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篇은 30世家 중 17번째 편으로 공자의 출생과 평생의 활동과 사상 등의 기록이다.
孔子의 본명은 孔丘이며 춘추시대 魯의 사람으로 유교의 始祖이다. 춘추시대의 정치가·사상가·교육자이며 魯의 문신이자 작가이면서 시인이기도 하다.
사마천은 太史公自序에서
“周왕실이 쇠락해지자 제후들이 제멋대로 행동하였다. 孔子는 禮樂이 무너짐을 슬퍼하여, 經書의 학술을 연구하고 왕도를 재건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고자 이에 자신의 사상을 글로 나타내어, 천하를 위한 예의 규범을 만들고 六藝의 강령을 후세에 남겼다. 이에 제17편 ‘孔子世家’를 지었다.”
라고 기록하였다.
孔子生魯昌平鄉陬邑。
孔子는 魯 昌平鄕 陬邑에서 태어났다.
其先宋人也,曰孔防叔。
그의 선조는 宋 사람으로 孔防叔이라 하였다.
防叔生伯夏,伯夏生叔梁紇。
방숙이 伯夏를 낳고 백하는 叔梁紇을 낳았다.
紇與顏氏女野合而生孔子,禱於尼丘得孔子。
숙양흘은 顔氏의 딸과 야합하여 공자를 낳았는데, 尼丘山에서 기도를 드리고 공자를 얻었다.
魯襄公二十二年而孔子生。
노 襄公 22년(기원전551년)에 공자가 태어났다.
生而首上圩頂,故因名曰丘云。
태어났을 때 정수리가 움푹 꺼져 있었기 때문에 이름을 丘라 했다고 한다.
字仲尼,姓孔氏。
자는 仲尼이고 성은 孔氏이다.
▶ 魯: 周武王이 商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한 뒤 주공을 曲阜에 分封하면서 시작되었다. 주공은 봉지에 부임하지 않고 국도에서 무왕과 무왕의 아들 성왕을 보좌하면서 장남인 伯禽을 봉지로 보내 통치하였다.
▶ 先: 선조.
▶ 顏氏女: <禮記·檀弓>에는 이름이 征在라 하였다. 공자의 아버지인 숙량흘은 9명의 딸이 있었지만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첩에게서 孟皮라는 아들을 얻었는데 발병이 있었으므로 다시 안씨에게 구혼한 것이다. <孔子家語>
▶ 叔梁紇: 공자의 아버지.
▶ 野合: 여자가 六禮를 갖추지 않고 남자와 야합함을 이르는 말. <禮記>에서는
“빙례를 행하면 아내가 되고, 야합하면 첩이 된다. [聘則爲妻 奔則爲妾]”
라고 하였다.
▶ 尼丘山: 山東省 曲阜縣 동남쪽에 위치한 산이름이다. 이 산에서 기도하여 공자를 낳았으므로, 공자의 이름을 丘, 자를 仲尼라고 했다
▶ 禱: 祈禱하다.
▶ 襄公: 魯襄公. 魯의 제24대 군주로 이름은 午다. 成公이 죽자 3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다. 鲁襄公 22년은 기원전551년이다.
▶ 圩頂: 정수리가 오목하다. 凹字形. 圩는 오목하다.
丘生而叔梁紇死,葬於防山。
丘가 태어난 후 숙양흘이 죽어서 防山에 장사를 지냈다.
防山在魯東,由是孔子疑其父墓處,母諱之也。
방산은 魯의 동부에 있었기에 공자는 아버지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 몰라 의심하였지만 어머니는 알려주지 않았다.
孔子為兒嬉戲,常陳俎豆,設禮容。
공자가 아이 때 놀이를 할 때면 늘 제기를 늘어놓고 예를 올렸다.
孔子母死,乃殯五父之衢,蓋其慎也。
공자의 어머니가 죽자 五父衢에 빈소를 차려놓고 장례를 치르는데 신중을 기하였다.
郰人輓父之母誨孔子父墓,然後往合葬於防焉。
추읍 사람 輓父의 어머니가 공자 아버지의 무덤을 가르쳐 준 다음에야 방산에 가서 합장하였다.
▶ 諱: 숨기다. 꺼리다.
▶ 俎豆: 제사용 제물을 담는 祭器.
▶ 禮容: 예의 바른 차림새나 태도.
▶ 殯: 빈소.
▶ 五父之衢: 魯 성내의 거리.
▶ 郰: 陬와 같다. 陬邑.
▶ 誨: 가르치다. 알려주었다는 의미.
孔子要絰,季氏饗士,孔子與往。
공자가 상복을 입을 때, 季氏가 선비들에게 연회를 베푸니 공자도 함께 갔다.
陽虎絀曰:
「季氏饗士,非敢饗子也。」
계씨의 가신인 陽虎가 막아서며 말하였다.
“계씨께서는 명사들을 초대한 것이지 너를 초대한 것이 아니다.
孔子由是退。
이에 공자는 물러나고 말았다.
▶ 要絰: 绖은 상복을 입을 때 머리에 쓰는 首絰과 허리에 감는 腰絰이 있다. 상중에 있었다는 뜻이다.
▶ 饗: 대접하다.
▶ 絀: 물리치다.
孔子年十七,魯大夫孟釐子病且死,誡其嗣懿子曰:
공자 나이 17세 때 魯의 대부 孟釐子가 병이 나서 죽음을 앞두고 그의 후계자 懿子에게 훈계하였다.
「孔丘,聖人之後,滅於宋。
“공구는 성인의 후손인데 그 선조는 宋에서 멸망당하였다.
其祖弗父何始有宋而嗣讓厲公。
그의 조상 弗父何는 원래 宋의 후계자였으나 아우 厲公에게 양보하였다.
及正考父佐戴、武、宣公,三命茲益恭,故鼎銘云:
『一命而僂,再命而傴,三命而俯,循墻而走,亦莫敢余侮。
饘於是,粥於是,以餬余口。』
正考父에 이르러 戴公·武公·宣公을 섬기면서 세 번 임명을 받을 때마다 더욱 공손하였고, 그래서 鼎銘에 일렀다.
‘첫 임명에 등을 굽히고 걸었고, 두 번째 임명에 허리를 굽히고 남을 대했으며, 세 번째 임명에 머리를 들지 않고 구부린 채로 담장을 따라 달리듯 걸으니 누구도 나를 업신여기지 않았다. 이 솥에 풀과 죽을 쑤어 먹으며 청렴하게 지냈다’
其恭如是。
그의 공손함이 이와 같았다.
吾聞聖人之後,雖不當世,必有達者。
내가 듣기에 성인의 후손은 비록 군주는 못되더라도 틀림없이 통달한 사람이 있다.
今孔丘年少好禮,其達者歟?
지금 공구는 나이는 어리지만 예를 좋아하니 그가 통달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吾即沒,若必師之。」
내가 죽으면 너는 꼭 그를 스승으로 모시도록 해라.
▶ 孟釐子: 孟僖子. 姬姓,孟氏,이름은 貜이며 시호가 僖이다. 춘추시대 魯의 司空으로 삼환의 하나였다.
▶ 孟懿子: 仲孫何忌. 맹희자의 아들. 魯의 大夫 仲孫氏. 이름은 何忌, 諡號는 懿. 그의 아버지 孟僖子가 임종 때 그로 하여금 공자에게 예를 배우게 하였다.
▶ 病且死: 병이 중하여 죽으려 하다.
▶ 誡: 훈계하다.
▶ 嗣: 후계자. 즉 아들을 말한다.
▶ 聖人之後, 滅於宋: 공자의 6대 선조인 孔父嘉가 宋의 내란 중에 화독에게 살해당하여 그의 아들 防叔이 魯로 달아났었다. 공보가는 孔子의祖다. 穆公때 大司馬가 되었는데, 목공이 죽자 목공의 遺囑을 받아 殤公을 세웠다. 상공이 재위하는 10년 동안 11번이나 전쟁을 일으켜 백성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太宰 華父督이 그의 아내를 빼앗으려고 민생을 안정시킨다는 명분으로 공보가를 살해하고 공보가의 아내를 차지하였다.
<史記世家권38. 宋微子世家>
▶ 弗父何: 성은 子이고, 氏는 宋, 이름은 共, 시호는 湣이다. 宋의 上卿으로 宋丁公의 아들이다. 군주의 자리는 아우인 鲋祀, 즉 宋厉公이 물려받았다. 封地는 栗이고, 孔子가 그의 10孫이다.
▶ 正考父: 孔子의 선조. 宋 湣公의 현손으로 弗父何의 증손이다. 宋의 정승. 戴公·武公·宣公의 세 왕을 보좌했는데, 승진 명령을 받을수록 더욱 공손하였다.
▶ 三命: 세 차례 승진을 명하다.
▶ 兹益: 더욱 더.
▶ 鼎銘: 鼎: 세발 솥에 새긴 문자.
▶ 一命而僂,再命而傴: 宋의 正考父는 처음 士에 임명되었을 때에는 등을 굽히고 걸었고, 두 번째 大夫에 임명되었을 때에는 허리를 굽히고 남을 대했고, 세 번째 卿에 임명되어서는 머리를 들지 않고 구부린 채로 담장을 따라 달리듯 걸었다. 그러니 누가 감히 정고보를 모범으로 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장자]第32篇 列禦寇(열어구: 열자
▶ 僂: 등을 굽히다.
▶ 傴: 허리를 굽히다.
▶ 侮: 업신여기다.
▶ 饘: 죽.
▶ 當世: 군주를 말한다.
▶ 若: 너. 孟懿子.
及釐子卒,懿子與魯人南宮敬叔往學禮焉。
희자가 죽자 懿子는 魯사람 南宮敬叔과 더불어 공자를 찾아가서 예를 배웠다.
是歲,季武子卒,平子代立。
이 해(기원전535년), 季武子가 죽고 季平子가 뒤를 이었다.
▶ 南宮敬叔: 魯의 대부 孟僖子의 아들 仲孫閱. 左傳 昭公 7년(기원전535년)에 따르면, 孟僖子가 죽을 때 두 아들 孟懿子와 남궁경숙에게 공자에게 예의를 배우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孟懿子는 이름이 何忌인데, 일설에는 孟懿子가 남궁괄이고, 南宮敬叔은 그의 형이라고도 한다.
▶ 季武子: 춘추시대 魯 사람. 季孫行父의 아들이다. 아버지를 이어 大夫가 되었다.
▶ 季平子: 季孫意如. 춘추시대 魯의 대부. 季孫宿의 손자다.
孔子貧且賤。
공자는 가난하고 천하였다.
及長,嘗為季氏史,料量平;
嘗為司職吏而畜蕃息。
장성하여 계씨의 창고를 관리하는 말단 관리를 지낸 적이 있는데 저울질이 공평하였고,
가축을 관장하는 관리였을 때는 가축들이 번성하였다.
由是為司空。
이로 말미암아 司空이 되었다.
已而去魯,斥乎齊,逐乎宋、衛,困於陳蔡之間,於是反魯。
얼마 후 魯를 떠났으나 齊에서 배척당했고, 宋·衛에서 쫓겨났으며, 陳·蔡 사이에서 곤욕을 치러 이에 魯로 돌아왔다.
孔子長九尺有六寸,人皆謂之「長人」而異之。
공자는 키가 아홉 자 여섯 치여서 사람들이 모두 그를 ‘키다리’라고 부르며 그를 괴이하게 여겼다.
魯復善待,由是反魯。
魯가 다시 잘 대우하였기에 魯로 되돌아왔다.
▶ 嘗: 일찍이.
▶ 史: 委吏로 기록된 곳도 있다. 고대 창고를 관리하는 말단 관리.
▶ 料: 계산하다.
▶ 平: 공평하다.
▶ 司職吏: 목장을 관리하는 말단 관리.
▶ 司空: 工事를 관장하는 관리.
아래의 내용은 孔子家語 제11편에 기록되어 있다.
魯南宮敬叔言魯君曰:
「請與孔子適周。」
남궁경숙이 魯 군주에게 말하였다.
“공자와 함께 周나라로 가고 싶습니다.”
魯君與之一乘車,兩馬,一豎子俱,適周問禮,蓋見老子云。
魯의 군주는 수레 한 대와 말 두 마리를 주고 시종 하나를 동행케 하니, 주나라에 가서 예를 물었는데 아마도 老子를 만났다고들 한다.
▶ 南宮敬叔: 孟僖子의 아들.
▶ 魯君: 魯昭公.
▶ 適: 가다.
▶ 豎子: 나이 어린 종. 童僕.
▶ 老子: 老聃. 노자는 楚의 苦縣 厲鄉曲 仁里 사람이다. 성은 李氏이며 이름은 耳, 자는 聃이다. <史記列傳권63老子韓非列傳>
남궁경숙이 공자와 함께 周나라에 가서 老聃에게 禮를 물었다. <孔子家語>
辭去,而老子送之曰:
「吾聞富貴者送人以財,仁人者送人以言。
吾不能富貴,竊仁人之號,送子以言,曰:
『聰明深察而近於死者,好議人者也。
博辯廣大危其身者,發人之惡者也。
為人子者毋以有己,為人臣者毋以有己。』」
인사를 하고 떠나려 하자 노자가 전송하며 말하였다.
“내가 듣기에 부귀한 자는 재물을 주어 사람을 전송하고, 어진 자는 좋은 말을 하여 전송한다고 합디다.
나는 부귀하지는 않지만, 외람되이 어진 사람이란 이름을 차지하고 있으니 이런 말로 그대를 전송하겠소.
‘총명하고 깊이 살펴서 죽기 쉬운 까닭은 남을 비난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오.
박식하고 말을 잘하며 식견이 넓은 사람이 위험이 닥치기 쉬운 까닭은 남의 잘못을 들추어내기 때문이오.
자식된 자는 부모 앞에서 사심이 있어서는 안 되고, 신하된 자는 군주 앞에서 사심이 있어서는 안 되오.’”
孔子自周反于魯,弟子稍益進焉。
공자가 주나라에서 魯로 돌아오자 제자들이 갈수록 늘어났다.
▶ 竊: ~인 체하다. 훔치다.
▶ 議: 남의 잘못을 들어 나무라다.
▶ 毋以有己: 자신을 잊어버리다.
▶ 稍: 점점.
▶ 益進: 증가하다.
是時也,晉平公淫,六卿擅權,東伐諸侯;
楚靈王兵彊,陵轢中國;
齊大而近於魯。
이 무렵 晉平公이 정치를 어지럽혀 六卿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동쪽으로 제후들을 공격하였고,
楚靈王이 강한 軍隊로 중원을 압박하였고,
齊는 강대한 나라로 魯와 가까웠다.
魯小弱,附於楚則晉怒;
附於晉則楚來伐;
不備於齊,齊師侵魯。
魯는 작고 약해 楚에 붙으면 秦이 노하고,
秦에 붙으면 楚가 공격해왔으며,
齊를 대비하지 않으면 齊의 軍隊가 魯를 침략하였다.
▶ 晉平公: 춘추시대 晉의 군주로 이름은 彪이고, 悼公의 아들이다. 3년 제후의 軍士를 이끌고 魯를 구하기 위해 齊를 공격하여 수도를 포위하였다. 다음 해 제후들과 督揚에서 모여 대국이 소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조약을 맺었다. 세금을 지나치게 많이 걷고 백성들의 형편을 돌보지 않았으며, 淫樂을 즐겨, 정치가 趙·韓·魏의 三家로 넘어갔다. 26년 동안 재위하였다.
▶ 六卿(6경: 晉의6대 世卿家: 대대로 卿의 지위를 계승한 유력한 귀족 가문로 范·中行·智·韓·魏·趙씨. <사기 권39. 晉世家>
▶ 陵轢: 압박하다. 업신여기다.
▶ 中國: 중원 지역.
▶ 備: 대비하다.
아래의 내용은 孔子家語 上卷 제13편에 기록되어 있다.
魯昭公之二十年,而孔子蓋年三十矣。
魯昭公 재위20년(기원전522년), 공자의 나이는 대략 30세가 되었다.
齊景公與晏嬰來適魯,景公問孔子曰:
「昔秦穆公國小處辟,其霸何也?」
齊景公과 晏嬰이 함께 魯에 갔는데, 경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옛날 秦穆公은 나라도 작고 외진 곳에 있었지만 霸者가 되었으니 무엇 때문입니까?”
對曰:
「秦,國雖小,其志大;處雖辟,行中正。
身舉五羖,爵之大夫,起纍紲之中,與語三日,授之以政。
以此取之,雖王可也,其霸小矣。」
공자가 대답하였다.
“秦은 비록 나라는 작지만 그 뜻이 컸고, 비록 외진 곳에 있었지만 정치는 中正을 지켰습니다.
진목공은 五羖(: 백리해)를 몸소 추천하여 대부의 작위를 내리고, 감옥에서 석방시켜 함께 3일 동안 이야기해 보고 정사를 맡겼습니다.
이런 방법을 취한다면 천하를 통치할 수도 있는데, 그의 패자가 됨은 사소한 일입니다.
景公說。
경공이 기뻐하였다.
▶ 齊景公: 齊莊公의 이복동생으로 이름은 杵臼이다. 장공을 살해한 대부 崔杼에 의해 옹립되었다. 궁실을 짓고 사냥개와 말을 모으기를 좋아하였으며 세금과 형벌을 무겁게 하며 사치가 끝이 없었다. 재위 기간 동안 齊의 公室이 쇠퇴하고 田氏세력이 대두하게 되었다.
▶ 晏嬰: 晏子. 춘추시대 齊의 명재상으로 자는 仲, 시호는 平이다. 齊 靈公·莊公·景公 3대를 섬긴 재상으로서 절약 검소하고 군주에게 기탄없이 간언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사기 권62, 管晏列傳>
▶ 辟: 僻과 같다. 궁벽하다. 구석지다.
▶ 身舉: 몸소 추천하다.
▶ 五羖: 五羖大夫. 百里奚. 虞의 대부였던 백리해가 나라를 잃은 후 楚의 포로가 되어 소를 먹이고 있었는데, 진목공이 그가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5마리의 양가죽을 주어 속죄한 다음에 국정을 맡겼다. 이 때문에 오고대부라 불렀다. <史記권5. 秦本紀>
▶ 纍紲: 縲紲과 같다. 죄인을 묶는 검은 줄로 구금되었음을 말한다.
▶ 王: 천하를 통치하다.
孔子年三十五,而季平子與郈昭伯以鬬雞故得罪魯昭公,昭公率師擊平子,平子與孟氏、叔孫氏三家共攻昭公,昭公師敗,奔於齊,齊處昭公乾侯。
공자 나이35세(기원전517년), 季平子가 郈昭伯과의 닭싸움 때문에 魯昭公에게 죄를 지으니, 소공이 軍士를 이끌고 季平子를 공격했으며, 季平子·孟氏·叔孫氏의 세 집안이 함께 소공을 공격하자 소공의 軍隊가 패하여 소공은 齊로 달아났고, 齊는 소공을 乾侯에서 살게 하였다.
其後頃之,魯亂。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魯가 어지러워졌다.
孔子適齊,為高昭子家臣,欲以通乎景公。
공자는 齊로 가서 高昭子의 가신이 되어 그를 통해 景公에게 접근하려 하였다.
與齊太師語樂,聞韶音,學之,三月不知肉味,齊人稱之。
齊의 太師와 음악을 담론하였는데, 순임금 때의 韶음악을 듣고 그것을 배웠는데,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모를 정도로 심취하자, 齊 사람들이 찬양하였다.
▶ 季平子: 季孫意如. 춘추시대 魯의 대부. 季孫宿의 손자다. 계평자가 郈氏 및 臧氏와 불화하자 후씨와 장씨가 昭公에게 고자질하였다. 소공이 季氏를 공격하여 宅에서 포위하였으나 叔孫· 孟孫과 연합하여 三家가 소공을 함께 공격하니 포위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소공이 달아나 齊와 晉에 원조를 청하였다. 계씨는 齊에는 대항하고 晉에는 뇌물을 먹여 소공을 乾侯에 머무르게 하였다. 소공은 돌아오지 않고 간후에서 죽으니, 魯陵墓道남쪽에 장사지내 祖宗과 같은 반열에 있지 못하게 하였다.
[史記世家]권33. 魯周公世家
▶ 郈昭伯: 郈孫. 이름은 惡이다. 魯昭公 때 大夫를 지냈다. 일찍이 季平子와 鬪鷄를 했는데, 계씨의 닭이 지자 계평자가 화가 나서 郈氏의 집을 침범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중에 소공을 따라 계씨를 공격하다가 孟氏에게 살해되었다. 시호는 昭伯이다.
▶ 乾侯: 晉 경내의 邑.
▶ 頃之: 오래지 않아.
▶ 高昭子: 高張. 齊의 대부.
▶ 家臣: 卿大夫의 幕僚.
▶ 太師: 樂官.
▶ 語樂: 음악에 대해 논의하다.
▶ 韶: 고대의 樂曲名. 순임금 때의 악곡 이름.
▶ 稱: 찬양하다.
아래 내용은 논어 顔淵 12장에 기록되어 있다.
景公問政孔子,孔子曰:
「君君,臣臣,父父,子子。」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관하여 공자가 말하였다.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
景公曰:
「善哉!
信如君不君,臣不臣,父不父,子不子,雖有粟,吾豈得而食諸!」
경공이 말하였다.
“좋은 말씀이오!
분명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고,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면 비록 곡식이 있다 해도 내 어찌 그것을 먹을 수 있겠소!”
他日又復問政於孔子,孔子曰:
「政在節財。」
훗날 또 공자에게 정치에 관하여 묻자 공자는 말하였다.
“정치는 재물을 절약하는 데 있습니다.
景公說,將欲以尼谿田封孔子。
경공이 기뻐하며 尼谿의 땅에 공자를 봉하고자 하였다.
▶ 君君,臣臣: 이때 陳桓子(: 전환자)가 齊의 대부가 되어 齊의 국정을 독점하여, 군주는 군주답지 못하고 신하는 신하답지 못하며, 아비는 아비답지 못하고 자식은 자식답지 못하였다.
▶ 信: 분명히.
▶ 吾豈得而食諸: 장차 멸망당할 것이니, 결코 그 곡식을 먹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晏嬰進曰:
안영이 進言하였다.
「夫儒者滑稽而不可軌法;
倨傲自順,不可以為下;
崇喪遂哀,破產厚葬,不可以為俗;
游說乞貸,不可以為國。
“유학자들은 말만 번지르르하기 때문에 법으로 규제할 수 없으며,
거만하고 잘난 체하니 아랫사람으로 부릴 수 없습니다.
장례를 중시하고 오랫동안 슬퍼하여 가산을 탕진해가며 후한 장례를 치르니 풍속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유세를 다니며 돈과 관직을 구하니 나라를 맡길 수 없습니다.
自大賢之息,周室既衰,禮樂缺有間。
큰 현자들이 떠난 뒤로 周왕실이 쇠퇴하고 예악이 흩어진 지 오래입니다.
今孔子盛容飾,繁登降之禮,趨詳之節,累世不能殫其學,當年不能究其禮。
지금 공자는 용모를 성대히 꾸미고, 의례절차를 번거롭게 하고, 종종걸음치고 신중한 예절을 내세우나, 이런 것들은 몇 대를 배워도 다 배울 수 없으며 평생을 다 바쳐도 그 예를 터득할 수 없습니다.
君欲用之以移齊俗,非所以先細民也。」
군께서 그를 기용하여 齊의 풍속을 바꾸려고 하심은 백성들을 이끄는 방법이 아닙니다.
▶ 滑稽: 말솜씨가 좋다. 익살스럽다.
▶ 軌法: 법규를 준수하다.
▶ 倨傲自順: 거만하여 잘난 체하다.
▶ 崇喪遂哀: 장례의 예를 중시하고 오랫동안 슬퍼하다. 遂는 오랫동안.
▶ 貸: 官祿.
▶ 大賢: 文王과 周公등을 말한다.
▶ 趨: 공경의 표시로 종종걸음 치다.
▶ 詳: 신중하다.
▶ 累世: 몇 대.
▶ 殫: 다하다.
▶ 當年: 평생.
▶ 先: 유도하다. 이끌다.
▶ 細民: 백성.
後景公敬見孔子,不問其禮。
그 후 경공은 공자를 공경스럽게 대하였으나 예를 묻지는 않았다.
異日,景公止孔子曰:
「奉子以季氏,吾不能。」
어느 날 경공이 공자를 만류하면서 말하였다.
“그대를 季氏처럼 대우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없소.”
以季孟之間待之。
계씨와 孟氏의 중간으로 대우하였다.
齊大夫欲害孔子,孔子聞之。
齊의 대부들이 공자를 해치려는 소문을 공자가 들었다.
景公曰:
「吾老矣,弗能用也。」
경공이 말하였다.
“내가 늙어서 그대를 기용할 수 없소이다.”
孔子遂行,反乎魯。
공자는 이에 그곳을 떠나 魯로 돌아왔다.
▶ 季孟之間: 上卿과 下卿의 중간. 季孫氏는 당시 上卿이었으며 孟孫氏는 下卿이었다.
▶ 遂: 이에.
아래의 내용은 國語 魯語下 58에 기록되어 있다.
孔子年四十二,魯昭公卒於乾侯,定公立。
공자의 나이42세(기원전510년)때 魯昭公이 간후에서 죽고 定公이 즉위하였다.
定公立五年,夏,季平子卒,桓子嗣立。
정공 재위5년(기원전505년) 여름, 계평자가 죽고 桓子가 작위를 이어받았다.
季桓子穿井得土缶,中若羊,問仲尼云「
得狗」。
季桓子가 우물을 파다가 질그릇을 얻었는데, 그중에 羊 같은 것이 있어 중니에게 말하였다.
“개를 얻었다.”
仲尼曰:
「以丘所聞,羊也。
丘聞之,木石之怪夔、罔閬,水之怪龍、罔象,土之怪墳羊。」
중니가 말하였다.
“이 丘가 듣기로는 양이라고 합니다.
구가 듣기에 산림 중의 괴이한 것은 夔와 罔閬이라 하고, 물에서 괴이한 것은 龍과 罔象이라하고, 흙에서 괴이한 것은 墳羊이라고 하였습니다.”
▶ 魯定公: 魯의 제26대 국군으로 이름은 宋이고, 昭公의 동생이다. 孔子로 하여금 재상의 일을 수행하게 했고, 齊景公을 夾谷에서 회맹하였으며 제경공이 정공을 위협하자 공자가 예로써 따지니 제경공이 두려워하며 중지하고 침탈했던 魯의 땅도 돌려주었다. 15년 동안 재위하였다.
▶ 季平子卒: 6월에 季平子가 東野를 순행하고 돌아오다가 국도에 이르지 못하고 房땅에서 죽었다.
▶ 缶: 장군. 아가리가 좁고 배가 불룩한 질그릇.
▶ 若: 마치~과 같다.
▶ 木石: 산을 말한다.
▶ 夔: 산에 사는 귀신 이름. 크기는 소만 하고 모양은 북 같고 한 발로 다닌다고 한다.
▶ 罔閬: 산의 정령. 사람의 소리를 잘 흉내 내어서 사람을 미혹시킨다.
▶ 罔象: 전설 중 물의 정령. 모양은 어린아이와 같고 붉은색과 흑색을 띠고 있으며 붉은 손톱에 큰 귀, 긴 팔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 墳羊: 땅의 정령. 雌雄이 성립되지 않은 양.
아래 내용은 國語魯語에 기록되어 있다.
吳伐越,墮會稽,得骨節專車。
吳가 越을 공격하여 도성인 會稽를 무너뜨리다가 뼈를 얻었는데 뼈마디가 수레를 채웠다.
吳使使問仲尼:
「骨何者最大?」
오왕이 사신을 보내 중니에게 물었다.
“뼈는 어느 것이 가장 큽니까?”
仲尼曰:
「禹致群神於會稽山,防風氏後至,禹殺而戮之,其節專車,此為大矣。」
중니가 말하였다.
“禹임금이 신들을 會稽山에 소집함에 防風氏가 늦게 왔으므로 우임금이 그를 죽여서 戮尸하니, 그 뼈마디가 수레를 채웠다고 하니 그것이 가장 크지요.”
吳客曰:
「誰為神?」
吳 객이 물었다.
“무엇을 신이라 합니까?”
仲尼曰:
「山川之神足以綱紀天下,其守為神,社稷為公侯,皆屬於王者。」
중니가 대답하였다.
“산천의 신은 천하의 기강을 잡을 수 있으니, 그가 산천을 지키면 신이 되고 사직을 지키면 공후가 되니 모두 왕에게 속하는 것입니다.
▶ 墮: 무너뜨리다. 吳왕 夫差가 越를 夫椒에서 패퇴시켰는데. 越왕 句踐이 會稽에 머물렀다. 吳가 포위하여 무너뜨렸다.
▶ 節專車: 뼈 한마디가 수레 하나를 독점하였다.
▶ 吳客: 吳의 사신. 오왕이 사신이라고 밝히지 말라고 하여 객이라고 한 것이다.
▶ 致: 소집하다.
▶ 防風氏: 부락의 수령.
▶ 戮: 시체를 대중에게 전시하다.
▶ 紀綱: 법칙. 원칙.
▶ 守: 산천을 지키고 제사를 지내는 사람.
▶ 社稷: 토지와 곡물. 토지와 곡식을 지키는 신.
客曰:
「防風何守?」
객이 물었다.
“방풍씨는 무엇을 지켰습니까?”
仲尼曰:
「汪罔氏之君守封、禺之山,為釐姓。
在虞、夏、商為汪罔,於周為長翟,今謂之大人。」
중니가 대답하였다.
“汪罔氏의 군주로 封山·禺山을 지켰고, 姓을 釐라 했습니다.
虞·夏·商나라 때에는 汪罔氏라 했고, 周나라 때에는 長翟이라 했으며 지금은 大人이라고 합니다.”
客曰:
「人長幾何?」
객이 물었다.
“사람의 키의 극치는 얼마나 됩니까?”
仲尼曰:
「僬僥氏三尺,短之至也。
長者不過十之,數之極也。」
중니가 대답하였다.
“僬僥氏가 3척으로 작은 것의 극치였습니다.
큰 사람은 열 배가 넘지 않는데 그것이 숫자의 극치입니다.
於是吳客曰:
「善哉聖人!」
이에 吳의 객이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성인이시여!”
▶ 汪罔氏: 상고시대의 부락명. 長翟의 나라 이름.
▶ 僬僥氏: 僬僥國. 고대 신화에서 몸이 왜소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를 말한다.
산해경 해외남경에는
“초요국은 삼수 동쪽에 있다.”
라고 하였고,
곽박의 주에
“초요민은 키가 3척(약1미터)으로 (焦僥民長三尺) 지극히 작다(短之至也。)”
라고 하였다. <山海經 海外南經><列子 5. 湯問編>
▶ 十之: 3척의 10배. 3丈(30尺)이다.
아래 내용은 논어 陽貨 17장에 기록되어 있다.
桓子嬖臣曰仲梁懷,與陽虎有隙。
桓子가 총애하는 신하 중에 仲梁懷라는 자는 陽虎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陽虎欲逐懷,公山不狃止之。
양호가 중량회를 내쫓으려고 했으나 公山不狃가 말렸다.
其秋,懷益驕,陽虎執懷。
그해 가을, 중량회가 더욱 교만해지자 양호가 그를 체포하였다.
桓子怒,陽虎因囚桓子,與盟而醳之。
계환자가 노하자 양호는 이를 계기로 계환자를 가두고 맹약한 후 석방하였다.
陽虎由此益輕季氏。
양호가 이로 인하여 계씨를 더욱 깔보게 되었다.
季氏亦僭於公室,陪臣執國政,是以魯自大夫以下皆僭離於正道。
계씨 역시 僭濫되이 공실로 행세하면서 陪臣으로 국정을 장악하니, 魯는 대부 이하 모두가 正道를 벗어난 행동을 하였다.
故孔子不仕,退而脩詩書禮樂,弟子彌眾,至自遠方,莫不受業焉。
그런 까닭에 공자는 벼슬하지 않고 물러나 <詩>·<書>·<禮>·<樂>을 정리했는데, 제자가 더욱 많아졌고, 먼 곳에서도 찾아와서 수업하지 않음이 없었다.
▶ 季桓子: 춘추시대 魯 사람으로 季孫如意의 아들이다. 魯定公 5년 아버지를 이어 大夫가 되었다. 정공12년 齊 사람들의 女樂을 받아들여 정공과 함께 구경하고 朝禮를 폐하였다. 孔子가 당시 大司寇를 맡았는데, 이로 인해 魯를 떠나 衛로 갔다.
▶ 嬖臣: 총애를 받는 신하.
▶ 仲梁懷: 춘추시대 魯계손씨의 가신.
▶ 陽虎: 춘추시대 말기 魯사람으로 字는 貨이고, 얼굴이 孔子와 닮았다고 한다. 季氏의 家臣으로 季平子를 섬겼다. 계평자가 죽자 권력을 장악하였다. 季桓子를 잡아 강제로 동맹을 맺게 했으며, 魯定公 8년에 三桓을 제거하고 삼환의 嫡子들을 모두 죽이려다가 실패하고 陽關으로 달아났다. 다음 해에 삼환이 양관을 공격하자 齊로 달아났고, 다시 晉으로 달아났다. 趙盾에게 귀의하여 趙簡子의 謀臣이 되었다.
▶ 隙: 틈. 사이가 벌어지다.
▶ 公山不狃: 춘추시대 魯사람으로 공산은 성이며 이름은 불뉴 또는 弗擾라도 한다. 공산불뉴는 양호와 함께 魯의 계환자의 가신이었다.
▶ 醳: 釋과 통용된다. 석방하다.
▶ 僭: 분에 넘치다. 하급 관리가 상급 관리의 명의나 예의·기물을 사용하다.
▶ 陪臣: 제후의 신하가 天子에 대해 자신을 일컫는 말로 여기서는 季氏를 말한다.
▶ 彌: 더욱.
定公八年,公山不狃不得意於季氏,因陽虎為亂,欲廢三桓之適,更立其庶孽陽虎素所善者,遂執季桓子。
노정공8년(기원전502년), 공산불뉴가 계씨에게서 뜻을 얻지 못하자, 양호의 힘을 빌려 반란을 일으켜 三桓의 嫡子들을 폐하고, 평소 양호와 사이가 좋은 庶孽로 바꾸어 세우려고, 계환자를 체포하였다.
桓子詐之,得脫。
계환자는 양호를 속이고 탈출하였다.
定公九年,陽虎不勝,奔于齊。
노정공9년(기원전501년), 양호가 魯에 패하여 齊로 달아났다.
是時孔子年五十。
이때 공자의 나이는 50이었다.
▶ 廢三桓之適: 陽虎는 三桓을 제거하고 季寤로 季桓子를 대체하고, 叔孫輒으로 叔孫氏를 대체하고, 자신이 孟懿子를 대체하고자 하였다. <史記世家권33. 魯周公世家>
▶ 三桓: 춘추시대 魯의 세 卿의 집안, 季孫氏·叔孫氏·孟孫氏의 세 귀족 집안을 가리키는 말이다.
▶ 庶孽: 첩 소생의 아들.
아래 내용은 논어 陽貨제17장에 기록되어 있다.
公山不狃以費畔季氏,使人召孔子。
공산불뉴는 費읍을 점거해 계씨를 배반하고서 사람을 보내 공자를 불렀다.
孔子循道彌久,溫溫無所試,莫能己用,曰:
「蓋周文武起豐鎬而王,今費雖小,儻庶幾乎!」
공자는 치국의 도를 지켜온 지 오래였으나 그 뜻을 펼칠 곳이 없어 울적하였고, 자신을 기용하는 사람도 없던 차이어서 말하였다.
“당초 周문왕·周무왕도 豐·鎬에서 일어나 왕업을 이루었고, 지금 費읍이 비록 작기는 하지만 혹시 그와 거의 비슷하겠다!”
欲往。
가려고 하였다.
子路不說,止孔子。
자로가 탐탁지 않아서 공자를 말렸다.
孔子曰:
「夫召我者豈徒哉?
如用我,其為東周乎!」
공자가 말하였다.
“나를 부르는 자가 어찌 공연히 부르겠느냐?
만약 나를 기용하면 그곳에 東周를 부흥시키겠다!”
然亦卒不行。
끝내 가지는 않았다.
▶ 畔: 叛과 통용된다. 반란을 일으키다.
▶ 温温: (불만을 호소할 수 없어)울적하다.
▶ 己用: 자신을 기용하다.
▶ 儻: 혹시. 만일
▶ 庶幾: ‘거의 ~할 것이다’. 여기서는 ‘거의 ~에 비슷하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 徒: 공연히. 헛되이.
▶ 其為東周乎: 周나라의 道를 동방에 부흥시키겠다는 뜻이다.
其後定公以孔子為中都宰,一年,四方皆則之。
그 후 魯定公이 공자를 中都의 읍재로 삼자, 1년 만에 사방이 모두 공자를 본받았다.
由中都宰為司空,由司空為大司寇。
공자는 중도의 읍재에서 司空이 되었고, 사공에서 大司寇가 되었다.
▶ 則: 본받다.
▶ 司空: 백성의 땅을 다스리는 관리.
▶ 司寇: 범죄를 다스리는 관리.
이 내용은 孔子家語 卷上제1편에 기록되어 있다.
定公十年春,及齊平。
노정공10년(기원전500년)봄, 齊와 화친하였다.
夏,齊大夫黎鉏言於景公曰:
「魯用孔丘,其勢危齊。」
그해 여름에 齊의 대부 黎鉏가 景公에게 말하였다.
“魯가 孔丘를 기용했으니 그 기세가 齊를 위태롭게 할 터입니다.”
乃使使告魯為好會,會於夾谷。
이에 魯에 사신을 보내 우호의 회담을 갖자며 夾谷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魯定公且以乘車好往。
노정공이 수레를 타고 호위도 없이 가려고 하였다.
孔子攝相事,曰:
「臣聞有文事者必有武備,有武事者必有文備。
古者諸侯出疆,必具官以從。
請具左右司馬。」
공자가 재상의 직책을 임시로 맡고 있었는데 말하였다.
“신이 듣기에 文事에는 반드시 武備가 있어야 하며 武事에는 文備가 있어야 합니다.
옛날에 제후가 국경을 나서면 반드시 관원을 갖추어 따르게 했습니다.
좌우 司馬를 데려가십시오.”
定公曰:
「諾。」
정공이 말하였다.
“그렇게 하겠소.”
具左右司馬。
좌우 사마를 데려갔다.
▶ 魯定公: 노정공은 춘추시대 魯의 군주로 이름은 宋이고, 昭公의 동생이다. 孔子에게 재상의 일을 수행하게 했고, 齊景公을 夾谷에서 만났다. 제경공이 정공을 위협하자 공자가 예로써 따지니 제경공이 두려워하며 중지하고 침탈했던 魯의 땅도 돌려주었다.
▶ 平: 화친하다.
▶ 好會: 화해의 회맹.
▶ 夾谷: 지금의 祝其縣.
▶ 好往: 아무런 경비 없이 회맹에 가다.
▶ 攝相事: 공자가 재상의 직책을 임시로 맡다. 攝은 다스리다.
▶ 疆: 경계. 국경.
▶ 具: 준비하다. 갖추다.
會齊侯夾谷,為壇位,土階三等,以會遇之禮相見,揖讓而登。
노정공이 협곡에서 齊景公을 만남에, 단상의 좌석과 세 계단의 흙 계단이 마련되어 있었으며, 상견례로써 서로 만났고, 읍하여 사양하면서 단 위로 올랐다.
獻酬之禮畢,齊有司趨而進曰:
「請奏四方之樂。」
술을 권하는 예가 끝나자 齊의 담당관리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서서 말하였다.
“사방의 음악을 연주하게 하옵소서.”
景公曰:
「諾。」
경공이 말하였다
“좋다.”
於是旍旄羽袚矛戟劍撥鼓噪而至。
그러자 깃발을 들고 깃털 모자와 털가죽 옷을 입고 창과 칼을 든 무리가 북을 치고 떠들썩하게 달려 나왔다.
▶ 位: 단상 위의 좌석.
▶ 會遇之禮: 군주들이 상견할 때의 간략한 예절.
▶ 有司: 담당관리.
▶ 四方之樂: 변방 소수민족의 舞樂.
▶ 旍旄: 고대에 오색의 깃털로 장식한 깃발.
▶ 袚: 조잡한 의복. 털가죽 옷.
孔子趨而進,歷階而登,不盡一等,舉袂而言曰:
「吾兩君為好會,夷狄之樂何為於此!
請命有司!」
공자가 빠른 걸음으로 나서서 계단을 올라 마지막 계단은 오르지 않은 채 옷소매를 휘두르며 말하였다.
“우리 두 군주께서 친목을 위해 만나시는데, 어찌 이곳에 夷狄의 음악을 연주합니까!
담당관에게 명령을 내리십시오!”
有司卻之,不去,則左右視晏子與景公。
담당관이 물러가라 했으나 그들이 물러가지 않자, 측근이 안자와 제경공의 눈치를 살폈다.
景公心怍,麾而去之。
제경공은 마음속으로 부끄러워하여 손을 저어 물러가게 하였다.
▶ 歷階: 계단을 급히 오르다.
▶ 袂: 옷소매.
▶ 怍: 부끄러워하다.
▶ 麾: 지휘하다.
有頃,齊有司趨而進曰:
「請奏宮中之樂。」
잠시 후 齊의 담당관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말하였다.
“궁중의 음악을 연주하게 하옵소서.”
景公曰:
「諾。」
경공이 말하였다.
“그렇게 하라.”
優倡侏儒為戲而前。
광대와 난쟁이가 재주를 부리며 앞으로 나왔다.
孔子趨而進,歷階而登,不盡一等,曰:
「匹夫而營惑諸侯者罪當誅!
請命有司!」
공자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계단을 급히 올라 마지막 계단은 오르지 않은 채 말하였다.
“필부로서 제후를 현혹하는 자는 죄가 죽어 마땅합니다!
담당관에게 명하십시오!”
有司加法焉,手足異處。
담당관이 법에 집행하여 手足異處(허리를 자르는 형벌)를 행하였다.
▶ 有頃: 잠시 후
▶ 優倡: 가무인. 노래와 춤을 추는 연예인.
▶ 侏儒: 난쟁이.
▶ 加法: 법에 의거하여 처벌하다.
▶ 手足異處: 腰斬. 허리를 자르는 형벌.
景公懼而動,知義不若,歸而大恐,告其群臣曰:
「魯以君子之道輔其君,而子獨以夷狄之道教寡人,使得罪於魯君,為之奈何?」
경공은 두려워하면서도 감동하였으며, 도의로서 그만 못함을 알고 귀국하여 크게 두려워하며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魯는 군자의 도리로 그 군주를 보좌하는데, 그대들은 오로지 夷狄의 도리로 과인을 가르치려 하여 과인으로 하여금 魯君에게 죄를 짓게 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은가?”
有司進對曰:
「君子有過則謝以質,小人有過則謝以文。
君若悼之,則謝以質。」
담당관리가 진언하였다.
“군자의 과오에는 실질적인 것으로 사죄하고, 소인의 잘못에는 말로 사죄합니다.
군주께서 만약 마음이 편치 않으시면 실질적인 것으로 사죄하면 됩니다.
於是齊侯乃歸所侵魯之鄆、汶陽、龜陰之田以謝過。
이에 제경공은 魯에게서 빼앗은 鄆·汶陽·龜陰의 땅을 돌려줌으로써 잘못을 사죄하였다.
▶ 質: 실질적인 것.
▶ 悼: 마음이 아프다.
이 내용은 孔子家語 卷上에 기록되어 있다.
定公十三年夏,孔子言於定公曰:
「臣無藏甲,大夫毋百雉之城。」
정공13년(기원전497년)여름, 공자가 노정공에게 말하였다.
“신하는 무기를 비축해서는 안 되고, 대부의 담장이 100雉의 성이어서는 안 됩니다.
使仲由為季氏宰,將墮三都。
이에 仲由를 계씨의 가신으로 삼아 三都를 허물도록 하였다.
於是叔孫氏先墮郈。
이에 叔孫氏가 호응하여 먼저 郈읍의 성을 허물었다.
季氏將墮費,公山不狃、叔孫輒率費人襲魯。
계씨가 자신의 費읍의 성을 허물려고 함에, 공산불뉴·叔孫輒이 費읍 사람들을 이끌고 魯를 기습하였다.
公與三子入于季氏之宮,登武子之臺。
노정공이 계손·맹손·숙손과 계씨의 궁으로 피신하여 季武子의 누대로 올라갔다.
費人攻之,弗克,入及公側。
비읍 사람들이 그곳을 공격하여 함락시키지는 못했으나 정공의 옆까지 쳐들어왔다.
▶ 甲: 무기.
▶ 雉: 고대에 성의 담장과 면적의 단위. 길이가 3丈이고 높이가 1丈인 것을 1雉라 한다. 100雉의 성은 길이와 높이가 모두 300丈인 城邑을 말한다.
▶ 三都: 三家읍의 都城으로, 계손의 읍인 費, 숙손의 읍인 郈, 맹손의 읍인 成의 도성을 말한다.
▶ 郈: 叔孫氏 소속의 땅.
▶ 季氏將墮費: 季氏가 자신의 봉읍인 費邑을 무너뜨리려고 하자, 계씨에게 뜻을 얻지 못한 叔孫輒이 費邑의 수령인 公山弗狃와 결탁하여 魯의 國都를 습격한 것이다. <春秋左氏傳 定公12년>
▶ 三子: 季孫氏, 孟孫氏, 叔孫氏를 말한다.
▶ 武子: 季孫宿.
孔子命申句須、樂頎下伐之,費人北。
공자가 申句須·樂頎에게 이들을 공격하도록 명하니 비읍 사람들이 패하여 달아났다.
國人追之,敗諸姑蔑。
도성의 사람들이 그들을 뒤쫓아 姑蔑에서 격파하였다.
二子奔齊,遂墮費。
공산불뉴와 숙손첩은 齊로 달아났고 마침내 비읍의 성을 허물었다.
將墮成,公斂處父謂孟孫曰:
「墮成,齊人必至于北門。
且成,孟氏之保鄣,無成是無孟氏也。
我將弗墮。」
맹손씨의 식읍인 成읍의 성을 허물려는데 公斂處父가 孟孫에게 말하였다.
“성읍을 허물면 齊 사람들이 분명히 북문에까지 쳐들어올 터입니다.
또 성읍은 맹씨의 보루이니 성읍이 없으면 맹씨도 없습니다.
우리는 成邑의 성을 허물지 않겠습니다.”
十二月,公圍成,弗克。
12월, 노정공이 成邑을 포위했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 北: 패배하여 달아나다.
▶ 成: 맹손씨의 식읍.
▶ 鄣: 障과 같다.
이 내용은 공자가어 卷上제2편에 기록되어 있다.
定公十四年,孔子年五十六,由大司寇行攝相事,有喜色。
정공14년(기원전496년) 공자 나이 56세, 大司寇로서 재상의 일을 대행하면서 기뻐하는 기색을 띠었다.
門人曰:
「聞君子禍至不懼,福至不喜。」
門人이 말하였다.
“제가 듣기에 군자는 화가 닥쳐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이 와도 기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孔子曰:
「有是言也。
不曰
『樂其以貴下人』乎?」
공자가 말하였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귀한 신분으로 남에게 몸을 낮춤이 즐겁다.’
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於是誅魯大夫亂政者少正卯。
그리고는 魯의 대부로 정치를 어지럽힌 少正卯를 죽였다.
與聞國政三月,
粥羔豚者弗飾賈;
男女行者別於塗;
塗不拾遺;
四方之客至乎邑者不求有司,皆予之以歸。
국정을 참여한 지 석 달,
양·돼지를 파는 사람들이 값을 속이지 않았고,
남녀가 길을 구별하여 걸었고,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았으며,
읍에 오는 사방의 길손은 담당관리를 찾아가지 않아도, 모두가 원하는 것을 얻어 돌아갔다.
▶ 行攝相事: 임시로 재상의 일을 행하다.
▶ 門人: 공자가어에는 仲由로 기록되어 있다.
▶ 少正卯: 공자가 大司寇가 되어 政事를 어지럽히던 大夫 少正卯를 정치에 참여한 지 7일 만에 誅罰하였다. <孔子家語>
▶ 與聞: 참여하다.
▶ 粥(죽): 팔다.
▶ 賈: 값. 가격.
▶ 涂: 途와 같다. 도로.
齊人聞而懼,曰:
「孔子為政必霸,霸則吾地近焉,我之為先并矣。
盍致地焉?」
제경공이 이 소문을 듣고 두려워하며 말하였다.
“공자가 정치를 하면 魯는 틀림없이 패주가 될 터이고, 패주가 되면 우리 땅이 그에 가까우므로 우리가 먼저 병합될 터이다.
어찌 땅을 내주지 않겠는가?”
黎鉏曰:
「請先嘗沮之;
沮之而不可則致地,庸遲乎!」
黎鉏가 말하였다.
“먼저 시험삼아 魯의 군신 관계를 갈라놓아 보십시오.
갈라놓아서 안 되면 그때 땅을 내주어도 어찌 늦겠습니까!”
▶ 齊人: 제 경공.
▶ 盍: 어찌 아니하다.
▶ 沮: 저지하다. 방해하다.
▶ 庸: 어찌.
於是選齊國中女子好者八十人,皆衣文衣而舞康樂,文馬三十駟,遺魯君。
이에 齊의 미녀 80명을 선발하여 모두 화려한 옷을 입히고 <康樂舞>를 가르치고 치장한 말 120필과 함께 魯君에게 보냈다.
陳女樂文馬於魯城南高門外,季桓子微服往觀再三,將受,乃語魯君為周道游,往觀終日,怠於政事。
女樂과 치장한 말을 魯의 성 남쪽 高門 밖에 진열하자, 季桓子가 微服으로 가서 여러 차례 참관하고는 그들을 받아들이려 하여, 魯君이 지방을 순시한다고 말하고 가서는 하루 종일 참관하며 정사를 게을리하였다.
▶ 文衣: 화려한 의복.
▶ 康樂: 舞曲名.
▶ 文馬: 여러 가지 색깔로 장식한 말.
▶ 駟: 고대에 한 수레에 매는 4마리의 말.
▶ 周道游: 각지를 순시하다.
子路曰:
「夫子可以行矣。」
자로가 말하였다.
“선생님께서 떠나야 하겠습니다.”
孔子曰:
「魯今且郊,如致膰乎大夫,則吾猶可以止。」
공자가 말하였다.
“魯가 곧 郊제사를 지낼 텐데 만일 대부들에게 제사 고기를 나누어주면 나는 그대로 여기에 머무르겠다.”
桓子卒受齊女樂,三日不聽政;
郊,又不致膰俎於大夫。
계환자가 끝내 齊의 여악을 받고 사흘 동안 국정을 돌보지 않았고,
교 제사를 지내고도 대부들에게 제사 고기를 나누어주지 않았다.
孔子遂行,宿乎屯。
공자가 마침내 떠나 屯에서 묵었다.
而師己送,曰:
「夫子則非罪。」
악사 己가 전송하며 말하였다.
“선생은 잘못이 없습니다.
▶ 郊: 천자가 천지에 지내는 제사.
▶ 膰: 제사에 쓰는 익힌 고기. 제사가 끝나면 대신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 俎: 제사 때 산적을 담는 그릇.
孔子曰:
「吾歌可夫?」
공자가 말하였다.
“내가 노래로 대답해도 되겠소?”
歌曰:
「彼婦之口,可以出走;
彼婦之謁,可以死敗。
蓋優哉游哉,維以卒歲!」
노래를 불렀다.
“저 여인네의 입이 사람을 쫓아낼 수 있구나.
저 여인네가 접근하니 사람을 패망시킬 수 있구나.
내 유유자적하며 일생을 마치리라!”
師己反,桓子曰:
「孔子亦何言?」
악사 己가 돌아오자 환자가 물었다.
“공자는 또 무슨 말을 하던가?”
師己以實告。
악사 기는 사실대로 말하였다.
桓子喟然嘆曰:
「夫子罪我以群婢故也夫!」
계환자가 장탄식하며 말하였다.
“선생이 내가 여악들을 받아들인 일로 나를 나무라는구나!”
▶ 喟然: 장탄식하는 모양.
▶ 群婢: 女樂들을 말한다.
孔子遂適衛,主於子路妻兄顏濁鄒家。
공자가 衛에 이르러 자로의 처형인 顔濁鄒의 집에 머물렀다.
衛靈公問孔子:
「居魯得祿幾何?」
衛靈公이 공자에게 물었다.
“魯에 있을 때 봉록이 얼마였습니까?”
對曰:
「奉粟六萬。」
공자가 대답하였다.
“곡식6만 되를 받았습니다.
衛人亦致粟六萬。
위영공 역시 곡식6만 되를 주었다.
居頃之,或譖孔子於衛靈公。
머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공자를 위영공에게 참소하였다.
靈公使公孫余假一出一入。
영공이 公孫余假로 하여금 공자의 출입을 감시토록 하였다.
孔子恐獲罪焉,居十月,去衛。
공자는 죄를 얻을까 두려워 머문 지 열 달 만에 衛를 떠났다.
▶ 主: 거주하다.
▶ 顔濁鄒: 춘추시대 衛의 大夫. 공자의 제자인 子路의 妻兄으로, <맹자집주>에는 顔讐由로 기록되어 있다.
▶ 衛靈公: 춘추시대 衛의 군주로 이름은 元이며, 獻公의 손자다. 昏君으로 이름 높았으며, 남색을 즐겼고 부인 南子는 이복오빠인 송조와 사통하면서 정치에 깊이 개입했으므로 아들인 태자 괴외가 어머니인 南子를 죽이려다 실패해 망명하는 일이 생겼다.
▶ 奉: 俸과 같다. 봉록.
▶ 譖: 헐뜯다. 중상하다.
▶ 一出一入: 공자의 출입을 감시토록 한 것이다.
아래 내용은<논어주소> 子罕편에 실려있다.
將適陳,過匡,顏刻為僕,以其策指之曰:
「昔吾入此,由彼缺也。」
공자가 陳으로 가려고 匡땅에 들렀고 顔刻이 수레를 몰았는데, 말채찍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전에 제가 이곳에 올 때는 저 무너진 성벽 틈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匡人聞之,以為魯之陽虎。
匡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魯의 陽虎라고 여겼다.
陽虎嘗暴匡人,匡人於是遂止孔子。
양호가 전에 광 사람들에게 포악한 적이 있었으므로 광 사람들이 공자의 길을 막았다.
孔子狀類陽虎,拘焉五日,顏淵後,子曰:
「吾以汝為死矣。」
공자의 모습이 양호와 닮았기 때문에 5일 동안 광 땅에서 포위당했다가, 顔淵이 나중에 오자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네가 죽은 줄 알았다.”
顏淵曰:
「子在,回何敢死!」
안연이 말하였다.
“선생님이 계시는데 제가 어찌 감히 죽겠습니까?”
▶ 僕: 마부.
▶ 策: 말채찍.
▶ 缺: 갈라진 틈.
▶ 陽虎: 춘추시대 말기 魯 사람. 자는 貨이고, 얼굴이 孔子와 닮았다고 한다. 季氏의 家臣으로, 季平子를 섬겼다. 三桓을 제거하고 삼환의 嫡子들을 모두 죽이려다가 실패하고 陽關으로 달아났었다.
▶ 顔淵: 顔回. 춘추시대 魯사람으로, 공자의 제자이다. 字는 子淵이다. 자를 따서 顏淵이라고도 부른다. 학덕이 높고 재질이 뛰어나 공자의 가장 촉망받는 제자였다. 그러나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匡人拘孔子益急,弟子懼。
광 사람들이 공자에 대해 더욱 심하게 압박하자 제자들이 두려워하였다.
孔子曰:
「文王既沒,文不在茲乎?
天之將喪斯文也,後死者不得與于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匡人其如予何!」
공자가 말하였다.
“문왕께서 이미 돌아가셨고 주나라의 예악·제도는 나에게 있지 않은가?
하늘이 이 文을 없애려 하셨다면 내가 이 文에 참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늘이 이 文을 없애려 하지 않는데 광 사람들이 나를 어찌 하겠는가!”
孔子使從者為甯武子臣於衛,然後得去。
공자가 따르던 사람을 寧武子에게 보내 衛에서 신하가 되게 하고, 떠날 수 있었다.
▶ 文: 주나라의 예악제도를 말한다.
▶ 兹: 여기. 공자 자신을 말한다.
▶ 斯: 이. 이것.
▶ 天之將喪斯文也: ‘하늘이 이 文을 없애려 하였다면 본래 나로 하여금 이 文을 알지 못하게 하였을 것인데, 지금 나로 하여금 이 文을 알게 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이 文을 없애려 하지 않은 것이다. 하늘이 이 文을 없애지 않았으니 내가 응당 그 文을 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文은 주나라의 예악제도.
▶ 寧武子: 衛의 대부.
23. 위 영공의 부인 南子 : 아래 내용은<논어주소>雍也편에 기록되어 있다.
去即過蒲。
광 땅을 떠나서 蒲땅에 들렀다.
月餘,反乎衛,主蘧伯玉家。
한 달여 만에 다시 衛에 돌아와 蘧伯玉의 집에 머물렀다.
靈公夫人有南子者,使人謂孔子曰:
「四方之君子不辱欲與寡君為兄弟者,必見寡小君。
寡小君願見。」
衛靈公의 夫人 南子가 사람을 시켜 공자에게 말하였다.
“사방의 군자로서 우리 군주와 교유함을 욕되다고 여기지 않고 형제가 되려 한 이들은 반드시 나를 만나보았다.
나는 선생을 만나보기를 원한다.”
孔子辭謝,不得已而見之。
공자는 사양하다가 하는 수 없어 그녀를 만났다.
夫人在絺帷中。
부인은 베로 만든 휘장 안에 있었다.
孔子入門,北面稽首。
공자가 문으로 들어가서 북쪽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夫人自帷中再拜,環珮玉聲璆然。
부인은 휘장 안에서 再拜 하였고, 패옥 소리가 쟁그랑하고 울렸다.
孔子曰:
「吾鄉為弗見,見之禮答焉。」
물러나와 공자가 말하였다.
“지난번에 나는 만나려 하지 않았으나 만난 것은 예로써 답한 것이다.”
子路不說。
자로가 탐탁지 않게 여겼다.
孔子矢之曰:
「予所不者,天厭之!
天厭之!」
공자가 맹세하며 말하였다.
“내가 만약 도를 행하기 위해서 만난 것이 아니라면 하늘이 나를 버리실 터이다!
하늘이 나를 버리실 터이다!”
▶ 蘧伯玉: 蘧瑗. 춘추시대 衛 사람. 字가 백옥이다. 靈公때 大夫를 지냈다.
▶ 南子: 衛靈公의 부인. 이복오빠인 송조와 사통하면서 정치에 깊이 개입하였다.
▶ 不辱: 치욕으로 여기지 않다.
▶ 寡小君: 제후의 부인이 자신을 지칭하는 謙辭. 위영공의 부인인 南子를 말한다. 군주의 아내를 군주가 칭할 때 夫人이라 하고, 부인이 자신을 칭할 때는 小童이라 하고, 귀족들이 칭할 때 君夫人이라 하고, 타국에 칭할 때는 寡小君이라 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칭할 때는 역시 君夫人이라 한다.
▶ 絺帷: 고은 베로 만든 휘장.
▶ 稽首: 공경하는 뜻으로 머리를 조아리다.
▶ 璆: 아름다운 옥의 소리.
▶ 鄉: 向과 같다. 지난번. 허사 鄉 참조
▶ 矢: 맹세하다.
▶ 所: 만약. 허사 所 참조
<이 내용은 논어주소 子罕편에 기록되어 있다. >
居衛月餘,靈公與夫人同車,宦者雍渠參乘,出,使孔子為次乘,招搖市過之。
衛에서 한 달 남짓 머무르는데, 衛靈公과 부인이 함께 수레를 타고 환관 雍渠가 참승이 되어 외출했는데, 공자를 뒤따르는 수레에 태우고 과시하며 저잣거리를 지나갔다.
孔子曰:
「吾未見好德如好色者也。」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덕을 좋아하기를 색을 좋아하듯 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
於是醜之,去衛,過曹。
이에 혐오감을 느끼고 衛를 떠나 曹로 갔다.
是歲,魯定公卒。
이해에 노정공이 죽었다.
▶ 參乘: 고대에 수레를 탈 때, 지위가 높은 사람은 왼쪽, 마부는 중앙, 모시는 사람이 오른쪽에 타는데, 이를 參乘이라 한다.
▶ 招搖市過: 남의 눈을 끌도록 과시하며 거리를 지나가다. 사람들 앞에서 뽐내다. 招搖는 과시하다.
▶ 吾未見好德如好色者也: 공자가 당시 사람들이 덕을 박대하고 女色을 厚待함을 미워한 것이다.
孔子去曹適宋,與弟子習禮大樹下。
공자가 曹를 떠나 宋으로 가서 제자들과 큰 나무 아래에서 예를 익혔다.
宋司馬桓魋欲殺孔子,拔其樹。
宋의 司馬 桓魋가 공자를 죽이려고 그 나무를 뽑아버렸다.
孔子去。
공자가 宋을 떠났다.
弟子曰:
「可以速矣。」
제자들이 말하였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孔子曰:
「天生德於予,桓魋其如予何!」
공자가 말하였다.
“하늘이 나에게 덕을 주셨으니 환퇴가 나를 어찌 하겠는가!”
▶ 桓魋: 宋의 군정을 주관하는 司馬의 관직에 있던 向魋. 宋桓公의 후예였기 때문에 환퇴라고 불렀다. 송경공25년(기원전492년)에 孔子가 宋을 들렀는데 宋의 사마 桓魋가 공자를 미워하여 죽이려 하자, 공자가 微服을 입고 떠났다. <史記世家권38. 宋微子世家>
이 내용은 공자가어 제5권22편에 기록되어 있다.
孔子適鄭,與弟子相失,孔子獨立郭東門。
공자가 鄭에 갔다가 제자들과 서로 흩어져서, 공자 혼자 東門 성곽에 서 있었다.
鄭人或謂子貢曰:
「東門有人,其顙似堯,其項類皋陶,其肩類子產,然自要以下不及禹三寸。
纍纍若喪家之狗。」
鄭 사람 누군가 子貢에게 말하였다.
“동문에 사람이 있는데 이마는 堯임금과 비슷하고, 목은 皋陶와 같고, 어깨는 子産과 비슷한데, 그러나 허리 아래로는 禹임금보다 세 치 정도 짧았습니다.
지쳐서 초라한 모습이 마치 상갓집 개와 같더이다.
子貢以實告孔子。
자공은 공자에게 사실대로 일러주었다.
孔子欣然笑曰:
「形狀,末也。
而謂似喪家之狗,然哉!
然哉!」
공자는 欣然히 웃으며 말하였다.
“형상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갓집 개와 같다고 말했다니 그러하구나!
참으로 그러하구나!”
▶ 郭: 外城.
▶ 子貢: 孔子의 제자. 衛 출신. 姓은 端木, 이름은 賜. 子貢은 字.
▶ 顙: 이마.
▶ 皋陶: 순임금 때 형옥을 관장하던 관리. 帝禹가 직위한 후에 고요를 등용하여 하늘에 추천하여 정권을 맡기려 했으나 고요가 죽었다.
▶ 子産: 鄭子産. 姓은 公孫, 이름은 僑, 字는 子産, 鄭의 현명한 大夫로 春秋時代 후기의 뛰어난 정치가이다
▶ 要: 腰와 같다. 허리.
▶ 纍纍: 累累. 지쳐서 초라한 모양.
▶ 末: 중요하지 않다.
孔子遂至陳,主於司城貞子家。
공자는 陳에 이르러 司城 貞子의 집에 머물렀다.
歲餘,吳王夫差伐陳,取三邑而去。
1년여 지나서, 吳王 夫差가 陳을 공격하여 세 읍을 탈취하고 돌아갔다.
趙鞅伐朝歌。
趙鞅이 朝歌를 공격하였다.
楚圍蔡,蔡遷于吳。
楚가 蔡를 포위하자 蔡는 오 땅으로 도읍을 옮겼다.
吳敗越王句踐會稽。
吳는 越王句踐을 會稽에서 패퇴시켰다.
▶ 司城貞子: 춘추시대 陳 大夫이다. 처음에 宋에서 司城 벼슬을 하다가 陳으로 가 신하가 되었기 때문에 사성정자라 하였다.
▶ 楚圍蔡: 蔡昭侯 26년(기원전493년), 孔子가 蔡에 갔다. 초소왕이 蔡를 공격하려 하자, 蔡는 두려워 吳에 위급함을 알렸다.
▶ 蔡遷于吳: 吳는 蔡가 너무 멀기 때문에 서로 도와주기 쉽게 도읍을 吳와 가까운 곳으로 옮길 것을 약조하라고 요구하였다. 소후가 사사로이 허락하고 대부들과 논의하지 않았다. 吳가 蔡를 구원하러 출병하여 오자 그 틈에 州來로 도읍을 옮겼다. <史記世家]권35. 管蔡世家>
이 내용은<國語>魯語下68. 에 기록되어 있다.
有隼集于陳廷而死,楛矢貫之,石砮,矢長尺有咫。
매 한 마리가 陳의 궁정에 앉아 있다가 죽었는데, 싸리나무 화살이 새를 꿰뚫었고, 돌화살촉에 화살의 길이는 1자 8치였다.
陳湣公使使問仲尼。
陳湣公이 사람을 보내 중니에게 물었다.
仲尼曰:
「隼來遠矣,此肅慎之矢也。
昔武王克商,通道九夷百蠻,使各以其方賄來貢,使無忘職業。
於是肅慎貢楛矢石砮,長尺有咫。
중니가 대답하였다.
“매는 멀리서 왔고, 이것은 肅愼의 화살입니다.
옛날 周武王이 商나라를 공격하고 九夷와 百蠻으로 통하는 길을 터서 각각 그 지방의 특산물을 가지고 와서 공물로 바치도록 하여 직무를 잊지 않게 했습니다.
그래서 숙신은 싸리나무 화살과 돌화살촉을 공물로 바쳤는데 그 길이가 1자8치였습니다.
▶ 隼(준): 매. 송골매.
▶ 楛: 楛木. 싸리나무.
▶ 石砮: 돌화살촉.
▶ 咫: 길이의 단위. 여덟 치. 1치는 3.03cm.
▶ 陳湣公: 춘추시대 陳의 마지막 군주로 성은 嬀, 이름은 越이다. 楚에서 白公勝이 반란을 일으키자 그 틈을 타서 楚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楚는 곧 반란을 평정하고 武城尹 공손朝로 하여금 陳에 반격하도록 하였다. 공손조는 陳의 보리를 벤 뒤 진민공을 잡아 죽였고, 이로써 陳은 멸망하였다.
▶ 肅慎: 고대 北狄의 나라.
▶ 九夷百蠻: 각 소수민족.
▶ 方賄: 지방의 특산물.
▶ 職業: 직무. 조공을 바치는 일.
先王欲昭其令德,以肅慎矢分大姬,配虞胡公而封諸陳。
分同姓以珍玉,展親;
分異姓以遠職,使無忘服。
故分陳以肅慎矢。」
선왕께서는 그 아름다운 덕을 밝히고자 숙신의 화살을 큰딸 大姬에게 주어 虞의 胡公에게 시집보내고, 호공을 陳에 봉했습니다.
동성 제후에게 진귀한 옥을 나누어 줌은 친족을 중시한 것이고,
異姓제후에게 먼 곳의 공물을 나누어 줌은 복종을 잊지 않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陳에게 숙신의 화살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試求之故府,果得之。
옛날 창고를 찾아보게 했더니 과연 그런 화살을 찾았다.
▶ 昭: 밝히다.
▶ 令德: 아름다운 덕.
▶ 大姬: 周武王의 장녀.
▶ 胡公: 胡公 滿. 陳胡公. 舜임금의 후손으로 有虞氏이며 이름은 滿이다. 주나라 제후국인 陳의 초대 군주이다.
▶ 展親: 친족을 중시하다.
▶ 異姓: 姬姓이외의 제후.
▶ 故府: 옛날의 창고.
이 내용은<논어주소>公冶長에 기록되어 있다.
孔子居陳三歲,會秦楚爭彊,更伐陳,及吳侵陳,陳常被寇。
공자가 陳에 3년을 머물렀는데, 마침 秦과 楚가 패권을 다투어서 돌아가며 陳을 공격하고, 吳가 陳을 침범하니 陳은 늘 침략을 당하였다.
孔子曰:
「歸與!歸與!
吾黨之小子狂簡,進取不忘其初。」
공자가 말하였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내 마을의 제자들이 뜻이 크고 단순하지만, 진취적이고 처음 뜻을 잊지 않는다.
於是孔子去陳。
공자가 陳을 떠났다.
▶ 被寇: 침범을 당하다.
▶ 狂簡: 뜻이 크고 일을 간략하게 처리함.
이 내용은<공자세가>제5권22편 困誓에 기록되어 있다.
過蒲,會公叔氏以蒲畔,蒲人止孔子。
蒲에 들러니, 마침 公叔氏가 포에서 衛에 반란을 일으켜서, 포 사람들이 공자를 막아섰다.
弟子有公良孺者,以私車五乘從孔子。
公良孺라는 제자가 자기 수레 다섯 대로 공자를 따르고 있었다.
其為人長賢,有勇力,謂曰:
「吾昔從夫子遇難於匡,今又遇難於此,命也已。
吾與夫子再罹難,寧鬬而死。」
그는 사람이 키가 크고 현명하며, 용기와 힘이 있었는데 공자에게 말하였다.
“제가 전에 선생님을 따르다가 匡에서 환난을 겪었는데, 지금 또 여기서 어려움을 당하고 보니 운명인가 봅니다.
제가 선생님과 다시 난을 당하느니 차라리 싸우다 죽겠습니다.
鬬甚疾。
매우 격렬하게 싸웠다.
蒲人懼,謂孔子曰:
「苟毋適衛,吾出子。」
포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공자에게 말하기를,
“만약 衛로 가지 않겠다면 당신을 보내주겠소.”
▶ 公良孺: 陳 사람으로 字는 子正이다.
▶ 會: 마침.
▶ 罹: 당하다. 만나다.
▶ 出: 석방하다.
▶ 苟: 만약.
與之盟,出孔子東門。
그들과 맹세하자 공자를 동문으로 내보냈다.
孔子遂適衛。
공자는 기어이 衛로 갔다.
子貢曰:
「盟可負耶?」
자공이 물었다.
“맹세를 어겨도 되겠습니까?”
孔子曰:
「要盟也,神不聽。」
공자는 대답하였다.
“강요한 맹서는 신도 들어주지 않는다.
▶ 負: 위반하다.
▶ 要盟: 강요에 의한 맹약. 要는 要挾. 협박하다.
이 내용은<공자세가>제5권22편 困誓에 기록되어 있다.
衛靈公聞孔子來,喜,郊迎。
위령공은 공자가 온다는 말을 듣고 기뻐서 교외에 나가 맞이하였다.
問曰:
「蒲可伐乎?」
공자에게 물었다.
“포 땅을 공격해야 하겠습니까?”
對曰:
「可。」
공자가 대답하였다.
“해야 합니다.”
靈公曰:
「吾大夫以為不可。
今蒲,衛之所以待秦楚也,以衛伐之,無乃不可乎?」
영공이 물었다.
“우리 대부들은 안 된다고 여깁니다.
지금 포 땅은 衛를 秦과 楚로부터 막아주는 곳이므로 衛가 그곳을 공격함은 불가하지 않겠습니까?”
孔子曰:
「其男子有死之志,婦人有保西河之志。
吾所伐者不過四五人。」
공자가 대답하였다.
“그곳 남자들은 衛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고, 부인들은 西河를 지킬 의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공격하려는 자는 4, 5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靈公曰:
「善。」
然不伐蒲。
영공이
“옳습니다.”
라고 했지만, 포 땅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 待: 방어하다.
▶ 無乃: ~하지 않은가?
▶ 西河: 衛 지역.
▶ 四五人: 公叔氏와 함께 반란을 일으킨 무리.
靈公老,怠於政,不用孔子。
영공은 늙고 정무에 태만해서 공자를 기용하지 않았다.
孔子喟然歎曰:
「苟有用我者,朞月而已,三年有成。」
공자는 한숨을 쉬며 탄식하였다.
“만약 나를 기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1년이면 효과가 있고, 3년이면 성과를 볼 터이다.
孔子行。
공자가 떠났다.
▶ 喟然: 한숨을 쉬며 서글프게 탄식함.
▶ 苟: 만약.
▶ 期月: 1년.
▶ 成: 성과. 효과.
이 내용은<논어주소>陽貨에 기록되어 있다.
佛肸為中牟宰。
佛肹은 中牟의 읍재이다.
趙簡子攻范、中行,伐中牟。
趙簡子가 范氏, 中行氏를 공격하고 중모를 공격하였다.
佛肸畔,使人召孔子。
필힐이 반란을 일으키고 사람을 보내 공자를 불렀다.
孔子欲往。
공자가 가려고 하였다.
子路曰:
「由聞諸夫子,
『其身親為不善者,君子不入也』。
今佛肸親以中牟畔,子欲往,如之何?」
자로가 물었다.
“제가 선생님께 듣기에
‘자신이 직접 불선한 자에게 군자는 그 나라에 들어가지 않는다.’
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필힐이 직접 중모에서 반란을 일으켰는데 선생님께서는 가려 하시니 어찌 된 일입니까?”
孔子曰:
「有是言也。不曰堅乎,磨而不磷;
不曰白乎,涅而不淄。
我豈匏瓜也哉,焉能系而不食?」
공자가 대답하였다.
“그런 말을 했었지.
견고한 것은 갈아도 얇아지지 않으며,
지극히 흰 것은 검은 돌로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는다는 말도 하지 않았더냐?
내가 어찌 뒤웅박이냐, 한 곳에 매달려 먹지 않을 수 있겠는가?”
▶ 佛肸: 晉 大夫. 趙簡子의 邑宰.
▶ 中牟: 춘추시대에는 晉의 읍이었으나 晉이 분열된 이후에 趙 영토가 되어 한때 수도가 되었다. 현재의 河南省鶴壁서쪽이다.
▶ 不入: 그 나라에 들어가지 않다.
▶ 磷: 얇다. 얇은 돌.
▶ 涅: 개흙. 진흙. 옛날에 흑색 염료로 쓰이던 곱고 검은 돌.
▶ 淄: 검은 색.
▶ 匏瓜: 박. 뒤웅박.
이 내용은<논어주소>憲問 39. 에 기록되어 있다.
孔子擊磬。
공자가 磬을 치고 있었다.
有荷蕢而過門者,曰:
「有心哉,擊磬乎!
硜硜乎,莫己知也夫而已矣!」
삼태기를 지고 문을 지나던 자가 말하였다.
“근심과 괴로움이 있구나, 경을 침이여!
경쇠 소리여, 자기를 알아주는 이가 없는데도 그만이니!”
▶ 磬: 경쇠.
▶ 荷: 짊어지다.
▶ 蕢: 삼태기. 흙을 담는 풀로 만든 그릇.
▶ 有心: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모양.
▶ 硜硜: 의성어. 쨍강쨍강.
▶ 莫己知: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다.
이 내용은<공자가어>제8권35편에 기록되어 있다.
孔子學鼓琴師襄子,十日不進。
공자가 師襄子로부터 거문고 연주를 배웠는데 열흘이 지나도록 다음 단계로 나가지 않았다.
師襄子曰:
「可以益矣。」
사양자가 말하였다.
“다른 곡을 연주해도 되겠습니다.”
孔子曰:
「丘已習其曲矣,未得其數也。」
공자가 대답하였다.
“제가 그 곡은 익혔으나 기술은 모릅니다.”
有間,曰:
「已習其數,可以益矣。」
얼마 후에 양자가 말하였다.
“그 기술을 익혔으니 다른 곡을 연주해도 되겠습니다.”
孔子曰:
「丘未得其志也。」
공자가 말하였다.
“제가 그 뜻을 모릅니다.”
有間,曰:
「已習其志,可以益矣。」
얼마 후에 양자가 말하였다.
“그 뜻을 익혔으니 다른 곡을 연주해도 되겠습니다.”
孔子曰:
「丘未得其為人也。」
공자가 말하였다.
“제가 작자의 爲人을 모릅니다.”
▶ 師襄子: 魯의 樂官.
▶ 鼓琴: 거문고를 연주하다.
▶ 數: 악곡을 연주하는 기술.
▶ 有間: 잠시 후. 이윽고.
▶ 志: 악곡의 뜻.
▶ 為人: 악곡 작자의 인품
有間,[曰]有所穆然深思焉,有所怡然高望而遠志焉。
얼마 후, 공자가 말없이 깊이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즐거이 높이 바라보고 멀리 쳐다보기도 하였다.
曰:
「丘得其為人,黯然而黑,幾然而長,眼如望羊,如王四國,非文王其誰能為此也!」
말하였다.
“제가 그 爲人을 알게 되었습니다, 검은 얼굴에 훤칠하게 키가 크며,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눈이 천하의 왕과 같으니, 周文王이 아니고서야 누가 이 곡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師襄子辟席再拜,曰:
「師蓋云文王操也。」
사양자가 자리에서 피하고 재배하며 말하였다.
“스승께서 본래 <文王操>라고 하셨습니다.
▶ 穆然: 조용히 생각하다. 잠자코 있다. 穆은默과 통용된다.
▶ 怡然: 즐거워하는 모양.
▶ 黯然: 어두운 모양. 검은 모양.
▶ 幾然: 키가 큰 모양.
▶ 望羊: 望洋. 멀리바라보다.
▶ 辟: 避와 같다.
▶ 文王操: 周文王이 작곡한 樂曲名.
이 내용은<공자가어>제5권22편 困誓에 기록되어 있다.
孔子既不得用於衛,將西見趙簡子。
공자가 衛에서 중용되지 못하자 서쪽으로 가서 조간자를 만나려 하였다.
至於河而聞竇鳴犢、舜華之死也,臨河而嘆曰:
「美哉水,洋洋乎!
丘之不濟此,命也夫!」
황하에 이르러서 竇鳴犢과 舜華의 죽음을 듣고 황하를 마주하며 탄식하였다.
“아름답구나, 넓고 넓은 물이여!
내가 황하를 건너지 않음도 하늘의 명이로다!”
子貢趨而進曰:
「敢問何謂也?」
자공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물었다.
“감히 여쭙습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 趙簡子: 춘추시대 晉의 대부로 이름은 趙鞅이다. 竇鳴犢과 舜華는 晉의 어진 대부이다. 이때는 公族의 세력이 약하고 대부의 세력이 강했는데, 조간자는 대부로 있으면서 국사를 17년 동안 장악하였다. 조간자가 정권을 장악하지 못하였을 때는 이 두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 정사를 다스렸는데, 정권을 장악하고 나서 이 두 사람을 모두 죽였다.
▶ 河: 黄河.
▶ 洋洋: 물이 성대한 모습.
孔子曰:
「竇鳴犢,舜華,晉國之賢大夫也。
趙簡子未得志之時,須此兩人而后從政;
及其已得志,殺之乃從政。
丘聞之也:
刳胎殺夭,則麒麟不至郊;
竭澤涸漁,則蛟龍不合陰陽;
覆巢毀卵,則鳳皇不翔。
何則?
君子諱傷其類也。
夫鳥獸之於不義也尚知辟之,而況乎丘哉!」
공자가 말하였다.
“두명독과 순화는 晉의 어진 대부였다.
조간자가 뜻을 얻지 못하였을 때 반드시 이 두 사람의 말을 들은 후 정치를 하였다.
자신의 뜻을 이루자 그들을 죽이고서 정치를 하였다.
내가 듣기에 새끼를 밴 짐승의 배를 갈라 새끼까지 죽이면 기린이 교외에도 오지 않고,
연못의 물을 말려 물고기를 잡으면 교룡이 음양의 조화를 부리지 않으며,
둥지를 뒤엎어 알을 깨뜨리면 봉황이 날아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왜 그렇겠느냐?
군자는 그와 같은 종류의 상해를 피하였기 때문이다.
새나 짐승조차도 의롭지 않음에 피할 줄 아는데 하물며 나이겠느냐?”
乃還息乎陬鄉,作為陬操以哀之。
이에 陬鄕으로 돌아와 쉬며 ‘陬操’를 지어 두 사람을 애도하였다.
而反乎衛,入主蘧伯玉家。
얼마 뒤 衛로 돌아와 蘧伯玉의 집에 머물렀다.
▶ 從政: 정치에 참여하다.
▶ 刳胎: 새끼를 밴 짐승의 배를 가르다.
▶ 夭: 어리다. 새끼.
▶ 麒麟: 聖人이 이 세상에 나면 나타난다고 하는 상상의 動物을 말한다. 麒는 수컷이며 麟은 암컷이다.
▶ 蛟龍: 전설상의 뿔 없는 용이다. 교룡이 구름과 비를 얻으면 못 속에 숨어있지 않고 昇天하며, 교룡이 난폭하게 날뛰면 홍수가 일어난다고 한다.
▶ 還息乎陬鄉: 마침내 鄒로 돌아가 쉰 것이다.
▶ 陬操: 거문고의 악곡명.
▶ 反: 返과 같다.
이 내용은<논어주소>衛靈公에 기록되어 있다.
他日,靈公問兵陳。
훗날 위령공이 軍隊의 陣法을 물었다.
孔子曰:
「俎豆之事則嘗聞之,軍旅之事未之學也。」
공자가 대답하였다.
“제사 일은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만 軍隊 일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明日,與孔子語,見蜚鴈,仰視之,色不在孔子。
이튿날 위령공이 공자와 대화하다가, 날아가는 기러기가 나타나자 올려다보면서 공자를 쳐다보지 않았다.
孔子遂行,復如陳。
공자가 이에 그곳을 떠나 다시 陳으로 갔다.
▶ 兵陳:軍隊의 行伍를 陳列하는 방법.
▶ 俎豆之事: 제사의 일. 俎는 제사에 犧牲을 올려놓는 도마이며, 豆는 국물이 있는 음식을 담는 그릇이다.
▶ 軍旅之事: 군려는 軍士를 말하며, 병사가 12, 500명은 軍이라 하고, 500명이면 旅라 하였다.
▶ 軍旅之事未之學也: 공자가 나라를 다스림에는 예의를 근본으로 삼고 군사의 일은 말단으로 삼아야 하니, 근본이 확립되지 않았으면 말단의 일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 蜚: 飛와 같다.
▶ 色不在孔子: 위영공이 하늘에 나는 기러기 떼를 보고서 자신이 蒲땅을 공격하기에는 불길한 징조라고 여겨서 불쾌한 얼굴색을 하였으며, 공자는 이를 보고서 영공이 포 땅을 공격할 뜻이 없음을 알고서 衛를 떠난 것이다. 色은 얼굴빛. 안색.
▶ 如: 가다. 이르다.
이 내용은<춘추좌씨전> 魯哀公 2년(기원전493년)에 기록되어 있다.
夏,衛靈公卒,立孫輒,是為衛出公。
여름에 위영공이 죽고 손자 輒이 즉위하니 그가 衛出公이다.
六月,趙鞅內太子蒯聵于戚。
6월, 趙鞅이 태자 蒯聵를 戚읍으로 맞아들였다.
陽虎使太子絻,八人衰絰,偽自衛迎者,哭而入,遂居焉。
陽虎가 태자에게 상복을 입게 하고, 여덟 명에게 상복을 입혀 衛에서 태자를 맞이하러 온 사람으로 위장하여 곡을 하면서 들어와서 戚에 거주하게 하였다.
冬,蔡遷于州來。
겨울, 蔡가 州來로 도읍을 옮겼다.
是歲魯哀公三年,而孔子年六十矣。
이 해(기원전492년)가 노애공 3년이었고, 공자 나이 60이었다.
齊助衛圍戚,以衛太子蒯聵在故也。
齊가 衛를 도와 척읍을 포위했는데, 위태자 괴외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 出公: 衛出公. 춘추시대 衛의 군주로 이름은 輒이다. 衛靈公의 태자 蒯聵의 아들이며 위영공의 손자이다. 재위12년에 孔悝가 난을 일으켜 괴외를 세우자 魯로 달아났다. 출공이 외국에서 4년을 있는 동안 衛는 군주가 세 번 바뀌었고, 이에 齊에서 돌아와 군주의 자리에 다시 올랐다.
▶ 趙鞅: 趙簡子. 춘추시대 말기 晉 사람으로 趙孟으로도 불린다.
▶ 蒯聵: 衛莊公. 춘추시대 衛의 군주가 된다. 영공의 맏아들로 태어나 세자가 되었다. 衛12대 군주에 莊公이 이미 있으므로 ‘後莊公’이라고도 한다. 괴외가 세자 때 晉에 사신으로 가다가 宋을 지나던 도중 宋 사람들이 宋 공자 朝와 괴외의 계모인 南子의 사통을 노래하며 조롱하였다. 그 사실을 안 괴외는 부끄러워했고 격분하여 귀국한 뒤 곧 자객을 시켜 영공의 부인 南子를 죽이려 하다가 발각되어 실패하고 宋으로 달아났다가 晉으로 다시 달아났다.
▶ 戚: 戚邑으로 들여보낸 것은 衛가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니, 輒(: 출공)이 아버지가 들어옴을 막은 것이다.
▶ 内: 納과 같다. 받아들이다.
▶ 絻: 고대의 상복의 일종. 免과 같다. 상을 당한 사람이 갓을 벗고 두 발을 묶고서 베로 머리를 감싸는 것이다.
▶ 衰絰: 상복을 입다. 喪服의 하나로 衰는 상복의 가슴에 붙이는 길이 6寸 너비4촌의 삼베 조각이고, 絰은 머리에 두르는 首絰과 허리에 두르는 腰絰이다.
이 내용은<춘추좌씨전> 魯哀公 3년(기원전492)에 기록되어 있다.
夏,魯桓釐廟燔,南宮敬叔救火。
여름, 魯의 桓公과 釐公의 사당에 불이 났는데 南宮敬叔이 불을 껐다.
孔子在陳,聞之,曰:
「災必於桓釐廟乎?」
공자가 陳에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말하였다.
“불은 분명 환공과 희공의 사당이지 않겠는가?”
已而果然。
나중에 보니 과연 그랬다.
▶ 桓: 魯桓公. 魯의 15대 군주로, 이름은 允이며 惠公의 적자이다. 공자 公子 翬가 隱公을 살해하자 즉위하였다.
▶ 釐: 魯僖公. 釐는僖와 같다. 魯의 19대 군주로, 莊公의 아들이며 閔公의 庶兄이다. 민공이 피살되자 季友가 받들어 魯로 들어와 즉위시켰다.
▶ 南宮敬叔: 魯의 대부 孟僖子의 아들 仲孫閱.
▶ 災必於桓釐廟乎: 桓公과 僖公을 제사 지내는 代의 수가 다되었는데도 廟를 없애지 않았으니, 天災를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 것이다.
제사 지내는 代의 수는 군주는 五代祖까지이며, 平民은 高祖까지 제사 지내는 것이 통례였다.
이 내용은<춘추좌씨전>魯哀公 3기원전492년)에 기록되어 있다.
秋,季桓子病,輦而見魯城,喟然嘆曰:
「昔此國幾興矣,以吾獲罪於孔子,故不興也。」
가을, 季桓子가 병들자 가마를 타고 魯의 도성을 보고는 한숨을 쉬고 탄식하였다.
“옛날 이 나라가 크게 흥성할 뻔했는데, 내가 공자에게 죄를 지어 흥성하지 못하였다.
顧謂其嗣康子曰:
「我即死,若必相魯;
相魯,必召仲尼。」
그의 후계자 康子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내가 죽으면 네가 魯의 재상이 될 것이 분명하다.
魯의 재상이 되면 꼭 중니를 불러라.
後數日,桓子卒,康子代立。
며칠 뒤, 계환자가 죽고 강자가 대를 이었다.
▶ 輦: 가마를 타다.
▶ 康子: 季康子. 춘추시대 말기 魯 사람으로 季孫斯의 아들이고, 季孫肥로도 불린다. 아버지를 이어 大夫가 되어 국정을 전담하였다. 齊가 여러 차례 魯를 공격했는데, 冉有를 宰로 삼고 左師를 이끌고 나가 싸워 공을 세웠다. 나중에 孔子를 맞아 衛에서 魯로 돌아오게 했지만 등용하지는 못하였다.
已葬,欲召仲尼。
장례가 끝나자 공자를 부르려고 하였다.
公之魚曰:
「昔吾先君用之不終,終為諸侯笑。
今又用之,不能終,是再為諸侯笑。」
大夫 公之魚가 말하였다.
“과거 우리 선군께서 그를 기용하려다 못하는 바람에 끝내 제후의 비웃음을 샀습니다.
지금 다시 그를 기용하려 하시는데 그러다 안 되면 또 제후의 비웃음거리가 될 터입니다.”
康子曰:
「則誰召而可?」
계강자가 말하였다.
“그럼 누구를 부르면 되겠소?”
曰:
「必召冉求。」
공지어가 말하였다.
“반드시 冉求를 부르십시오.”
於是使使召冉求。
이에 사람을 보내 염구를 불렀다.
▶ 冉求: 冉有. 魯의 정치가이며 字는 子有이다. 공자의 제자로 자로와는 상반되는 성격으로 여겨진다. 화술에도 능란하였고 유능한 행정가요 장군이기도 하였다. 공자의 추천으로 魯의 실세였던 계씨가의 가신으로 등용되었다. 공자의 가르침보다는 계씨의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으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여 공자가 반대하는 중과세 정책을 실행하여 공자의 미움을 받았다.
<이 내용은<논어주소>公冶長에 기록되어 있다. >
冉求將行,孔子曰:
「魯人召求,非小用之,將大用之也。」
염구가 가려고 하자 공자가 말하였다.
“魯사람들이 염구를 부르니 작게 쓰려 함이 아니라 크게 쓸 모양이다.”
是日,孔子曰:
「歸乎歸乎!吾黨之小子狂簡,斐然成章,吾不知所以裁之。」
이날 공자가 말하였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내 고향의 젊은이들은 뜻은 크고 실천함이 소홀하고 거칠기는 하나, 文採가 있어서 우수한데, 내가 그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를 뿐이다.”
子貢知孔子思歸,送冉求,因誡曰
「即用,以孔子為招」云。
子貢이 공자가 귀향을 생각함을 알고, 염구를 보내면서 권하였다.
“기용되면 공자를 부르도록 하시오.”
▶ 狂簡: 뜻하는 바는 크나 실천함이 없이 소홀하고 거칢
▶ 斐然成章: 문장에는 문채가 있어 우수하다. 斐然은 文採가 있는 모양.
▶ 裁: 마름질하다. 여기서는 가르친다는 의미.
▶ 子貢: 端木賜. 춘추시대 衛의 유학자이자 관료로, 자는 子貢, 子贛이다. 흔히 자공이라고 불리며, 공자가 아끼는 제자로서 말솜씨와 정치적 수완이 뛰어나 魯·衛의 재상을 지냈다.
이 내용은<춘추좌씨전> 魯哀公 4년(기원전491년)에 기록되어 있다.
冉求既去,明年,孔子自陳遷于蔡。
염구가 떠난 후 이듬해 공자는 陳에서 蔡로 옮겼다.
蔡昭公將如吳,吳召之也。
채昭公이 吳로 가려 하는데 吳가 소공을 불렀다.
前昭公欺其臣遷州來,後將往,大夫懼復遷,公孫翩射殺昭公。
종전에 소공이 그의 신하를 속이고 州來로 도읍을 옮겼는데, 그 뒤 또 소공이 가려고 하자 대부들이 다시 천도할까 걱정하여, 公孫翩이 소공을 쏘아 죽였다.
楚侵蔡。
楚가 蔡를 침공하였다.
秋,齊景公卒。
이해 가을에 제景公이 죽었다.
▶ 蔡昭公: 춘추시대 제21대 蔡의 군주이다. 성은 姬, 휘는 申이다. 隱太子 友의 아들이며, 悼侯의 아우이다. 도후가 죽자 그 뒤를 이었다.
▶ 蔡昭公將如吳: 蔡昭侯가 吳에 가려 하자 대부들은 그가 또 나라를 옮길까 두려워하여 蔡 대부 公孫翩이 소후를 뒤쫓아가 昭侯에게 활을 쏘니, 소후는 민가로 들어가서 죽었다. <춘추좌씨전 애공4년(기원전491년)>
<史記世家권35. 管蔡世家>
이 내용은<논어주소>述而에 기록되어 있다.
明年,孔子自蔡如葉。
이듬해 공자는 蔡에서 葉으로 갔다.
葉公問政,孔子曰:
「政在來遠附邇。」
葉公이 정치에 관하여 묻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정치는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오게 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대게 하는 데 있습니다.
他日,葉公問孔子於子路,子路不對。
다른 날 섭공이 자로에게 공자에 관하여 물었으나 자로가 대답하지 않았다.
孔子聞之,曰:
「由,爾何不對曰
『其為人也,學道不倦,誨人不厭,發憤忘食,樂以忘憂,不知老之將至』云爾。」
공자가 그 말을 듣고 말하였다.
“由야, 너는 어째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그 사람됨이 배움에 게으르지 않으며, 남을 가르침에 싫증을 내지 않고, 분발하여 먹는 것도 잊고 도를 즐겨 근심을 잊고 늙어가는 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 葉: 邑名. 지금의 하남성 섭현 남쪽.
▶ 葉公: 沈諸梁. 자는 子高. 楚의 대부로 섭현을 다스렸다.
▶ 政: 나라를 다스리다.
▶ 邇: 가깝다
▶ 葉公問孔子於子路: 섭공이 子路에게 공자의 사람됨과 공자의 志行에 대해 물으니, 자로는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다.
이 내용은<논어주소>微子에 기록되어 있다.
去葉,反于蔡。
공자가 葉을 떠나 蔡로 돌아왔다.
長沮、桀溺耦而耕,孔子以為隱者,使子路問津焉。
長沮와 桀溺이 밭을 갈고 있었는데, 공자가 그들을 은자라고 여기고 자로를 시켜 나루터를 묻게 하였다.
長沮曰:
「彼執輿者為誰?」
장저가 물었다.
“고삐를 잡고 있는 저 사람은 누구인가?”
子路曰:
「為孔丘。」
자로가 대답하였다.
“공구라고 합니다.”
曰:
「是魯孔丘與?」
장저가 물었다.
“바로 魯의 공구 말인가?”
曰:
「然。」
자로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曰:
「是知津矣。」
장저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나루터를 알 터이다.”
▶ 長沮, 桀溺: 隱者.
▶ 耦而耕: 보습으로 밭을 갈다. 耜(사: 보습)는 너비가 다섯 치이니, 두 사람이 각기 보습을 가지고 서로 도와 밭을 가는 것을 耦라 한다.
▶ 津: 나루터.
▶ 執輿: 손으로 말고삐를 잡다.
▶ 是知津矣: 자주 사방을 두루 돌아다니니, 스스로 나루터를 알 것이라는 말이다.
桀溺謂子路曰:
「子為誰?」
걸익이 자로에게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曰:
「為仲由。」
자로가 대답하였다.
“중유라고 합니다.”
曰:
「子,孔丘之徒與?」
걸익이 물었다.
“그대는 공구의 무리인가?”
曰:
「然。」
자로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桀溺曰:
「悠悠者天下皆是也,而誰以易之?
且與其從辟人之士,豈若從辟世之士哉!」
걸익이 말하였다.
“큰물이 도도히 흐르듯 천하가 모두 그러한데, 누가 그것을 바꿀 수 있겠는가?
그대는 사람을 피해 다니는 사람을 따르느니, 오히려 세상을 피해 사는 사람을 좇음이 낫지 않겠는가!”
耰而不輟。
씨앗 덮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子路以告孔子,孔子憮然曰:
「鳥獸不可與同群。
天下有道,丘不與易也。」
자로가 이를 공자에게 알리니 공자는 멍하니 있다가 말하였다.
“새와 짐승과 함께 무리지어 살 수는 없다.
천하에 도가 있으니 나는 바꾸지 않겠다.
▶ 仲由: 字는 子路또는 季路이며 卞사람이다. 공자의 핵심 제자의 한 사람으로 공자의 천하유세 동안 고난을 끝까지 함께 하였다. 공자와 14년의 천하주유과 망명생활을 함께 했으며, 공자가 魯로 돌아갈 때 衛에 남아서 공씨의 가신이 되었으나 왕실 계승 분쟁에 휘말려 괴외의 난 때 전사하였다.
▶ 悠悠: 물이 천천히 흐르는 모양. <論語>에는 ‘滔滔’로 기록되어 있다. 滔滔는 물이 성대하게 흐르는 모양이니, 곧 세상의 혼란을 비유한 것이다.
▶ 辟人之士: 사람을 피해 다니는 사람. 孔子를 말한다.
▶ 辟世之士: 세상을 피해 사는 사람. 隱者를 말한다.
▶ 耰: 곰방메. 씨앗을 덮다.
▶ 憮然: 실망한 모양. 멍한 모양.
▶ 鳥獸不可與同群: 산림에 있는 鳥獸와는 함께 무리 지어 살 수 없다. 본래 천하 사람들과 함께 무리 지어 살아야 하니, 어찌 사람을 버리고 조수와 어울려 살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 丘不與易也: 천하에 道가 있으므로, 나는 나의 道를 저들의 道와 바꾸지 않겠다. 공자가 은거해 세상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을 말한 것이다.
이 내용은<논어주소>微子 7. 에 기록되어 있다.
他日,子路行,遇荷蓧丈人,曰:
「子見夫子乎?」
후일 자로가 길을 가다가 삼태기를 진 노인을 만나서 물었다.
“제 선생님을 보지 못했습니까?”
丈人曰:
「四體不勤,五穀不分,孰為夫子!」
노인이 말하였다.
“사지를 부지런히 놀리지 않고, 오곡도 분간 못하는데, 누구를 선생이라 하는가?”
植其杖而芸。
지팡이를 땅에 꽂아 놓고 잡초를 뽑았다.
子路以告,孔子曰:
「隱者也。」
자로가 그 일을 알리자 공자가 말하였다
“은자로다.”
復往,則亡。
다시 가보았으나 거기에 없었다.
▶ 荷: 메다. 짊어지다.
▶ 蓧: 삼태기. 흙을 담아 나르는 대그릇.
▶ 丈人: 노인.
▶ 植: 지팡이를 땅에 꽂다.
▶ 芸: 김매다. 잡풀을 뽑아내다.
▶ 亡: 외출하다.
이 내용은<공자가어>제20편에 기록되어 있다.
孔子遷于蔡三歲,吳伐陳。
공자가 蔡로 옮긴 지 3년, 吳가 陳을 공격하였다.
楚救陳,軍于城父。
楚가 陳을 구하려 城父에 軍士를 주둔시켰다.
聞孔子在陳蔡之間,楚使人聘孔子。
공자가 陳과 蔡 사이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楚가 사람을 보내 공자를 초빙하였다.
孔子將往拜禮,陳蔡大夫謀曰:
「孔子賢者,所刺譏皆中諸侯之疾。
今者久留陳蔡之間,諸大夫所設行皆非仲尼之意。
今楚,大國也,來聘孔子。
孔子用於楚,則陳蔡用事大夫危矣。」
공자가 가서 답례하려 하자 진·채의 대부들이 모의하며 말하였다.
“공자는 현자로 그의 풍간은 모두 제후들의 병폐를 지적하고 있다.
지금 진·채 사이에 오래 머물렀지만, 대부들의 정사가 중니의 뜻에 맞지 않았다.
지금 楚는 큰 나라로 공자를 초빙하려 한다.
공자가 楚에 기용되면 진·채의 정권을 잡은 대부들이 위태로울 터이다.
▶ 楚使人聘孔子: 楚昭王이 사신을 보내 공자를 초빙한 것이다
▶ 拜禮: 공자가 楚에 가서 소왕의 예우에 답례하려고 한 것이다.
▶ 剌: 꾸짖다.
▶ 譏: 풍자하다. 비방하다.
▶ 疾: 결함. 폐단.
▶ 設行: 정치를 행함.
▶ 用事: 권력을 장악하다.
<이 내용은 <논어주소>衛靈公에 기록되어 있다. >
於是乃相與發徒役圍孔子於野。
이에 서로 노역을 하는 자들을 보내 공자를 야외에서 포위하였다.
不得行,絕糧。
공자와 제자들은 가지 못하였고 양식까지 떨어졌다.
從者病,莫能興。
따르는 제자들은 기아에 지쳐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였다.
孔子講誦弦歌不衰。
그러나 공자는 강의하고 시가를 읊으며 거문고를 타는 일을 쇠퇴하지 않았다.
子路慍見曰:
「君子亦有窮乎?」
자로가 못마땅하여 공자를 뵙고 말하였다.
“군자도 곤궁할 때가 있습니까?”
孔子曰:
「君子固窮,小人窮斯濫矣。」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본래 곤궁하나, 소인은 궁하면 분수를 넘는다.
▶ 徒役: 노역을 하는 사람.
▶ 興: 일어서다.
▶ 不衰: 게을리 하지 않다.
▶ 小人窮斯濫矣: 군자도 본래 궁할 때가 있으나, 小人이 궁하면 분수를 넘어 잘못을 저지른다는 뜻이다. 濫은 넘치다.
이 내용은<논어주소>衛靈公 2. 에 기록되어 있다.
子貢色作。
자공의 안색이 바뀌었다.
孔子曰:
「賜,爾以予為多學而識之者與?」
공자가 말하였다.
“賜야,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曰:
「然。非與?」
자공이 대답하였다.
“예. 그렇지 않습니까?”
孔子曰:
「非也。
予一以貫之。」
공자가 말하였다.
“아니다. 나는 하나의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는다.
▶ 色作: 얼굴빛이 변하다.
▶ 賜: 端木賜. 子貢의 본명.
▶ 非與: 자공이 지금은 많이 배워서 그것을 기억하신 것이 아니냐고 말한 것이다.
▶ 予一以貫之: ‘나는 하나의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는다. 그러므로 많이 배우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하나의 이치를 미루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孔子知弟子有慍心,乃召子路而問曰:
「《詩》云『匪兕匪虎,率彼曠野』。
吾道非邪?
吾何為於此?」
공자는 제자들이 틀어져 있음을 알고 子路를 불러 물었다.
“<詩經>에 ‘외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데 저 광야를 헤매는구나.’라고 하였다.
나의 도가 잘못되었느냐?
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子路曰:
「意者吾未仁邪?
人之不我信也。
意者吾未知邪?
人之不我行也。」
자로가 대답하였다.
“생각건대 우리가 아직 仁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해서가 아닐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를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생각건대 우리가 지혜롭지 못해서가 아닐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와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孔子曰:
「有是乎!
由,譬使仁者而必信,安有伯夷、叔齊?
使知者而必行,安有王子比干?」
공자가 말하였다.
“그럴 리가!
由야, 만약 仁을 실천하는 자가 반드시 미더우면, 어째서 伯夷, 叔齊가 있었겠느냐?
만약 지혜로운 사람이 반드시 통한다면 어째서 왕자 比干이 있었겠느냐?”
▶ 匪兕匪虎,率彼曠野: 외뿔소도 아니고 범도 아닌데 저 광야를 따르게 한단 말인가. <詩經> <小雅·何草不黃>에서 인용한 것이다.
何草不黃은 周나라 때 부역 가는 자들의 괴로움을 노래한 것으로, 공자가 곤경에 빠져 편히 거처하지 못함을 탄식한 것이다.
何草不黃 : 어느 풀이 누렇게 시들지 않으랴?
▶ 兕: 외뿔소.
▶ 率: 따라가다.
▶ 意者: 생각건대. 혹시.
▶ 由: 仲由. 字는 子路. 공자의 핵심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공자의 천하유세 동안 고난을 끝까지 함께 하였다.
▶ 譬使: 만약.
▶ 伯夷, 叔齊: 孤竹國군주의 두 아들인 伯夷와 叔齊는 상나라가 망한 뒤에도 상나라에 대한 충성을 버릴 수 없으며, 고죽국 영주로 받는 녹봉 역시 받을 수 없다며 首陽山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다가 굶어서 죽었다.
▶ 比干: 殷나라 紂王의 숙부. 주왕의 음란함을 간한다고 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비간은 箕子와 微子와 아울러 은나라의 三仁으로 꼽힌다.
이 내용은 孔子家語 5卷제20在厄에 기록되어 있다.
子路出,子貢入見。
자로가 나가고 자공이 들어와 공자를 뵈었다.
孔子曰:
「賜,《詩》云『匪兕匪虎,率彼曠野』。
吾道非邪?
吾何為於此?」
공자가 물었다.
“賜야, <시경>에 ‘외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데 저 광야를 헤매는구나.’라고 하였다.
나의 도가 잘못되었느냐?
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子貢曰:
「夫子之道至大也,故天下莫能容夫子。
夫子蓋少貶焉?」
자공이 대답하였다.
“선생님의 도가 지극히 크기 때문에 천하 사람들이 선생님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어찌하여 그 도를 조금 낮추시지 않습니까?”
▶ 賜: 端木賜. 子貢의 본명.
▶ 道: 여기서는 학설 또는 주장.
▶ 蓋: 어찌.
▶ 少貶: 조금 낮추다.
▶ 匪兕匪虎,率彼曠野: 외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데 저 광야를 따르게 한단 말인가. <詩經> <小雅·何草不黃>에서 인용한 것이다.
何草不黃은
‘어느 풀이 누렇게 시들지 않으랴?’
라는 뜻으로 나라가 망해가면 누구나 고통을 당하게 된다며 周나라 때 부역 가는 자들의 고통과 원망을 노래한 것으로, 공자가 곤경에 빠져 편히 거처하지 못함을 탄식한 것이다.
“匪兕匪虎,率彼曠野. 哀我征夫朝夕不暇”
외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데, 저 광야를 헤매는 신세가 되었네. 가엾도다 원정 온 병사들이여, 아침저녁 韓이한 틈이 없네.
孔子曰:
「賜,良農能稼而不能為穡,良工能巧而不能為順。
君子能脩其道,綱而紀之,統而理之,而不能為容。
今爾不脩爾道而求為容。
賜,而志不遠矣!」
공자가 말하였다.
“賜야, 훌륭한 농부가 파종을 잘하더라도 수확하지 못할 수 있고, 훌륭한 장인이 뛰어난 솜씨를 가져도 사람들의 마음에 들지 못할 수도 있다.
군자가 자신의 도를 잘 닦아서 기강이 있고 통일된 이치가 있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너는 너의 도를 닦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구나.
사야, 네 뜻하는 바가 원대하지 못하구나!”
▶ 稼: 파종하다. 심다.
▶ 穡: 수확하다.
▶ 而志不遠矣: 생각하는 것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이 내용은 孔子家語 5卷제20편 在厄에 기록되어 있다.
子貢出,顏回入見。
자공이 나가고 안회가 공자를 뵈었다.
孔子曰:
「回,《詩》云『匪兕匪虎,率彼曠野』。
吾道非邪?吾何為於此?」
공자가 물었다.
“回야, <시경>에 ‘외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데 저 광야를 헤매는구나.’라고 하였다.
나의 도가 잘못되었느냐?
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 顏回: 공자의 제자로 字는 子淵이다. 자를 따서 顏淵이라고도 부른다. 빈곤하고 불우하였으나 개의치 않고 성내거나 잘못한 일이 없으므로, 공자 다음가는 성인으로 받들어졌다.
<史記列傳권67仲尼弟子列傳>
顏回曰:
「夫子之道至大,故天下莫能容。
雖然,夫子推而行之,不容何病,不容然後見君子!
夫道之不修也,是吾醜也。
夫道既已大修而不用,是有國者之醜也。
不容何病,不容然後見君子!」
안회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의 도가 지극히 크기 때문에 천하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비록 그렇지만, 선생님께서 그 도를 널리 알려 실행하신다면, 받아들여지지 못함이 무슨 걱정입니까, 받아들여지지 못한 다음에야 군자임이 드러납니다.!
무릇 도를 닦지 않음은 나의 못남이지만, 도를 크게 닦고도 쓰이지 못함은 나라를 가진 자의 못남입니다.
받아들여지지 못함이 무슨 걱정입니까, 받아들여지지 못한 다음에야 비로소 군자임이 드러납니다!”
孔子欣然而笑曰:
「有是哉顏氏之子!
使爾多財,吾為爾宰。」
공자는 흔연히 웃으면서 말하였다.
“그렇구나! 안씨 집안의 아들이여!
만약 네게 재물이 많다면 내가 너의 가신이 되겠다.”
▶ 病: 걱정하다.
▶ 醜: 치욕.
▶ 有國者: 군주를 말한다.
▶ 使: 만약.
於是使子貢至楚。
이리하여 자공을 楚에 보냈다.
楚昭王興師迎孔子,然後得免。
초소왕이 軍士를 동원하여 공자를 맞이하고서야 벗어날 수 있었다.
▶ 興師:軍士를 동원하다.
이 내용은<說苑>卷17에 기록되어 있다.
昭王將以書社地七百里封孔子。
楚昭王이 書社의 땅 7백 리를 공자에게 봉하려 하였다.
楚令尹子西曰:
「王之使使諸侯有如子貢者乎?」
楚의 영윤 子西가 말하였다.
“왕의 사신으로 제후에게 보낼 사람으로 子貢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曰:
「無有。」
왕이 대답하였다.
“없소.”
「王之輔相有如顏回者乎?」
“왕의 정사를 보좌할 재상으로 顏回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曰:
「無有。」
왕이 말하였다.
“없소.”
「王之將率有如子路者乎?」
“왕의 軍士를 이끌만한 사람으로 子路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曰:
「無有。」
「王之官尹有如宰予者乎?」
“왕의 관리로 宰予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曰:
「無有。」
왕이 말하였다.
“없소.”
▶ 書社: 周나라 때 25家를 단위로 社를 세워 社內의 田地와 戶口를 장부에 기록하는 일. 여기서는 호적과 등기를 하는 지방을 말한다.
▶ 子西: 춘추시대 楚平王의 庶子로 公子申이며 子西는 그의 字이다. 令尹 子常이 왕으로 추대하려 하였으나 허락하지 않고, 昭王을 세우고 令尹이 되었다.
▶ 輔相: 정사를 보좌하다.
▶ 官尹: 관청의 관리.
「且楚之祖封於周,號為子男五十里。
今孔丘述三五之法,明周召之業,王若用之,則楚安得世世堂堂方數千里乎?
夫文王在豐,武王在鎬,百里之君卒王天下。
今孔丘得據土壤,賢弟子為佐,非楚之福也。」
자서가 말하였다.
“또 楚의 선조께서 주나라에서 봉해짐에, 자작과 남작으로 땅은 50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공구가 삼왕과 오제의 치국의 도를 말하고, 주공과 소공의 업적을 밝힌다 하여 왕께서 만일 그를 기용한다면 楚가 어찌 대대손손 수천 리 땅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문왕은 豊에 계셨고, 무왕은 鎬에 계셨는데, 불과 백 리의 땅의 군주로 끝내 천하를 통치하셨습니다.
지금 공구가 땅을 차지하고 유능한 제자들이 보좌하면 楚에게는 복이 아닙니다.
昭王乃止。
소왕이 비로소 중지하였다.
其秋,楚昭王卒于城父。
그해 가을, 초소왕이 城父에서 죽었다.
▶ 楚之祖封於周: 주나라 초기에는 제후에게 공작·후작·백작·자작·남작의 다섯 등급의 작위를 주었으며, 자작과 남작에게는 50리의 땅에 봉하였다.
▶ 三五之法: 三皇 五帝가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
▶ 周召: 周는 周公 旦. 召는 召公 奭.
▶ 世世堂堂: 世世代代. 대대손손.
▶ 土壤: 토지. 封地.
이 내용은<論語>微子제5장에 기록되어 있다.
楚狂接輿歌而過孔子曰:
「鳳兮!
鳳兮!
何德之衰?
往者不可諫兮,來者猶可追也!
已而,已而!今之從政者殆而!」
楚의 광인 接與가 공자 앞을 지나며 노래하였다.
“鳳이여!
鳳이여!
어찌 德이 쇠하였는가?
지나간 것은 돌이킬 수 없거니와 오는 것은 그래도 쫓을 수 없다!
그만둘지어다, 그만둘지어다! 오늘날 政事에 종사함 위험하다!”
孔子下,欲與之言。
孔子가 수레에서 내리시어 더불어 말하려고 하였다.
趨而去,弗得與之言。
빨리 걸어 가버리니 함께 말하지 못하였다.
▶ 接與: 춘추시대 때 楚의 隱士. 성은 陸이고 이름은 通이다. 接輿는 그의 字이다. 일부러 미친 척하여 세상을 피해 다녔으며 자기가 직접 농사를 지어먹는 것을 해결하였다. 楚의 미치광이 접여 “楚狂接輿”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論語·微子제5장>
<[장자/논어]장자와 논어의 미치광이 접여 [楚狂接輿]>
▶ 鳳兮鳳兮: 봉새여 봉새여. 내용상으로는 봉새로 孔子를 비유한 것인데, 聞一多는 鳳과 孔의 발음이 유사하다는 점을 들어 공자를 은유적으로 嘲笑한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 何德之衰: 공자가 열국을 돌아다니며 임용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 諫: 돌이키다.
▶ 已而: 됐다!그만둬라!
▶ 殆: 위험하다.
於是孔子自楚反乎衛。
이에 공자는 楚에서 衛로 돌아왔다.
是歲也,孔子年六十三,而魯哀公六年也。
이해(기원전489년) 공자의 나이는 63세였고, 노애공 6년이었다.
其明年,吳與魯會繒,徵百牢。
그 이듬해(기원전488년), 吳가 魯와 繒읍에서 회맹하며 百牢의 향연을 요구하였다.
太宰嚭召季康子。
吳의 태재 백비가 季康子를 불렀다.
康子使子貢往,然後得已。
계강자가 자공을 보내니 일이 마무리되었다.
▶ 百牢: 牛‧羊‧豕가 1牢이니, 소‧양‧돼지를 각각 1백 마리씩 잡아서 베푸는 향연이다. 周禮에는 연회용 牢는 천자가 12뢰, 上公은 9회, 候伯은 7뢰, 子爵과 男爵은 5뢰로 하도록 되어있다. 오왕 부차는 子爵이었으므로 5뢰에 해당되나 100뢰의 연회를 베풀라는 것은 지나친 요구였다.
▶ 伯嚭: 춘추시대 楚 사람. 吳로 망명하여 太宰가 된 뒤 越王 句踐의 뇌물을 받고 和議를 받아들이게 하여, 越가 吳를 멸망시키는 빌미를 제공하였으나 월왕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史記권41. 越王句踐世家>
▶ 康子使子貢往: 오왕 부차가 繒邑에 이르러 盧哀公을 불러 百牢의 향연을 요구하였다. 魯의 季康子가 子貢을 사신으로 보내 周나라의 예법을 들어 태재 백비를 설득하여 겨우 그만두게 하였다.
<史記世家권31. 吳太伯世家>
이 내용은<논어>子路제3장, 제7장 및<논어>述而제14장에 기록되어 있다.
孔子曰:
「魯衛之政,兄弟也。」
공자가 말하였다.
“魯와 衛의 정치 정황은 형제와 같다.”
是時,衛君輒父不得立,在外,諸侯數以為讓。
이때 衛出公 輒의 아버지 蒯聩가 즉위하지 못하고 외국으로 망명하고 있던 차라 제후들이 여러 차례 衛를 꾸짖었다.
而孔子弟子多仕於衛,衛君欲得孔子為政。
그런데 공자의 제자 중 상당수가 衛에서 벼슬을 하고 있어 衛君은 공자를 정치에 참여시키고 싶었다.
子路曰:
「衛君待子而為政,子將奚先?」
자로가 물었다.
“衛 군주가 선생님을 기다려 정치를 하려 하니,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孔子曰:
「必也正名乎!」
공자가 대답하였다.
“반드시 명분을 바로잡겠다!”
子路曰:
「有是哉,子之迂也!
何其正也?」
자로가 말하였다.
“그렇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께서는 사정을 너무 모르십니다!
어떻게 명분을 바로 잡을 수 있겠습니까?”
▶ 魯衛之政: 魯는 周公의 後裔요, 衛는 康叔의 후예여서 본래 형제의 나라였는데, 이 당시 쇠하고 혼란하여 정사도 서로 비슷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가 탄식한 것이다.
▶ 出公: 衛出公. 춘추시대 衛의 군주로 이름은 輒이다. 衛靈公의 태자 蒯聵의 아들이며 위영공의 손자이다
▶ 蒯聵: 衛莊公. 이름은 蒯聵이고 위영공의 맏아들이다. 영공의 맏아들로 태어나 세자가 되었다. 괴외가 세자 때 晉에 사신으로 가다가 宋을 지나던 도중 宋 사람들이 宋의 공자 朝와 괴외의 계모인 南子의 사통을 노래하며 조롱하였다. 그 사실을 안 괴외는 부끄러워했고 격분하여 귀국한 뒤 곧 자객을 시켜 영공의 부인 南子를 죽이려 하다가 발각되어 실패하고 宋으로 달아났다가 晉으로 다시 달아났다.
▶ 讓: 나무라다.
▶ 子: 孔子.
▶ 奚: 무엇. 어찌.
▶ 必也正名乎: 名分을 바로잡다. 이때 出公은 자기의 아버지를 아버지로 여기지 않고, 자기의 할아버지를 아버지로 삼아, 名分과 實狀이 문란하였다. 그러므로 孔子가 명분을 바로잡기를 우선으로 삼았다.
衛군주는 出公輒이다. 靈公이 世子인 괴외를 내쫓았는데, 靈公이 죽자, 나라사람들이 괴외의 아들인 輒을 세웠다. 이때 秦에서는 괴외를 본국에 들여보내니, 輒은 그를 막았다. 때마침 공자가 衛에 있었으므로, 衛 사람들은 괴외가 아버지에게 죄를 얻었고 괴외의 아들 輒은 嫡孫이므로 王位에 오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 迂: 遠과 같다. 공자가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뜻.
孔子曰:
「野哉由也!
夫名不正則言不順,言不順則事不成,事不成則禮樂不興,禮樂不興則刑罰不中,刑罰不中則民無所錯手足矣。
夫君子為之必可名,言之必可行。
君子於其言,無所苟而已矣。」
공자가 말하였다.
“사리를 모르는구나, 유야!
명분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 사리에 맞지 않고, 말이 사리에 맞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일어나지 않고, 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적절하지 못하게 된다.
형벌이 적절하지 못하면 백성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무릇 군자가 행동함은 반드시 명분과 부합하여야 하고, 말을 함에 반드시 시행할 수 있어야 한다.
군자는 그 말에 구차함이 없을 뿐이다.
▶ 野: 사리를 모름. 鄙俗함을 이른다. 경솔하게 함부로 대답함을 책망하신 것이다
▶ 中: 부합하다.
▶ 無所錯手足矣: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어진다. 錯는 두다.
▶ 可: 부합하다.
▶ 苟: 구차하다.
▶ 夫君子為之必可名: 논어 子路 제3장에는
“故君子名之, 必可言也, 言之 必可行也, 君子於其言, 無所苟而已矣. 그러므로 군자는 명분이 서면 반드시 말을 할 수 있고, 말을 하면 반드시 그대로 시행할 수 있으니, 군자는 말을 함에 있어서 구차할 것이 없을 뿐이니라.”
라고 하였다. 즉 명분과 실상은 서로 필요하니, 한 가지 일이 구차하면 그 나머지도 모두가 구차하게 된다고 한 것이다. <논어 子路 제3장>
其明年,冉有為季氏將師,與齊戰於郎,克之。
그 이듬해(기원전484년) 冉有가 季氏의 軍士가 되어 齊와 郎에서 싸워 물리쳤다.
季康子曰:
「子之於軍旅,學之乎?
性之乎?」
계강자가 물었다.
“그대는 軍士 작전을 배웠소?
아니면 타고난 것이오?”
冉有曰:
「學之於孔子。」
염유가 대답하였다.
“공자에게서 배웠습니다.”
季康子曰:
「孔子何如人哉?」
계강자가 물었다.
“공자는 어떤 사람이오?”
對曰:
「用之有名;播之百姓,質諸鬼神而無憾。
求之至於此道,雖累千社,夫子不利也。」
염유가 대답하였다.
“그분을 기용하면 명분이 서고, 백성에게 알리고 귀신들에게 대질하여도 섭섭함이 없을 터입니다.
그분께 이 길을 걷게 하여, 비록 2만5천 가구의 봉읍에 해당하는 공을 세운다 해도 선생님께서는 그 이익을 취하지 않으실 터입니다.
▶ 冉有: 冉求. 魯의 정치가이며 字는 子有이다. 공자의 제자로 자로와는 상반되는 성격으로 여겨진다. 화술에도 능란하였고 유능한 행정가요 장군이기도 하였다. 공자의 추천으로 魯의 실세였던 계씨가의 가신으로 등용되었다.
▶ 季康子: 魯의 大夫季孫氏로 이름은 肥이다.
▶ 軍旅:軍. 여기서는軍의 작전을 말한다.
▶ 性: 천성적.
▶ 播: 전파하다. 공포하다.
▶ 質: 對質하다.
▶ 累: 합하여~에 이르다.
▶ 社: 25가구를 1社라 한다.
<이 내용은<공자가어>제41편에 기록되어 있다. >
康子曰:
「我欲召之,可乎?」
계강자가 말하였다.
“내가 그 분을 부르고 싶은데 가능하겠소?”
對曰:
「欲召之,則毋以小人固之,則可矣。」
염유가 대답하였다.
“부르고자 하신다면 소인배들이 그분을 막지 못하게 하면 될 터입니다.”
而衛孔文子將攻太叔,問策於仲尼。
한편 衛의 孔文子가 太叔을 공격하려고 계책을 중니에게 물었다.
仲尼辭不知,退而命載而行,曰:
「鳥能擇木,木豈能擇鳥乎!」
중니는 모른다며 사양하고 물러나 수레를 준비시켜 떠나면서 말하였다.
“새가 나무를 고를 수는 있지만 나무가 어찌 새를 고를 수 있겠는가!”
文子固止。
공문자가 한사코 붙잡았다.
會季康子逐公華、公賓、公林,以幣迎孔子,孔子歸魯。
이때 계강자가 公華·公賓·公林을 내쫓고 예물을 갖추어 공자를 맞이하자 공자가 魯로 돌아왔다.
孔子之去魯凡十四歲而反乎魯。
공자는 魯를 떠난 지 도합14년 만에 魯로 돌아왔다.
▶ 固: 가두다. 막다.
▶ 孔文子: 衛의 대부 孔圉. 孔文子가 太叔疾로 하여금 아내를 내쫓고 자신의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당초에 太叔疾이 宋 子朝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그 동생을 총애하였다. 자조가 달아나자 공문자가 태숙질로 하여금 아내를 내쫓고 자신의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그러자 太叔疾이 처음 아내의 동생을 유혹하여 집을 지어주고 공문자의 딸과 함께 두 명의 아내처럼 대우하였다. 공문자가 화가 나서 태숙질을 공격하려고 하였다.
<史記世家권37. 衛康叔世家>
▶ 鳥能擇木,木豈能擇鳥乎: 새는 자신을 비유하고, 나무는 가려는 나라를 비유한 것이다.
▶ 幣: 예물.
▶ 凡: 모두. 도합.
이 내용은<논어>爲政 19장과 顔淵제18장에 기록되어 있다.
魯哀公問政,對曰:
「政在選臣。」
노애공이 정치에 관해서 묻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정치는 신하를 선발함에 있습니다.”
季康子問政,曰:
「舉直錯諸枉,則枉者直。」
계강자가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정직한 사람을 뽑아 굽은 사람위에 두면 굽은 사람이 정직해집니다.”
康子患盜,孔子曰:
「苟子之不欲,雖賞之不竊。」
계강자가 도둑을 근심하자 공자가 말하였다.
“만약 그대가 물욕을 버리면, 상을 주더라도 훔치지 않을 터이오.”
然魯終不能用孔子,孔子亦不求仕。
그러나 魯는 끝내 공자를 기용하지 않았고, 공자 역시 벼슬을 구걸하지 않았다.
▶ 舉直錯諸枉: 논어 안연 제18장에서는
“哀公이 ‘어떻게 하면 백성이 복종합니까?’
하고 묻자, 孔子가 대답하였다.
“정직한 사람을 뽑아 바르지 못한 사람 위에 두면 백성들이 복종하며, 바르지 못한 사람을 뽑아 정직한 사람위에 두면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습니다.’”
라고 하였다. <논어 爲政제19장>
▶ 錯: 두다.
▶ 枉: 굽다. 바르지 못하다.
▶ 苟: 만약.
이 내용은 <논어 八佾제9장>과 <논어주소>위정23장에 기록되어 있다.
孔子之時,周室微而禮樂廢,詩書缺。
공자 시대에는 周왕실이 쇠약해져 예악은 무너지고 <詩>와 <書>가 온전치 못하였다.
追跡三代之禮,序書傳,上紀唐虞之際,下至秦繆,編次其事。
공자는 하·은·주 3대의 예의·제도를 추적하여 <書傳: 상서>의 차례를 정리하였으니, 위로는 요·순의 때로부터 아래로는 秦繆公까지 그 일들을 순서대로 편집하였다.
曰:
「夏禮吾能言之,杞不足徵也。
殷禮吾能言之,宋不足徵也。
足,則吾能徵之矣。」
공자가 말하였다.
“夏나라의 예의제도는 내가 말할 수 있지만, 그 후손인 杞나라는 증거가 부족하였다.
은나라의 예의제도는 내가 말할 수 있지만, 그 후손인 宋은 증거가 부족하였다.
문헌이 충분하다면 내가 증명할 수 있다.”
觀殷夏所損益,曰:
「後雖百世可知也,以一文一質。
周監二代,郁郁乎文哉。
吾從周。」
은나라와 하나라의 예의제도의 증감을 살피고는 말하였다.
“훗날 비록 백세가 지난다 해도 알 수 있으니, 은나라는 문채를 중시하고 하나라는 질박함을 중시하였다.
주나라는 하나라와 은나라 2대를 거울로 삼아서 그 文采가 풍부하고 다채로웠다.
나는 주나라를 좇겠다.”
故《書傳》、《禮記》自孔氏。
이렇게 해서 <書傳: 상서>과 <禮記>가 공자로부터 나왔다.
▶ 微: 쇠미하다.
▶ 廢: 무너지다.
▶ 三代: 夏, 殷, 周.
▶ 書傳: <尙書>의 傳.
▶ 唐虞: 陶唐氏 堯와 有虞氏 舜을 말한다.
▶ 秦繆: 진목공. 繆은 穆과 통용된다. 秦穆公. 秦의 14대 군주로 이름은 任好이다.
▶ 杞: 西周 초에 분봉된 제후국으로 하나라의 후손이다.
▶ 徵: 증명하다.
▶ 損: 감소하다.
▶ 文: 典籍. 문채.
▶ 質: 질박하다.
▶ 周監二代: 하나라와 은나라의 예악제도를 거울로 삼다. 監은 鑑과 통용된다. 거울로 삼다. 참고로 하다.
▶ 郁郁: 풍부하고 다채롭다.
▶ 從: 좇아서 행하다.
이 내용은<논어>八佾 제23장에 기록되어 있다.
孔子語魯大師:
「樂其可知也。
始作翕如,縱之純如,皦如,繹如也,以成。」
공자가 魯의 태사에게 말하였다.
“음악은 알아야 한다.
처음 시작할 때 오음을 합하고 풀어놓을 때에는 조화를 이루어 분명하며 연속되어서 한 장을 끝마쳐야 한다.”
「吾自衛反魯,然後樂正,雅頌各得其所。」
또 말하였다.
“내가 衛에서 魯로 돌아온 후 음악을 바로잡아 <雅>와 <頌>이 각기 마땅한 자리를 찾았다.”
▶ 大師: 大는 太와 같다. 악관의 이름. 당시에 음악이 폐지되어 결함이 있었기 때문에 孔子께서 그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 翕如: 합하다. 五音이 합하는 것을 말한다. 如는 어조사.
▶ 從: 풀어놓다.
▶ 純如: 調和하다.
▶ 皦如: 가락을 분명하게 하다.
▶ 繹如: 서로 이어져 끊이지 않다.
▶ 始作翕如,縱之純如,皦如,繹如也: 연주를 전개하되, 조화시키고 분명하게 하고 계속한다는 것은 음악의 연주가 翕如로 시작하여 純如‧皦如‧繹如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五音과 六律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음악이라 말할 수 없다. 翕如는 그 합함을 말한다. 五音이 합하면 淸濁과 高下가 마치 五味가 서로 도운 뒤에 조화되는 것과 같기 때문에 純如라고 말한 것이다. 합하여 조화를 이루면 서로 차례를 빼앗음이 없고자 하므로 皦如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어찌 宮은 宮만 하고, 商은 商만 할 뿐이겠는가. 서로 반대되지 않고 서로 연결됨이 마치 구슬을 꿴 것과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연속하여 음악을 끝낸다.”
라고 말씀한 것이다. <논어 八佾제23장>
▶ 雅: <시경>의 일부분. <大雅>와 <小雅>.
▶ 頌: <시경>의 일부분. <周頌>, <商頌>, <魯頌>을 이른다.
古者詩三千餘篇,及至孔子,去其重,取可施於禮義,上采契后稷,中述殷周之盛,至幽厲之缺,始於衽席,故曰
「關雎之亂以為風始,鹿鳴為小雅始,文王為大雅始,清廟為頌始」。
옛날에는 詩가 3천여 편이었으나 공자에 이르러 그 중복된 것을 없애고, 예의를 실행할 만한 것을 가렸는데, 위로는 契과 后稷의 시를 채택하고, 중간은 은나라와 주나라의 번성을 기술하고, 幽王과 厲王의 결함이 남녀의 애정에서 시작됨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말하였다.
“<關雎>의 亂을 風의 시작으로 삼고, <鹿鳴>을 小雅의 시작으로 삼고, <文王>을 大雅의 시작으로 삼고, <淸廟>를 頌의 시작으로 삼았다.”
三百五篇孔子皆弦歌之,以求合韶武雅頌之音。
305편을 공자가 모두 거문고를 타고 노래하여 ‘韶’, ‘武’, ‘雅’, ‘頌’의 音에 맞게 하였다.
禮樂自此可得而述,以備王道,成六藝。
예악이 이로부터 서술할 수 있게 되고, 왕도가 갖추어져 六藝가 완성되었다.
▶ 幽: 周幽王.
▶ 厲: 周厲王.
▶ 衽席: 본래 잠자리를 말하나 여기서는 남녀의 애정을 말한다.
▶ 關雎: 周南 國風으로 <詩經>의 첫 편이다. 孔子는 <詩經> <關雎篇>은 즐거우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슬프면서도 和를 해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논어 팔일 제20장>
▶ 風: 國風.
▶ 鹿鳴: 小雅의 제1편.
▶ 文王: 大雅의 제1편.
▶ 清廟: 頌의 제1편.
▶ 三百五篇: 시경의 총 편수.
▶ 弦歌: 거문고에 맞추어 노래 부르다.
▶ 韶: 舜임금의 음악.
▶ 武: 周武王의 음악.
▶ 六藝: 六經을 말하며, <詩經>, <書經>, <禮記>, <易經>, <樂經>, <春秋>등 여섯 종의 유가의 고대 경전을 가리킨다.
孔子晚而喜易,序彖、繫、象、說卦、文言。
공자가 말년에 <周易>를 좋아하여 彖傳, 繫辭傳, 象傳, 說卦傳, 文言傳을 정리하였다.
讀易,韋編三絕。
<주역>을 읽음에, 책을 엮은 가죽 끈이 여러 번 끊어졌다.
曰:
「假我數年,若是,我於易則彬彬矣。」
공자는 말하였다.
“만약 내게 몇 년의 수명을 빌려주어 이와 같이 하면 내가 <周易>을 제대로 통달할 수 있을 터이다.”
▶ 易: <易經>. <周易>이라고도 한다. 공자가 지었다고 전하는 十翼은 易의 뜻을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彖傳: 상·하 21괘의 종합적 해설, 象傳: 상·하 264괘의 해설, 繫辭傳: 상·하2 종합적인 철학적 해석, 십익의 핵심사상, 文言傳: 乾坤2괘의 윤리적 해석, 說卦傳: 괘의 능력과 형상 등의 개괄적 설명, 序卦傳: 64괘 배열순서의 설명, 雜卦傳: 서로 대립하는 괘의 설명의 7종 10편으로 이루어졌다.
▶ 三絶: 여러 차례 끊어지다. 三은 확정적인 숫자가 아니라 많다는 뜻이다.
▶ 假: 빌리다.
▶ 彬彬: 내용과 외관이 함께 갖추어져 있어 盛한 모양.
孔子以詩書禮樂教,弟子蓋三千焉,身通六藝者七十有二人。
공자는 <詩經>·<書經>·<禮記>·<樂經>을 가르쳤는데, 제자가 대략 3천명에 六藝에 통달한 자가 72명이었다.
如顏濁鄒之徒,頗受業者甚眾。
顔濁鄒의 무리처럼 수업만 받은 사람은 매우 많았다.
▶ 六藝: 六經을 말하며, <詩經>·<書經>·<禮記>·<易經>·<樂經>·<春秋> 여섯 종의 유가의 고대 경전을 가리킨다.
▶ 蓋: 대략.
▶ 顔濁鄒: 춘추시대 衛 大夫이다. 子路의 妻兄이다.
이 내용은 논어 子罕제1장, 제4장에 기록되어 있다.
孔子以四教:文,行,忠,信。
공자는 文·行·忠·信 네 가지를 가르쳤다.
絕四:毋意,毋必,毋固,毋我。
공자는 네 가지의 마음이 없으셨으니,
사사로운 뜻이 없으셨으며,
期必하는 마음이 없으셨으며,
집착하는 마음이 없으셨으며,
이기심이 없으셨다.
所慎:齊,戰,疾。
공자가 조심한 것은 齋戒·전쟁·질병이었다.
子罕言利與命與仁。
공자는 利와 命과 仁에 대해서 말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不憤不啟,舉一隅不以三隅反,則弗復也。
분발하지 않으면 계발해주지 않았고, 한 귀퉁이를 들었는데 세 귀퉁이를 짐작하지 못하면 반복하지 않았다.
▶ 文·行·忠·信: 文은 학문, 行은 실천, 忠은 忠恕: 진실하고 너그럽다, 信은 信義를 말한다.
▶ 絶四: 네 가지 일을 끊어버리다.
▶ 毋意: 道를 法度로 삼아 마음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논어 자한 제4장>
▶ 毋必: 등용하면 도를 행하고 버리면 은퇴했기 때문에 마음대로 이루기를 기약함이 없었다.
▶ 毋固: 可함도 없고 不可함도 없었기 때문에 고집해 행함이 없었다.
▶ 毋我: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 所慎: 공자께서 조심하신 것은 齊戒와 戰爭과 疾病이었다. <논어 술이 제12장>
▶ 子罕言利與命與仁: 利는 事宜에 부합함이고, 命은 하늘의 命이고, 仁은 行實이 성대함이다. 보통 사람에 미칠 수 있는 자가 적었기 때문에 드물게 말씀하신 것이다. <논어 자한 제1장>
▶ 不憤不啟: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마음속으로 통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으며, 애태워하지 않으면 말해주지 않되, 한 귀퉁이를 들어주었는데 이것을 가지고 남은 세 귀퉁이를 反證하지 못하면 다시 더 일러주지 않는다.<논어 술이 제8장>
공자의 예절: 이 내용은<논어>鄕黨제1장에 기록되어 있다.
其於鄉黨,恂恂似不能言者。
공자는 자신의 마을에서는 공손하고 겸손하여 마치 말하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其於宗廟朝廷,辯辯言,唯謹爾。
종묘나 조정에서는 말솜씨가 뛰어났으나 다만 삼가할 뿐이었다.
朝,與上大夫言,誾誾如也;
與下大夫言,侃侃如也。
조정에서 상대부들과 말할 때는 정직하고 상냥했으며, 하대부들과 말할 때는 화락하였다.
▶ 鄕黨: 마을. 고향.
▶ 恂恂: 공손하고 겸손한 모양.
▶ 辯辯: 말솜씨가 뛰어나다.
▶ 唯謹: 태도가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다.
▶ 誾誾: 공손한 태도로 논쟁하는 모양. 화기애애하다.
▶ 侃侃: 화락한 모양. 강직한 모양.
이 내용은<논어>鄕黨제4장, 鄕黨제3장, 鄕黨제13장에 기록되어 있다.
入公門,鞠躬如也;趨進,翼如也。
궁문을 들어갈 때는 몸을 굽힌 듯하였고, 빠른 걸음으로 나아갈 때는 날개를 펼친 듯하였다.
君召使儐,色勃如也。
군주가 불러 손님을 접대하게 하면 얼굴빛을 바꾸었다.
君命召,不俟駕行矣。
군주가 命하여 부르시면 수레에 멍에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걸어갔다.
▶ 公門: 宮門.
▶ 鞠躬: 공경하는 모습. 허리를 굽혀 절하다.
※궁문을 들어가실 때에 몸을 굽히시어 마치 몸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처럼 하셨다. 계단을 다 내려와서 趨蹌해 돌아오실 때는 두 소맷자락이 마치 새가 날개를 편 것 같았다. <논어주소 鄕黨 3>
▶ 翼: 날개를 펼치다.
▶ 儐: 賓客을 영접하게 하다.
▶ 色勃: 얼굴빛을 바꾸다. 얼굴빛을 정중하게 하다.
▶ 俟: 기다리다.
▶ 不俟駕行矣: 군주의 명에 급히 달려가기 위해 걸어 나가면 마부가 수레에 말을 메워 뒤따라갔다. 駕는 멍에.
이 내용은<논어>鄕黨제8장, 鄕黨제9장, 述而제9장에 기록되어 있다.
魚餒,肉敗,割不正,不食。
생선이 상한 것, 고기가 부패한 것, 반듯하게 잘라 놓지 않은 것은 먹지 않았다.
席不正,不坐。
자리가 반듯하지 않으면 앉지 않았다.
食於有喪者之側,未嘗飽也。
상을 당한 사람 옆에서 음식을 먹을 때는 배불리 먹은 적이 없었다.
▶ 餒: 생선이 상하다.
▶ 敗: 부패하다.
이 내용은 논어 述而제9장, 子罕제9장에 기록되어 있다.
是日哭,則不歌。
공자는 곡을 한 날에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見齊衰、瞽者,雖童子必變。
공자는 상복을 입었거나 맹인을 보면, 비록 어린아이라도 표정을 바꾸었다.
▶ 齊衰(자최, 재최): 조금 굵은 생베로 지어, 아랫단을 좁게 접어서 꿰맨 喪服으로 五服의 하나이다.
▶ 瞽者: 맹인.
이 내용은<논어>述而제21장, 述而제3장에 기록되어 있다.
「三人行,必得我師。」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틀림없이 나의 스승이 있다.”
「德之不脩,學之不講,聞義不能徙,不善不能改,是吾憂也。」
“덕을 닦지 않고, 학문을 익히지 않고, 의로움을 듣고 뜻을 옮겨 따르지 못하고, 좋지 않은 것을 고치지 못함이 나의 근심거리이다.”
使人歌,善,則使復之,然后和之。
노래를 시켜 잘 하면 다시 부르게 한 다음 함께 불렀다.
▶ 三人行: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틀림없이 나의 스승이 있다.
<논어>述而제21장에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세 사람이 길을 감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 그 중에 善한 자를 가려서 따르고, 善하지 못한 자를 가려서 자신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 (子曰:‘三人行,必有我師焉。擇其善者而從之,其不善者而改之.’
라고 기록되어 있다.
▶ 德之不脩: 덕은 修行에 달려있고, 학문은 반드시 익혀야 하며, 의로운 일을 들으면 마땅히 뜻을 옮겨 따라야 하며, 不善이 있으면 마땅히 뉘우쳐서 고쳐야 한다. 공자께서 항상 이 네 가지를 근심으로 삼아 자신에게 혹시라도 덕이 닦이지 않고 학문이 익혀지지 않고 의로운 일을 듣고도 옮겨가지 못하고 불선을 고치지 못하는 일이 있을까 두려워하신 것이다.
이 내용은<논어>述而제20장에 기록되어 있다.
子不語:怪,力,亂,神。
공자는 괴이함·폭력·반란·귀신은 말하지 않았다.
▶ 怪: 괴이함.
▶ 力: 폭력.
▶ 亂: 반란.
▶ 神: 귀신.
※공자께서 교육하실 때 無益한 일을 말씀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 내용은<논어>公冶長제13장, 子罕제10장에 기록되어 있다.
子貢曰:
「夫子之文章,可得聞也。
夫子言天道與性命,弗可得聞也已。」
자공이 말하였다.
“선생님의 文章은 알아들을 수 있다.
선생님께서 天道나 性命을 말씀하심은 알아들을 수 없다.
顏淵喟然嘆曰:
「仰之彌高,鑽之彌堅。
瞻之在前,忽焉在後。
夫子循循然善誘人,博我以文,約我以禮,欲罷不能。
既竭我才,如有所立,卓爾。
雖欲從之,蔑由也已。」
顔淵이 크게 탄식하였다.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단단하구나.
앞에 계신가 하면 홀연히 뒤에 있도다.
선생님께서는 순서대로 차근차근 사람을 잘 인도하시어, 文章으로 나의 식견을 넓혀주시고, 예의로써 나의 언행을 단속하시니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다.
이미 나의 재주를 다하였더니 우뚝 선 것이 있는 듯하였다.
비록 그를 따르고자 하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줄 모르겠다.
▶ 文章: 章은 밝음이니, 文彩와 形質이 밝게 드러나서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서 따라 배울 수 있다는 말이다.
<논어>公冶長 제13장에
“子貢이 말하였다. ‘夫子의 文章은 들을 수 있으나, 夫子께서 性과 天道를 말씀하시는 것은 들을 수 없다.(子貢曰:「夫子之文章,可得而聞也;夫子之言性與天道,不可得而聞也. 」”
라고 하였다.
즉, 夫子의 文章은 날마다 밖으로 드러나 진실로 배우는 자들이 함께 들을 수 있으나, 性과 天道에 있어서는 말씀을 적게 하시어 배우는 자들이 들을 수 없었다. 이는 聖人의 門下에서는 가르침이 등급을 뛰어넘지 않으므로, 子貢은 이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들들 수 있어 그 훌륭함에 감탄한 것이다.
▶ 天道與性命: 性은 사람이 하늘에게 받아 태어난 것이고, 天道는 우주의 원기가 두루 미쳐 만물이 나날이 새로워지는 도이니, 그 이치가 심오하고 정미하다. 그러므로 들을 수 없었다는 말이다.
▶ 彌: 더욱.
▶ 仰之彌高: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다는 것은 道에 미칠 수 없는 것이요,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다는 것은 道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요, 道가 앞에 있다가 홀연히 뒤에 있다는 것은 황홀하여 어떻게 형상할 수 없는 것이니, 이는 顔淵이 夫子의 道가 무궁무진하고 또 방향과 형체가 없음을 깊이 알고 감탄한 것이다.
▶ 鑽: 뚫다.
▶ 循循: 차례가 있는 모양.
▶ 誘: 나아가게 함. 이끌어 나아가게 하다.
▶ 約: 약속하다. 규범하다.
▶ 卓爾: 卓然. 우뚝 서 있다.
▶ 蔑: 없다.
<이 내용은 <논어>子罕제2장과 자한 제6장에 기록되어 있다. >
達巷黨人[童子]曰:
「大哉孔子,博學而無所成名。」
達巷이란 마을의 사람이 말하였다.
“위대하도다, 공자여, 박학하지만 명성을 이루지 않았다.”
子聞之曰:
「我何執?
執御乎?
執射乎?
我執御矣。」
공자가 이를 듣고 말하였다.
“내가 무엇을 전문으로 할까?
마부가 될까?
射手가 될까?
나는 마부가 되겠다.”
牢曰:
「子云『不試,故藝』。」
자뢰가 말하였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등용되지 못했기에 여러 가지 재주를 익혔다.’라고 하셨다.”
▶ 達巷黨人: 달항마을 사람. 黨은 고을. 500家를 1黨이라 한다. 達巷黨사람이 공자께서는 道藝를 널리 배워서 하나의 技藝만으로 명성을 이루었을 뿐이 아님을 찬미한 것이다.
▶ 執: 주관하다.
▶ 御: 남의 御者가 되는 것이니 六藝 가운데 가장 낮은 것이다.
▶ 牢: 孔子의 제자로 姓은 琴이요, 字는 子開이며, 또 다른 字는 子張이다. 세상에 등용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재주를 익혀 통달했음을 말한 것이다.
▶ 試: 세상에 등용되다.
▶ 藝: 技藝.
이 내용은 孔子家語제16편에 기록되어 있다.
魯哀公十四年春,狩大野。
노애공14년(기원전481년)봄, 애공이 大野에서 사냥하였다.
叔孫氏車子鉏商獲獸,以為不祥。
叔孫氏의 마부 鉏商이 짐승을 잡았는데 상서롭지 못하다고 여겼다.
仲尼視之,曰:
「麟也。」
取之。
중니가 그것을 보고는
“기린이다.”
라고 하자 숙손씨가 이를 가져오게 하였다.
曰:
「河不出圖,雒不出書,吾已矣夫!」
공자가 말하였다.
“황하에서 八卦圖가 나오지 않고, 낙수에서 書版이 나오지 않는 걸 보니 나는 그만두어야겠다!”
▶ 魯哀公: 이름은 將이며, 정공의 아들이다. 노정공이 죽자 그 뒤를 이었다. 애공14년(기원전481년), 齊의 田常이 자신의 군주 簡公을 徐州에서 시해하였다. 공자가 田常을 공격하자고 청했으나 애공이 듣지 않았다.
▶ 叔孫氏: 魯대부.
▶ 車子: 마부. 이름이 鉏商이다. 子가 姓이라는 견해도 있다. <공가자어>에는 “車士曰子鉏商”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 麟也: 聖人이 이 세상에 나면 나타난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을 말한다. 지금 기린이 나오지 않을 때인데 나와 도리어 사람에게 해를 당한 것이다. 공자는 周나라의 도가 흥성하지 않음을 가슴 아파하고, 아름다운 祥瑞가 應驗이 없음에 상심한 것이다.
※獲麟解(획린해: 기린을 잡은 일을 해명한 글
▶ 河不出圖: 河圖는 伏羲氏 때 황하에서 龍馬가 등에 지고 나왔다는 팔괘의 근원이 되는 그림으로 제왕이 받으면 길조로 여겼다. 河는 黃河, 圖는 전설상의 八卦圖. <논어주소 子罕 9>
▶ 雒不出書: 雒은 洛과 같다. 洛水. 洛書는 夏나라 禹王이 홍수를 다스렸을 때 洛水에서 나온 神龜의 등에 쓰여 있었다는 글이다. <周易> <繫辭上傳>에
“河水에서 도판이 나오고 洛水에서 글이 나왔는데 성인이 이것을 본받았다[河出圖 洛出書 聖人則之].라고 하였다.
▶ 吾已矣夫!: ’내 그만두어야겠다!’라고 한 것은 明君을 볼 수 없음을 상심한 것이다.
이 내용은<논어>先進제8장과 憲問제35장에 기록되어 있다.
顏淵死,孔子曰:
「天喪予!」
안연이 죽자 공자가 말하였다.
“하늘이 나를 죽이셨다!”
及西狩見麟,曰:
「吾道窮矣!」
서쪽 사냥에서 기린을 보고 말하였다.
“나의 道는 끝이다!”
喟然嘆曰:
「莫知我夫!」
크게 탄식하며 말하였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구나!”
子貢曰:
「何為莫知子?」
자공이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을 알아주는 이가 없다고 하십니까?”
子曰:
「不怨天,不尤人,下學而上達,知我者其天乎!」
공자가 말하였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사람을 탓하지 않고, 아래로부터 배워서 위로 통달했으니, 나를 알아주는 이는 아마 하늘일 터이다!”
▶ 顏淵死: 顔回. 공자의 제자로 자는 子淵이다. 자를 따서 顏淵이라고도 부른다. 학덕이 높고 재질이 뛰어나 공자의 가장 촉망받는 제자였다.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 天喪予: 하늘이 나를 죽이셨다. 공자가 안연의 죽음에 마음이 아프고 애처로워 하늘이 나를 죽인 것 같다고 말한 것이다. <논어 先進제8장>
▶ 西狩: 서쪽 사냥. 大野가 魯의 서쪽에 있기 때문에 ‘西狩’라 한 것이다.
▶ 吾道窮矣: 내 도가 끝났다. 기린은 聖人이 이 세상에 나올 때 나타난다는 상상의 동물인데, 기린이 나와서 도리어 사람에게 해를 당했으니 때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고, 공자도 때를 만나지 못하여, 정치하지 못했기 때문이므로 ‘내 道가 끝났다.’라고 말한 것이다.
▶ 尤: 원망하다. 힐책하다.
이 내용은<논어>微子 8. 에 기록되어 있다.
「不降其志,不辱其身,伯夷、叔齊乎!」
“자신의 뜻을 낮추지 않고, 자신의 몸을 욕되게 하지 않은 이는 백이·숙제이리라!”
謂
「柳下惠、少連降志辱身矣」。
사람들은 평하였다.
“柳下惠·少連은 뜻을 낮추고 몸을 욕되게 하였다.”
謂
「虞仲、夷逸隱居放言,行中清,廢中權」。
사람들은 평하였다.
“虞仲·夷逸은 숨어 지내면서 세상일을 말하지 않고, 행동은 깨끗했으니, 세속을 떠난 것이 적절하였다.”
「我則異於是,無可無不可。」
“나는 이들과 다르니, 가함도 없고 불가함도 없노라.
▶ 不降其志: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용렬한 군주의 猪井에 들어가지 않았음을 말한다. 降志는 뜻을 낮추다, 뜻을 굽히다.
※春秋時代의 일곱 賢人. 伯夷·叔齊·柳下惠·少連·虞仲·夷逸·朱張.
▶ 柳下惠: 展季. 展禽을 말한다. 字가 季이다. 춘추시대 魯의 大夫이며, 도덕이 고상한 것으로 유명 한 사람이다. 능란한 변설과 밝은 예절로 이름이 높아 공자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또한 直道를 지켜 임금을 섬기고 진정한 和를 이룬 사람이라고 해서 맹자에 의해 伊尹·伯夷·孔子와 함께4대 성인으로 추앙되었다.
▶ 少連: 東夷의 자손으로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居喪을 잘했다고 하여 공자가 칭송한 바 있다.
▶ 虞仲, 夷逸: 춘추시대의 은자. 虞仲은 泰伯의 동생인 仲雍의 증손자이다.
▶ 放言: 放은 置. 세상일을 말하지 않다.
▶ 行中清: 몸가짐이 청결하다. 行은 행위. 中清은 청결해야 한다는 조건에 부합하다.
▶ 廢中權: 세속을 떠난 것이 시의에 적절한 것. 廢棄가 權道에 맞았다.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자신을 폐하여 환난을 면함이 權道에 맞은 것이다.
▶ 無可無不可: 이렇게 하면 된다고 고집하는 것도 없고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고집함이 없다. 나아가기를 기필하지도 않으며 물러나기를 기필하지도 않고서 오직 義가 있는 곳을 따랐다.
子曰:
「弗乎弗乎,
君子病沒世而名不稱焉。
吾道不行矣,吾何以自見於後世哉?」
공자가 말하였다.
“안 되겠다, 안 되겠다!
군자는 죽어서 이름이 후세에 칭송되지 않음을 걱정한다.
나의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나는 무엇으로 후세에 자신을 나타내겠는가?”
乃因史記作春秋,上至隱公,下訖哀公十四年,十二公。
이에 史書를 근거해서 <春秋>를 지으니, 위로는 魯隱公에 이르고 아래로는 魯哀公 14년에서 마치니 열두 명의 군주이다.
據魯,親周,故殷,運之三代。
魯의 역사를 근거로 삼고, 주나라 왕실의 정통성을 받들고, 은나라를 귀감으로 삼고, 夏·商·周 삼대의 법률을 계승하였다.
約其文辭而指博。
그 문사는 간결하지만 그 취지는 넓었다.
▶ 病: 걱정하다.
▶ 没世: 죽다.
▶ 稱: 칭찬하다. 지지하다.
▶ 史記: 당시의 史書.
▶ 隱公: 隱公원년. 기원전722년.
▶ 訖: 모두. 까지.
▶ 十二公: 魯의 12군주. 隱公·桓公·壯公·閔公·僖公·文公·宣公·成公·襄公·昭公·定公·哀公. <春秋>는 魯隱公 원년(기원전722년)으로부터 魯哀公14년(기원전481년)까지 魯군주 12명에 걸쳐 242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魯를 중심으로 기록하고 주나라 왕실을 정통으로 받들었으며, 夏·商·周三代의 도를 논하였다.
▶ 親周: 주나라 왕실의 정통성을 받들다.
▶ 故殷: 은나라의 옛 제도를 참작하다.
▶ 約: 간략하다.
▶ 指: 旨와 같다. 내용.
故吳楚之君自稱王,而春秋貶之曰「子」;
踐土之會實召周天子,而春秋諱之曰
「天王狩於河陽」:推此類以繩當世。
그래서 吳·楚의 군주가 稱王하자, <춘추>는 그들을 낮추어 ‘子’라고 하였고,
踐土의 會盟에서 실제로는 周天子를 불렀지만 <춘추>는 그것을 피하여
“천자가 河陽에 사냥을 나갔다.”
라고 기록하였다.
이런 유형을 확장하여 당세의 뜻을 바로잡았다.
貶損之義,後有王者舉而開之。
낮추어 평가한 大義는 후대에 왕들이 이를 제시하여 깨우치게 함이었다.
春秋之義行,則天下亂臣賊子懼焉。
<춘추>의 대의가 실행되면 천하의 亂臣賊子들이 두려워할 터이다.
▶ 貶之曰子: 吳와 楚는 주나라에서 모두 子爵으로 봉해졌으므로 주나라를 존숭하는 뜻에서 <子>로 기록한 것이다. 貶은 폄하하다. 낮추다.
▶ 踐土之會: 노희공28년(기원전632년) 晉文公이 겨울에 온읍에서 제후들과 회맹하고 이들을 이끌고 周王에게 조회하려 하였다. 역량이 미치지 못하고 제후 중 배반자가 있을까 두려워 사람을 周양왕에게 보내 河陽으로 사냥을 나오게 하고, 임신일에 제후들을 이끌고 踐土로 가서 周양왕에게 조회하였다. 孔子가 역사 기록을 읽다가 문공에 이르러
“제후가 왕을 부를 수 없다. 양왕이 河陽에서 사냥하였다.”라고 하고 <春秋>도 이렇게 기록하였다. <史記世家권39. 晉世家>
▶ 貶損: 고의로 낮게 평가하다.
▶ 繩: 의미를 바로잡다. 판단하다.
孔子在位聽訟,文辭有可與人共者,弗獨有也。
공자가 벼슬자리에 있으면서 소송을 심의함에, 문서를 다른 사람과 의논할 때는 혼자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至於為春秋,筆則筆,削則削,子夏之徒不能贊一辭。
그러나 <춘추>에서는 기록할 것은 반드시 기록하고 삭제할 것은 반드시 삭제하여 子夏와 같은 제자들조차 한마디도 거들 수 없었다.
弟子受春秋,孔子曰:
「後世知丘者以春秋,而罪丘者亦以春秋。」
제자들이 <춘추>의 뜻을 전수받은 후 공자가 말하였다.
“훗날 나를 알아줌은 <춘추> 때문일 터이고, 나를 책망함도 <춘추> 때문일 터이다.
▶ 聽訟: 소송을 심의하다.
▶ 贊: 찬조하다. 돕다.
▶ 罪: 책망하다. 꾸짖다.
明歲,子路死於衛。
이듬해(기원전480년), 子路가 衛에서 죽었다.
孔子病,子貢請見。
공자가 병이 나자 자공이 뵙기를 청하였다.
孔子方負杖逍遙於門,曰:
「賜,汝來何其晚也?」
공자가 마침 지팡이를 짚고 문 앞을 거닐고 있다가 말하였다.
“賜야, 너는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
孔子因歎,歌曰:
「太山壞乎!
梁柱摧乎!
哲人萎乎!」
공자가 탄식하더니 노래를 불렀다.
“태산이 무너지는가!
기둥이 부러지는가!
哲人이 죽는가!”
因以涕下。
그리고는 눈물을 흘렸다.
▶ 子路: 仲由. 공자의 핵심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공자와 14년의 천하주유과 망명생활을 함께 했으며, 공자가 魯로 돌아갈 때 衛에 남아서 공씨의 가신이 되었으나, 衛 종실 계승의 분쟁에 휘말려 괴외의 난 때 전사하였다.
▶ 方: 마침.
▶ 太山: 泰山.
▶ 哲人: 공자 자신을 말한다.
▶ 萎: 시들다. 죽다.
謂子貢曰:
「天下無道久矣,莫能宗予。
夏人殯於東階,周人於西階,殷人兩柱閒。
昨暮予夢坐奠兩柱之閒,予始殷人也。」
공자가 자공에게 말하였다.
“천하에 도가 없어진 지 오래되어 아무도 나의 주장을 존중하지 않는구나.
하나라 사람들은 동쪽 계단에다 빈소를 차렸고, 주나라 사람들은 서쪽 계단에다 모셨으며, 은나라 사람들은 두 기둥 사이에다 모셨다.
어젯밤에 나는 두 기둥 사이에 놓여져 제사 받는 꿈을 꾸었으며, 내 始祖는 은나라 사람이니라.”
後七日卒。
7일 뒤에 공자가 세상을 떠났다.
孔子年七十三,以魯哀公十六年四月己丑卒。
공자 나이는 73세였고 노애공16년(기원전479년) 4월 기축일에 세상을 떠났다.
▶ 殯: 빈소. 영구를 안치하다.
▶ 宗予: 나의 주장을 우러러 받들다. 予는 나.
▶ 坐奠: 앉아서 제사를 받다. 奠은 제사지내다.
이 내용은 孔子家語제40편에 기록되어 있다.
哀公誄之曰:
「旻天不弔,不愸遺一老,俾屏余一人以在位,煢煢余在疚。
嗚呼哀哉!尼父,毋自律!」
노애공이 애도사를 지어 말하였다.
“하늘이 불쌍히 여기지 않으셔서 노인 하나 남겨놓기를 원치 않으셔서, 나 한 사람만 군주의 자리에 버려두니, 외롭게 남아 괴로워하도다.
아, 슬프다! 尼父여, 내가 법으로 삼을 사람이 없게 되었구나!”
▶ 誄: 애도하다. 읽다. 誄文
▶ 旻天: 하늘.
▶ 吊: 불쌍히 여기다.
▶ 愸: 慭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원하다.
▶ 遺: 남겨두다.
▶ 一老: 노인 하나. 공자를 말한다.
▶ 俾: ~하게 하다.
▶ 屏: 내버려두다.
▶ 煢煢(경경): 외롭고 걱정스러움. 의지할 곳이 없이 외로운 모양.
▶ 疚: 괴로워하다.
▶ 尼父: 공자의 존칭.
▶ 毋自律: 내가 법으로 삼을 사람이 없게 되었다. 毋는 無와 통용된다.
子貢曰:
「君其不沒於魯乎!
夫子之言曰:
『禮失則昬,名失則愆。
失志為昬,失所為愆。』
生不能用,死而誄之,非禮也。
稱『余一人』,非名也。」
자공이 말하였다.
“우리 군주는 魯에서 죽지 못할 터이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를 잃으면 이치에 어둡게 되고, 명분을 잃으면 잘못을 범한다.
뜻을 잃으면 이치에 어둡게 되고, 마땅한 바를 잃으면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라고 하셨다.
살아 계실 때 기용하지 못하고, 죽은 후에 애도사를 지음은 예가 아니다.
‘余一人’이라고 칭함은 명분에 맞는 말이 아니다.
▶ 君其不沒於魯乎: 哀公 27년에 애공이 越을 이용하여 삼환을 공격하려고 하였다. 8월에는 애공이 魯의 대부 陘氏에게 갔다. 삼환이 애공을 공격하자 애공은 衛로 달아났다가, 鄒나라로 간 다음 마침내 越로 갔다. 國人이 애공을 맞아들여 복귀시키려 했지만 애공은 有山氏의 집에서 죽었다. <史記世家권33. 魯周公世家>
▶ 愆: 과실. 잘못.
▶ 予一人: 予一人,或作余一人,是商周天子常用的自称,其中予也写作余,意为我,一人是君主自谦、谦让的意思。천자만이 ‘予一人(余一人)’이라 칭하며 제후는 칭할 수 없는데 노애공이 ‘余一人’이라고 하였으니 명분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孔子葬魯城北泗上,弟子皆服三年。
공자는 魯 도성의 북쪽 泗水 가에 묻혔으며 제자들이 모두 3년간 복상하였다.
三年心喪畢,相訣而去,則哭,各復盡哀;或復留。
3년 동안 애도를 마치고 서로 헤어져서 가면서 통곡하고, 각자 다시 애도를 다하였고, 다시 남은 제자도 있었다.
唯子貢廬於冢上,凡六年,然後去。
오직 자공이 무덤가에 여막을 짓고 6년을 지킨 다음 떠났다.
弟子及魯人往從冢而家者百有餘室,因命曰孔里。
제자들과 魯사람들이 무덤 근처로 와서 집을 짓고 산 사람이 100여 집이 되니, 그래서 그곳을 ‘孔里’라고 명하였다.
▶ 服: 복상하다. 상복을 입다.
▶ 心喪: 상복을 입지 않고 상제와 같은 마음으로 근신함.
▶ 訣: 헤어지다.
▶ 百有余室: 백여 개의 집.
魯世世相傳以歲時奉祠孔子冢,而諸儒亦講禮鄉飲大射於孔子冢。
魯는 대대손손 서로 전하여 계절마다 공자 무덤에 제사드렸고, 유생들도 와서 공자의 무덤에서 講禮와 鄕飮과 大射를 행하였다.
孔子冢大一頃。
공자의 무덤은 크기가 1頃이었다.
故所居堂弟子內,後世因廟藏孔子衣冠琴車書,至于漢二百餘年不絕。
공자가 살던 집과 제자들이 거처하던 방은 후세에 사당이 되어, 공자의 의관, 악기, 수레, 책을 소장했는데 漢나라에 이르기까지 200여 년 폐기하지 않았다.
高皇帝過魯,以太牢祠焉。
高皇帝가 魯에 들러 太牢로 제사를 지냈다.
諸侯卿相至,常先謁然後從政。
제후, 경대부, 재상이 부임하면 항상 먼저 제사를 지낸 연후에 정무에 임하였다.
▶ 講禮: 강론하고 연습하는 예식.
▶ 鄉飲: 향학에서 3년 동안 학업을 닦은 사람 중에 우수한 사람을 천거할 때 그를 송별하기 위해 고을에 덕이 있고 나이 많은 선비들을 모시고 전별연을 베풀며 행하는 예법.
▶ 大射: 大射禮는 군주가 先聖에게 祭享하고 나서 활을 쏘는 禮로 大射는 郊祭와 종묘에 제사 지내기 전에 제사에 참여할 대상자를 뽑을 때 행한다.
▶ 一頃: 논밭의 면적 단위. 一頃은 百畝, 즉 2만여 평.
▶ 故所居堂: 공자가 원래 거주하던 안채. 전에 살던 집.
▶ 弟子内: 제자들이 거주하던 방. 内는 內室.
▶ 絶: 폐기하다.
▶ 高皇帝: 漢高祖劉邦.
▶ 太牢: 제사 때 소·양·돼지를 제물로 바치는 것.
▶ 謁: 제사를 지내다.
孔子生鯉,字伯魚。
공자는 鯉를 낳았는데, 字는 伯魚이다.
伯魚年五十,先孔子死。
백어는 나이 50에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伯魚生伋,字子思,年六十二。
백어는 伋을 낳았는데, 字를 子思라 했으며 62세까지 살았다.
嘗困於宋。
일찍이 宋에서 곤경에 처한 적이 있다.
子思作中庸。
자사가 <中庸>을 지었다.
▶ 孔子生鯉: 공자는 19세에 宋 井官氏에게 장가들어 伯魚를 낳았는데 魯昭公이 공자에게 잉어를 하사하였다. 공자는 선물을 영광스럽게 여겼으므로 이로 인하여 아들의 이름을 鯉라고 하고 자를 伯魚라고 하였다. 백어는 50세에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공자가어 제39편>
▶ 子思: 성은 孔, 이름은 伋, 자사는 字이다. 공자의 손자이며, 4서의 하나인 <중용>의 저자로 전해진다. 평생을 고향인 魯에 살면서 曾子에게서 학문을 배워 儒學의 연구와 전승에 힘썼다.
▶ 中庸: 사서오경에 속하는 경전 중 하나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지녀야 할 자세와 태도를 제시하고 있다. 본래 예기의 31편이다.
子思生白,字子上,年四十七。
子思는 白을 낳았는데, 字를 子上이라 했고 47세까지 살았다.
子上生求,字子家,年四十五。
자상은 求를 낳았는데, 자를 子家라 했고 45세까지 살았다.
子家生箕,字子京,年四十六。
자가는 箕를 낳았는데, 자를 子京이라 했고 46세까지 살았다.
子京生穿,字子高,年五十一。
자경은 穿을 낳았는데, 자를 子高라 했고 51세까지 살았다.
子高生子慎,年五十七,嘗為衛相。
자고는 子愼을 낳았는데 57세까지 살았으며, 일찍이 衛의 相을 지냈다.
子慎生鮒,年五十七,為陳王涉博士,死於陳下。
子慎은 鮒를 낳았는데 57세까지 살았고, 陳王 涉의 博士를 지냈으며 陳에서 죽었다.
鮒弟子襄,年五十七。
鮒의 동생 子襄은 57세까지 살았다.
嘗為孝惠皇帝博士,遷為長沙太守。
일찍이 孝惠皇帝의 박사가 되었다가 長沙의 태수로 승진되었다.
長九尺六寸。
키가 9척6촌이었다.
▶ 陳王涉: 陳勝. 陳涉. 陽城사람으로 字는 涉이다. 秦 말기의 농민 출신으로 戍卒로 가던 중 봉기하여 농민 반란을 주도하였다. 이세 황제 원년(기원전209년) ‘진승·오광의 난’을 일으켜 ‘張楚’를 건국하였다. <史記권48. 陳涉世家>
▶ 孝惠皇帝: 漢 孝惠皇帝 劉盈. 전한의 2대 황제로 高帝의 차남이자 적장자로, 어머니는 고황후 高皇后 呂氏이다
▶ 遷: 벼슬이 높아지다.
子襄生忠,年五十七。
자양은 忠을 낳았는데, 57세까지 살았다.
忠生武,武生延年及安國。
충은 武를 낳았고, 무는 延年과 安國을 낳았다.
安國為今皇帝博士,至臨淮太守,蚤卒。
안국은 지금의 황제(:한무제)의 박사가 되었다가, 臨淮태수까지 이르렀으나 일찍 죽었다.
安國生卬,卬生驩。
안국은 卬을 낳았고, 앙은 驩을 낳았다.
▶ 今皇帝: 한 漢 武帝劉徹.
▶ 蚤: 早와 통용된다.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詩》有之:
「高山仰止,景行行止。」
“<시경>에
‘높은 산은 우러러보고 큰길을 따라 간다.’
라는 말이 있다.
雖不能至,然心鄉往之。
내 비록 그 경지에 이르지는 못할지라도 마음은 항상 그 경지를 동경하고 있다.
余讀孔氏書,想見其為人。
내가 공자의 저술을 읽어보고 그의 사람됨을 짐작하여 알 수 있었다.
適魯,觀仲尼廟堂車服禮器,諸生以時習禮其家,余祗回留之不能去云。
魯에 가서 중니의 묘당, 수레, 의복, 예기를 보았고, 유생들이 때때로 그 집에서 예를 익히는 것도 보았고, 나는 공경심에서 그곳을 배회하며 떠날 수 없었다.
天下君王至於賢人眾矣,當時則榮,沒則已焉。
천하에는 君王에서 賢人까지 사람이 많았지만, 당시에는 영화를 누렸으나 죽고 나면 그만이었다.
孔子布衣,傳十餘世,學者宗之。
공자는 평민이었지만 10여 대가 지나도록 학자들이 그를 떠받들고 있다.
自天子王侯,中國言六藝者折中於夫子,可謂至聖矣!
천자와 王侯로부터 중원에서 六藝를 말하는 사람은 공자의 말씀을 절충하였으니 지극한 성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 高山仰止,景行行止: 높은 산을 우러러 보고 큰 길을 따라 간다. <詩經·小雅·車舝>
이 구절은 높은 산과 큰길로 모든 일이 법도대로 됨을 말한 것이다.
제목은 ‘수레의 굴대 빗장’이다. 이 시는 新婚의 즐거움을 노래한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詩의 仁을 좋아함이 이와 같도다. 道를 향하여 가다가 中道에 廢하더라도 몸이 늙은 것을 잊고서 年數의 부족함도 알지 못하고 힘써서 날마다 부지런히 하여 죽은 후에야 그치는구나.”
▶ 高山仰止: 덕망이 높은 사람을 우러러본다. 仰止 : 우러러 사모하다.
▶ 景行: 큰길. 大道를 말한다.
▶ 祗: 공경하다.
▶ 布衣: 평민.
▶ 折中: 절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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