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篇은 前漢 儒學의 발전과정과 다수의 儒學者에 대한 전기이다.
儒林은 ‘孔子를 숭상하고 유교를 따르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漢武帝가 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五經博士‧博士祭酒를 신설하여 유학자들을 우대함으로써 유학이 융성하기 시작하였다.
유학을 발전시킨 인물로 사마천은 申公, 王臧, 趙綰, 轅固生, 韓嬰, 伏生, 董仲舒, 胡毋生를 꼽았다.
儒學의 발전과정.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余讀功令,至於廣厲學官之路,未嘗不廢書而嘆也。曰:
嗟乎!夫周室衰而關雎作,幽厲微而禮樂壞,諸侯恣行,政由彊國。
“내가 학관의 법규를 읽다가 學官의 진로를 넓히고 격려함에 이르러, 책을 덮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아아! 周나라 왕실이 쇠약해지자 關雎를 지었고, 주나라 幽王·厲王의 통치가 쇠락하자 禮樂이 파괴되었고, 제후가 제멋대로 행동하여 政令은 강한 제후국에서 나왔다.’
故孔子閔王路廢而邪道興,於是論次詩書,修起禮樂。
그러므로 孔子는 王道가 쇠하고 邪道가 흥기함을 근심하여 <詩經>과 <書經>을 論定하여 编次하고 禮樂을 정리하였다.
適齊聞韶,三月不知肉味。
齊에 가서 韶(순임금 때의 음악)를 듣고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알지 못하였다.
自衛返魯,然後樂正,雅頌各得其所。
衛에서 魯로 돌아온 후에 음악을 교정하니 ‘雅’와 ‘頌’이 각기 제자리를 찾았다.
世以混濁莫能用,是以仲尼干七十餘君無所遇,曰
「茍有用我者,期月而已矣」。
그러나 세상이 혼탁하매 기용할 수 있는 제후가 없었고, 이 때문에 중니가 70여 군주에게 관직을 구하였으나, 知遇가 없었으매 말하였다.
‘나를 등용하는 군주가 있다면 단지 일 년이면 될 터인데.’
西狩獲麟,曰
「吾道窮矣」。
魯의 서쪽에서 기린을 잡았음을 알고 말하였다.
‘내 道는 다하였다.’
故因史記作春秋,以當王法,其辭微而指博,後世學者多錄焉。
그러므로 魯 史官의 기록을 바탕으로 <春秋>를 지어 왕의 법도로 삼았는데, 그 文辭가 隱微하고 큰 뜻을 내포하고 있어서 후세 학자에 그것을 기록하는 자가 많았다.
▶ 功令 : 법령. 學官을 심사하여 임용하는 법규.
▶ 厲 : 勵와 같다. 고무하다. 격려하다.
▶ 學官 : 교육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관원과 官學의 선생을 말한다. 漢 때 五經博士‧博士祭酒를 처음으로 두었다.
▶ 關雎 : 詩經 國風 周南 6편 중 한 曲으로 周文王과 后妃의 덕을 말한 것으로 淑女를 얻어 군자에게 도움이 됨을 노래하는 내용이다.<詩經 國風 周南>
▶ 幽厲 : 周 幽王과 周 厲王. 유왕은 주의 12대 왕. 정치에는 관심이 없이 여흥과 酒色만을 탐닉하다 서주 왕실을 망하게 하였으며, 여왕은 탐욕스럽고 잔인하며 이익만 좇았고, 榮夷公을 卿士로 삼았으며 포학하고 사치스러운 데다 오만한 성격이라 諸侯는 조회를 오지 않았고, 나라 사람들은 그를 비방하였다.
▶ 政令 : 정치상의 명령.
▶ 閔 : 근심하다.
▶ 邪道 : 올바르지 못한 길.
▶ 論次 : 논평하고 정리하여 차례대로 엮다. 論定编次
▶ 詩書 : 시경과 서경.
▶ 韶 : 舜임금 때의 악곡 이름. 九韶라고도 한다.
▶ 雅頌 : 시경의 雅詩와 頌詩. “雅는 正의 뜻이니, 王政이 이로 말미암아 폐하고 흥하게 된다. 政事에 소,대가 있기 때문에 〈小雅〉가 있고 〈大雅〉가 있는 것이다. 頌은 盛德의 모습을 찬미하여 그 성공을 神明에게 告한 것이다.”<毛詩 大序>
▶ 干 : 벼슬을 구하다.
▶ 茍 : 만약.
▶ 期月 : 1년. =朞月=期年=朞年
▶ 西狩獲麟 : 魯 哀公 14년(기원전 481년), 공자 71세에 魯 서쪽에서 기린이 잡혔는데, 처음엔 그것이 무슨 동물인지 의아해하였다. 孔子도 그것을 구경하러 갔었는데, 그것이 기린임을 알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기린은 예부터 훌륭한 임금에 의하여 올바른 정치가 행하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는 매우 혼란한 시대였다. 그러므로 聖君의 治世가 아닌 亂世에 잘못 나와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잡힌 기린을 보고, 공자는 자신의 운명을 비춰서 슬퍼하였으며, 魯의 역사책인 춘추의 저술도 이 기린을 잡은 대목에서 붓을 꺾고 말았다.<孔子世家 권47>
▶ 指 : 大指.
自孔子卒後,七十子之徒散游諸侯,大者為師傅卿相,小者友教士大夫,或隱而不見。
공자가 세상을 떠난 이래, 70여 門徒가 흩어져서 제후에게 유세하였는데, 크게 된 자는 제후의 師傅와 卿相이 되었고, 작게 된 자는 사대부를 사귀거나 가르쳤으며, 어떤 자는 은거하며 나타나지 않았다.
故子路居衛,子張居陳,澹臺子羽居楚,子夏居西河,子貢終於齊。
그래서 子路는 衛에서 거주하고, 子張은 陳에 거주하고서, 澹臺子羽는 楚에 거주하고, 子夏는 西河에 거주하고, 子貢은 齊에서 생을 마쳤다.
如田子方、段干木、吳起、禽滑釐之屬,皆受業於子夏之倫,為王者師。
田子方·段干木·吳起·禽滑釐 같은 等屬은 모두 자하와 같은 무리에게서 수업하고 왕의 스승이 되었다.
是時獨魏文侯好學。
이때 유독 魏文侯가 儒學을 좋아하였다.
后陵遲以至于始皇,天下并爭於戰國,懦術既絀焉,然齊魯之閒,學者獨不廢也。
그 후 儒學은 점차 쇠퇴하여 秦始皇에 이르도록, 천하는 전국시대로 군웅이 서로 다투며 儒術을 배척하였으나, 齊와 魯 一帶에서만 학자가 끊어지지 않았다.
於威、宣之際,孟子、荀卿之列,咸遵夫子之業而潤色之,以學顯於當世。
齊의 威王·宣王의 시대에는 孟子·荀子의 同類가 모두 夫子의 학업을 준수하고 빛냄으로써 자신의 학설을 當世에 떨쳤다.
及至秦之季世,焚詩書,阬術士,六藝從此缺焉。
秦 말기에 이르자, <시경>과 <서경>을 불태우고 유생들을 坑殺하였는데, 六藝는 이로부터 殘缺되었다.
陳涉之王也,而魯諸儒持孔氏之禮器往歸陳王。
陳涉이 왕이 되자, 魯의 유생들이 공자 가문의 禮器를 가지고 陳王에게 귀순하였다.
於是孔甲為陳涉博士,卒與涉俱死。
이리하여 孔甲은 진섭의 博士가 되었다가 끝내 진섭과 함께 죽었다.
陳涉起匹夫,驅瓦合適戍,旬月以王楚,不滿半歲竟滅亡,其事至微淺,然而縉紳先生之徒負孔子禮器往委質為臣者,何也?
진섭이 필부로 일어나서 수자리 가는 瓦合之卒을 몰아 한 달 만에 楚에서 왕이 되었으나, 반년도 채우지 못하고 결국 멸망하여 그의 사업이란 아주 미천하였는데도, 벼슬아치들이 공자의 禮器를 지고 가서 예물로 바쳐 稱臣함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以秦焚其業,積怨而發憤于陳王也。
秦이 그들의 서적과 업적을 불태웠기 때문에 쌓인 원한을 陳王을 통하여 쏟아낸 것이다.
及高皇帝誅項籍,舉兵圍魯,魯中諸儒尚講誦習禮樂,弦歌之音不絕,豈非聖人之遺化,好禮樂之國哉?
高皇帝가 項籍을 죽이고 군대를 이끌고 魯를 포위하자, 魯의 유생들이 여전히 경전을 講誦하고 예악을 연습하면서 현악에 맞춰 詩歌를 읊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니, 어찌 성인이 물려준 風貌가 아니고 어찌 예악을 좋아한 나라가 아니겠는가?
故孔子在陳曰:
「歸與!歸與!
吾黨之小子狂簡,斐然成章,不知所以裁之。」
그러므로 공자는 陳에서 말하였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내 향당의 젊은이들은 뜻은 크고 실천함이 소홀하고 거치나 문장에는 文彩가 있어서 우수한데, 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구나.’
夫齊魯之閒於文學,自古以來,其天性也。
무릇 齊와 魯 일대의 사람들이 문학을 좋아함은 옛날부터 그들의 천성이다.
故漢興,然後諸儒始得修其經藝,講習大射鄉飲之禮。
그러므로 漢이 일어남에 유생들이 비로소 經學을 익힐 기회를 얻었고, 大射禮와 郷飮酒禮를 講習할 수 있었다.
叔孫通作漢禮儀,因為太常,諸生弟子共定者,咸為選首,於是喟然嘆興於學。
叔孫通은 漢 조정의 의례를 제정하고 그로 인하여 太常이 되었고, 유생과 제자로서 함께 제정한 자는 조정의 관리로 상등으로 피선되었고, 이에 사람들이 감탄하며 유학에 흥취를 가졌다.
然尚有干戈,平定四海,亦未暇遑庠序之事也。
그러나 여전히 전란이 있고 천하를 평정하였으매, 庠序를 세우고 백성을 교화시킬 겨를이 없었다.
孝惠、呂后時,公卿皆武力有功之臣。
惠帝·呂后의 시대에 公卿大臣들은 모두 무력에 공로가 있는 신하이었다.
孝文時頗徵用,然孝文帝本好刑名之言。
文帝 시대에 자못 유생을 불러서 등용하였지만, 문제가 본래 刑名의 학설을 좋아하였다.
及至孝景,不任儒者,而竇太后又好黃老之術,故諸博士具官待問,未有進者。
景帝 시대에 이르러 유생을 임용하지 않았고, 竇太后 또한 黃老의 학설을 좋아했기 때문에 박사들은 관원의 숫자만 채우고 하문을 기다릴 뿐 중용된 사람은 없었다.
▶ 七十子 : 사기 중니제자열전에서 공자는 “내 제자로서 학업에 힘써 六藝에 통달한 자는 77명이다.”라고 하였다. <사기 권67. 仲尼弟子列傳>
▶ 師傅 : 스승.
▶ 倫 : 또래. 무리.
▶ 好學 : 유교의 학문을 좋아함. 魏文侯는 卜子夏, 田子方, 段干木 세 사람을 얻어 모두 스승으로 모셨다. <사기 권44. 魏世家>
▶ 懦術 : 儒學. 懦는 ‘儒’의 오류이다.
▶ 陵遲 : 쇠퇴하다.
▶ 絀 : 배척하다.
▶ 威宣之際 : 齊 威王과 宣王의 집정 시기.
▶ 列(례) : 同類.
▶ 夫子 : 孔子의 존칭.
▶ 潤色 : 다듬다.
▶ 季世 : 말기. 말년.
▶ 術士 : 儒生.
▶ 六藝 : 六經을 말하며, <詩經>, <書經>, <禮記>, <易經>, <樂經>, <春秋> 여섯 종의 유가의 고대 경전을 가리킨다.
▶ 陳涉 : 秦 농민 출신으로 戍卒로 가던 중 봉기한 사람이다. 이곳저곳에서 반란이 일어나 秦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 끝내 멸망하였다.<사기 권48. 陳涉世家>
▶ 禮器 : 祭器. 제사 의식에 쓰이는 그릇.
▶ 孔甲 : 孔子의 8대손.
▶ 瓦合適戍 : 변경으로 수자리 가는 죄인들을 임시로 모으다. 瓦合은 깨진 기와를 서로 맞추되 맞지 않음을 말한다(破瓦相合,雖聚而不齊。比喻烏合之眾。). 適은 謫과 같다.
▶ 縉紳 : 搢紳과 같다. 벼슬아치의 총칭.
▶ 委質 : 고대 신하가 군주에게 헌신의 표시로 바치는 예물. 質은 贄(폐백‘지’)와 통한다. 引伸하여 稱臣을 의미하기도 한다.
▶ 誅項籍 : 漢王 5년(기원전 202년), 漢王 유방이 서초패왕 項羽를 무찌르고 서초를 멸하였다. <사기 권8. 高祖本紀>
▶ 弦歌 : 현악에 맞추어 노래 부르다.
▶ 黨 : 鄉黨. 시골의 마을.
▶ 狂簡 : 뜻하는 바는 크나 실천함이 없이 소홀하고 거칢.
▶ 斐然 : 文採가 있는 모양. 우수하다.
▶ 裁 : 마름질하다.
▶ 修 : 연구하여 익히다.
▶ 經藝 : 經學. 經書에 관한 學藝
▶ 講習 : 강론하고 연습함.
▶ 大射禮 : 임금이 先聖에게 祭享하고 나서 활을 쏘는 禮.
▶ 鄉飲 : 향학에서 3년 동안 학업을 닦은 사람 중 우수한 사람을 천거할 때 그를 송별하기 위하여 고을의 長者를 모시고 전별연을 베풀며 행하는 예법.
▶ 叔孫通 : 秦 말기 전한초기의 관료로 薛縣 사람이다. 처음에는 秦 二世皇帝를 섬겨 博士를 지내다가 위태로움을 알고 달아나 項梁과 項羽를 섬겼다가 劉邦에게 귀순하여 박사가 되고, 稷嗣君으로 불렸다. 유방이 천하를 차지한 뒤에 魯의 유생들을 불러 나라의 예법을 다시 만들자고 설득하여 漢의 예악과 조정의 예법을 새롭게 제정하였다.<사기 권99. 劉敬叔孫通列傳>
▶ 選首 : 피선된 자로서 최우수자.
▶ 干戈 : 전쟁.
▶ 未暇遑 : ~할 겨를이 없다.
▶ 庠序 : 학교. 庠은 은나라와 주나라 때의 鄕學.
▶ 刑名之言 : 刑名學派의 이론. 대표적 인물은 申不害이다.
법으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과 기술. 刑은 形과 통하여 ‘형체’ 또는 事實을 말하며 名은 언론 또는 주장을 말한다.
▶ 黃老之術 : 도가학설. 黄帝와 老子의 학설. 황로사상은 전국시대 중후기부터 漢 시대까지 약 400년 동안 유행하던 하나의 사상이다. 황제가 전설상의 인물이지만 각종 법률과 규칙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상징되며 노자는 도가사상의 뿌리이자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황로사상은 보통 법가와 도가가 융합된 사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 竇太后 : 漢 文帝 劉恆의 처. 景帝의 어머니.
유학의 발전과정과 公孫弘의 上奏文.
及今上即位,趙綰、王臧之屬明儒學,而上亦鄉之,於是招方正賢良文學之士。
今上이 즉위함에 趙綰과 王臧 等屬이 유학에 밝았고, 황제 또한 유학을 지향하매, 方正·賢良· 文學의 선비를 招募하였다.
自是之后,言詩於魯則申培公,於齊則轅固生,於燕則韓太傅。
그 뒤로 <시경>을 강론함에, 魯에 申培公, 齊에 轅固生, 燕에 韓太傅가 있었다.
言尚書自濟南伏生。
<尙書>를 강론은 濟南의 伏生에서 시작되었다.
言禮自魯高堂生。
<禮>를 강론은 魯의 高堂生에서 시작되었다.
言易自菑川田生。
<易經>을 강론은 菑川의 田生에서 시작되었다.
言春秋於齊魯自胡毋生,於趙自董仲舒。
<春秋>의 강론은 齊와 魯의 胡毋生에서 시작되었으며 趙에서는 董仲舒에서 시작되었다.
及竇太后崩,武安侯田蚡為丞相,絀黃老、刑名百家之言,延文學儒者數百人,而公孫弘以春秋白衣為天子三公,封以平津侯。
두태후가 붕어하고 武安侯 田蚡이 丞相이 되어 黃老와 刑名學 등 百家의 학설을 배척하고, 경학에 정통한 유학자 수백 명을 조정으로 초빙하여 관리로 삼았는데, 公孫弘은 단지 <춘추>에 정통함으로써 평민에게 천자를 보좌하는 三公으로 삼고 平津侯로 봉하였다.
天下之學士靡然鄉風矣。
천하의 학자들이 바람에 휩쓸리듯이 유학을 연구하였다.
▶ 今上 : 漢武帝를 말한다.
▶ 鄉 : 向과 같다. 지향하다.
▶ 招方正賢良文學之士 : 建元 기원전 140년, 천자가 막 즉위하여 천하에 賢良과 文學으로 이름난 선비들을 초빙하였다. <사기 권 12. 孝武本紀>.
▶ 方正賢良文學 : 方正·賢良·文學. 한나라 때 동중서의 건의로 시행된 鄕擧里選制의 관리를 선발의 과목들이다. 孝廉·賢良·方正·直言·文学·計吏·秀才 등이 있었다
▶ 申培公 : 申培. 前漢 魯의 학자로 문제 때 楚王의 태자 무의 스승이 되었으며 정치고문으로 태중대부를 지냈다. 시경에 정통하였다.
▶ 轅固生 : 轅固. 전한 齊 사람으로 시경을 익혔고, 今文齊詩學의 개창자다. 景帝 때 박사가 되었다.
▶ 伏生 : 伏勝. 제남 출신으로 자는 子賤이다. 복희의 후예라고 한다. 生은 학자를 높여 부르는 명칭이다. 秦 때 박사를 지낸 경학자로서 今文尙書를 보존하여 전수하였다.
▶ 禮 : 儀禮를 말하며 禮經이라고도 한다.
▶ 易 : 周易. 易經이라고도 한다. 유가의 경전의 하나.
▶ 延 : 불러들이다.
▶ 白衣 : 평민을 말한다. 당시 평민은 흰 옷을 입었다.
▶ 三公 : 조정의 최고 3개 관직. 漢 때에는 丞相, 太尉, 御史大夫를 말한다.
▶ 靡然鄉風 : 풍속이 한쪽으로 쏠리다. 靡然은 한쪽으로 쏠리는 모양.
公孫弘為學官,悼道之郁滯,乃請曰:
공손홍이 學官이 되자 儒學이 침체됨을 두려워하며 다음과 같이 주청하였다.
「丞相御史言:制曰
“승상과 御史大夫의 보고에 따르면, 황제께서 칙령을 내렸습니다.
『蓋聞導民以禮,風之以樂。
‘듣자 하니 禮儀로써 백성을 이끌고, 음악으로써 감화시킨다고 하였다.
婚姻者,居屋之大倫也。
혼인이란 부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윤리이다.
今禮廢樂崩,朕甚愍焉。
지금 예악이 버려지고 붕괴되매 짐은 심히 우려하고 있다.
故詳延天下方正博聞之士,咸登諸朝。
그리하여 천하에 품행이 方正하고 박학다식한 인사들을 모두 초빙하여 모두 조정에 등용하였다.
其令禮官勸學,講議洽聞興禮,以為天下先。
그것은 禮官에게 학문을 권장하도록 명령하여 유학을 강론하고 학식을 넓혀서 다시 예악을 일으켜 천하에 솔선하려 함이다.
太常議,與博士弟子,崇鄉里之化,以廣賢材焉』。
太常에게 박사 및 그 제자들과 의논하여 민간의 교화를 숭상함으로써 널리 현명한 인재들을 배출토록 하라.’
謹與太常臧、博士平等議曰:
삼가 태상인 孔藏과 박사인 平 등과 함께 의논하여 말씀드렸습니다.
聞三代之道,鄉里有教,夏曰校,殷曰序,周曰庠。
‘듣자오니 三代의 治國의 도에 향리마다 교육 장소가 있었으니, 夏는 校, 殷은 序, 周는 庠이라 일컬었다 합니다.
其勸善也,顯之朝廷;
其懲惡也,加之刑罰。
백성에게 선을 권장함에 조정에 드러내고,
악을 징계함에는 형벌을 가하였습니다.
故教化之行也,建首善自京師始,由內及外。
그러므로 교화를 실천함에는 경사에서 본보기를 세우기 시작하여, 이로 말미암아 경사에서 지방으로 넓혀나가야 합니다.
今陛下昭至德,開大明,配天地,本人倫,勸學修禮,崇化厲賢,以風四方,太平之原也。
지금 폐하께서는 지극한 덕을 밝히고, 큰 지혜를 열어서 천지의 대도와 부합하게 하고, 인륜의 근본으로 삼아 학문을 권장하고, 예의를 닦아 교화를 숭상하며 어진 선비를 격려하시고, 또 이를 모범으로 삼아 천하 사방을 다스려서 태평성대의 근원이 되게 하십시오.
古者政教未洽,不備其禮,請因舊官而興焉。
고대의 정치와 교화가 미흡하고 예의 제도가 갖추어지지 못하였으니, 청컨대 옛날 관제를 참고하여 이를 일으키기를 청합니다.
為博士官置弟子五十人,復其身。
博士官에게 제자 50명을 배치하시고, 그들의 세금과 부역을 면제하십시오.
太常擇民年十八已上,儀狀端正者,補博士弟子。
太常에게는 백성 중에 18세 이상으로 용모와 태도가 단정한 인물을 선발하여 박사의 제자로 보충하십시오.
郡國縣道邑有好文學,敬長上,肅政教,順鄉里,出入不悖所聞者,令相長丞上屬所二千石,二千石謹察可者,當與計偕,詣太常,得受業如弟子。
郡國·縣·道·邑에서 경학을 좋아하고 어른을 존경하고 정치와 교화를 엄수하고 고을 사람들과 우애하고 언행이 배움과 거스르지 않는 자를, 縣令·諸侯國의 宰相·縣長·縣丞들은 二千石 이상의 봉록을 받는 상급 관리인 郡守·諸侯國의 王·丞相에게 천거하고, 그들 중에 적합한 자를 신중히 뽑아서 計吏와 더불어 도성의 태상에게 보내어 박사 제자들처럼 수업하게 하십시오.
一歲皆輒試,能通一藝以上,補文學掌故缺;
其高弟可以為郎中者,太常籍奏。
1년이 지날 때마다 모두 시험을 치르게 하여 한 가지 이상의 경서에 정통하면 文學과 掌故의 결원을 보충하고,
그들 중 뛰어난 자를 郎中으로 임명하고, 태상이 명부를 작성하여 아룁니다.
即有秀才異等,輒以名聞。
만약 뛰어난 수재가 있으면 그때마다 이름을 아룁니다.
其不事學若下材及不能通一藝,輒罷之,而請諸不稱者罰。
그들 중에 학업에 힘쓰지 않거나, 재능이 뒤떨어져서 한 가지 경학에도 능통하지 못하면 그때그때 배제하고, 이러한 부적격자를 추천한 관리를 징벌하십시오.
臣謹案詔書律令下者,明天人分際,通古今之義,文章爾雅,訓辭深厚,恩施甚美。
신이 삼가 반포된 조서와 율령을 살펴보았는데, 天道와 人道의 관계를 천명하였고, 예부터 지금까지 치국의 의리를 관통하였고, 문장은 바르고 우아하였고, 訓話는 심후하였고, 은덕을 베풂이 사직과 백성에 매우 복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小吏淺聞,不能究宣,無以明布諭下。
그러나 낮은 관리들은 견문이 淺薄하고 鄙陋하여 폐하의 조서와 율령을 투철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분명하게 백성을 일깨우지 못하였습니다.
治禮次治掌故,以文學禮義為官,遷留滯。
그래서 治禮와 掌故의 직함을 설치하여 문학과 예의에 능통한 자가 담당하게 하였으나, 그들의 승진마저 적체되어 있습니다.
請選擇其秩比二百石以上,及吏百石通一藝以上,補左右內史、大行卒史;
比百石已下,補郡太守卒史:
皆各二人,邊郡一人。
청하오니, 녹봉 比二百石 이상부터 백석 이상의 관리까지 한 가지 이상 경학에 해박한 자를 선발하여 左右內史·大行卒史로 補任하시고,
比百石 이하의 관리는 郡 태수의 卒史로 補任하시되,
각 군 모두 2명으로 하고, 邊境의 군에는 정원을 1명으로 하십시오.
先用誦多者,若不足,乃擇掌故補中二千石屬,文學掌故補郡屬,備員。
우선 경서를 많이 암송하는 자를 채용하고, 만약에 인원이 부족하면 掌故 중에서 선발하여 中二千石의 屬官으로 補任하며, 또한 문학과 장고에서 선발하여 郡國 태수의 屬官으로 補任하여 관원을 채우십시오.
請著功令。佗如律令。」
청컨대 이를 功令에 著錄하시고, 그 나머지는 율령대로 하십시오.”
制曰:
「可。」
황제가 조칙을 내렸다.
‘좋다.’
自此以來,則公卿大夫士吏斌斌多文學之士矣。
이후부터 公卿·大夫·士·吏가 文質彬彬한 經學의 선비가 많았다.
▶ 公孫弘 : 漢武帝때 內史·御史大夫를 역임하였으며, 기원전 124년 丞相이 되고 平津侯에 봉해졌다.
▶ 學官 : 교육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관원과 官學의 선생을 말한다. 漢 때 五經博士‧博士祭酒를 처음으로 두었다.
▶ 悼 : 두려워하다.
▶ 道 : 학설. 유학을 말한다.
▶ 郁滯 : 학설을 널리 알리고 관철시키지 못함.
▶ 制 : 황제의 명령.
▶ 風 : 교화. 감화.
▶ 居室 : 부부관계를 말한다.
▶ 愍 : 우려하다.
▶ 詳 : 모두.
▶ 洽聞 : 식견이 넓다. 학식을 해박하게 함.
▶ 三代 : 夏, 殷, 周.
▶ 首善 : 모범. 본보기.
▶ 復 : 세금과 부역을 면제하다.
▶ 已上 : 以上. 已는 以와 통한다.
▶ 長上 : 윗사람.
▶ 順 : 友愛.
▶ 悖 : 위배되다.
▶ 所聞 : 배운 바. 배울만한 일.
▶ 上屬 : 추천하다.
▶ 所二千石 : 상급관리에 예속된 縣令, 제후국의 재상, 縣長 및 縣丞을 말한다.
▶ 計 : 郡守에 속하여 있는 회계 관리.
▶ 偕 : 동반하다.
▶ 掌故 : 역사적 사실. 역사의 제도와 문화 연혁 등을 맡은 관리.
▶ 高弟 : 뛰어난 제자.
▶ 籍奏 : 명부에 기입하여 상주하다.
▶ 其不事學若下材及不能通一藝 : 若은 단어나 구 혹은 단문을 이어주며 선택 관계를 나타낸다. “아니면” “혹은”
¶ 灌夫奮曰: “願取吳王若將軍頭以報父之仇.” 《史記 竇嬰田蚠傳》
○ 관부가 분연히 말했다: “오왕의 목 아니면 그 대장의 머리를 취하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습니다.”
▶ 天人分際 : 天道와 人道의 상호관계.
▶ 爾雅 : 우아하고 고상하다.
▶ 訓辭 : 訓話.
▶ 究宣 ; 투철하고 틀림없이 講解함.
▶ 治禮次治掌故 : 《史记会注考证》认为此句“次治”二字系衍文,因为“治礼”“掌故”本身都是官职。
▶ 秩 : 녹봉.
▶ 比二百石 : 漢 제도에 관리가 받는 祿俸의 많고 적음에 따라 관리의 등급을 정하였는데 二百石은 中二百石·二百石·比二百石의 3등급으로 분류헀다.
▶ 誦多者 : 경서를 많이 암송하는 자.
▶ 中二千石屬 : 左右內史와 大行官의 卒史. 屬은 소속 관리.
▶ 功令 : 考选学官的法规. 학관을 선발하는 법규.
▶ 佗 : 他와 같다. 기타.
▶ 斌斌 : 彬彬과 같다. 내용과 외관이 함께 갖추어져 있어 盛한 모양.
申公[申培]
申公者,魯人也。
申公은 魯의 사람이다.
高祖過魯,申公以弟子從師入見高祖于魯南宮。
高祖가 魯에 들렀을 때 申公은 제자로서 스승을 따라 魯의 南宮에서 高祖를 알현하였다.
呂太后時,申公游學長安,與劉郢同師。
여태후 때 申公이 장안에서 游學하면서 劉郢과 함께 浮丘伯에게서 同門修學하였다.
已而郢為楚王,令申公傅其太子戊。
그 후에 劉郢이 楚王이 되자 신공을 태자 劉戊의 스승으로 명하였다.
戊不好學,疾申公。
유무는 학문을 좋아하지 않았으매 申公을 미워하였다.
及王郢卒,戊立為楚王,胥靡申公。
유영이 죽고 유무가 초왕이 되자 申公을 감금하고 죄인으로 만들었다.
申公恥之,歸魯,退居家教,終身不出門,復謝絕賓客,獨王命召之乃往。
申公이 치욕으로 여기고 魯로 귀향하였다.
은퇴하여 집에서 제자를 가르치며, 평생토록 문밖에 출입하지 않고 또 빈객의 방문을 사절하였는데, 유독 魯恭王이 명령하여 부르면 갔다.
弟子自遠方至受業者百餘人。
제자로서 먼 지방에서 와서 수업하는 자가 백여 명이나 되었다.
申公獨以詩經為訓以教,無傳,疑者則闕不傳。
申公은 단지 <詩經>을 해설하고 가르치되 傳을 남기지 않았으니, 의심스러운 것은 빼버리고 전하지 않았다.
▶ 申公 : 前漢 시대의 유학자로 이름은 培. 魯 사람이다. 이름자 대신 존칭인 公을 대신 붙여 申公이라고 일컬으며 申培公이라고 한다. 순자의 제자인 齊 사람 浮丘伯의 밑에서 <시경>을 배웠다.
▶ 弟子從師 : 申公의 스승은 齊의 浮丘伯이다.
▶ 劉郢 : 楚夷王 劉郢. 전한의 제후국 楚의 왕으로 高祖 유방의 동생초 楚元王 劉交의 아들이다.
▶ 劉戊 : 전한의 제후국 楚의 왕으로 오왕 유비와 함께 오초칠국의 난을 주도하였다.
▶ 疾 : 미워하다.
▶ 胥靡 : 감금하다. 胥靡는 연결하여 묶어서 서로 따름을 말하니 服役하는 죄인들을 말한다.
▶ 王 : 魯恭王 劉餘.
▶ 命召 : 왕이 특별히 부름.
▶ 訓 : 語義를 해설하다.
▶ 無傳 : 没有阐发经义的著述。传,讲解经义的文字。經義를 밝히는 저술이 없음. 傳은 經義를 풀이하는 문자이다.
王臧, 趙綰
蘭陵王臧既受詩,以事孝景帝為太子少傅,免去。
蘭陵의 王臧은 申公에게 <시경>을 배우고 나서 景帝를 섬겨 太子少傅가 되었다가 면직되어 물러났다.
今上初即位,臧乃上書宿衛上,累遷,一歲中為郎中令。
今上의 즉위 초에 王臧이 상서하여 황제를 宿衛하다가, 여러 번 승진하여 1년 만에 郎中令이 되었다.
及代趙綰亦嘗受詩申公,綰為御史大夫。
代의 趙綰도 일찍이 申公에게 <시경>을 수업하고, 어사대부가 되었다.
綰、臧請天子,欲立明堂以朝諸侯,不能就其事,乃言師申公。
趙綰과 王臧은 무제에게 주청하여 明堂을 세워 제후를 朝見하게 하려 하였으나, 그 일을 성취하지 못하자, 자신들의 스승인 申公을 천거하였다.
於是天子使使束帛加璧安車駟馬迎申公,弟子二人乘軺傳從。
이에 천자가 사신을 보내되 束帛·玉璧·네 마리 말이 모는 편안한 수레로 申公을 모셔오도록 하였는데, 제자인 趙綰과 王臧도 역마차를 타고 申公을 隨從하였다.
至,見天子。
申公이 도착하여 천자를 알현하였다.
天子問治亂之事,申公時已八十餘,老,對曰:
「為治者不在多言,顧力行何如耳。」
천자가 혼란한 세상을 다스리는 법을 자문하매, 申公은 당시에 이미 여든이 넘은 노인으로 대답하였다.
“정치란 말이 많음에 있지 않고, 힘써 행함이 어떠한가에 있을 뿐입니다.”
是時天子方好文詞,見申公對,默然。
그 당시 천자가 한창 文詞에 심취하였으매, 申公을 접견하고 실망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然已招致,則以為太中大夫,舍魯邸,議明堂事。
그러나 이왕 초청하였으매 太中大夫로 삼고, 魯의 저택에 머물게 하고 명당을 세우는 일을 상의하였다.
太皇竇太后好老子言,不說儒術,得趙綰、王臧之過以讓上,上因廢明堂事,盡下趙綰、王臧吏,後皆自殺。
太皇 竇太后가 老子의 학설을 좋아하고 유학을 싫어했기 때문에 趙綰과 王臧의 과실을 들추어내서 무제를 꾸짖으니, 무제는 이로 말미암아 명당을 세우는 일을 폐지하고, 趙綰과 王臧을 모두 법관에게 내려 논죄하게 하니, 그 후에 모두 자살하였다.
申公亦疾免以歸,數年卒。
申公 또한 병으로 면직되어 귀향하였는데 몇 년 뒤에 죽었다.
▶ 王臧 : 전한 중기의 유학자이자 관료로, 동해군 蘭陵縣 사람이다. 申公의 제자로 趙綰과 함께 무제에게 기용되었다.
▶ 趙綰 : 전한 중기의 유학자이자 관료로, 代 사람이다. 申公의 제자로 王臧과 함께 무제의 중용을 받았다.
무제가 평소 유가의 학술을 숭상하여 丞相 竇嬰과 太尉 田蚡이 모두 유가의 학술을 좋아하여 趙綰을 추천하여 御史大夫로 삼고 王臧을 郎中令으로 삼았다.<通鑑節要 제9권>
▶ 宿衛上 : 황제를 호위하려 宿直함.
▶ 明堂 : 天子가 하늘의 명을 받아 백성을 다스린다는 중국 고대의 정통적 정치사상을 나타내는 상징적 의미를 담은 건물. 朝會, 祭祀, 慶賞, 選士, 敎學 등 중요 의식이 행해졌다.
▶ 束帛 : 禮物로 주고받는 禮幣로서 한 묶음의 비단이다. 비단 5필을 각각 양 끝에서 마주 만 것이 한 묶음임. 聘問할 때 예물로 사용하였다.
▶ 安車駟馬 : 네 마리 말이 끄는 앉아서 타고 가는 수레.
▶ 軺傳 : 역마차. 한 마리나 두 마리 말이 끄는 역참용 마차.
▶ 治亂 : 혼란한 세상을 다스림.
▶ 文詞 : 문장의 글귀.
▶ 邸 : 황제를 알현함에 제후가 묵는 집.
▶ 太皇窦太后 : 孝文皇后 竇漪房. 文帝의 황후이며, 景帝의 어머니이다.
▶ 說 : 悅과 같다.
▶ 讓 : 꾸짖다.
孔安國 외
弟子為博士者十餘人:
孔安國至臨淮太守,周霸至膠西內史,夏寬至城陽內史,碭魯賜至東海太守,蘭陵繆生至長沙內史,徐偃為膠西中尉,鄒人闕門慶忌為膠東內史。
申公의 제자로서 박사가 된 사람은 10여 명이었다.
孔安國은 臨淮太守, 周霸는 膠西內史, 夏寬은 城陽內史, 碭 출신의 魯賜는 東海太守, 蘭陵 출신의 繆生은 長沙內史, 徐偃은 膠西中尉, 鄒 출신인 闕門慶忌는 膠東內史가 되었다.
其治官民皆有廉節,稱其好學。
그들이 官民을 다스림에 모두 淸廉하고 節操가 있으매 사람들은 그들이 학문을 좋아함을 칭찬하였다.
學官弟子行雖不備,而至於大夫、郎中、掌故以百數。
學官이 된 제자로서 품행을 비록 완비하지 못하였지만, 大夫·郎中, 掌故의 관직까지 오른 자가 백여 명이었다.
言詩雖殊,多本於申公。
<시경>에 대한 해석은 비록 서로 달랐지만, 申公의 견해에 근본을 둔 것이 많았다.
▶ 孔安國 : 字는 子國이고 魯 사람으로 공자의 11대손이며 한문제 때 臨淮太守를 지낸 孔武의 아들이다.
▶ 行 : 품행.
轅固生
清河王太傅轅固生者,齊人也。
淸河王 劉承의 太傅 轅固生은 齊 사람이다.
以治詩,孝景時為博士。
<시경>의 연구를 인정받아 景帝 때 박사가 되었다.
與黃生爭論景帝前。
黃生과 경제 앞에서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黃生曰:
「湯武非受命,乃弒也。」
황생이 말하였다.
“湯王과 武王은 천명을 받은 것이 아니라 군주를 시해한 것입니다.”
轅固生曰:
「不然。
夫桀紂虐亂,天下之心皆歸湯武,湯武與天下之心而誅桀紂,桀紂之民不為之使而歸湯武,湯武不得已而立,非受命為何?」
원고생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무릇 桀王가 포학하고 昏亂하여 천하의 민심이 모두 湯武에게 歸附하였고, 탕무는 천하 민심에 동참하여 걸주를 죽였고, 걸주의 백성은 군주의 부림을 받지 않고 탕무에게 歸附하였으매, 탕무가 부득이 천자로 즉위함을, 천명을 받음이 아니라고 하고 무엇이라 하겠습니까?”
黃生曰:
「冠雖敝,必加於首;
履雖新,必關於足。
황생이 말하였다.
“모자가 비록 낡아도 반드시 머리에 써야 하고,
신이 비록 새것이라도 반드시 발에 신어야 합니다.
何者,上下之分也。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상하를 구분하는 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今桀紂雖失道,然君上也;
湯武雖聖,臣下也。
그런데 걸주가 비록 無道하였으나, 군주로서 윗자리에 있었고,
탕무가 비록 聖人이지만, 신하로서 아랫자리에 있었습니다.
夫主有失行,臣下不能正言匡過以尊天子,反因過而誅之,代立踐南面,非弒而何也?」
대저 군주에게 잘못된 행위가 있음에 신하가 바른말로 잘못을 바로잡아 천자를 받들 수 없다고 하여, 도리어 잘못을 트집 잡아 군주를 주살하고, 대신 즉위하여 南面에 오름이 시해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轅固生曰:
「必若所云,是高帝代秦即天子之位,非邪?」
원고생이 말하였다.
“당신이 말한 바를 기어이 옳다고 하면, 高祖께서 秦을 대신하여 천자의 자리에 오름도 그릇되었습니까?”
於是景帝曰:
「食肉不食馬肝,不為不知味;
言學者無言湯武受命,不為愚。」
이에 경제가 말하였다.
“고기를 먹되 말의 간을 먹지 않았다고 하여 고기 맛을 모른다고 말하지 않고,
학문을 말하는 사람이 탕무가 천명을 받음을 말하지 않았다고 하여 어리석다고 말하지 않는다.”
遂罷。
이리하여 쟁론이 멈추었다.
是後學者莫敢明受命放殺者。
이후 학자들이 감히 受天命과 弑害에 대하여 闡明하지 못하였다.
竇太后好老子書,召轅固生問老子書。
竇太后는 <老子>라는 책을 좋아하여 원고생을 불러 <노자>에 관하여 물었다.
固曰:
「此是家人言耳。」
원고생이 대답하였다.
“그것은 집에 딸린 사람(奴僕)의 언론에 불과합니다.”
太后怒曰:
「安得司空城旦書乎?」
태후가 노하여 말하였다.
“어찌 司空의 城旦書에 비교하겠는가?”
乃使固入圈刺豕。
이에 원고생에게 축사에 들어가서 돼지를 찔러 죽이게 하였다.
景帝知太后怒而固直言無罪,乃假固利兵,下圈刺豕,正中其心,一刺,豕應手而倒。
경제는 태후가 화났지만 원고생의 직언에 죄가 없음을 알고, 원고생에게 날카로운 무기를 빌려주매, 축사에 가서 돼지를 찔러 그 심장에 적중하니, 단칼에 돼지가 손놀림에 응하여 쓰러졌다.
太后默然,無以復罪,罷之。
태후가 침묵하다가 다시 벌할 방법이 없어서 그만두었다.
居頃之,景帝以固為廉直,拜為清河王太傅。
오래되지 않아서, 경제가 원고생을 청렴하고 정직하다고 여기고 청하왕의 태부로 임명하였다.
久之,病免。
관직에 오래 있다가 병으로 免職되었다.
今上初即位,復以賢良徵固。
今上 즉위 초에 다시 賢良의 職에 원고생을 徵召하였다.
諸諛儒多疾毀固,曰
「固老」,罷歸之。
아첨하는 유생에 원고생을 시기하여 헐뜯는 자가 많았는데, 말하기를,
“원고생은 늙었습니다.”
라고 하자, 파직하여 귀향하게 하였다.
時固已九十餘矣。
이때 원고생의 나이가 이미 구십여 세이었다.
固之徵也,薛人公孫弘亦徵,側目而視固。
원고생을 징소함에 薛邑 출신의 공손홍도 불렀는데, 원고생을 어려워하여 곁눈질로 그를 보았다.
固曰:
「公孫子,務正學以言,無曲學以阿世!」
원고생이 말하였다.
“公孫 선생, 바른 학문으로 論事함을 힘쓰고, 왜곡된 학문으로 세속에 영합하지 마시오!”
自是之後,齊言詩皆本轅固生也。
이후부터 齊에서 <시경>을 강론하는 자들은 모두 원고생의 견해에 바탕을 두었다.
諸齊人以詩顯貴,皆固之弟子也。
齊 사람으로 <시경>을 연구하여 顯貴한 자는 모두 원고생의 제자들이었다.
▶ 轅固生 : 轅固. 전한 齊 사람으로 시경을 익혔고, 今文齊詩學의 개창자다. 景帝 때 박사가 되었다. 청렴과 강직함으로 淸河太傅에 임명되었지만 병으로 사임하였다.
▶ 淸河王 : 淸河哀王 劉乘. 전한의 황족·제후왕으로, 첫 청하왕이다. 漢景帝와 왕부인의 아들이다.
▶ 治 : 연구하다.
▶ 黃生 : 黃子라고도 부른다. 전한 때 사람. 黃老術을 좋아하여 司馬談이 그에게 道論을 배웠다.
▶ 湯武 : 殷나라의 湯王과 周나라의 武王.
▶ 受命 : 천명을 받은 사람. 즉 천자를 말한다.
▶ 弒 :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죽이다.
▶ 桀紂 : 하나라 桀왕과 은나라 紂왕
▶ 虐亂 : 暴虐昏亂. 포학하고 혼미하다.
▶ 關: 通“贯”。贯通,贯穿 [pass through]
见轮人以其杖关毂而转輠者。——《礼记·杂记下》
其次关木索、被箠楚受辱。——《汉书·司马迁传》
大臣括发关械、裸躬受笞。——《汉书·王嘉传》
《春秋》五经,义相关穿。——汉· 王充《论衡·程材》
▶ 正言匡過 : 직언을 하여 군주의 잘못을 바로잡다.
▶ 踐南面 : 천하에 군림하여 천자의 지위에 오르다. 南面은 고대에는 군주가 조정에서 북쪽에 앉아 얼굴을 남쪽으로 향했음을 말한다. 践: 踏上
▶ 家人 : 하인. 집안사람.
▶ 司空城旦書 : 죄인을 관리하는 관료의 律書을 말한다. 司空은 고대에 물과 죄인을 관리하던 직책이며 城旦은 노역하는 죄수를 말한다. 道家에서는 儒家의 책을 율령과 같이 여겨서, 이를 城旦書라고 하였으며, 城旦은 낮에는 외적의 來侵을 警戒하고, 밤에는 築城의 勞役에 4년간 종사하는 형벌이다.
▶ 豕 : 돼지.
▶ 諛儒 : 아첨하여 영합하는 儒生.
▶ 公孫弘 : 漢武帝때 內史·御史大夫를 역임하였으며, 기원전 124년 丞相이 되고 平津侯에 봉해졌다. 공손홍이 벼슬에 올라 황제에게 아첨한 행위는 曲學阿世라는 말로 인용되고 있다.
▶ 側目而視 : 감히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다.
▶ 正學 : 올바른 학문.
▶ 曲學 : 왜곡된 학문.
▶ 阿世 : 세속에 영합하다.
※ 曲學阿世 : ‘학문을 왜곡하고 세상에 아부한다.’ 그릇된 학문을 이용하여 권력자나 세상에 아첨하는 모습으로 배운 학문을 올바로 이용하지 않고 권력자의 뜻에 맞추어 그릇된 말로 아첨하면서, 자신의 이익이나 출세를 꾀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韓生( : 韓嬰)
韓生者,燕人也。
韓生은 燕 사람이다.
孝文帝時為博士,景帝時為常山王太傅。
문제 때 박사가 되었고, 경제 때 常山王 劉舜의 태부가 되었다.
韓生推詩之意而為內外傳數萬言,其語頗與齊魯閒殊,然其歸一也。
한생은 <시경>의 뜻을 추론하여 ‘韓詩內傳’, ‘韓詩外傳’의 수만 言을 지었는데, 그 用語는 제와 魯의 것과 사뭇 달랐으나 귀결되는 바는 동일하였다.
淮南賁生受之。
淮南의 賁生이 그에게 시경을 전수받았다.
自是之後,而燕趙閒言詩者由韓生。
이로부터 燕과 趙 일대에서 <시경>을 강론하는 자들은 모두 한생의 견해에서 말미암았다.
韓生孫商為今上博士。
한생의 손자인 韓商은 今上 때 박사가 되었다.
▶ 韓生 : 韓嬰. 전한 燕 사람. 文帝 때 博士를 역임하였고, 景帝 때는 관직이 常山王 劉舜의 太傅에까지 올랐다. 무제 때 한영은 董仲舒와 황제 앞에서 변론을 벌인 적이 있는데, 그의 사람됨이 명석하고 다부지며 일을 처리하는 것이 조리 있고 분명하여 동중서도 그를 난처하게 할 수 없었다.
▶ 常山王 劉舜 : 常山憲王 劉舜. 전한의 황족, 제후왕이다. 漢景帝와 왕부인의 소생이다.
▶ 推 : 추론하다.
▶ 內外傳 : <韓詩內傳>과 <韓詩外傳>을 말한다.
▶ 歸 : 귀결.
伏生( : 伏勝)
伏生者,濟南人也。故為秦博士。
伏生은 濟南 사람이다. 예전에 秦에서 박사를 지냈다.
孝文帝時,欲求能治尚書者,天下無有,乃聞伏生能治,欲召之。
문제 때 <尙書>에 능통한 자를 구하였으나 천하에 아무도 없었으며, 복생이 능통함을 알고 그를 부르려 하였다.
是時伏生年九十餘,老,不能行,於是乃詔太常使掌故晁錯往受之。
당시 복생의 나이는 구십여 세로, 늙어서 걸어 다닐 수가 없었으매, 이에 문제가 태상에게 조서를 내려 掌故인 晁错를 보내 수업하게 하였다.
秦時焚書,伏生壁藏之。
秦의 분서갱유 때 복생은 벽속에 <상서>를 감추었다.
其後兵大起,流亡,漢定,伏生求其書,亡數十篇,獨得二十九篇,即以教于齊魯之閒。
그 후 전란이 크게 일어나자 유랑하다가 漢이 천하를 평정하자, 복생이 감추었던 <상서>를 찾았으나, 몇십 편이 분실되고 단지 29편만을 찾아내어, 이것으로 齊와 魯 일대에서 가르쳤다.
學者由是頗能言尚書,諸山東大師無不涉尚書以教矣。
학자들은 이로 말미암아 자못 <상서>를 강론할 수 있었고, 山東의 저명한 학자로서 <상서>를 섭렵하지 않고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 없었다.
▶ 伏生 : 伏勝. 秦 말기부터 전한 초의 학자로, 자는 子賤이며 제남군 사람이다. 伏生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는데, 여기서 ‘生’은 학자를 높여 부르는 명칭이다.
▶ 尚書 : 유교의 五經 가운데 하나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 <書經>을 말한다. 중국의 고대 국가들의 政事에 관한 문서를 공자가 편찬하였다고 전한다. 특히, 주나라의 정치철학을 상세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말한 제일의 자료이다. 전국시대에는 공문서라는 의미로 <書>라고 하였다. 이후, 유학을 숭상하고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漢 시대에, 당시의 유학자들은 존중하고 숭상해야 할 고대의 기록이라는 뜻에서 <尙書>라고 하였다.
尭舜 시대에서 秦穆公까지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 晁錯 : 鼂錯의 사람됨은 강직하며 가혹하고 엄격하였다. 孝文帝 때에는 천하에 <尙書>를 연구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직 濟南의 伏生이 예전 秦의 박사로 <상서>를 연구하였으나 그의 나이가 90여 세로 너무 연로하여 조정으로 부를 수가 없었다. 이에 황제가 태상에게 조서를 내려 적당한 사람을 복생에게 보내 그의 학문을 전수받도록 하였다. 태상은 조조를 파견하여 伏生에게 <상서>를 전수받게 하였다. [史記列傳] 권101 袁盎鼂錯列傳
▶ 山東 : 河南省 서쪽의 崤山 函穀關 동쪽의 땅.
兒寬
伏生教濟南張生及歐陽生,歐陽生教千乘兒寬。
복생이 제남 사람인 張生과 歐陽生을 가르쳤고, 구양생은 千乘 사람인 兒寬을 가르쳤다.
兒寬既通尚書,以文學應郡舉,詣博士受業,受業孔安國。
예관은 <상서>에 통달하고 나서 文學으로 郡의 천거를 받아 수업하러 박사에게 갔고, 孔安國에게서 수업하였다.
兒寬貧無資用,常為弟子都養,及時時閒行傭賃,以給衣食。
예관은 가난하여 학비가 없어서, 항상 제자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주고, 이따금 남몰래 나가서 품을 팔아 의식을 충당하였다.
行常帶經,止息則誦習之。
일을 나감에도 항상 경서를 지니고 있다가, 휴식할 때면 암송하여 익혔다.
以試第次,補廷尉史。
시험 성적의 석차에 의하여 廷尉의 史官으로 補任되었다.
是時張湯方鄉學,以為奏讞掾,以古法議決疑大獄,而愛幸寬。
이때 張湯은 한창 유학을 지향하여 예관을 자신의 奏讞椽으로 삼았는데, 그로 인하여 옛날 법으로써 의심스러운 큰 獄事를 판결하게 있게 되자 예관을 총애하였다.
寬為人溫良,有廉智,自持,而善著書、書奏,敏於文,口不能發明也。
예관은 사람됨이 온화하고 선량하고 청렴결백하고 지혜가 있고, 자기의 분수를 알았으며, 글 짓는 능력이 좋아, 상주문을 작성함에 문장에 민첩하였으나, 말주변이 없어 명백하게 표명하지 못하였다.
湯以為長者,數稱譽之。
장탕은 長者로 여기고 자주 칭찬하였다.
及湯為御史大夫,以兒寬為掾,薦之天子。
장탕이 어사대부가 되자 예관을 그의 屬官으로 삼으려고 천자에게 천거하였다.
天子見問,說之。
천자가 예관을 만나 질문하여 보고 기뻐하였다.
張湯死后六年,兒寬位至御史大夫。
장탕이 죽고 6년 뒤에 예관은 어사대부로 승진하였다.
九年而以官卒。
9년이 지나 재직 중에 죽었다.
寬在三公位,以和良承意從容得久,然無有所匡諫;
於官,官屬易之,不為盡力。
예관은 三公의 지위에 있으면서 온화하고 어진 성품으로 천자의 뜻을 받들어 침착하여 오랫동안 재위하였으나 황제의 과실을 바로잡는 간언을 올리지 않으니,
재직 중에 官屬이 그를 얕잡아 보고 盡力하지 않았다.
張生亦為博士。
장생 또한 박사가 되었다.
而伏生孫以治尚書徵,不能明也。
복생의 손자도 <상서>에 능통하매 초빙하였으나 <상서>의 취지를 모두 천명하지 못하였다.
▶ 兒寬(예관/아관) : 千乘 사람으로 倪寬이라고도 불린다. 西漢 시대의 大臣이다. 歐陽生에게 <상서>를 배우고, 나중에 孔安國의 제자가 되었다. 가난하여 생계를 위하여 품팔이를 하면서도 경전을 가지고 다니며 독서하였다.
▶ 都養 : 모두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다.
▶ 閒行 : 암암리에 행동하다.
▶ 佣賃 : 품삯을 받고 고용되다.
▶ 第次 : 순위. 차례.
▶ 張湯 : 漢武帝 때 太中大夫로 趙禹와 함께 모든 법령을 제정하였고, 御史大夫가 되자 법문을 교묘히 幻弄하여 옥을 다스림이 너무 가혹하여 酷吏로 유명하였다. <사기 권 122. 酷吏列傳>
▶ 鄉學 : 向學. 배울 결심을 품다.
▶ 奏讞掾 : 죄의 판정을 아뢰는 아전. 奏讞은 황제에게 주청하여 죄를 판정하는 것이며, 掾은 屬官의 통칭이다.
▶ 獄 : 訟事.
▶ 發明 : 명백하게 밝히다.
▶ 長者 : 덕망이 있는 사람.
▶ 掾 : 고대 屬官의 통칭. 衙前.
▶ 三公 : 조정의 최고 3개 관직. 漢 때에는 丞相, 太尉, 御史大夫를 말한다.
▶ 承意 : 황제의 뜻을 받들다.
▶ 從容 : 분규를 침착하게 해결하다.
▶ 匡諫 : 과실을 바로잡는 쟁간. 匡正诤谏。
▶ 官屬 : 하급 관리.
▶ 易 : 경시하다.
孔安國
自此之後,魯周霸、孔安國,雒陽賈嘉,頗能言尚書事。
그 이후에 魯의 周霸·孔安國·雒陽의 賈嘉 등이 자못 <상서>의 講解에 능통하였다.
孔氏有古文尚書,而安國以今文讀之,因以起其家。
공안국의 집안에는 古文 <尙書>가 있었는데, 그는 이를 가지고 今文으로 풀어서 읽었는데, 이로 인하여 그의 학파가 생겼다.
逸書得十餘篇,蓋尚書滋多於是矣。
유실되었던 <상서>의 10여 편을 추가하였는데, 대체로 이때부터 <상서>의 편목이 많아졌다.
▶ 賈嘉 : 賈誼의 손자다. 武帝가 즉위 초에 가의의 손자 두 사람을 임용하였을 때 郡守가 되었다. 학문을 아주 좋아하여 家業을 이었다.
▶ 古文尚書 : 武帝가 즉위한 이후, 공자가 살던 집을 헐어보니 벽 안에서 춘추전국시대 당대의 蝌蚪文字로 쓰인 상서의 죽간이 발견되었다. 이것을 古文尙書라고 하며, 공자의 후손인 孔安國이 고문을 해석하고 隸書로 옮겨 썼는데 이를 今文尙書라고 한다.
▶ 家 : 학파.
▶ 逸 : 없어지다.
高堂生
諸學者多言禮,而魯高堂生最本。
학자에 <禮經>을 강해한 사람이 많았으나 魯의 高堂生의 견해가 가장 본의에 가까웠다.
禮固自孔子時而其經不具,及至秦焚書,書散亡益多,於今獨有士禮,高堂生能言之。
<예경>은 본래 공자 시대부터 시작되었으나 경전이 갖추어지지 못하였고, 秦의 焚書坑儒 이후에 책이 흩어져 없어진 내용이 더욱 많아졌다.
지금에는 오직 <士禮>가 남아있고, 고당생이 이에 능통하였다.
▶ 高堂生 : 산동 사람으로, 西漢시대 經學者이다. 전문적으로 古代禮制를 연구하였다. 저서로 <禮>가 있는데, 지금은 전해오지 않는다. 또 <士禮> 17편을 남겼는데, 지금의 <儀禮>이다. 당시 今文禮學을 최초로 전수한 경학자이다.
▶ 最本 : 제일 가까운 本意.
▶ 經 : 經書.
▶ 士禮 : 前漢시대 魯의 지역에서 高堂生이 전한 士禮 17편이 의례의 시초로 여겨지고, 후한 시대에 오경의 하나인 禮經으로서 중시되었다. 儀禮라고도 한다. <漢書·藝文志>에 의하면 士禮는 17편이 남겨졌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儀禮>이다.
徐生
而魯徐生善為容。
그리고 魯의 徐生은 예절의식에 대하여 해박하였다.
孝文帝時,徐生以容為禮官大夫。
문제 때 徐生이 예절의식에 해박하여 禮官大夫가 되었다.
傳子至孫延、徐襄。
그는 禮儀를 아들에게 전하고 아들은 손자 徐延·徐襄에게 전수하였다.
襄,其天姿善為容,不能通禮經;
延頗能,未善也。
徐襄은 천성적으로 예절의식을 잘 실천하였으나 <禮經>에는 능통하지 못하였고,
徐延은 자못 <예경>에 대하여 능통하였으나 예절의식을 잘 실천하지 못하였다.
襄以容為漢禮官大夫,至廣陵內史。
서양은 예절의식으로써 漢의 예관대부가 되었고, 廣陵內史에 이르렀다.
延及徐氏弟子公戶滿意、桓生、單次,皆嘗為漢禮官大夫。
서연과 서씨의 제자인 公戶滿意·桓生·單次는 모두 漢 예관대부로 임명된 적이 있다.
而瑕丘蕭奮以禮為淮陽太守。
그리고 瑕丘의 蕭奮은 <예경>에 능통하여 淮陽太守가 되었다.
是後能言禮為容者,由徐氏焉。
이후로 <예경>과 예절의식을 강론할 수 있는 자들은 서씨 일가로부터 나왔다.
▶ 善為容 : 禮節儀式에 정통함. 容은 禮儀를 말한다.
商瞿
自魯商瞿受易孔子,孔子卒,商瞿傳易,六世至齊人田何,字子莊,而漢興。
魯 商瞿가 공자에게 <易經>을 전수받았고, 공자가 세상을 떠나자 상구가 <역경>을 전수하기 6대, 齊의 田何에 이르렀는데, 전하의 字는 子莊이었으며 그 후 漢이 건립되었다.
田何傳東武人王同子仲,子仲傳菑川人楊何。
전하는 東武 사람인 字가 子仲인 王同에게 전수하였으며, 자중은 菑川사람인 楊何에게 전수하였다.
何以易,元光元年徵,官至中大夫。
양하는 <역경>에 능통하여 元光 원년(기원전 134년)에 조정에 불려가서 관직이 中大夫에 이르렀다.
齊人即墨成以易至城陽相。廣川人孟但以易為太子門大夫。
齊 사람인 卽墨成은 <역경>에 능통하여 城陽의 相國이 되었고, 廣川 사람인 孟但도 <역경>에 능통하여 太子門大夫가 되었다.
魯人周霸,莒人衡胡,臨菑人主父偃,皆以易至二千石。
魯 출신인 周霸, 莒 출신의 衡胡, 臨菑 출신의 主父偃 등은 모두 <역경>에 능통하여 녹봉 2천석을 받는 관원이 되었다.
然要言易者本於楊何之家。
그러나 <역경>의 중요한 講解는 양하 일가의 학설에 바탕을 두었다.
▶ 商瞿 : 춘추시대 말기 魯 사람으로, 자는 子木이다. 공자보다 29세가 적은 그는 공자에게서 <춘추>를 배웠고 <주역>을 좋아하였다. 그는 공자가 전해준 <주역>을 楚 사람 馯臂子弘에게 전하여 역학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논어>에는 상구에 대한 언급이 없다.
▶ 元光元年 : 기원전 134년. 元光은 漢武帝의 두 번째 연호이다.
▶ 楊何 : 전한 淄川 사람. 자는 叔元이다. 武帝 元光 원년(기원전 134년)에 中大夫에 올랐다. 王同에게 <주역>을 배웠다. 저서에 <楊氏易傳>이 있었지만 전하지 않는다.
董仲舒
董仲舒,廣川人也。
董仲舒는 廣川郡 사람이다.
以治春秋,孝景時為博士。
<春秋>를 연구하여 경제 때 박사가 되었다.
下帷講誦,弟子傳以久次相受業,或莫見其面,蓋三年董仲舒不觀於舍園,其精如此。
휘장을 내리고 강독하였고, 제자들이 오래된 순서에 전하며 서로 수업하니, 어떤 제자는 스승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다.
3년 동안 董仲舒가 집 옆의 정원을 觀賞하지 않았으니, 그가 학문에 精進함이 이와 같았다.
進退容止,非禮不行,學士皆師尊之。
출입할 때의 행동거지가 예법에 맞지 않으면 행하지 않았으므로, 학생들은 모두 그를 본받으며 존경하였다.
今上即位,為江都相。
금상이 즉위하자 江都의 재상으로 임명되었다.
以春秋災異之變推陰陽所以錯行,故求雨閉諸陽,縱諸陰,其止雨反是。
<춘추>에 기록된 자연재해와 특이한 현상의 변화로써 陰陽의 도가 어긋나는 원인을 유추하였으며, 그리하여 비를 내리길 구함에는 모든 陽氣를 가두고 모든 陰氣를 풀어놓고, 비가 그치기를 구함에는 그와 반대로 하였다.
行之一國,未嘗不得所欲。
이러한 방법을 江都國에 적용하여 바라는 바를 얻지 못한 적이 없었다.
中廢為中大夫,居舍,著災異之記。
중도에 해임되어 中大夫로 떨어졌으나, 집에 머물면서 <災異之記>를 저술하였다.
是時遼東高廟災,主父偃疾之,取其書奏之天子。
이때 遼東의 高祖의 사당에서 화재가 있었는데, 主父偃이 동중서를 시기하여 그의 책을 훔쳐 무제에게 바쳤다.
天子召諸生示其書,有刺譏。
무제는 유생들을 불러 그 책을 보게 하였는데, 조정을 풍자하고 譏弄한 내용이 있었다.
董仲舒弟子呂步舒不知其師書,以為下愚。
동중서의 제자인 呂步舒는 그의 스승의 책인 줄 모르고, 가장 어리석다고 폄하하였다.
於是下董仲舒吏,當死,詔赦之。
이에 동중서를 법관에 내리니, 사형을 판결하였으나, 황제가 조칙으로 赦免하였다.
於是董仲舒竟不敢復言災異。
이리하여 동중서는 끝내 감히 다시 災異說을 강론하지 못하였다.
董仲舒為人廉直。
동중서의 사람됨은 청렴하고 정직하였다.
是時方外攘四夷,公孫弘治春秋不如董仲舒,而弘希世用事,位至公卿。
이때 漢이 밖으로 四夷를 내쫓고 있었는데, 공손홍이 <춘추>를 연구함이 동중서만 못하였지만 세속에 영합하여 일을 처리하였으매 공경의 지위에 올랐다.
董仲舒以弘為從諛。
동중서가 공손홍을 아첨을 일삼는다고 여겼다.
弘疾之,乃言上曰:
「獨董仲舒可使相繆西王。」
공손홍도 동중서를 시기하여 무제에게 아뢰었다.
“오직 동중서가 膠西王의 재상이 될 수 있습니다.”
膠西王素聞董仲舒有行,亦善待之。
교서왕은 평소 동중서에게 덕행이 있다고 들었으므로 역시 잘 대우하였다.
董仲舒恐久獲罪,疾免居家。
동중서는 관직에 오래 있다가 죄를 얻을까 두려워 질병을 핑계로 사임하고 집에서 거주하였다.
至卒,終不治產業,以修學著書為事。
죽는 날까지 자신의 家産을 돌보지 않고 학문연구와 著書에 종사하였다.
故漢興至于五世之閒,唯董仲舒名為明於春秋,其傳公羊氏也。
그러므로 漢이 건국되고 5세에, 오로지 동중서의 이름이 <춘추>에 정통하다고 여겨졌으니, 그는 公羊氏의 학문을 전하였다.
▶ 董仲舒 : 北省 廣川郡 사람으로 일찍부터 <公羊傳>을 익혔으며 景帝 때에는 박사가 되었다. 帳幕을 치고 제자를 가르쳤기 때문에 그의 얼굴을 모르는 제자도 있었다. 3년 동안이나 정원에 나가지 않았을 정도로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훗날 자신의 災異說로 말미암아 투옥되는 등 파란 많은 생애였으며, 저서에 <董子文集> <春秋繁露> 등이 있다.
▶ 下帷 : 막을 치다. 깊이 틀어박혀 학문에 전념하다.
▶ 弟子傳以久次相受業 : 동중서의 문하에 제자가 너무 많아 일일이 가르칠 수 없어 제자 간에 먼저 온 제자가 나중에 온 제자를 가르치는 방법을 택했다는 뜻.
▶ 舍園 : 집 옆의 정원.
▶ 容止 : 행동거지. 몸가짐이나 태도.
▶ 陰陽錯行 : 陰陽의 運行이 어긋남. 錯行은 운행이 어긋나다.
▶ 一國 : 江都國을 말한다.
▶ 災異之記 : 사람의 잘못이 결국 천재지변을 부른다는 동중서의 災異說. “국가에 장차 도를 잃은 잘못이 있으면 하늘이 미리 災害를 내어서 경고하고, 그래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또 변고를 내어서 놀라고 두려워하게 하고, 그래도 고칠 줄 모르면 패망의 재앙이 이른다.” <漢書·董仲舒傳>
▶ 主父 偃 : 齊 임치현 사람으로 종횡가의 학술을 익혔으나 중용되지 못하자 漢武帝에게 상소한 것이 인정을 받아 낭중이 되었고 일 년 만에 중대부로 승진하였다. 남의 비밀을 폭로하기 좋아하므로 대신들이 두려워하여 뇌물을 바쳤으며, 齊 재상이 된 후 齊王 유차경이 기옹주와 간통한 사실을 황제에게 간한 것으로 인하여 일족이 멸족되었다. <사기 권112. 平津侯主父列傳>
▶ 疾之 : 동중서를 시기하다. 疾은 嫉과 같다.
▶ 取 : 훔치다. 竊取
▶ 刺譏 : 풍자하고 비방함.
▶ 下愚 : 가장 어리석다.
▶ 當 : 판결하다. 判罪
▶ 公孫弘 : 漢武帝때 內史·御史大夫를 역임하였으며, 기원전 124년 丞相이 되고 平津侯에 봉해졌다.<사기 권112.평진후주보열전>
▶ 攘 : 내쫓다.
▶ 四夷 : 사방 변경 내외의 소수민족.
▶ 希世 : 세속에 영합하다. 迎合世俗
▶ 從諛 : 아첨하여 영합하다. 逢迎取容
▶ 繆西王 : 膠西의 于王 유단. 경제 전원 3년 吳楚 7국의 난이 평정되자, 황제의 아들로서 교서왕이 되었다. 유단은 사람이 잔인하고 포악하였다.<사기 권59. 五宗世家>
▶ 公羊氏 : 전국시대 齊 사람인 公羊高의 학설을 말한다. 공양고는 춘추에 주를 달아 <春秋公羊傳>을 저술하였다.
胡毋生
胡毋生,齊人也。
胡毋生은 齊 사람이다.
孝景時為博士,以老歸教授。
경제 때 박사로 임명되었고, 늙어서는 귀향하여 제자들을 가르쳤다.
齊之言春秋者多受胡毋生,公孫弘亦頗受焉。
齊에서 <춘추>를 講解하는 자에 호무생을 수업한 자가 많았고, 공손홍도 그에게 자못 수업하였다.
▶ 胡毋生 : 전한 齊 사람. 성은 胡毋고, 이름은 生이며, 자는 子都다. 景帝 때 박사를 지냈다. <春秋公羊傳>에 능통하여 儒生들의 추중을 받았다. 나이가 들자 고향 齊로 돌아왔다.
江生
瑕丘江生為谷粱春秋。
瑕丘 출신의 江生은 <春秋谷粱傳>을 연구하였다.
自公孫弘得用,嘗集比其義,卒用董仲舒。
공손홍에 의하여 등용되었으나 일찍이 <春秋谷粱傳>과 <春秋公羊傳>의 학설을 모아 비교하였는데, 최후에는 동중서의 학설을 수용하였다.
▶ 春秋 : 공자가 저술한 魯의 편년체 역사서이며, 현존하고 있는 주석서는 <春秋左氏傳>, <春秋穀梁傳> <春秋公羊傳>의 3 종류가 있다.
▶ 谷粱春秋 : <春秋谷粱傳>. 전국시대 魯 사람인 公羊子로부터 저작되었다고 한다.
동중서의 제자.
仲舒弟子遂者:蘭陵褚大,廣川殷忠,溫呂步舒。
동중서의 제자로서 성공한 사람으로는 난릉 사람인 褚大, 광천 사람인 殷忠, 溫 사람인 呂步舒 등이 있었다.
褚大至梁相。
저대는 梁의 재상에 이르렀다.
步舒至長史,持節使決淮南獄,於諸侯擅專斷,不報,以春秋之義正之,天子皆以為是。
여보서는 長史가 되어 符節을 지니고 淮南王의 獄事를 판결하러 파견되었는데, 제후왕에 대하여 직권으로 처리하고 조정에 보고하지 않고, <춘추>의 뜻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하였다고 주장하자 천자가 그의 판결을 모두 옳다고 인정하였다.
弟子通者,至於命大夫;
為郎、謁者、掌故者以百數。
동중서의 제자 가운데 관운이 통달한 자는 大夫까지 승진하였고,
郎官, 謁者, 掌故가 된 자는 백여 명이었다.
而董仲舒子及孫皆以學至大官。
동중서의 아들과 손자도 모두 유학에 정통하여 高官이 되었다.
▶ 遂者 : 성과를 얻은 사람.
▶ 節 : 符節. 사신의 증표.
▶ 擅專斷 : 사건의 내용을 직권으로 처리하다.
▶ 通 : 벼슬길이 환히 뚫리다.
이름을 모르면 적당히 生을 붙이자. 알면서도 붙임은 무엇 때문인가?
2023.10.10 탐고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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