田叔列傳은 前漢의 정치가인 田叔에 대한 사적을 기록하였으며 그의 아들인 田仁과 전인의 친구인 任安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임안에 대한 기록은 전한의 사학자 褚小孫이 덧붙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田叔
田叔은 趙 陘城縣 사람으로 齊 王族의 후손이다. 趙王 張敖를 섬겨 낭중이 되었으며, 장오의 모반 사건으로 趙王이 체포되고 孟舒 등과 함께 漢에 자발적으로 압송되었으나, 高祖 유방이 趙王의 신하들을 높이 평가하여 전숙을 漢中郡守로 기용하였다.
文帝 때 면직되었으며 景帝 때 梁孝王 劉武가 袁盎을 암살한 사건의 조사관이 되었고, 경제가 이 사건의 조언을 현명하게 여겨 魯 승상으로 삼았다.
魯共王에게 직언하며 보좌하다가 승상 재임 중에 죽었다.
田叔者,趙陘城人也。
田叔은 趙 陘城 사람이다.
其先,齊田氏苗裔也。
그의 선조는 齊 田氏의 후손이다.
叔喜劍,學黃老術於樂巨公所。
田叔은 검술을 좋아하였으며, 樂巨公에게서 黃帝와 老子의 학술을 배웠다.
叔為人刻廉自喜,喜游諸公。
田叔은 사람됨이 엄격하고 결백하였으며 스스로 즐거워하며 公卿과 교유하기를 즐겼다.
趙人舉之趙相趙午,午言之趙王張敖所,趙王以為郎中。
趙 사람들이 丞相 趙午에게 추천하였고, 조오는 趙王 張敖에게 그를 소개하니, 趙王이 郎中으로 삼았다.
數歲,切直廉平,趙王賢之,未及遷。
몇 년 동안 매우 정직하며 청렴 공평하여 趙王이 그를 어질다고 여기되, 승진되지는 않았다.
會陳豨反代,漢七年,高祖往誅之,過趙,趙王張敖自持案進食,禮恭甚,高祖箕踞罵之。
陳豨가 代에서 반란하였을 때, 漢高祖 7년에 고조가 토벌하려 趙를 들렀는데, 趙王 張敖가 친히 소반을 받들고 음식을 바치며 예우가 매우 공손하였으나, 高祖는 다리를 뻗고 앉아 그를 업신여겼다.
是時趙相趙午等數十人皆怒,謂張王曰:
「王事上禮備矣,今遇王如是,臣等請為亂。」
이때 趙의 相國 趙午 등 수십 人이 모두 분노하여 장왕에게 말하였다.
“왕께서 황제를 모심에 예절을 갖추셨는데도 이렇게 대왕을 대접하니 신들이 반란을 일으키겠습니다.”
趙王齧指出血,曰:
「先人失國,微陛下,臣等當蟲出。
公等柰何言若是!毋復出口矣!」
趙王이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보이면서 말하였다.
“선친이 나라를 잃음에 폐하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죽어 구더기가 생겨도 거두어 줄 사람이 없었을 터이오.
공들은 어찌 그런 말을 하는가!
다시는 입 밖에도 내지 말라!”
於是貫高等曰:
「王長者,不倍德。」
이에 貫高 등이 말하였다.
“王께서는 長者이시매, 은덕을 배반하지 않을 터이오.”
卒私相與謀弒上。
마침내 사적으로 황제를 시해하기로 함께 모의하였다.
會事發覺,漢下詔捕趙王及群臣反者。
거사가 발각되매, 漢에서는 조서를 내려 趙王과 모반한 신하들을 체포하게 하였다.
於是趙午等皆自殺,唯貫高就系。
이에 조오 등은 모두 자살하였고, 오직 관고만이 체포되었다.
是時漢下詔書:
「趙有敢隨王者罪三族。」
이때 漢에서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趙에서 감히 趙王을 따라오는 자는 三族을 멸하겠다.”
唯孟舒、田叔等十餘人赭衣自髡鉗,稱王家奴,隨趙王敖至長安。
유독 孟舒, 田叔 등 10여 명이 붉은색의 죄수복을 걸치고, 스스로 머리를 깎고 목에 칼을 채워서 趙王의 집 노비라고 자칭하며 趙王 장오를 따라서 長安에 이르렀다.
貫高事明白,趙王敖得出,廢為宣平侯,乃進言田叔等十餘人。
관고 등의 모반사건이 명백해지자 趙王 장오는 석방되었으나 왕에서 폐위되어 宣平侯로 좌천되고, 전숙 등 10여 명은 추천되었다.
上盡召見,與語,漢廷臣毋能出其右者,上說,盡拜為郡守、諸侯相。
황제가 모두 불러 접견하고 대화를 나누어보고, 漢 조정 신하로 그들보다 뛰어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여, 황제가 매우 기뻐하며 모두 郡守나 혹은 諸侯王의 相國으로 임명하였다.
叔為漢中守十餘年,會高后崩,諸呂作亂,大臣誅之,立孝文帝。
전숙이 漢中 郡守가 된 지 10여 년, 高后가 죽자 呂氏들이 반란을 일으키니 대신들이 그들을 죽이고 孝文帝를 옹립하였다.
孝文帝既立,召田叔問之曰:
「公知天下長者乎?」
孝文帝가 즉위하고 나서 전숙을 불러 물었다.
“공은 천하의 長者를 알고 있는가?”
對曰:
「臣何足以知之!」
전숙이 대답하였다.
“소신이 어떻게 長者를 알 수 있겠습니까!”
上曰:
「公,長者也,宜知之。」
황제가 말하였다.
“공이 장자이니 마땅히 알 터이오.”
叔頓首曰:
「故雲中守孟舒,長者也。」
전숙이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예전의 雲中郡守 孟舒가 長者입니다.”
是時孟舒坐虜大入塞盜劫,雲中尤甚,免。
이 무렵 孟舒는 匈奴가 대거 변경을 침략하여 약탈함에 운중군이 더욱 심하였던 죄로 면직된 상태였다.
上曰:
「先帝置孟舒雲中十餘年矣,虜曾一入,孟舒不能堅守,毋故士卒戰死者數百人。
長者固殺人乎?
公何以言孟舒為長者也?」
문제가 말하였다.
“선제께서 孟舒를 雲中郡에 배치한 지 10여 년인데, 흉노가 한 번 침입함에 맹서가 굳게 지키지 못하매, 사졸로서 무고하게 戰死한 자가 수백 명이었소.
長者이기 때문에 죽였다는 것인가?
공은 무엇 때문에 맹서가 長者라고 말하는가?”
叔叩頭對曰:
전숙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하였다.
「是乃孟舒所以為長者也。
“이것이 바로 맹서가 덕망이 있는 자라고 하는 까닭입니다.
夫貫高等謀反,上下明詔,趙有敢隨張王,罪三族。
무릇 관고 등이 모반하였을 때 황제께서 조서를 내리셔서 趙에서 감히 趙王을 따르는 자는 삼족을 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然孟舒自髡鉗,隨張王敖之所在,欲以身死之,豈自知為雲中守哉!
그러나 맹서는 자진하여 머리를 깎고 목에 칼을 차고, 張王이 가는 곳을 따랐고, 자신을 바쳐 趙王을 위하여 죽으려 하였으니, 운중군 태수가 될지 어찌 알았겠습니까!
漢與楚相距,士卒罷敝。
漢은 楚와 서로 대치하여 士卒이 疲勞하고 困弊하였습니다.
匈奴冒頓新服北夷,來為邊害,孟舒知士卒罷敝,不忍出言,士爭臨城死敵,如子為父,弟為兄,以故死者數百人。
흉노의 冒頓이 처음으로 북쪽 오랑캐를 복속시키고 침략하니 변경의 危害가 되었습니다.
맹서는 사졸이 疲勞하고 困弊함을 감안하여 차마 그들에게 명령하지 못하였는데도, 사졸이 앞다투어 성에 올라가서 적과 사투하여, 아들이 아버지를 구하고, 동생이 형을 구하는 듯하였으니, 이 때문에 전사한 병사가 수백 명이 되었습니다.
孟舒豈故驅戰之哉!
맹서가 어찌 고의로 싸우라며 내몰았겠습니까!
是乃孟舒所以為長者也。」
이것이 바로 맹서를 長者라 이르는 까닭입니다.”
於是上曰:
「賢哉孟舒!」
이에 황제가 말하였다.
“어질도다, 맹서여!”
復召孟舒以為雲中守。
다시 맹서를 불러 운중군 태수로 임명하였다.
▶ 齊田氏 : 춘추시대 齊의 대부인 田氏 가문을 말한다. 공족이었던 田氏는 본래 陳나라 陳完의 후손들이다. 陳나라에 내란이 일어나자 齊桓公 14년(기원전 672년)에 齊로 망명하였는데, 桓公의 신임을 얻어 工官으로 등용되었으며, 성을 陳과 발음이 같은 田氏로 바꾸었다.。
▶ 苗裔 : 여러 대를 걸친 후대의 자손. 후손.
▶ 黃老術 : 黃老學說. 黃帝와 老子의 학설로 道家의 학설을 말한다.
▶ 刻廉 : 엄격하고 청렴함.
▶ 自喜 : 스스로 기쁨에 젖다.
▶ 游 : 교유하다.
▶ 趙午 : 趙의 재상이다.
▶ 舉 : 추천하다.
▶ 趙王張敖 : 趙王 張耳의 아들 張敖. 漢王 5년(기원전 202년) 張耳가 죽자 張耳의 아들 張敖가 그 뒤를 이어 趙王에 올랐다. 한 高祖의 장녀인 魯元公主가 趙王 장오의 왕후가 되었다.
▶ 言 : 칭찬하다.
▶ 切直廉平 : 매우 정직하며 청렴공평하다.
▶ 陳豨 : 韓王 信과 모반을 도모하여 王黃, 曼丘臣 등과 반란을 일으키고 代王으로 자칭하였다. 高帝의 親征으로 진압되었다.
▶ 漢七年 : 陳豨가 반란을 일으킨 것은 한 高祖 10년(기원전 197년)이므로 원문의 오류이다. 한 高祖 7년(기원전 200년)에는 韓王 信이 반란을 일으켰다.
▶ 高祖 : 漢高祖 劉邦.
▶ 箕踞 : 두 다리를 뻗고 앉음. 즉, 오만불손하게 앉음.
▶ 張王 : 趙王 張敖.
▶ 備 : 빈틈없다.
▶ 先人失國 : 張敖의 아버지 張耳가 陳餘의 습격을 받아 나라를 잃고 유방에게 투항하였다. 그 뒤에 劉邦의 도움으로 趙王이 되었다.
▶ 微 : 아니다.
▶ 蟲出 : 시체에서 생긴 구더기. 蟲은 蛆(저:구더기) 제환공이 죽자 시신을 수습할 사람이 없어 제환공의 시신은 침상에 67일 동안 방치되어 구더기가 문밖으로 기어 나왔다는 것을 인용함. <사기 권32. 齊太公世家>
▶ 會事發覺 : 한 高祖 8년, 貫高는 漢 때 趙王 張敖의 정승으로 高祖가 趙에 들렀을 때 趙王 장오를 모욕하자, 관고가 이를 분하게 여겨 高祖가 묵고 있던 柏人縣의 집 뒷간 벽 속에다 사람을 숨겨두고 高祖가 지나기를 기다려 시해하도록 음모를 꾸몄던 일을 가리킨다. 이 음모가 발각되었고 高祖는 관고를 용서해주었으나 그는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 赭衣(자의) : 고대에 죄수가 입는 붉은 옷.
▶ 髡鉗 : 일종의 형벌로 머리를 깎고 칼을 목에 씌우는 형벌을 말한다.
▶ 稱 : 自稱.
▶ 進 : 추천.
▶ 高後 : 呂后. 呂雉.
▶ 諸呂 : 여씨 일족. 呂后가 죽은 뒤 周勃, 陳平 등이 여씨 일족을 주살하였다.
▶ 距 : 拒와 통하여 대치하다.
▶ 罷敝 : 지치고 고통스러움. 罷는 疲와 통하여 지치다.
▶ 冒頓 : 冒頓單于. 匈奴의 冒頓單于는 일찍이 북방을 통일하고 秦將 蒙恬에게 빼앗긴 흉노의 옛 땅을 수복하였으며, 漢을 위협하였다.
▶ 出言 : 전투 명령을 내림.
▶ 死敵 : 목숨을 바쳐 적과 싸움.
▶ 故 : 고의.
▶ 驅 : 몰아세우다.
後數歲,叔坐法失官。
몇 년 뒤, 田叔은 법을 어겨 관직을 잃었다.
梁孝王使人殺故吳相袁盎,景帝召田叔案梁,具得其事,還報。
梁孝王이 자객을 보내서 예전의 吳의 상국이었던 袁盎을 살해하매, 景帝는 전숙을 불러서 梁으로 가서 조사하게 하니, 그 사건을 모두 조사하여 돌아와서 보고하였다.
景帝曰:
「梁有之乎?」
경제가 말하였다.
“양에 그런 일이 있었는가?”
叔對曰:
「死罪!有之。」
전숙이 대답하였다.
“황공하옵니다! 그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上曰:
「其事安在?」
황제가 말하였다.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田叔曰:
「上毋以梁事為也。」
전숙이 말하였다.
“황제께서는 양왕의 일에 간여하지 마십시오.”
上曰:
「何也?」
황제가 말하였다.
“무엇 때문인가?”
曰:
「今梁王不伏誅,是漢法不行也;
如其伏法,而太后食不甘味,臥不安席,此憂在陛下也。」
전숙이 말하였다.
“지금 양왕을 사형에 처하지 않음은 漢의 형법이 시행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를 법대로 복주하면 太后께서 식사에 맛을 못 느끼실 터이고, 누워도 자리가 편치 못할 터이니, 이런 우환은 폐하께 달려 있습니다.”
景帝大賢之,以為魯相。
경제는 매우 현명하다고 여겨서 魯의 相國으로 삼았다.
魯相初到,民自言相,訟王取其財物百餘人。
魯相으로 처음 부임함에 백성이 자진하여 상국을 찾아와 말하기를, 노왕이 백여 명의 재물을 탈취하였다고 고소하였다.
田叔取其渠率二十人,各笞五十,餘各搏二十,怒之曰:
「王非若主邪?
何自敢言若主!」
田叔이 그 주동자 20명을 붙잡아 각자 笞刑 50대에 처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손바닥을 20대씩 때리며 성내며 말하였다.
“대왕은은 너희들의 군주가 아닌가?
어찌 감히 너희들의 군주를 헐뜯는가!”
魯王聞之大慚,發中府錢,使相償之。
노왕이 듣고 매우 부끄러워하며 궁중 재물창고의 돈을 꺼내어, 승상을 시켜 보상하게 하였다.
相曰:
「王自奪之,使相償之,是王為惡而相為善也。
相毋與償之。」
상국이 말하였다.
“왕께서 스스로 재물을 탈취하시고 승상이 보상하면, 군왕께서는 악행을 저지르시고 승상이 선행을 베푸는 것입니다.
상국은 보상함에 참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於是王乃盡償之。
이에 왕이 모두 보상하였다.
魯王好獵,相常從入苑中,王輒休相就館舍,相出,常暴坐待王苑外。
노공왕이 사냥을 좋아하매 相國이 항상 扈從하여 원림에 갔는데, 왕은 그때마다 승상에게 관사에 가서 쉬게 하니, 田叔이 원림 밖에서 한데 앉아서 왕을 기다렸다.
王數使人請相休,終不休,曰:
「我王暴露苑中,我獨何為就舍!」
왕이 여러 번 사람을 보내 상국이 쉬라고 청하였으나, 기어이 쉬지 않고 말하였다.
“우리 왕께서 야외의 원림에 계시는데, 나만 혼자 어떻게 관사로 가겠는가!”
魯王以故不大出游。
노왕이 이 때문에 사냥하러 나감을 줄였다.
數年,叔以官卒,魯以百金祠,少子仁不受也,曰:
「不以百金傷先人名。」
몇 년 후, 田叔이 재임 중에 죽으니, 노왕은 1백 근의 황금으로 장례를 도우니, 막내아들인 田仁이 받지 않으며 말하였다.
“1백 근의 황금 때문에 선친의 명예를 손상하지 않겠습니다.”
▶ 坐法 : 법을 어겨 죄를 받다.
▶ 梁孝王 : 劉武. 漢文帝의 둘째아들이며, 景帝의 친동생으로 오초칠국의 난 진압에서 큰 공을 세웠다.
▶ 袁盎 : 漢景帝가 즉위한 후에 吳楚七國의 반란이 일어나자 晁錯를 주살할 것을 간청하여 제후의 원망을 잠재웠다. 그 공으로 太常이 되고, 吳에 사신으로 가서 반란을 평정한 후에 楚相이 되었다. 그 후 梁 孝王을 황제의 후사로 결정하는 일을 중지하라고 간언을 올렸다가 安陵의 郭門 밖에서 양효왕이 보낸 자객의 손에 죽임을 당하였다.
▶ 故 : 예전.
▶ 案 : 按과 통하여 조사하다.
▶ 具 : 전부.
▶ 伏誅 : 사형에 처하다.
▶ 魯 : 漢 초기의 封國 이름.
▶ 太后 : 孝文皇后 竇漪房. 문제의 황후이며 경제의 어머니이다.
▶ 訟 : 책망하다.
▶ 王 : 魯共王 劉餘. 경제의 아들. 梁의 왕으로 봉해졌다가, 오초칠국의 난이 진압되고서 반란의 주역인 楚의 영토를 분할하여 만들어진 노왕으로 봉해졌다
▶ 渠率 : 渠帥와 같다. 우두머리.
▶ 笞 : 태형. 매로 볼기를 치는 형벌.
▶ 搏 : 때리다. 손바닥을 때림을 말한다.
▶ 若 : 너.
▶ 中府 : 황실의 창고.
▶ 苑 : 고대에 동물을 기르던 정원으로 임금의 사냥터로 사용되었다.
▶ 輒 : 늘. 항상.
▶ 暴 : 햇볕이 내리쬐다.
▶ 暴露 : 비바람에 노출되다.
2.田仁
仁以壯健為衛將軍舍人,數從擊匈奴。
田仁이 건장하매 衛靑장군의 가신이 되어, 여러 차례 從軍하여 흉노를 공격하였다.
衛將軍進言仁,仁為郎中。
위장군이 전인을 추천하니 전인을 郎中으로 삼았다.
數歲,為二千石丞相長史,失官。
몇 년 후 二千石의 봉록을 받는 승상의 長史가 되었다가, 곧 관직을 상실하였다.
其後使刺舉三河。
그 후 그를 보내어 三郡을 암행하여 糾察하게 하였다.
上東巡,仁奏事有辭,上說,拜為京輔都尉。
황제가 동쪽을 순시함에, 전인이 사건을 上奏함에 言辭가 精妙하니, 황제가 크게 기뻐하며 京輔都尉로 임명하였다.
月餘,上遷拜為司直。
한 달 남짓 지나서, 황제가 司直으로 승진시켰다.
數歲,坐太子事。
몇 년이 지나서 전인이 태자의 모반사건에 연좌되었다.
時左相自將兵,令司直田仁主閉守城門,坐縱太子,下吏誅死。
이때 左丞相이 친히 군대를 이끌고 와서 司直 田仁에게 명령하기를, 성문을 굳게 닫고 지키는 일을 맡으라고 하였으나, 태자를 놓아준 죄에 연좌되어 형리에게 넘겨져 死刑되었다.
仁發兵,長陵令車千秋上變仁,仁族死。
일설에는, 전인이 병사를 이끌고 長陵에 도착하였는데, 長陵令 車千秋가 전인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고발하여, 전인이 멸족당하여 사형되었다고 한다.
陘城今在中山國。
陘城은 지금의 中山國에 속해있다.
▶ 衛將軍 : 衛青. 漢 武帝 때 대장군으로, 흉노를 토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 舍人 : 家臣.
▶ 進言 : 황제에게 추천하다.
▶ 刺舉 : 암암리에 죄상을 조사하다. 侦视纠察
▶ 三河 : 河南郡, 河內郡, 河東郡을 말한다.
▶ 司直 : 丞相을 보좌하여 불법을 들추어서 조사하는 일을 관장하는 직책.
▶ 太子事 : 太子 劉據는 武帝 征和 2년(기원전 91년)에 江充에 의하여 誣陷을 받자, 당시 요양차 甘泉宮에 있던 武帝에게 일의 전말을 자세히 아뢰어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지 않고 군대를 일으켜 江充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으나 결국 패하여 도망갔다가 자살하였다.
▶ 主 : 맡다.
▶ 縱 : 놓아주다.
▶ 上變 : 전인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고발하였다.
太史公曰:
孔子稱曰「居是國必聞其政」,田叔之謂乎!
義不忘賢,明主之美以救過。
仁與余善,余故并論之。
태사공은 말한다.
“공자를 칭찬하면서 말하길 ‘그 나라에 도착하면 반드시 그곳의 정사에 대하여 들었을 터이다.’라고 하였는데, 田叔을 두고 한 말이다!
절의가 있어서 어진 덕행을 잊지 않았으며, 君主의 아름다움을 밝혀서 허물을 바로잡았다.
田仁은 나와 친하였으매, 내가 아울러 그를 논하였다.”
▶ 居是國必聞其政 : 論語 學而에
子禽問於子貢曰:
「夫子至於是邦也,必聞其政,求之與?抑與之與?」
子禽이 子貢에게 물었다. “공자께서 방문하는 나라마다 반드시 그 나라의 정사에 관하여듣습니다. 이것은 공자께서 청하여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그 나라가 청하여 그런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즉, 당시의 군주가 공자를 공경하고 믿어서 스스로 그 政事를 가지고 찾아와 물었다고 한 것이다.
▶ 明 : 뚜렷하다. 명백하다.
3. 任安
이 장은 任安에 대한 褚少孫의 기록이며 임안의 친구인 田仁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任安은 漢武帝 때 司馬遷) 벗으로 字가 少卿이다. 어려서 고아가 되어 빈곤하였으며 衛青장군의 가신이 되어 田仁을 만났으며 전인과 함께 한 무제의 낭관으로 발탁된 후 임안은 益州刺史가 되고 전인은 승상의 長史가 되었다. 그 후 太子 劉據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사형당했다.
褚先生曰:
褚先生은 말한다.
臣為郎時,聞之曰田仁故與任安相善。
내가 郎官일 때 듣기를, 田仁은 예전부터 任安과 서로 친하다고 하였다.
任安,滎陽人也。
임안은 滎陽 사람이다.
少孤貧困,為人將車之長安,留,求事為小吏,未有因緣也,因占著名數。
어려서 고아가 되어 빈곤하여, 남을 위하여 수레를 끌고 長安에 갔다가, 머물면서 일을 구하여 하급 관리가 되려고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고, 당시는 기록된 호적에 따라 살아야 하였기 때문이었다.
武功,扶風西界小邑也,谷口蜀道近山。
武功은 扶風 서쪽 변두리에 있는 작은 현으로 골짜기 입구는 蜀郡으로 가는 棧道가 가까운 산이다.
安以為武功小邑,無豪,易高也,安留,代人為求盜亭父。
임안은 무공이 작은 읍이라서 호족이 없으매, 쉽게 지위가 높아질 터이라고 여겼다.
임안이 머무르며 사람들을 대신하여 求盜와 亭父가 되었다.
後為亭長。
그 후 亭長이 되었다.
邑中人民俱出獵,任安常為人分麋鹿雉兔,部署老小當壯劇易處,眾人皆喜,曰:
「無傷也,任少卿分別平,有智略。」
읍의 백성이 모두 나와 사냥할 때, 임안이 항상 사람들에게 사슴, 꿩, 토끼 등을 나누어 줌에, 노인, 아이, 장정과 혹은 어렵고 혹은 쉬운 곳에 따라 안배하매,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며 말하였다.
“아무런 관계 없이 任少卿이 분배함은 공평하며 지략이 있다.”
明日復合會,會者數百人。
다음날 다시 사냥 모임을 여니 모인 자가 수백 명에 달하였다.
任少卿曰:
「某子甲何為不來乎?」
임소경이 물었다.
“아무개의 아들인 甲은 어째서 오지 않았습니까?”
諸人皆怪其見之疾也。
사람들이 모두 그가 남을 빨리 인식함을 놀라워하였다.
其後除為三老,舉為親民,出為三百石長,治民。
그 후 三老에 임명되었고, 親民官으로 천거되어 3백석의 봉록을 받는 縣長이 되어 백성을 다스렸다.
坐上行出游共帳不辦,斥免。
황제가 행차할 때 장막을 마련하지 않은 죄로 파면되었다.
乃為衛將軍舍人,與田仁會,俱為舍人,居門下,同心相愛。
이에 衛青 장군의 가신이 되었다. 이때 전인과 만나서 함께 가신으로 위장군의 문하에 머물면서 한마음으로 서로를 아꼈다.
此二人家貧,無錢用以事將軍家監,家監使養惡齧馬。
이 두 사람은 집이 가난하여 장군의 집사를 매수할 돈을 줄 수가 없으매, 집사는 그들에게 사나운 말을 기르게 하였다.
兩人同床臥,仁竊言曰:
「不知人哉家監也!」
두 사람이 함께 침상에서 누워 있다가 전인이 임안에게 남몰래 말하였다.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구나, 집사여!”
任安曰:
「將軍尚不知人,何乃家監也!」
임안이 대답하였다.
“장군조차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데, 하물며 집사이겠는가!”
衛將軍從此兩人過平陽主,主家令兩人與騎奴同席而食,此二子拔刀列斷席別坐。
위장군이 이 두 사람을 거느리고 平陽公主를 방문하였는데, 공주 집에서 두 사람을 말을 모는 노비와 같은 돗자리에서 밥을 먹게 하니, 두 사람이 칼을 뽑아 돗자리를 자르고, 노비들과 따로 앉았다.
主家皆怪而惡之,莫敢呵。
공주 집에서 모두 놀라고 미워하였으나 감히 질책하지 못하였다.
其後有詔募擇衛將軍舍人以為郎,將軍取舍人中富給者,令具鞌馬絳衣玉具劍,欲入奏之。
그 후에 위장군의 가신 중에서 郎官을 모집 선발하라는 조서가 내리매, 장군은 가신 중에서 부유한 자를 선택하고, 좋은 안장을 얹은 말과 붉은 옷과 옥으로 장식한 검을 갖추게 하여 입궁하여 아뢰려고 하였다.
會賢大夫少府趙禹來過衛將軍,將軍呼所舉舍人以示趙禹。
마침 현명한 大夫인 少府 趙禹가 위청 장군의 집을 방문하였으매, 위장군은 천거할 가신을 불러서 먼저 조우에게 보였다.
▶ 褚先生 : 褚少孫. 西漢 元帝와 成帝 때 博士가 되었다. 司馬遷이 죽고 난 뒤 <史記>에 누락된 부분이 있었는데, 이를 수집, 보충하는 작업을 담당하였다.
▶ 將車 : 수레를 몰다.
▶ 因緣 : 기회.
▶ 占著 : 차지하다. 著는 기재하다.
▶ 名數 : 호적.
▶ 蜀道 : 촉 지방으로 가는 잔도. 棧道는 험한 산의 낭떠러지와 낭떠러지 사이에 다리를 놓아 만든 길.
▶ 豪 : 부와 세력이 있는 집안.
▶ 易高 : 높은 지위에 오르기 쉽다.
▶ 求盜, 亭父 : 亭卒. 漢 때 십리를 1정으로 하여 亭長과 亭卒을 두어 치안과 소송업무를 담당하였다.
▶ 部署 : 배치하다. 안배하다.
▶ 劇易 : 어려움과 쉬움.
▶ 任少卿 : 任安. 少卿은 임안의 字.
▶ 怪 : 의아해하다. 驚訝하다
▶ 見 : 알다.
▶ 除 : 임명되다.
▶ 三老 : 백성의 교화를 담당하는 鄉官.
▶ 親民 : 백성을 교화하여 善으로 인도하는 관리로서, 地方官이다.
▶ 三百石長 : 俸祿이 삼백 석이 되는 官長.
▶ 共帳 : 장막을 침. 共은 供과 통한다.
▶ 辦 : 준비하다.
▶ 斥免 : 파면하다.
▶ 衛將軍 : 衛青. 漢 武帝 때 대장군으로, 흉노를 토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 家監 : 집사. 가사 관리자.
▶ 惡齧馬 : 난폭하고 사람을 무는 사나운 말.
▶ 平陽主 : 平陽公主. 漢武帝의 누이.
▶ 騎奴 : 말을 모는 시종인 노비.
▶ 呵 : 질책하다.
▶ 募擇 : 모집하여 선발함.
▶ 郎 : 侍從官.
▶ 富給 : 풍족하다.
▶ 具 : 준비하다.
▶ 鞌馬(안마) : =鞍馬. 안장과 말. 안장 얹은 말
▶ 絳衣 : 진홍색 의복. 漢 궁중의 경위들이 입는 복장.
▶ 趙禹 : 청렴함으로 명성을 떨쳐 태위 주아부를 섬겼고, 주아부가 승상이 된 후 그의 史가 되었다.
趙禹以次問之,十餘人無一人習事有智略者。
조우가 차례로 물어보니, 십여 명 중에서 한 사람도 사리에 통달하고 지모 있는 자가 없었다.
趙禹曰:
「吾聞之,將門之下必有將類。
조우가 말하였다.
“나는 장군의 문하에 반드시 장군의 部類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傳曰
『不知其君視其所使,不知其子視其所友』。
옛글에 ‘만약 군주를 모르거든 그가 부리는 관리를 보고, 사람을 모르거든 그 사귀는 친구를 보라.’라고 하였습니다.
今有詔舉將軍舍人者,欲以觀將軍而能得賢者文武之士也。
지금 조서를 내려 장군의 가신을 천거하라 함은, 장군으로서 현명하고 문무에 뛰어난 인재를 얻었는지 살펴보려는 것입니다.
今徒取盎人子上之,又無智略,如木偶人衣之綺繡耳,將柰之何?」
그런데 한갓 부자의 자제를 선택하여 천거하려고 하시고, 또 이들은 지략도 없고, 마치 나무 인형에 비단옷을 걸친 것과 같으니 장군은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於是趙禹悉召衛將軍舍人百餘人,以次問之,得田仁、任安,曰:
「獨此兩人可耳,餘無可用者。」
이어 조우는 위장군의 가신 1백여 명을 모두 불러서 차례로 물어본 후, 전인과 임안을 찾아내고 말하였다.
“오직 이 두 사람만 괜찮을 뿐, 나머지에 쓸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衛將軍見此兩人貧,意不平。
위장군은 이 두 사람이 빈한함을 알고 내심 마음이 편치 못하였다.
趙禹去,謂兩人曰:
「各自具樾象絳衣。」
조우가 떠나자 두 사람에게 말하였다.
“각자 타고 갈 말과 붉은 옷을 준비하시오.”
兩人對曰:
「家貧無用具也。」
두 사람이 대답하였다.
“집안이 가난하여 준비할 수가 없습니다.”
將軍怒曰:
「今兩君家自為貧,何為出此言?
鞅鞅如有移德於我者,何也?」
장군이 노하여 말하였다.
“지금 두 사람은 집안이 가난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꺼낼 수 있는가?
자신에게 은덕을 베푼 자에게 불만을 품으니, 무엇 때문인가?”
將軍不得已,上籍以聞。
장군은 부득이하여 명부를 올려 보고하였다.
有詔召見衛將軍舍人,此二人前見,詔問能略相推第也。
조서를 내려 위장군의 가신을 불러 접견하자, 두 사람이 앞에 가서 알현하니, 황제가 그들의 재략을 묻고 서로를 추천하게 권하였다.
田仁對曰;
「提桴鼓立軍門,使士大夫樂死戰鬬,仁不及任安。」
전인이 대답하였다.
“북채를 잡고 軍門에 서서 사대부들이 기꺼이 죽기로 싸우게 함에는, 저 전인이 임안에 미치지 못합니다.”
任安對曰:
「夫決嫌疑,定是非,辯治官,使百姓無怨心,安不及仁也。」
임안이 대답하였다.
“무릇 의심쩍은 사건을 해결하고 시비를 판정하며 관원을 분별하여 관리하여, 백성에게 원한이 없게 함에, 저 임안은 전인에 미치지 못합니다.”
武帝大笑曰:
「善。」
무제가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좋다.”
使任安護北軍,使田仁護邊田穀於河上。
임안에게 北軍을 지키게 하고, 전인에게 黃河에 있는 변방의 屯田과 곡물을 지키게 하였다.
此兩人立名天下。
이리하여 두 사람이 천하에 명성을 떨쳤다.
其後用任安為益州刺史,以田仁為丞相長史。
그 후에 임안을 益州刺史로 임명하였고, 전인을 승상의 長史로 삼았다.
田仁上書言:
「天下郡太守多為姦利,三河尤甚,臣請先刺舉三河。
三河太守皆內倚中貴人,與三公有親屬,無所畏憚,宜先正三河以警天下姦吏。」
전인이 황제에게 상서하여 아뢰었다.
“천하의 郡太守에 불법적인 이익을 취하는 자가 많으며, 三河가 더욱 심하오니, 신이 먼저 삼하 지역을 암행하여 糾察하도록 청합니다.
삼하의 태수는 모두 안으로 궁중의 귀인에게 의지하고 있고, 三公과 친족 관계이매, 두려워하거나 거리낌이 없으니, 응당 먼저 삼하를 바로잡음으로써 천하의 간사한 관리에게 경종을 울려야 합니다.”
▶ 習事 : 사리에 통달함.
▶ 傳 : 古書. 옛날 책.
▶ 不知其君視其所使 : 공자가어 육본에 “不知其子,視其父;不知其人,視其友. : 그 아들을 모르겠거든 그 아비를 보고, 그 사람을 모르겠거든 그 친구를 살펴보라.”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孔子家語 六本 15>
▶ 意 : 內心.
▶ 樾象 : =鞍子:안장. 타고 갈 말.
▶ 鞅鞅 : 怏怏과 같다.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
▶ 移 : 베풀다.
▶ 推第 :추천하다.
▶ 桴 : 북채.
▶ 嫌疑 : 의심쩍음.
▶ 辯治官 : 자기가 관리하는 관원을 판별하다. 辯은 辨과 통한다.。
▶ 北軍 : 京城의 위수부대.
▶ 姦利 : 위법행위를 하여 사적인 이익을 도모하다.
▶ 三河 : 河南郡, 河內郡, 河東郡을 말한다.
▶ 刺舉 : 암암리에 죄상을 조사하다
▶ 中貴人 : 황제가 총애하는 대신.
▶ 三公 : 丞相, 太尉, 御史大夫를 말한다.
▶ 畏憚 : 두려워하고 꺼림.
是時河南、河內太守皆御史大夫杜父兄子弟也,河東太守石丞相子孫也。
이때 河南郡, 河內君의 태수는 모두 어사대부 杜周의 친족이었고, 河東郡의 태수는 승상 石慶의 자손이었다.
是時石氏九人為二千石,方盛貴。
이때 石氏 가문에서는 아홉 명이 봉록 2천석의 고관이매, 위세가 성하고 신분이 존귀하였다.
田仁數上書言之。
전인은 수차례 글을 올려 그것을 말하였다.
杜大夫及石氏使人謝,謂田少卿曰:
「吾非敢有語言也,願少卿無相誣汙也。」
두 대부와 석씨 가문에서 사람을 보내어 사죄하면서 전소경에게 말하였다.
“우리에게 감히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만, 少卿께서 무고하여 욕되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仁已刺三河,三河太守皆下吏誅死。
전인이 이미 삼하를 조사하였으매, 삼하 태수를 모두 형리에게 넘겨 사형에 처하였다.
仁還奏事,武帝說,以仁為能不畏彊御,拜仁為丞相司直,威振天下。
전인이 조정에 돌아와서 사실을 아뢰자 무제가 기뻐하며 전인이 유능하고 권세가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여겨서, 승상 司直에 임명하니 위엄이 천하에 떨쳤다.
其後逢太子有兵事,丞相自將兵,使司直主城門。
그 후에 태자에게 兵事가 있으매, 승상이 친히 군사를 이끎에, 司直에게 성문을 담당하라고 명령하였다.
司直以為太子骨肉之親,父子之閒不甚欲近,去之諸陵過。
사직(:전인)은 태자가 골육지친이매, 부자지간에 심히 개입하려 하지 않고, 태자 일행이 諸陵을 지나가도록 하였다.
是時武帝在甘泉,使御史大夫暴君下責丞相
「何為縱太子」,丞相對言
「使司直部守城門而開太子」。
이때 무제는 甘泉宮에 있었는데, 어사대부 暴勝之를 승상에게 보내어
“무엇 때문에 태자를 놓아주었는가?”라고 질책하니, 승상이
“사직에게 성문을 지키라고 명령을 하였으나 성문을 열어주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上書以聞,請捕系司直。
상서하여 보고하고, 사직을 체포하여 구금하자고 청하였다.
司直下吏,誅死。
사직을 형리에게 넘겨 사형하였다.
▶ 杜 : 杜周. 御史大夫 杜周는 말수가 적고 법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였으며 황제의 뜻을 잘 엿보아 어사중승이 된 지 10여 년이 지나 마침내 어사대부가 되었다.
▶ 父兄子弟 : 친족.
▶ 石丞相 : 石慶. 萬石君 石奮의 아들로, 武帝 때에 재상이 되었으며, 9년 동안 재상의 자리에 있었지만 중대한 계책도 없이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여 신중한 처신으로 일관하였다.
▶ 謝 : 사죄하다.
▶ 誣汙 : =誣污. 무고하여 명예를 손상시키다.
▶ 刺 : =刺舉. 암암리에 죄상을 조사하다.
▶ 甘泉 : 甘泉宮.
▶ 暴君 : :暴勝之. 전한 중기의 관료로, 자는 公子이며 하동군 사람이다.
무제 때 각지에 도적이 들끓으니, 무제는 御史中丞과 승상장사를 파견하여 감독하게 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이때 포승지는 直指使者 겸 繡衣御史가 되어 부월을 갖고 각지를 돌며 도적 토벌을 감독하였으며, 도적을 막지 못한 태수들을 탄핵하고 현령 등을 주살하였다.
是時任安為北軍使者護軍,太子立車北軍南門外,召任安,與節令發兵。
이때 임안은 北軍을 감독하는 護軍의 직위에 있었고, 태자가 북군의 남문 밖에 수레를 세우고 임안을 불러 符節을 주고 북군을 동원하라고 명령하였다.
安拜受節,入,閉門不出。
임안은 태자에게 절을 하며 부절을 받고 들어가서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武帝聞之,以為任安為詳邪,不傅事,何也?
무제가 듣고 ‘임안이 부절을 받는 척하며 거사를 돕지 않았으니 무엇 때문인가?’라고 생각하였다.
任安笞辱北軍錢官小吏,小吏上書言之,以為受太子節,言「幸與我其鮮好者」。
임안이 북군의 자금을 관리하는 하급 관리를 매질하여 모욕을 준 적이 있었는데, 이 하급 관리가 상서하여 말하기를 ‘임안이 태자의 부절을 받고 <저에게 정예 군사를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습니다.’라고 모함하였다.
書上聞,武帝曰:
「是老吏也,見兵事起,欲坐觀成敗,見勝者欲合從之,有兩心。
安有當死之罪甚眾,吾常活之,今懷詐,有不忠之心。」
상서를 보고 무제가 말하였다.
“이자는 노련한 관리로 병사가 일어남을 보고, 앉아서 승패를 관망하다가 승자를 알고 그와 연합하려 하였으니 두 마음을 가진 것이다.
임안에게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매우 많았으나, 짐은 항상 그를 살려주었는데, 속이려는 마음을 품고, 불충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下安吏,誅死。
임안을 형리에게 넘겨 사형하였다.
夫月滿則虧,物盛則衰,天地之常也。
무릇 달은 차면 기울고 사물은 성하면 쇠함이 천지만물의 변함없는 법칙이다.
知進而不知退,久乘富貴,禍積為祟。
앞으로 나가기만 하고 물러설 줄 모르며, 오래도록 부귀를 누리려고만 하면, 재앙이 쌓이는 빌미가 된다.
故范蠡之去越,辭不受官位,名傳後世,萬歲不忘,豈可及哉!
그러므로 范蠡는 越을 떠났으며, 관직과 작위를 사양하여 받지 않으매, 후세까지 명성이 전하여 萬世토록 잊혀지지 않으니, 어찌 미칠 수 있으랴!
後進者慎戒之。
후세 사람들은 이를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
語曰『日中則移,月滿則虧』。
옛말에 ‘해가 중천에 이르면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이지러진다.’라고 한다.
物盛則衰,天地之常數也。
만물이 성하면 쇠함은 천지만물의 변하지 않는 이치이다.
進退盈縮,與時變化,聖人之常道也。
나아가고 물러나며 차고 줄어들며 때와 더불어 변화함이 성인이 말씀한 常道이다.
▶ 立車 : 수레를 세우다.
▶ 節 : 符節.
▶ 詳 : 佯과 통하여 가장하다.
▶ 傅 : 附와 통하여 부합하다.
▶ 幸 : 희망.
▶ 鮮好 : 精銳軍.
▶ 月滿則虧 : 日中則移,月滿則虧 : 해가 중천에 이르면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이지러진다.
▶ 祟(수) : 귀신이 사람에게 재난을 끼치다. 祟:빌미(재앙이나 탈 따위가 생기는 원인) 2.빌미를 내리다
▶ 范蠡 : 춘추시대 말기 越나라의 대부인 범려는 월왕 句踐을 보좌하여 吳를 멸망시키는데 크게 공헌하였으나 작위를 받지 않고 월나라를 떠나 齊에 은거하였다. <史記 권41. 越王句踐世家〉
▶ 慎戒 : 삼가고 조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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