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列傳

列傳권113-南越列傳(남월열전)

耽古樓主 2023. 9. 29. 07:05

 

南越列傳은 趙佗가 남월을 건국하여 4대를 계승한 역사적 기록과 그간의 과의 관계 및 漢武帝가 남월을 공략하여 멸망시키고 漢이 직접 통치하게 된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은 중국 浙江·福建·江西·廣東省에서 베트남 북부에 이르는 지역의 옛 이름으로 於越·閩越·楊越·南越·駱越 등 많은 소수민족의 총칭이다.
조타는 秦 말기 혼란기에 龍川縣令이었는데 남해郡尉가 되어 남해군과 그 주변 지역을 병합하고 의 멸망과 함께 桂林郡과 象郡의 2군을 합쳐 南越國을 창건하고 武王이라 칭하였다.
기원전 137년에 조타가 죽고그의 손자인 趙胡가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면서 남월에 대한 漢의 압박이 점차 강화되었다.
趙胡가 죽자 趙嬰齊가 뒤를 이었다가趙興이 왕위에 오르자 내란이 일어나 재상 呂嘉가 권력을 장악하고 에 入朝하려는 왕과 王母를 살해하였으며또한 한의 사신까지도 죽인 뒤 의 이복형인 趙建德을 옹립하여 한에 대항하였다.
이에 한의 武帝는 남월 토벌을 결심하고伏波將軍 路博德과 樓船將軍 楊僕을 지휘관으로 삼아 대군을 급파하여 남월을 공략하였다기원전 111년 漢軍은 남월의 國都를 함락하고 그곳에 9郡을 설치하였다이로써 남월은 5대 93년 만에 멸망하였다.


1. 趙佗

 

南越王尉佗者,真定人也,姓趙氏。
南越王 尉佗는 眞定 사람으로 성은 趙氏이다.

秦時已并天下,略定楊越,置桂林、南海、象郡,以謫徙民,與越雜處十三歲。
이 천하를 병합하고 楊越을 공략하여 평정하여 桂林郡南海郡象郡을 설치하고죄지은 사람들을 이주시키니의 사람들과 섞여 산 지 13년이 되었다.

佗,秦時用為南海龍川令。
趙佗는 나라 때 남해군의 龍川縣令으로 임명되었다.

至二世時,南海尉任囂病且死,召龍川令趙佗語曰:
2세 황제에 이르러 南海郡尉 任囂가 병들어 임박하여 용천령 조타를 불러 말하였다.

「聞陳勝等作亂,
秦為無道,天下苦之,項羽、劉季、陳勝、吳廣等州郡各共興軍聚眾,虎爭天下,中國擾亂,未知所安,豪傑畔秦相立。
듣건대陳勝 등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오.
이 무도하여 천하가 고통을 당하자項羽·劉邦·陳勝·吳廣 등이 함께 각자의 州郡에서 백성을 모아 군대를 일으켜 호랑이처럼 천하의 패권을 다투니중원이 소란하여 안정될 때를 알 수 없고호걸들은 을 배반하고 서로 대립하고 있소.

南海僻遠,吾恐盜兵侵地至此,吾欲興兵絕新道,自備,待諸侯變,會病甚。
남해군은 중원과 외지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나는 도적의 군대가 이 땅에 쳐들어올까 두려워하매군사를 동원하여 새로 만든 도로를 끊고 자신을 방비하며 제후의 변란에 대비하려 할 즈음에병이 심해졌소.

且番禺負山險,阻南海,東西數千里,頗有中國人相輔,此亦一州之主也,可以立國。
게다가 이곳 番禺는 山險을 등지고 남해로 막혀있으며 동서로 수천 리이고 도와주는 중원인이 제법 있으니이곳 또한 한 지방의 중심지로 삼아서 나라를 세울 만하오.

郡中長吏無足與言者,故召公告之。」
의 고급관리에 더불어 의논할 사람이 없으매공을 불러서 알려주는 것이오.”

即被佗書,行南海尉事。
즉시 조타에게 임명장을 주어 남해郡尉로 종사하게 하였다.

囂死,佗即移檄告橫浦、陽山、湟谿關曰:
「盜兵且至,急絕道聚兵自守!」
임효가 죽자 위타는 즉시 橫浦·陽山·湟谿關에 檄文을 돌려 알렸다.
도적의 군대가 곧 올 터이니신속하게 도로를 차단하고 군사를 모아 자신을 방어하라!”

因稍以法誅秦所置長吏,以其黨為假守。
위타가 이를 기회로 삼고 점차적으로 에서 임명한 상급관리들을 법을 내세워 誅罰하고자기의 黨與를 임시 관리로 삼았다.

秦已破滅,佗即擊并桂林、象郡,自立為南越武王。
이 멸망하자위타가 즉각 계림군과 상군을 공격하여 병합하고스스로 즉위하여 南越武王이 되었다.

高帝已定天下,為中國勞苦,故釋佗弗誅。
高帝가 천하를 평정하자중원 백성의 노고를 생각하매 조타를 놓아두고 죽이지 않았다.

漢十一年,遣陸賈因立佗為南越王,與剖符通使,和集百越,毋為南邊患害,與長沙接境。
漢 11(기원전 196), 陸賈를 남월로 보내 남월왕으로 삼고符節을 쪼개 주어 사신을 오가도록 하고백월의 백성을 화목하게 다스려서남쪽 변경의 근심거리가 되지 말라고 하니長沙와 접경하게 되었다.

高后時,有司請禁南越關市鐵器。
高后 때 有司가 남월의 關市에서 鐵器 교역을 금하자고 청하였다.

佗曰:
「高帝立我,通使物,今高后聽讒臣,別異蠻夷,隔絕器物,此必長沙王計也,欲倚中國,擊滅南越而并王之,自為功也。」
조타가 말하였다.
高帝가 저를 남월왕으로 삼고 사신과 물자를 통하게 하였는데지금 고후께서 참소하는 신하의 말을 듣고우리를 蠻夷로 보고 異類로 취급하여 물자교역을 끊으려고 하니이것은 틀림없이 長沙王의 계책으로 그는 중원에 의지하여 남월을 격멸하고 남월왕을 겸하여 왕이 되어 자신의 공로를 세우려 함입니다.”

於是佗乃自尊號為南越武帝,發兵攻長沙邊邑,敗數縣而去焉。
이에 조타가 스스로 尊號를 높여 남월武帝라고 칭하고 출병하여 장사국의 邊邑을 공격하여 몇 개의 을 물리치고 돌아갔다.

高后遣將軍隆慮侯灶往擊之。
高后는 장군 隆慮侯 周灶를 파견하여 조타를 공격하였다.

會暑溼,士卒大疫,兵不能踰嶺。
날씨가 덥고 습한 때였으므로병졸 다수가 중병에 걸려 漢軍은 陽山嶺을 넘을 수 없었다.

歲餘,高后崩,即罷兵。
1년여高后가 崩御하자 곧 撤軍하였다.

佗因此以兵威邊,財物賂遺閩越、西甌、駱,役屬焉,東西萬餘里。
조타가 이를 기회로 군대로써 변경을 위협하고뇌물을 써서 閩越·西甌·駱越을 복속시키니 영토가 동서로 1만여 리이었다.

乃乘黃屋左纛,稱制,與中國侔。
이에 조타는 黃屋의 수레를 타고 을 왼쪽에 꽂고 황제의 신분으로 명령을 내리니한의 조정과 동등하였다.

及孝文帝元年,初鎮撫天下,使告諸侯四夷從代來即位意,喻盛德焉。
孝文帝 원년(기원전 179), 황제가 막 천하를 통치하고 제후와 四夷에 사신을 파견하여 代國에서 와서 즉위한 뜻을 고하고천자의 盛德을 알렸다.

乃為佗親冢在真定,置守邑,歲時奉祀。
위타 부모의 무덤이 眞定에 있으매묘지를 지키는 민가를 두어 매년 때에 맞추어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召其從昆弟,尊官厚賜寵之。
위타의 사촌 형제를 불러 관직을 높이고 賞賜를 풍부히 하여 총애함을 표시하였다.

詔丞相陳平等舉可使南越者,平言好畤陸賈,先帝時習使南越。
황제가 丞相 陳平 등에게 남월에 사자로 보낼만한 자를 천거하라고 명하니진평이 아뢰기를好畤 사람 陸賈가 高祖 때에 때때로 남월에 사자로 간 적이 있다고 하였다.

乃召賈以為太中大夫,往使。
이에 陸賈를 불러 太中大夫로 임명하여 사신으로 보냈다.

因讓佗自立為帝,曾無一介之使報者。
이 기회에 조타가 자립하여 稱帝하고보고한 사신이 한 명도 없었음을 꾸짖게 하였다.

陸賈至南越,王甚恐,為書謝,稱曰:
陸賈가 남월에 도착하자 왕이 매우 두려워하여 천자에게 글을 올려 사죄하였다.

「蠻夷大長老夫臣佗,前日高后隔異南越,竊疑長沙王讒臣,又遙聞高后盡誅佗宗族,掘燒先人冢,以故自棄,犯長沙邊境。
만이의 大君長인 늙은 신하 조타는 종전에 고후께서 남월을 격리하여 차별 대우하기에장사왕이 신을 참소하였다고 삼가 의심하였으며또 이 먼 곳에서 들으니고후께서 신의 친족을 모두 죽이고 조상의 무덤을 파서 불태웠다고 하므로이 때문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장사의 변경을 침범하였습니다.

且南方卑溼,蠻夷中閒,其東閩越千人眾號稱王,其西甌駱裸國亦稱王。
또 남방은 지대가 낮고 습한 땅으로 蠻夷 사이에 있어서동쪽의 민월은 백성이 1천 명의 인구로 稱王하고서쪽의 甌駱과 裸國 역시 稱王합니다.

老臣妄竊帝號,聊以自娛,豈敢以聞天王哉!」
노신이 망령되게 帝號를 몰래 써서 잠깐이나마 자신을 위안하였으니어찌 감히 이를 천자께 보고하겠습니까!”

乃頓首謝,願長為藩臣,奉貢職。
이에 조타가 陸賈에게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고앞으로 영구히 藩臣이 되어 納貢의 직책을 奉行하겠다고 다짐하였다.

於是乃下令國中曰:
「吾聞兩雄不俱立,兩賢不并世。
皇帝,賢天子也。
自今以後,去帝制黃屋左纛。」
그리고 조타가 나라에 명령을 내렸다.
내가 듣기에 두 영웅은 병존할 수 없고두 賢人은 나란히 세상에 생활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의 황제는 현명한 천자이시다.
지금부터 帝制(황제처럼 명령을 내림)과 황옥좌독을 없애겠다.”

陸賈還報,孝文帝大說。
陸賈가 경성으로 돌아와서 보고하니 孝文帝가 크게 기뻐하였다.

遂至孝景時,稱臣,使人朝請。
孝景帝 시대에 이르러 위타가 稱臣하고 사람을 보내 봄과 가을에 朝見하였다.

然南越其居國竊如故號名,其使天子,稱王朝命如諸侯。
그러나 남월 국내에서 몰래 예전처럼 황제의 칭호를 썼고단지 천자에게 사자를 보내 알현할 때에만 왕이라고 칭하며다른 제후와 마찬가지로 조정의 명령을 받았다.

至建元四年卒。
建元 4(기원전 137)에 조타가 죽었다.

▶ 南越 : 秦 말기의 혼란을 틈타 趙陀가 廣東과 廣西의 兩省과 베트남 북부지역에 세운 나라이다.
▶ 尉 : 都尉.
▶ 尉他 : 趙佗. 南越의 초대 왕으로, 秦의 항산군 眞定縣 사람이다. 秦 말기의 혼란기에 南海郡尉를 대행한 龍川縣令이었는데 남해군과 그 주변 지역을 병합하고 秦의 멸망과 함께 桂林·象의 2군을 합쳐 南越國을 창건하고 武王이라 칭하였다.
▶ 略定 : 공격하여 빼앗은 후 평정하다.
▶ 楊越 : 월족의 통칭으로 일명 揚越이라고도 한다.
▶ 謫徙 : 형을 받아 이주하다.
▶ 劉季 : 劉邦을 말한다. 유방의 字는 季였다.
▶ 中國 : 中原 지구.
▶ 盜兵 : 강도의 군대. 반란군을 비하하여 하는 말.
▶ 番禺 : <漢書> 〈地理志〉에 “番禺縣은 南海郡에 속하니, 郡尉 趙佗가 도읍한 곳이다.”라고 하였다
▶ 移檄 : 檄文을 돌리다.
▶ 黨 : 패거리. 측근.
▶ 假守 : 대리 관리.
▶ 弗誅 : 죽이지 않다.
▶ 陸賈 : 楚 사람으로 西漢 시기의 정치가이자 문학가, 사상가이다. 웅변에 능한 외교가로서도 역할을 감당하였는데, 南越王 尉他(:趙他)를 달변으로 漢에 복속시켰다.<사기 권97. 酈生陸賈列傳>
▶ 剖符 : 부절을 쪼개다. 符節은 구리나 대나무, 옥 따위로 만든 符信. 직위를 증명하는 것으로, 둘로 갈라서, 하나는 조정에 보관하고 하나는 본인이 가지고 信標로 사용하였다.
▶ 百越 : 장강 이남의 저장성 부근에서 베트남 지방에 살던 여러 민족의 총칭. 於越·閩越(:東越) ·甌越 ·南越 ·楊越 ·山越 ·駱越 등이 알려져 있다.
▶ 長沙 : 漢의 封國名.
▶ 高後 : 呂太后. 한 高祖 劉邦의 皇后 呂雉.
▶ 有司 : 담당 관리.
▶ 關市 : 변경에 설치한 무역 시장.
▶ 蠻夷 : 중원 밖의 소수민족. 남쪽 오랑캐.
▶ 隆慮侯灶 : 周竈.
▶ 大疫 : 重病.
▶ 嶺 : 陽山嶺을 말한다.
▶ 因此 : 이 때문에. 이를 기회로.
▶ 閩越 : 漢 때 지금의 福建省 지방에 있던 월족의 나라.
▶ 甌 : 西甌.
▶ 駱 : 駱越.
▶ 黃屋左纛 : 천자가 타는 수레와 깃발. 천자의 수레는 누런 비단으로 덮개와 속을 만든다. 纛은 들소의 꼬리로 만들며 황제의 수레의 가로 댄 나무 왼쪽 위에 이것을 매단다.
▶ 稱制 :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명령을 내려 시행하다.
▶ 侔 : 동등하다.
▶ 孝文帝元年 : 기원전 179년.
▶ 代來即位 : 劉邦의 넷째 아들 劉恆은 代王에 책봉되어 중도에 도읍하였다가 여씨의 난이 평정된 뒤 태위 주발과 승상 진평 등의 대신들의 옹립으로 황제에 올라 전한의 5대 황제가 되었다.
▶ 佗親 : 趙佗의 친부모.
▶ 從昆弟 : 사촌 형제.
▶ 言 : 추천하다.
▶ 好畤 : 縣 이름.
▶ 先帝 : 漢高祖 劉邦.
▶ 習使 : 여러 차례 사신으로 가다.
▶ 讓 : 꾸짖다.
▶ 曾 : 마침내. 결국.
▶ 書謝 : 사죄의 글을 올리다.
▶ 甌駱 : 西甌와 駱越.
▶ 裸國 : 기후가 더워 나체로 다니는 나라이므로 裸國이라 하였다.
▶ 藩臣 : 속국의 신하. 봉지를 하사받은 제후국의 군왕.
▶ 奉貢職 : 朝貢하는 직책을 준수하다.
▶ 朝請 : 漢 때 제후가 경성에 와서 황제를 알현하는 일로 春天은 朝, 秋天은 請이라 한다.
▶ 居國 : 나라 안.
▶ 朝命 : 조정의 명령.
▶ 建元四年 : 기원전 137년. 建元은 漢武帝의 첫 번째 연호.

 

 

2. 趙胡

 

佗孫胡為南越王。
조타의 손자 趙胡가 남월왕이 되었다.

此時閩越王郢興兵擊南越邊邑,胡使人上書曰:
「兩越俱為藩臣,毋得擅興兵相攻擊。
今閩越興兵侵臣,臣不敢興兵,唯天子詔之。」
이때(기원전 135閩越王 郢이 군사를 일으켜 남월의 邊邑을 침공하자조호가 사신을 보내어 上書하였다.
남월과 민월은 모두 의 藩臣으로 제멋대로 군대를 일으켜 서로 공격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민월이 군사를 일으켜 신을 침범하였으나신이 감히 군사를 일으키지 못하나니천자께서 조서를 내리시기 바라옵니다.”

於是天子多南越義,守職約,為興師,遣兩將軍往討閩越。
이에 천자가 남월이 충의를 행하고 직책과 맹약을 준수한다고 칭찬하고남월을 위하여 군대를 일으키고 두 장군을 파견하여 민월을 토벌하게 하였다.

兵未踰嶺,閩越王弟餘善殺郢以降,於是罷兵。
漢軍이 陽山嶺을 넘기도 전에 민월왕의 아우 餘善이 을 죽이고 투항하매撤軍하였다.

天子使莊助往諭意南越王,胡頓首曰:
「天子乃為臣興兵討閩越,死無以報德!」
천자가 莊助를 보내 남월왕에게 조정의 뜻을 타이르게 하니남월왕 조호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천자께서 신을 위하여 군대를 일으켜 민월을 토벌하셨으니죽어도 은덕을 갚을 방법이 없습니다!”

遣太子嬰齊入宿衛。
태자 嬰齊를 으로 보내 宿衛를 서게 하였다.

謂助曰:
「國新被寇,使者行矣。
胡方日夜裝入見天子。」
장조에게 말하였다.
나라가 최근 침략을 당하였으니 사자께서는 떠나십시오.
저도 밤낮으로 행장을 준비하고 입조하여 천자를 뵙겠습니다.”

助去後,其大臣諫胡曰:
「漢興兵誅郢,亦行以驚動南越。
且先王昔言,事天子期無失禮,要之不可以說好語入見。
入見則不得復歸,亡國之勢也。」
장조가 떠난 후에 대신들이 조호에게 간언하였다.
이 군사를 일으켜 민월왕 영을 주벌함은또한 이로써 남월을 놀라게 하려는 것입니다.
또 선왕께서 예전에 말씀하시길천자를 섬김에 실례되는 일이 없기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자의 듣기 좋은 말을 기뻐하여 천자를 알현하면 안 됩니다.
入見하고 돌아오시지 못함은 망국의 형세입니다.”

於是胡稱病,竟不入見。
이에 조호가 병을 핑계하고 결국 入見하지 않았다.

後十餘歲,胡實病甚,太子嬰齊請歸。
그 후 10여 년실제로 조호의 병이 심해지자 태자 영제를 귀국시키라고 청하였다.

胡薨,謚為文王。
조호가 죽자 文王이란 諡號를 내렸다.

▶ 趙胡 : 南越 文王. 南越의 제2대 왕(재위: 기원전 137년 ~ 기원전 122년)이다. 휘는 趙眜이며, 史記에서는 이름이 趙胡로 기록되어 있다. 시호는 文王이지만, 文帝로 칭하기도 한다.
▶ 閩越王郢 : 閩越王 駱郢.
▶ 藩臣 : 封地를 하사받은 제후국의 왕.
▶ 此時 : 漢武帝 建元 6년(기원전 135년).
▶ 兩越 : 남월과 민월.
▶ 多 : 칭찬하다.
▶ 兩將軍 : 王恢와 韓安國. 建元 6년 8월,무제는 閩越이 南越을 공격하므로 大行令 王恢 등을 보내어 군대를 거느리고 민월을 공격하게 하니, 민월왕의 아우 駱餘善이 왕인 駱郢을 죽이고 항복하자 낙여선을 세워 東越王으로 삼았다. 남월이 태자 趙嬰齊를 보내어 入朝하여 宿衛하게 하였다.<資治通鑑綱目>
▶ 逾 : 넘다.
▶ 嶺 : 陽山嶺을 말한다.
▶ 莊助 : <漢書>에는 嚴助로 되어 있다. 무제는 남월에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하여 장조를 보냈다. 남월에서는 태자를 장조에게 인질로 보냈다.
▶ 諭 : 분부하다. 타이르다.
▶ 宿衛 : 궁궐을 호위하기 위하여 숙직을 서는 직책
▶ 寇 : 침략하다.
▶ 裝 : 행장을 준비하다.
▶ 期 : 희망하다.
▶ 說 : 기뻐하다.
▶ 好語 : 듣기 좋은 말.

 

 

3. 趙嬰齊

 

嬰齊代立,即藏其先武帝璽。
영제가 대를 이어 즉위하고곧 그의 선조인 武帝(:조타)의 옥새를 감추어두었다.

嬰齊其入宿衛在長安時,取邯鄲樛氏女,生子興。
영제가 에 들어가서 숙위를 설 때邯鄲의 樛氏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 을 낳았다.

及即位,上書請立樛氏女為后,興為嗣。
영제가 즉위하자 上書하여 규씨의 딸을 왕후로 삼고흥을 후사로 삼겠다고 청하였다.

漢數使使者風諭嬰齊,嬰齊尚樂擅殺生自恣,懼入見要用漢法,比內諸侯,固稱病,遂不入見。
에서는 누차 사자를 파견하여 영제에게 넌지시 타일렀으나 영제는 향락을 좋아하고 살생을 자행하며 스스로 방종하여入見하여 국내의 제후처럼 의 법령을 적용하도록 요구할까 걱정하매병을 핑계삼고 끝내 入見하지 않았다.

遣子次公入宿衛。
아들 次公을 보내 숙위하게 하였다.

嬰齊薨,謚為明王。
영제가 薨逝하자 諡號하기를 明王이라 하였다.

▶ 藏其先武帝璽 : 趙佗는 스스로 南越 武帝라 칭하였다. 藏璽는 옥새를 감추는 것으로 황제를 칭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璽는 옥새.
▶ 取 : 娶와 같다. 장가들다.
▶ 樛氏女 : 규씨 집안의 딸.
▶ 後 : 왕후.
▶ 風諭 : 넌지시 타이르다.
▶ 尚樂 : 향락을 좋아하다. 尙樂은 놀며 즐기는 것을 숭상함을 이른다.
▶ 恣 : 방종하다.
▶ 要 : 강요하다. 협박하다.
▶ 內諸侯 : 漢 국내의 제후.
▶ 固 : 故와 통한다. 고의로. 일부러.

 

4.趙興

太子興代立,其母為太后。
태자 조흥이 대를 이어 즉위하니 그의 모친은 太后가 되었다.

太后自未為嬰齊姬時,嘗與霸陵人安國少季通。
태후는 선왕 영제의 姬妾이 되기 전에 霸陵 사람인 安國少季와 사통한 적이 있었다.

及嬰齊薨後,元鼎四年,漢使安國少季往諭王、王太后以入朝,比內諸侯;
令辯士諫大夫終軍等宣其辭,勇士魏臣等輔其缺,衛尉路博德將兵屯桂陽,待使者。
영제가 죽은 뒤인 元鼎 4(기원전 113)에 은 安國少季를 보내 남월왕과 왕태후를 타이르기를입조함으로써 국내의 제후와 맞추라고 하였다.
辯士인 諫大夫 終軍 등에게 명령하여 이런 뜻을 宣傳하게 하였고勇士 魏臣 등을 시켜 그의 흠결을 돕게 하였고衛尉 路博德에게 군대를 이끌고 桂陽에 주둔하며 사신을 기다리게 하였다.

王年少,太後中國人也,嘗與安國少季通,其使復私焉。
남월왕은 어렸고태후는 중원 출신으로 일찍이 안국소계와 사통하였으매그가 사신으로 오자 다시 사통하였다.

國人頗知之,多不附太后。
남월국의 사람들이 알고왕태후를 따르지 않는 자가 많았다.

太后恐亂起,亦欲倚漢威,數勸王及群臣求內屬。
태후가 난이 일어날까 두려워하고 또한 의 위세에 의지하고자자주 왕과 신하들에게 권하여 에 귀속하자고 요구하였다.

即因使者上書,請比內諸侯,三歲一朝,除邊關。
즉시 使者를 통하여 상서하여 주청하기를국내의 제후와 맞추어 3년에 한 번 조현하고 변경의 관문을 제거하라고 청하였다.

於是天子許之,賜其丞相呂嘉銀印,及內史、中尉、太傅印,餘得自置。
이에 천자가 허락하고남월의 승상인 呂嘉에게는 銀印內史·中尉·太傅에게 인장을 하사하고나머지 관직에 대해서는 스스로 處置하게 하였다.

除其故黥劓刑,用漢法,比內諸侯。
그들의 예전의 黥刑과 劓刑을 폐지하고의 법률을 적용하여 국내의 제후와 맞추었다.

使者皆留填撫之。
의 사자가 모두 남월에서 머물면서 그들을 진정시켜 안정되게 하였다.

王、王太后飭治行裝重齎,為入朝具。
왕과 왕태후에게 행장과 귀중한 예물을 갖추어 입조를 준비하게 하였다.

▶ 安國少季 : 人名. 安國은 複姓이고 少季는 이름이다.
▶ 通 : 간통하다.
▶ 元鼎四年 : 기원전 113년. 元鼎은 漢武帝의 다섯 번째 연호.
▶ 辯士 : 입담이 좋아서 아주 능란하게 말을 잘하는 사람.
▶ 宣 : 전달하다.
▶ 輔 : 도와주다.
▶ 附 : 의지하여 따르다.
▶ 因 : 통하다.
▶ 邊關 : 변방의 요새. 국경의 관문.
▶ 黥 : 墨刑. 이마에 죄인이라는 표시를 먹실로 새기는 고대 형벌의 일종.
▶ 劓 : 코를 베는 형벌. 고대 5형 중의 하나.
▶ 填撫之 : 남월 사람들을 鎭定하고 按撫하다. 填撫는 위로하다. 填은 鎮과 통한다.
▶ 飭治行裝 : 행장을 꾸리다. 飭은 갖추다.
▶ 重齎 : 귀중한 재물. 齎는 資와 통한다.


 

 

5.呂嘉

 

其相呂嘉年長矣,相三王,宗族官仕為長吏者七十餘人,男盡尚王女,女盡嫁王子兄弟宗室,及蒼梧秦王有連。
남월의 승상 呂嘉는 연로하였는데, 3왕의 승상을 지냈으며종족의 관원에 고위 관리가 된 자가 70여 명이었고남자는 모두 王女에게 장가들고여자는 모두 왕자·왕자의 형제·종실에게 시집갔으며또 蒼梧의 秦王과는 통혼하였다.

其居國中甚重,越人信之,多為耳目者,得眾心愈於王。
그가 나라에 위치함이 매우 중요하여월나라 사람들이 신임하여 측근이 되려는 자가 많았으며민심을 얻음이 왕보다 나았다.

王之上書,數諫止王,王弗聽。
왕이 상서함에 呂嘉가 거듭 왕을 만류하였으나 왕이 듣지 않았다.

有畔心,數稱病不見漢使者。
역심을 가지고 자주 병을 핑계 삼아 의 사신을 만나지 않았다.

使者皆注意嘉,勢未能誅。
의 사신들이 모두 여가에 대하여 주의하였으나형세상 죽이지 못하였다.

王、王太后亦恐嘉等先事發,乃置酒,介漢使者權,謀誅嘉等。
왕과 왕태후 역시 여가 등이 먼저 난을 일으킬까 두려워하여주연을 베풀고 漢 사신의 권세에 의지하여 여가의 일당을 죽이려고 모의하였다.

使者皆東鄉,太后南鄉,王北鄉,相嘉、大臣皆西鄉,侍坐飲。
의 사신들은 모두 東向하고왕태후는 南向하고왕은 北向하고승상 여가와 대신들은 모두 西向하여 모시고 앉아 술을 마셨다.

嘉弟為將,將卒居宮外。
여가의 아우는 장군으로 부하들을 거느리고 궁 밖에 있었다.

酒行,太后謂嘉曰:
「南越內屬,國之利也,而相君苦不便者,何也?」
음주 중에 왕태후가 여가에게 말하였다.
남월이 에 귀속함은 나라의 이익인데승상이 불편하다고 꺼림은 무엇 때문인가?”

以激怒使者。
이 말로써 의 사신을 격노시키려 하였다.

使者狐疑相仗,遂莫敢發。
사신들은 의심쩍은 눈길로 서로 미룰 뿐끝내 감히 손을 쓰는 자가 없었다.

嘉見耳目非是,即起而出。
여가는 목전의 분위기가 좋지 않음을 보고즉시 일어나서 나가려 하였다.

太后怒,欲鏦嘉以矛,王止太後。
왕태후가 격노하여 창으로 여가를 찌르려고 하자왕이 태후를 저지하였다.

嘉遂出,分其弟兵就舍,稱病,不肯見王及使者。
여가가 이에 빠져나와서 아우의 병사를 나누어 자신의 집에 배치하고병을 핑계 삼고 왕과 사신들을 만나러 가지 않았다.

乃陰與大臣作亂。
그리고는 비밀리에 대신들과 반란을 준비하였다.

王素無意誅嘉,嘉知之,以故數月不發。
왕은 본래 여가를 죽일 뜻이 없었고여가도 그것을 알았으매몇 달이 지나도 반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太后有淫行,國人不附,欲獨誅嘉等,力又不能。
태후에게 음란한 행실이 있어서 국민이 따르지 않으매홀로 여가 일당을 죽이려 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

天子聞嘉不聽王,王、王太后弱孤不能制,使者怯無決。
천자는 呂嘉가 왕에게 복종하지 않으며왕과 왕태후는 힘이 약하고 세력이 없어서 여가를 제압하지 못하며사신들은 겁을 먹고 결단하지 못함을 들었다.

又以為王、王太后已附漢,獨呂嘉為亂,不足以興兵,欲使莊參以二千人往使。
또 왕과 왕태후가 이미 을 따르기로 했고여가 혼자서 반란을 일으켜도 군대를 동원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여겨서莊參에게 군사 2천 명을 가지고 사자로 보내려고 하였다.

參曰:
「以好往,數人足矣;
以武往,二千人無足以為也。」
장삼이 말하였다.
친선을 위하여 간다면 몇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무력을 행하려 간다면 2천 명은 실행하기에 부족합니다.”

辭不可,天子罷參也。
안 된다고 거절하매 천자가 장삼을 罷職하였다.

郟壯士故濟北相韓千秋奮曰:
「以區區之越,又有王、太后應,獨相呂嘉為害,願得勇士二百人,必斬嘉以報。」
郟 땅의 장사이며 예전에 濟北王의 승상이었던 韓千秋가 奮然히 말하였다.
보잘것없는 월이고 또 왕과 태후가 호응하며승상 呂嘉만이 방해가 될 뿐이니용사 2백 명을 주십시오틀림없이 여가를 죽여 보고하겠습니다.”

於是天子遣千秋與王太后弟樛樂將二千人往,入越境。
이에 천자가 한천추와 왕태후의 아우 樛樂에게 병사 2천 명을 거느리고 남월의 국경으로 가게 하였다.

呂嘉等乃遂反,下令國中曰:
여가 등은 이에 마침내 반란을 일으키고 남월 백성에게 명령을 내렸다.

「王年少。
국왕은 나이가 어리다.
太后中國人也,又與使者亂,專欲內屬,盡持先王寶器入獻天子以自媚,多從人,行至長安,虜賣以為僮仆。
태후는 원래 중원 사람이며또 의 사신과 음란한 관계를 맺고오로지 에 귀속하길 바라며 선왕의 寶器를 모두 의 천자에게 바쳐 스스로 아첨하며많은 백성을 장안으로 데리고 가서 漢人의 종으로 팔아먹으려고 한다.

取自脫一時之利,無顧趙氏社稷,為萬世慮計之意。」
태후는 일시적으로 탈출하여 이익을 취할 뿐趙氏의 사직을 돌아보아 만세를 위하여 계책을 고려하는 뜻이 없다.”

乃與其弟將卒攻殺王、太后及漢使者。
그의 아우와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왕왕태후의 사신을 공격하여 죽였다.

遣人告蒼梧秦王及其諸郡縣,立明王長男越妻子術陽侯建德為王。
사람을 보내 창오의 진왕과 郡縣에 알리고明王의 장남이며 남월의 아내가 낳은 아들인 術陽侯 建德을 왕으로 옹립하였다.

而韓千秋兵入,破數小邑。
韓千秋의 군대가 남월로 들어와서 몇 개의 작은 고을을 깨뜨렸다.

其後越直開道給食,未至番禺四十里,越以兵擊千秋等,遂滅之。
그 후 남월은 한천추에게 그냥 길을 열어주고 양식을 공급하다가 漢軍이 번우에서 약 40리 정도 못 미치자남월의 군대가 한천추 등을 공격하여 전멸시켰다.

使人函封漢使者節置塞上,好為謾辭謝罪,發兵守要害處。
사람들을 시켜 漢 사자의 符節을 목함에 넣어 변방의 요새에 두고듣기 좋고 사람을 속이는 말로 사죄하고는군대를 보내 요충지를 지켰다.

於是天子曰:
「韓千秋雖無成功,亦軍鋒之冠。」
이에 천자가 말하였다.
한천추에게 비록 성공이 없었지만역시 군대의 선봉으로는 으뜸이었다.”

封其子延年為成安侯。
그의 아들 韓延年을 成安侯로 봉하였다.

樛樂,其姊為王太后,首願屬漢,封其子廣德為龍亢侯。
규락은누이가 왕태후로서 앞장서서 에 귀속하기를 원하였으매그의 아들 樛廣德을 龍亢侯로 봉하였다.

乃下赦曰:
「天子微,諸侯力政,譏臣不討賊。
今呂嘉、建德等反,自立晏如,
令罪人及江淮以南樓船十萬師往討之。」
이에 천자가 사면령을 내리며 말하였다.
천자가 미약하여 제후가 極力 정벌하니사람들이 풍자하기를신하가 역적을 토벌할 줄 모른다고 한다.
지금 여가조건덕 등이 造反하여 태연히 스스로 즉위하여 왕이 되었다.
죄인과 江淮 이남의 10만 水軍에게 명령하니가서 토벌하라.”

元鼎五年秋,衛尉路博德為伏波將軍,出桂陽,下匯水;
主爵都尉楊仆為樓船將軍,出豫章,下橫浦;
故歸義越侯二人為戈船、下厲將軍,出零陵,或下離水,或抵蒼梧;
使馳義侯因巴蜀罪人,發夜郎兵,下牂柯江:
咸會番禺。
漢武帝 元鼎 5(기원전 112가을衛尉 路博德을 伏波將軍으로 삼아서 桂陽에서 출병하여 滙水로 내려가게 하였다.
主爵都尉 楊僕은 樓船將軍으로 임명하여 豫章에서 출병하여 橫浦縣으로 내려가게 하였다.
에 투항한 예전의 의 列侯 두 사람은 戈船將軍과 下厲將軍으로 삼아 零陵에서 출병하여 한 사람은 離水로 내려가고 또 한 사람은 蒼梧에 닿게 하였다.
남월 사람인 馳義侯에게는 巴蜀의 사면 죄수들을 이용하여 夜郎의 군대를 동원하여 牂柯江으로 내려가게 하였다.
모두 番禺에서 총집결하게 하였다.

元鼎六年冬,樓船將軍將精卒先陷尋陜,破石門,得越船粟,因推而前,挫越鋒,以數萬人待伏波。
원정 6(기원전 111겨울누선장군이 정예 병사를 이끌고 먼저 尋陜을 함락하고石門을 격파하여 남월의 전함과 군량을 획득하였으며인하여 밀고 나가서 남월의 선봉부대를 무찌르고수만 명의 대군을 거느리며 복파장군 노박덕을 기다렸다.

伏波將軍將罪人,道遠,會期後,與樓船會乃有千餘人,遂俱進。
복파장군은 사면한 죄수를 이끌었는데길이 멀어서 만나기로 한 날짜보다 늦어졌고누선장군과 만나자 1천여 명이 있어서 함께 진격하였다.

樓船居前,至番禺。
누선장군의 부대가 선봉에 서서 번우에 도착하였다.

建德、嘉皆城守。
남월의 건덕과 여가가 모두 성을 수비하고 있었다.

樓船自擇便處,居東南面;
伏波居西北面。
누선장군은 스스로 지형이 유리한 곳을 택하여 번우의 동남쪽에 주둔하고,
복파장군은 번우의 서북쪽에 주둔하였다.

會暮,樓船攻敗越人,縱火燒城。
날이 저물 즈음 누선장군이 남월 군대를 공격하여 패퇴시키고 불을 놓아 번우성을 태웠다.

越素聞伏波名,日暮,不知其兵多少。
남월 사람들이 평소 복파장군의 명성을 들었고날이 저물어서 복파장군의 병력의 얼마나 많은지 알지 못하였다.

伏波乃為營,遣使者招降者,賜印,復縱令相招。
복파장군이 이에 군영을 만들고사자를 적군에게 보내어 투항자를 불러와서투항한 자에게 印綬를 주고 다시 풀어주되항복하는 자를 불러오게 하였다.

樓船力攻燒敵,反驅而入伏波營中。
누선장군이 전력을 다하여 공격하여 적의 진영을 불태우니적군을 반대쪽 복파장군의 병영으로 몰아넣게 되었다.

犁旦,城中皆降伏波。
동틀 무렵에 의 적들이 모두 복파장군에게 항복하였다.

呂嘉、建德已夜與其屬數百人亡入海,以船西去。
여가와 조건덕은 이미 야밤에 그의 부하 수백 명의 부하과 함께 바닷가로 도망하여 배를 타고 서쪽으로 가버렸다.

伏波又因問所得降者貴人,以知呂嘉所之,遣人追之。
복파장군은 또 투항한 남월의 귀족을 심문함을 통하여 여가의 무리가 간 곳을 알아내고사람을 보내 추격하였다.

以其故校尉司馬蘇弘得建德,封為海常侯;
越郎都稽得嘉,封為臨蔡侯。
예전의 校尉로 복파장군의 司馬인 蘇弘이 조건덕을 사로잡으매 海常侯에 봉해졌고,
남월 출신의 郎官 都稽가 여가를 사로잡아 臨蔡侯에 봉해졌다.

▶ 官仕 : 관원.
▶ 尚 : 고대에 신하가 군주의 딸과 혼인함을 ‘尚’이라 한다.
▶ 蒼梧秦王 : 趙光. 월왕이며 漢의 蒼梧郡에 봉해져 자칭 秦王이라 하였다.
▶ 有連 : 혼인 관계에 있다.
▶ 畔 : 叛과 통한다.
▶ 勢 : 형세.
▶ 介 : 의지하다.
▶ 東鄉 : 조정이 있는 동쪽을 향하여 앉다. 鄉은 向과 같다.
▶ 相君 : 승상에 대한 존칭.
▶ 苦 : 불만. 싫어하다.
▶ 狐疑 : 의심하다. 의심이 많다.
▶ 相仗 : 서로 버티다.
▶ 鏦 : 찌르다.
▶ 矛 : 창.
▶ 素 : 줄곧.
▶ 附 : 동의하다. 따르다.
▶ 辭 : 사양하다.
▶ 不可 : 不同意.
▶ 郟 : 地名.
▶ 濟北 : 封國名.
▶ 相 : 제후국의 승상.
▶ 奮 : 떨쳐 일어남.
▶ 區區 : 보잘것없다. 사소하다.
▶ 自媚 : 남의 환심을 사려고 스스로 아첨함.
▶ 虜賣 : 유괴하여 팔다.
▶ 自脫 : (불리한 입장에서) 벗어나다.
▶ 明王 : 남월의 3대 왕 趙嬰齊
▶ 越妻子 : 남월 사람인 아내의 아들. 建德.
▶ 函封 : 나무상자에 봉하다.
▶ 節 : 符節. 사신의 증표.
▶ 謾辭 : 속여서 하는 말. 거짓말.
▶ 軍鋒 : 군대의 선봉.
▶ 晏如 : 태연스레.
▶ 樓船 : 수군.
▶ 元鼎五年 : 기원전 113년.
▶ 伏波將軍 : 衛尉 路博德. 배로 강과 바다를 건너갈 적에 파도가 그쳐 잔잔하기를 바라서 이름을 붙인 것이다.
▶ 歸義 : 漢에 투항함.
▶ 越侯 : 제후로 봉해진 南越人.
▶ 二人 : 투항한 월나라 사람인 嚴과 甲. 嚴은 戈船將軍이며 甲은 下厲將軍이 되었다. 戈船은 배에 창과 방패를 장착했다 하여 이름한 것이다.
▶ 離水 : 今灕江.
▶ 抵 : 이르다.
▶ 因 : 의지하다.
▶ 發 : 파견하다.
▶ 咸 : 모두.
▶ 陷 : 함락하다.
▶ 石門 : 呂嘉가 강가에 돌을 쌓아 漢을 막고 石門이라 이름지었다.
▶ 船粟 : 전함과 군량.
▶ 因 : 乘機.
▶ 縱火 : 방화하다. 불 지르다.
▶ 驅 : 몰다.
▶ 犁旦 : 黎明. 동틀 무렵. 犁(려, 여는 검다는 뜻).
▶ 所之 : 도망간 곳.
▶ 故校尉 : 원래의 校尉.
▶ 建德 : 남월왕 趙建德.
▶ 越郎 : 남월의 郎官.

 

蒼梧王趙光者,越王同姓,
聞漢兵至,及越揭陽令定自定屬漢;
越桂林監居翁諭甌駱屬漢:皆得為侯。
창오왕 趙光은 남월왕과 같은 성이었다.
漢軍이 도착했음을 알고남월의 揭陽縣令인 과 함께 으로 귀속하기로 결정하였고,
남월의 桂林郡監 居翁도 甌越과 駱越에게 으로 귀속하기를 타일렀으매모두 에 봉해졌다.

戈船、下厲將軍兵及馳義侯所發夜郎兵未下,南越已平矣。
과선장군하려장군의 군대와 치의후가 동원한 야랑의 군대가 도달하기도 전에 남월은 이미 평정되었다.

遂為九郡。
이에 9개의 을 설치하였다.

伏波將軍益封。
복파장군에게는 封邑을 더하였다.

樓船將軍兵以陷堅為將梁侯。
누선장군의 군대가 견고한 성을 함락한 공로로 將梁侯에 봉해졌다.

自尉佗初王後,五世九十三歲而國亡焉。
위타가 최초로 왕이 된 후五代 93년 만에 나라가 멸망되었다.

▶ 諭 : 타이르다.
▶ 九郡 : 南海郡, 蒼梧郡, 鬱林郡, 合浦郡, 交趾郡, 九眞郡, 日南郡, 珠厓郡, 儋耳郡을 말한다.
▶ 陷堅 : 적의 견고한 성을 격파하다.
▶ 五世 : 五代.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尉佗之王,本由任囂。
尉佗가 남월왕이 됨은 본래 任囂에 연유한다.

遭漢初定,列為諸侯。
이 처음으로 안정됨을 틈타서제후의 반열에 올랐다.

隆慮離溼疫,佗得以益驕。
隆慮侯가 무더위와 습한 기후를 만나 퇴각하니위타가 더욱 교만해졌다.

甌駱相攻,南越動搖。
甌越과 駱越이 서로 공격할 때 南越이 동요하였다.

漢兵臨境,嬰齊入朝。
의 대군이 국경에 이르러니태자 嬰齊를 입조시켰다.

其後亡國,徵自樛女;
呂嘉小忠,令佗無後。
그 후대에 나라가 멸망함에징조는 樛氏의 딸로부터 시작되었고,
呂嘉의 하찮은 충성심은 위타의 후사가 없게 만들었다.

樓船從欲,怠傲失惑;
伏波困窮,智慮愈殖,因禍為福。
樓船將軍은 욕심을 좇아 나태하고 오만하여 방탕하고 惑亂하였고,
伏波將軍은 곤궁한 속에서도 더욱 지혜롭게 처신하여 화를 복으로 만들었다.

成敗之轉,譬若糾墨。
성공과 실패가 뒤바뀜이 마치 꼬아놓은 노끈 같구나.”

▶ 隆慮 : 隆慮侯 周灶.
▶ 離 : 罹와 통한다. 만나다.
▶ 徵 : 징조.
▶ 後 : 후대의 왕.
▶ 樓船 : 樓船將軍 楊仆. 남월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누선장군으로 임명되어 공을 세워 將梁侯에 봉해졌다. 그 뒤 좌장군 순체와 함께 朝鮮 정벌에 나섰으나 서로 불화하여 실패한 후 庶人이 되었다가 病死하였다.
▶ 從 : 縱과 통하여 放縱.
▶ 怠傲 : 나태하고 오만함
▶ 失惑 : 방탕하고 어지러워지다. 失은 泆과 통한다.
▶ 伏波 : 伏波將軍 路博德을 말한다.
▶ 殖 :증식하다.
▶ 禍福 : 노박덕은 원수 4년(기원전 119년) 곽거병을 따라 흉노를 정벌하는 데 공을 세워 부리후에 봉해졌으며, 원정 6년(기원전 111년) 남월을 정벌하는 데 공을 세워 봉토가 추가되었으며 태초 원년 법에 저촉되어 작위가 박탈되었다. 3년 후 강도노위로 임명되었다가 居延에서 주둔 중 사망하였다.
▶ 糾墨 : 禍福糾墨. 화와 복이 꼬아놓은 노와 같이 서로 얽혀 있다는 뜻으로, 재앙이 있으면 복이 있고, 복이 있으면 재앙도 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糾는 꼬다. 墨은 纆과 통하여 노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