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은 漢 때 저명한 俠客인 朱家, 劇孟, 郭解 등에 관한 전기이다. 사마천은 遊俠은 믿음이 있고 결정에 과감하며 약속에 성실하고 남을 위하여 생사를 돌보지 않고 자신의 능력이나 공덕을 과시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또한 협객을 鄕谷之俠, 布衣之俠, 閭巷之俠으로 분류하여 논하였으며, 협객으로 漢의 朱家, 田仲, 王公, 劇孟, 郭解 등을 소개하면서 사마천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郭解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기록하였다.
韓子曰:
「儒以文亂法,而俠以武犯禁。」
韓非가 말하였다.
“유학자들은 유가경전으로 법을 어지럽히고, 유협들은 무력으로 禁令을 범한다.”
二者皆譏,而學士多稱於世云。
둘 모두를 비웃었지만, 儒生에는 세상에서 칭찬받음이 많다.
至如以術取宰相卿大夫,輔翼其世主,功名俱著於春秋,固無可言者。
권모술수로 재상, 경, 대부의 지위에 이르러 그 당시의 군주를 보좌하여 功名이 모두 <春秋>에 기록됨에 관하여는 본래 말할 것이 없다.
及若季次、原憲,閭巷人也,讀書懷獨行君子之德,義不茍合當世,當世亦笑之。
季次나 原憲과 같은 사람들은 일반 백성이었지만, 讀書하여 홀로 군자의 덕을 실천하려는 뜻을 품고, 道義를 지키며 그 시대에 구차하게 영합하지 않았지만, 당시 사람들도 그들을 비웃었다.
故季次、原憲終身空室蓬戶,褐衣疏食不厭。
그런 까닭에 계차와 원헌은 평생을 빈집이나 쑥대로 엮은 집에서 거친 베옷을 입고 보잘것없는 음식을 먹었지만 싫어하지 않았다.
死而已四百餘年,而弟子志之不倦。
그들이 죽은 지 이미 4백여 년이 지났으나, 弟子가 그들에 뜻을 두고 싫증내지 않는다.
今游俠,其行雖不軌於正義,然其言必信,其行必果,已諾必誠,不愛其軀,赴士之阸困,既已存亡死生矣,而不矜其能,羞伐其德,蓋亦有足多者焉。
지금의 游俠은 그 행위가 비록 正義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말은 필시 미덥고, 그들의 행동은 필시 과감하고, 이미 승낙한 일에는 필시 성실하고,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남의 위난에 뛰어듦에 생사를 돌보지 않고, 그들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고, 그들의 공덕을 자랑함을 부끄러워하니 대체로 칭찬할 만한 것이 있다.
且緩急,人之所時有也。
더구나 위급한 처지에 빠짐은 사람이 때로 만나는 일이다.
▶ 韓子 : 韓非. 전국시대 말기 韓 출신이며 法家의 사상을 집대성한 정치사상가이다. <韓非子>는 法治主義를 周昌한 한비와 그 일파의 論著이다. 당나라 때 韓愈가 韓子로 불리게 되자 그때까지 韓子로 불리던 韓非를 韓非子로 바꾸어 불렀다.
▶ 儒以文亂法, 而俠以武犯禁 : 유자는 글로써 법을 어지럽게 하고, 협객은 무력으로 금령을 범한다. 而人主兼禮之, 此所以亂也. 그런데도 임금은 그들을 남달리 대우한다. 이것이 어지러워지는 까닭이다.<韓非子 五蠹 8>
▶ 儒 : 유가학파. 여기서는 儒生을 말한다.
▶ 文 : 유가의 경전.
▶ 俠 : 遊俠.
▶ 譏 : 비웃다. 조롱하다.
▶ 學士 : 儒生을 말한다.
▶ 至如 : ~의 정도에 이르다.
▶ 至如以術取宰相卿大夫 :
至는 他轉連詞로 쓰여, 하나의 상황에서 다른 상황으로 전환됨을 나타낸다. “…에 관해서는” “…으로 말하면” 등으로 해석한다. “至于”와 같다.
☞ 옛사람들은 같은 뜻으로 至于와 至於를 많이 사용했다. 또한 “提挈助詞”인 夫자를 넣어서 만든 至夫도 병용했다. 그리고 至如 至若도 같은 뜻으로 병용했다.
¶ 丞相洪燕見, 上或時不冠, 至如黯見, 上不冠不見也. 《史記 汲黯列傳》
○ 승상 공손홍이 연회에서 배알할 때 황제는 때로는 관을 쓰지 않고 대면했으나, 급암에 관하여는 관을 쓰지 않고 만나는 법이 없었다. <허사 至 참조>
▶ 世主 : 당대의 天子.
▶ 季次 : 公皙哀. 공자의 제자. <孔子家語>에는 公皙克으로 나온다.
▶ 原憲 : 字는 子思. 공자의 제자. 공자의 손자인 子思와는 구별하라.
※자사(子思, 기원전 483년? ~ 기원전 402년?)는 魯의 유학자이다. '자사'는 자이며, 성씨는 孔, 이름은 伋이다. 공자의 손자이자, 孔鯉의 외아들이다. 할아버지 공자의 제자인 증자의 제자가 되어, 유교의 학맥을 이어갔다. 보통 자사와 그의 학파에서 나온 맹자의 학맥을 유학의 정통 노선으로 간주한다.
▶ 閭巷人 : 일반 백성. 閭巷은 골목, 민간.
▶ 懷 : 품다.
▶ 空室 : 빈 집을 말하며 빈궁함을 뜻한다.
▶ 蓬戶 : 쑥 풀로 묶어 만든 외짝 문.
▶ 褐衣 : 거친 베로 만든 옷.
▶ 疏食 : 변변치 못한 음식.
▶ 不厭 : 싫어하지 않다.
▶ 志 : 그리워하다. 기억하다.
▶ 不軌 : 부합하다. 軌는 수레바퀴 자국.
▶ 正義 : 당시의 도덕규범과 법률.
▶ 阸困 : 위험과 재난.
▶ 矜 : 자랑하다.
▶ 伐 : 과시하다. 뽐내다.
▶ 多 : 칭찬하다.
▶ 且 : 况且. 하물며.
▶ 緩急 : 급박함.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昔者虞舜窘於井廩,伊尹負於鼎俎,傅說匿於傅險,呂尚困於棘津,夷吾桎梏,百里飯牛,仲尼畏匡,菜色陳、蔡。
옛날 舜은 우물과 倉廩에서 窘塞하였고, 伊尹은 솥과 도마를 짊어지고 다녔고, 傅說은 傅險에서 숨어있었고, 呂尙은 棘津에서 곤궁하였고, 管仲은 차꼬와 수갑을 찬 적이 있고, 百里奚는 소를 치기도 하였고, 공자는 匡에서 협박받았고, 陳과 蔡에서 굶주려 안색이 나빠졌었다.
此皆學士所謂有道仁人也,猶然遭此菑,況以中材而涉亂世之末流乎?
그들은 모두 유생의 소위 덕망 있고 어진 사람이었는데, 그런데도 이러한 재앙을 만났으니 하물며 평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으로 어지러운 세상의 혼탁한 흐름을 건너려는 함에랴?
其遇害何可勝道哉!
그들이 겪은 재앙을 어찌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 虞舜 : 有虞氏 舜. 순임금.
▶ 窘 : 궁지에 빠지다. 난처하다.
▶ 井廪 : 우물과 곡물창고. 사기 본기에 舜이 젊은 시절 창름을 수리할 때 아버지가 불을 질렀으며, 형인 象이 우물을 파도록 하여 깊이 파 들어갔을 때 아버지인 瞽叟와 형인 象이 함께 흙으로 우물을 메워버렸다. 그러자 순은 미리 파둔 비밀 통로를 통하여 도망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사기 권1. 五帝本紀>
▶ 伊尹 : 이름은 阿衡이다. 탕을 만나고자 하였으나 구실이 없었다. 이에 有莘氏의 폐백인 媵臣이 되어 솥과 도마를 메고 와서 음식의 맛으로 유세하여 왕도에 이르게 하였다. <史記 卷3 殷本紀>
▶ 負 : 등에 지다.
▶ 鼎俎 : 솥과 도마.
▶ 傅說 : 古虞国 사람으로 商나라 때의 賢臣이다. 商王 武丁 때 丞相을 지냈다. 그는 본래 죄인으로 부역을 나가 성을 쌓고 있었다. 당시 무정은 어진 신하를 찾고 있었는데, 하루는 꿈속에서 聖人을 만났다. 꿈에서 깨고 난 뒤에도 성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서 그림으로 그려 닮은 사람을 찾도록 하였다. 최종적으로 傅岩에서 부열을 찾았는데, 그림 속의 성인과 닮았다. 그리하여 그를 재상으로 등용하였는데 나라를 잘 다스렸다. 傅岩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傅를 姓으로 삼았고 부씨의 시조가 되었다. 傅險은 傅岩으로도 기록되어 있다.<사기 권3.殷本紀>
▶ 呂尚困於棘津 : 여상은 文王과 武王을 보필하여 周나라를 건국한 太公望 강태공을 가리킨다. 그는 젊은 시절에 朝歌(: 지금의 하남성 북부) 淇縣에서 소를 잡는 일을 하였고, 棘津(: 지금의 하남성 延津縣 동북쪽)에서는 가난 때문에 품을 팔고 밥장사도 하였다. <사기 권 30.제태공세가>
▶ 夷吾 : 管夷吾. 管仲의 이름은 夷吾이며, 齊桓公이 공자 小白이었을 때 죽이려 하다가 붙잡혀 齊로 압송되었었다. 그러나 鮑叔의 추천에 의하여 환공의 신하로서 재상이 된 후 齊를 춘추시대의 5대 강국 중 제일가는 강국으로 만든 공적을 세웠다.<사기 권62 管晏列傳>
▶ 桎梏 : 차꼬와 수갑이란 뜻으로 속박을 말함.
▶ 百里 : 百里奚. 중국 춘추시대 秦의 재상으로, 자는 井伯이며 宛 사람이다. <맹자>에 ‘백리해는 스스로 秦의 희생을 기르는 사람에게 다섯 마리의 羊의 가죽을 받고 자기를 팔아, 소먹이는 자가 되어서 秦穆公에게 벼슬을 구하였다.’라고 하였다. <孟子 萬章上 9>
▶ 仲尼 : 孔子. 공자는 魯에서 두 번이나 추방당하였고, 衛에서는 떠난 뒤에 그 자취를 모두 지워버릴 정도로 박대를 당하였고, 宋에서는 큰 나무를 잘라 그 밑에 깔릴 뻔하였고, 殷의 古都나 周나라 서울 洛邑에서도 궁지에 빠졌으며, 陳과 蔡 사이에서 포위되어 꼼짝 못하는 궁지에 빠졌었다. <장자 잡편 양왕> <孔子家語>
▶ 菜色 : 굶주린 얼굴빛을 말한다.
▶ 猶然 :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 菑 : 재앙. 菑는 재앙 ‘재’. 엄밀히 말하면 물로 인한 재해이다. 불로 인한 재해는 災,灾
鄙人有言曰:
「何知仁義,已饗其利者為有德。」
천박한 사람이 말하였다.
“무엇 때문에 仁義를 알아야 하는가? 이미 이익을 누렸으면 덕이 있는 사람인데.”
故伯夷丑周,餓死首陽山,而文武不以其故貶王;
跖、蹻暴戾,其徒誦義無窮。
그런 까닭에 伯夷가 周나라를 부끄럽게 여겨 首陽山에서 굶어 죽었지만, 이것으로 文王과 武王이 왕 노릇 함을 깎아내리지 못하였고,
盜跖과 莊蹻가 흉포하고 잔인하였지만, 그 무리의 道義를 칭송함이 무궁하다.
由此觀之,
「竊鉤者誅,竊國者侯,侯之門仁義存」,
非虛言也。
이런 것으로 말미암아 살펴보건대
“허리띠 갈고리를 훔친 자는 죽임을 당하지만, 나라를 훔친 자는 제후가 되며, 제후의 가문에도 인의가 있다"라고 함은 헛소리가 아니다.
▶ 鄙人 : 천박한 사람. 일반 백성.
▶ 饗 : 누리다.
▶ 伯夷丑周 : 백이는 주나라를 부끄럽게 여겼다. 주무왕이 은주왕을 정벌함을 부끄럽게 여겨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다.<史記 권61.伯夷列傳>
▶ 丑 :부끄러워하다. 丑는 추할 ‘추’.
▶ 文武 : 周文王과 周武王.
▶ 貶王 : 왕의 명예가 손상되다.
▶ 跖蹻 : 跖은 춘추 때 魯의 大盜 盜跖으로 魯僖公 때 대부를 지낸 柳下惠 展獲의 동생이다. 礄는 莊礄로 楚懷王 때 郢에서 수많은 무리를 이끌고 난을 일으켰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무리를 이끌고 지금의 운남성 곤명 일대의 滇 땅으로 들어가서 왕이 되었다고 하였다. 두 사람 모두 춘추전국시대의 전설적인 도적의 우두머리다.
▶ 暴戾 : 흉폭하고 잔인함.。
▶ 誦義 : 道義를 칭송하다.
▶ 竊鉤者 : 혁대 고리를 훔친 자. “彼竊鉤者誅,竊國者為諸侯 : 혁대 고리를 훔친 자는 죽임을 당하지만 나라를 훔친 자는 제후가 된다.”[장자] 第10篇 胠篋
今拘學或抱咫尺之義,久孤於世,豈若卑論儕俗,與世沈浮而取榮名哉!
그러하니, 배운 것에 얽매이거나 사소한 의리를 끌어안고 오래도록 세상과 고립됨이, 어찌 천박한 논리로 세속에 융화되어 세상 사람과 함께 浮沈하며 영예로운 명성을 얻음만 하겠는가!
而布衣之徒,設取予然諾,千里誦義,為死不顧世,此亦有所長,非茍而已也。
그러나 평민의 백성으로서 주고받음과 응낙함을 중시하여, 천 리를 不顧하고 의리를 좇고, 죽으면서도 세속의 비난을 돌보지 않으면, 여기에도 장점이 있으니 구차할 뿐만은 아니다.
故士窮窘而得委命,此豈非人之所謂賢豪閒者邪?
그러므로 선비가 곤궁하면서도 몸을 맡김이 사람들의 所謂 ‘현자와 호걸의 중간에 있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 拘學 : 학문에 얽매임.
▶ 咫尺之義 : 사소한 道義. 咫尺은 아주 가까운 거리를 말한다
▶ 卑論 : 천박한 논리.
▶ 儕俗 : 세속에 융화하다.
▶ 與世沈浮 : 세상 돌아가는 대로 따르다.
▶ 布衣 : 백성.
▶ 設 : 중시하다.
▶ 然諾 : 허락하다. 승낙하다.
▶ 誦 : 좇다. 따르다 =庸
▶ 委命 : 몸을 맡기다.
▶ 賢豪閒者 : 賢人과 豪俠의 중간 인물.
▶ 邪 : 어조사. 耶와 같다.
誠使鄉曲之俠,予季次、原憲比權量力,效功於當世,不同日而論矣。
만일 시골의 유협을 계차·원헌과 권세와 역량을 비교하고, 그 시대에 이룬 공적을 비교함은 함께 논할 수 없다.
要以功見言信,俠客之義又曷可少哉!
공적이란 말이 미더운 데서 나타나야 하니, 협객의 義行 또한 어찌 가볍게 보겠는가!
▶ 鄉曲 : 벽촌. 외딴 시골.
▶ 予 : =與 ~와. 함께
▶ 不同日而論 : 함께 놓고 말할 수 없다. 비교가 되지 않다.
▶ 效功 : 공적을 비교하다. 效는 校와 통하여 비교하다.
▶ 功見 : 공적을 드러내다. 見은 現과 같다.
古布衣之俠,靡得而聞已。
옛날 평민인 협객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
近世延陵、孟嘗、春申、平原、信陵之徒,皆因王者親屬,藉於有土卿相之富厚,招天下賢者,顯名諸侯,不可謂不賢者矣。
근세의 延陵·孟嘗·春申·平原·信陵 같은 사람들은 모두 왕의 친족으로, 봉토를 소유하고 卿相의 지위로 인한 부유함에 의지하여, 천하의 현자를 불러 제후에 이름을 날렸으니 현명하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다.
比如順風而呼,聲非加疾,其埶激也。
비교하자면 순풍을 맞아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소리가 더 우렁참은 아니지만, 그 형세가 격렬한 결과이다.
▶ 布衣 : 평민. 서민.
▶ 靡 : 없다.
▶ 延陵 : 季札. 춘추시대 吳王 壽夢의 네 아들 중 막내로 延陵에 봉해져 延陵季子라고 부른다. 왕의 자리를 넘겨주려 하였으나, 계찰은 이를 받지 않고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 孟嘗·春申·平原·信陵 : 齊의 孟嘗君 田文, 趙의 平原君 趙勝, 楚의 春申君 黃歇, 魏의 信陵君 魏無忌를 전국시대의 4공자로 부른다.<사기 권 75, 76, 77, 78>
▶ 藉 : 의지하다.
▶ 土 : 封地.
▶ 疾 : 소리가 우렁차다.
▶ 埶 : 權勢. 형세. 埶는 勢와 같은 뜻으로 ‘세’로 읽는다.
至如閭巷之俠,修行砥名,聲施於天下,莫不稱賢,是為難耳。
민간의 협객들로 말하자면 행동과 명분을 갈고 닦아서 천하에 명성을 떨쳐, 현명하다고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그렇게 함이 어렵기 때문일 뿐이다.
然儒、墨皆排擯不載。
그러나 儒家와 墨家에서는 모두 이들을 배척하여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自秦以前,匹夫之俠,湮滅不見,余甚恨之。
秦 이전의 서민의 협객에 대해서는 湮滅되어 보이지 않으니 나로서는 참으로 유감스럽다.
▶ 至如 : ~으로 말하면.
▶ 閭巷之俠 : 민간의 협객. 서민으로서의 협객.
▶ 砥名 : 명예와 절조를 갈고 닦다.
▶ 施 : 펼치다.
▶ 排摈(배빈) : 배척하다. 擯:물리치다.배척하다
以余所聞,漢興有朱家、田仲、王公、劇孟、郭解之徒,雖時捍當世之文罔,然其私義廉絜退讓,有足稱者。
내가 들은 바로는 漢이 일어난 뒤로 朱家·田仲·王公·劇孟·郭解 등의 무리가 있어서, 비록 때때로 당시의 법률과 금령을 거스르기도 하였으나, 그 개인의 의리와 청렴함과 겸손은 칭찬하기에 충분함이 있다.
名不虛立,士不虛附。
명성은 까닭 없이 서지 않고 선비들도 이유 없이 따르지 않는다.
至如朋黨宗彊比周,設財役貧,豪暴侵淩孤弱,恣欲自快,游俠亦丑之。
패거리를 지은 權勢家가 서로 결탁하여 재력을 등에 업고 가난한 사람을 부리고, 권세와 폭력으로 외롭고 약한 사람을 침범하고 업신여기고, 방종하며 즐거워함에 대하여 말하자면, 유협이 부끄럽게 여기는 바이다.
余悲世俗不察其意,而猥以朱家、郭解等令與暴豪之徒同類而共笑之也。
나는 世俗이 그 뜻을 살피지 못하고, 외람되이 주가와 郭解 등을 포악하고 흉포한 무리와 同類로 여겨 함께 비웃음을 슬퍼한다.
▶ 朱家, 田仲, 王公, 劇孟, 郭解 : 漢의 유협으로 이어지는 문장에서 언급하고 있다.
▶ 捍(한) : 어기다. 거스르다.
▶ 文罔 : 文網과 통한다. 법률과 금령.
▶ 朋黨宗彊 : 파벌을 결성하여 횡포를 부리다.
▶ 比周 : 서로 결탁하다.
▶ 設財役貧 : 자기 재산과 부에 의존하여 가난한 사람을 부리다.
▶ 凌 : 침범하다. 업신여기다.
▶ 恣 : 방종하다.
▶ 猥 : 착오. 사리에 맞지 않다. 외람되이
<여기까지가 태사공의 緖言이다.>
<朱家>
魯朱家者,與高祖同時。
魯의 朱家는 漢高祖와 같은 시대 사람이다.
魯人皆以儒教,而朱家用俠聞。
魯의 사람이 모두 儒學을 배울 때 朱家는 任俠으로 알려졌다.
所藏活豪士以百數,其餘庸人不可勝言。
숨겨 주어서 목숨을 구한 호걸이 백 명을 넘고, 그 밖에 보통 사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然終不伐其能,歆其德,諸所嘗施,唯恐見之。
그러나 끝내 자신의 역량을 자랑하지 않았고, 자신의 남에 대한 은덕을 기뻐하지 않았고, 종전에 은혜를 베푼 사람을 만날까 걱정하였다.
振人不贍,先從貧賤始。
넉넉지 못한 사람을 구제함에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부터 시작하였다.
家無餘財,衣不完采,食不重味,乘不過軥牛。
집에는 남아도는 재물이 없었고, 옷은 빛깔이 바랬고, 음식은 두 가지 반찬을 먹지 않았고, 탈것은 소달구지에 불과하였다.
專趨人之急,甚己之私。
남의 위급을 구원하기를, 자신의 일을 처리하기보다 우선하였다.
既陰脫季布將軍之阸,及布尊貴,終身不見也。
일찍이 季布 장군의 액운을 면하게 해주었는데, 계포가 존귀해지자 죽을 때까지 만나지 않았다.
自關以東,莫不延頸願交焉。
函谷關 동쪽 사람들로서 목을 빼고 그와 사귀려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 魯 : 漢의 제후국.
▶ 用 : ~에 의하여.
▶ 藏活 : 숨겨주어 목숨을 구하다.
▶ 庸人 : 보통사람.
▶ 伐 : 자랑하다.
▶ 歆 : 기뻐하다. 감복하다.
▶ 德 : 은혜.
▶ 嘗施 : 이미 은덕을 베풀다.
▶ 振 : 賑과 통하여 구휼하다. 구제하다.
▶ 贍 : 넉넉하다. 풍부하다.
▶ 完采 : 완전한 무늬.
▶ 軥牛 : 소달구지. 軥는 멍에.
▶ 趨 : 급히 달려가다.
▶ 急 : 위험과 재난.
▶ 陰脫 : 남몰래 계포를 재난에서 벗어나게 하다. 季布는 楚 사람으로 項羽의 武將으로 있으면서 漢의 高祖 유방과 싸울 때 많은 전공을 올렸지만 項羽가 패하자 유방이 현상금을 걸고 그를 수배하였다. 추적의 손길이 뻗치자 스스로 노예가 되어 魯의 朱家에게 팔려갔다. 朱家도 이 노예가 계포임을 알아보고 滕公 夏侯嬰을 설득하여 유방에게 간언케 하여 高祖 유방에게 사면되어 郎中이 되었으며, 惠帝 때는 中郞將이 되었다.[史記列傳]권100 季布欒布列傳
▶ 延頸 : 목을 길게 빼다.
<田仲>
楚田仲以俠聞,喜劍,父事朱家,自以為行弗及。
楚의 田仲은 俠客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검술을 좋아하고 朱家를 아버지처럼 모시면서 자신의 품행이 朱家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
▶ 父事 : 아버지처럼 모시다.
<劇孟>
田仲已死,而雒陽有劇孟。
전중이 죽은 후 洛陽에 劇孟이 있었다.
周人以商賈為資,而劇孟以任俠顯諸侯。
周나라 사람은 상업으로 생활하였고, 劇孟은 제후에 任俠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吳楚反時,條侯為太尉,乘傳車將至河南,得劇孟,喜曰:
「吳楚舉大事而不求孟,吾知其無能為已矣。」
吳와 楚의 반란 때, 條侯 周亞夫는 太尉로서 역참의 수레를 타고 河南에 가서 劇孟을 만나니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吳楚가 대사를 치르면서 劇孟을 찾지 않으니 나는 그들의 무능함을 알겠다.”
天下騷動,宰相得之若得一敵國云。
천하가 소란할 때 재상이 劇孟을 얻음은 적국 하나를 얻음과 같다는 것이었다.
劇孟行大類朱家,而好博,多少年之戲。
劇孟의 행실은 朱家와 매우 비슷하였으나 도박을 좋아하였는데 대부분 젊은이의 놀이였다.
然劇孟母死,自遠方送喪蓋千乘。
그러나 劇孟의 어머니가 죽자 먼 곳에서 問喪하는 수레가 대략 천 대였다.
及劇孟死,家無餘十金之財。
劇孟이 죽자 집에는 10금의 재산도 남아 있지 않았다.
而符離人王孟亦以俠稱江淮之閒。
그리고 符離 사람 王孟도 역시 任俠으로 장강과 회수에서 이름이 높았다.
是時濟南瞷氏、陳周庸亦以豪聞,景帝聞之,使使盡誅此屬。
이 무렵 濟南의 瞯氏와 陳의 周庸 역시 호걸로 소문이 났는데, 景帝가 알고 사자를 보내 이 무리를 모두 주살하였다.
其後代諸白、梁韓無辟、陽翟薛兄、陜韓孺紛紛復出焉。
그 뒤 代郡의 白氏 일족과 梁의 韓無辟과 陽翟縣의 薛兄과 陝縣의 韓孺 등이 또 잇따라 나타났다.
▶ 劇孟 : 前漢의 俠客. 周亞夫 장군이 그를 좋아하였고 魯의 朱家처럼 몰래 남을 도와주었으며, 모친상을 당하였을 때 조문객의 수레 천여 대가 모여들었지만, 그가 죽었을 때 집에 10金의 재산도 없었다.
▶ 周人 : 洛陽人을 말한다.
▶ 商賈 : 장사하다. 상인(상은 떠돌이(行商), 고는 붙박이)
▶ 資 : 생활의 밑천.
▶ 任俠 : 협객을 자임하다. 의협심이 강하다.
▶ 吳楚反 : 오초칠국의 吳楚七國
▶ 條侯 : 周亞夫. 李白의 梁甫吟에 <“吳楚弄兵無劇孟,亞夫咍爾爲徒勞。: 吳楚七國이 劇孟없이 군사를 일으키니, 周亞夫는 헛된 일을 하였다고 반란군을 비웃었도다.”>라는 표현이 있다.
吳·楚가 漢에 반란을 일으키매, 周亞夫가 이를 진압하러 가던 중에 河南에서 俠客인 劇孟을 얻고는 ‘吳楚가 천하를 얻고자 다투면서도 劇孟을 찾지 않은 것은 큰 실책이다.’라고 지적하며, ‘이제는 적을 수중에 얻은 거나 다를 바 없다.’라고 기뻐하였다. <梁甫吟 [史記列傳] 권106.吳王濞列傳>
▶ 傳車 : 역참용으로 사용하는 수레.
▶ 河南 : 漢의 郡 이름으로 낙양을 말한다.
▶ 宰相 : 주아부를 말한다.
▶ 行 : 행위.
▶ 大類 : 매우 비슷하다.
▶ 博 : 도박.
▶ 戱 : 遊戱. 놀이.
▶ 金 : 고대의 화폐 단위로 1斤 또는 1鎰을 1金이라 하였다.
▶ 稱 : 칭송하다.
▶ 諸白 : 백씨 일족.
<郭解>
郭解,軹人也,字翁伯,善相人者許負外孫也。
郭解는 軹縣 사람으로 자는 翁伯이며, 관상을 잘 보는 許負의 외손자이다.
解父以任俠,孝文時誅死。
郭解의 아버지는 任俠을 이유로 孝文帝 때 죽임을 당하였다.
解為人短小精悍,不飲酒。
郭解는 몸집은 작았지만 총명하며 사나웠고 술은 마시지 않았다.
少時陰賊,慨不快意,身所殺甚眾。
젊었을 때는 음험하고 잔인하였으며 분개하여 기분이 나쁘면 직접 사람을 죽임도 많았다.
以軀借交報仇,藏命作姦剽攻,休乃鑄錢掘冢,固不可勝數。
목숨을 걸고 친구를 도와 원수를 갚아주고, 망명자를 숨겨 주고 간악한 짓과 강도짓을 서슴지 않았고, 그런 일이 없을 때는 僞幣 鑄造와 盜掘을 멈추지 않으니, 헤아릴 수 없었다.
適有天幸,窘急常得脫,若遇赦。
다행히 天幸이 있어서 급한 궁지에서도 늘 빠져나오고, 혹은 사면을 받기도 하였다.
及解年長,更折節為儉,以德報怨,厚施而薄望。
郭解는 장년이 되면서 몸가짐을 바꾸어 신중해졌고, 덕으로써 원한을 갚고 후하게 베풀면서도 원망은 적었다.
然其自喜為俠益甚。
그러나 스스로 임협을 즐김은 더 심해졌다.
既已振人之命,不矜其功,其陰賊著於心,卒发于睚眦如故云。
남의 목숨을 구해주고도 그 공을 자랑하지 않았으나, 그의 잔혹함은 마음속에 붙어 있어서, 갑자기 폭발하면 눈을 부라리며 쏘아봄은 옛날 그대로였다고 한다.
而少年慕其行,亦輒為報仇,不使知也。
소년들이 그의 행동을 仰慕하여 그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주고도 알려주지 않았다.
▶ 相人 : 관상가.
▶ 孝文 : 漢文帝.
▶ 精悍 : 총명하고 사납다.
▶ 陰賊 : 음험하고 잔인하다.
▶ 慨 : 분개하다.
▶ 不快意 : 불만족하다.
▶ 借 : 돕다.
▶ 交 : 친구.
▶ 命 : 망명하다.
▶ 作姦 : 나쁜짓을 하다.
▶ 剽攻 : 약탈하다. 노상강도.
▶ 休 : 멈추다.
▶ 掘冢 : 도굴하다.
▶ 適 : 만나다. 마주치다.
▶ 天幸 : 천만다행.
▶ 窘急 : 궁지에 몰려 급하다.
▶ 若 : 단어나 구 혹은 단문을 이어주며 선택 관계를 나타낸다. “아니면” “혹은”
¶ 以萬人若一郡降者, 封萬戶. 《漢書 高帝紀》
○ 일만 명 혹은 일개 군을 이끌고 투항해 오는 자는, 그를 만호후에 봉해주었다.<허사 若 참조>
▶ 折節 : 몸가짐을 바꾸다.
▶ 儉 : 檢과 통하여 신중히 하다. 단속하다.
▶ 薄望 : 원망이 적어지다.
▶ 振 : 구하다.
▶ 著 : 붙다. 부착하다.
▶ 卒 : 猝과 통하여 돌연히.
▶ 睚眦(애자) : 성난 눈으로 쏘아보다. 눈을 부라리며 쏘아보다.
解姊子負解之勢,與人飲,使之嚼。
郭解의 누나의 아들이 郭解의 위세를 등에 업고 다른 사람과 술을 마시다가 그에게 술을 마시라고 하였다.
非其任,彊必灌之。
그가 감당하지 못한다고 하여도 억지로 술을 따라 권하였다.
人怒,拔刀刺殺解姊子,亡去。
그 사람이 화가 나서 칼을 뽑아 郭解의 조카를 찔러 죽이고 도망하였다.
解姊怒曰:
「以翁伯之義,人殺吾子,賊不得。」
郭解의 누이가 화를 내며 말하였다.
“옹백과 같은 의협심을 가지고도 남이 내 아들을 죽였는데 살인자를 잡지 못하는가.”
棄其尸於道,弗葬,欲以辱解。
아들의 시체를 길에 버리고 장례를 치르지 않았는데, 郭解를 모욕하려 함이었다.
▶ 負 : 의지하다.
▶ 嚼 : 釂과 통하여 잔을 비우다.
▶ 不任 : 감당하지 못하다. 즉 더 이상 술을 마시지 못하다.
▶ 翁伯 : 郭解의 字.
▶ 賊不得 : 살인자를 잡지 못하다.
解使人微知賊處。
郭解는 사람을 시켜 몰래 범인의 처소를 알아내었다.
賊窘自歸,具以實告解。
범인이 군색하자 스스로 歸順하여 郭解에게 자세히 이실직고하였다.
解曰:
「公殺之固當,吾兒不直。」
郭解가 말하였다.
“그대가 그를 죽임이 아무래도 당연하였다. 내 조카가 옳지 않았다.”
遂去其賊,罪其姊子,乃收而葬之。
이어 그 범인을 놓아주고, 조카에게 죄가 있다고 하며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렀다.
諸公聞之,皆多解之義,益附焉。
사람들이 알자, 모두 郭解의 의협심을 칭찬하며 더욱 그를 따랐다.
▶ 微知 : 몰래 탐색하여 알아내다.
▶ 不直 : 옳지 못하다. 이치에 닿지 않다.
▶ 去 : 놓아주다.
▶ 多 : 칭찬하다.
解出入,人皆避之。
郭解가 드나들 때면 사람들이 모두 그를 피하였다.
有一人獨箕倨視之,解遣人問其名姓。
한 사람이 유독 양다리를 벌리고 앉아 그를 바라보매, 郭解가 사람을 보내 그의 성명을 물어보게 하였다.
客欲殺之。解曰:
「居邑屋至不見敬,是吾德不修也,彼何罪!」
郭解의 문객이 그를 죽이려 하자 郭解가 말하였다.
“고향집에 살면서 존경을 받지 못함은 나의 덕을 수양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에게 무슨 죄가 있겠소!”
乃陰屬尉史曰:
「是人,吾所急也,至踐更時脫之。」
몰래 尉史에게 부탁하였다.
“이 사람은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인데, 踐更 때 빼주십시오.”
每至踐更,數過,吏弗求。
매번 踐更에 이름이 몇 번 지나가도 관리가 그를 찾지 않았다.
怪之,問其故,乃解使脫之。
괴이하게 여겨 그 까닭을 물었더니 郭解가 빼주었다는 것이었다.
箕踞者乃肉袒謝罪。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었던 자는 웃통을 벗고 사죄하였다.
少年聞之,愈益慕解之行。
少年들이 그 말을 듣고 郭解의 행동을 더욱 앙모하였다.
▶ 箕倨 : 두 다리를 뻗어 箕 모양으로 하다. 즉, 무례한 자세를 말한다.
▶ 居邑屋 : 고향집에 살다. 邑屋은 고향.
▶ 見 : 당하다.
▶ 属 : 嘱과 같다. 부탁하다.
▶ 急 : 중요하다.
▶ 踐更 : 부역을 대신하는 사람에게 금전을 주는 제도. (한나라 법에서는 在籍 男丁이 매년 한 달씩 지방에서 복무함을 卒更이라 하고, 돈을 받고 품을 팔려는 가난한 사람에게 졸경 해당자가 매월 2천 전을 주고 졸경을 대신하게 하였다. 이것을 踐更이라 한다.)
▶ 脱 : 면제하다.
▶ 肉袒 : 웃통을 벗어 상체를 드러내는 것이며 복종, 사죄 등의 뜻을 나타낸다.
▶ 愈益 : 더욱 더.
雒陽人有相仇者,邑中賢豪居閒者以十數,終不聽。
낙양 사람 중에 서로 원수처럼 지내는 사람이 있었는데, 고을 안의 현자와 호걸로서 중간에 든 자가 10여 명이었으나 끝내 듣지 않았다.
客乃見郭解。
이에 郭解의 빈객이 郭解를 만나 중재를 부탁하였다.
解夜見仇家,仇家曲聽解。
이에 郭解가 밤중에 원수 사이인 두 집을 방문하자 그들은 그들의 의사를 굽혀 郭解의 말을 들었다.
解乃謂仇家曰:
「吾聞雒陽諸公在此閒,多不聽者。
今子幸而聽解,解柰何乃從他縣奪人邑中賢大夫權乎!」
郭解가 이에 원수 사이인 사람에게 일렀다.
“제가 듣기에 낙양의 인사들이 중간에 들었으나 불청한 적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두 분이 제 말을 들으시니 다행입니다만, 저 郭解가 다른 고을에서 와서 어찌 남의 고을 현사의 권위를 빼앗겠습니까!”
乃夜去,不使人知,曰:
「且無用,待我去,令雒陽豪居其閒,乃聽之。」
그리고는 밤중에 떠나면서 남이 알지 못하게 하라고 말하였다.
“잠시 제 말을 듣지 않은 듯이 하시고, 제가 떠난 후에 낙양의 호걸에게 중재하게 하여 그들의 말을 따르십시오.”
解執恭敬,不敢乘車入其縣廷。
郭解는 공손한 태도를 지켜, 감히 수레를 타고 縣의 관아로 들어가지 않았다.
之旁郡國,為人請求事,事可出,出之;
不可者,各厭其意,然後乃敢嘗酒食。
가까운 郡國에 가서 남의 청구를 위하여 일함에, 사건의 내용이 자신이 나설 수 있는 것이면 나섰고,
처리하지 못할 일은 부탁한 사람이 만족할 만큼 설득한 후에야 감히 술과 음식을 맛보았다.
諸公以故嚴重之,爭為用。
이런 까닭으로 사람들이 郭解를 恪別히 존중하고, 다투어 그에게 쓰이려 하였다.
邑中少年及旁近縣賢豪,夜半過門常十餘車,請得解客舍養之。
마을의 젊은이와 이웃 현의 현자와 호걸이 밤중에 찾아오니, 수레가 항상 열 대가 넘었는데, 이것은 郭解의 門客을 청하여 자기들 집에서 대접하기 위함이었다.
▶ 仇 : 怨讐.
▶ 居閒 : 중간에 서서 화해시키다. 흥정을 붙이는 일.
▶ 客 : 門客.
▶ 曲聽 : 부득이 자기의 의사를 굽혀 남의 말에 따르다.
▶ 且 : 잠시.
▶ 執 : 엄수하다.
▶ 縣廷 : 현의 官衙.
▶ 之 : 가다.
▶ 出 : 가서 해결하다.
▶ 厭 : 만족하다.
▶ 嚴重 : 특별히 존중하다.
▶ 過 : 방문하다.
▶ 客 : 郭解의 門客을 말한다.
▶ 舍養 : 자기의 집에서 대접하다.
及徙豪富茂陵也,解家貧,不中訾,吏恐,不敢不徙。
(武帝 元朔 2년에) 부호들을 茂陵으로 이주시킴에, 郭解의 집이 가난하여 재산 등급에 해당하지 않았으나 관리들이 그의 명성을 두려워하여 감히 이주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衛將軍為言:
「郭解家貧不中徙。」
衛將軍이 말하였다.
“郭解의 집이 가난하매 이주 등급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上曰:
「布衣權至使將軍為言,此其家不貧。」
황제가 말하였다.
“평민의 권위가 장군이 그를 언급할 지경이니, 이것에서 그의 집이 가난하지 않음을 알 수 있소.”
解家遂徙。
郭解의 집은 이에 무릉으로 이주하였다.
諸公送者出千餘萬。
사람들이 전송하며 내놓은 돈이 천만 전이 넘었다.
軹人楊季主子為縣掾,舉徙解。
軹 사람인 楊季主의 아들은 현의 하급 관리로 郭解의 이주가 위법이라고 제보한 자였다.
解兄子斷楊掾頭。由此楊氏與郭氏為仇。
郭解의 형의 아들이 楊縣의 掾의 목을 잘랐다. 이로 인하여 양씨와 곽씨는 원수지간이 되었다.
▶ 徙 : 이주하다.
▶ 茂陵 : 漢武帝의 陵墓. 武帝 元朔 2년에 무제의 능묘를 생전에 미리 만들어 무릉에 전국의 3백만 석 이상의 부호들을 이주시켰다.
▶ 訾 : 資와 통하여 재물.
▶ 衛將軍 : 衛靑을 말한다.
▶ 權 : 권세.
▶ 擧 : 범법행위를 제보하다. =檢擧
解入關,關中賢豪知與不知,聞其聲,爭交驩解。
郭解가 關中에 오자 관중의 현자와 호걸들은 그를 알든 모르든 그의 명성을 듣고 다투어 郭解와 우호를 맺으려 하였다.
解為人短小,不飲酒,出未嘗有騎。
郭解는 체구가 왜소하였고 술을 마시지 않았으며, 외출함에 말을 타는 법이 없었다.
已又殺楊季主。
머지않아 또 양계주가 살해당하였다.
楊季主家上書,人又殺之闕下。
양계주의 집안에서 상서하자, 누군가가 또 궁궐에서 글을 올린 사람을 죽였다.
上聞,乃下吏捕解。
황제가 알고 관리에게 郭解를 체포하라고 명하였다.
解亡,置其母家室夏陽,身至臨晉。
郭解가 도망함에, 어머니와 식구를 夏陽에 두고 자신은 臨晉으로 갔다.
臨晉籍少公素不知解,解冒,因求出關。
임진의 籍少公은 평소 郭解를 알지 못하였으며 郭解가 실례를 무릅쓰고 出關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籍少公已出解,解轉入太原,所過輒告主人家。
적소공이 郭解를 보내주자 郭解가 방향을 돌려 太原으로 감에, 지나는 곳마다 집주인에게 자신의 정황을 알렸다.
吏逐之,跡至籍少公。
관리들이 그를 쫓아 추적이 적소공에 이르렀다.
少公自殺,口絕。
적소공이 자살하니 진술이 단절되었다.
久之,乃得解。
오랜 후에 郭解가 체포되었다.
窮治所犯,為解所殺,皆在赦前。
그의 범행을 끝까지 추궁하였으나 郭解에 의한 피살은 모두 赦免 이전에 있었다.
軹有儒生侍使者坐,客譽郭解,生曰:
「郭解專以姦犯公法,何謂賢!」
軹縣의 유생이 使者를 모시고 앉아 있다가 郭解의 문객이 郭解를 칭찬하자 유생이 말하였다.
“郭解는 간사하고 국법을 어김을 전문으로 하거늘 어찌 현자라고 하오!”
解客聞,殺此生,斷其舌。
郭解의 문객이 그 말을 듣고 그 유생을 죽이고 혀를 잘라버렸다.
吏以此責解,解實不知殺者。
관리가 이 일로 郭解를 문책하였으나 郭解는 실제로 살인자를 알지 못하였다.
殺者亦竟絕,莫知為誰。
살인자 역시 결국 종적을 감추매 아무도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吏奏解無罪。
관리는 郭解가 무죄라고 아뢰었다.
御史大夫公孫弘議曰:
「解布衣為任俠行權,以睚眥殺人,解雖弗知,此罪甚於解殺之。
當大逆無道。」
遂族郭解翁伯。
어사대부 公孫弘이 의논하였다.
“郭解는 평민의 몸으로 任俠하며 권세를 행세하고, 눈을 부릅떴다고 사람을 죽이매, 郭解가 비록 살인자를 모른다고 말하지만, 이 죄는 郭解 자신이 살인함보다 엄중합니다.
대역무도에 해당합니다.”
이리하여 郭解翁伯을 멸족하였다.
▶ 交驩 : 즐거이 사귀다.
▶ 已 : 머지않아. 얼마 후.
▶ 闕下 : 궁궐 아래.
▶ 亡 : 도망하다.
▶ 籍少公 : 사람 이름으로 姓은 籍이고 이름이 少公이다.
▶ 輒 : 번번이.
▶ 跡 : 추적하다.
▶ 口絕 : 진술이 단절되다. 비밀의 누설을 막다.
▶ 窮治 : 철저히 심문하다.
▶ 睚眥 : 눈을 부릅뜨다. 사소한 거스름.
▶ 族 : 멸족하다.
▶ 翁伯 : 郭解의 字
自是之後,為俠者極眾,敖而無足數者。
이후로도 협객을 자처하는 자가 아주 많았으나 오만무례하여 협객이라 꼽을 만한 자가 없다.
然關中長安樊仲子,槐裏趙王孫,陵高公子,西河郭公仲,太原鹵公孺,臨淮兒長卿,東陽田君孺,雖為俠而逡逡有退讓君子之風。
그러나 관중에는 長安의 樊仲子, 槐里의 趙王孫, 長陵의 高公子, 西河의 郭公仲, 太原의 鹵公孺, 臨淮의 兒長卿, 東陽의 田君孺 등이 비록 任俠하였지만 사양하여 겸손한 군자의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至若北道姚氏,西道諸杜,南道仇景,東道趙他、羽公子,南陽趙調之徒,此盜跖居民閒者耳,曷足道哉!
반면에 장안 북쪽의 姚氏, 서쪽 지방의 杜氏 일족, 남쪽 지방의 仇景, 동쪽의 趙他와 羽公子, 南陽의 趙調와 같은 무리에 관하여 말하자면, 이들은 盜跖이 민간에 섞여 살 뿐이었으니 어찌 말할 가치가 있겠는가!
此乃鄉者朱家之羞也。
이들은 예전의 朱家가 수치스러워하던 부류였다.
▶ 敖 : 傲와 통용된다. 오만하다.
▶ 卤公儒 : <漢書>에는 鲁公儒로 기록되어 있다.
▶ 逡逡 : 겸손한 모습.
▶ 退讓 : 양보하다. 사양하다.
▶ 曷 : 어찌.
▶ 鄉 : 向과 통하여 종전. 지난번.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吾視郭解,狀貌不及中人,言語不足採者。
“내가 郭解를 보았는데 모습은 보통사람에 미치지 못하였고, 말솜씨도 본받을 것이 없었다.
然天下無賢與不肖,知與不知,皆慕其聲,言俠者皆引以為名。
그러나 천하의 현명하거나 불초하거나, 알거나 모르거나 모두 그의 명성을 仰慕하고, 협객을 말하는 자는 모두 곽해의 이름을 끌어대어 자신의 명성으로 삼았다.
諺曰:
「人貌榮名,豈有既乎!」
속담에 말하였다.
‘사람들이 좋은 평판을 용모로 삼는다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於戲,惜哉!
오호라 애석하도다!”
▶ 不足採 : 본받을 가치가 없다.
▶ 榮名 : 좋은 평판. 영예.
▶ 既 : 다하다. 마치다.
▶ 於戲 : 嗚呼와 통용된다.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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