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列傳

列傳권123-大宛列傳(大宛열전)

耽古樓主 2023. 10. 16. 03:46

 

이 편은 西域 여러 나라의 역사적 기록이다.
大宛(:dà yuān)은 일반적으로 파미르 고원 바로 서쪽에 위치한 Ferghana 지방을 지칭한다.
張騫은 漢 때 여행가이자 외교관으로 탁월한 탐험으로 실크로드의 개척에 중대한 공헌을 하였다이 편에서는 張騫이 서역을 탐험하여 서역으로 가는 도로를 개척한 내용을 위주로 서역의 여러 나라의 사적을 기록하고 있다.



1. 張騫

大宛之跡,見自張騫。
大宛의 形蹟은 張騫에 의하여 드러났다.

張騫,漢中人。建元中為郎。
張騫은 漢中 사람으로 建元 年間에 郎官이 되었다.

是時天子問匈奴降者,皆言匈奴破月氏王,以其頭為飲器,月氏遁逃而常怨仇匈奴,無與共擊之。
당시 天子가 흉노의 투항를 심문하였는데 모두 말하기를, ‘匈奴가 月氏를 격파하고 月氏왕의 두개골로 술잔으로 사용하였고月氏의 사람은 도망가서 항상 흉노에 원한을 품고 있었으나 함께 흉노를 공격할 나라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漢方欲事滅胡,聞此言,因欲通使。
이 흉노를 멸하려 할 때였으매그 말을 듣고 사신을 통하려 하였다.

道必更匈奴中,乃募能使者。
통하는 도로는 반드시 흉노를 거쳐야 했으매능히 사신의 임무를 수행할 사람을 모집하였다.

騫以郎應募,使月氏,與堂邑氏胡奴甘父俱出隴西。
張騫은 낭관의 신분으로 응모하여 月氏에 사신으로 가게 되어堂邑氏 사람으로 흉노족 노예인 甘父와 함께 隴西로 떠났다.

▶ 大宛(: dà yuān) : 漢 때 중앙아시아의 페르가나에 있던 오아시스 국가에 대한 漢人의 호칭.
▶ 跡 : 形跡. 즉, 大宛國의 땅과 산천.
▶ 見 : 現과 같다. 發現.
▶ 建元 : 漢武帝의 첫 번째 연호로 기원전 140년부터 기원전135년까지 사용하였다.
▶ 月氏 : 月支 또는 大月氏, 大月支. 고대 중앙아시아의 국가. 기원전 3세기 중반~기원전 1세기 중반 중앙아시아와 북아시아에 존재하였던 유목 민족이며 그 국가를 부르는 말이다. 月氏는 한자를 차용한 이름이며 실제 이름은 Thogara로 추정한다.
▶ 遁逃 : 도망쳐 숨다. 도피하다.
▶ 怨仇 : 원한.
▶ 更 : 거치다. 지나가다.
▶ 使 : 사신을 보내다.
▶ 堂邑氏 : 姓.
▶ 胡奴 : 흉노출신의 노예.
▶ 甘父 : 사람 이름.

經匈奴,匈奴得之,傳詣單于。
흉노의 땅을 지날 때 흉노가 그들을 잡아서 單于에게로 보냈다.

單于留之,曰:
「月氏在吾北,漢何以得往使?
吾欲使越,漢肯聽我乎?」
單于가 억류하고 말하였다.
月氏는 우리의 북쪽에 있는데 이 무엇 때문에 사신을 보냈느냐?
내가 南越에 사신을 보낸다면 이 우리를 허락하겠느냐?”

留騫十餘歲,與妻,有子,然騫持漢節不失。
張騫을 10여 년 동안 억류하고 처를 주어 자식까지 낳았으나 張騫은 의 符節을 지니고 잃어버리지 않았다.

居匈奴中,益寬,騫因與其屬亡鄉月氏,西走數十日至大宛。
흉노에서 살던 중 점차 감시가 느슨해지자張騫은 그 기회를 틈타 일행들과 함께 달아나 月氏국으로 향하여서쪽으로 수십 일을 달려 大宛국에 도달하였다.

大宛聞漢之饒財,欲通不得,見騫,喜,問曰:
「若欲何之?」
大宛은 의 물자가 풍부함을 알고서로 通交하고자 하였으나 되지 않던 차에 張騫 일행을 만나자 기뻐하며 물었다.
당신들은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騫曰:
「為漢使月氏,而為匈奴所閉道。
今亡,唯王使人導送我。
誠得至,反漢,漢之賂遺王財物不可勝言。」
張騫이 대답하였다.
을 위하여 月氏에 사신으로 가다가 흉노에게 길을 막혔습니다.
지금 도망쳐 나왔으니 대왕께서 사람을 시켜 인도하여 보내주십시오.
만약 月氏국에 도착하고 다시 으로 돌아가면이 왕께 재물을 보냄을 이루 말할 수 없겠습니다.”

大宛以為然,遣騫,為發導繹,抵康居,康居傳致大月氏。
大宛에서 옳다고 여기고 장건을 보냄에 안내인과 통역원을 붙여 보내주어 康居에 도착하였고康居에서 그들을 大月氏로 보냈다.

大月氏王已為胡所殺,立其太子為王。
大月氏의 왕이 이미 흉노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매그 태자를 세워 왕으로 섬기고 있었다.

既臣大夏而居,地肥饒,少寇,志安樂,又自以遠漢,殊無報胡之心。
그들은 이미 大夏를 정복하여 그 땅에 살고 있었는데 땅은 비옥하고 외적도 없어서 안락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었다또 을 먼 나라로 여겨 유달리 흉노에게 복수할 마음이 없었다.

騫從月氏至大夏,竟不能得月氏要領。
張騫이 月氏를 떠나 大夏로 갔으나 결국 (이 흉노를 공격할 때月氏의 진의를 알 수 없었다.

▶ 單于 : 흉노의 군주.
▶ 節 : 符節. 사신의 증표.
▶ 鄉 : 向과 같다.
▶ 若 : 너. 당신.
▶ 之 : 가다.
▶ 閉道 : 길이 가로 막히다.
▶ 唯 : 바라건대.
▶ 誠 : 만약.
▶ 反 : 返과 같다.
▶ 繹 : 譯과 통한다. 번역. 즉 통역원.
▶ 抵 : ~에 이르다.
▶ 康居 : 서역의 나라 이름.
▶ 大夏 : 서역의 나라 이름.
▶ 肥饒 : 비옥하다.
▶ 要領 : 요점.

留歲餘,還,并南山,欲從羌中歸,復為匈奴所得。
張騫 일행이 月氏국에서 1년 남짓 머물러 있다가 돌아오던 중 南山을 따라 羌族의 땅을 거쳐 귀국하려 하였는데 다시 흉노에게 사로잡혔다.

留歲餘,單于死,左谷蠡王攻其太子自立,國內亂,騫與胡妻及堂邑父俱亡歸漢。
1년 남짓 억류됨에 선우가 죽자 左谷蠡王이 태자를 공격하고 스스로 왕이 되어나라가 혼란하매張騫은 匈奴人 妻와 堂邑父를 데리고 도망쳐 으로 돌아왔다.

漢拜騫為太中大夫,堂邑父為奉使君。
이 張騫을 太中大夫로 임명하고당읍보를 奉使君으로 임명하였다.

騫為人彊力,寬大信人,蠻夷愛之。
張騫은 사람됨이 굳세고 역량이 있고너그럽고 미더우매 蠻夷도 그를 좋아하였다.

堂邑父故胡人,善射,窮急射禽獸給食。
당읍보는 본래 흉노 출신으로 활을 잘 쏘았는데몹시 곤궁하면 새나 짐승을 쏘아 잡아서 식용에 공급하였다.

初,騫行時百餘人,去十三歲,唯二人得還。
처음에 張騫이 길을 떠날 때는 일행이 백여 명이었는데, 13년 후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돌아왔다.

騫身所至者大宛、大月氏、大夏、康居,而傳聞其旁大國五六,具為天子言之。曰:
張騫이 직접 가본 곳은 大宛大月氏大夏康居이었으나전해 들은 인접한 5, 6개의 大國까지 황제에게 모두 보고하였다.

▶ 并 : 旁과 같다. 곁.
▶ 南山 : 崑崙山. 阿爾金山, 祁連山을 말한다.
▶ 單于死 : 漢武帝 元朔 3년(기원전 126년) 흉노의 군신선우가 죽었다. 軍臣單于의 아우 左谷蠡王 伊稚斜가 스스로 선우에 오르고, 군신선우의 태자인 於單을 공격하여 물리쳤다. 오단은 도망쳐 漢에 투항하였다. <사기 권 110.흉노열전>
▶ 胡妻 : 張騫의 흉노 사람인 아내.
▶ 堂邑父 : 甘父. 주인인 堂邑氏의 姓을 따랐으므로 당읍보라 한 것이다.
▶ 蠻夷 : 남방의 미개한 민족이라는 의미로 南蠻을 말한다. 南蠻은 중국 역사에서 남쪽에 사는 이민족을 일컬어 부르는 말이다. 蠻夷라는 표현으로 오랑캐를 통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일반적으로 동서남북의 각 방위에 따라 오랑캐를 구분하여 東夷·西戎·南蠻·北狄으로 불렀다.
▶ 具 : 모두.


 張騫의 보고서

大宛在匈奴西南,在漢正西,去漢可萬里。
大宛국은 흉노의 서남쪽의 正西쪽에 있는데에서 대략 만 리쯤 떨어져 있습니다.

其俗土著,耕田,田稻麥。
그들의 풍속은 토착하여 살면서 밭을 갈아서 벼와 보리 농사를 짓습니다.

有蒲陶酒。
포도주가 있습니다.

多善馬,馬汗血,其先天馬子也。
좋은 말이 많은데 말은 피와 같은 땀을 흘리고 그 말의 조상은 天馬의 새끼라고 합니다.

有城郭屋室。
성곽이 있어서 가옥을 짓고 삽니다.

其屬邑大小七十餘城,眾可數十萬。
그들의 屬邑은 크고 작은 70여 개의 이고백성은 대략 수십만입니다.

其兵弓矛騎射。
그들의 무기는 활과 창이며 말을 타고 활을 쏩니다.

其北則康居,西則大月氏,西南則大夏,東北則烏孫,東則扜穼、于窴。
그 북쪽에는 康居서쪽에는 大月氏서남쪽에는 大夏동북쪽에는 烏孫동쪽에는 扜穼于窴의 나라가 있습니다.

于窴之西,則水皆西流,注西海;
其東水東流,注鹽澤。
우전의 서쪽에는 물이 모두 서쪽으로 흘러 서해로 흘러 들어가고동쪽은 물이 동쪽으로 흘러 鹽澤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鹽澤潛行地下,其南則河源出焉。
염택에서 물이 땅속으로 흐르다가 남쪽으로 오면 黃河의 원류가 됩니다.

多玉石,河注中國。
玉石이 많고 황하는 중국으로 흐릅니다.

而樓蘭、姑師邑有城郭,臨鹽澤。
樓蘭과 姑師 읍에는 성곽이 있고 염택과 접하고 있습니다.

鹽澤去長安可五千里。
염택은 長安에서 대략 5천 리 떨어져 있습니다.

匈奴右方居鹽澤以東,至隴西長城,南接羌,鬲漢道焉。
흉노의 오른쪽은 염택의 동쪽에 있으며농서의 長城에 이르러 남쪽으로 과 접해 으로 통하는 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 可 : 대략.
▶ 田稻麥 : 벼와 보리의 농사.
▶ 蒲陶 : 葡萄와 같다.
▶ 馬汗血 : 汗血馬. 중국의 서역 지방에서 산출되던 명마. 한혈보마, 大宛마 등으로 불렸다.
▶ 烏孫 : 고대의 종족명.
▶ 扜罙 : 고대 서역의 나라 이름.
▶ 于窴 : 고대 서역의 나라 이름.
▶ 海 : 고대 큰 호수 이름. 즉 지금의 青海湖.
▶ 鹽澤 : 蒲昌海라고도 한다.
▶ 河源 : 黄河의 원류.
▶ 樓蘭 : 고대 서역의 나라 이름. 후에 鄯善으로 개명되었다.
▶ 姑師 : 고대 서역의 나라 이름.
▶ 鬲漢道 : 漢으로 가는 길을 가로 막다.


 

烏孫

烏孫在大宛東北可二千里,行國,隨畜,與匈奴同俗。
烏孫은 大宛의 동북쪽 대략 2천 리에 있으며유목의 나라로서 가축을 따라다니며 흉노와 풍속이 같습니다.

控弦者數萬,敢戰。
활을 쏘는 군사가 수만이며 용감하게 싸웁니다.

故服匈奴,及盛,取其羈屬,不肯往朝會焉。
과거에는 흉노에 복속되었으나 강성해진 뒤에 흉노에 보낸 인질을 거두어가고조회에도 가려 하지 않습니다.

▶ 烏孫 : 인도·이란 계통에 속하는 종족으로, 투르크어를 사용하는 유목 민족이다. 오손족은 중국의 북서부의 月氏 근처에 살았다. 처음에 甘肅 서부의 敦煌·祁連 사이에서 月氏와 인접하여 살고 있었는데, 月氏의 공격을 받아 오손의 왕이 살해되자 흉노의 보호를 청하였고, 후일 흉노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천산방면에 있던 月氏를 공격하여 서투르키스탄으로 몰아내고 자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 行國 : 백성이 정착하지 않고 사는 나라. 즉, 유목민족.
▶ 控弦 : 활을 쏘는 병사.
▶ 故 : 종전.
▶ 羈屬 : 친속이 속박되다. 인질.

 

康居

康居在大宛西北可二千里,行國,與月氏大同俗。
康居는 大宛의 서북쪽으로 대략 2천 리쯤에 있으며유목민의 나라인데 月氏와 대체로 풍속이 동일합니다.

控弦者八九萬人。與大宛鄰國。
활을 쏘는 군사가 8~9만 명이며 大宛의 이웃나라입니다.

國小,南羈事月氏,東羈事匈奴。
나라가 작아서 남쪽은 月氏에 복속되어 있고동쪽은 흉노에 복속되어 있습니다.

▶ 康居 : 현재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남부 인근 지역에 세워진 고대 국가를 한자로 음을 빌려 나타낸 말이다. 실제 국가의 이름과 존재 여부도 아직은 확실하지 않다. 康居의 여름 수도가 지금의 타슈켄트라고 추정한다. 기원전 128년 張騫이 방문한 후 기록에 남긴 보고서에만 등장한다.
▶ 羈事 : 핍박에 의하여 타인을 섬기다. 복속되다.

 

奄蔡

奄蔡在康居西北可二千里,行國,與康居大同俗。
奄蔡는 康居 서북쪽으로 대략 2천 리쯤에 있으며유목의 나라인데 康居와 대체로 풍속이 동일합니다.

控弦者十餘萬。
활을 쏘는 군사가 10여 만입니다.
臨大澤,無崖,蓋乃北海云。
大澤에 임하여 있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으니 아마도 北海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 奄蔡 : 중국 漢 때 서역의 고대 국가이며 ‘알란 족’을 이르던 이름. 나머지는 캅카스 북방에 잔류하였다고 한다.
▶ 崖 : 끝. 경계.
▶ 大澤 : 黑海로 추정된다.

 

大月氏

大月氏在大宛西可二三千里,居媯水北。
大月氏는 大宛의 서쪽으로 대략 2, 3천 리쯤에 있으며嬀水 북쪽에 위치합니다.

其南則大夏,西則安息,北則康居。
그 남쪽은 大夏이고 서쪽은 安息이고 북쪽은 康居입니다.

行國也,隨畜移徙,與匈奴同俗。
유목하는 나라로서 가축을 따라 옮겨 다니며 흉노와 풍속이 같습니다.

控弦者可一二十萬。
활을 쏘는 군사가 대략 10~20만입니다.

故時彊,輕匈奴,及冒頓立,攻破月氏,至匈奴老上單于,殺月氏王,以其頭為飲器。
과거에는 강성하여 흉노를 업신여겼는데흉노의 冒頓이 즉위한 후에 月氏를 격파하고老上單于에 이르러 月氏王을 죽이고 그 두개골을 술잔으로 삼았습니다.

始月氏居敦煌、祁連閒,及為匈奴所敗,乃遠去,過宛,西擊大夏而臣之,遂都媯水北,為王庭。
처음에 月氏는 敦煌과 祁連山에 살았는데흉노에게 패하자 멀리 달아나 大宛을 지나서 서쪽으로 大夏를 공격하여 신하로 삼고규수의 북쪽에 도읍을 정하고 王庭으로 삼았습니다.

其餘小眾不能去者,保南山羌,號小月氏。
떠나지 못하고 남은 일부 무리는 남산의 羌族에게 보호를 받으며 小月氏라고 불립니다.

▶ 大月氏 : 月氏. 고대 중앙아시아의 국가. 기원전 3세기 중반~기원전 1세기 중반 중앙아시아와 북아시아에 존재하였던 유목 민족이며 그 국가를 부르는 말이다. 月氏는 한자를 차용한 이름이며 실제 이름은 Thogara로 추정한다.
▶ 媯水 : 일반적으로 Amu Darya강을 나타낸 것으로 본다.
▶ 冒頓(묵돌/묵특) : 전한 때의 匈奴單于. 성은 攣鞮氏다. 秦二世 기원전 209 아버지 頭曼을 살해하고 自立하여 선우가 되었다.
▶ 老上單于 : 흉노의 제2대 선우로서 치세는 기원전 174 ~ 161년. 冒頓單于의 아들. 두 차례에 걸친 묵특의 月氏 원정에 이어 세 번째로 공격하여 月氏王을 죽이고 그 두개골을 술잔으로 만드는 전과를 올렸다.
▶ 敦煌 : 기원전 117년 漢武帝가 설치한 돈황군으로 漢과 당나라 시절에 중국과 서역을 연결하는 실크로드의 중요한 거점 지역이었다. 이곳은 실크로드의 남쪽 길과 북쪽 길이 만나는 곳이므로 교역에서 매우 중요하였으며,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지점이다. 이것은 원래 漢字語가 아니라 月氏 계통의 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 祁連 : 匈奴語로 <하늘>을 뜻하여 天山이라고도 이름이 붙여졌다.
▶ 王庭 : 單于가 도읍하는 곳을 王庭이라 하였으며, 높은 천막 앞의 땅이 뜰과 같았으므로 王庭이라 한 것이다.
▶ 保 : 보전하다.
▶ 南山 : 祁連山.
▶ 羌 : 고대 중국 서쪽의 소수민족 중의 하나

 

安息

安息在大月氏西可數千里。
安息은 大月氏의 서쪽으로 대략 수천 리에 있습니다.

其俗土著,耕田,田稻麥,蒲陶酒。
그들의 풍속은 토착하여 농사를 짓는데벼와 보리를 경작하며 포도주가 있습니다.

城邑如大宛。
성읍은 大宛과 같습니다.

其屬小大數百城,地方數千里,最為大國。
거기에 속한 크고 작은 성이 수백 개이고땅이 사방 수천 리나 되는 가장 큰 나라입니다.

臨媯水,有市,民商賈用車及船,行旁國或數千里。
규수에 임하여 있으며 시장이 있으며백성 중 상인은 수레와 배를 이용해 이웃 나라로 가는데 때로는 수천 리를 가기도 합니다.

以銀為錢,錢如其王面,王死輒更錢,效王面焉。
은으로 동전을 만드는데동전의 펴면은 그 나라 왕의 얼굴과 같고왕이 죽을 때마다 동전을 바꾸어 새 임금의 얼굴을 모방합니다.

畫革旁行以為書記。
가죽에다 횡으로 획을 그어 문자를 기록합니다.

其西則條枝,北有奄蔡、黎軒。
그 서쪽에는 條枝가 있으며북쪽에는 奄蔡黎軒이 있습니다.

▶ 安息 : 고대 서아시아에 있던 이란족의 파르티아 왕국을 중국에서 이르던 이름. Parthia(전248 ~ 후224) 왕조를 가리키며, 이 왕조의 건설자의 이름인 Arsak을 음사한 것이 安息이다.
▶ 效 : 모방하다.
▶ 畫革 : 가죽에 그려 넣다.
▶ 旁行 : 橫으로 쓰다.
▶ 書記 : 문자.
▶ 黎軒 : 漢 때 서역의 나라이름으로 大秦國이라고도 하였다.

 

條枝

條枝在安息西數千里,臨西海。
條枝는 안식의 서쪽 수천 리에 있고西海에 접합니다.

暑溼。耕田,田稻。
덥고 습합니다농사를 지으며 벼를 심습니다.

有大鳥,卵如甕。
큰 새가 있는데 알의 크기가 항아리와 같습니다.

人眾甚多,往往有小君長,而安息役屬之,以為外國。
백성이 대단히 많으며 곳곳에 小君長이 있습니다안식이 조지를 복속시켜 속국으로 삼고 있으나 외국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國善眩。
그 나라 사람들은 마술에 뛰어납니다.

安息長老傳聞條枝有弱水、西王母,而未嘗見。
안식의 長老들은 조지에는 弱水와 西王母가 있다고 전하여 들었으나 아직 본 적은 없다고 합니다.

▶ 條支 : 카르데아설 ·파루스설·시리아설 등이 있다. 현재 널리 알려진 것은 카르데아설이지만, 시리아설이 훨씬 합당하다. 카르데아설은 티그리스 하구의 작은 나라 Mesene을 가리키는 시리아語의 平原(:desht)이나 아랍어의 섬[島:jezire]에서 語源을 찾는 데 비해서, 시리아설은 직접 이를 안티오키아·세레우키아(都城名) 내지 세레우스코(王朝名)에서 그 어원을 찾고 있다.
▶ 大鳥 : 일반적으로 駝鳥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 眩 : 幻과 통한다. 幻術, 마술을 말한다.
▶ 弱水 : 神仙이 살았다는 中國 서역의 傳說的인 강. 길이가 3,000리나 되며, 부력이 매우 약하여 기러기의 털도 가라앉는다고 한다.
▶ 西王母 : 중국 전설상의 여신이며, 곤륜산에 산다고 한다. 인간의 재앙과 五刑을 관리한다. <산해경 서산경>

 

 

大夏

大夏在大宛西南二千餘里媯水南。
大夏는 大宛의 서남쪽으로 2천여 리에 있으며 규수의 남쪽입니다.

其俗土著,有城屋,與大宛同俗。
그들의 풍속은 토착하므로 성곽과 집이 있으며 大宛과 풍속이 같습니다.

無大君長,往往城邑置小長。
나라를 통치하는 大君長은 없고 곳곳의 성읍에 소군장을 두고 있습니다.

其兵弱,畏戰。
그들의 군사는 약하고 싸움을 두려워합니다.

善賈市。
그들은 상업에 능숙합니다.

及大月氏西徙,攻敗之,皆臣畜大夏。
大月氏가 서쪽으로 옮겨가서 그들을 쳐서 패퇴시키고 大夏를 모두 속국으로 만들었습니다.

大夏民多,可百餘萬。
大夏의 백성은 많아서 대략 백여 만입니다.

其都曰藍市城,有市販賈諸物。
그들의 도읍은 藍市城이라고 부르는데시장이 있어 각종 물건을 판매합니다.

其東南有身毒國。
그 동남쪽에는 身毒國이 있습니다.”

▶ 臣畜 : 신하로 기르다. 즉, 속국으로 만들다. 畜은 기를 ‘휵’. 기르다, 양육하다 의 뜻
▶ 身毒国 : 고대 중국인이 인도 지방을 부른 명칭. 중원 대륙의 북방과 서역지방에 걸쳐 있었던 나라로 漢 초기에는 작은 제후국이었으나 漢 후기에 광대한 지역으로 확산되었으며 다섯 제후국으로 나뉘어졌다. <漢書>에는 天篤, <後漢書>에는 天竺으로 표기되어 있다.


 

 

張騫의 보고서

騫曰:
그리고 張騫이 말하였다.

「臣在大夏時,見邛竹杖、蜀布。
신이 大夏에 있을 때邛都의 竹杖과 蜀郡의 베를 보았습니다.

問曰:
『安得此?』
어디서 이것을 가지고 왔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大夏國人曰:
『吾賈人往市之身毒。
身毒在大夏東南可數千里。
其俗土著,大與大夏同,而卑溼暑熱云。
其人民乘象以戰。
其國臨大水焉。』
대하국 사람들이 말하였습니다
우리 상인들이 身毒에 가서 사왔습니다.
신독은 大夏의 동남쪽에서 대략 수천 리에 있습니다.
그들의 풍속은 정착하여 살며 大夏와 거의 같으나 땅이 낮고 습하고 기후가 덥다고 합니다.
그 백성은 코끼리를 타고 싸웁니다.
그 나라는 大水에 인접하여 있습니다.’

以騫度之,大夏去漢萬二千里,居漢西南。
이것으로 신이 판단하건대 大夏는 에서 1만 2천리 떨어져 있고漢 서남쪽에 위치합니다.

今身毒國又居大夏東南數千里,有蜀物,此其去蜀不遠矣。
신독국은 또 大夏의 동남쪽으로 수천 리에 위치하고 촉의 물건들이 있으매 이것은 촉에서 거리가 멀지 않다는 것입니다.

今使大夏,從羌中,險,羌人惡之;
少北,則為匈奴所得;
從蜀宜徑,又無寇。」
지금 大夏로 사신을 보내면 강족의 험한 길을 지나야 하매강족이 싫어할 터입니다.
북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흉노에게 붙잡히게 될 터이매촉에서 가면 길도 가깝고 또 외적도 없을 터입니다.”

▶ 臣在大夏時 : 元狩 기원전 122년에 博望侯 張騫이 大夏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사기 권116. 西南夷列傳>

 

 

列傳권116-西南夷列傳(서남이열전)

西南夷列傳은 중국의 서남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소수 민족인 西南夷의 위치와 풍속 등에 대하여 기록하였으며, 漢武帝에 이르러 이들을 평정하는 과정을 기록하였다. 그 가운데 비교적 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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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邛 : 邛都. 西南夷의 고대 부족명
▶ 蜀布 : 蜀郡에서 생산되는 베.
▶ 賈人 : 상인.
▶ 可 : 대략.
▶ 身毒国 : 고대 중국인이 인도 지방을 부른 명칭. 중원 대륙의 북방과 서역지방에 걸쳐 있었던 나라로 漢 초기에는 작은 제후국이었으나 漢 후기에 광대한 지역으로 확산되었으며 다섯 제후국으로 나뉘어졌다. <漢書>에는 天篤, <後漢書>에는 天竺으로 표기되어 있다.
▶ 度 : 헤아리다. 추측하다.
▶ 去 : 거리.
▶ 使大夏 : 大夏로 사신을 보내다.
▶ 險 : 지세가 험준하다.
▶ 惡 : 싫어하다.

 

天子既聞大宛及大夏、安息之屬皆大國,多奇物,土著,頗與中國同業,而兵弱,貴漢財物;
其北有大月氏、康居之屬,兵彊,可以賂遺設利朝也。
且誠得而以義屬之,則廣地萬里,重九譯,致殊俗,威德遍於四海。
張騫의 보고를 듣고 천자가 다음과 같이 알게 되었다.
大宛과 大夏와 安息 等屬은 모두 큰 나라로서 진기한 물건이 많고 백성은 정착하여 살고 있으며 산업도 과 자못 비슷하나군사는 약하고 의 재물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그 북쪽에는 大月氏와 康居 等屬이 있는데군사는 강하지만 예물을 보내고 이로움을 베풀면 입조시킬 수 있을 터이다.
게다가 만약 도의로써 그들을 복속시킨다면 만 리의 영토를 넓힐 수 있고重譯을 여러 번 거쳐서라도 풍속이 다른 인민을 불러들여漢 황제의 위엄과 은덕을 천하에 널리 떨칠 수 있을 터이다.’

天子欣然,以騫言為然,乃令騫因蜀犍為發閒使,四道并出:
出駹,出冉,出徙,出邛、僰,皆各行一二千里。
황제가 매우 흡족하여 張騫의 말이 옳다고 여기매張騫을 시켜 蜀郡과 犍爲郡에 밀사를 파견하여 네 길로 동시에 출발하게 하였다.
그들은 각기 과 에서 출발하였는데모두 제각기 1~2천 리를 갔다.

其北方閉氐、筰,南方閉巂、昆明。
그런데 북쪽은 와 에게 막히고남쪽은 와 昆明에서 저지되었다.

昆明之屬無君長,善寇盜,輒殺略漢使,終莫得通。
곤명의 무리는 君長이 없고 약탈과 도둑질을 잘했기에 漢 사신을 보는 대로 죽이고 약탈하여 끝내 漢 사신이 통과할 수 없었다.

▶ 設利 : 이로움을 베풀다.
▶ 誠得而以義屬之 : 而는 부사어와 술어 사이에 놓여, 문장의 독법을 완화해 주는 역할을 해준다. 而의 이와 같은 용법은 현대 중국어에는 없기 때문에 해석하지 않는다.
¶ 孟子曰 其詳은 不可得而聞也로라
○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상세한 내용은 내가 듣지 못하였소”
¶ 子路率爾而對曰. 《論語 先進》
○ 자로가 경솔하게 대답했다. <허사 참조>

 

 

한문의 허사(虛詞) 而

한문의 허사(虛詞) 而 而已 ~일 따름이다 而後 ~한 연후에 而는 2인칭 대명사로서 爾자 및 汝자와 통한다. 또한 접속사로서 그 용법이 매우 다양하며, 그 뜻 또한 매우 신축적이다. (1) 而는 주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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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重九譯 : 여러 차례 통역을 거치다.
▶ 殊俗 : 풍속이 같지 않다.
▶ 犍為 : 郡 이름.
▶ 發 : 파견하다.
▶ 閒使 : 密使. 황제가 바로 王然于, 柏始昌, 呂越人 등에게 영을 내려 西夷의 서쪽 지름길로 나가 신독국을 찾아보도록 지시하였다. <사기 권116. 西南夷列傳>
▶ 駹, 冉, 徙, 邛, 僰 : 西南夷의 종족명과 나라명. 사기 권116. 西南夷열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 氐筰 : 고대 부족명.
▶ 巂, 昆明 : 고대 西南夷의 종족명.
▶ 殺略 : 殺掠. 살육하고 약탈하다.

然聞其西可千餘里有乘象國,名曰滇越,而蜀賈姦出物者或至焉,於是漢以求大夏道始通滇國。
그러나 듣기에서쪽으로 대략 1천 리에 코끼리를 타고 다니는 나라가 있고 이름은 滇越이라고 하고촉의 상인으로 몰래 물건을 반출하는 자가 가기도 한다고 하므로이 大夏로 통하는 길을 요구하여 비로소 滇國을 통과하게 되었다.

初,漢欲通西南夷,費多,道不通,罷之。
처음에 이 西南夷와 길을 개통하려 하였으나 비용이 많이 들어서 길을 뚫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及張騫言可以通大夏,乃復事西南夷。
張騫이 大夏와 通交할 수 있다고 주장하자 다시 西南夷와 왕래하는 길을 뚫게 되었다.

騫以校尉從大將軍擊匈奴,知水草處,軍得以不乏,乃封騫為博望侯。
張騫은 校尉의 신분으로 大將軍 위청을 종군하여 흉노를 공격함에水草가 있는 곳을 알고 있어서 군대가 困乏을 겪지 않아도 되었으매博望侯로 봉해졌다.

是歲元朔六年也。
그 해가 元朔 6(기원전 123)이다.

其明年,騫為衛尉,與李將軍俱出右北平擊匈奴。
그 이듬해에 張騫이 衛尉가 되어 이광 장군과 함께 右北平에서 출격하여 흉노를 쳤다.

匈奴圍李將軍,軍失亡多;
而騫後期當斬,贖為庶人。
흉노가 李將軍을 포위하여 漢軍의 사상자가 많았으며,
張騫은 약정한 기일에 늦어 그 죄가 참수형에 해당하였으나 속죄금을 내고 서민이 되었다.

是歲漢遣驃騎破匈奴西域數萬人,至祁連山。
이해에 이 驃騎將軍 霍去病을 파견하여 서쪽 변경에 있는 흉노 수만 명을 격파하고 祁連山에 이르렀다.

其明年,渾邪王率其民降漢,而金城、河西西并南山至鹽澤空無匈奴。
그 이듬해에 渾邪王이 그의 백성을 거느리고 에 투항하매金城河西의 서쪽에서 남산을 따라 鹽澤에 이르기까지 텅 비어 흉노가 없어졌다.

匈奴時有候者到,而希矣。
匈奴가 때로 斥候兵을 보내기도 하였으나 드물었다.

其後二年,漢擊走單于於幕北。
2년 후에 이 선우를 공격하여 사막 북쪽으로 달아나게 하였다.

▶ 滇越 : 西南夷의 국가명.
▶ 姦出物 : 몰래 물건을 팔다.
▶ 大將軍 : 衛青을 말한다.<사기 권 111. 위장군표기열전>
▶ 元朔 : 漢武帝의 세 번째 연호.
▶ 李將軍 : 李廣. 박망후 張騫, 낭중령 이광은 右北平에서 함께 출병하여 두 갈래로 進軍하여 일제히 흉노를 공격하였다.<사기 권 111. 위장군표기열전>
▶ 失亡 : 사상하다.
▶ 後期 : 약정한 기일에 늦다. 박망후는 행군을 지체한 죄에 연루되어 그 죄가 참수형에 해당하였으나 속죄금을 내고 서민이 되었다. <사기 권 111.위장군표기열전>
▶ 當斬 : 참수형에 해당하다.
▶ 贖 : 죄를 면하기 위하여 속죄금을 바치다.
▶ 驃騎 : 驃騎將軍 霍去病.
▶ 侯者 : 정찰병.
▶ 希 : 稀와 같다. 드물다.
▶ 幕北 : 대사막 북쪽. 幕은 漠과 통한다.


是後天子數問騫大夏之屬。
이후로 황제가 자주 張騫에게 大夏 등에 관하여 물었다.

騫既失侯,因言曰:
張騫은 이때 제후의 작위를 잃은 상태였고대답하였다.

「臣居匈奴中,聞烏孫王號昆莫,昆莫之父,匈奴西邊小國也。
신이 흉노에 있을 때 듣기를烏孫의 왕은 昆莫이고 昆莫의 아비는 흉노의 서쪽 변방의 小國의 왕이라고 하였습니다.

匈奴攻殺其父,而昆莫生棄於野。
匈奴가 그의 아비를 공격하여 죽이매 昆莫은 태어나자마자 들판에 버려졌습니다.

烏嗛肉蜚其上,狼往乳之。
까마귀가 고기를 물고 와서 그 위를 날고늑대가 와서 젖을 먹였습니다.

單于怪以為神,而收長之。
單于가 괴이하고 신기하게 여기고 거두어 길렀습니다.

及壯,使將兵,數有功,單于復以其父之民予昆莫,令長守於西域。
昆莫이 장성하여 군대를 거느리게 하자 여러 차례 공을 세우매單于가 다시 그 아비의 백성을 昆莫에게 주고 장기간 서쪽 지역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昆莫收養其民,攻旁小邑,控弦數萬,習攻戰。
昆莫이 그의 백성을 잘 보살피고 가까운 소읍을 공격하니활을 쏘는 군사가 수만이 전투에 익숙하였습니다.

單于死,昆莫乃率其眾遠徙,中立,不肯朝會匈奴。
흉노의 선우가 죽자 昆莫은 그의 무리를 이끌고 먼 곳으로 옮겨가서 독립하였으며 흉노에 조회하지 않았습니다.

匈奴遣奇兵擊,不勝,以為神而遠之,因羈屬之,不大攻。
匈奴가 돌격대를 보내 기습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자昆莫을 神人이라 여기고 멀리하여 그저 牽制하기만 하고 대대적으로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今單于新困於漢,而故渾邪地空無人。
지금 單于가 근래에 에 의하여 곤란하고 원래 혼야왕의 땅이던 곳은 텅 비어 사람이 살지 않습니다.

蠻夷俗貪漢財物,今誠以此時而厚幣賂烏孫,招以益東,居故渾邪之地,與漢結昆弟,其勢宜聽,聽則是斷匈奴右臂也。
蠻夷의 습속은 의 재물을 탐내니지금 만약 이때 후한 예물을 오손에게 보내고동쪽으로 더욱 불러들여 혼야왕의 옛 땅에 살게 하고 과 형제의 의를 맺게 하면그 형세상 오손은 마땅히 聽從할 터이고청종하면 흉노의 오른팔을 끊는 것입니다.

既連烏孫,自其西大夏之屬皆可招來而為外臣。」
오손과 연합한 후에는 그 서쪽으로부터 大夏 등을 모두 끌어들여 의 外臣으로 만들 수 있겠습니다.”

▶ 昆莫 : 獵驕靡. 오손의 초대 군주다. 군주의 칭호는 昆靡, 昆莫이다.
▶ 嗛 : 입에 물다.
▶ 蜚 : 飛와 같다.
▶ 乳 : 젖을 먹이다.
▶ 收長之 : 昆莫을 거두어 기르다.
▶ 將兵 : 군대를 거느리다.
▶ 長守 : 오랫동안 지키게 하다.
▶ 中立 : 독립하다.
▶ 羁属 : 견제하기로 약속함.
▶ 厚幣 : 후한 예물. 융숭한 예물.
▶ 益東 : 더욱 동쪽으로 오다.
▶ 勢 : 정세.
▶ 宜聽 : 마땅히 聽從하다.

天子以為然,拜騫為中郎將,將三百人,馬各二匹,牛羊以萬數,齎金幣帛直數千巨萬,多持節副使,道可使,使遺之他旁國。
武帝가 옳다고 여기고 張騫을 中郎將으로 임명하여 3백 명을 거느리게 하고병사마다 말 2소와 양 수만 마리황금과 비단을 가지고 가게 하니 가치가 수천 만이었고,
符節을 지닌 副使를 다수 보내어도로가 개통되면 그들을 이웃 나라에도 보내게 하였다.

▶ 將 : 거느리다.
▶ 齎 : 가져가다. 휴대하다.
▶ 直 : 值와 통한다. 가치.
▶ 數千巨萬 : 수천만금. 巨萬은 億, 막대하다.

騫既至烏孫,烏孫王昆莫見漢使如單于禮,騫大慚,知蠻夷貪,乃曰:
「天子致賜,王不拜則還賜。」
張騫이 烏孫에 도착하자오손왕 昆莫이 漢 사신을 접견함에 흉노의 선우를 대하는 예절과 같으매張騫은 매우 부끄럽게 여겼으나蠻夷가 탐욕스러움을 알고 말하였다.
천자께서 보내신 예물이니 왕께서 절하지 않으시려면 예물을 되돌려주십시오

昆莫起拜賜,其他如故。
昆莫이 일어나서 절하고 예물을 받았으나그 나머지 예법은 여전하였다.

騫諭使指曰:
「烏孫能東居渾邪地,則漢遣翁主為昆莫夫人。」
張騫은 사신으로 온 취지를 일러주었다.
오손이 동쪽으로 옮겨와서 혼야왕의 옛 땅에 산다면 이 翁主를 보내 昆莫의 부인으로 삼겠습니다.”

烏孫國分,王老,而遠漢,未知其大小,素服屬匈奴日久矣,且又近之,其大臣皆畏胡,不欲移徙,王不能專制。
오손은 나라가 분열되고 왕은 연로하고과 거리가 머니 이 크기도 몰랐고본래 흉노에 복속된 지 오래되고또 흉노와 근접하였고대신들이 모두 흉노를 무서워하며 이사하지 않으려 하매왕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었다.

騫不得其要領。
張騫이 오손왕의 관건이 되는 답변을 얻을 수가 없었다.

昆莫有十餘子,其中子曰大祿,彊,善將眾,將眾別居萬餘騎。
昆莫에게 10여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그 중 大祿이라는 아들이 용감하고 병사를 잘 다루며군대를 거느리고 따로 거주하였는데만여 였다.

大祿兄為太子,太子有子曰岑娶,而太子蚤死。
대록의 형이 태자이고태자에게 岑娶라는 아들이 있었으나 태자가 일찍 죽었다.

臨死謂其父昆莫曰:
「必以岑娶為太子,無令他人代之。」
臨終에 그의 아버지 昆莫에게 일렀다.
꼭 잠취를 태자로 삼아주시고다른 사람이 그를 대신하게 하지 마십시오.”

昆莫哀而許之,卒以岑娶為太子。
昆莫이 불쌍히 여겨 허락하고 마침내 잠취를 태자로 삼았다.

大祿怒其不得代太子也,乃收其諸昆弟,將其眾畔,謀攻岑娶及昆莫。
大祿은 자신이 태자를 잇지 못함에 분노하여 형제들을 끌어모으고 군사를 이끌고 造反하여 잠취와 昆莫을 공격하기를 모의하였다.

昆莫老,常恐大祿殺岑娶,予岑娶萬餘騎別居,而昆莫有萬餘騎自備,國眾分為三,而其大總取羈屬昆莫,昆莫亦以此不敢專約於騫。
昆莫이 연로하였는데항상 대록이 잠취를 살해할까 염려하여 잠취에게 만여 를 주어 다른 곳에서 살게 하였고昆莫 자신도 만여 를 거느리고 자신을 防備하니나라의 백성이 셋으로 나뉘었으나 대체로 昆莫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매昆莫도 역시 이 때문에 감히 마음대로 張騫에게 약속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騫因分遣副使使大宛、康居、大月氏、大夏、安息、身毒、于窴、扜穼及諸旁國。
張騫이 이 때문에 副使들을 나누어서 大宛康居大月氏大夏安息身毒于闐扜穼 및 인접한 나라들에 사신으로 보냈다.

烏孫發導譯送騫還,騫與烏孫遣使數十人,馬數十匹報謝,因令窺漢,知其廣大。
오손왕이 嚮導와 通譯員을 뽑아 張騫의 還國을 餞送하였다.
張騫은 오손왕이 보내는 사신 수십 명과 함께 수십 필의 말을 이끌고 와서천자에게 보고하고 答謝하게 하여이를 기회로 사신들이 을 살펴서 이 광대함을 알게 하려 하였다.

騫還到,拜為大行,列於九卿。
張騫이 환국하여 당도하자 황제가 大行에 임명하여 九卿의 반열에 들게 하였다.

歲餘,卒。
1여 년 뒤에 張騫이 죽었다.

烏孫使既見漢人眾富厚,歸報其國,其國乃益重漢。
오손의 사신이 의 인구가 많고 물자가 풍요함을 보고귀국하여 보고하니 오손이 을 더욱 존중하게 되었다.

其後歲餘,騫所遣使通大夏之屬者皆頗與其人俱來,於是西北國始通於漢矣。
그 후 1년쯤 지나자張騫이 보내어 大夏 等屬과 통교하게 한 사신들이 대부분 그 나라 사람들과 함께 돌아오니이때부터 서북의 나라들이 비로소 과 왕래하기 시작하였다.

然張騫鑿空,其後使往者皆稱博望侯,以為質於外國,外國由此信之。
그리하여 張騫이 처음 개척하였으므로그 후에 사신으로 가는 자는 모두 '박망후'라고 칭하고외국에서 신임을 얻고자 하였으며외국 역시 이러한 까닭에 그들을 신임하였다.

▶ 烏孫 : 인도·이란 계통에 속하는 종족으로, 투르크어를 사용하는 유목 민족이다. 오손의 군주의 칭호는 昆靡, 昆莫이다.
▶ 慚 : 부끄러워하다.
▶ 諭 : 타이르다. 깨우치다.
▶ 指 : 旨와 통한다. 취지.
▶ 翁主 : 제후왕의 딸.
▶ 服屬 : 귀속되다.
▶ 專制 : 독자적으로 결정하다.
▶ 要領 : 요점.
▶ 大祿 : 오손국의 관직명이기도 하다. 재상 다음의 직위이다.
▶ 岑娶 : 軍須靡. 오손의 2대 군주다. 관직명인 岑郰라고도 한다. 선대 군주인 昆莫 엽교미의 손자이자 원래 昆莫의 태자의 아들로, 태자가 엽교미보다 일찍 죽으면서 태자로 삼도록 권하여 태자가 되었다.
▶ 畔 : 叛과 통한다. 배반하다.
▶ 大總 : 대체로.
▶ 羈屬 : 매여있다. 귀속되다.
▶ 專約 : 독자적으로 약정하다.
▶ 報謝 : 답례하다. 사례하다.
▶ 鑿空 : 길을 뚫다. 즉 서역으로 가는 길을 개척했다는 뜻. “鑿孔”
▶ 為質 : 신임을 얻다.

 

自博望侯騫死後,匈奴聞漢通烏孫,怒,欲擊之。
박망후 張騫이 죽은 후에 匈奴가 이 오손과 왕래함을 알고노하여 오손을 공격하려고 하였다.

及漢使烏孫,若出其南,抵大宛、大月氏相屬,烏孫乃恐,使使獻馬,願得尚漢女翁主為昆弟。
에서 오손에 사신을 보내고또 오손의 남쪽에서부터 大宛과 大月氏에 이르도록 사자가 끊이지 않으니오손이 비로소 두려워하여 사신을 보내어 말을 바치면서 의 옹주를 처로 맞이하여 형제국이 되길 청하였다.

天子問群臣議計,皆曰
「必先納聘,然後乃遣女」。
황제가 신하들의 의논을 물으니모두 말하였다.
반드시 먼저 幣帛을 바치게 하고다음에 옹주를 보내셔야 합니다.”

初,天子發書易,云
「神馬當從西北來」。
처음에 황제가 <易經>을 보고 점괘를 보니 이르기를,
神馬가 서북쪽으로부터 오리라.”
라고 하였다.

得烏孫馬好,名曰「天馬」。
그 뒤에 오손국의 말을 얻고 좋으매, “天馬라고 불렀다.

及得大宛汗血馬,益壯,更名烏孫馬曰「西極」,名大宛馬曰「天馬」云。
大宛의 汗血馬를 얻고 보니 더욱 건장하매오손국의 말은 西極이라 이름을 바꾸고大宛의 말을 天馬라고 이름하였다.

而漢始筑令居以西,初置酒泉郡以通西北國。
그리고 이 令居 서쪽에 장성과 요새를 修築하고새로 酒泉郡을 설치하여 서북쪽의 나라들과 교류하게 하였다.

因益發使抵安息、奄蔡、黎軒、條枝、身毒國。
이로 인하여 더욱 많은 사신을 安息奄蔡黎軒條枝身毒國으로 보냈다.

而天子好宛馬,使者相望於道。
그리고 황제가 大宛의 말을 좋아했으므로 말을 구하러 가는 사신이 도로에 이어졌다.

諸使外國一輩大者數百,少者百餘人,人所齎操大放博望侯時。
외국에 가는 사신의 한 팀은 많을 때는 수백 명적은 경우는 백여 명에 달하였으며그들이 가지고 가는 예물은 대체로 박망후 때를 본받았다.

其后益習而衰少焉。
그 후 갈수록 익숙해지매 인원이 감소하였다.

漢率一歲中使多者十餘,少者五六輩,遠者八九歲,近者數歲而反。
이 대략 1년에 사신을 파견함에많으면 10여 팀적으면 5~6팀이었으며먼 나라에는 8~9가까운 나라도 몇 해가 지나서야 되돌아왔다.

▶ 若 : 좇다. 從 ~로부터
▶ 尚 : 지위가 높은 상대와 결혼하다. 옹주를 처로 맞이하다.
▶ 納聘 : (약혼할 때 신랑측에서 신부측에) 예물을 주다.
▶ 易 : 易經.
▶ 一輩 : 한 무리.
▶ 齎操 : 휴대하다.
▶ 放 : 仿과 통하여 모방하다.
▶ 益習 : 한층 익숙해지다.
▶ 衰少 : 감소하다.
▶ 率 : 대략. 대강.
▶ 反 : 返과 같다.


是時漢既滅越,而蜀、西南夷皆震,請吏入朝。
이 무렵 이 南越을 멸망시키자과 西南夷가 모두 벌벌 떨며漢 관리의 배치와 入朝를 청하였다.

於是置益州、越巂、牂柯、沈黎、汶山郡,欲地接以前通大夏。
이에 이 益州·越雟·牂柯·沈黎·汶山의 을 설치하여 의 경계와 접하게 함으로써 大夏까지 통하게 하려고 하였다.

乃遣使柏始昌、呂越人等歲十餘輩,出此初郡抵大夏,皆復閉昆明,為所殺,奪幣財,終莫能通至大夏焉。
이에 이 柏始昌·呂越人 등을 사신으로 보내니 한 해에 10여 팀이었고그들은 새로 설치된 군을 나가서 大夏로 향하였으나 모두 다시 昆明에서 저지되고 살해되거나 폐백과 재물을 빼앗겨 끝내 大夏까지 도달하지 못하였다.

於是漢發三輔罪人,因巴蜀士數萬人,遣兩將軍郭昌、衛廣等往擊昆明之遮漢使者,斬首虜數萬人而去。
이에 이 三輔의 죄인을 징발하여 와 촉의 군사 수만 명과 합류시키고郭昌·衛廣 두 장군을 파견하여 昆明에서 의 사자를 차단하는 자를 공격하니참수하거나 사로잡은 자가 數萬이 되어 돌아왔다.

其後遣使,昆明復為寇,竟莫能得通。
그 후에도 사신을 파견하였으나 곤명에서 다시 도적질하니 끝내 大夏와 교류할 수 없었다.

而北道酒泉抵大夏,使者既多,而外國益厭漢幣,不貴其物。
그러나 북쪽으로 酒泉으로 가서 大夏로 이르는 사신이 이미 많으매외국이 갈수록 의 幣物을 싫어하고 의 물건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 越 : 南越. 漢武帝 元鼎 6년(기원전 111년) 漢軍은 남월의 國都를 함락하고 그곳에 9郡을 설치하였다. 이로써 남월은 5대 93년 만에 멸망하였다.<사기열전 권113. 南越列傳>

 

 

列傳권113-南越列傳(남월열전)

南越列傳은 趙佗가 남월을 건국하여 4대를 계승한 역사적 기록과 그간의 漢과의 관계 및 漢武帝가 남월을 공략하여 멸망시키고 漢이 직접 통치하게 된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越은 중국 浙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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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震 : 몹시 놀라다. 벌벌 떨다.
▶ 請吏 : 漢 조정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漢의 통치를 받기를 청함.
▶ 抵 : 이르다.
▶ 昆明 : 고대 西南夷의 종족명.
▶ 三輔 : 長安 주변 지구. 漢武帝 태초 원년(기원전 104년)에 渭城 서쪽은 右扶風이 長安 동쪽은 京兆尹이 長陵 북쪽은 左馮翊이 다스리게 하였으며, 이를 일러 ‘三輔’라고 하였다.
▶ 郭昌 : 元封 4년(기원전 107년), 태중대부의 신분으로 拔胡將軍이 되어 삭방에 주둔하였다. 그 후 돌아와 昆明을 공격하였으나 공로가 없어 장군의 직위를 잃었다.<사기 권111.위장군표기열전>

自博望侯開外國道以尊貴,其後從吏卒皆爭上書言外國奇怪利害,求使。
박망후 張騫이 외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 존귀한 신분이 된 이래그를 後從하였던 관리와 병사가 모두 다투어 상서하여 외국의 진기한 물건과 괴이한 사건과 이로움과 해로움을 말하고 사신이 되기를 청하였다.

天子為其絕遠,非人所樂往,聽其言,予節,募吏民毋問所從來,為具備人眾遣之,以廣其道。
천자가 그곳이 멀리 떨어져 있으매 사람들이 즐겨 갈 곳이 아니라고 여겨그들의 말을 따라 사신의 符節을 주고 관리와 백성을 모집하되 출신을 묻지 않고 인원을 具備하여 파견함으로써통상의 길을 넓혔다.

來還不能毋侵盜幣物,及使失指,天子為其習之,輒覆案致重罪,以激怒令贖,復求使。
그들이 귀국함에 幣物을 빼돌리지 말게 하지 못하고사신이 황제의 본뜻을 어기게 되자황제는 그들이 서역의 정황에 익숙하다고 여겼으매그들에게 과실이 있을 때마다 罪行을 조사하여 무거운 죄로 다스리되격동시킴으로써 속죄를 위하여 다시 사신을 청하도록 하였다.

使端無窮,而輕犯法。
사신을 보낼 事端은 끝이 없으매그들이 범법행위를 가볍게 여겼다.

其吏卒亦輒復盛推外國所有,言大者予節,言小者為副,故妄言無行之徒皆爭效之。
수행한 관리와 군졸도 그때마다 외국소유를 반복하여 칭찬하자크게 과장한 자에게 부절을 주어 正使로 삼고 작게 과장한 사람은 副使로 삼으매이 때문에 망언하며 품행이 없는 자들이 다투어 이를 본받았다.

其使皆貧人子,私縣官齎物,欲賤市以私其利外國。
사신은 모두 가난한 집 자식으로 조정에서 보내는 예물을 가로채어 헐값으로 팔아서 외국에서 그 이익을 챙기려 하였다.

外國亦厭漢使人人有言輕重,度漢兵遠不能至,而禁其食物以苦漢使。
외국에서도 漢 사신이 제각기 말이 가벼움에 염증을 느꼈으며漢軍이 멀리 있어서 쳐들어올 수 없다고 판단하고 식량의 공급을 금하여 의 사신을 괴롭히기도 하였다.

漢使乏絕積怨,至相攻擊。
의 사신은 생활이 困乏하고 물자가 단절되자서역의 각국에 원한이 쌓여서로 공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而樓蘭、姑師小國耳,當空道,攻劫漢使王恢等尤甚。
樓蘭과 姑師는 작은 나라였지만 교통의 요지에 해당하였으므로 의 사신 王恢 등을 공격하여 겁박함이 더욱 심하였다.

而匈奴奇兵時時遮擊使西國者。
더구나 흉노의 기습병이 때때로 서역에 사신으로 가는 자를 가로막고 공격하였다.

使者爭遍言外國災害,皆有城邑,兵弱易擊。
사신들이 다투어 두루 말하기를외국에서 피해를 입었고서역에 모두 성읍이 있으나 군대가 약하여 격파하기 쉽다고 하였다.

▶ 求使 : 사신이 되기를 청하다.
▶ 毋 : 不.
▶ 失指 : 황제의 의도를 위배하다. 指는 旨와 통한다.
▶ 輒 : 번번이
▶ 覆案 : 범죄행위를 따지다.
▶ 端 : 사신으로 가게 되는 일의 실마리.
▶ 私 : 사적으로 점유하다.
▶ 縣官 : 朝廷.
▶ 齎物 : 서역 각국으로 보내는 예물.
▶ 賤市 : 낮은 가격으로 팔다.
▶ 度 : 추측하다.
▶ 樓蘭 : 고대 서역의 나라 이름. 후에 鄯善으로 개명되었다.
▶ 姑師 : 고대 서역의 나라 이름. 吐鲁番 분지에 있던 나라.
▶ 当空道 : 사방으로 통하는 큰길에 있다. 空은 孔(통하다)과 통한다.
▶ 王恢 : 浩侯 王恢를 말하며 大行인 王恢와는 다른 인물이다.

於是天子以故遣從驃侯破奴將屬國騎及郡兵數萬,至匈河水,欲以擊胡,胡皆去。
황제가 이 때문에 從驃侯 趙破奴를 장군으로 삼아 속국의 기병과 의 군사 수만을 거느리고
匈河水까지 가서 흉노를 공격하려 하였지만 匈奴가 모두 달아나 버렸다.

其明年,擊姑師,破奴與輕騎七百餘先至,虜樓蘭王,遂破姑師。
그 이듬해 고사국을 공격하기 위하여 조파노는 경기병 7백여 명과 함께 먼저 누란에 이르러 그 왕을 포로로 잡고 마침내 고사국을 깨뜨렸다.

因舉兵威以困烏孫、大宛之屬。
군대를 일으킨 위세를 틈타 오손과 大宛 등을 포위하였다.

還,封破奴為浞野侯。
조파노가 돌아오자 황제가 그를 浞野侯에 봉하였다.

王恢數使,為樓蘭所苦,言天子,天子發兵令恢佐破奴擊破之,封恢為浩侯。
왕회는 여러 차례 사신으로 나가 누란국에게 고초를 겪고그 정황을 황제에게 보고하였다.
황제가 군사를 일으켜 왕회를 시켜 조파노를 도와 누란을 격파하게 하였으므로왕회를 浩侯로 봉하였다.

於是酒泉列亭鄣至玉門矣。
이리하여 주천군에서 열을 지어 선 요새가 玉門關에 이르렀다.

烏孫以千匹馬聘漢女,漢遣宗室女江都翁主往妻烏孫,烏孫王昆莫以為右夫人。
오손이 1천 필의 말을 폐백으로 바치고 漢女와 혼인하려 하니에서는 종실의 여자로 강도왕의 翁主를 보내어 오손왕의 처로 삼자오손왕 昆莫은 右夫人으로 삼았다.

匈奴亦遣女妻昆莫,昆莫以為左夫人。
흉노의 선우도 딸을 昆莫에게 시집 보냈는데昆莫이 左夫人으로 삼았다.

昆莫曰「我老」,乃令其孫岑娶妻翁主。
昆莫이 나는 이미 늙었다.”라고 말하며 손자인 잠취에게 옹주를 아내로 삼게 하였다.

烏孫多馬,其富人至有四五千匹馬。
오손에는 말이 많았는데부유한 사람은 4~5천 필의 말을 소유할 정도였다.

▶ 趙破奴 : 漢武帝 元狩 2년(기원전121년), 趙破奴는 鷹擊司馬가 되어 霍去病을 따라 흉노를 공격하여 큰 공을 세워 從驃侯에 봉해졌으며 1천5백 호의 식읍을 받았다.
▶ 明年 : 漢武帝 元封 3년 (기원전 108년).
▶ 亭鄣 : 요새.
▶ 娉 : 聘과 통하여 혼인을 정함. 定婚하다.
▶ 江都 : 江都王. 漢景帝의 손자 劉建. 강도왕 유비의 아들이다.

初,漢使至安息,安息王令將二萬騎迎於東界。
처음에 의 사신이 안식국에 도착함에안식왕이 명령하여 2만 명의 기병을 이끌고 동쪽 국경에서 영접하게 하였다.

東界去王都數千里。
동쪽 경계는 王都에서 수천 리나 떨어져 있었다.

行比至,過數十城,人民相屬甚多。
사신들이 왕도까지 감에 수십 개의 성읍을 지나갔는데백성이 서로 잇닿아 매우 많았다.

漢使還,而後發使隨漢使來觀漢廣大,以大鳥卵及黎軒善眩人獻于漢。
의 사신이 환국함에뒤이어 사신을 뽑아 漢使를 뒤따라 보내어 의 광대함을 관찰하고큰 새의 알과 黎軒의 마술사를 에 바쳤다.

及宛西小國驩潛、大益,宛東姑師、扜穼、蘇薤之屬,皆隨漢使獻見天子。
연이어 大宛 서쪽의 작은 나라인 驩潛·大益과 大宛국의 동쪽의 姑師·扜穼·蘇薤 등의 나라도 모두 漢 사신을 따라와서 황제를 뵙고 예물을 바쳤다.

天子大悅。
황제가 매우 기뻐하였다.

而漢使窮河源,河源出于窴,其山多玉石,采來,天子案古圖書,名河所出山曰崑崙云。
그리고 漢 사신들은 황하의 원류를 밝혀냈는데황하의 발원지는 于窴이고그곳의 산에는 玉石이 많아서 그것을 캐어오니황제가 옛 지도를 참고하여 황하가 시작되는 산을 昆侖山이라고 명명하였다.

是時上方數巡狩海上,乃悉從外國客,大都多人則過之,散財帛以賞賜,厚具以饒給之,以覽示漢富厚焉。
이때는 황제가 자주 바닷가를 시찰할 때였는데언제나 외국인을 데리고 다녔으며인구가 많은 큰 도시에 들러서는 재물과 비단을 상으로 하사하고풍성한 예물을 갖추어 후하게 줌으로써 의 부유함을 보여 주었다.

於是大觳抵,出奇戲諸怪物,多聚觀者,行賞賜,酒池肉林,令外國客遍觀各倉庫府藏之積,見漢之廣大,傾駭之。
이에 대규모의 씨름대회를 열고기이한 놀이와 갖가지 진귀한 물건들을 전시하여 관중을 많이 모으고많은 상을 내리고酒池肉林의 큰 잔치를 열고외국인을 시켜 각지의 창고에 쌓인 물자를 두루 구경하게 하여 의 광대함을 보임으로써그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及加其眩者之工,而觳抵奇戲歲增變,甚盛益興,自此始。
마술사의 기교가 더욱 교묘해지고씨름이나 기예도 해가 갈수록 변화하여 매우 성행하고 흥성함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 相屬 : 서로 잇닿다.
▶ 驩潜, 大益, 蘇薤 : 서역의 작은 나라 이름.
▶ 窮 : 끝까지 밝혀내다.
▶ 上 : 천자. 황제.
▶ 方 : 마침.
▶ 數 : 누차.
▶ 巡狩 : 황제가 나라 안을 시찰하며 돌아다님.
▶ 大都多人 : 인구가 많은 큰 도시.
▶ 厚具 : 풍부한 물품을 준비하다.
▶ 覽示 : 전시하다. 드러내 보이다.
▶ 大觳抵 : 大角抵. 대규모의 씨름대회.
▶ 酒池肉林 : 술이 못을 이루고 매단 고기가 숲을 이루다. 온갖 향락이 극에 달하다.
▶ 見 : 現과 같다. 표현하다.
▶ 傾駭 : 깜짝 놀람. 倾慕惊骇
▶ 眩者 : 마술사.

西北外國使,更來更去。
서북쪽의 외국 사신은 빈번히 왕래하였다.

宛以西,皆自以遠,尚驕恣晏然,未可詘以禮羈縻而使也。
그러나 大宛 서쪽에서는 모두 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여겨오히려 교만방자하고 안일하매예의로써 구속하지 못하고 명령에 순종하게 하지 못하였다.

自烏孫以西至安息,以近匈奴,匈奴困月氏也,匈奴使持單于一信,則國國傳送食,不敢留苦;
及至漢使,非出幣帛不得食,不市畜不得騎用。
오손의 서쪽부터 안식국까지는 모두 흉노에 가까웠는데흉노가 月氏를 곤란하게 하자 흉노의 사신이 선우의 편지 한 통만 가지고 있어도나라마다 돌아가면서 식량을 보내주며 감히 억류하고 괴롭히지 못하였으나의 사신이 감에 예물을 주지 않으면 음식을 얻지 못하고가축도 사지 않으면 타지 못하였다.

所以然者,遠漢,而漢多財物,故必市乃得所欲,然以畏匈奴於漢使焉。
이렇게 된 까닭은 이 멀고 에 재물이 많다고 여겨 반드시 사야만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이것은 의 사신보다 흉노를 더 두려워한 까닭이었다.

▶ 驕恣 : 교만하고 방자함.
▶ 晏然 : 安逸한 모습.
▶ 詘 : 굴복하다.
▶ 羈縻 : 속박하다.
▶ 留苦 : 억류하여 괴롭히다.
▶ 市 : 사다.

宛左右以蒲陶為酒富人藏酒至萬餘石久者數十歲不敗
大宛국 주변의 나라는 포도로써 술을 만들어 마시는데, 부자가 술을 저장함은 만여 에 이르고, 오래된 것은 수십 년이 지나도 상하지 않았다.

俗嗜酒馬嗜苜蓿
풍속은 술 마시기를 좋아하고, 말은 苜蓿을 좋아하였다.

漢使取其實來於是天子始種苜蓿蒲陶肥饒地
의 사자가 목숙과 포도의 씨앗을 가져오니 황제가 비로소 목숙과 포도를 비옥한 땅에 심게 하였다.

及天馬多外國使來眾則離宮別觀旁盡種蒲萄苜蓿極望
천마가 많아지고 외국사신이 옴이 많아지자, 離宮 別觀 주위의 땅에 모두 포도와 목숙를 심으니, 온통 포도와 목숙이었다.

自大宛以西至安息國雖頗異言然大同俗相知言
大宛의 서쪽에서 안식에 이르는 나라는 비록 언어가 자못 달랐으나 풍속이 거의 비슷하여 서로가 언어를 이해하였다.

其人皆深眼多須髯善市賈爭分銖
그곳 사람들은 모두 눈이 움푹 들어가고 수염이 많았으며 장사에 능하였고 아주 작은 이익 도 다투었다.

俗貴女子女子所言而丈夫乃決正
풍속은 여자를 귀하게 여겼으므로 여자가 하는 말에 남자는 절대적으로 따랐다.

其地皆無絲漆不知鑄錢器
그곳에서는 명주실과 옻이 나지 않았고, 화폐와 그릇을 주조할 줄 몰랐다.

及漢使亡卒降教鑄作他兵器
 사신의 逃亡兵이 그들에게 투항하면 무기와 그릇을 주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得漢黃白金輒以為器不用為幣
의 황금과 은을 얻기만 하면 그릇을 만들고 화폐로 쓰지는 않았다.

而漢使者往既多其少從率多進熟於天子言曰
宛有善馬在貳師城匿不肯與漢使。」
의 사자가 많아지자, 어려서부터 따라다닌 자들은 대부분 황제에게 진언함에 익숙하므로 말하였다.
大宛 貳師城에 좋은 말이 있는데 감추어두고 漢使에게는 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天子既好宛馬聞之甘心使壯士車令等持千金及金馬以請宛王貳師城善馬
황제가 大宛의 말을 좋아하였으므로 그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壯士 車令 등을 시켜 千金 金馬 가지고 가서 大宛왕에게 이사성의 좋은 말을 청하였다.

國饒漢物相與謀曰
국내에 의 물건이 풍부하였으므로 서로 의논하고 말하였다.

漢去我遠而鹽水中數敗出其北有胡寇出其南乏水草
이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고 자주 鹽水에 빠져 죽었으되, 그 북쪽으로 나오면 흉노의 도적들이 있고 그 남쪽으로 나오면 물과 풀이 없다.

又且往往而絕邑乏食者多
더욱이 곳곳에 성읍이 없어서 식량이 떨어질 때가 많다.

漢使數百人為輩來而常乏食死者過半是安能致大軍乎
漢使 수백 명이 한 팀이 되어 오지만 언제나 식량이 모자라 죽는 사람이 절반이 넘으니 어떻게 대군을 보낼 수 있겠는가?

無柰我何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을 터이다.

且貳師馬宛寶馬也。」
더구나 이사성의 말은 大宛 寶馬이다.”

遂不肯予漢使
마침내  사신에게 말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漢使怒妄言椎金馬而去
 사신이 화가 나서 욕을 하며 황금으로 만든 말을 망치로 부수어 버리고 가버렸다.

宛貴人怒曰
漢使至輕我!」
大宛의 귀족이 노하여 말하였다.
의 사신이 우리를 너무 무시하는구나!”

遣漢使去令其東邊郁成遮攻殺漢使取其財物
 사신을 가도록 해놓고 동쪽변경에 있는 郁成에게 명령하여 길목을 막고 공격하여  사신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게 하였다.

於是天子大怒
이에 황제가 대노하였다.

諸嘗使宛姚定漢等言宛兵弱誠以漢兵不過三千人彊弩射之即盡虜破宛矣
일찍이 大宛에 사신으로 갔던 姚定漢 등이 말하기를, 대원의 병력은 약하므로 만약 3천 명이 못 되는 漢軍을 거느리고 센 활을 쏘면서 공격하면 모조리 포로로 잡아서 大宛을 쳐부술 수 있다고 하였다.

天子已嘗使浞野侯攻樓蘭以七百騎先至虜其王以定漢等言為然而欲侯寵姬李氏拜李廣利為貳師將軍發屬國六千騎及郡國惡少年數萬人以往伐宛
황제가 일찍이 浞野侯 조파노로 하여금 누란을 공격함에, 7백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먼저 도착하여 누란왕을 포로로 잡았으매, 요정한 등이 말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황제가 寵姬 李氏들을 제후로 삼으려 李夫人의 오빠인 李廣利 貳師將軍에 임명하고 속국의 6  郡國의 행실이 나쁜 소년 수만 명을 징발하여 대원을 정벌하게 하였다.

▶ 苜蓿 : 풀이름. 자주개자리. 콩과의 두해살이 풀. 이란이 원산지이다.
▶ 實 : 종자.
▶ 極望 : 보이는 곳까지 다다르다. 사물이 온통 퍼져있어 끝이 없음을 말한다.
▶ 銖 : 지극히 사소한 것.
▶ 女子所言而丈夫乃決正: 而는 복합문의 상분구에 쓰여, 가설 접속사로 쓰인다. “만약 …한다면”
¶ 子産而死, 誰其嗣之? 《左傳 襄公30年》
○ 자산이 만약 죽는다면, 장차 누가 그를 이어받을 것인가? <허사 참조>

 

 

한문의 허사(虛詞) 而

한문의 허사(虛詞) 而 而已 ~일 따름이다 而後 ~한 연후에 而는 2인칭 대명사로서 爾자 및 汝자와 통한다. 또한 접속사로서 그 용법이 매우 다양하며, 그 뜻 또한 매우 신축적이다. (1) 而는 주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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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決正 : 绝对不偏离
▶ 絲漆 : 명주실과 옻나무.
▶ 少從 : 어릴 적부터 사신을 따라다니던 자.
▶ 率多 : 대부분.
▶ 貳師城 : 大宛국의 城 이름.宛
▶ 鹽水 : 鹽澤.
▶ 椎金馬 : 망치로 금으로 만든 말을 부수다.
▶ 李廣利 : 황제가 寵姬인 李氏의 집안 사람을 侯로 삼고자 하였는데, 李夫人의 오빠인 廣利를 貳師將軍으로 삼아 大宛을 정벌하게 하고, 貳師城에 이르러서 좋은 말을 취할 것을 기약하였다. 그래서 그를 貳師將軍이라 호칭하였다.
▶ 惡少年 : 행실이 나쁜 소년. 불량소년.

期至貳師城取善馬,故號「貳師將軍」。
貳師城에 가서 좋은 말을 가져오겠다고 기약하였으므로 <이사장군>이라 호칭하였다.

趙始成為軍正,故浩侯王恢使導軍,而李哆為校尉,制軍事。
이사장군은 趙始成을 軍正으로 임명하고예전에 浩侯였던 王恢를 향도로 삼고李哆를 교위로 임명하여 군대를 통제하게 하였다.

是歲太初元年也。
이때가 太初원년(기원전 104)이었다.

而關東蝗大起,蜚西至敦煌。
이 해에 關東에 메뚜기 떼가 크게 일어나 서쪽으로 날아 敦煌까지 이르렀다.

貳師將軍軍既西過鹽水,當道小國恐,各堅城守,不肯給食。
이사장군의 군대가 서쪽으로 진격하여 鹽水를 지나자길목에 있는 小國은 겁이 나서 각기 성을 굳게 지키며 식량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攻之不能下。
그들을 공격하였지만 함락하지 못하였다.

下者得食,不下者數日則去。
함락하면 식량을 얻었고함락하지 못하면 며칠 후 떠났다.

比至郁成,士至者不過數千,皆饑罷。
郁成에 도착할 무렵에는 군사가 도착한 것은 수천에 불과하였고모두 굶주리고 지쳐 있었다.

攻郁成,郁成大破之,所殺傷甚眾。
욱성을 공격하였으나 도리어 욱성이 을 크게 무찔러 사상자가 대단히 많았다.

貳師將軍與哆、始成等計:
「至郁成尚不能舉,況至其王都乎?」
이사장군이 이치 및 조시성 등과 상의하였다.
욱성조차 함락하지 못할 지경인데하물며 王都를 말하겠는가?”

引兵而還。往來二歲。
이에 군사를 이끌고 還國하였고 오감에 2년이 걸렸다.

還至敦煌,士不過什一二。
돈황에 돌아와 보니 군사가 10분의 내지 2에 불과하였다.

使使上書言:
「道遠多乏食;
且士卒不患戰,患饑。
人少,不足以拔宛。
願且罷兵,益發而復往。」
사신을 보내어 상서하였다.
길은 멀고 식량은 떨어졌습니다.
또 병사는 싸움을 걱정하지 않고 굶주림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군사가 적어 大宛을 함락하기에 부족합니다.
잠시 병력을 거두고 군사를 늘려 다시 원정하게 하십시오.”

天子聞之,大怒,而使使遮玉門,曰
軍有敢入者輒斬之!
상소문을 보고 황제가 대노하여 사자를 보내 옥문관을 가로막고 말하기를
병사로서 감히 들어오는 자가 있으면 즉시 목을 베라!”라고 명하였다.

貳師恐,因留敦煌。
이사장군이 두려워하여 그대로 돈황에 머물렀다.

▶ 期 : 기약하다.
▶ 制 : 장악하다.
▶ 太初 : 漢武帝의 일곱 번째 연호. (기원전 104년~기원전101년)
▶ 當道 : 지나가는 길.
▶ 郁成 : 서역의 나라 이름.
▶ 王都 : 大宛国의 都城.
▶ 益發 : 군대를 많이 파견하다.
▶ 遮 : 가로막다. 차단하다

 

其夏,漢亡浞野之兵二萬餘於匈奴。
그해 여름에 이 浞野侯 趙破奴가 거느린 군사 2만여 명을 흉노와의 전투에서 잃었다.

公卿及議者皆願罷擊宛軍,專力攻胡。
공경대신과 조정의 관리들은 모두 大宛군에 대한 공격을 중지시키고전력으로 흉노를 공격하기를 바랐다.

天子已業誅宛,宛小國而不能下,則大夏之屬輕漢,而宛善馬絕不來,烏孫、侖頭易苦漢使矣,為外國笑。
그러나 황제가 이미 大宛을 주벌하기로 결정하였는데大宛과 같은 작은 나라도 함락하지 못하면 大夏 등도 을 가볍게 여겨大宛의 명마를 절대로 오지 않을 터이고오손과 侖頭도 의 사신들을 쉽게 괴롭혀 외국의 웃음거리가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乃案言伐宛尤不便者鄧光等,赦囚徒材官,益發惡少年及邊騎,歲餘而出敦煌者六萬人,負私從者不與。
이에 大宛을 정벌함이 매우 불리하다고 주장한 鄧光 등을 심문하여 처벌하였으며죄수들과 材官을 사면하고 불량소년과 변경의 기병을 더욱 징발하여 일 년여 동안에 6만여 명의 군사를 敦煌으로 출발시켰으며 개인적인 장비를 짊어지고 참전하는 사람은 포함하지 않은 숫자였다.

牛十萬,馬三萬餘匹,驢騾橐它以萬數。
소 10만 마리말 3만여 필나귀와 노새와 낙타 수만 마리였다.

多齎糧,兵弩甚設,天下騷動,傳相奉伐宛,凡五十餘校尉。
식량은 넉넉하게 가져가게 하고 각종 무기도 많이 갖추어 천하가 떠들썩하였으며大宛을 정벌을 서로 전하고 받든 교위가 총 50여 명에 이르렀다.

宛王城中無井,皆汲城外流水,於是乃遣水工徙其城下水空以空其城。
大宛의 왕성에는 우물이 없어서 모두 성 밖에 흐르는 물을 길어다 쓰므로이에 漢軍은 성의 수로를 옮겨 성의 물을 말리려고 水工을 보냈다.

益發戍甲卒十八萬,酒泉、張掖北,置居延、休屠以衛酒泉,而發天下七科適,及載糒給貳師。
무장한 병사 18만을 더 징발하여 酒泉과 張掖 북쪽을 수비하게 하고居延과 休屠 두 현을 새로 설치하여 주천을 방위하게 하였으며전국의 일곱 가지 죄를 범한 자를 징발하여 말린 양식을 싣고 가서 이사장군에게 공급하게 하였다.

轉車人徒相連屬至敦煌。
짐을 실은 수레와 사람들의 무리가 끊임없이 줄을 이어 돈황에 이르렀다.

而拜習馬者二人為執驅校尉,備破宛擇取其善馬云。
또 말에 정통한 사람 두 명을 執驅校尉로 임명하여 大宛을 함락시킨 후 좋은 말을 고를 수 있게 대비하였다.

於是貳師后復行,兵多,而所至小國莫不迎,出食給軍。
그리하여 이사장군이 다시 출정하였었는데병력이 많으매 가는 길목의 小國들에 맞이하지 않는 나라가 없었으며 漢軍에게 식량을 제공하였다.

至侖頭,侖頭不下,攻數日,屠之。
侖頭에 도착함에 윤두가 항복하지 않으므로 며칠동안 공격하여 도륙하였다.

自此而西,平行至宛城,漢兵到者三萬人。
이후로 서쪽으로 進軍하여 순조롭게 大宛의 수도에 이르러니 漢軍의 도착자는 3만 명이었다.

宛兵迎擊漢兵,漢兵射敗之,宛走入葆乘其城。
大宛의 군사가 漢軍을 맞았으나漢軍은 활을 쏘아 무찔렀으며 大宛의 군사는 성으로 들어가서 성채에 의지하여 방어하였다.

貳師兵欲行攻郁成,恐留行而令宛益生詐,乃先至宛,決其水源,移之,則宛固已憂困。
이사장군의 군대는 욱성을 치고 싶었지만행군을 지체하면 大宛에게 더욱 속임수를 쓰게 할까 염려하여먼저 大宛의 왕성에 가서 그 水源을 터서 물길을 바꾸어버리자 大宛은 이미 심한 근심과 곤란을 겪었다.

圍其城,攻之四十餘日,其外城壞,虜宛貴人勇將煎靡。
왕성을 포위하여 공격한 지 40여 일그 外城을 깨뜨리고 大宛의 귀족으로 勇將인 煎靡를 사로잡았다.

▶ 其夏 : 漢武帝 太初 2년(기원전 103년) 여름.
▶ 亡 : 잃다.
▶ 浞野 : 浞野侯 趙破奴.
▶ 罷擊 : 공격을 중지하다.
▶ 已業 : 이미.
▶ 誅 : 토벌하다.
▶ 侖頭 : 서역의 옛 나라 이름. 侖台라도고 한다.
▶ 案 : 심문하여 처벌하다.
▶ 囚徒 : 죄수들.
▶ 材官 : 용감하고 힘이 센 병사로 구성된 부대.
▶ 負私從者 : 개인적인 장비를 갖추고 참전하는 자.
▶ 橐它 : 낙타.
▶ 兵弩 : 각종 무기를 말한다. 弩은 큰 활.
▶ 設 : 갖추다.
▶ 水空 : 水道. 물길. 空은 孔과 통한다. 구멍.
▶ 空其城 : 성에서 물을 쓰지 못하게 하다.
▶ 七科 : 일곱 종류의 죄를 지은 자로 천민들을 말한다. 즉, 죄를 지은 관리, 도망친 죄수, 데릴사위, 市籍에 등재된 상인. 과거에 시적에 등재된 사람, 부모가 시적에 올랐던 사람, 조부모가 시적에 등재된 사람을 말한다.
▶ 糒 : 말린 밥.
▶ 屠 : 대량으로 학살하다.
▶ 葆 : 성과 요새.
▶ 乘 : 의지하다.
▶ 留行 : 행군을 지체하다.
▶ 煎靡 : 사람 이름.

 

宛大恐,走入中城。
大宛이 크게 두려워하며 중성으로 달아났다.

宛貴人相與謀曰:
「漢所為攻宛,以王毋寡匿善馬而殺漢使。
今殺王毋寡而出善馬,漢兵宜解;
即不解,乃力戰而死,未晚也。」
大宛의 귀족들이 서로 상의하였다.
이 大宛을 공격함은 왕 毋寡가 명마를 감추고 漢 사신을 죽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왕 무과를 죽이고 명마를 내놓으면 漢軍은 분명히 포위를 풀 터이다.
만약 포위를 풀지 않으면 그때 가서 힘껏 싸우다 죽어도 늦지 않을 터이다.”

宛貴人皆以為然,共殺其王毋寡,持其頭遣貴人使貳師,約曰:
大宛의 귀족들이 모두 옳다고 여겨 함께 그들의 왕 무과를 죽이고그 머리를 가진 귀인을 이사장군에게 보내어 약속하였다.

「漢毋攻我。
은 우리를 공격하지 마십시오.

我盡出善馬,恣所取,而給漢軍食。
우리는 명마를 모두 내놓아 마음대로 취하도록 하고 漢軍에게 식량을 공급하겠습니다.

即不聽,我盡殺善馬,而康居之救且至。
만일 듣지 않으면우리는 명마를 모조리 죽일 터이고康居의 구원군이 곧 도착할 터입니다.

至,我居內,康居居外,與漢軍戰。
그들이 도착하면 우리는 안에서 康居의 구원병은 밖에서 漢軍과 싸우게 됩니다.

漢軍熟計之,何從?」
漢軍은 깊이 생각하여 보십시오어느 쪽을 따르겠습니까?”

是時康居候視漢兵,漢兵尚盛,不敢進。
이때 康居의 구원군은 漢軍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는데漢軍이 여전히 강성했기에 감히 진군하지 못하고 있었다.

貳師與趙始成、李哆等計:
이사장군은 조시성이차 등과 상의하였다.

「聞宛城中新得秦人,知穿井,而其內食尚多。
듣기에大宛성에서는 최근에 秦 사람을 얻어서 우물을 파는 기술을 알게 되었고또 성에는 식량이 아직도 많다고 한다.

所為來,誅首惡者毋寡。
우리가 원정 온 목적은 大宛의 원흉 毋寡를 죽임이었다.

毋寡頭已至,如此而不許解兵,則堅守,而康居候漢罷而來救宛,破漢軍必矣。」
무과의 수급이 이미 와 있는데그래도 포위를 풀지 않으면大宛은 성을 굳게 지키고康居의 구원군이 漢軍이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와서 大宛을 구원하면 漢軍을 격파함은 틀림없겠다.”

軍吏皆以為然,許宛之約。
軍吏들이 모두 그렇다고 생각하여 大宛의 약속을 허락하였다.

宛乃出其善馬,令漢自擇之,而多出食食給漢軍。
大宛국은 약속대로 명마를 꺼내 와서 이 직접 고르게 하고또 식량을 많이 가져와서 漢軍에게 제공하였다.

漢軍取其善馬數十匹。
漢軍은 명마 수십 필을 골랐다.

中馬以下牡牝三千餘匹,而立宛貴人之故待遇漢使善者名昧蔡以為宛王,與盟而罷兵。
중등 이하의 암수 3천여 필을 고른 다음大宛의 귀족으로 종전에 漢 사신을 잘 대우해준 昧蔡를 大宛왕으로 세우고 함께 맹약한 후에 군사를 거두었다.

終不得入中城。乃罷而引歸。
결국 漢軍이 中城으로는 들어가지 못한 채 전쟁을 끝내고 군사를 이끌고 귀국하였다.

▶ 毋寡 : 大宛국의 왕.
▶ 宜解 : 응당 포위를 풀고 물러가다.
▶ 恣 : 마음 내키는 대로 하다.
▶ 即 : 만약.
▶ 熟計 : 깊이 생각하다.
▶ 候 : 살피다. 기다리다.
▶ 首惡者 : 원흉. 주모자.
▶ 食食 : 식량을 주다. 앞의 食은 식량. 뒤에 食는 먹이다.
▶ 故 : 종전.

初,貳師起敦煌西,以為人多,道上國不能食,乃分為數軍,從南北道。
처음에 이사장군이 돈황을 출발하여 西進함에휘하의 병력이 너무 많아 경유하는 나라가 식량 공급을 하지 못하리라 여기고군대를 몇 개의 부대로 나누어 남쪽 길과 북쪽 길로 나아가게 하였다.

校尉王申生、故鴻臚壺充國等千餘人,別到郁成。
교위 王申生과 예전에 鴻臚를 지냈던 壺充國 등 1천여 명은 본대와 따로 욱성에 도착하였다.

郁成城守,不肯給食其軍。
욱성은 성을 지키며 그들에게 식량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王申生去大軍二百里,偩而輕之,責郁成。
왕신생은 본대에서 2백 리 떨어졌으나 대군의 위세를 믿고 경시하여 욱성에 식량을 요구하였다.

郁成食不肯出,窺知申生軍日少,晨用三千人攻,戮殺申生等,軍破,數人脫亡,走貳師。
욱성에서는 식량을 주지 않으려 하였고 왕신생의 군대가 날로 줄어듦을 알아차리고새벽에 3천 명의 군사로 공격하여 왕신생 등을 죽이니군대는 패하였고 몇 사람이 탈출하여 이사장군에게 도망쳤다.

貳師令搜粟都尉上官桀往攻破郁成。
이사장군은 搜粟都尉인 上官桀에게 명령하여 가서 욱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郁成王亡走康居,桀追至康居。
욱성왕은 康居로 도망쳤고 상관걸이 추격하여 康居에 이르렀다.

康居聞漢已破宛,乃出郁成王予桀,桀令四騎士縛守詣大將軍。
康居는 이 이미 大宛을 함락시켰음을 듣고 욱성왕을 상관걸에게 넘겨주니상관걸은 네 명의 기병을 시켜 욱성왕을 압송하여 이사장군에게 보냈다.

四人相謂曰:
「郁成王漢國所毒,今生將去,卒失大事。」
네 기병이 서로 의논하여 말하였다.
욱성왕은 에서 증오하는 사람인데지금 산 채로 데리고 가다가 갑자기 실수하면 큰일이다.”

欲殺,莫敢先擊。
그래서 죽이고자 하였으나 감히 먼저 죽이려는 사람이 없었다.

上邽騎士趙弟最少,拔劍擊之,斬郁成王,齎頭。
上邽縣의 기병인 趙弟는 가장 나이가 어렸으나칼을 뽑아 공격하여 욱성왕을 참수하고 수금을 가져갔다.

弟、桀等逐及大將軍。
조제와 상관걸 등은 이사장군의 본대를 뒤쫓아 갔다.

▶ 上官桀 : 힘이 세서 괴력을 가진 力士로 알려져 있었고, 이광리의 大宛 원정에 수속都尉로 종군하였는데, 이광리의 별군이 郁成을 공격하다 패주하자 이광리의 명령으로 욱성을 공격하였다. 욱성의 왕이 康居로 달아나자, 康居까지 추격하였다. 大宛이 이광리에게 항복했으므로 康居가 내준 욱성왕의 신병을 확보하였다. 이에 욱성왕을 이광리에게 보냈으나, 호송하던 기병 4명 중 조제가 욱성왕을 죽였다. 조제와 함께 철수하는 이광리와 합류하였다. 귀국한 후 원정 중의 공으로 인하여 소부에 임명됐다.
▶ 偩 : 믿다.
▶ 責 : 요구하다. 강요하다.
▶ 縛 : 묶다.
▶ 大將軍 : 이사장군 李廣利를 말한다.
▶ 毒 : 증오하다.
▶ 卒 : 돌연히.
▶ 弟 : 趙弟.
▶ 桀 : 上官桀.
▶ 逐及 : 따라잡다.

初,貳師后行,天子使使告烏孫,大發兵并力擊宛。
당초이사장군의 두 번째 원정 때황제가 오손국에 사신을 보내 대규모로 군사를 일으켜 힘을 합쳐 大宛을 공격하자고 요구하였다.

烏孫發二千騎往,持兩端,不肯前。
오손국은 2천 기를 보내었으나 두 나라를 관망하며 전진하려고 하지 않았다.

貳師將軍之東,諸所過小國聞宛破,皆使其子弟從軍入獻,見天子,因以為質焉。
이사장군이 승리하고 동쪽으로 감에지나는 길의 小國들이 大宛이 격파됨을 알자 모두 왕의 자제를 시켜 漢軍을 따라가서 공물을 바치고천자를 알현하며 에 볼모가 되게 하였다.

貳師之伐宛也,而軍正趙始成力戰,功最多;
及上官桀敢深入,李哆為謀計,軍入玉門者萬餘人,軍馬千餘匹。
이사장군이 大宛을 정벌함에 軍正인 조시성이 힘껏 싸워 공로가 가장 많았고상관걸은 용감하게 적진 깊숙이 공격하였으며이치는 계책을 세웠으나 玉門關에 돌아온 군사가 만여 명이고 군마는 1천여 필이었다.

貳師后行,軍非乏食,戰死不能多,而將吏貪,多不愛士卒,侵牟之,以此物故眾。
이사장군의 두 번째 원정에 있어서 군에 식량이 부족함도 아니고전사자가 많음도 아니었으나장수와 관리가 탐욕스러워 사졸을 아끼지 않는 자가 많고군량을 빼돌렸으므로 이 때문에 죽은 자가 많았다.

天子為萬里而伐宛,不錄過,封廣利為海西侯。
황제가 만 리나 가서 大宛을 정벌했기에 굳이 과실을 기록하지 않고李廣利를 海西侯로 봉하였다.

又封身斬郁成王者騎士趙弟為新畤侯。
또 직접 욱성왕을 참수한 기병 趙弟를 新畤侯로 봉하였다.

軍正趙始成為光祿大夫,上官桀為少府,李哆為上黨太守。
군정인 조시성을 光祿大夫로 임명하고 상관걸을 少府로 임명하였으며이치를 上黨太守로 임명하였다.

軍官吏為九卿者三人,諸侯相、郡守、二千石者百餘人,千石以下千餘人。
軍吏로서 九卿으로 임명된 자는 3명이고제후국의 재상이나 郡守 및 2천석의 봉록을 받는 관리가 된 자는 100여 명이고, 1천석 이하의 관리가 된 자는 1천여 명이었다.

奮行者官過其望,以適過行者皆絀其勞。
자원하여 종군한 자의 관직은 희망 이상이었고죄수로서 종군한 자는 그 공로로 모두 죄를 면제하였다.

士卒賜直四萬金。
병사들에게 하사된 금액은 4만 금이었다.

伐宛再反,凡四歲而得罷焉。
大宛 정벌에 두 차례 오고 갔으며총 4년이 걸려 전쟁을 마쳤다.

▶ 持兩端 : 두 마음을 품다. 양다리를 걸치다.
▶ 從 : 따라가다.
▶ 入獻 : 공물을 바치다.
▶ 質 : 인질.
▶ 侵牟 : (남의 재물을) 빼앗다.
▶ 以此 : 그래서. 이 때문에.
▶ 物故 : 사망하다.
▶ 錄 : 기록하다.
▶ 奮行者 : 자원하여 종군한 자.
▶ 望 : 희망하다.
▶ 以適過行者 : 형을 받고 종군한 자.
▶ 絀 : 면제하다.
▶ 直 : 值와 통한다.
▶ 再反 : 두 차례 오고 가다. 反은 返과 같다.

漢已伐宛,立昧蔡為宛王而去。
이 大宛을 정벌한 후 昧蔡를 大宛왕으로 세우고 철수하였다.

歲餘,宛貴人以為昧蔡善諛,使我國遇屠,乃相與殺昧蔡,立毋寡昆弟曰蟬封為宛王,而遣其子入質於漢。
1년 남짓 지나서 大宛의 귀족들은 매채가 에 아첨을 잘해서 그들의 나라를 도륙시켰다고 여기고서로 모의하여 매채를 죽이고 무과의 동생인 蟬封을 大宛왕으로 세우고 그의 아들을 에 볼모로 보냈다.

漢因使使賂賜以鎮撫之。
에서는 이에 사신을 보내서 예물을 주고 그들을 위로하였다.

而漢發使十餘輩至宛西諸外國,求奇物,因風覽以伐宛之威德。
그리고 이 사신 10여 팀을 大宛국 서쪽의 나라에 보내어 진기한 물건을 구하게 하고이를 계기로 大宛을 정벌한 의 위엄과 덕행을 은근히 과시하게 하였다.

而敦煌置酒泉都尉;
西至鹽水,往往有亭。
이어 돈황과 주천에 都尉를 설치하고,
서쪽으로 염수에 이르도록 곳곳에다 요새를 설치하였다.

而侖頭有田卒數百人,因置使者護田積粟,以給使外國者。
그리고 侖頭에는 수백 명의 둔전병을 두고사신을 파견하여 둔전을 보호하고 곡식을 저장하여 외국으로 가는 사신에게 공급하게 하였다.

▶ 遇屠 : 살육당하다.
▶ 賂 : 재물.
▶ 鎮撫 : 위로하다. 위안하다.
▶ 田卒 : 屯田兵. 둔전은 주둔한 군대의 군량이나 관청의 경비에 쓰도록 지급된 토지를 말한다.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禹本紀》言
「河出崑崙。
崑崙其高二千五百餘里,日月所相避隱為光明也。
其上有醴泉、瑤池」。

“<禹本紀>에서 말하였다.
황하는 昆侖山에서 나온다.
곤륜산은 그 높이가 2천 5백여 리이며 해와 달이 서로 피하여 숨으면서 광명을 발출하는 곳이다.
그 위에는 醴泉과 瑤池가 있다.’

今自張騫使大夏之後也,窮河源,惡睹本紀所謂崑崙者乎?
그런데 張騫이 大夏에 사신으로 다녀온 뒤에 황하의 원류를 밝혀내었으니, <우본기>에서 말한 곤륜산을 어디에서 보았는가?

故言九州山川,《尚書》近之矣。
이런 까닭에 九州의 산천은 <尙書>의 기록이 진실에 가깝다고 말하는 것이다.

至《禹本紀》、《山海經》所有怪物,余不敢言之也。
<우본기>나 <山海經>에 있는 괴이한 것들에 대해서는 나는 감히 말하지 않겠다.”

▶ 禹本紀 : 중국의 가장 오래된 帝王의 傳記.
▶ 河 : 黄河.
▶ 避隱 : 피하여 숨다. 떨어져 있어 서로 바라볼 수 없다.
▶ 醴泉, 瑤池 : 崑崙山 위에 西王母가 사는 곳에 있다고 여겨지는 감미로운 샘물과 연못이다. 瑤池는 중국 崑崙山에 있고, 周나라 穆王이 西王母를 만났다는 곳이다. 곤륜산 정상에는 瑤池란 연못이 있어 밤에 천상에서 신선들이 용이나 기린, 또는 봉황을 타고 내려온다고 전해진다.
▶ 窮 : 끝까지 밝혀내다.
▶ 河源 : 황하의 원류.
▶ 惡 : 어디에서.
▶ 九州 : 고대 하나라의 禹임금이 나라를 冀ㆍ兗ㆍ靑ㆍ徐ㆍ荊ㆍ揚ㆍ豫ㆍ梁ㆍ雍의 九州로 구별하였으며, 중국 전체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 尙書 : 유교의 五經 가운데 하나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다.
▶ 近之 : 진실에 접근하다.
▶ 山海經 : 중국 先秦 시대에 저술되었다고 추정되는 대표적인 신화집 및 지리서이다. 南山經에서 시작하여 海內經으로 끝나는 총 18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 余不敢言之也 : <禹本紀>와 <山海經>의 신빙성에 대하여 司馬遷의 회의적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