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世家

世家49-外戚世家(외척세가)

耽古樓主 2023. 7. 6.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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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篇은 30世家 중 19번째 편으로 漢나라의 外戚에 대한 기록이다. 外戚은 군주의 모친과 后妃의 친족을 말하며, 漢高祖로부터 漢武帝에 이르기까지 韓 후비의 친족에 대한 기록이므로 外戚世家라고 칭한 것이다. 주요 인물로는 呂后, 薄太后, 竇太后, 王太后, 衛皇后, 陳皇后및 尹夫人과 邢夫人, 鉤弋夫人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사마천은 태자공 자서에서
“成皋臺에서 薄氏가 高祖의 총애를 처음 받았다. 竇氏는 뜻을 꺾고 마지못해 代로 갔으며 이에 두씨 일족이 귀한 몸이 되었다. 栗姬는 존귀한 자리만 믿고 교만하게 굴다가 그 틈을 탄 王氏가 뜻을 얻었다. 陳皇后가 너무 교만하게 굴어 끝내 衛子夫가 귀한 몸이 되었다. 衛子夫의 이 같은 덕을 칭찬하는 뜻에서 제19편 ‘外戚世家’를 지었다.”
라고 하였다.

世家49-外戚世家(외척세가)

 

自古受命帝王及繼體守文之君,非獨內德茂也,蓋亦有外戚之助焉。
예로부터 천명을 받고 개국한 제왕과 왕위를 계승하고 법도를 준수한 군주는안으로 덕성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대체로 밖으로 외척의 도움도 있었다.

夏之興也以涂山,而桀之放也以末喜。
나라가 일어남은 塗山氏 때문이고왕이 쫓겨남은 末喜 때문이다.

殷之興也以有娀,紂之殺也嬖妲己。
나라가 흥기함은 有娀氏 때문이고紂王이 살해당함은 妲己 때문이다.

周之興也以姜原及大任,而幽王之禽也淫於褒姒。
나라가 일어남은 姜原과 大任 때문이며幽王이 사로잡힘은 褒姒와의 음란함 때문이다.

▶ 受命帝王: 천명을 받은 제왕. 즉 개국한 군주를 말한다.
▶ 繼體: 왕위를 계승하다.
▶ 守文: 법도를 준수하다.
▶ 茂: 훌륭하다.
▶ 蓋: 모두.
▶ 外戚: 황제의 모친과 后妃의 친족.
▶ 涂山: 고대 부족명으로 禹임금은 塗山氏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启를 낳았으며 启가 하나라를 건립하였다.
▶ 放: 추방하다.
▶ 夏桀: 夏나라의 마지막 왕으로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暴君이다. 發의 아들이며, 이름을 癸, 또는 履癸라고도 한다. 엄청난 장사로 알려졌던 그는53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말희를 총애하여 갖가지 포악한 짓을 저지르고 酒池肉林의 향락을 일삼다가 湯이 이끄는 商부족에 의해 나라가 멸망하고, 그 자신은 쫓겨나 굶어 죽었다.
▶ 末喜: 하나라의 마지막 왕인 걸왕의 왕비. 妺喜, 末嬉로도 적는다.
▶ 有娀: 상고시대의 씨족명. 殷나라의 시조 契의 어머니는 簡狄이라 하였으며, 有娀氏부족의 딸로 帝嚳의 두 번째 부인이다. 殷나라의 契은 은나라의 시조이며, 고대 전설상의 帝王高辛氏帝嚳의 아들로 舜임금 때 司寇벼슬을 하였다. 禹임금을 도와 물을 다스려 공을 세우고, 은나라에 봉해져서 은나라의 始祖가 되었다.
▶ 嬖: 총애하다.
▶ 紂: 商: 은왕조의 마지막 왕. 본명은 帝辛또는 受이고, 紂는 무도한 군주에게 주어진 시호이다. 주왕은 辯調을 잘하고 힘도 세며 미녀와 음악을 즐겼다고 한다. 궁전과 정원을 호화롭게 장식하고 酒池肉林속에서 寵妃妲己에게 매혹되어 충신들의 諫言을 듣지 않고 간사한 무리들을 가까이 하여 周무왕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 妲己: 은나라 紂王의 寵妃. 주왕이 有巢氏를 공격하려 하자 유소씨가 달기라는 여자를 바쳤는데 미색이 뛰어나 그녀의 말이라면 다 들어주었다. 己가 성씨고, 이름이 妲이다.
▶ 姜原: 周나라의 시조 후직后稷의 모친. 原은嫄으로도 쓴다. 后稷은 周王朝의 전설적 시조로 姓은 姬, 이름은 棄. 農耕神으로 오곡의 신이기도 하다.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잉태해 낳아서 상서롭지 못하다고 하여 세 차례나 내다버렸으나 그때마다 구조되었다. 후에 요임금의 農官이 되었고 순임금은 기를 邰에 봉하고 후직이라 부르는 한편 姬氏성을 별도로 내렸다. 그의 어머니는 有邰氏의 딸로 姜原이라 하였다. 강원은 帝嚳의 正妃였다.
▶ 大任: 周周文王의 모친. 大任은 太任혹은 太姒라고도 한다. 周문왕의 정비이며 주무왕의 모친이다. 아들 중에는 武王發, 管叔鮮, 周公旦, 蔡叔度, 康叔封등이 있다.
▶ 幽王: 周 幽王(周유왕. 주나라의12대 왕. 정치에는 관심이 없이 여흥과 주색만을 탐닉하다 서周왕실을 망하게 하였다. 애첩 褒似를 총애한 나머지 정비 申后와 그 소생인 태자 宜臼를 폐하고 포사와 그 소생 伯服을 정비와 태자에 책봉함으로써 申侯를 격분시켰고, 결국 견융과 신후의 연합 공격을 받고 사살되었다.
▶ 褒似: 西周의 마지막 왕인 幽王의 애첩. 유왕이 褒나라를 공격하였을 때 포나라 사람이 바쳤으므로 褒姒라 하였다.

 

故易基乾坤,詩始關雎,書美釐降,春秋譏不親迎。
그러므로 <易經>은 과 ’ 兩卦가 기본이고, <詩經>은 關雎편에서 시작되며, <尙書>에서는 가 에게 두 딸을 시집보냄을 찬미했고, <春秋>에서는 군주가 아내를 맞이하면서 親迎하지 않음을 나무랐던 것이다.

夫婦之際,人道之大倫也。
부부의 관계는 인간의 도리에서 중대한 윤리이다.

禮之用,唯婚姻為兢兢。
예를 적용함에 혼인을 가장 조심하고 주의해야 한다.

夫樂調而四時和,陰陽之變,萬物之統也。
음악이 조화로우면 사계절이 어울리고음양의 변화는 만물의 생장변화를 통솔한다.

可不慎與?
신중하지 않아서 되겠는가?

▶ 釐降: 下嫁. 신하에게 낮추어 시집감을 말한다. 요임금이 순에게 자신의 두 딸을 시집보냈다는 말이다.
▶ 譏: 나무라다. 비웃다.
▶ 兢兢: 조심하고 주의하다.
▶ 調: 조화하다. 잘 어울리다.

 

人能弘道,無如命何。
인간이 인륜의 도를 확장할 수는 있어도천명을 어찌할 수는 없다.

甚哉,妃匹之愛,君不能得之於臣,父不能得之於子,況卑下乎!
심하구나부부간의 애정이란 군주가 신하에게서 얻을 수 없고아버지가 자식에게서 얻을 수 없거늘하물며 비천한 사람들이랴!

既驩合矣,或不能成子姓;
能成子姓矣,或不能要其終:豈非命也哉?
남녀가 맺어졌다 해도 자손을 양성하지 못할 수도 있고,
자식을 양성할 수 있을지라도 천수를 다한다고 보장하지 못하니,
이 어찌 천명이 아니겠는가?

孔子罕稱命,蓋難言之也。
공자는 천명을 거의 말하지 않았는데아마도 말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非通幽明之變,惡能識乎性命哉?
천지 음양의 변화에 통달할 수 없는데어찌 인간의 본성과 천명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 人能弘道: 사람이 도를 크게 할 수 있다. 道는 인륜의 도. 논어 위령공에“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道를 크게 할 수 있고, 道가 사람을 크게 할 수 子曰 人能弘道 非道弘人.라고 하였다. <論語衛靈公 28. >
▶ 妃匹: 배우자. 妃는 配와 통용된다.
▶ 驩合: 부부 간의 사랑.
▶ 成: 생육하다.
▶ 子姓: 자손.
▶ 幽明: 음양.
▶ 惡: 어찌.
▶ 性命: 인간의 본성과 천명.



太史公曰:
秦以前尚略矣,其詳靡得而記焉。
漢興,呂娥姁為高祖正后,男為太子。
及晚節色衰愛弛,而戚夫人有寵,其子如意幾代太子者數矣。
及高祖崩,呂后夷戚氏,誅趙王,而高祖後宮唯獨無寵疏遠者得無恙。
太史公은 말한다.
"秦 이전은 오히려 자료가 간략하여 그 상세를 기술하기 어렵다.
나라가 흥기하자 呂娥姁는 高祖의 정식 황후가 되고 아들은 태자가 되었다.
만년에 미모가 시들어 총애를 잃게 되자 戚夫人이 총애를 얻어서그 아들 如意가 태자 자리를 대신할 뻔한 일이 몇 차례 있었다.
고조가 세상을 뜨자 呂后는 척씨를 멸하고 趙王 여의를 죽였는데고조의 후궁들 중 총애를 받지 못하고 소원했던 사람만 탈이 없었다."

▶ 靡: 없다.
▶ 呂娥姁: 呂后. 前漢의 시조 劉邦의 황후. 이름은 稚이며, 자는 娥姁, 高后로도 불린다. 유방이 죽은 뒤 실권을 잡았다. 고조 사후, 황태후·태황태후가 되었고 여후·여태후 등으로 불린다.
▶ 幾: 거의. 하마터면.
▶ 夷: 멸하다.
▶ 戚姬: 高祖의 첩으로 趙王 如意를 낳았다. 고조가 생전에 척부인과 아들인 조왕 여의를 총애하였다.
▶ 趙王: 趙隱王 如意. 한고조의 넷째 아들로 戚夫人의 소생이다. 기원전198년, 조왕 장오가 趙 재상 관고의 황제 암살 모의에 연루돼 선평후로 강등되자, 여의는 열 살의 나이에 조왕으로 봉해졌다. 고조가 죽은 후 呂后의 소생 盈이 혜제로 즉위하자 여후에 의해 독살되었다.

呂后長女為宣平侯張敖妻,敖女為孝惠皇后。
여후의 장녀는 宣平侯 張敖의 아내가 되었으며장오의 딸은 孝惠皇后가 되었다.

呂太后以重親故,欲其生子萬方,終無子,詐取後宮人子為子。
여태후는 효혜황후가 이중으로 혼인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효혜황후가 자식을 낳게끔 온갖 방법을 써보았으나 끝내 아들을 낳지 못하자 속임수로 후궁의 자식을 아들로 삼았다.

及孝惠帝崩,天下初定未久,繼嗣不明。
효혜제가 崩御하고 천하가 막 안정된 지 오래되지 않은지라 후계자가 불투명하였다.

於是貴外家,王諸呂以為輔,而以呂祿女為少帝后,欲連固根本牢甚,然無益也。
이에 외척을 중시하여 呂氏들을 왕으로 봉하여 돕게 하고여록의 딸을 少帝의 황후로 삼아 뿌리를 더욱 견고히 하려고 했으나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 呂后長女: 魯元公主 劉樂. 漢高祖 유방의 딸.
▶ 張敖: 趙왕 張耳의 아들. 한왕5년(기원전202년)장이가 죽자 장이의 아들 張敖가 그 뒤를 이어 조왕에 올랐다. 漢高祖의 장녀인 魯元公主가 조왕 장오의 왕후가 되었다. 趙의 승상 貫高 등의 사건이 발각되어 宣平侯로 강등되었었다.
▶ 孝惠皇后: 惠帝의 황후. 혜제는 漢高祖 劉邦의 차남으로 이름은 劉盈이다.
▶ 重親: 겹혼인. 여후의 장녀는 張敖의 아내가 되었으며, 장오의 딸은 여후의 아들인 惠帝의 황후가 되었다.
▶ 萬方: 온갖 방도를 다하다.
▶ 詐取後宮人子為子: 선평후 張敖의 딸이 孝惠皇后로 있을 때 아들이 없어 임신한 척하며 妃嬪의 아들을 데려다 자기 아들이라 하며 생모를 죽이고 그 아이를 태자로 세웠다.
<사기 본기 권09. 呂太后本紀(여태후본기>
▶ 繼嗣: 후계자. 계승인.
▶ 王: 왕으로 봉하다.
▶ 諸呂: 여태후는 혜제가 죽자 어린 황제의 섭정으로서 劉氏만을 侯王으로 책봉하라는 유방의 遺訓을 어기고 그녀의 일족 9명을 王侯로 책봉하였다. 이것이 유씨 옹호파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여후가 죽자 여씨 誅滅사건이 일어났다. 이것이 여씨의 난이며, 여씨 정권이 붕괴되고 고조의 차남 劉恒이 文帝로 즉위하였다. <사기 본기 권09. 呂太后本紀>
▶ 妃: 아내. 배우자.
▶ 孝惠帝: 惠帝. 漢高祖 劉邦의 차남으로 이름은 劉盈이다.
▶ 牢甚: 견고하다. 확고하다.

高后崩,合葬長陵。
呂太后가 세상을 떠나자 長陵에 합장하였다.

祿、產等懼誅,謀作亂。
呂祿과 呂産등이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모의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大臣征之,天誘其統,卒滅呂氏。

대신들이 이들을 공격하니 하늘이 그 統緖를 인도하여 마침내 여씨를 멸하였다.

唯獨置孝惠皇后居北宮。
효혜황후만 북궁에 거처하도록 조치하였다.

迎立代王,是為孝文帝,奉漢宗廟。
代王을 맞아 옹립하여 孝文帝가 되었고 의 종묘를 받들었다.

此豈非天邪?
이 어찌 천명이 아니겠는가?

非天命孰能當之?
천명이 아니고서야 누가 이를 감당하겠는가?

▶ 長陵: 漢高祖의 능. 지금의 섬서성 함양시 동북쪽.
▶ 祿, 產: 呂祿과呂産. 呂祿은 여태후의 작은 오빠 여석지의 아들이며, 呂産은 여태후의 오빠인 여택의 아들이다.
▶ 卒滅呂氏: 呂太后는 유방이 죽은 뒤 혜제가 즉위하자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으며, 혜제가 죽자 어린 황제의 섭정으로서 劉氏만을 侯王으로 책봉하라는 유방의 遺訓을 어기고 그녀의 일족 9명을 王侯로 책봉하였는데 이것이 유씨 옹호파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여후가 죽자 여씨 誅滅사건이 일어났다.
[史記本紀]권09. 呂太后本紀
▶ 誘: 인도하다.
▶ 孝文帝: 漢孝文帝. 文帝. 劉恆. 여태후8년(기원전180년), 여태후가 죽고 주발·진평·제애왕·성양경왕 등이 여씨 세력을 공격하고 代王 劉恒을 효문제로 세웠다.
▶ 宗廟: 역대 제왕의 위패를 모시는 왕실의 묘당을 말하며 후에 왕실 또는 국가를 칭하게 되었다.

 

薄太后,父吳人,姓薄氏,秦時與故魏王宗家女魏媼通,生薄姬,而薄案死山陰,因葬焉。
薄太后의 아버지는 지방 사람으로 성은 薄氏이다나라 때 예전 왕의 宗家여자인 魏溫과 사통하여 薄姬를 낳았으며박희의 아버지는 山陰에서 죽었기 때문에 그곳에다 장례를 지냈다.

▶ 薄太后: 유항의 모친 薄씨. 유방의 첩으로 薄姬라고 불렀다. 고조 유방 때 아들 劉恒이 있는 代로 가서 代王의 태후가 되었다.
▶ 通: 간통하다.



及諸侯畔秦,魏豹立為魏王,而魏媼內其女於魏宮。
제후들이 에 반기를 들자 魏豹가 즉위하려 魏王이 되었고위온은 그 딸을 위왕의 궁으로 들여보냈다.

媼之許負所相,相薄姬,云當生天子。
위온이 許負가 관상보는 곳에 가서 박희의 상을 보게 했더니천자를 낳을 터이라고 하였다.

是時項羽方與漢王相距滎陽,天下未有所定。
이때는 項羽가 바야흐로 漢王 劉邦과 滎陽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어 천하의 소유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 畔: 叛과 통용된다. 반역하다. 배반하다.
▶ 魏豹: 魏 왕실의 일족으로 魏咎의 사촌동생이다.
陳勝의 반란 이후 周市과 함께 형 위구를 魏王으로 옹립하였다. 이후 章邯의 공격을 받아 형 위구가 죽자 楚로 도망가서 楚懷王에게 군사를 빌려 魏 영토를 회복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史記列傳권90魏豹彭越列傳>
▶ 内: 納과 같다. 들여보내다.
▶ 許負: 姓이 許인 노파. 負는 노부인의 별칭.
▶ 距: 拒와 통용된다. 대치하다.

豹初與漢擊楚,及聞許負言,心獨喜,因背漢而畔,中立,更與楚連和。
위표는 처음에 한왕과 함께 초왕을 공격하였는데허부의 말을 듣고 속으로 혼자 기뻐하여 한왕을 배반하고 중립을 지키다 다시 초왕과 연합하였다.

漢使曹參等擊虜魏王豹,以其國為郡,而薄姬輸織室。
한왕은 曹參 등에게 위왕 를 공격하여 사로잡게 하고 그 나라를 에 편입하고薄姬를 옷감을 짜는 織室로 보냈다.

豹已死,漢王入織室,見薄姬有色,詔內後宮,歲餘不得幸。
위표가 죽은 후 한왕이 織室에 들어갔다가박희의 미모를 보고는 후궁으로 들이라는 조서를 내렸으나, 1년 넘게 총애를 받지 못하였다.

▶ 曹參: 전한의 군인이자 개국 공신으로字는 敬伯이다. 원래 秦의 옥리였으나, 고조 유방의 거병 시에 뜻을 같이하였다.
▶ 輸: 보내다.
▶ 織室: 한나라 때 황실의 옷감을 짜는 官府.

始姬少時,與管夫人、趙子兒相愛,約曰:
「先貴無相忘。」
당초 박희가 젊었을 때 管夫人·趙子兒와 사이가 좋았는데 세 사람이 약속하였다.
먼저 귀하게 되면 서로 잊지 말자.”

已而管夫人、趙子兒先幸漢王。
그 후 관부인·조자아가 먼저 한왕의 총애를 입었다.

漢王坐河南宮成皋臺,此兩美人相與笑薄姬初時約。
한왕이 河南宮의 成皋臺에 앉아 있는데이 두 미인이 당초 박희와 했던 약속을 이야기하며 서로 웃었다.

漢王聞之,問其故,兩人具以實告漢王。
한왕이 듣고 그 연고를 물으니 두 사람이 자세히 사실대로 한왕에게 고하였다.

漢王心慘然,憐薄姬,是日召而幸之。
한왕은 마음이 서글프고 박희가 안쓰러워 그날로 박희를 불러 은총을 베풀었다.

薄姬曰:
「昨暮夜妾夢蒼龍據吾腹。」
박희가 말하였다.
어젯밤 첩이 꿈을 꾸었는데청룡이 저의 배 위에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高帝曰:
「此貴徵也,吾為女遂成之。」
고제가 말하였다.
그것은 귀한 징조이니 내가 너를 위해 그 일을 이루어주마.”

一幸生男,是為代王。
한 번의 동침으로 아들을 낳으니 그가 代王 劉恒이다.

其後薄姬希見高祖。
그 후로 박희는 고조를 거의 보지 못하였다.

▶ 蒼龍: 청룡
▶ 據: 도사리다.
▶ 代王: 劉恒. 高祖 劉邦의 넷째 아들로 처음에 代王에 책봉되어 中都에 도읍했다가 呂氏의 난이 평정된 뒤 太尉 周勃과 승상 陳平 등 중신의 옹립으로 제위에 올랐다.
▶ 希: 稀와 같다. 드물다.

高祖崩,諸御幸姬戚夫人之屬,呂太后怒,皆幽之,不得出宮。
고조가 붕어하자총애를 받았던 척부인 等屬을 화가 난 여태후가 모두 幽閉하니 궁에서 나가지 못하였다.

而薄姬以希見故,得出,從子之代,為代王太后。
그러나 박희는 거의 황제를 보지 못하였으므로 궁을 나갈 수 있어서아들을 따라 로 가서 代王의 태후가 되었다.

太后弟薄昭從如代。
태후의 동생 薄昭도 따라서 로 갔다.

▶ 幽: 갇히다.
▶ 如: 가다. 이르다.

代王立十七年,高后崩。
代王이 즉위한 지 17高后가 崩御하였다.

大臣議立後,疾外家呂氏彊,皆稱薄氏仁善,故迎代王,立為孝文皇帝,而太后改號曰皇太后,弟薄昭封為軹侯。
대신들이 후계자를 옹립하는 일을 논의함에외척 여씨가 강성함을 미워하였는데모두 박씨가 어질고 착하다고 칭찬했기 때문에 代王을 맞아들여 효문황제로 옹립하고태후는 황태후로 바꿔 불렀고황후의 동생 박소는 軹侯에 봉하였다.

▶ 疾: 원망하다.


薄太后母亦前死,葬櫟陽北。
박태후의 어머니도 일찍 죽어 櫟陽 북쪽에 묻혔다.

於是乃追尊薄案為靈文侯,會稽郡置園邑三百家,長丞已下吏奉守冢,寢廟上食祠如法。
이에 태후의 아버지 薄案을 靈文侯로 추존하고 會稽郡에 園邑 300를 두어長丞이하 관리들이 무덤을 지키고예법에 따라 묘당에 祭物과 제사를 올렸다.

而櫟陽北亦置靈文侯夫人園,如靈文侯園儀。
그리고 역양 북쪽에도 영문후의 부인 원읍을 두어 영문후의 원읍과 같이 儀禮를 행하였다.

薄太后以為母家魏王後,早失父母,其奉薄太后諸魏有力者,於是召復魏氏,[及尊]賞賜各以親疏受之。
박태후는 친정이 魏王의 후손으로 조실부모했기 때문에박태후를 받들며 힘을 썼던 자들을 불러서 위씨로 회복시키고멀고 가까운 정도에 따라 상을 받도록 하였다.

薄氏侯者凡一人。
薄氏로서 에 봉해진 사람은 1인이었다.

▶ 園邑: 韓 때 능원을 지키기 위해 설치한 縣邑.
▶ 冢: 무덤.
▶ 寢廟: 사당. 고대 종묘의 正殿을 廟라하고 後殿을 寝이라 하여 이를 합하여 寝廟라 하였다.
▶ 上食: 祭物을 바치다.

薄太后後文帝二年,以孝景帝前二年崩,葬南陵。
박태후는 文帝보다 2년 뒤인 孝景帝 前元2(기원전155)에 崩御하니 南陵에 장사지냈다.

以呂后會葬長陵,故特自起陵,近孝文皇帝霸陵。
여후가 장릉에 합장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따로 무덤을 조성했는데 효문제의 패릉과 가깝다.

▶ 景帝前二年: 漢景帝前元 2기원전155년. 경제 재위시에2차례 개원을 하여 前元, 中元, 後元으로 기록하고 있다.
▶ 南陵: 薄太后의 능이름.
▶ 霸陵: 漢文帝의 능이름.

竇太后,趙之清河觀津人也。
竇太后는 의 淸河 觀津사람이다.

呂太后時,竇姬以良家子入宮侍太后。
여태후 때 竇姬는 양갓집 자제로 궁에 들어와 태후를 모셨다.

太后出宮人以賜諸王,各五人,竇姬與在行中。
태후가 궁녀를 내보내어 왕들에게 각각 다섯 명을 하사했는데두희도 그 행렬에 들어 있었다.

竇姬家在清河,欲如趙近家,請其主遣宦者吏:
「必置我籍趙之伍中。」
두희의 집이 청하에 있었으므로 집과 가까운 로 가고 싶어서그 일을 주관하는 환관에게 청하였다.
저의 명부를 꼭 로 가는 대오에 넣어주십시오.”

宦者忘之,誤置其籍代伍中。
환관이 잊어버리고 그녀의 명부를 로 가는 대오에 잘못 올렸다.

籍奏,詔可,當行。
명부가 보고되어 조서로 허락하니 출발해야만 하였다.

竇姬涕泣,怨其宦者,不欲往,相彊,乃肯行。
두희가 눈물을 흘리며 그 환관을 원망하며 가려고 하지 않았으나 강요하자 비로소 이에 따랐다.

▶ 竇太后: 竇姬. 竇猗房. 漢文帝 劉恆의 처이며 景帝의 어머니이다. 代王 劉恒이 漢나라의 5대 皇帝가 되어 代에서 장안으로 돌아왔다. 슬하에 자녀로는 장남 漢景帝 劉啟, 차남 梁孝王 劉武, 長女로 館陶長公主 劉嫖가 있었다.
▶ 籍: 명부. 등록부.



至代,代王獨幸竇姬,生女嫖,後生兩男。
두희가 에 이르자 代王은 유독 두희만 총애하여 딸 를 낳았으며뒤에 아들 둘을 낳았다.

而代王王后生四男。
그런데 대왕의 왕후는 아들 넷을 낳았다.

先代王未入立為帝而王后卒。
대왕이 들어와서 황제가 되기 전에 왕후가 세상을 떠났다.

及代王立為帝,而王后所生四男更病死。
대왕이 황제로 즉위한 뒤에 왕후가 낳은 아들 넷이 잇달아 병으로 죽었다.

孝文帝立數月,公卿請立太子,而竇姬長男最長,立為太子。
文帝가 즉위하고 몇 달 뒤 공경들이 태자를 세우라고 청하여두희의 장남이 나이가 가장 많으므로 태자로 세웠다.

立竇姬為皇后,女嫖為長公主。
두희는 황후가 되었으며딸 는 長公主가 되었다.

其明年,立少子武為代王,已而又徙梁,是為梁孝王。
그 이듬해 막내아들 를 代王으로 세웠다가 얼마 후 나라로 옮기니 그가 양孝王이다.

▶ 代王: 劉恆. 훗날의 漢文帝.
▶ 更: 잇다. 계속하다.
▶ 長公主: 韓 제도에 황제의 자매를 장공주라 칭하였다. 劉嫖는 景帝의 누이이다.
▶ 梁孝王: 劉武. 대왕, 회양왕을 역임했고 최종적으로는 양왕이다. 전한 문제의 둘째 아들이며 전한 경제의 친동생으로 오초칠국의 난 진압에서 큰 공을 세웠다.

竇皇后親蚤卒,葬觀津。
두황후의 부모는 일찍 죽어 관진에 묻혔다.

於是薄太后乃詔有司,追尊竇后父為安成侯,母曰安成夫人。
이에 박태후는 有司에게 조서를 내려 두황후의 아버지를 安成侯어머니는 安成夫人으로 추존하였다.

令清河置園邑二百家,長丞奉守,比靈文園法。
淸河郡에 200가의 園邑을 두도록 명하고 장승에게 영문원의 예법과 같이 하였다.

▶ 親: 부모.
▶ 有司: 담당 관리.

 

竇皇后兄竇長君,弟曰竇廣國,字少君。
두황후의 오빠는 竇長君이며동생은 竇廣國이라고 하는데 는 少君이다.

少君年四五歲時,家貧,為人所略賣,其家不知其處。
소군이 네다섯 살 때 집안이 가난했는데누군가에게 유괴당하여 팔렸는데 그의 집에서는 그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

傳十餘家,至宜陽,為其主入山作炭,寒[暮]臥岸下百餘人岸崩,盡壓殺臥者,少君獨得脫,不死。
10여 집을 전전하다가 宜陽에 이르러주인을 위해 산에 들어가 숯을 굽게 됨에밤에 절벽 아래에서 100여 명이 잠을 자는데절벽이 무너져 잠자던 사람 모두를 壓殺하였으나소군 혼자 벗어났고 죽지 않았다.

自卜數日當為侯,從其家之長安。
스스로 점을 쳐보니 며칠 안으로 가 된다고 하여그의 집 주인을 따라 長安으로 갔다.

▶ 竇廣國: 文帝때 竇皇后의 동생이다. 어릴 때 집안이 가난하여 남에게 팔려갔다. 누이가 황후가 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上書하여 돌아와 형 竇長君과 함께 田宅을 하사받았다. 周勃 등이 節行이 있는 사람을 뽑아 傅로 삼으니, 모두 長安에 살면서도 항상 겸손하고 검소하여 부귀로서 남에게 교만하지 않아 退讓君子로 일컬어졌다. 外戚을 등용하지 않은 예로서 자주 거론된다. 景帝가 즉위하자 章武侯에 봉해졌다. 시호는 景이다.
▶ 略賣: 유괴하여 팔다. 略은 掠과 통용된다.
▶ 傳: 轉과 통용된다. 전전하다.
▶ 岸: 절벽. 낭떠러지.

 

聞竇皇后新立,家在觀津,姓竇氏。
광국은 두황후가 새로 즉위했는데 그녀의 집이 관진에 있고 성이 씨임을 들었다.

廣國去時雖小,識其縣名及姓,又常與其姊採桑墮,用為符信,上書自陳。
광국이 떠날 때 비록 어렸으나 그 현의 이름과 자기 성을 알았고또 늘 누이와 뽕잎을 따다가 떨어진 일을 기억하고 있어서이를 증거로 삼아 글을 올려 자신을 피력하였다.

竇皇后言之於文帝,召見,問之,具言其故,果是。
두황후가 이 일을 문제에게 말하였고문제가 불러들여 물으니옛날 일을 소상히 말하는데 과연 그러했다.

又復問他何以為驗?
다시 그에게 다른 무엇으로 입증하겠느냐고 물었다.

對曰:
「姊去我西時,與我決於傳舍中,丐沐沐我,請食飯我,乃去。」
대답하였다.
누이가 저와 헤어져 서쪽으로 감에누이와 저는 역참의 숙소에서 헤어졌는데쌀뜨물을 구해다 제 머리를 감겨주었고먹을 것을 구해다 저를 먹인 다음 떠났습니다.”

▶ 符信: 증거. 신표.
▶ 他: 기타.
▶ 決: 헤어지다.
▶ 傳舍: 역참의 숙소. 傳은 역참.
▶ 沐沐: 쌀뜨물로 머리를 감다. 앞의 沐은 쌀드물 뒤의 沐은 머리를 감다.

於是竇后持之而泣,泣涕交橫下。
이에 두황후는 그를 잡고 울음을 터뜨렸는데 눈물과 콧물이 뒤섞여 흘러내렸다.

侍御左右皆伏地泣,助皇后悲哀。
곁에서 모시던 시종들도 모두 바닥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니 황후의 슬픔이 더하였다.

乃厚賜田宅金錢,封公昆弟,家於長安。
이에 田宅과 金錢을 넉넉하게 주어 동생들의 집을 장안으로 옮기게 하였다.

▶ 公昆弟: 조상이 같은 형제.

 

絳侯、灌將軍等曰:
「吾屬不死,命乃且縣此兩人。
兩人所出微,不可不為擇師傅賓客,又復效呂氏大事也。」
絳侯와 灌將軍 등이 말하였다.
우리들이 죽지 않았으나 우리의 명 또한 이 두 사람에게 달려 있다.
두 사람의 출신이 미천하므로사부나 빈객들을 골라주어 다시 여씨와 같은 사고를 본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於是乃選長者士之有節行者與居。
이에 나이 많고 덕이 있는 자와 선비 중 節行이 있는 자를 선발하여 함께 거처토록 하였다.

竇長君、少君由此為退讓君子,不敢以尊貴驕人。
두장군과 소군이 이로 인하여 겸손하고 양보하는 군자가 되어감히 존귀하다고 남에게 교만하지 않았다.

▶ 絳侯: 周勃. 前漢의 명신. 시호는 武侯公. 漢高祖 때 천하 평정의 공을 세우고, 絳侯에 봉하여졌다. 후에 呂氏一族이 난을 일으키자, 陳平과 더불어 여씨를 평정하고, 文帝를 황제로 옹립하였다. <사기 권57. 絳侯周勃世家>
▶ 灌將軍: 灌嬰. 전한 초기 睡陽사람으로 젊었을 때는 비단을 파는 일로 생업을 삼았다. 장군이 되어 齊를 평정하고, 항우를 무찔러 고조6년(기원전201년) 潁陰侯에 봉해졌다. 齊王이 呂氏를 타도하기 위해 거병함에 그는 진압군의 지휘를 맡아 출병하였으나, 이미 周勃 등과 모의해서 呂氏를 타도하고자 하였으므로, 당시 滎陽에 주둔하고 있던 齊王에게 자신들이 呂氏를 타도할 것이란 암시를 주어 싸우지 않고 齊王의 軍士를 물리쳤다.
▶ 縣: 懸과 같다.
▶ 所出: 출신.
▶ 長者: 나이가 많고 덕이 있는 사람.

 

竇皇后病,失明。
두황후가 병이 나서 실명하였다.

文帝幸邯鄲慎夫人、尹姬,皆毋子。
문제는 邯鄲의 愼夫人·尹姬를 총애했으나 모두 아들이 없었다.

孝文帝崩,孝景帝立,乃封廣國為章武侯。
효문제가 붕어하고 효경제가 즉위하여 廣國을 章武侯에 봉하였다.

長君前死,封其子彭祖為南皮侯。
竇長君은 먼저 죽었기 때문에 그 아들 彭祖를 南皮侯에 봉하였다.

吳楚反時,竇太后從昆弟子竇嬰,任俠自喜,將兵,以軍功為魏其侯。
吳楚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두태후의 종형제의 아들 竇嬰은 임협을 좋아하며 軍士를 이끌어 전공을 세웠으므로魏其侯에 봉해졌다.

竇氏凡三人為侯。
두씨는 모두 세 사람이 가 되었다.

▶ 竇嬰: 西漢 때의 大臣이며 字는 王孫이다. 文帝의 황후인 竇皇后의 조카로 오초칠국의 난 때 대장군으로 임명되어 형양을 지키며 齊·趙의 병사를 감독하였다. 오초칠국의 난이 평정된 후 魏其侯로 임명되었다. 景帝는 두영이 사람됨이 가벼워 자신을 진중하게 유지하지 못한다고 하여 재상으로 기용하지 않았다. 武帝 초에 丞相에 임명되었고, 儒學을 숭상해 두태후의 뜻을 거슬러서 파직되었으며, 승상 田蚡과 사이가 나빠져 그의 모함을 받아 사형에 처해졌다.
[史記列傳]권107. 魏其武安侯列傳
▶ 任俠: 의협심을 발휘하여 의로운 일을 하다. 의협심이 강하다.

 

竇太后好黃帝、老子言,帝及太子諸竇不得不讀黃帝、老子,尊其術。
두태후가 黃帝·老子의 학설을 좋아하니황제와 태자 및 두씨는 <황제>·<노자>를 읽으며 그 학술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 黃帝老子言: 黃老之學을 말한다. 黄老는 黄帝와 老子. 황노사상은 전국시대 중후기부터 漢나라 시대까지 약 400년 동안 유행하던 하나의 사상이다. 황제는 전설상의 인물이지만 각종 법률과 규칙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상징되며 노자는 도가사상의 뿌리이자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황노사상은 보통 법가와 도가가 융합된 사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竇太后後孝景帝六歲建元六年崩,合葬霸陵。
두태후는 효경제보다 6년 뒤인 무제 건원6(기원전135)에 崩御하니 패릉에 합장되었다.

遺詔盡以東宮金錢財物賜長公主嫖。
東宮의 금전과 재물을 장공주 유표에게 내리라는 유언을 남겼다.

▶ 建元: 武帝의 첫 번째 기원전140~135년. 중국 최초의 정식 연호이다. 건원6년은 기원전135년이다.

 

王太后,槐裏人,母曰臧兒。
王太后는 槐里사람으로 어머니는 藏兒라고 하였다.

臧兒者,故燕王臧荼孫也。
장아는 예전 燕王 臧荼의 손녀였다.

臧兒嫁為槐裏王仲妻,生男曰信,與兩女。
장아는 괴리의 王仲에게 시집가서 이라는 아들과 두 딸을 낳았다.

而仲死,臧兒更嫁長陵田氏,生男蚡、勝。
왕중이 죽자 장아는 長陵田氏에게 재가하여 아들 田蚡과 田勝을 낳았다.

臧兒長女嫁為金王孫婦,生一女矣,而臧兒卜筮之,曰兩女皆當貴。
장아의 장녀는 金王 孫에게 시집가서 딸 하나를 낳았는데 장아가 점을 치니 두 딸이 모두 귀하게 된다고 하였다.

▶ 王太后: 孝景皇后 王娡는 전한의 제6대 황제 景帝의 부인이자 제7대 황제 武帝 유철의 생모이므로 王太后가 된 것이다.
▶ 藏兒: 연왕 장도의 손녀. 괴리 사람 왕중에게 시집가서 景帝의 부인인 왕씨를 낳았다.
▶ 燕王臧荼: 秦 말기, 漢나라 초기의 인물이며 항우의 열여덟 제후왕 중 하나로 燕왕을 지냈다.
▶ 更嫁: 改嫁하다.
▶ 卜筮: 龜甲으로 길흉을 점치는 것을 卜이라 하고, 蓍草로 길흉을 점치는 것을 筮라 한다

 

因欲奇兩女,乃奪金氏。
이에 두 딸에게 의지하려고 김씨에게서 딸을 빼앗으려고 하였다.

金氏怒,不肯予決,乃內之太子宮。
김씨가 노하여 받아들이지 않고 처자관계를 단절하고 딸을 태자궁에 들여보냈다.

太子幸愛之,生三女一男。
태자가 그녀를 총애하여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낳았다.

男方在身時,王美人夢日入其懷。
아들을 막 임신했을 때 王美人의 꿈에 해가 품으로 들어왔다.

以告太子,太子曰:
「此貴徵也。」
태자에게 고했더니 태자가 말하였다.
이는 귀한 징조이다.”

未生而孝文帝崩,孝景帝即位,王夫人生男。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 효문제가 세상을 떠났고태자가 효경제로 즉위한 뒤 왕부인은 아들을 낳았다.

▶ 奇: 倚와 통용된다. 의지하다. 기대다. 奇는 의지할 ‘의’.
▶ 太子: 景帝 劉啓
▶ 美人: 한나라 때 妃嬪 칭호의 하나.
▶ 王夫人生男: 孝景皇后 王娡. 제6대 황제 경제의 부인이자 제7대 황제 무제의 어머니이므로 王太后가 되었다. 왕씨는 당시 황태자였던 劉啓의 총애를 얻어 평양공주·남궁공주·융려공주 등을 낳았고, 아들 유철을 임신한 상태에서 시아버지 문제가 죽어 기원전157년에 유계가 景帝로 즉위하니, 그 해에 유철을 낳았다.



先是臧兒又入其少女兒姁,兒姁生四男。
이에 앞서 장아는 또 그녀의 막내딸 兒姁를 궁에 들여보냈는데아후는 아들 넷을 낳았다.

▶ 兒姁: 王夫人. 兒姁는 왕태후 王娡의 동생으로 아들 넷을 낳았는데, 아들은 劉越·劉寄·劉乘·劉舜이다.

景帝為太子時,薄太后以薄氏女為妃。
경제가 태자였을 때 박태후는 박씨의 딸을 로 삼게 하였다.

及景帝立,立妃曰薄皇后。
경제가 즉위하자 는 薄皇后라 불렸다.

皇后毋子,毋寵。
황후에게 아들이 없어 총애를 받지 못하였다.

薄太后崩,廢薄皇后。
박태후가 세상을 떠나자 박황후를 폐하였다.

▶ 薄太后: 文帝劉恒의 모친 薄씨.
▶ 薄皇后: 景帝의 妃.



景帝長男榮,其母栗姬。
경제의 장남인 劉榮의 어머니는 栗姬이다.

栗姬,齊人也。
율희는 齊 사람이다.

立榮為太子。
유영을 태자로 세웠다.

長公主嫖有女,欲予為妃。
장공주 는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을 주어 태자비로 만들려고 하였다.

栗姬妒,而景帝諸美人皆因長公主見景帝,得貴幸,皆過栗姬,栗姬日怨怒,謝長公主,不許。
율희는 질투가 심했으며경제의 미인들은 모두 장공주를 거쳐 경제에게 선을 보이니장공주의 존귀함과 총애는 모두 율희를 넘어섰으므로 율희는 갈수록 원망스럽고 화가 나서 장공주의 혼사를 거절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長公主欲予王夫人,王夫人許之。
이에 장공주는 딸을 왕부인에게 보내려 했고 왕부인은 이를 허락하였다.

長公主怒,而日讒栗姬短於景帝曰:
「栗姬與諸貴夫人幸姬會,常使侍者祝唾其背,挾邪媚道。」
장공주는 성이 나서 날마다 경제 앞에서 율희의 단점을 헐뜯으며 말하였다.
율희는 귀부인들과 총애받는 희첩들을 만나면늘 시종들을 시켜 그들 등 뒤에다 대고 저주와 침을 뱉고요사스럽고 사람을 현혹시키는 도술을 사용합니다.”

景帝以故望之。
경제가 이 때문에 율희에게 원한을 갖게 되었다.

▶ 栗姬: 景帝의 후궁이다. 齊 출신으로, 경제의 장자 유영을 낳았으나 권력 암투 끝에 몰락하였다. 景帝의 황후는 원래 박황후였으나, 그는 경제의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아들을 낳지도 못하니, 율희가 경제에게 장자 유영을 낳아주었으므로 경제4년(기원전153년)에 유영은 태자가 됐고 경제6년(기원전151년) 박황후가 쫓겨났다.
▶ 長公主: 문제의 딸 劉嫖.
▶ 謝: 거절하다.
▶ 祝: 저주. 祝는 저주할 ‘주’.
▶ 媚道: 사람을 현혹시키는 도술.
▶ 望: 원한.

景帝嘗體不安,心不樂,屬諸子為王者於栗姬,曰:
「百歲後,善視之。」
경제가 일찍이 몸이 편치 않아 마음이 즐겁지 않았는데왕이 된 아들들을 율희에게 부탁하며 말하였다.
내가 죽은 후에 아들들을 잘 보살펴주시오.”

栗姬怒,不肯應,言不遜。
율희가 화를 내며 대답하지 않고 불손한 말을 내뱉었다.

景帝恚,心嗛之而未發也。
경제는 화가 났지만 속으로 원한을 품고 드러내지 않았다.

▶ 屬: 부탁하다.
▶ 百歲後: 죽은 뒤. 百歲之後로 지체 높은 사람이 죽은 뒤의 뜻.
▶ 恚: 노하다.
▶ 嗛: 원한을 품다.

長公主日譽王夫人男之美,景帝亦賢之,又有曩者所夢日符,計未有所定。
장공주는 날마다 왕부인의 아들이 훌륭하다고 칭찬했으며경제 역시 그를 현명하다고 여겼고또 전자에 꿈에 해가 품으로 들어오는 상서로운 징조도 있었으나 생각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王夫人知帝望栗姬,因怒未解,陰使人趣大臣立栗姬為皇后。
왕부인은 황제가 율희를 원망하고 있고 아직도 노여움이 식지 않음을 알고몰래 사람을 시켜 대신들에게 율희를 황후로 세우자고 재촉하게 하였다.

▶ 王夫人男: 劉徹을 말한다.
▶ 曩: 전에. 앞서.
▶ 符: 상서로운 징조.
▶ 趣: 促과 통용된다. 재촉하다.

 

大行奏事畢,曰:
「『子以母貴,母以子貴』,
今太子母無號,宜立為皇后。」
조회 大行官이 일에 대한 보고를 마치고는 아뢰었다.
“‘자식은 어미로 인해 귀해지고어미는 자식으로 인해 귀해진다고 했습니다.’
지금 태자의 모친에게 封號가 없으니 황후로 세우심이 마땅합니다.”

景帝怒曰:
「是而所宜言邪!」
경제는 화를 내면서 말하였다.
지금 그것이 네가 할 말이냐!”

遂案誅大行,而廢太子為臨江王。
죄를 따져 대행을 죽이고 태자는 폐하여 臨江王으로 삼았다.

栗姬愈恚恨,不得見,以憂死。
율희의 원망은 점점 더해졌고황제조차 만나지 못하자 우울하게 죽었다.

卒立王夫人為皇后,其男為太子,封皇后兄信為蓋侯。
결국 왕부인을 황후로 세우고 그 아들 유철을 태자로 삼았으며황후의 오빠 은 蓋侯에 봉해졌다.

▶ 子以母貴,母以子貴: “嫡子를 세우기를 나이가 많음으로써 하고 어짊으로써 하지 않으며, 아들을 세우기를 귀함으로써 하고 나이로써 하지 않으니, 자식은 어미로 인해 귀해지고 어미는 자식으로 인해 귀해진다.” <春秋公羊傳 隱公 元年>
▶ 而: 너.
▶ 案: 조사하여 처벌하다.
▶ 臨江王: 景帝의 맏아들인 劉榮. 栗姬의 소생으로 율태자라고 칭하였다. 태자였으나 폐위되어 임강민왕이 되었고, 종묘의 영역을 침범하여 궁궐을 지은 죄로 경제에게 소환되었을 때 중위부로 가서 심문을 받았는데, 중위 郅都가 매우 엄하게 꾸짖자 두려워하여 자결하였다. <사기열전 권122. 혹리열전>
▶ 恚恨: 원망하다.



景帝崩,太子襲號為皇帝。
景帝가 세상을 떠나자 태자가 황제의 지위를 계승하였다.

尊皇太后母臧兒為平原君。
황태후의 어머니 장아를 平原君으로 추존하였다.

封田蚡為武安侯,勝為周陽侯。
전분은 武安侯전승은 周陽侯에 봉해졌다.

▶ 太子襲號為皇帝: 武帝. 景帝의 아들 형제 중의 중간이다. 어머니는 王太后이다. 경제4년(기원전153년)에 황제의 아들로서 膠東王에 봉해졌다. 경제7년(기원전150년)에 栗太子가 폐위되어 臨江王이 되자 교동왕 유철이 태자가 되었다. 경제가 16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태자가 즉위하니 그가 효무황제다.

▶ 皇太后: 孝景皇后 王娡.
▶ 田蚡, 田勝: 田蚡과 그 아우 田勝은 모두 왕태후의 동생이다. 효경황후3년(기원전141년)에 전분은 武安侯, 전승은 周陽侯에 각각 봉해졌다.

景帝十三男,一男為帝,十二男皆為王。
경제의 아들 열셋 중 한 아들은 황제가 되고 열두 아들은 모두 왕이 되었다.

而兒姁早卒,其四子皆為王。
兒姁(: 왕부인)는 일찍 죽었지만 아들 넷은 모두 왕이 되었다.

王太后長女號日平陽公主,次為南宮公主,次為林慮公主。
왕태후의 장녀는 平陽公主둘째 딸은 南宮公主셋째 딸은 林慮公主라 하였다.

▶ 景帝十三男: 경제의 아들들은 14명으로 전해지고 있다. <史記志疑>

 

蓋侯信好酒。
蓋侯信은 술을 좋아하였다.

田蚡、勝貪,巧於文辭。
전분전승은 욕심이 많고 文辭에 능하였다.

王仲蚤死,葬槐裏,追尊為共侯,置園邑二百家。
王仲은 일찍 죽어 괴리에 묻혔는데 共侯로 추존되고 원읍 200를 두었다.

及平原君卒,從田氏葬長陵,置園比共侯園。
평원군 장아가 죽자 田氏와 長陵에 합장되었으며원읍은 공후의 원읍에 준하여 두었다.

而王太后後孝景帝十六歲,以元朔四年崩,合葬陽陵。
왕태후는 효경제보다 16년 늦은 元朔 4(기원전125)에 세상을 떠나 陽陵에 합장되었다.

王太后家凡三人為侯。
왕태후 집안에서는 모두 세 사람이 가 되었다.

▶ 蓋侯信: 蓋侯王信. 효경황후 王娡의 오빠이며 경제 중원5년(기원전145년), 외척으로서 蓋侯에 봉해졌다.
▶ 元朔: 漢武帝의 세 번째 기원(기원전128년~기원전123년)
▶ 陽陵: 漢景帝의 능묘명.

 

 

衛皇后字子夫,生微矣。
衛皇后의 는 子夫이며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蓋其家號曰衛氏,出平陽侯邑。
대체로 그 집안을 衛氏로 불렀고 平陽侯의 봉지에서 자랐다.

子夫為平陽主謳者。
위자부는 평양공주의 歌姬였다.

武帝初即位,數歲無子。
무제가 즉위 초기 몇 해 동안 자식이 없었다.

平陽主求諸良家子女十餘人,飾置家。
평양공주는 양갓집 여자 10여 명을 구해 잘 꾸며서 집에다 두었다.

武帝祓霸上還,因過平陽主。
무제가 覇上에서 제사 의식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평양공주의 집을 들렀다.

主見所侍美人。上弗說。
공주가 모시는 미인들을 알현시켰으나 주상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既飲,謳者進,上望見,獨說衛子夫。
술자리가 끝나고 가희들이 들어왔는데 주상이 멀리서 보고는 유독 위자부만 마음에 들어 하였다.

▶ 衛皇后: 衛子夫. 무제의 두 번째 황후이다. 미천한 가문 출신이었던 위자부는 漢武帝의 누이 平陽公主의 집 歌女였는데 한무제의 눈에 띄어 후궁이 되었다. 한무제의 총애를 받게 된 위자부를 왕비 陳皇后가 무척 질투하였다. 진아교의 질투로 고생하였던 위자부는 한무제가 후궁과 궁녀들을 출궁시킬 때 자신도 출궁시켜 달라고 울면서 간청하였고, 한무제는 그를 더욱 가련히 여겼다. 그 뒤 진아교와 그의 친정어머니 관도공주가 짜고 위자부의 오라비 衛淸을 죽이려 하다가 발각되자 무제는 진아교를 폐출시키고 위자부를 황후에 앉혔다. 위자부는 세 딸 위장공주, 제읍공주, 양석공주를 낳고 아들 여태자 유거를 두었다.
▶ 平陽公主: 平陽公主 劉氏. 전한 경제와 효경황후 왕씨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한무제의 누나이다. 평양후 曹壽와 결혼하였다가 조수가 병에 걸려 죽자 한무제가 위청을 평양공주와 혼인하도록 하였다.
▶ 謳者: 歌姬.
▶ 祓: 푸닥거리하다. 고대 풍속으로 재난을 물리치고 복을 구하는 일종의 제사 의식.
▶ 見: 알현하게 하다.
▶ 說: 悦과 같다.

是日,武帝起更衣,子夫侍尚衣軒中,得幸。
이날 무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으려 함에위자부가 옷을 갈아입는 황제의 수레에서 시중을 들다가 총애를 입었다.

上還坐,驩甚。賜平陽主金千斤。
주상이 자리로 돌아왔는데 기분이 너무 좋아 평양공주에게 황금 1천근을 내렸다.

主因奏子夫奉送入宮。
평양공주는 이 기회를 틈타 자부를 입궁시키라고 주청하였다.

子夫上車,平陽主拊其背曰:
「行矣,彊飯,勉之!即貴,無相忘。」
위자부가 수레에 오르자 평양공주는 자부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가거라그리고 잘 먹고 노력해야 한다귀하신 몸이 되더라도 서로 잊지 말자.”

▶ 尚衣軒: 尚衣는 황제의 의복을 주관하는 관리. 軒은 수레.
▶ 拊: 어루만지다.

 

入宮歲餘,竟不復幸。
입궁한 지 1년여가 지나도록 결국 다시 황제의 은총을 입지 못하였다.

武帝擇宮人不中用者,斥出歸之。
무제는 중용되지 못한 궁인들을 골라내서 궁에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衛子夫得見,涕泣請出。
위자부는 황제를 만나자 울면서 궁에서 내보내 달라고 간청하였다.

上憐之,復幸,遂有身,尊寵日隆。
주상이 가엾게 여겨 다시 은총을 베풀어 임신하니총애가 날이 갈수록 더하여갔다.

召其兄衛長君弟青為侍中。
위자부의 오빠 衛長君과 동생 衛靑을 불러들여 侍中으로 삼았다.

而子夫後大幸,有寵,凡生三女一男。
위자부는 그 후로도 큰 총애를 입어 모두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낳았다.

男名據。
아들 이름은 였다.

▶ 有身: 임신하다.
▶ 衛長君: 본명은 衛長子. 위자부의 오빠로 侍中이 되었다.
▶ 衛靑: 전한의 장군으로 자는 仲卿이며 平陽縣사람이다. 작위는 長平侯다. 누나는 무제의 황후 무사황후이다. 하급관리인 아버지 鄭季와 평양후의 첩인 衛媼의 사생아로 태어나 평양후의 집에서 가인으로 있다가 평양후의 기사가 되어 평양공주를 모셨다. 출세한 이후에는 평양공주와 결혼하였다. 생질 곽거병과 함께 무제 때 흉노를 일곱 차례나 물리쳐 관직이 大司馬‧大將軍에 이르렀다. <사기 권111. 위장군표기열전衛將軍驃騎列傳>

初,上為太子時,娶長公主女為妃。
당초 주상이 태자였을 때 장공주의 딸을 로 맞아들였다.

立為帝,妃立為皇后,姓陳氏,無子。
황제로 즉위하자 는 황후가 되었는데황후의 성은 陳氏였고 아들이 없었다.

上之得為嗣,大長公主有力焉,以故陳皇后驕貴。
주상이 후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대장공주의 힘이 컸기 때문에 진황후는 교만하고 오만해졌다.

聞衛子夫大幸,恚,幾死者數矣。
위자부가 큰 은총을 입었다는 사실을 듣고 크게 화를 내다가거의 죽을 뻔한 적이 몇 차례 있었다.

上愈怒。
주상은 갈수록 진황후에게 화를 냈다.

陳皇后挾婦人媚道,其事頗覺,於是廢陳皇后,而立衛子夫為皇后。
진황후가 부인들을 시켜 저주의 주술을 행하다가 그 일이 발각되었고이에 진황후를 폐위하고 위자부가 황후가 되었다.

▶ 陳皇后: 진아교. 武帝의 진황후는 長公主 嫖의 딸이었다. 애초 무제가 태자가 될 때 장공주가 힘을 써주어 장공주의 딸을 妃로 삼았다. 무제가 즉위하여 황후가 되자 총애를 믿고서 교만하고 사치하였는데 십여 년이 지나도 자식이 없었다. 衛夫子가 성은을 입었다는 소리를 듣고 분하여 숨이 넘어갈 뻔한 일이 여러 차례였으므로 임금은 점차 노하게 되었다. 왕비는 아양도 자못 노골적이어서, 元光 5년 무제가 이를 엄히 다스렸다. 여자 楚服등은 황후를 위해 푸닥거리를 하고 제사지내며 저주하는 등 대역무도한 죄를 저질러, 이 일에 연루되어 죽은 자가 삼백여 명이었다. 초복의 머리를 저자에 내걸고, 有司를 시켜 '황후는 질서를 어지럽히고, 미신에 홀려 하늘의 명을 받들 수 없으니, 옥새와 인수를 올리고 장문궁에 물러나 거하라.'는 책문을 황후에게 내렸다. "<漢書外戚傳〉
※무제가 어렸을 때 어린 궁녀 진아교를 보고 만약 진아교에게 장가들면 금으로 집을 지어 그 속에 모시어 두겠다고 했으며, 진아교는 황후가 된 뒤 오만하고 질투가 심하여 한무제의 사랑을 잃고 장문궁에 유폐되었다가 폐비가 된 고사를 이백이 ‘妾薄命’에 인용하였다.
▶ 大長公主: 황제의 고모를 대장공주라고 한다. 景帝때 劉嫖는 경제의 누이였으므로 장공주였으나, 무제에게는 고모가 되므로 대장공주라 한 것이다.
▶ 媚道: 사람을 현혹시키는 도술.

 

 

陳皇后母大長公主,景帝姊也,數讓武帝姊平陽公主曰:
「帝非我不得立,已而棄捐吾女,壹何不自喜而倍本乎!」
진황후의 어머니 대장공주는 경제의 누이였는데여러 번 무제의 누이 평양공주를 나무라면서 말하였다.
황제는 내가 아니었으면 즉위할 수 없었는데 그 후 내 딸을 버렸으니어찌 소중히 여기지 않고 근본을 저버릴 순 있단 말인가!”

平陽公主曰:
「用無子故廢耳。」
평양공주가 말하였다.
아들이 없기 때문에 폐위되었을 뿐이지요.”

陳皇后求子,與醫錢凡九千萬,然竟無子。
진황후는 아들을 얻으려고 의사에게 9천만 전이나 썼지만 끝내 아들을 낳지 못하였다.

▶ 讓: 꾸짖다.
▶ 棄捐: 내버리다. 버림을 여자가 남편에게 버림받다.
▶ 壹何: 무엇 때문에. 어떻게.
▶ 倍: 背와 통용된다. 배반하다. 등지다.

衛子夫已立為皇后,先是衛長君死,乃以衛青為將軍,擊胡有功,封為長平侯。
위자부가 황후가 되었을 때 그에 앞서 衛長君은 죽었고衛青이 장군이 되어 흉노를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워 長平侯에 봉해졌다.

青三子在襁褓中,皆封為列侯。
위청의 세 아들은 강보에 쌓인 채 모두 열후에 봉해졌다.

及衛皇后所謂姊衛少兒,少兒生子霍去病,以軍功封冠軍侯,號驃騎將軍。
위황후가 언니라고 부르는 衛少兒는 아들 霍去病을 낳았는데 軍功이 있어 冠軍侯에 봉해져 驃騎將軍으로 불리었다.

青號大將軍。
위청은 대장군으로 불렸다.

立衛皇后子據為太子。
위황후의 아들 劉據가 태자가 되었다.

衛氏枝屬以軍功起家,五人為侯。
위씨 친족 중 전공으로 집안을 일으킨 자 다섯이 가 되었다.

▶ 胡: 흉노.
▶ 霍去病: 전한의 명장으로 대장군 위청의 조카이다. 정예부대를 이끌고 대군보다 먼저 적진 깊숙이 쳐들어가는 전법으로 韓의 영토 확대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불과24세에 죽었다.
<史記列傳권111. 衛將軍驃騎列傳②霍去病
▶ 枝屬: 친족.
▶ 衛少兒: 위청의 둘째 누이 衛少兒는 원래 陳掌과 사통하고 있었다. 霍去病은 衛靑의 누이인 衛少兒의 아들로, 즉 衛家와 霍家는 외종간이다.



及衛后色衰,趙之王夫人幸,有子,為齊王。
위황후의 미모가 노쇠해지자 의 왕부인이 총애를 받았는데아들을 낳아 齊王에봉해졌다.

▶ 王夫人: 무제의 부인으로 齊王劉閎의 어머니이다. <漢書>에는 李夫人으로 기록되어 있다

 

王夫人蚤卒。
왕부인은 젊어서 죽었다.

而中山李夫人有寵,有男一人,為昌邑王。
이어 中山國의 李夫人이 총애를 받았는데아들 하나를 낳았으며 昌邑王에 봉해졌다.

▶ 李夫人: 절세의 가수 李延年의 여동생으로, 한무제의 추풍사에는

“懷佳人兮不能忘 : 아름다운 사람 생각함이여, 잊을 수가 없도다.라는 표현이 있다. <秋風辭>
https: //blog. naver. com/swings81/220859271557

 

李夫人蚤卒,其兄李延年以音幸,號協律。
이부인은 젊어서 죽었는데 그 오빠 李延年은 음악으로 총애를 받아 協律官이 되었다.

協律者,故倡也。
협률은 종전의 歌舞를 하는 연예인이다.

兄弟皆坐姦,族。
이연년의 형제는 모두 간통에 연루되어 멸족되었다.

是時其長兄廣利為貳師將軍,伐大宛,不及誅,還,而上既夷李氏,後憐其家,乃封為海西侯。
이 당시 그들의 큰형 李廣利는 貳師將軍이 되어 大宛을 공격하고 있어 죽음을 면하고 돌아왔는데주상이 이씨 집안을 멸족시킨 뒤라 그 집안을 가엾게 여겨 그를 海西侯에 봉하였다.

▶ 李延年: 전한 중기의 환관이자 음악 관료로 중산국 사람이다. 貳師將軍 이광리의 형으로, 누이동생이 무제의 측실이 된 덕분에 무제의 총애를 받았다. 이연년은 본래 부모·형제 자매와 함께 倡이었는데, 법을 어겨 궁형을 받은 뒤 狗中에서 일을 보았다. 한편 평양공주가 무제에게 이연년의 누이동생이 춤을 잘 춘다고 하였고, 무제는 그녀를 보고 내심 마음에 들어 하였다. 누이동생은 무제의 사랑을 받아 창읍애왕을 낳았고, 이연년은 2천 석의 인수를 받고 協聲律이라 불렸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이연년은 점점 궁녀와 사통하였으며, 궁궐을 드나드는 태도가 교만하고 방자해졌다. 또한 누이동생마저 죽은 후로는 무제의 총애가 식어, 결국 동생 이계와 함께 잡혀 처형되었다.
<史記列傳]권125佞幸列傳>
▶ 協律: 協聲律. 관직명.
▶ 倡: 가무인. 노래와 춤을 추는 연예인.
▶ 族: 멸족하다.
▶ 李廣利: 황제가 寵姬인 李氏의 집안을 侯로 삼고자 하였는데, 李夫人의 오빠인 廣利를 임명하여 貳師將軍으로 삼아 大宛을 공격하게 하니, 貳師城에 이르러서 좋은 말을 취할 것을 기약하였다. 그래서 그를 貳師將軍이라 호칭하였다. <史記列傳권123大宛列傳>

 

他姬子二人為燕王、廣陵王。
다른 姬妃가 낳은 두 아들은 燕王과 廣陵王에 봉해졌다.

其母無寵,以憂死。
그들의 어머니는 총애를 받지 못해 우울해하다가 죽었다.

及李夫人卒,則有尹婕妤之屬,更有寵。
이부인이 죽자 尹婕妤같은 무리가 번갈아가며 총애를 받았다.

然皆以倡見,非王侯有土之士女,不可以配人主也。
그러나 모두가 가수 신분으로 무제를 알현하여 封地를 가진 왕후 집안의 여자들이 아니므로 황제의 배필이 될 자격이 없었다.

▶ 婕妤: 韓 때 궁중의 妃嬪의 칭호.
▶ 更: 번갈아. 교대로.
▶ 土: 封地.

 

褚先生曰:
褚先生은 말한다.

臣為郎時,問習漢家故事者鐘離生。
신이 郎官으로 있을 때 韓 왕가의 옛날 일을 잘 알고 있는 鍾離生에게 물었다.


曰:王太后在民閒時所生子[一]女者,父為金王孫。
종리생이 이렇게 말하였다.
왕태후가 민간에 있을 때 딸 하나를 낳았는데 그 아버지가 金王孫이었다.


王孫已死,景帝崩後,武帝已立,王太后獨在。
김왕손은 이미 죽었고경제가 세상을 떠난 뒤 무제가 즉위하였으며 왕태후 혼자 생존해 있었다.

▶ 褚先生: 褚少孫. 前漢의 史學家로 사마천의 <사기>를 보충하였다.
▶ 郎: 郎官. 황제를 호위하는 관리.
▶ 習: 상세히 알다.
▶ 故事: 옛일.
▶ 王太后: 孝景皇后王娡. 전한의 제6대 景帝의 부인이자 제7대 武帝 유철의 생모이다. 궁에 들어오기 전에 왕지는 金王孫에게 시집가서 딸 하나를 낳았었다. <史記世家권49. 外戚世家 (04/08>

 

 

而韓王孫名嫣素得幸武帝,承閒白言太后有女在長陵也。
韓王孫은 이름이 으로 평소 무제의 총애를 받았는데틈을 타서 왕태후에게는 장릉에 사는 딸이 하나 있다고 무제에게 아뢰었다.

武帝曰:
「何不蚤言!」
무제가 말하였다.

어째서 일찍 말하지 않았느냐!”

乃使使往先視之,在其家。
이에 사람을 보내 먼저 살펴보게 하니 딸이 그 집에 살고 있었다.

武帝乃自往迎取之。
무제는 친히 그녀를 맞이하러 갔다.

蹕道,先驅旄騎出橫城門,乘輿馳至長陵。
거리에 통행을 금하고 깃발을 앞세운 기병들이 橫城門을 나가자 무제의 어가가 장릉으로 달려갔다.

▶ 韓王孫: 韓嫣. 韓王信의 증손이자, 弓高侯 韓穨當의 손자로 字가 王孫이며, 말타기에 능하고 총명한 자였다. 무제가 교동왕이던 시절에 동문수학한 사이였다. 무제가 즉위한 후에는 흉노 공격을 지지하였으며, 또 무예에 뛰어나 무제의 총애를 받아 같은 침실에서 잠을 잘 정도였다. <사기 권109. 李將軍列傳>
▶ 承閒白言: 기회를 틈타 보고하다. 承은 乘과 통용된다. 白言은 보고하다.
▶ 蹕道: 고대 천자가 출행할 때 길을 청소하고 사람의 통행을 금지하는 일.
▶ 旄騎: 황제의 의장 행렬에 선도를 서는 기병. 旄는 소꼬리가 장식된 흰색 깃발.
▶ 乘輿: 황제의 御駕.

 

 

當小市西入里,里門閉,暴開門,乘輿直入此里,通至金氏門外止,使武騎圍其宅,為其亡走,身自往取不得也。
작은 시장 서쪽에서 마을로 들어섰는데마을의 문이 닫혀 있자 난폭하게 문을 열고 어가가 곧장 그 마을로 들어섰으며김씨 집의 문밖에 멈추어서 무장한 기병들에게 그 집을 에워싸게 하였는데이는 그녀가 달아나 버리면 친히 갔는데 데려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即使左右群臣入呼求之。
곧 좌우 신하들에게 들어가서 고함을 지르며 그녀를 찾게 하였다.

家人驚恐,女亡匿內中床下。
집안사람들은 겁에 질렸고그녀는 도망쳐 안방 침대 밑에 숨었다.

扶持出門,令拜謁。
신하들이 그녀를 부축하여 문을 나와 인사를 올리게 하였다.

武帝下車泣曰:
「嚄!大姊,何藏之深也!」
무제는 마차에서 내려 울면서 말하였다.
아이고큰누님어찌하여 이렇게 깊은 곳에 숨어 계셨습니까!”

詔副車載之,迴車馳還,而直入長樂宮。
딸린 수레에 그녀를 태우고 수레를 돌려서 달려 돌아가되 곧장 長樂宮으로 들어가라고 명하였다.

▶ 嚄: 아이고!
▶ 副車: 황제의 수레를 따라가는 수레.
▶ 馳: 빨리 달리다.
▶ 長樂宮: 韓 때 태후의 궁전.

 

 

行詔門著引籍,通到謁太后。
가는 길에서 궁을 지키는 관리들에게 통행 명패를 준비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곧장 궁궐로 들어가 태후에게 인사를 올렸다.

太后曰:
「帝倦矣,何從來?」
태후가 말하였다.

황제께서 피곤해 보이십니다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帝曰:
「今者至長陵得臣姊,與俱來。」
황제가 대답하였다.

오늘 장릉에 가서 제 누이를 찾아 데리고 함께 왔습니다.”

顧曰:
「謁太后!」
고개를 돌려 누이에게 말하였다.

태후께 인사드리십시오!”

太后曰:
「女某邪?」

태후가 말하였다.
네가 그 딸이더냐?”

曰:
「是也。」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太后為下泣,女亦伏地泣。
태후가 눈물을 떨어뜨리자 딸도 바닥에 엎드려 울었다.

武帝奉酒前為壽,奉錢千萬,奴婢三百人,公田百頃,甲第,以賜姊。
무제는 술을 받들고 앞으로 나와 祝壽하였으며, 1천만 전의 돈과 노비 300공전 100 , 1등급의 저택을 누이에게 하사하였다.

太后謝曰:
「為帝費焉。」
태후가 감사하여 말하였다.

황제에게 돈을 너무 많이 쓰게 했구려!”

▶ 行: 도중. 路上.
▶ 引籍: 궁궐을 드나들 때 궁문에 드나들기를 허락한 명패.
▶ 女某邪: 왕태후가 딸에게“네가 某(: 이름)이냐?”라고 한 것이다.
▶ 為壽: 축수하다. 오래 살기를 빌다.
▶ 甲第: 큰 저택. 1등급의 저택.

 

 

於是召平陽主、南宮主、林慮主三人俱來謁見姊,因號曰修成君。
이어 平陽公主南宮公主林慮公主 세 사람을 모두 불러 언니에게 인사를 드리게 하고 그녀를 修成君으로 부르게 하였다.

有子男一人,女一人。
수성군에게는 아들 하나딸 하나가 있었다.

男號為修成子仲,女為諸侯王王后。
아들은 修成子仲으로 불렸고딸은 제후왕의 왕후가 되었다.

此二子非劉氏,以故太后憐之。
이 두 사람은 劉氏가 아니었기 때문에 태후가 이들을 가엾게 여겼다.

修成子仲驕恣,陵折吏民,皆患苦之。
수성자중은 교만 방자하여 관리와 백성들을 괴롭히고 압박하였으므로 모두 그를 싫어하고 두려워하였다.’

▶ 陵折: 괴롭히고 압박하다. 陵은凌과 통용된다.



衛子夫立為皇后,后弟衛青字仲卿,以大將軍封為長平侯。
위자부가 황후가 되었을 때 황후의 동생 衛青은 가 仲卿이었으며대장군의 신분으로 장평후에 봉해졌다.

四子,長子伉為侯世子,侯世子常侍中,貴幸。
아들 넷이 있었는데큰아들 은 侯世子가 되었으며후세자는 일찍이 무제를 모시는 시중에 임명되었으므로 존귀함과 총애를 받았다.

其三弟皆封為侯,各千三百戶,一曰陰安侯,二曰發干侯,三曰宜春侯,貴震天下。
그의 세 동생들은 모두 로 봉해져 각각 1,300호를 받았는데하나는 陰安侯하나는 發干侯하나는 宜春侯로 불리면서 그들의 부귀함이 천하를 진동하였다.

天下歌之曰:
「生男無喜,生女無怒,獨不見衛子夫霸天下!」
세간에서는

아들을 낳았다고 기뻐하지 말고딸을 낳았다고 화내지 말라위자부가 천하에 으뜸임을 보지 못했는가!”
라는 노래가 있었다.

▶ 世子: 제왕과 제후의 嫡長子.
▶ 常: 일찍이.

 

是時平陽主寡居,當用列侯尚主。
당시 평양공주는 과부로 수절하고 있었으므로열후를 찾아 공주의 남편이 되게 해야 하였다.

主與左右議長安中列侯可為夫者,皆言大將軍可。
공주가 측근들과 장안의 열후들 중 남편이 될 만한 사람을 상의했는데 모두가 대장군 위청이면 가하다고 말하였다.

主笑曰:
「此出吾家,常使令騎從我出入耳,柰何用為夫乎?」
공주가 웃으면서 말하였다.
그 사람은 우리 집 출신으로내가 출입함에 늘 말을 타고 나를 호위하게 했는데 어찌 남편으로 삼는단 말인가?”

左右侍御者曰:
「今大將軍姊為皇后,三子為侯,富貴振動天下,主何以易之乎?」
좌우 시종들이 말하였다.
지금 대장군의 누이는 황후이시고 아들 셋은 가 되어 그 부귀가 천하를 진동하는데 공주께서는 어째서 그를 경시하십니까?”

於是主乃許之。

이에 공주는 혼사를 허락하였다.

言之皇后,令白之武帝,乃詔衛將軍尚平陽公主焉。
이 일을 황후에게 알려 무제에게 보고하게 하니곧 위장군을 평양공주와 혼인시키라는 조서를 내렸다.

▶ 尚: 신분·지위가 높은 상대와 결혼하다.
▶ 易: 경시하다.

 

褚先生曰:
저선생은 말한다.

丈夫龍變。
대장부는 용처럼 변할 수 있다.

傳曰:
「蛇化為龍,不變其文;
家化為國,不變其姓。」
전에 말하기를

뱀이 용으로 변신해도 몸의 무늬는 바뀌지 않고,
집안이 커져 나라가 되어도 그 은 바꾸지 아니한다.’

라고 하였다.

丈夫當時富貴,百惡滅除,光耀榮華,貧賤之時何足累之哉!
대장부가 때를 만나 부귀해지면 크고 작은 오점들은 모두 사라지니영화가 빛나기만 한다면 가난하고 천했을 때에 어찌 속박되겠는가!”

▶ 文: 紋과 같다. 무늬.
▶ 累: 연루되다.

 

武帝時,幸夫人尹婕妤。
무제 때 부인 尹婕妤를 사랑하였다.

邢夫人號娙娥,眾人謂之「娙何」。
邢夫人은 관직이 娙娥라 했는데사람들은 그녀를 娙何로 불렀다.

娙何秩比中二千石,容華秩比二千石,婕妤秩比列侯。

형하의 品級은 녹봉 中二千石에 상당하였고容華의 품급은 녹봉 二千石에 상당했으며첩여의 품급은 열후의 녹봉에 상당하였다.

常從婕妤遷為皇后。
대체로 첩여에서 황후로 올라갔다.

▶ 婕妤: 韓 때 궁중의 妃嬪의 칭호.
▶ 娙娥: 韓 때 궁중의 여자의 官職이름.
▶ 秩: 녹봉. 品級.
▶ 中二千石: 당시 漢나라 제도는 관리가 받는 祿俸의 많고 적음에 따라 관리의 등급을 정했는데 二千石은 中二千石·二千石·比二千石의3대 등급으로 중이천석이 가장 높은 등급이다.
▶ 容華: 한나라 때 궁중의 여자의 官職.

 

尹夫人與邢夫人同時并幸,有詔不得相見。
윤부인은 형부인과 동시에 총애를 받았는데무제는 두 사람이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조서를 내렸다.

尹夫人自請武帝,願望見邢夫人,帝許之。
윤부인이 친히 무제에게 청하여 형부인을 만나고 싶다고 하자 황제가 이를 허락하였다.

即令他夫人飾,從御者數十人,為邢夫人來前。
곧 다른 부인을 분장시켜 시종 수십 명을 딸려 형부인인 척하고 데려가도록 하였다.

尹夫人前見之,曰:
「此非邢夫人身也。」
윤부인이 앞으로 나와 그녀를 보고 말하였다.

이 사람은 형부인 본인이 아닙니다.

帝曰:
「何以言之?」
무제가 말하였다.

어째서 그렇게 말하시오?”

對曰:
「視其身貌形狀,不足以當人主矣。」
윤부인이 대답하였다.

그 용모와 자태를 보면 군주의 배필이 되기에 부족합니다.

於是帝乃詔使邢夫人衣故衣,獨身來前。
이에 무제는 형부인에게 낡은 옷을 입고 혼자 앞으로 걸어 나오라고 명하였다.

尹夫人望見之,曰:
「此真是也。」
윤부인이 멀리서 그녀를 보고 말하였다.

저 사람이 진짜로구나.”

於是乃低頭俛而泣,自痛其不如也。
그리고는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자신이 그녀보다 못함을 비통해하였다.

諺曰:
「美女入室,惡女之仇。」
속담에 일렀다.

미녀가 집안에 들어오면 추녀의 원수가 된다.”

▶ 俛(부): 숙이다. 구부리다.

 

褚先生曰:
저선생은 말한다.

浴不必江海,要之去垢;
馬不必騏驥,要之善走;
士不必賢世,要之知道;
女不必貴種,要之貞好。
목욕에 반드시 강과 바다가 필요하지는 않으나중요한 것은 때를 없애야 한다.
말이 반드시 준마일 필요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잘 달려야 한다.
선비가 반드시 세인보다 현명할 필요는 없지만 도리는 알고 있어야 한다.
여자가 반드시 귀족일 필요는 없지만 절개가 곧고 아름다워야 한다.

傳曰:
「女無美惡,入室見妒;
士無賢不肖,入朝見嫉。」
옛날 책에 일렀다.
여자는 미인이거나 추녀이거나 집에만 들어가면 질투를 받고,
선비는 현명하거나 현명하지 못하거나 조정에만 들어가면 질투를 받는다.”

美女者,惡女之仇。豈不然哉!
미녀가 추녀의 원수이다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 要: 중요하다.
▶ 賢世: 세상 사람들보다 우수하다.

▶ 傳曰: 古书上说。 替经书作注的著作。
▶ 不肖: 不賢.
▶ 女無美惡: “여자는 미인이거나 추녀이거나 궁중에 있기만 하면 질투를 받게 되고, 선비는 현명하거나 현명하지 못하거나 조정에 들어가기만 하면 의심을 받는다고 하였다. <女無美惡,居宮見妒;士無賢不肖,入朝見疑. >”
[史記列傳권105. 扁鵲倉公列傳 (12/12②

鉤弋夫人姓趙氏,河閒人也。
鉤弋夫人은 성이 趙氏이고 河間사람이다.

得幸武帝,生子一人,昭帝是也。
무제의 총애를 얻어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昭帝가 그이다.

武帝年七十,乃生昭帝。

무제 나이 70세에 소제가 태어났다.

昭帝立時,年五歲耳。
소제가 즉위했을 때 나이가 겨우 다섯 살이었다.

▶ 鉤弋夫人: 漢武帝 劉徹이 총애한 妃이다. 漢昭帝 劉弗陵의 생모이다. 鉤弋宮에 거주하여 구익부인이라 칭한 것이다.
▶ 昭帝: 前漢의 제8대 황제. 刘弗陵. 武帝의 아들로 8세의 나이로 즉위하였으며 곽광, 桑弘羊등이 무제의 유언을 받들어 정사를 보좌하였다.
▶ 武帝年七十: 소제는 太始 3년(기원전94년)에 태어났으며, 무제는 63세였다. 소제는 무제가 71세 때 즉위했으므로 소제의 나이는 응당 8세이어야 한다.

衛太子廢後,未復立太子。
衛太子를 폐위시킨 뒤 다시 태자를 세우지 않았다.

而燕王旦上書,願歸國入宿衛。
그런데 연왕 이 글을 올려 國都로 돌아가 입궁하여 황제를 보위하길 원한다고 하였다.

武帝怒,立斬其使者於北闕。
무제가 노하여 바로 그의 사신을 北闕에서 목을 베었다.

▶ 衛太子廢後: 衛太子는 戾太子 劉據를 말한다. 유거는 武思皇后 衛氏소생이다. 征和 2기원전91년, 당시 武帝를 저주한다는 유언비어가 있자 武帝가 江充에게 이를 다스리게 하였다. 江充이 武帝의 총애를 믿고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戾太子를 압박하고자 저주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나무로 만든 인형이 태자궁에서 많이 나왔다고 무고하였다. 이에 戾太子는 황제가 도성에 없는 틈을 타 궁중 수비병을 동원하여 江充을 살해하였다. 이를 태자의 반란이라고 여긴 무제가 軍士를 보내 체포하려 하자 戾太子는 虢州로 도망갔으나 죄를 면할 수 없음을 알고 자결하였는데, 이 사건으로 그의 처자식과 수많은 사람이 처형되었다. <漢書>
▶ 燕王旦: 燕剌王 劉旦. 무제의 셋째 아들로 昭帝의 형이다.
▶ 國: 國都.
▶ 宿衛: 궁궐을 호위하기 위해 숙직을 하는 警衛. 숙위가 되겠다고 한 것은 연왕 단의 완곡한 표현으로 태자가 되겠다는 뜻이다.
▶ 北闕: 황궁 북쪽의 門樓.

 

上居甘泉宮,召畫工圖畫周公負成王也。
주상이 甘泉宮에 거처할 때화공을 불러 周公이 成王을 업은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於是左右群臣知武帝意欲立少子也。
이에 좌우 신하들은 무제가 막내아들을 태자로 세우려 함을 알게 되었다.

後數日,帝譴責鉤弋夫人。
며칠 뒤 무제는 鉤弋夫人을 견책하였다.

夫人脫簪珥叩頭。
부인은 비녀와 귀고리를 벗고 머리를 조아렸다.

帝曰:
「引持去,送掖庭獄!」
무제가 말하였다.

끌어내서 掖庭獄으로 보내라!”

夫人還顧,帝曰:
「趣行,女不得活!」
부인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무제가 말하였다.

빨리 가거라너는 살 수 없다!”

夫人死雲陽宮。
부인은 雲陽宮에서 죽었다.

時暴風揚塵,百姓感傷。
그때 광풍으로 먼지가 날았고백성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使者夜持棺往葬之,封識其處。
사신이 밤에 관을 가지고 가서 장례를 지내고 봉분을 덮어 표지로 삼았다.

▶ 甘泉宮: 陝西省에 있는 甘泉山 위에 진시황이 지은 궁전으로 雲陽宮이라고도 한다. 한무제 때 궁전을 완성하였다.
▶ 周公負成王: 周公 旦은 周무왕의 동생으로 周무왕이 죽자 무왕의 아들 성왕을 즉위시키고 자신은 섭정을 하였다. 負는 등에 업다.
▶ 珥: 귀고리.
▶ 掖庭: 永巷. 妃嬪, 궁녀들을 가두어두던 正殿 옆에 있는 궁전
▶ 趣: 빨리 가다.
▶ 女: 汝와 같다. 너.
▶ 識: 志와 통용된다. 표시하다.

 

其後帝閒居,問左右曰:
「人言云何?」
그 뒤 황제가 한가할 때 측근에게 말하였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더냐?”

左右對曰:
「人言且立其子,何去其母乎?」
측근이 대답하였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 아들을 세우려 하면서 어째서 그 어머니는 죽이는가?’라고 말합니다.”

帝曰:
「然。

是非兒曹愚人所知也。
往古國家所以亂也,由主少母壯也。
女主獨居驕蹇,淫亂自恣,莫能禁也。
女不聞呂后邪?」
황제가 말하였다.

그렇겠지.
이것은 어린애들과 어리석은 자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옛부터 나라에 난리가 났던 까닭은 군주는 어리고 어미가 젊었기 때문이다.
젊은 태후가 혼자 살면 오만 불손해지고 음란하고 방자해져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다.
그대들은 呂后의 일을 듣지 못했는가?”

▶ 兒曹: 어린아이들.
▶ 驕蹇: 오만 불손하다.

 

故諸為武帝生子者,無男女,其母無不譴死,豈可謂非賢聖哉!
이 때문에 무제의 자식을 낳은 어미는 (자식의남녀를 막론하고그 어미를 질책하여 죽이지 않음이 없었으니이 어찌 성현이 아니라고 이르겠는가!

昭然遠見,為後世計慮,固非淺聞愚儒之所及也。
화하게 멀리 내다보며 후대를 위하여 꾀한 일이었으니진실로 견문이 천박하고 아둔한 유생들이 미칠 바가 아니다.

謚為「武」,豈虛哉!
라는 시호가 어찌 虛名이겠는가!

▶ 譴: 견책하다. 질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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