 우선 병사을 쉬게 하십시오.」
王聽之,割韓垣雍、趙六城以和。
秦昭王은 이를 받아들이고 韓의 垣雍과 趙의 6성을 받고 화친하였다.
正月,皆罷兵。
정월, 모두 撤兵하였다.
武安君聞之,由是與應侯有隙。
무안군이 알고 이 때문에 응후와 사이가 나빠졌다.
其九月,秦復發兵,使五大夫王陵攻趙邯鄲。
그 9월, 秦이 다시 군을 일으켜 五大夫 王陵을 보내 趙의 한단을 공격하였다.
是時武安君病,不任行。
이때 무안군은 병이 들어서 전쟁을 맡길 수 없었다.
四十九年正月,陵攻邯鄲,少利,秦益發兵佐陵。
49년 정월, 왕릉이 한단을 공격했으나, 이득이 적으니, 秦이 增軍하여 왕릉을 도왔다.
陵兵亡五校。
왕릉이 교위 5명을 잃었다.
武安君病愈,秦王欲使武安君代陵將。
무안군의 병이 낫자 秦昭王은 무안군을 왕릉 대신 장수로 삼으려고 하였다.
武安君言曰:
무안군이 말하였다.
「邯鄲實未易攻也。
「한단은 실제로 쉽게 공격할 수 없습니다.
且諸侯救日至,彼諸侯怨秦之日久矣。
또 제후가 구원할 날이 다가오는데, 저 제후들은 秦를 원망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今秦雖破長平軍,而秦卒死者過半,國內空。
지금 秦이 비록 장평의 군대를 무찔렀으나, 秦의 사졸도 죽은 자가 절반을 넘어서 나라가 텅 비었습니다.
遠絕河山而爭人國都,趙應其內,諸侯攻其外,破秦軍必矣。
멀리 강산을 넘어서 남의 나라의 도읍을 빼앗으려고 하니, 趙가 안에서 대응하고 제후가 밖에서 공격하면 秦軍을 개뜨릴 것이 분명합니다.
不可。」
공격해선 안 됩니다.」
秦王自命,不行;乃使應侯請之,武安君終辭不肯行,遂稱病。
秦昭王이 친히 명령해도 백기는 가지 않았고, 이에 응후를 보내 부탁하였 무안군은 끝내 사양하면서 가려고 하지 않고, 병을 핑계하였다.
秦王使王龁代陵將,八九月圍邯鄲,不能拔。
秦昭王은 왕흘을 왕릉 대신 장수로 삼아 8, 9월에 걸쳐 한단을 포위하였으나 점령하지 못하였다.
楚使春申君及魏公子將兵數十萬攻秦軍,秦軍多失亡。
楚가 春申君 黃歇과 魏공자 魏無忌에게 수십만을 이끌고 秦軍을 공격하게 하니, 秦軍에 亡失이 많았다.
武安君言曰:
「秦不聽臣計,今如何矣!」
무안군이 말하였다.
「秦이 신의 말을 듣지 않더니 지금 어떠합니까!」
秦王聞之,怒,彊起武安君,武安君遂稱病甐。
秦昭王이 이를 알고 노하여 무안군을 강제로 보내려고 했으나, 무안군은 병이 위독하다며 움직이지 않았다.
應侯請之,不起。
응후 범수가 간청했으나 기병하지 않았다.
於是免武安君為士伍,遷之陰密。
이에 무안군을 免職하여 병졸로 만들고 陰密에 옮겨 살게 하였다.
武安君病,未能行。
무안군이 병이 들어 갈 수 없었다.
居三月,諸侯攻秦軍急,秦軍數卻,使者日至。
석 달이 지나서, 제후가 秦軍을 급히 공격하자 秦軍이 여러 번 퇴각하며 사자가 매일 왔다.
秦王乃使人遣白起,不得留咸陽中。
秦昭王이 사람을 시켜 백기를 쫓아보내게 하자, 咸陽에 더 머무를 수 없었다.
武安君既行,出咸陽西門十里,至杜郵。
무안군이 길을 나서 함양 서문에서 10리 떨어진 杜郵에 이르렀다.
秦昭王與應侯群臣議曰:
「白起之遷,其意尚怏怏不服,有餘言。」
秦昭王이 응후 및 신하들과 의논하였다.
「백기가 유배 감에, 마음속으로 오히려 불만을 품고 복종하지 않으며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秦王乃使使者賜之劍,自裁。
秦昭王이 사자를 보내 검을 주면서 자결하라고 하였다.
武安君引劍將自剄,曰:
「我何罪于天而至此哉?」
무안군이 검을 받아 스스로 목을 찌르려 하며 말하였다.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良久,曰:
「我固當死。
長平之戰,趙卒降者數十萬人,我詐而盡阬之,是足以死。」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하였다.
「나는 참으로 죽어 마땅하구나.
장평의 전쟁에서 항복한 趙 병사 수십만 명을 내가 속이고 모조리 구덩이에 묻었으니 죽기에 족하다.」
遂自殺。
마침내 자살하였다.
武安君之死也,以秦昭王五十年十一月。
무안군이 죽음은 秦昭王 50년 11월의 일이다.
死而非其罪,秦人憐之,鄉邑皆祭祀焉。
백기가 죽었으나 그의 죄가 아니었으므로, 秦 사람들은 가련하다고 여기고, 鄕里에서 모두 제사를 지내주었다.
▶ 數: 꾸짖다. 책망하다.
▶ 挾詐: (속으로) 간사(奸邪)한 생각을 가짐.
▶ 백기가 받든 작위 등급: 10등급 左庶長, 12등급 左更, 13등급 中更, 14등급 右更, 16등급 大良造, 20위 해당하는 최고의 작위는 徹侯다.
王翦者,頻陽東鄉人也。
王翦은 頻陽의 東鄉 사람이다.
少而好兵,事秦始皇。
어려서 용병을 좋아하여 秦始皇을 섬겼다.
始皇十一年,翦將攻趙閼與,破之,拔九城。
始皇 11년, 왕전이 장수가 되어 趙의 閼與를 공격하여 무찌르고, 9城을 점령하였다.
十八年,翦將攻趙。
18년, 왕전이 장수가 되어 趙를 공격하였다.
歲餘,遂拔趙,趙王降,盡定趙地為郡。
1년 만에 드디어 趙를 점령하고 趙王이 항복하자, 趙 땅을 모두 평정하고 군으로 삼았다.
明年,燕使荊軻為賊於秦,秦王使王翦攻燕。
이듬해, 燕이 荊軻를 秦에 자객으로 보내자, 始皇이 왕전을 보내 燕을 공격하였다.
燕王喜走遼東,翦遂定燕薊而還。
연왕은 遼東으로 달아나고, 왕전은 마침내 燕의 薊를 평정하고 돌아왔다.
秦使翦子王賁擊荊,荊兵敗。
秦은 왕전의 아들 王賁을 보내 楚를 치니, 楚軍이 패하였다.
還擊魏,魏王降,遂定魏地。
왕분이 돌아오면서 魏를 치자 위왕이 항복했으며, 마침내 魏 땅을 평정하였다.
秦始皇既滅三晉,走燕王,而數破荊師。
始皇이 이미 삼진을 멸망시키고 연왕을 쫓아냈으며, 수차례 楚軍을 무찔렀다.
秦將李信者,年少壯勇,嘗以兵數千逐燕太子丹至於衍水中,卒破得丹,始皇以為賢勇。
秦의 장수 李信은 젊고 용감하였는데, 병사 수천으로 燕태자 丹을 衍水까지 뒤쫓아 마침내 무찌르고 연단을 사로잡은 적이 있었는데, 始皇는 현명하고 용감하다고 여겼다.
於是始皇問李信:
「吾欲攻取荊,於將軍度用幾何人而足?」
이에 始皇이 이신에게 물었다.
「내가 楚를 공격해 빼앗으려고 하는데, 장군이 생각하기에 몇 사람이면 족하겠소?」
李信曰:
「不過用二十萬人。」
이신이 말하였다.
「20만 명이면 충분합니다.」
始皇問王翦,王翦曰:
「非六十萬人不可。」
始皇이 왕전에게 묻자 왕전이 말하였다.
「60만 명이 아니면 안 됩니다.」
始皇曰:
「王將軍老矣,何怯也!
李將軍果勢壯勇,其言是也。」
始皇이 말하였다.
「왕장군은 늙었구려, 어찌 그리 겁내시오!
이장군이 과감한 기세와 힘찬 용맹을 가졌다고 하더니, 그 말이 옳소.」
遂使李信及蒙恬將二十萬南伐荊。
그리고는 이신과 蒙恬에게 20만을 이끌고 남쪽으로 楚를 정벌하게 하였다.
王翦言不用,因謝病,歸老於頻陽。
왕전은 말이 쓰이지 않자 병을 핑계 대며 빈양 땅으로 돌아가 노년을 보냈다.
李信攻平與,蒙恬攻寢,大破荊軍。
이신은 平與를 공격하고, 몽염은 寢을 공격하여 楚軍을 크게 무찔렀다.
信又攻鄢郢,破之,於是引兵而西,與蒙恬會城父。
이신은 또 鄢과 郢을 공격해 무찌르고, 군대를 이끌고 西進하여 城父에서 몽염을 만나려고 하였다.
荊人因隨之,三日三夜不頓舍,大破李信軍,入兩壁,殺七都尉,秦軍走。
楚軍이 추격하여 3일 밤낮을 쉬지도 않고, 이신의 군대를 크게 무찌르고 두 진영에 침입하여 도위 7명을 죽이니 秦軍이 달아났다.
始皇聞之,大怒,自馳如頻陽,見謝王翦曰:
「寡人以不用將軍計,李信果辱秦軍。
今聞荊兵日進而西,將軍雖病,忍棄寡人乎!」
始皇이 알고 크게 노하여 몸소 빈양으로 달려가서 왕전을 만나 사과하였다.
「과인이 장군의 계략을 쓰지 않아 이신이 과연 秦軍을 욕보였소.
지금 들으니 楚軍이 날마다 서진한다고 하니, 장군께서 비록 병중이지만 어찌 차마 과인을 버리리오!」
王翦謝曰:
「老臣罷病悖亂,唯大王更擇賢將。」
왕전이 사양하며 말하였다.
「노신은 병들어 지쳤고 정신이 혼미하니, 대왕께서는 현명한 장수를 택하시기 바랍니다.」
始皇謝曰:
「已矣,將軍勿復言!」
始皇이 사과하였다.
「지난 일이오, 장군께서는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마시오!」
王翦曰:
「大王必不得已用臣,非六十萬人不可。」
왕전이 말하였다.
「대왕께서 꼭 부득이 신을 쓰시려면, 60만의 병사가 아니면 안 됩니다.」
始皇曰:
「為聽將軍計耳。」
始皇이 말하였다.
「장군의 계략을 따를 뿐이오.」
於是王翦將兵六十萬人,始皇自送至灞上。
이에 왕전이 병사 60만 명을 이끄니, 始皇이 몸소 전송하여 灞水까지 이르렀다.
王翦行,請美田宅園池甚眾。
왕전이 出行함에, 좋은 田宅과 園池를 요구함이 매우 많았다.
始皇曰:
「將軍行矣,何憂貧乎?」
始皇이 말하였다.
「장군이 출행함에 어찌 가난을 걱정하시오?」
王翦曰:
「為大王將,有功終不得封侯,故及大王之向臣,臣亦及時以請園池為子孫業耳。」
왕전이 말하였다.
「대왕의 장수로서 공이 있어도 끝내 봉후되지 못했으므로, 대왕의 마음이 신에게 쏠려 있을 때 신도 園池를 청하여 자손의 基業으로 삼고자 합니다.」
始皇大笑。
始皇는 크게 웃었다.
王翦既至關,使使還請善田者五輩。
왕전이 함곡관에 이르도록 사신을 보내어 좋은 논밭을 자꾸 요청함이 다섯번이었다.
或曰:
「將軍之乞貸,亦已甚矣。」
누군가 말하였다.
「장군께서 대가를 구걸하심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王翦曰:
「不然。
夫秦王怚而不信人。
今空秦國甲士而專委於我,我不多請田宅為子孫業以自堅,顧令秦王坐而疑我邪?」
왕전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무릇 진왕은 교만하며 사람을 믿지 않네.
그런데 秦國이 텅 빌 정도로 갑사를 동원하여 전적으로 나에게 맡겼으니, 내가 자손의 기업으로 삼고자 田宅을 많이 요청하여 자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진왕께서 앉아서 나를 의심하도록 만듦이 아니겠는가?」
王翦果代李信擊荊。
왕전은 과연 이신을 대신해 楚를 쳤다.
荊聞王翦益軍而來,乃悉國中兵以拒秦。
楚는 왕전이 군사를 늘려서 옴을 알고 나라 안의 병사를 모두 동원하여 秦을 막았다.
王翦至,堅壁而守之,不肯戰。
왕전이 도착하여 보루를 굳게 쌓고 지키기만 할 뿐,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荊兵數出挑戰,終不出。
楚軍이 수차례 出營하여 싸움을 걸어도 끝내 나가지 않았다.
王翦日休士洗沐,而善飲食撫循之,親與士卒同食。
왕전은 매일 병사를 쉬게 하고 목욕시키며, 잘 먹이고 정성껏 어루만지며 친히 병사과 함께 음식을 먹었다.
久之,王翦使人問:
시일이 오래되자, 왕전이 사람을 시켜 물었다.
「軍中戲乎?」
「군중에서 무엇을 하며 놀던가?」
對曰:
「方投石超距。」
대답하였다.
「돌 던지기와 멀리뛰기를 합니다.」
於是王翦曰:
「士卒可用矣。」
이에 왕전이 말하였다.
「병사를 쓸 만하겠다.」
荊數挑戰而秦不出,乃引而東。
楚는 수차례 싸움을 걸어도 秦이 나오지 않자 병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갔다.
翦因舉兵追之,令壯士擊,大破荊軍。
왕전은 군대를 일으켜 뒤쫓고, 壯士를 시켜 공격하여, 楚軍을 크게 무찔렀다.
至蘄南,殺其將軍項燕,荊兵遂敗走。
蘄水 남쪽에 이르러 장군 項燕을 죽이자 楚軍이 마침내 패주하였다.
秦因乘勝略定荊地城邑。
秦은 승세를 타고 楚 땅의 성읍을 공략해 평정하였다.
歲餘,虜荊王負芻,竟平荊地為郡縣。
1년 만에 초왕 熊負芻를 포로로 잡고 마침내 楚 땅을 평정해 군현으로 삼았다.
因南征百越之君。
그리고 남쪽으로 百越의 군주를 정벌하였다.
而王翦子王賁,與李信破定燕、齊地。
왕전의 아들 왕분은 이신과 함께 燕ㆍ齊 땅을 무찌르고 평정하였다.
秦始皇二十六年,盡并天下,王氏、蒙氏功為多,名施於後世。
秦始皇 26년, 천하를 모두 병합하는데 왕씨ㆍ몽씨의 공적이 컸으며, 그 이름은 후세에까지 널리 퍼졌다.
秦二世之時,王翦及其子賁皆已死,而又滅蒙氏。
秦 二世皇帝 때, 왕전과 그 아들 왕분은 모두 죽었으며, 몽씨는 멸족당하였다.
陳勝之反秦,秦使王翦之孫王離擊趙,圍趙王及張耳鉅鹿城。
陳勝이 秦에 반기를 들자 秦은 왕전의 손자 王離를 보내 趙를 치니, 趙王과 張耳를 鉅鹿의 성에서 포위하였다.
或曰: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王離,秦之名將也。
今將彊秦之兵,攻新造之趙,舉之必矣。」
「왕리는 秦의 명장일세.
지금 강한 秦軍으로 새로 일어난 趙를 공격하니, 틀림없이 성공할 걸세.」
客曰:
손님이 말하였다.
「不然。
夫為將三世者必敗。
必敗者何也?
必其所殺伐多矣,其後受其不祥。
今王離已三世將矣。」
「그렇지 않소.
무릇 3대에 걸쳐 장수가 되면 반드시 패하오.
반드시 패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소?
그 집안이 사람을 죽이고 정벌함이 많으니, 그 후손이 불길한 업을 물려받기 때문이오.
지금 왕리는 3대째의 장수요.」
居無何,項羽救趙,擊秦軍,果虜王離,王離軍遂降諸侯。
얼마 안 되어, 項籍이 趙를 구원하여 秦軍을 쳐서 과연 왕리를 사로잡고, 왕리의 군대는 마침내 제후에게 항복하였다.
▶ 輩: 연속하다.
▶ 堅: 변(變)하지 아니하다 自堅:固位自保。지위를 견고히 하고 자신을 보호함
▶ 顧: “顧…乎?” [그런데 …은 어찌할까?] 접속사 顧 참조
▶ 平與: 지금의 하남성 平與 북이다. 平輿라는 설도 있다.
▶ 寢: 지금의 안휘성 臨泉縣이다.
▶ 열국지 진시황과 왕전의 60만 대군이 필요한지에 대해 이어지는 대화다.
진왕이 말하였다.
“내가 알기로는 옛날 대국은 삼군을 두었고 그다음 큰 나라는 이군, 그리고 소국은 일군을 두었으나 싸움이 일어나면 전군을 동원하지 않았음에도 그 수가 부족하지 않았다고 했소.
후에 오패가 일어나 제후들을 위협했을 때도 그 군세는 불과 천승을 넘지 않았으니, 1승을 75인으로 계산해도 그 군사들의 수효는 결코 10만을 넘지 못했소. 그러나 오늘 장군께서 60만의 군사를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니 그렇게 많은 군사를 동원하였다는 전례를 들어보지 못했소.”
왕전이 대답하였다.
“옛날에는 싸움할 때, 서로 시간을 약속하고 陣을 세우고, 진이 모두 세워지면 싸움으로 돌입했습니다. 또한 행군하거나 싸움을 할 때도 모두 일정한 규칙에 따라 행했으며, 중상을 당한 군사들에게는 다시 공격하지도 않았습니다. 상대방의 죄를 성토만 했지 그 영토를 빼앗지 않았으며, 비록 접전하던 중이라도 예절을 지키며 양보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해서 帝王이 군사를 일으킬 때도 그렇게 많은 군사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제환공이 내정을 일으켜 모은 군사들은 불과 3만 명에 불과했으며 그것도 번을 바꾸어 가며 동원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열국들이 군사들을 동원하여 서로 다투는 방법은 강대국들은 약소국들을 업신여기며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쳐들어가 싸움을 하였다 하면 적군을 죽이고 땅이 있으면 점령합니다.
한 번 싸움에 몇 만 명의 수급을 베고 큰 성의 포위에는 몇 년이 걸리게 되는 때도 있어 그때가 되면 농민들도 모두 무기를 들고나오고, 어린아이들까지도 군적에 올려 싸움에 임하게 되어, 적은 수의 군사들을 동원하게 된다면 결코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게 됩니다. 더욱이 楚는 그 영토가 동남으로 광활하게 펼쳐져 있어 일단 한번 동원령을 내리기만 하면 백만의 군사를 모을 수 있습니다.
신은 60만의 군사로도 혹시 당해내지 못할까 걱정하고 있는데 어찌 다시 거기에서 줄일 수 있겠습니까?”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鄙語云
「尺有所短,寸有所長」。
속어에 일렀다.
「尺이 짧기도 하고, 寸이 길기도 한다.」
白起料敵合變,出奇無窮,聲震天下,然不能救患於應侯。
백기는 적을 헤아려서 변화에 대응하고, 기묘한 계략을 냄이 무궁하여서, 그 명성이 천하를 진동시켰으나, 응후로 인한 재앙에서 자신을 구제하지 못하였다.
王翦為秦將,夷六國,當是時,翦為宿將,始皇師之,然不能輔秦建德,固其根本,偷合取容,以至圽身。
왕전은 秦의 장수로 여섯 나라를 평정했으며, 당시 노련한 장수로 진시황조차 그를 스승으로 받들었으나, 秦을 돕고 덕을 세워서 나라의 근본을 튼튼히 하지 못했고, 비위를 맞추고 환심을 얻다가 헛되이 죽었다.
及孫王離為項羽所虜,不亦宜乎!
손자 왕리가 항우에게 사로잡힘도 마땅한 일이 아닌가!
彼各有所短也。
그들에게는 각자 단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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