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篇은 30세가 중 16번째 편으로 田齊의 시조인 田完<: 陳完>과 그의 후대에 대한 기록이다.
陳完은 춘추시대 사람으로 시호는 敬仲이다. 본래 陳의 공자로 陳厲公의 아들이다. 진선공이 첩의 아들인 後日 진목공을 세우고자 태자 어구를 죽였다. 완은 태자 어구와 사이가 좋았으므로 죽임을 당할까 우려하여 齊로 달아났다. 齊환공은 진완을 卿으로 삼으려 했으나, 진완은 사양하고 工正을 지냈다. 완은 陳에서 성을 田으로 바꾸었다. 그리하여 田敬仲完이라고 한 것이다.
진완의 후손들은 齊에서 점차 권세를 잡았고, 8대 종주인 田成子때 齊정권을 독점했고, 기원전386년 田和가 姜姓인 齊의 대를 이어 田姓인 齊로 바뀌었으며, 11세손 제태공이 정식으로 제후에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威王, 宣王, 襄王때 전성기였으나, 기원전221년에 진시황이 파견한 장군 王賁이 마지막 왕 建을 사로잡으니, 齊는 멸망하였다.
사마천은 太史公自序에서
“陳完이 난리를 피해 齊에 도움을 청하러 갔다가 5대에 걸쳐 은밀히 은덕을 베푸니 齊 사람들이 그들을 칭송하였다. 田成子 때 齊 정권을 독점했고, 田和 때 제후에 봉해졌다. 齊왕 建이 간계에 빠져 秦에 항복하니 秦은 그를 共으로 옮겨 살게 하였다.
齊威王과 齊宣王이 난세를 이겨내고 홀로 周왕실을 받든 것을 칭송하여 제16편 <田敬仲完世家>를 지었다.”
라고 기록하였다.
아래의 내용은 <사기> 陳杞世家에 기록되어 있다.
陳完者,陳厲公他之子也。
陳完은 陳厲公 他(躍)의 아들이다.
完生,周太史過陳,陳厲公使卜完,卦得觀之否:
「是為觀國之光,利用賓于王。
此其代陳有國乎?
不在此而在異國乎?
非此其身也,在其子孫。
若在異國,必姜姓。
姜姓,四嶽之後。
物莫能兩大,陳衰,此其昌乎?」
完이 태어났을 때 周의 太史가 陳을 방문하였으므로, 진여공이 완에 대해 점을 치게 했더니, ‘觀’에서 ‘否’로 변하는 점괘가 나오자, 말하였다.
“이는 나라의 빛을 보는 것이니, 군왕에게 손님대접을 받아 이롭다는 괘입니다.
이 사람은 아마 陳을 대신하여 나라를 갖겠습니다.
여기에서가 아니라 아마 다른 나라이겠습니다.
이 사람이 아니라 그 자손에게 있을 터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라면 필시 姜姓의 나라일 터입니다.
강성은 四嶽의 후손입니다.
사물은 두 개가 동시에 성대할 수 없으니, 陳이 쇠하여야 아마 그가 창성하겠습니다.”
▶ 陳完: 춘추시대 齊 사람으로 敬仲 또는 公子完, 陳完으로도 불린다. 陳의 公子로 齊에 망명하여 제환공을 섬겨 卿이 되고, 뒤에 田으로 성을 바꾸었다. 田成子 田常의 선조이다.
▶ 陳: 舜임금의 후손 胡公 滿이 기원전1045년 주무왕에 의하여 陳에 책봉되어 성립되었으며, 기원전478년 楚에 의해 멸망하였다. <사기세가 권36. 陳杞世家>
▶ 陳厲公他: 춘추시대 陳의 군주로 躍이며, 陳桓公의 동생인데, 일설에는 환공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7년 동안 재위했고, 시호는 厲다.
환공의 병이 위중할 때 陳에 난리가 나서 文公의 아들 佗가 太子 免을 죽이고 대신 군주가 되었다. 佗는 陳桓公의 아우 五父이다. <춘추좌씨전 桓公 6년>
五父는 陳佗이므로 陳厲公이 아니다. 즉, 사마천이 陳佗와 陳躍을 착각하여 잘못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史記世家]권36. 陳杞世家
▶ 卦得觀之否: <觀>괘에서 <否>괘로 변하는 괘를 얻다. <觀>과 <否>는 卦의 이름.
※風地觀[☴☷] : 위는 風이고 아래는 地이다. 觀은 살핀다는 뜻이다. 땅위에 바람이 불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니 이러한 변화를 잘 관찰하여야 한다는 뜻에서 觀을 괘의 이름으로 하였다. 이 괘를 얻은 사람은 땅 위에 바람이 불어 지금까지 잠잠했던 일에 큰 변화가 생김을 암시한다.
※天地否[☰☷] : 위는 天이고 아래는 地이다. 否는 ‘막히다’ ‘답답하다’라는 뜻이다. 하늘은 하늘대로 위에 있고 땅은 땅대로 아래에 있으니 천지 화합이 일어나지 않아 막혀 있는 상태이므로 답답하다는 뜻으로 否를 괘의 이름으로 하였다. 이 괘를 얻은 사람은 모든 일이 침체되어 난처한 지경에 처해있다. 하늘은 하늘, 땅은 땅이라는 식으로 화합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반목의 상태가 지속된다. 답답하고 안타깝겠지만 적당한 시기가 올 때까지 은인자중함이 상책이다.
▶ 觀國之光,利用賓于王: <觀>卦 六四의 爻辭이다. 나라의 빛을 봄이니 왕에게 손님대접을 받는 것이 이롭다고 하였다. <주역30. 風地觀>
陳는 舜의 후손으로 周나라의 빈객이 된 나라인데, 지금 敬仲이 이 卦를 얻었으니, 그가 陳을 대신해 나라를 갖게 됨을 뜻한다.
▶ 此其身: 陳完을 말한다.
▶ 姜姓: 姜姓의 나라, 즉 齊를 말한다.
▶ 四嶽之後: 姜姓의 선조는 堯임금의 四嶽(: 사방 제후를 관장하는 관직명)이었다.
厲公者,陳文公少子也,其母蔡女。
陳厲公은 陳文公의 막내아들로 그의 어머니는 蔡女였다.
文公卒,厲公兄鮑立,是為桓公。
문공이 죽자 厲公의 형 鮑가 즉위하니 그가 桓公이다.
桓公與他異母。
진환공과 아우인 他(躍)는 어머니가 달랐다.
及桓公病,蔡人為他殺桓公鮑及太子免而立他,為厲公。
환공이 병이 나자 蔡 사람들이 他(躍)를 위해 진환공 鮑와 태자 免을 죽이고 타를 세워 厲公이 되었다.
厲公既立,娶蔡女。
여공은 즉위한 후 蔡의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
蔡女淫於蔡人,數歸,厲公亦數如蔡。
蔡女는 蔡의 사람과 간음하며, 자주 蔡로 돌아가니, 여공 또한 여러 차례 蔡에 갔다.
▶ 陳文公: 춘추시대 陳의 군주로 이름은 圉이다. 아버지 平公이 죽은 후 뒤를 이었다. 문공 원년(기원전754년), 蔡 여자와 혼인하여 아들 佗를 얻었다. 문공10년(기원전745년)에 죽으니, 장남 鮑(: 환공)가 뒤를 이었다.
▶ 蔡: 주무왕이 친동생 蔡叔 度를 봉하여 시작되었으며, 기원전531년 楚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였다.
▶ 桓公: 陳桓公. 춘추시대 陳의 군주로 이름은 鮑이다. 文公의 장남이며, 아버지 문공이 죽은 후 뒤를 이었다.
▶ 佗: 陳文公의 아들. 陳桓公의 아우 五父이다.
▶ 及桓公病: 환공의 병이 위중할 때 陳에 난리가 나서 文公의 아들 佗가 太子 免을 죽이고 대신 군주가 되었다. 佗는 陳桓公의 아우 五父이다. 五父는 陳佗이므로 陳厲公이 아니다. 즉, 사마천이 陳佗와 陳躍을 착각하여 잘못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 數: 여러 차례.
桓公之少子林怨厲公殺其父與兄,乃令蔡人誘厲公而殺之。
환공의 막내아들 林이 여공이 자신의 아버지와 형을 죽였음에 원한을 품고, 蔡 사람들을 시켜 여공을 유인하여 죽였다.
林自立,是為莊公。
林이 스스로 즉위하여 莊公이 되었다.
故陳完不得立,為陳大夫。
이 때문에 진완은 즉위하지 못하고 陳의 대부가 되었다.
厲公之殺,以淫出國,故《春秋》曰「蔡人殺陳他」,罪之也。
여공을 죽임은 음탕한 짓을 위해 출국하였기 때문으로, 따라서 <春秋>에는
“蔡 사람이 陳他를 죽였다.”
라고 했는데 그를 나무란 것이다.
▶ 蔡人誘厲公而殺之: 여공7년(기원전700년)에 여공이 죽인 환공의 태자 免의 세 동생인 큰 동생 躍, 가운데 동생 林, 막내 동생 杵臼 세 사람이 함께 蔡 사람을 시켜 미녀로 여공을 유혹하게 하여, 蔡 사람과 함께 여공을 죽이고 躍을 옹립하니 그가 利公이다. 利公은 환공의 아들이다. 이공이 즉위한 지 5개월 만에 죽고, 둘째 동생인 林이 즉위하니 그가 莊公이다. <사기 진기세가>
陳의 역사 기록에 利公은 없으므로 사기의 오류로 인정되어 혼란을 주고 있다. 陳厲公은 기원전706년에 즉위하여 기원전700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7년간 재위하였다. 진여공이 죽은 후 그의 동생 林이 즉위하였으며 그가 莊公이다.
▶ 蔡人誘厲公: 蔡 사람과 佗를 죽였으므로 여공을 죽였다는 것은 잘못 기록된 것이다. <춘추곡량전·魯桓公 6년>
▶ 莊公: 陳莊公. 춘추전국시대 陳의 제15대 군주. 陳桓公의 아들이며, 陳厲公의 동생이다. 7년동안 재위하였다.
▶ 罪: 탓하다.
莊公卒,立弟杵臼,是為宣公。
장공이 죽자 동생 杵臼를 세우니 宣公이다.
宣公[二]十一年,殺其太子御寇。
선공21년(기원전672년), 선공이 태자 御寇를 죽였다.
御寇與完相愛,恐禍及己,完故奔齊。
어구와 진완은 서로 좋아했는데, 화가 자신에게 미칠까 염려하여 완은 齊로 도망갔다.
齊桓公欲使為卿,辭曰:
「羈旅之臣幸得免負檐,君之惠也,不敢當高位。」
齊桓公이 진완을 卿으로 삼으려고 하자 사양하며 말하였다.
“객으로 빌붙어 사는 제가 화를 면함만도 군주의 은혜인데, 높은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桓公使為工正。
제환공은 그를 工正으로 삼았다.
▶ 宣公: 陳宣公. 춘추시대 陳의 군주로 이름은 杵臼이며, 桓公의 少子이며 장공의 동생이다. 寵姬의 아들 款을 태자로 삼으려고 태자인 御寇를 살해하였다. 45년 동안 재위하였다.
▶ 御寇: 宣公이 태자로 옹립한 큰아들.
▶ 羈旅之臣: 나그네로 타국에 붙어사는 신하.
▶ 負檐: 수고. 檐은 擔과 통용된다.
▶ 工正: 국가의 각종 工事·工業을 감독하는 고위 직책.
齊懿仲欲妻完,卜之,占曰:
「是謂鳳皇于蜚,和鳴鏘鏘。
有媯之後,將育于姜。
五世其昌,并于正卿。
八世之後,莫之與京。」
齊의 대부 懿仲이 진완에게 딸을 주고 싶어서 점을 쳤더니 점괘가 이러하였다.
“이는 봉황이 날고 쟁쟁하게 울어 화답하는 것이다.
嬀氏의 후손이 장차 강씨의 나라에서 자라날 터이다.
5대에 이르면 번창하여 正卿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
8대 이후에는 그보다 높은 자가 없을 터이다.”
卒妻完。
결국 진완을 사위로 삼았다.
完之奔齊,齊桓公立十四年矣。
완이 齊로 도망 온 것이 제환공14년(기원전672년)이었다.
▶ 懿仲: 齊의 대부.
▶ 占: 점괘.
▶ 鳳皇: 전설상의 새로 鳳은 수컷, 凰은 암컷이다. 鳳凰于飛는 <詩經·大雅·卷阿>의 한 구절이다.
▶ 蜚: 飛와 같다.
▶ 鏘鏘: 봉황의 울음소리. 아름다운 소리.
▶ 嬀氏: 陳의 초대 군주 胡公滿은 虞舜의 후손으로 요임금이 嬀水 가에 살게 했으며, 그의 후손들이 그곳을 성씨로 삼으니 성을 嬀氏라 하였다.
▶ 育: 자손이 자라나다.
▶ 姜: 齊를 말한다. 齊는 姜姓의 나라이다.
▶ 并: 나란히 하다.
▶ 八世之後: 陳成公 원년(기원전598년)에 陳이 처음으로 멸망했을 때 경중의 5대손 진환자가 齊에서 강대해졌고, 그 뒤 齊가 멸망하자 8대손인 전성자가 齊의 실권을 잡게 되었다. <동래박의>
▶ 京: 크다. 기운이나 세력이 한창 왕성하다. 높다.
▶ 齊桓公: 춘추시대 齊의 제16대 군주로 성은 姜, 이름은 小白이다. 姜太公의 12세손이며, 춘추시대의 覇王이다. 高傒와 포숙아의 활약에 의해 공자 규와의 왕위 계승 분쟁에서 승리해 齊의 군주가 되었다.
完卒,謚為敬仲。
진완이 죽자 시호를 敬仲이라 하였다.
仲生稚孟夷。
경중은 穉孟夷를 낳았다.
敬仲之如齊,以陳字為田氏。
경중은 齊로 가서 ‘陳’을 田氏로 바꾸었다.
田稚孟夷生湣孟莊,田湣孟莊生文子須無。
田穉孟夷는 湣孟荘을 낳았고, 전민맹장은 文子須無를 낳았다.
田文子事齊莊公。
田文子는 齊莊公을 섬겼다.
▶ 田文子: 齊 사람으로 이름은 須無이다. 진여공의 아들인 진완의 증손자로 齊 전씨 일가의 領袖의 하나이다.
▶ 齊莊公: 춘추시대 齊의 제25대 후작이며 이름은 光이다. 장공은 崔杼의 후처 당강과 정을 통했으며 이로 인해 최저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晉之大夫欒逞作亂於晉,來奔齊,齊莊公厚客之。
晉의 대부 欒逞이 晉에서 난을 일으키고 齊로 도망쳐오자 제장공이 그를 후하게 대우하였다.
晏嬰與田文子諫,莊公弗聽。
晏嬰과 전문자가 간언했으나 장공은 듣지 않았다.
▶ 欒逞: 춘추시대 晉 下卿. 欒盈으로도 쓴다. 欒黶의 아들이고, 시호는 懷이다. 晉平公이 처음 즉위했을 때 그를 公族大夫로 삼았다. 어머니 欒祁가 范宣子의 딸이었는데, 난염이 죽은 뒤 음행을 저질렀다. 어머니의 음행을 난영이 걱정하자 이를 두려워해 범선자에게 난영이 범씨 집안을 원망해 나쁜 일을 꾸민다고 모함을 하였다. 범선자가 이 말을 믿고 난영을 죽이려 하자 楚로 도망갔고, 다시 齊로 갔다. 평공8년에 몰래 齊 사신을 따라 晉에 들어와 난을 일으켰지만 싸움에 져서 曲沃으로 달아났다. 晉 사람이 포위해서 함락하고 난씨 일족을 모두 죽여버렸다. <春秋左氏傳 魯襄公21‧23년>
▶ 莊公: 齊莊公. 춘추시대 齊의 제25대 후작이며 이름은 光이다. 장공은 崔杼의 후처 당강과 정을 통했으며 이로 인해 최저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 晏嬰: 晏子. 춘추시대 齊의 명재상으로 자는 仲, 시호는 平이다. 齊靈公, 莊公, 景公 3대를 섬긴 재상으로서 절약 검소하고 군주에게 기탄없이 간언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사기 권62, 管晏列傳>
文子卒,生桓子無宇。
전문자가 죽었으며, 아들 桓子 無宇를 낳았었다.
田桓子無宇有力,事齊莊公,甚有寵。
전환자 무우는 힘이 세었으며, 제장공을 섬겨서 깊은 총애를 받았다.
▶ 田桓子無宇: 陳桓子. 춘추시대 齊의 대부, 이름은 無宇이며 시호가 桓子이다.
無宇卒,生武子開與釐子乞。
무우가 죽었는데, 그는 武子 開와 釐子 乞를 낳았다.
田釐子乞事齊景公為大夫,其收賦稅於民以小斗受之,其粟[稟]予民以大斗,行陰德於民,而景公弗禁。
田釐子 乞는 齊景公을 섬겨 大夫가 되었는데, 그가 백성들에게 세금을 거둘 때는 작은 됫박으로 거두고, 백성들에게 양식을 줄 때는 큰 됫박으로 주어, 은밀히 백성들에게 덕을 베풀었으나 제경공은 이를 금하지 않았다.
由此田氏得齊眾心,宗族益彊,民思田氏。
이리하여 전씨가 齊의 민심을 얻어, 종족은 갈수록 강성하였고, 백성은 전씨를 마음에 두었다.
晏子數諫景公,景公弗聽。
晏子가 자주 경공에게 간하였으나 경공은 듣지 않았다.
已而使於秦,與叔向私語曰:
「齊國之政卒歸於田氏矣。」
얼마 후 안자가 秦에 사신으로 가서 叔向과 개인적으로 대화하면서 말하였다.
“齊나라의 정권은 결국 전씨에게 돌아가겠소.”
▶ 齊景公: 齊莊公의 이복동생으로 이름은 杵臼이다. 장공을 살해한 대부 崔杼에 의해 옹립되었다. 궁실을 짓고 사냥개와 말을 모으기를 좋아하였으며 세금과 형벌을 무겁게 하며 사치가 끝이 없었다. 재위기간 동안 齊의 公室이 쇠퇴하고 田氏세력이 대두하였다.
▶ 稟: 식량을 내려주다.
▶ 陰德: 남에게 알려지지 않은 덕행.
▶ 晏嬰: 晏子. 춘추시대 齊의 명재상으로 자는 仲, 시호는 平이다.
▶ 叔向: 춘추시대 秦의 정치가이다. 秦平公의 사부로서 박학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辭令에 밝았다. 子産, 晏嬰과 더불어 춘추시대의 명현으로 꼽힌다.
이하 내용은 <史記>권32. 齊太公世家에 기록되어 있다.
晏嬰卒後,范、中行氏反晉。
안영이 죽은 뒤 范氏, 中行氏가 晉을 배반하였다.
晉攻之急,范、中行請粟於齊。
晉이 서둘러 공격하자 범씨와 중항씨가 齊에 식량을 요청하였다.
田乞欲為亂,樹黨於諸侯,乃說景公曰:
「范、中行數有德於齊,齊不可不救。」
田乞가 반란을 일으키고자 제후에 당파를 만들려고 제경공을 설득하였다.
“범씨와 중항씨는 여러 차례 齊에 덕을 베풀었으니 齊가 구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齊使田乞救之而輸之粟。
齊는 전기에게 그들을 구원하게 하고 식량을 보냈다.
▶ 范, 中行氏反晉: 晉혜공5년(기원전496년), 晉의 卿 中行氏와 范氏가 반란을 일으키자 智氏와 趙簡子로 하여금 그들을 공격하게 하였으며, 범씨와 중항씨는 齊로 달아났다
▶ 田乞(전걸/전기): 田釐子 또는 田僖子라고도 한다. 田桓子의 아들. 춘추시대 말기 齊의 대신. 기원전489년, 景公이 죽자 전기는 경공의 유지를 뒤엎고 제도공을 군주로 세웠으며, 전기의 아들 전상은 도공을 죽이고 簡公을 군주로 세웠다.
景公太子死,後有寵姬曰芮子,生子荼。
제경공의 태자가 죽은 후 芮子라는 경공의 寵姬가 있어 아들 荼를 낳았다.
景公病,命其相國惠子與高昭子以子荼為太子。
경공이 병이 들자 상국 國惠子와 高昭子에게 아들 荼를 태자로 세우라고 명하였다.
景公卒,兩相高、國立荼,是為晏孺子。
경공이 죽자 두 국상 고소자와 국혜자가 荼를 즉위시켰으니 그가 晏孺子이다.
而田乞不說,欲立景公他子陽生。
그러나 전기는 탐탁지 않게 여기고 경공의 다른 아들인 陽生을 세우려 하였다.
陽生素與乞歡。
양생은 평소 전기와 사이가 좋았다.
晏孺子之立也,陽生奔魯。
안유자가 즉위하자 양생은 魯로 도망갔다.
▶ 景公太子死 : 경공58년(기원전490년)여름, 경공의 부인 燕姬소생의 아들이 죽었다.
▶ 荼: 安孺子. 齊의 제27대 후작이다. 이름은 荼다. 어머니 예희가 총애를 받았으나, 예희가 천하고 도는 어렸으므로 대부들은 도가 후사가 될까 두려워 경공에게 나이 많고 어진 자로 태자를 삼기를 구하였다. 그러나 경공은 이를 듣지 않았고, 경공58년(기원전490년)에 병이 들자 비로소 국혜자와 고소자에게 명하여 도를 태자로 삼고 공자들을 쫓아내 萊땅으로 옮겼다. 경공이 죽자 도가 제후가 되었다.
▶ 國惠子: 國夏. 춘추시대 齊 사람으로 이름은 夏다. 大夫를 지냈다. 景王의 명령을 받아 高昭子와 함께 荼를 태자로 세웠다. 나중에 그와 고소자가 田乞와 鮑牧 및 대부들의 공격을 받자 莒로 달아났다.
▶ 高昭子: 高張. 齊의 대부.
▶ 陽生: 齊悼公. 춘추시대 말기 齊의 군주로 이름은 陽生이고, 景公의 아들이다.
田乞偽事高昭子、國惠子者,每朝代參乘,言曰:
「始諸大夫不欲立孺子。
孺子既立,君相之,大夫皆自危,謀作亂。」
전기는 고소자와 국혜자를 섬기는 척하여, 조회에 갈 때마다 參乘을 대신하며 말하였다.
“처음에 대부들이 유자를 세우지 않으려 했습니다.
유자가 즉위하고 군께서 상국이 되니 대부들이 모두 스스로 위기를 느끼고 반란을 꾀하려 합니다.”
又紿大夫曰:
「高昭子可畏也,及未發先之。」
또 전기가 대부들에게는 거짓으로 말하였다.
“고소자는 무서운 사람이니 그가 손을 쓰기 전에 선수를 쳐야 합니다.”
諸大夫從之。
대부들이 그 말에 따랐다.
田乞、鮑牧與大夫以兵入公室,攻高昭子。
전기와 鮑牧이 대부들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안유자의 궁으로 들어가서 고소자를 공격하고자 하였다.
昭子聞之,與國惠子救公。
고소자가 이 소식을 듣고 국혜자와 함께 안유자를 구원하였다.
公師敗。
안유자의 軍隊가 패하였다.
田乞之眾追國惠子,惠子奔莒,遂返殺高昭子。
전기의 무리가 국혜자를 추격하자 국혜자는 莒로 달아났으며, 전기의 무리는 되돌아와 고소자를 죽였다.
晏孺子[圉]奔魯
안영의 아들인 晏圉가 魯로 달아났다.
▶ 田乞偽事: 高張과 國夏가 景公의 명을 받고서 荼를 임금으로 세웠다. 전기가 이들을 살해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섬기는 것처럼 먼저 위장한 것이다.
▶ 參乘: 고대에 수레를 탈 때, 지위가 높은 사람은 왼쪽, 마부는 중앙, 모시는 사람이 오른쪽에 타는데, 이를 參乘이라 한다
▶ 紿: 속이다.
▶ 可畏: 무섭다. 두렵다.
▶ 公室: 군주의 거처.
▶ 鮑牧: 鮑國의 손자이다
▶ 晏圉: 晏嬰의 아들.
田乞使人之魯,迎陽生。
전기가 사람을 魯로 보내 양생을 맞이하였다.
陽生至齊,匿田乞家。
양생이 齊로 와서 전기의 집에 숨었다.
請諸大夫曰:
「常之母有魚菽之祭,幸而來會飲。」
전기가 대부들을 청하였다.
“田常의 모친이 제사를 지내니 오셔서 술과 음식을 드시기 바랍니다.
會飲田氏。
그리하여 전씨 집에 모여 먹고 마셨다.
田乞盛陽生橐中,置坐中央。
전기는 양생을 자루에 담아 자리의 한가운데 놓아두었다.
發橐,出陽生,曰:
「此乃齊君矣。」
자루를 열어 양생을 나오게 하며 말하였다.
“이 분이 바로 齊의 군주이십니다.”
▶ 陽生: 齊悼公. 춘추시대 말기 齊의 군주로 이름은 陽生이고, 景公의 아들이다.
▶ 常之母: 田嘗菽의 모친. 즉 田乞의 처.
▶ 魚菽之祭: 물고기와 콩을 차려 놓고 지내는 제사. 祭需가 변변치 못한 제사라는 뜻으로 자신의 집 제사를 낮추어 말한 것이다
大夫皆伏謁。
대부들이 모두 엎드려 인사를 올렸다.
將盟立之,田乞誣曰:
「吾與鮑牧謀共立陽生也。」
맹약을 하고 옹립하려고 전기가 거짓으로 말하였다.
“내가 포목과 함께 양생을 옹립하기로 모의하였소.”
鮑牧怒曰:
「大夫忘景公之命乎?」
포목이 화를 내며 말하였다.
“그대는 경공의 명을 잊었소?”
諸大夫欲悔,陽生乃頓首曰:
「可則立之,不可則已。」
대부들이 후회하는 듯하자 양생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합당하다고 하면 즉위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두겠습니다.”
鮑牧恐禍及己,乃復曰:
「皆景公之子,何為不可!」
포목이 자신에게 화가 미칠까 두려워 다시 말하였다.
“모두가 경공의 자제인데 안 될 것이 무엇입니까!”
遂立陽生於田乞之家,是為悼公。
마침내 전기의 집에서 양생을 옹립하니 그가 悼公이다.
乃使人遷晏孺子於駘,而殺孺子荼。
이에 사람을 시켜 안유자를 駘로 옮기는 도중에 안유자 도를 죽였다.
悼公既立,田乞為相,專齊政。
도공이 즉위한 후 전기가 재상이 되어 齊의 정치를 專行하였다.
▶ 誣: 속이다. 꾸미다.
▶ 悼公: 齊悼公. 춘추시대 말기 齊의 군주로 이름은 陽生이고, 景公의 아들이다. 경공이 죽자 태자 荼가 즉위하니 그가 晏孺子이다. 양생이 魯로 달아나자 季康子가 누이 季姬와 결혼시켰다. 田乞가 도공을 즉위시키고 안유자를 살해하였다. 전기를 재상으로 삼으니 이때부터 전씨가 齊의 정치를 독점하였다. 시호는 悼이다.
四年,田乞卒,子常代立,是為田成子。
4년(기원전485년), 전기가 죽고 아들 田常이 뒤를 이으니 그가 田成子이다.
▶ 田乞(전걸/전기): 田釐子 또는 田僖子라고도 한다. 田桓子의 아들. 춘추시대 말기 齊의 대신. 기원전489년, 景公이 죽자 전기는 경공의 유지를 뒤엎고 제도공을 군주로 세웠다.
▶ 田成子: 陳恒. 陳成子, 田常으로도 불린다. 춘추시대 齊 사람으로 田乞의 아들이다. 齊簡公때 闞止와 함께 左右相을 맡았다. 선조들의 전통을 계승하여 大斗로 재어 양식으로 대여하고, 小斗로 재어 거둬들여 民心을 얻었다. 제간공4년 감지와 간공을 공격해 살해하고, 간공의 동생 驁를 세워 平公으로 삼았다. 스스로 재상이 되어 齊의 국정을 장악하고, 公族가운데 강성한 이들은 모두 제거하였다.
鮑牧與齊悼公有郄,弒悼公。
포목이 제도공과 사이가 벌어지자 도공을 시해하였다.
齊人共立其子壬,是為簡公。
齊 사람들이 모두 그의 아들 壬을 옹립하니 그가 簡公이다.
田常成子與監止俱為左右相,相簡公。
田常成子와 監止가 좌우 相을 나누어 맡아 간공을 보좌하였다.
田常心害監止,監止幸於簡公,權弗能去。
전상이 내심 감지를 꺼렸으나 감지가 간공의 총애를 받고 있어 권력을 빼앗을 수 없었다.
於是田常復修釐子之政,以大斗出貸,以小斗收。
그래서 전상은 다시 釐子(: 전기)때의 정치를 시행하여 큰 됫박으로 양식을 빌려주고 작은 됫박으로 돌려받았다.
齊人歌之曰:
「嫗乎采芑,歸乎田成子!」
齊 사람들은 노래하였다.
“할머니가 뜯은 나물, 전성자에게 보내라!”
齊大夫朝,御鞅諫簡公曰:
「田、監不可并也,君其擇焉。」
齊 대부들이 입조하자 御鞅이 간공에게 간언하였다.
“전성자와 감지는 함께 기용할 수 없으니 군주께서는 선택하십시오.”
君弗聽。
간공은 듣지 않았다.
▶ 鲍牧: 성은 姒이고 씨는 鲍. 鮑叔牙의 후손이다. 춘추시대 齊의 대부이다.
▶ 悼公: 齊悼公. 춘추시대 말기 齊의 군주로 이름은 陽生이고, 景公의 아들이다. 경공이 죽자 태자 荼가 즉위하니 그가 晏孺子이다. 양생이 魯로 달아나자 季康子가 누이 季姬와 결혼시켰다. 田乞이 도공을 즉위시키고 안유자를 살해하였다. 전걸을 재상으로 삼으니 이때부터 전씨가 齊의 정치를 독점하였다. 시호는 悼이다.
▶ 郄: 郤과 통용된다. 틈. 사이.
▶ 簡公: 齊簡公. 춘추시대 말기 齊의 군주로 이름은 壬이고, 悼公의 아들이다. 즉위하기 전에 闞止를 총애하였다. 즉위하자 그에게 정치를 맡기니 田成子가 걱정하였다. 대부 御鞅이 진언하여 감지와 전성자가 양립할 수는 없다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간공4년 전성자가 감지를 살해하자 간공은 달아나 舒州로 갔지만 역시 전성자에게 살해당하였다. 4년 동안 재위했고, 시호는 簡이다.
▶ 監止: 闞止‧闞史·子我·宰我. 춘추시대 말기 魯 사람.
▶ 害: 질투하다.
▶ 嫗: 노부인. 할머니.
▶ 芑: 풀의 이름. 야채의 일종.
▶ 御鞅: 諸御鞅. 춘추시대 齊簡公의 大夫. 다른 두 신하인 田常과 子我가 서로 미워하므로 한 사람을 제거하라고 간공에게 諫했으나 간공이 듣지 않았다. 전상이 자아와 간공을 살해했다
子我者,監止之宗人也,常與田氏有卻。
子我는 監止의 종족으로 평소 전씨와 사이가 벌어져 있었다.
田氏疏族田豹事子我有寵。
전씨의 먼 친척 田豹는 자아를 섬겨 총애를 받았다.
子我曰:
「吾欲盡滅田氏適,以豹代田氏宗。」
자아가 말하였다.
“내가 전씨 적손들을 모조리 없애고 田豹를 전씨 종손으로 만들겠다.”
豹曰:
「臣於田氏疏矣。」
전표가 말하였다.
“저는 전씨와는 소원합니다.”
不聽。
자아가 듣지 않았다.
已而豹謂田氏曰:
「子我將誅田氏,田氏弗先,禍及矣。」
얼마 후 전표가 전씨에게 말하였다.
“자아가 전씨를 죽이려 하니 전씨가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화가 미칠 터입니다.”
子我舍公宮,田常兄弟四人乘如公宮,欲殺子我。
자아가 간공의 궁중에 머무르고 있을 때 전상 형제 넷이 궁중으로 마차를 몰아 자아를 죽이려 하였다.
子我閉門。
자아가 문을 잠갔다.
▶ 子我: 宰我라고도 한다. 孔子의 제자로 언어에 뛰어났다. <史記>에는 재아가 훗날 齊의 장관이 되었지만, 田常의 반란에 가담했다가 일족이 몰살을 당했다고 한다. 다만<사기>의 해당 기술은 <춘추좌씨전>이나 <여씨춘추>에는 다른 기술이 있으며, 당시 반란에 가담한 사람 가운데 별명으로 같은 자를 쓴 인물이 없다는 점에서 清의 張翼같은 학자는 司馬遷이 혼동하고 잘못 적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 卻: 틈. 사이.
▶ 田豹: 전씨의 宗族.
▶ 適: 嫡과 같다. 직계 혈통. 대를 이을 사람.
▶ 舍: 묵다. 숙박하다.
▶ 如: 가다. 이르다.
簡公與婦人飲檀臺,將欲擊田常。
간공은 부인과 檀臺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가 전상을 공격하려 하였다.
太史子餘曰:
「田常非敢為亂,將除害。」
태사 子餘가 말하였다.
“전상은 감히 난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해악을 제거하려는 것입니다.
簡公乃止。
이에 간공이 멈추었다.
田常出,聞簡公怒,恐誅,將出亡。
전상이 궁 밖으로 나와 간공이 화가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도망치려 하였다.
田子行曰:
「需,事之賊也。」
田子行이 말하였다.
“머뭇거림은 일을 그르치는 것입니다.”
田常於是擊子我。
전상이 이에 자아를 공격하였다.
子我率其徒攻田氏,不勝,出亡。
자아도 그의 무리를 이끌고 전씨를 공격했으나 승리하지 못하자 달아났다.
田氏之徒追殺子我及監止。
전씨의 무리가 추격하여 자아와 감지를 죽였다.
▶ 檀臺: 臺의 이름.
▶ 需: 머뭇거리다.
▶ 賊: 망치다. 손상시키다.
簡公出奔,田氏之徒追執簡公于徐州。
간공이 달아나자 전씨의 무리들은 간공을 뒤쫓아가 徐州에서 간공을 사로잡았다.
簡公曰:
「蚤從御鞅之言,不及此難。」
간공이 말하였다.
“내가 일찍이 御鞅의 말을 따랐더라면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터이다.”
田氏之徒恐簡公復立而誅己,遂殺簡公。
전씨의 무리는 간공이 다시 즉위하여 자기들을 죽일까 두려워 간공을 죽였다.
簡公立四年而殺。
간공은 즉위 4년 만에 죽임을 당했다.
於是田常立簡公弟驁,是為平公。
이에 전상은 간공의 동생 驁를 옹립하니 그가 平公이다.
平公即位,田常為相。
평공이 즉위하니 전상은 재상이 되었다.
▶ 蚤: 早와 통용된다. 일찍.
▶ 平公: 齊平公. 齊의 제30대 후작이다. 이름은 驁다. 전성자가 형인 제간공을 시해하고 옹립하였다.
田常既殺簡公,懼諸侯共誅己,乃盡歸魯、衛侵地,西約晉、韓、魏、趙氏,南通吳、越之使,修功行賞,親於百姓,以故齊復定。
전상은 간공을 죽인 후 제후들이 함께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 빼앗은 魯와 衛의 땅을 전부 돌려주고, 서쪽으로 晉·韓·魏·趙와 맹약을 하고, 남쪽으로는 吳· 越와 교류하여 사신을 보냈으며, 공을 따져 상을 주고 백성들과 친근하게 지내니 齊는 다시 안정되었다.
田常言於齊平公曰:
「德施人之所欲,君其行之;
刑罰人之所惡,臣請行之。」
전상이 齊平公에게 말하였다.
“덕을 베푸는 일은 사람들이 원하는 바이니 군주께서 그것을 행하시고,
형벌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바이니 신이 집행하겠습니다.”
行之五年,齊國之政皆歸田常。
이렇게 5년을 시행하니 齊의 정권이 모두 전상에게 귀속되었다.
田常於是盡誅鮑、晏、監止及公族之彊者,而割齊自安平以東至瑯邪,自為封邑。
전상은 이에 鮑씨, 晏씨, 監止 및 공족 중 힘 있는 자를 모두 죽이고, 齊의 安平에서 동쪽 郎邪에 이르는 땅을 떼어 자신의 봉읍으로 삼았다.
封邑大於平公之所食。
봉읍이 제평공의 식읍보다 컸다.
田常乃選齊國中女子長七尺以上為後宮,後宮以百數,而使賓客舍人出入後宮者不禁。
전상은 齊 도성의 여자 중에서 키가 7척 이상 되는 여자를 후궁으로 뽑았는데, 후궁이 백 명이 넘었으며, 또한 賓客과 舍人들의 후궁 출입을 금하지 않았다.
及田常卒,有七十餘男。
전상이 죽었을 때 아들이 70여 명이나 되었다.
▶ 食: 食邑. 領地.
▶ 七尺: 춘추전국시대에는 1尺이 약22~23cm이었으므로 7척은 약 155~160cm이다.
▶ 後宮: 본래 姬嬪의 궁을 말하나 보통 희빈과 姬妾을 말한다.
▶ 舍人: 侍從.
田常卒,子襄子盤代立,相齊。
전상이 죽고 아들 襄子 盤이 직위를 이어받아 齊의 재상이 되었다.
常謚為成子。
전상의 시호를 成子라 하였다.
田襄子既相齊宣公,三晉殺知伯,分其地。
田襄子가 齊宣公의 재상이 된 후, 三晉이 知伯을 죽이고 그 땅을 나누어 가졌다.
襄子使其兄弟宗人盡為齊都邑大夫,與三晉通使,且以有齊國。
양자는 그의 형제와 종족들을 모두 齊의 크고 작은 성읍의 대부가 되게 했고, 삼진과 사신을 왕래시키면서 거의 齊나라를 소유하고 있었다.
▶ 襄子盤: 田盤. 田班이라고도 한다. 田常의 아들로 전상이 죽자 그 직위를 이어받아 齊의 재상이 되었다. 시호는 襄子이다.
▶ 齊宣公: 齊의 제31대 후작으로 이름은 積이다. 선공의 재위 기간에는 전성자 항, 전성자의 아들 전양자 반, 전양자의 아들 전장자 백, 전장자의 아들 전도자와 전화가 대를 이어 齊의 재상이 되었다. 재위51년 만에 죽어, 아들 貸가 뒤를 이었다.
▶ 三晋: 韓, 魏, 趙. 제강공2년(기원전403년), 韓氏, 趙氏, 魏氏가 위열왕의 명령으로 제후가 되어서 晋은 曲沃과 絳만 남았고, 결국은 작은 제후국으로 전락하였다.
▶ 且: 거의. 허사 且 참조
▶ 以: 已와 통용된다. 허사 以 참조
襄子卒,子莊子白立。
양자가 죽고 아들 莊子 白이 뒤를 이었다.
田莊子相齊宣公。
田莊子는 齊宣公의 재상이 되었다.
宣公四十三年,伐晉,毀黃城,圍陽狐。
선공43년(기원전413년), 齊가 晉을 공격하여 黃城을 파괴하고 陽狐를 포위하였다.
明年,伐魯、葛及安陵。
이듬해에 魯城, 葛읍, 安陵을 공격하였다.
明年,取魯之一城。
또 이듬해에 魯의 성 하나를 탈취하였다.
▶ 田莊子: 田白. 齊 전씨의 수령으로 전양자의 아들이다.
莊子卒,子太公和立。
장자가 죽고 아들 太公 和가 뒤를 이었다.
田太公相齊宣公。
田太公은 제宣公의 재상이 되었다.
宣公四十八年,取魯之城。
선공48년(기원전408년), 魯의 郕城을 탈취하였다.
明年,宣公與鄭人會西城。
이듬해, 선공은 鄭의 군주와 西城에서 회맹하였다.
伐衛,取毋丘。
衛를 공격해서 毋丘를 탈취하였다.
宣公五十一年卒,田會自廩丘反。
선공이 재위51년(기원전405년) 만에 죽고, 田會가 廩丘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 太公和: 齊太公 혹은 田齊 太公. 전국시대 田齊의 초대 후작이다. 성은 嬀, 씨는 田. 이름은 和다. 周왕실에서 齊侯로 인정받아, 齊 공실이 공식적으로 姜姓 呂氏에서 嬀姓 田氏로 바뀌었다.
宣公卒,子康公貸立。
선공이 죽고 아들 康公 貸가 즉위하였다.
貸立十四年,淫於酒婦人,不聽政。
貸는 14년간 재위하면서 술과 여자에 빠져서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太公乃遷康公於海上,食一城,以奉其先祀。
이에 태공은 강공을 바닷가로 옮기고 성 하나를 식읍으로 주어 선조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明年,魯敗齊平陸。
이듬해(기원전390년), 魯가 平陸에서 齊를 패퇴시켰다.
▶ 康公: 姜姓齊의 제32대 군주이자 마지막 군주. 제선공의 아들. 貸는 14년 재위하면서 술과 여자에 빠져서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이에 전화는 강공을 해변으로 유배시켜 성 하나를 식읍으로 주어 선조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결국은 늙어서 자식도 없이 죽어 姜齊는 멸망하고 만다. 姜姓의 齊가 西周 초기에 太公 呂尙의 봉국으로 세워져 기원전379년 康公이 죽음으로써 呂氏의 제사가 끊어지고 田氏가 齊를 차지하였다. [史記世家]권32. 齊太公世家
▶ 海上: 해변가.
三年,太公與魏文侯會濁澤,求為諸侯。
3년이 지난 후, 태공이 魏文侯와 濁澤에서 회맹하여 전씨를 제후로 인정하기를 요구하였다.
魏文侯乃使使言周天子及諸侯,請立齊相田和為諸侯。
위문후는 이에 사신을 보내 周천자와 제후에게 알리며 齊의 재상 田和를 제후로 삼기를 청하였다.
周天子許之。
周천자가 허락하였다.
康公之十九年,田和立為齊侯,列於周室,紀元年。
강공19년(기원전386년), 전화가 齊의 제후가 봉해지고 주나라 왕실의 제후 반열에 올랐고, 그 해를 원년으로 삼았다.
▶ 田和立為齊侯: 이후의 齊는 망할 때까지 태공 화의 자손이 다스려, '전씨의 齊'라는 의미로 '田齊'라고도 한다.
齊侯太公和立二年,和卒,子桓公午立。
齊侯 태공 화는 즉위 2년 만에 죽고 아들 桓公 午가 즉위하였다.
桓公午五年,秦、魏攻韓,韓求救於齊。
환공 오5년(기원전380년), 秦과 魏가 韓을 공격하자 韓이 齊에 구원을 청하였다.
齊桓公召大臣而謀曰:
「蚤救之孰與晚救之?」
제환공 午가 대신들을 불러 의논하였다.
“일찍 구원함과 천천히 구원함 중 어느 것이 낫겠소?”
騶忌曰:
「不若勿救。」
騶忌가 말하였다.
“구원하지 않느니만 못합니다.”
段干朋曰:
「不救,則韓且折而入於魏,不若救之。」
段干朋이 말하였다.
“구원하지 않으면 韓이 굴복하여 魏로 편입될 터이니 당장 구원하느니만 못합니다.”
▶ 太公和: 齊太公 혹은 田齊 太公. 전국시대 田齊의 초대 후작이다. 성은 嬀, 씨는 田. 이름은 和다. 周왕실에서 齊侯로 인정받아, 齊 공실이 공식적으로 姜姓呂氏에서 嬀姓田氏로 바뀌었다.
▶ 和卒,子桓公午立: <史記>에는 田成子에서 최후의 왕 建에 이르기까지 10世이지만, <竹書紀年>에 근거해서 田成子와 太公田和의 사이에 田悼子를 보충하고, 田和와 桓公田午의 사이에 田剡을 보충하면 12世가 된다. 田剡은 환공에게 시해된 뒤 폐위되어 시호가 없다.
▶ 桓公午: 齊桓公午. 姜姓齊의 환공과 시호가 같다.
▶ 秦、魏攻韓,韓求救於齊: 이 내용은 이어지는 齊威王 26년의 기록과 유사하며 중복 기재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 折: 좌절하다. 실패하다.
▶ 騶忌: 鄒忌. 騶忌子라고도 한다. 전국시대 齊 사람으로 桓公, 威王, 宣王을 섬겼다. 위왕 초년에 재상이 되었으며, 위왕22년(기원전357년)에는 下邳를 봉지로 받고 成侯에 봉해졌다. 현인을 등용시키고 법률을 정비하는 등의 치적이 있었으나 田忌와의 불화로 전기가 楚로 달아났다.
▶ 段干朋: 段干綸, 段干萌으로도 쓴다. 段干은 複姓. 齊 신하이며 장수이다.
田臣思曰:
「過矣君之謀也!
秦、魏攻韓、楚,趙必救之,是天以燕予齊也。」
田臣思가 말하였다.
“그대들의 계책이 틀렸습니다!
秦과 魏가 韓을 공격하면 楚와 趙가 틀림없이 구원할 터이니 이는 하늘이 燕을 齊에게 주는 것입니다.”
桓公曰:
「善」。
환공이 말하였다
“좋소!”
乃陰告韓使者而遣之。
이에 韓의 사자에게 은밀히 알리고 돌려보냈다.
韓自以為得齊之救,因與秦、魏戰。
韓은 齊의 구원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秦, 魏와 싸웠다.
楚、趙聞之,果起兵而救之。
楚와 趙가 이를 듣고 과연 병사를 일으켜 구원하였다.
齊因起兵襲燕國,取桑丘。
齊는 이틈에 軍士를 일으켜 燕을 기습하여 桑丘를 탈취하였다.
▶ 田臣思: 齊의 신하이며 陳臣思로도 쓴다.
六年,救衛。
환공 午 6년(기원전379년), 衛를 구원하였다.
桓公卒,子威王因齊立。
제환공이 죽고 아들 威王 因齊가 즉위하였다.
是歲,故齊康公卒,絕無後,奉邑皆入田氏。
이해에 이전의 제강공이 죽었으며, 후손이 끊어져 없었으므로 봉읍이 모두 전씨에게 편입되었다.
▶ 齊威王: 전국시대 齊의 군주로 성은 媯이고, 씨는 田, 이름은 因齊이다. 齊桓公 午의 아들이다. 재임 중에 개혁을 통하여 부국강성한 나라를 만들었고, 스스로 王으로 칭하였다. 魏를 포위하여 趙와 韓을 구원하여 覇主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齊威王元年,三晉因齊喪來伐我靈丘。
제위왕원년(기원전378년), 三晋이 齊의 국상을 이용하여 齊의 靈丘를 공격하였다.
三年,三晉滅晉後而分其地。
제위왕3년(기원전376년), 三晋이 晋后를 멸망시키고 그 땅을 나누었다.
六年,魯伐我,入陽關。
제위왕6년(기원전373년), 魯가 齊를 공격하여 陽關까지 쳐들어왔다.
晉伐我,至博陵。
晉이 齊를 쳐서 博陵에까지 이르렀다.
七年,衛伐我,取薛陵。
제위왕7년(기원전372년), 衛가 齊를 쳐서 薛陵을 탈취하였다.
九年,趙伐我,取甄。
제위왕9년(기원전370년), 趙가 齊를 공격하여 甄城을 탈취하였다.
▶ 晉伐我: 제강공2년(기원전403년), 韓氏, 趙氏, 魏氏가 위열왕의 명령으로 제후가 되어서 晉은 曲沃과 絳만 남았고, 결국은 작은 제후국으로 전락하였다.
<자치통감강목>에는 기원전370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威王初即位以來,不治,委政卿大夫,九年之閒,諸侯并伐,國人不治。
위왕이 처음 즉위한 이후 나라를 다스리지 않고 경대부에게 정치를 맡기니, 9년 동안 제후들이 모두 공격하였으며, 齊 사람들은 평안하지 않았다.
於是威王召即墨大夫而語之曰:
「自子之居即墨也,毀言日至。
然吾使人視即墨,田野辟,民人給,官無留事,東方以寧。
是子不事吾左右以求譽也。」
이에 위왕은 卽墨대부를 불러 말하였다.
“그대가 즉묵에 부임하면서부터 날마다 비방하는 말이 날아들었소.
그러나 내가 사람을 시켜 즉묵을 살펴보게 했더니 밭과 들은 잘 개간되고, 백성들은 넉넉하며, 관청에는 밀린 일이 없어 동쪽 지역이 평안했소.
그대는 내 측근들을 섬겨 칭찬을 구걸하지 않았소.”
封之萬家。
1만 가를 봉하여 주었다.
▶ 不治: 治는 다스리다. 여기서는 안정되다는 의미.
▶ 毁: 비방하다.
▶ 辟: 개척하다.
▶ 給: 풍족하다.
▶ 留事: 공무가 밀리다.
召阿大夫語曰:
「自子之守阿,譽言日聞。
然使使視阿,田野不辟,民貧苦。
昔日趙攻甄,子弗能救。
衛取薛陵,子弗知。
是子以幣厚吾左右以求譽也。」
阿대부를 불러서 말하였다.
“그대가 阿를 지키면서부터 날마다 칭찬의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아를 살펴보았더니 밭과 들은 개간되지 않고, 백성들은 빈곤하고 괴로웠다.
지난날 趙가 甄을 공격했을 때 그대는 구원하지도 못하였다.
魏가 薛陵을 탈취했는데도 그대는 알지 못하였다.
그대가 내 측근에게 뇌물을 후하게 주어 칭찬을 구걸하였다.”
是日,烹阿大夫,及左右嘗譽者皆并烹之。
그날로 阿대부를 삶아 죽이고 칭찬했던 측근들을 모두 삶아 죽였다.
▶ 阿: 東阿縣.
▶ 幣: 예물.
▶ 烹: 가마솥에 삶기는 형벌.
遂起兵西擊趙、衛,敗魏於濁澤而圍惠王。
그리고 軍士를 일으켜 서쪽으로 趙와 衛를 치고, 濁澤에서 魏를 패퇴시키고 惠王을 포위하였다.
惠王請獻觀以和解,趙人歸我長城。
魏惠王은 觀城을 바치고 강화를 요청했고, 趙의 군주는 齊의 長城을 돌려주었다.
於是齊國震懼,人人不敢飾非,務盡其誠。
이에 齊 전체가 놀라고 두려워 누구도 감히 잘못을 감추려 하지 않았고, 충성을 보이며 있는 힘을 다하였다.
齊國大治。
齊가 매우 잘 다스려졌다.
諸侯聞之,莫敢致兵於齊二十餘年。
제후들이 이를 듣고 20년 넘게 감히 齊에 쳐들어오지 못하였다.
騶忌子以鼓琴見威王,威王說而捨之右室。
騶忌子가 거문고를 잘 타서 위왕을 만났는데, 위왕이 기뻐하며 그를 궁내 右室에 머물게 하였다.
須臾,王鼓琴,騶忌子推戶入曰:
「善哉鼓琴!」
얼마 후에 위왕이 거문고를 연주하자 추기자가 방문을 밀고 들어오며 말하였다.
“거문고를 잘 타십니다!”
王勃然不說,去琴按劍曰:
「夫子見容未察,何以知其善也?」
왕이 발끈하며 기분을 상하여 거문고를 치우고 검을 꽉 쥐면서 말하였다.
“선생은 대강만 보고 제대로 관찰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잘 타는지를 안다는 것이오?”
▶ 騶忌子: 鄒忌. 騶忌라고도 한다. 전국시대 齊 사람으로 桓公, 威王, 宣王을 섬겼다. 위왕 초년에 재상이 되었으며, 위왕22년(기원전357년)에는 下邳를 봉지로 받고 成侯에 봉해졌다. 현인을 등용시키고 법률을 정비하는 등의 치적이 있었으나 田忌와의 불화로 전기가 楚로 달아났다.
▶ 須臾: 잠시.
▶ 勃然: 왈칵 성을 내는 모양. 갑자기 노하거나 흥분하는 모양.
▶ 容: 대강.
騶忌子曰:
「夫大弦濁以春溫者,君也;
小弦廉折以清者,相也;
攫之深,醳之愉者,政令也;
鈞諧以鳴,大小相益,回邪而不相害者,四時也:吾是以知其善也。」
추기자가 말하였다.
“무릇 大弦의 소리가 탁하면서 봄과 같이 온화함은 군주의 상징이고,
小弦의 소리가 맑고 깨끗함은 재상의 상징이며,
줄을 누를 때에는 깊게 잡고 줄을 놓을 때에는 서서히 풀어주니 政令의 상징입니다.
조화롭게 소리를 내지만 대현과 소현의 소리가 서로를 받쳐주고, 완만하게 돌면서도 서로의 음을 방해하지 않음은 사계절을 상징하니, 제가 이것 때문에 연주가 훌륭함을 알았습니다.”
王曰:
「善語音。」
왕이 말하였다.
“소리를 잘 설명하시는구려.”
騶忌子曰:
「何獨語音,
夫治國家而弭人民皆在其中。」
추기자가 말하였다.
“어찌 소리를 설명하는 것뿐이겠습니까?
무릇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안정시킴이 모두 그 안에 있습니다.”
王又勃然不說曰:
「若夫語五音之紀,信未有如夫子者也。
若夫治國家而弭人民,又何為乎絲桐之閒?」
왕이 다시 발끈하며 기분이 상하여 말하였다.
“오음의 이치를 논하자면 확실히 선생만한 사람이 없을 터이오.
그러나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안정시키는 일이라면 거문고를 타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소?”
▶ 濁: 굴고 거칠다. 탁음.
▶ 以: 而와 같다.
▶ 廉折: 소리가 높고 낭랑하다.
▶ 攫: 움키다. 당기다.
▶ 醳: 釋과 통용된다. 거문고 줄을 놓아주다.
▶ 愉: 느리다. 천천하다.
▶ 鈞諧: 조화롭다. 어울리다.
▶ 相益: 서로 보조하다.
▶ 回邪: 굽다. 구불구불하다.
▶ 害: 방해하다.
▶ 弭: 따르다. 편안히 하다.
▶ 五音: 宮·商·角·徵·羽의 다섯 음.
▶ 絲桐: 거문고의 별칭. 거문고를 만드는 오동나무.
騶忌子曰:
「夫大弦濁以春溫者,君也;
小弦廉折以清者,相也;
攫之深而捨之愉者,政令也;
鈞諧以鳴,大小相益,回邪而不相害者,四時也。
夫復而不亂者,所以治昌也;
連而徑者,所以存亡也:
故曰琴音調而天下治。
夫治國家而弭人民者,無若乎五音者。」
추기자가 말하였다.
“무릇 大弦의 소리가 탁하면서 봄과 같이 온화함은 군주의 상징이고,
小弦의 소리가 맑고 깨끗함은 재상의 상징이며,
줄을 누를 때는 깊게 잡고 줄을 놓을 때는 서서히 풀어주니 政令의 상징입니다.
조화롭게 소리를 내지만 대현과 소현의 소리가 서로를 받쳐주고, 완만하게 돌면서도 서로의 음을 방해하지 않음은 사계절을 상징합니다.
무릇 반복되면서도 어지럽지 않음은 국가가 잘 다스려지고 번창하기 때문이요,
연속되면서도 경쾌한 것은 망하려는 것을 보존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거문고의 음이 조화로우면 천하가 다스려진다고 말합니다.
무릇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들이 평안하게 하는 것에 5음의 이치와 같은 것은 없습니다.”
王曰:
「善。」
왕이 말하였다.
“휼륭합니다.”
▶ 連: 연결하다. 연속하다.
▶ 徑: 재빠르다. 민첩하다.
▶ 存亡: 망하려는 나라를 보존하다.
騶忌子見三月而受相印。
추기자가 위왕을 만난 지 석 달 만에 재상의 도장을 받았다.
淳于髡見之曰:
「善說哉!
髡有愚志,願陳諸前。」
淳于髡이 그를 만나 말하였다.
“말씀을 잘하시는구려!
저에게 어리석은 생각이 있는데 선생 앞에 한 번 늘어놓고자 합니다.”
騶忌子曰:
「謹受教。」
추기자가 말하였다.
“삼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淳于髡曰:
「得全全昌,失全全亡。」
순우곤이 말하였다.
“일을 도모할 때 만전을 기하면 번창할 터이오, 만전을 기하지 않으면 완전히 망할 터입니다.”
騶忌子曰:
「謹受令,請謹毋離前。」
추기자가 말하였다.
“삼가 가르침을 받잡고, 그 말씀을 절대로 멀리하지 않겠습니다.”
▶ 淳于髡: 익살과 다변으로 유명했던 전국시대 齊의 변론가로서 滑稽를 잘하여 여러 차례 제후에게 사신으로 갔으나 굴욕을 당하지 않았다. 齊威王을 설득하여 따르게 하고, 齊 주변의 제후들이 齊를 침략하자 기지로 이를 막아냈다.
<史記列傳권126滑稽列傳>
▶ 得全全昌,失全全亡: 일을 도모함에 만전을 기해야 번창하며, 그렇지 않으면 실패하여 망한다.
▶ 令: 명령. 가르침.
淳于髡曰:
「狶膏棘軸,所以為滑也,然而不能運方穿。」
순우곤이 말하였다.
“돼지기름을 대추나무로 만든 바퀴 축에다 바르는 것은 축이 잘 돌게 하기 위함인데 네모 난 구멍에서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騶忌子曰:
「謹受令,請謹事左右。」
추기자가 말하였다.
“삼가 가르침을 받잡고, 측근들로 하여금 힘쓰도록 하겠습니다.
淳于髡曰:
「弓膠昔干,所以為合也,然而不能傅合疏罅。」
순우곤이 말하였다.
“오래된 활에 아교를 칠하는 것은 몸체를 잘 접합시키기 위함이지만 갈라진 틈을 메울 수는 없습니다.”
騶忌子曰:
「謹受令,請謹自附於萬民。」
추기자가 말하였다.
“삼가 가르침을 받잡고, 제 자신이 온 백성들과 거리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淳于髡曰:
「狐裘雖敝,不可補以黃狗之皮。」
순우곤이 말하였다.
“여우 가죽으로 만든 옷이 해어졌는데, 누런 개의 가죽으로 기우면 안 됩니다.”
騶忌子曰:
「謹受令,請謹擇君子,毋雜小人其閒。」
추기자가 말하였다.
“삼가 가르침을 받잡고, 임명할 때는 군자를 선택하고, 소인배들이 그 사이에 섞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狶膏: 돼지 기름.
▶ 棘軸: 가시나무로 만든 車軸.
▶ 方穿: 네모난 차축의 구멍.
▶ 胶: 아교.
▶ 傅: 附와 통용된다. 부착하다.
▶ 罅: 틈. 틈새.
淳于髡曰:
「大車不較,不能載其常任;
琴瑟不較,不能成其五音。」
순우곤이 말하였다.
“큰 수레일지라도 균형을 바로잡지 않으면 평소 싣는 것만큼 실을 수 없고,
거문고나 가야금도 음을 맞춰놓지 않으면 오음을 제대로 낼 수 없습니다.
騶忌子曰:
「謹受令,請謹修法律而督姦吏。」
추기자가 말하였다.
“삼가 가르침을 받잡고, 법률을 정비하고 간사한 관리들을 감독하겠습니다.”
淳于髡說畢,趨出,至門,而面其仆曰:
「是人者,吾語之微言五,其應我若響之應聲,是人必封不久矣。」
순우곤이 이야기를 마친 다음 빠른 걸음으로 나가면서 문에 이르러 그의 하인들을 보면서 말하였다.
“이 사람은, 내가 말한 미묘한 말 다섯 개에 대하여 나에게 응답함이 메아리가 소리에 반응하듯이 하니 조만간 필시 봉작이 있겠다.”
居朞,封以下邳,號曰成侯。
1년이 지나자 추기자는 下邳에 봉해져 成侯로 불렸다.
▶ 較: 校와 같다. 교정하다.
▶ 趨: 종종걸음 치다.
▶ 微言: 넌지시 하는 말. 뜻이 깊고 미묘한 언사.
▶ 響: 울리다. 메아리치다. .
▶ 應聲: 대답하다. 소리와 동시에.
▶ 朞年: 1주년. 만 일 년.
威王二十三年,與趙王會平陸。
威王23년(기원전334년), 趙王과 평륙에서 회맹하였다.
二十四年,與魏王會田於郊。
위왕24년(기원전333년), 魏惠王과 郊縣에서 만나 사냥을 하였다.
魏王問曰:
「王亦有寶乎?」
魏王이 물었다.
“왕께서도 보배가 있습니까?”
威王曰:
「無有。」
威王은 말하였다.
“없습니다.”
梁王曰:
「若寡人國小也,尚有徑寸之珠照車前後各十二乘者十枚,奈何以萬乘之國而無寶乎?」
梁王(: 魏王)이 말하였다.
“과인의 나라같이 작아도 직경이 한 치 되는 구슬로 수레의 앞뒤를 각각 12승을 비추는 것이 열 개가 있는데 어찌 齊 같은 대국이 보배가 없다고 하십니까?”
▶ 魏王: 魏惠王. 梁惠王이라고도 한다. 전국시대 魏의 제3대 군주로 惠成王으로 불리기도 한다. 맹자에는 梁惠王으로 기록되었고, 장자에는 文惠君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은 姬. 씨는 魏. 휘는 罃이다. 大梁으로 천도하여 梁이라고 칭해졌으며, 왕을 칭하였다. 시호는 惠이다. 혜왕35년(기원전335년)에 유능한 현자들을 초청하자 맹자가 梁으로 왔다.
▶ 田: 짐승을 잡는 것이다. 농사에 해를 끼치는 짐승을 떠나가게 하는 것이므로 “田”이라고 하였다.
▶ 郊: 郊縣.
▶ 若: ~과 같다.
▶ 萬乘之國: 전차가 1만 대인 대국을 말한다.
威王曰:
「寡人之所以為寶與王異。
吾臣有檀子者,使守南城,則楚人不敢為寇東取,泗上十二諸侯皆來朝。
吾臣有子者,使守高唐,則趙人不敢東漁於河。
吾吏有黔夫者,使守徐州,則燕人祭北門,趙人祭西門,徙而從者七千餘家。
吾臣有種首者,使備盜賊,則道不拾遺。
將以照千里,豈特十二乘哉!」
威王이 말하였다.
“과인이 보배라고 여기는 것은 왕과는 다릅니다.
저의 신하에 檀子라는 자가 있어 南城을 지키게 했더니, 楚 사람들이 감히 동쪽을 노략질하지 못했고, 泗水 주변의 열두 제후가 모두 조회하러 왔습니다.
저의 신하에 盼子라는 자가 있어 高唐을 지키게 했더니, 趙 사람들이 감히 동쪽 황하에서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저의 관리 중 黔夫라는 자가 있어 徐州를 지키게 했더니, 燕 사람들은 북문에, 趙 사람들은 서문에 제사를 드렸고, 그를 좇아서 이사 온 자가 7천여 집이 되었습니다.
저의 신하에 種首라는 자가 있어 그에게 도적을 방비하게 했더니 길에 물건이 떨어져도 줍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네 신하가 장차 천리를 비출 터이니 어찌 단지 12승의 수레이겠습니까!”
梁惠王慚,不懌而去。
梁惠王이 부끄러워 기분이 상하여 가버렸다.
▶ 檀子: 檀은 姓이고 子는 남자의 美稱이다.
▶ 泗上十二諸侯: 泗水가의12개의 작은 제후국으로 鄒, 鲁, 宋등을 말한다.
▶ 有子: 盼子. 田盼을 말한다.
▶ 高唐: 齊 西邑.
▶ 燕人祭北門: 공격당하지 않도록 기원하는 제사를 말한다.
▶ 懌: 기뻐하다. 즐거워하다.
二十六年,魏惠王圍邯鄲,趙求救於齊。
위왕26년(기원전331년), 魏惠王이 邯鄲을 포위하자 趙가 齊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齊威王召大臣而謀曰:
「救趙孰與勿救?」
제위왕이 대신들을 불러 상의하였다.
“趙를 구원함과 구원하지 않는 것 중 어느 것이 낫겠소?”
騶忌子曰:
「不如勿救。」
騶忌子가 말하였다.
“구원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段干朋曰:
「不救則不義,且不利。」
段干朋이 말하였다.
“구원하지 않으면 不義이며 또한 우리에게 불리합니다.”
威王曰:
「何也?」
위왕이 말하였다.
“어째서이오?”
對曰:
「夫魏氏并邯鄲,其於齊何利哉?
且夫救趙而軍其郊,是趙不伐而魏全也。
故不如南攻襄陵以獘魏,邯鄲拔而乘魏之獘。」
단간붕이 대답하였다.
“무릇 魏가 한단을 합병하면 우리 齊에 무슨 이로움이 있겠습니까?
또한 趙를 구원하러 나서 그나라의 교외에 軍士를 주둔하면, 趙는 공격을 받지 않고, 魏는 철수하여 군사를 보전하게 됩니다.
따라서 남쪽으로 魏의 襄陵을 공격하여 魏를 피곤하게 만드느니만 못하며, 한단이 함락되어 魏의 피곤을 틈타는 것만 못합니다.”
威王從其計。
위왕은 그 계책에 따랐다.
▶ 邯鄲: 趙의 도읍지.
▶ 弊: 피곤하다.
▶ 乘: 이용하다.
▶ 騶忌子: 鄒忌라고도 한다. 당시 齊의 승상. 封號는 成侯.
▶ 段干朋: 齊 신하이며 장수이다.
▶ 襄陵: 魏의 땅. 지금의 하남성 睢縣서쪽.
아래의 내용은 大學衍義卷22에 기록되어 있다.
其後成侯騶忌與田忌不善,公孫閱謂成侯忌曰:
「公何不謀伐魏,田忌必將。
戰勝有功,則公之謀中也;
戰不勝,非前死則後北,而命在公矣。」
그 후 成侯 騶忌와 田忌의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公孫閱이 성후 추기에게 말하였다.
“공께서는 왜 魏 공격을 도모하지 않으십니까? (魏를 공격하게 되면) 전기가 틀림없이 장수가 될 터입니다.
싸움에서 이겨서 공을 세우면 공의 계책이 적중한 것이고,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나아가 전사하지 않으면 후퇴하여 패배하는 것이니 田忌의 목숨은 공에게 달려있게 됩니다.”
於是成侯言威王,使田忌南攻襄陵。
이에 성후 추기는 위왕에게 말했고, 전기에게 남쪽으로 양릉을 공격하게 하였다.
十月,邯鄲拔,齊因起兵擊魏,大敗之桂陵。
10월, 한단이 함락되고 齊가 이 틈에 병사를 일으켜 魏를 공격하여 桂陵에서 대패시켰다.
于是齊最彊于諸侯,自稱為王,以令天下。
이리하여 齊가 제후에서 가장 강해져 스스로 왕을 칭하며 천하를 호령하였다.
▶ 田忌: 田期, 田期思, 陳忌 등으로 되어 있다. 전국시대 齊 사람으로, 威王 때 장수가 되어 孫臏을 왕에게 추천하였다. 鄒忌와 알력이 생겨 楚로 달아났다가 齊宣王이 즉위한 뒤에 다시 장수로 기용되었다.
▶ 公孫閱: 齊 사람으로, 본래 鄒忌의 문객이었다가 나중에 田嬰의 문객이 되었다. <전국책>에는 公孫閈으로 기록하고 있다.
▶ 前死: 나아가 전쟁에서 죽다.
▶ 北: 패배하다.
▶ 桂陵: 魏의 읍 이름.
三十三年,殺其大夫牟辛。
위왕33년(기원전324년), 대부 牟辛을 죽였다.
三十五年,公孫閱又謂成侯忌曰:
「公何不令人操十金卜於市,曰
『我田忌之人也。吾三戰而三勝,聲威天下。
欲為大事,亦吉乎不吉乎』?」
위왕35년(기원전321년), 공손열이 또 성후 추기에게 말하였다.
“공께서는 왜 사람을 시켜 10금을 가지고 저잣거리에서 점을 치게 하면서,
‘나는 전기의 사람이다. 우리는 세 번 싸워 세 번 승리하여 천하에 명성과 위엄을 떨쳤다.
큰일을 벌이려고 하는데 길하겠는가, 불길하겠는가?’
라고 말하게 하지 않으십니까?”
卜者出,因令人捕為之卜者,驗其辭於王之所。
점쟁이가 그 자리를 떠나자 사람을 시켜 점치러 온 자를 체포하여 왕이 있는 곳에서 그 내용을 검증하게 하였다.
田忌聞之,因率其徒襲攻臨淄,求成侯,不勝而奔。
전기가 소식을 듣고 그의 무리를 이끌고 臨淄를 습격하여 성후를 찾았으나 이기지 못해 달아났다.
▶ 驗: 검증하다.
三十六年,威王卒,子宣王辟彊立。
위왕36년(기원전320년), 위왕이 죽고 아들 宣王辟疆이 즉위하였다.
宣王元年,秦用商鞅。
선왕 원년(기원전319년), 秦이 商鞅을 기용하였다.
周致伯於秦孝公。
주나라가 秦孝公에게 覇主의 칭호를 주었다.
▶ 宣王: 齊宣王. 田辟疆. 전국시대 齊의 군주로 威王의 아들이다. 재위 중에 田嬰과 儲子를 기용해 재상으로 삼고 匡章과 聲子를 장군으로 삼았다. 아버지 위왕의 뒤를 이어 稷下에 學宮을 설치하여 학자를 초빙하고 강학 토론하도록 하였다. 재위 기간은 19년이고, 시호는 宣이다.
▶ 商鞅: 商君. 전국시대 法家를 대표하는 인물로 衛 공실의 후예로 魏에서 관직을 구하다 쓰이지 않자 秦으로 가서 孝公에게 패업을 달성하는 방법을 유세하고 큰 신임을 얻어 左庶長에 임명되었다. 河西의 전쟁 중에 공을 세워 商邑을 하사받아서 商君, 혹은 商鞅으로 일컫게 되었다. 그는 秦의 富國強兵을 위해 變法을 시행하였다. <사기 권68 <商君列傳>>
▶ 致: 보내다. 주다.
▶ 伯: 霸와 통용된다. 제후의 맹주.
▶ 秦孝公: 전국시대의 秦의 군주. 獻公의 아들로 이름은 渠梁이다. 21세 때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즉위하였으며, 魏에서 온 商鞅을 등용하여 국정을 개혁하고 부국강병에 힘을 기울여 전국시대의 覇主로 인정받았으며 咸陽으로 도읍을 옮겼다
二年,魏伐趙。
선왕2년(기원전318년), 魏가 趙를 공격하였다.
趙與韓親,共擊魏。
趙가 韓과 화친하고 함께 魏를 공격하였다.
趙不利,戰於南梁。
趙가 불리하게도 韓의 읍인 南梁에서 전쟁을 하였다.
宣王召田忌復故位。
선왕이 전기를 불러 원래의 직위를 회복시켰다.
韓氏請救於齊。
韓이 齊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宣王召大臣而謀曰:
「蚤救孰與晚救?」
선왕이 대신들을 불러 의논하였다.
“韓을 일찍 구원하는 것과 늦게 구원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낫겠소?”
騶忌子曰:
「不如勿救。」
추기자가 말하였다.
“구원하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田忌曰:
「弗救,則韓且折而入於魏,不如蚤救之。」
전기가 말하였다.
“구원하지 않아 韓이 굴복하면 魏로 편입될 터이니 일찍 구원해 주느니만 못합니다.
▶ 南梁: 韓의 읍. 지금의 河南省 臨汝縣 동쪽.
孫子曰:
「夫韓、魏之兵未獘而救之,是吾代韓受魏之兵,顧反聽命於韓也。
且魏有破國之志,韓見亡,必東面而愬於齊矣。
吾因深結韓之親而晚承魏之獘,則可重利而得尊名也。」
孫矉이 말하였다.
“韓과 魏의 軍士가 지치지 않았는데 구원함은 우리가 韓을 대신하여 魏의 軍士를 상대하는 것으로, 오히려 우리가 韓의 명령을 들어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또 魏는 韓을 쳐부수자고 하는 의지가 있고 韓이 멸망에 직면하면 틀림없이 동쪽의 우리 齊에게 하소연할 터입니다.
우리는 그 틈에 韓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천천히 魏의 피폐를 틈타면 우리가 이익을 더하고 명성도 높일 수 있겠습니다.
宣王曰:
「善。」
선왕이 말하였다.
“좋소.”
▶ 孫子: 孫臏. 전국시대의 전략가로 兵家의 대표적 인물이다. 孫武의 5대손이고, 孫武와 같이 孫子로 불린다. 臏이란 이름은 무릎뼈를 도려내는 형벌을 받아서 이렇게 불리었다. <史記列傳권65孫子吳起列傳>
▶ 愬: 하소연하다. 일러 바치다.
▶ 承: 乘과 통용된다. 틈타서.
乃陰告韓之使者而遣之。
이에 韓의 사신에게 은밀히 알린 다음 돌려보냈다.
韓因恃齊,五戰不勝,而東委國於齊。
韓은 齊를 믿은 까닭에 魏와 다섯 번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동쪽으로 齊에 나라를 맡겼다.
齊因起兵,使田忌、田嬰將,孫子為帥[師],救韓、趙以擊魏,大敗之馬陵,殺其將龐涓,虜魏太子申。
齊는 이틈에 軍士를 일으켜 전기와 田嬰에게 軍士를 이끌게 하고, 손자를 軍師로 삼아 韓과 趙를 구원하게 하고, 魏를 공격하여 馬陵에서 대파하여 장수 龐涓을 죽이고 위태자 申을 포로로 잡았다.
其後三晉之王皆因田嬰朝齊王於博望,盟而去。
그 후 三晉의 왕이 모두 전영을 통해 博望城에서 제왕을 조회하고 맹서한 다음 떠났다.
▶ 馬陵: 魏 땅으로 지금의 山東省 鄄城縣. 마릉전투 또는 馬陵大戰은 전국시대 중기에 일어난 대표적인 전투로 꼽힌다. 손빈과 방연의 대결로도 유명한데, 방연은 이 전투에서 패전하며 자살하였다. 전국시대 초기의 패권국이었던 魏가 몰락하는 단초로 작용하였고, 齊가 패권을 쥐며 전국시대의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다.[史記列傳]권65孫子吳起列傳
▶ 龐涓: 전국시대 魏의 장수. 귀곡산장에 은거한 鬼谷子 밑에서 손빈과 동문수학을 하였다. 손빈의 재능을 질투한 방연은 손빈이 자신의 앞길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가 출세하여 魏의 대장군이 되었고, 손빈이 魏로부터 등용되자, 방연은 손빈을 齊의 간첩으로 무고를 하여 손빈을 무릎 연골을 손상시키고, 다리를 못쓰게 하는 빈형을 받게 하여 손빈에게 박해를 가하였다.
七年,與魏王會平阿南。
선왕7년(기원전319년), 魏王과 平阿의 남쪽에서 회맹하였다.
明年,復會甄。
이듬해 甄에서 다시 회맹하였다.
魏惠王卒。
魏惠王이 죽었다.
明年,與魏襄王會徐州,諸侯相王也。
이듬해, 魏襄王과 徐州에서 회맹하여 제후들이 서로 왕을 칭하였다.
十年,楚圍我徐州。
선왕10년, 楚가 齊의 서주를 포위하였다.
十一年,與魏伐趙,趙決河水灌齊、魏,兵罷。
선왕11년, 齊가 魏와 함께 趙를 공격하니, 趙는 황하의 물을 끌어들여 齊와 魏를 잠기게 하려 하였고, 齊·魏는 撤軍하였다.
十八年,秦惠王称王.
선왕18년, 秦惠王이 稱王하였다.
宣王喜文學游說之士,自如騶衍、淳于髡、田駢、接子、慎到、環淵之徒七十六人,皆賜列第,為上大夫,不治而議論。
宣王은 문학과 유세하는 선비들을 좋아하여 騶衍, 淳于髡, 田騈, 接予, 愼到, 環淵과 같은 무리 76명이 모두 저택을 하사받고 상대부에 임명되었는데, 이들은 직무는 없고 토론만 하였다.
是以齊稷下學士復盛,且數百千人。
이리하여 齊의 稷下學士가 다시 번성하였고 또한 그 수가 수백 수천이었다.
▶ 列第: 귀족관료의 저택.
▶ 不治: 정사를 돌보지 않다.
▶ 稷下學士復盛: 稷下는 稷門의 아래로 齊에 稷門이라는 都城門이 있었는데, 천하의 선비들이 稷門의 아래에 모여들었다.
十九年,宣王卒,子湣王地立。
선왕19년(기원전301년), 선왕이 죽고 아들 湣王 田地가 즉위하였다.
湣王元年,秦使張儀與諸侯執政會于齧桑。
민왕 원년(기원전300년), 秦이 張儀를 보내 제후국들의 집정 대신들과 齧桑에서 회맹하였다.
三年,封田嬰於薛。
민왕3년, 田嬰을 薛땅에 봉하였다.
四年,迎婦于秦。
민왕4년, 秦에서 부인을 맞아들였다.
七年,與宋攻魏,敗之觀澤。
민왕7년, 齊가 宋와 함께 魏를 공격하여 觀澤에서 패퇴시켰다.
▶ 湣王: 齊湣王. 전국시대 齊의 군주로 이름은 地 또는 遂다. 齊閔王 또는 齊愍王이라고 부른다. 宣王의 아들이다. 기원전300年 정식으로 즉위하여 17년간 재위하였으며, 재위시 孟嘗君을 재상으로 삼고, 匡章을 장군으로 삼았다. 여러 차례 楚軍을 격파했고, 韓, 魏와 연합해 秦을 공격하여 函谷關으로 들어갔다. 민왕12년 蘇秦을 재상으로 등용해 秦昭王와 東西帝로 병칭되었는데, 소진의 권유에 따라 帝號를 없애고 合縱하여 秦에 맞섰다.
▶ 湣王元年: <자치통감>에는 기원전323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 齧桑: 梁과 彭城의 사이.
▶ 田嬰: 전국시대 齊의 公族으로 威王의 少子다. 孟嘗君의 아버지다. 처음 장수가 되어 馬陵전투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齊 군주가 나라를 통치하는 일에 싫증을 내 모든 일을 그에게 맡겼는데, 그가 권력을 농단하고 사익을 챙겨 거부가 되었다. 薛公이라 불렸고, 靖郭君이라 불려졌다.
十二年,攻魏。
민왕12년, 齊가 魏를 공격하였다.
楚圍雍氏,秦敗屈丐。
楚가 韓의 雍氏를 포위했고, 秦이 楚의 장수 屈丐를 패퇴시켰다.
蘇代謂田軫曰:
「臣願有謁於公,其為事甚完,使楚利公,成為福,不成亦為福。
今者臣立於門,客有言曰魏王謂韓馮、張儀曰:
『煮棗將拔,齊兵又進,子來救寡人則可矣;
不救寡人,寡人弗能拔。』
此特轉辭也。
秦、韓之兵毋東,旬餘,則魏氏轉韓從秦,秦逐張儀,交臂而事齊楚,此公之事成也。」
蘇代가 楚의 사신 田軫에게 말하였다.
“신이 공을 뵙고자 함은 공을 위해 아주 완벽한 일이 있는데 楚로 하여금 공을 이롭게 할 터이니, 성사되어도 복이 되고 성사되지 않아도 복이 될 터입니다.
오늘 신이 문 앞에 서 있는데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魏왕이 사신으로 온 韓馮, 張儀에게 이렇게 말하였답니다.
‘煮棗는 장차 함락될 것이니 齊軍이 진군하면 그대들이 와서 과인을 구원해야 하오.
과인을 구원하지 않으면 과인은 버틸 수 없소’
이 말은 단지 완곡한 말입니다.
秦과 韓의 軍隊가 동쪽으로 魏를 구원하러 가지 않고 10여 일이 지나면 魏는 책략을 바꾸고 韓은 秦을 따르고, 秦은 장의를 쫓아내고 齊와 楚를 두 손을 맞잡아 받들 것이니, 이것이 바로 공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 雍氏: 韓의 도읍인 陽翟. 지금의 河南省禹縣동북쪽.
▶ 蘇代: 蘇秦의 아우이며 그 아우 蘇厲와 함께 三蘇로 불리던 당시 遊說客이다.
▶ 田軫: 陳軫. 유세객으로 일찍이 장의와 같이 秦惠文王을 섬길 때 둘은 서로 반목하는 관계였다. 그 후 陳軫은 楚로 갔다.
▶ 完: 완벽하다. 훌륭하다.
▶ 韓馮: 韓朋이라고도 한다. 韓의 사신.
▶ 煮棗: 지명. 전국시대 魏의 땅.
▶ 轉辭: 완곡한 말.
▶ 魏氏轉: 魏가 책략을 전환하다.
▶ 交臂: 두 손을 맞잡아 인사하다. 존중을 표시함
田軫曰:
「柰何使無東?」
전진이 말하였다.
“어떻게 秦과 韓이 동쪽으로 출병하지 않게 할 수 있소?”
對曰:
「韓馮之救魏之辭,必不謂韓王曰
『馮以為魏』,必曰
『馮將以秦韓之兵東卻齊宋,馮因摶三國之兵,乘屈丐之獘,南割於楚,故地必盡得之矣』。
張儀救魏之辭,必不謂秦王曰
『儀以為魏』,必曰
『儀且以秦韓之兵東距齊宋,儀將摶三國之兵,乘屈丐之獘,南割於楚,名存亡國,實伐三川而歸,此王業也』。
소대가 대답하였다.
“韓馮이 <魏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는 말은 반드시 韓왕에게
‘한풍이 魏를 구원하기 위해서’
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틀림없이
‘한풍이 秦과 韓의 軍士를 이용하여 동쪽의 齊와 宋을 물리치고, 한풍은 그 틈에 진·한·위 세 나라의 軍士를 통솔하여 楚 장수 굴개가 지친 틈을 타서 남쪽 楚의 땅을 나누면, 韓이 잃은 옛 땅들을 완전히 되찾을 것입니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장의가 <魏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는 말은 반드시 秦왕에게
‘장의가 魏를 구원하기 위해서’
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틀림없이
‘장의가 秦과 韓의 軍隊로 동쪽의 齊와 宋軍에 저항하도록 하고, 장의가 세 나라의 軍士를 통솔하여 굴개가 지친 틈을 타서 남쪽의 楚의 땅을 나누면 명목상 망해가는 魏를 보존하기 위함이나, 실제로는 三川땅을 공격하여 되찾는 것으로 이는 왕의 공업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 摶: 통솔하다.
▶ 三川: 韓의 땅으로 黃河‧洛水‧伊水유역
公令楚王與韓氏地,使秦制和,謂秦王曰『請與韓地,而王以施三川,韓氏之兵不用而得地於楚』。
韓馮之東兵之辭且謂秦何?
曰『秦兵不用而得三川,伐楚韓以窘魏,魏氏不敢東,是孤齊也』。
張儀之東兵之辭且謂何?
曰『秦韓欲地而兵有案,聲威發於魏,魏氏之欲不失齊楚者有資矣』。
공께서는 楚왕에게 韓의 땅을 돌려주게 하며, 秦으로 하여금 한과 진 두 나라가 강화하도록 하고, 秦왕에게 말하기를,
‘청컨대 楚로 하여금 韓에게 땅을 돌려주게 하신다면, 왕께서는 삼천에서 軍士를 시위하며 韓軍을 사용하지 않고도 楚에게서 땅을 찾아올 수 있습니다.’
라고 하십시오.
한풍이 동쪽으로 출병하겠다는 말은 秦왕에게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秦은 軍士를 동원하지 않고 삼천을 얻고, 楚와 韓을 공격하여 魏를 궁지에 몰면 魏軍이 감히 동쪽으로 齊와 연합하지 못할 것이니, 이는 齊를 고립시키는 것입니다.’
라고 하십시오.
장의가 동쪽으로 진군한다는 말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秦과 韓이 땅을 얻기 위해 軍士를 주둔시켜 魏에 명성과 위엄을 떨쳤으며, 魏는 齊와 楚와의 관계를 잃지 않으려는 魏의 본전도 채웠습니다.’
라고 하십시오.
▶ 制和: 두 나라를 화해시키다.
▶ 施: 시위하다.
▶ 案: 按과 같다. 억제하다.
▶ 資: 本錢.
魏氏轉秦韓爭事齊楚,楚王欲而無與地,公令秦韓之兵不用而得地,有一大德也。
秦韓之王劫於韓馮、張儀而東兵以徇服魏,公常執左券以責於秦韓,此其善於公而惡張子多資矣。」
魏가 秦과 韓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齊와 楚를 다투어 섬기게 되면 楚왕은 땅을 韓에게 떼어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니
공께서는 秦과 韓의 軍士를 동원하지 않고도 땅을 얻을 수 있게 한다면, 두 나라에 커다란 은혜를 베풀게 되는 것입니다.
秦과 韓의 왕이 한풍과 장의의 위협을 받아들여서 동쪽으로 출병시켜 魏를 순종하며 복종토록 하면, 공께서는 항상 주도권을 잡고서 秦과 韓에서 중책을 맡을 것이니 이것이 두나라가 공을 좋아하고 장의의 군사력 낭비를 증오하게 하는 것입니다.”
▶ 劫: 위협하다.
▶ 徇: 순종하다.
▶ 左券: 고대에 계약서를 좌우 둘로 나우었는데 왼쪽을 좌권이라 하였으면 채권자가 가졌다. 여기서는 성공하여 주도권을 잡았다는 의미이다.
▶ 張子: 張儀.
十三年,秦惠王卒。
민왕13년, 秦惠王이 죽었다.
二十三年,與秦擊敗楚於重丘。
민왕23년, 秦과 함께 重丘에서 楚를 물리쳤다.
二十四年,秦使涇陽君質於齊。
민왕24년, 秦이 涇陽君을 齊에 인질로 보냈다.
二十五年,歸涇陽君于秦。
민왕25년, 경양군이 秦으로 돌아갔다.
孟嘗君薛文入秦,即相秦。文亡去。
孟嘗君 薛文이 秦에 들어가서 재상에 임명되었지만 설문은 도망쳐 齊로 돌아왔다.
二十六年,齊與韓魏共攻秦,至函谷軍焉。
민왕26년, 齊가 韓, 魏와 함께 秦을 공격하여 함곡관에 이르러 군을 주둔시켰다.
二十八年,秦與韓河外以和,兵罷。
민왕28년, 秦이 韓에게 河外의 땅을 주고 화친을 맺으니 철군하였다.
二十九年,趙殺其主父。
민왕29년, 趙가 主父 武靈王을 죽였다.
齊佐趙滅中山。
齊가 趙를 도와 中山國을 멸망시켰다.
▶ 質: 인질.
▶ 河外: 전국시대 황하의 이남을 하외라고 하였다.
▶ 趙殺其主父: 趙가 주부를 죽였다. 주부는 趙武靈王을 말한다. 무령왕은 전국시대 趙의 군주로 이름은 雍이고, 肅侯의 아들이다. 무령왕19년 胡服을 입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시행해 유목 민족을 방어하였다. 中山을 공격해 멸망시키고, 林胡와 樓煩을 격파하는 등 국세를 크게 신장시켰다. 군사개혁을 시도했고, 변방을 개척해 나갔다. 무령왕27년 둘째 아들 何(: 趙惠文王)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스스로 主父라 불렀다. 맏아들 章을 代의 安陽君에 봉하자 장이 불만을 품고 병사를 일으켜 왕위를 다투다 실패하고 달아나 주부가 사는 沙丘宮에 머물렀다. 李兌가 주부의 저택을 석 달 동안 포위하자 공자 장이 먼저 죽고 무령왕도 자신의 궁에 유폐된 채 굶어죽고 말았다. <史記世家권43. 趙世家>
三十六年,王為東帝,秦昭王為西帝。
민왕36년(기원전288년), 齊왕이 東帝, 秦昭王이 西帝를 칭하였다.
蘇代自燕來,入齊,見於章華東門。
소대가 燕에서 齊로 들어오다 章華宮의 동문에서 齊왕을 만났다.
齊王曰:
「嘻,善,子來!
秦使魏冉致帝,子以為何如?」
齊왕이 말하였다.
“오! 잘되었소, 그대가 오셨구려!
秦이 魏冉을 시켜서 帝라는 호칭을 보냈는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對曰:
「王之問臣也卒,而患之所從來微,願王受之而勿備稱也。
秦稱之,天下安之,王乃稱之,無後也。
且讓爭帝名,無傷也。
秦稱之,天下惡之,王因勿稱,以收天下,此大資也。
且天下立兩帝,王以天下為尊齊乎?
尊秦乎?」
소대가 대답하였다.
“왕께서 신에게 갑작스러운 질문을 하시나, 환난이 오는 곳은 분명치 않으니 왕께서는 제호를 받으시되 즉시 제를 칭하지는 마십시오.
秦이 제를 칭하고도 천하가 조용하면 왕께서 제로 칭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더구나 帝라는 이름을 다투기를 사양한다고 손해될 것이 없습니다.
秦이 칭제함을 천하가 싫어하면 왕께서는 칭제하지 않음으로써 천하의 인심을 거두게 되니 이는 큰 밑천이 됩니다.
게다가 천하에 두 명의 帝가 있다면 왕께서는 천하가 齊를 받들 것 같습니까,
秦을 받들 것 같습니까?”
王曰:
「尊秦。」
왕이 말하였다.
“秦을 받들겠지요.”
▶ 致帝: 帝의 호칭을 보내다.
▶ 卒: 갑자기.
▶ 微: 분명치 않다. 희미하다.
▶ 無後: 늦지 않다.
曰:
「釋帝,天下愛齊乎?
愛秦乎?」
소대가 물었다.
“칭제를 내려놓으면 천하가 齊를 좋아하겠습니까, 秦을 좋아하겠습니까?”
王曰:
「愛齊而憎秦。」
왕이 대답하였다.
“齊를 좋아하고 秦을 미워할 터이오.”
曰:
「兩帝立約伐趙,孰與伐桀宋之利?」
소대가 물었다.
“두 帝가 趙를 공격하기로 맹약한다면 桀宋을 공격하는 것과 어느 쪽이 더 유리할까요?”
王曰:
「伐桀宋利。」
왕이 대답하였다.
“걸송을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지요.
對曰:
「夫約鈞,然與秦為帝而天下獨尊秦而輕齊,釋帝則天下愛齊而憎秦,伐趙不如伐桀宋之利,故願王明釋帝以收天下,倍約賓秦,無爭重,而王以其閒舉宋。
소대가 말하였다.
“무릇 맹약은 균등하지만 秦과 함께 帝라고 칭하면 천하는 秦만을 받들고 齊를 깔볼 것이며, 제라는 호칭을 포기하면 천하는 齊를 좋아하고 秦을 미워할 것이며, 趙를 공격하는 것이 걸송을 공격하는 것만 유리하지 못하니, 원하옵건대 왕께서는 帝라는 호칭을 확실히 포기하시고 천하의 인심을 거두시어, 맹약을 어기고 秦을 물리쳐 秦과 높고 낮음을 다투지 마시되 왕께서는 이때를 이용하여 宋을 공격하십시오.
▶ 釋帝: 帝号를 포기하다.
▶ 桀宋: 宋王偃. 동쪽으로는 齊를 물리치고 서쪽으로는 魏를 물리쳤으며, 남쪽으로는 楚를 물리치고, 滕을 멸망시키는 등 교만하게 한 시대를 횡행하였다. 또 酒色을 좋아해 신하들이 간언으로 말리면 곧 활을 쏘아 죽여 버렸다. 제후들이 모두 桀宋이라 불렀다. 齊湣王과 魏, 楚가 연합하여 宋을 공격하자 달아났지만 魏에서 죽었다.
▶ 鈞: 均과 통용된다. 균등하다.
▶ 倍: 背와 통용된다. 등지다. 배반하다.。
▶ 賓: 물리치다. 버리다.
▶ 爭重: 높고 낮음을 다투다.
夫有宋,衛之陽地危;
有濟西,趙之阿東國危;
有淮北,楚之東國危;
有陶、平陸,梁門不開。
宋을 차지하면 衛의 陽땅이 위험해지고,
濟水의 서쪽을 차지하면 趙의 阿땅의 동쪽 일대가 위험해지고,
淮水의 북쪽을 차지하면 楚의 동쪽 일대가 위험해지고,
陶와 平陸을 차지하면 魏(: 梁나라 수도 大樑)의 성문을 열지 못할 터입니다.
釋帝而貸之以伐桀宋之事,國重而名尊,燕楚所以形服,天下莫敢不聽,此湯武之舉也。
칭帝를 포기하고 그 대신 걸송을 공격하는 일은 나라를 지위와 명성을 높여 燕과 楚가 형세에 따라 복종할 것이며, 천하 각국이 모두 감히 齊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으니 이는 商湯과 周武王의 대업과 같습니다.
敬秦以為名,而後使天下憎之,此所謂以卑為尊者也。
秦을 존중하는 명분으로 한 후에 천하로 하여금 秦을 미워하게 함은 이른바 자신을 낮춤으로써 존귀해지는 것입니다.
願王孰慮之。」
원하옵건대 왕께서는 심사숙고하십시오.
於是齊去帝復為王,秦亦去帝位。
이에 齊는 帝라는 호칭을 버리고 王號를 회복했고, 秦도 帝號를 포기하였다.
▶ 貸: 대신하다.
▶ 形服: 형세에 따라 복종하다.
三十八年,伐宋。
민왕38년, 齊가 宋을 공격하였다.
秦昭王怒曰:
「吾愛宋與愛新城、陽秦同。
韓聶與吾友也,而攻吾所愛,何也?」
秦昭王이 노하여 말하였다.
“내가 新城과 陽秦을 아끼듯 宋을 아꼈다.
韓聶은 나의 친구이면서도 내가 아끼는 곳을 공격하니 어찌된 일인가?”
蘇代為齊謂秦王曰:
「韓聶之攻宋,所以為王也。
齊彊,輔之以宋,楚魏必恐,恐必西事秦,是王不煩一兵,不傷一士,無事而割安邑也,此韓聶之所禱於王也。」
소대가 齊를 위하여 진왕에게 말하였다.
“한섭이 宋을 공격함은 왕을 위하기 때문입니다.
강한 齊가 宋까지 합하여 왕을 보필하면 楚와 魏는 틀림없이 두려워할 터이고, 두려우면 반드시 서쪽의 秦을 섬길 터이니, 왕께서는 軍 하나를 번거롭게 하지 않고 병사 한 명 다치지 않고 아무 일 없이 安邑을 차지할 수 있으니, 한섭이 이를 위해 왕께 빌고 있는 것입니다.”
▶ 秦昭王: 昭襄王: 昭王. 秦의 제28대 군주.
▶ 韓聶: 韓의 장수. <전국책>에는 韓珉으로 기록되어 있다.
▶ 新城, 陽秦: 新城은 원래 韓 땅으로 지금의 河南省商丘縣남쪽. 陽秦은 원래 衛 땅으로 지금의 山東省鄆城縣서쪽.
▶ 蘇代: 전국시대 合從家로 소진의 동생이다. <전국책>에는 蘇秦으로 기록되어 있다.
秦王曰:
「吾患齊之難知。
一從一衡,其說何也?」
진왕이 말하였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齊를 알기 어렵다는 것이오.
합종했다가 연횡했다 하니 이를 어떻게 설명하겠소?”
對曰:
「天下國令齊可知乎?
齊以攻宋,其知事秦以萬乘之國自輔,不西事秦則宋治不安。
中國白頭游敖之士皆積智欲離齊秦之交,伏式結軼西馳者,未有一人言善齊者也,伏式結軼東馳者,未有一人言善秦者也。
何則?
皆不欲齊秦之合也。
何晉楚之智而齊秦之愚也!
秦晉合必議齊秦,齊秦合必圖晉楚,請以此決事。」
소대가 대답하였다.
“천하의 모든 나라로 하여금 齊를 알게 할 수 있습니까?
齊가 宋을 공격하면서, 秦을 섬겨 만승지국의 힘을 보필로 삼고 있으며, 서쪽으로 秦을 섬기지 않으면 宋을 다스림이 불안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중원의 머리가 센 유세가들은 모두가 지혜를 모아 齊와 秦의 연합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수레가 끊임없이 오가며 서쪽으로 내닫는 자들치고 齊에 대해 좋게 말하는 자는 한 사람도 없고, 수레가 끊임없이 오가며 동쪽으로 내닫는 자들치고 秦에 대해 좋게 말하는 자 하나도 없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모두가 齊·秦의 연합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晉·楚는 지혜롭고, 齊·秦은 어리석다는 말입니까!
晉·楚가 연합하면 반드시 齊·秦에 대하여 논의할 것이고, 齊·秦이 연합하면 틀림없이 晉·楚를 도모할 것입니다.
왕께서는 이런 정황을 감안하여 결정하십시오!”
▶ 從: 縱과 같다. 합종하다.
▶ 衡: 連衡. 連橫.
▶ 宋治: 宋이 관할하는 지역.
▶ 中國: 춘추전국시대 중원 지역을 중국이라 칭하였다.
▶ 游敖之士: 유세가.
▶ 積智: 지혜와 계략을 모으다.
▶ 伏式結軼: 수레가 끊임없이 오간다는 뜻. 式은 軾으로 수레 앞턱의 횡목. 結軼은 結軼과 같다. 수레와 말이 왕래가 잦아 끊이지 않다. 軼은 轍과 통한다
秦王曰:
「諾。」
진왕이 말하였다.
“좋소.”
於是齊遂伐宋,宋王出亡,死於溫。
이에 齊는 마침내 宋을 공격했고, 송왕은 도망쳐 溫땅에서 죽었다.
齊南割楚之淮北,西侵三晉,欲以并周室,為天子。
齊는 남쪽으로는 楚의 淮北을 떼어갖고, 서쪽으로 삼진을 침공하여 周왕실을 합병함으로써 천자가 되려고 하였다.
泗上諸侯鄒魯之君皆稱臣,諸侯恐懼。
泗水 주위의 제후국인 鄒와 魯의 군주가 모두 칭신하였고, 다른 제후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 宋王出亡: 宋王偃. 宋康王. 齊湣王과 魏, 楚가 연합하여 宋을 공격하자 달아났지만 魏에서 죽었다.
三十九年,秦來伐,拔我列城九。
민왕39년, 秦이 齊를 공격해서 齊의 9개 성읍을 점령하였다.
四十年,燕、秦、楚、三晉合謀,各出銳師以伐,敗我濟西。
민왕40년(기원전284년), 燕·秦·楚·韓·魏·趙가 함께 모의하고 각자 정예병을 내어 齊를 공격하여 齊를 濟水 서쪽에서 패퇴시켰다.
王解而卻。
齊왕 軍隊가 뿔뿔이 흩어져 퇴각하였다.
燕將樂毅遂入臨淄,盡取齊之寶藏器。
燕의 장수 樂毅가 마침내 臨淄로 들어가 齊가 보존한 보물과 제기들을 모조리 가져갔다.
湣王出亡,之衛。
민왕은 도망쳐 衛로 갔다.
衛君辟宮捨之,稱臣而共具。
衛의 군주는 자신의 궁을 비워 그를 머물게 하고 稱臣하면서 모든 것을 제공하였다.
湣王不遜,衛人侵之。
민왕이 불손하게 굴자 衛 사람들이 그를 공격하였다.
湣王去,走鄒、魯,有驕色,鄒、魯君弗內,遂走莒。
민왕이 떠나서 鄒와 魯로 달아나서도 교만한 기색을 보이자 鄒와 魯의 군주가 들이지 않았고, 마침내 莒로 갔다.
楚使淖齒將兵救齊,因相齊湣王。
楚가 淖齒에게 軍士를 거느리고 齊를 구원하게 했고, 이로 인해 요치는 제민왕을 보좌하게 되었다.
淖齒遂殺湣王而與燕共分齊之侵地鹵器。
요치가 마침내 민왕을 죽이고 빼앗은 齊의 땅과 약탈한 제기들을 燕과 나누었다.
▶ 解: 뿔뿔히 흩어지다.
▶ 樂毅: 戰國時代에 활약한 燕의 무장. 조·초·한·위·연의 군사를 이끌고 당시 강대국이던 齊를 공격하였다. 燕 혜왕이 즉위하자 齊 전단의 이간책으로 趙로 달아났다 연·조 두 나라의 客卿이 되었다.
<史記列傳권80樂毅列傳>
▶ 臨淄: 齊의 수도.
▶ 共: 供과 같다. 공급하다.
▶ 辟: 피하다.
▶ 内: 받아들이다.
▶ 淖齒: 楚의 장군. 燕 장수 樂毅가 五國을 연합해서 齊에 쳐들어오자 齊湣王이 莒로 도망쳐서 楚에 구원을 청하니, 楚는 장군 淖齒를 보내 구원하였다. 민왕이 감격해서 요치를 재상으로 삼았으나 요치는 齊 땅을 燕과 반분할 셈으로 莒에서 민왕을 죽여 그 筋骨을 뽑아 대들보에 다는 만행을 저질렀다. <사기 권32. 齊太公世家> <사기 권79. 범수·范睡·蔡澤列傳>
▶ 莒: 춘추시대 莒子의 나라.
▶ 鹵: 노획하다. 약탈하다.
湣王之遇殺,其子法章變名姓為莒太史敫家庸。
민왕이 살해당하자 그의 아들 法章은 變姓名하고 莒의 태사씨 敫의 집에서 머슴이 되었다.
太史敫女奇法章狀貌,以為非恒人,憐而常竊衣食之,而與私通焉。
태사 교의 딸이 법장의 용모를 비범하게 여기고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가엾게 여겨 항상 남몰래 옷과 음식을 주다가 私通하였다.
淖齒既以去莒,莒中人及齊亡臣相聚求湣王子,欲立之。
요치가 莒를 떠난 뒤 莒사람들과 齊에서 도망 온 신하들이 서로 모여 민왕의 아들을 찾아 옹립하려고 하였다.
法章懼其誅己也,久之,乃敢自言
「我湣王子也」。
법장은 그들이 자기를 죽일까 두려워 한참 만에야 감히 스스로 말하기였다.
“내가 민왕의 아들이다.”
於是莒人共立法章,是為襄王。
이에 거 사람들이 함께 법장을 옹립하니 그가 襄王이다.
以保莒城而布告齊國中:
「王已立在莒矣。」
거성을 지키면서 齊에 포고하였다.
“왕께서 이미 즉위하여 거에 계시다.”
▶ 遇殺: 살해당하다. 齊湣王은 기원전284년 淖齒에 의해 鼔里에서 피살되었다
▶ 太史: 氏이다.
▶ 傭: 남을 위해 일을 해주고 품삯을 받다.
▶ 恒人: 보통 사람. 常人.
▶ 保: 점유하다.
▶ 襄王: 齊襄王. 전국시대 齊의 군주로 法章이며, 湣王의 아들이다. 淖齒가 湣王을 죽이자 莒사람들이 민왕의 아들 法章을 즉묵 땅에서 田單과 합세해 명실상부하게 왕으로 옹립하였다.
襄王既立,立太史氏女為王后,是為君王后,生子建。
양왕은 즉위한 후 태사씨의 딸을 황후로 삼으니 그녀가 君王后이며, 아들 建을 낳았다.
太史敫曰:
「女不取媒因自嫁,非吾種也,汙吾世。」
태사 교가 말하였다.
“여자가 중매도 없이 스스로 시집갔으니 내 씨가 아니고 나의 세대를 더럽혔다.”
終身不睹君王后。
죽을 때까지 군왕후를 보지 않았다.
君王后賢,不以不睹故失人子之禮。
군왕후는 어질었으므로, 아버지가 보지 않는다 하여 자식의 예를 잃지는 않았다.
▶ 君王后: 齊襄王의 부인. 襄王이 죽고 아들 建이 齊왕이 되었을 때 秦을 섬기고 제후들과 신의를 유지하여 建이 齊왕으로 있은 40여 년 동안은 제후들의 침략을 받지 않았다.
▶ 世: 代.
襄王在莒五年,田單以即墨攻破燕軍,迎襄王於莒,入臨菑。
양왕이 莒에 머문 지 5년(기원전279년), 田單이 卽墨의 도움으로 燕軍을 격파하고 거에서 양왕을 맞이하여 임치로 들어갔다.
齊故地盡復屬齊。
齊의 옛 땅이 모두 다시 齊로 귀속되었다.
齊封田單為安平君。
齊는 전단을 安平君에 봉하였다.
▶ 田單: 원래 齊의 疏族으로 처음에는 수도 臨淄의 小吏였으나 燕과의 전쟁 때 卽墨싸움에서 火牛陣의 전법으로 燕軍을 대파하고 齊를 수복하여 安平君에 봉해져 相國이 되었다. <史記권82田單列傳>
▶ 即墨: 齊의 읍명. 山東省 卽墨縣.
十四年,秦擊我剛壽。
양왕14년(기원전270년), 秦이 齊의 剛과 壽를 공격하였다.
十九年,襄王卒,子建立。
양왕19년(기원전265년), 양왕이 죽고, 아들 建이 즉위하였다.
▶ 子建: 齊王 建. 齊共王이라고도 한다. 전국시대 齊의 마지막 군주로 이름은 建이다. 양왕의 아들로 왕조가 멸망하여 시호가 없다. 제왕 건45년(기원전221년)에 秦왕 政이 齊를 공격하자 건은 싸우지 않고 항복하였고, 이로써 秦은 전국을 통일하였다. 건은 共땅으로 유배되었다.
아래의 내용은 資治通鑑綱目제1기원전260년에 기록되어 있다.
王建立六年,秦攻趙,齊楚救之。
제왕 건 즉위6년, 秦이 趙를 공격하자 齊와 楚가 趙를 구원하였다.
秦計曰:
「齊楚救趙,親則退兵,不親遂攻之。」
秦이 계책을 세웠다.
“齊·楚가 趙를 구원하러 나섰는데 그들의 관계가 친밀하면 撤軍하고 친밀하지 않으면 공격한다.”
趙無食,請粟於齊,齊不聽。
趙는 먹을 것이 없어 齊에 식량을 요청했으나 齊는 들어주지 않았다.
▶ 子建: 齊王 建. 齊共王이라고도 한다. 전국시대 齊의 마지막 군주로 이름은 建이다. 양왕의 아들로 왕조가 멸망하여 시호가 없다. 제왕 건45년(기원전221년)에 秦왕 정이 齊를 공격하자 건은 싸우지 않고 항복하였고, 건은 共땅으로 유배되었다가 굶어 죽었다.
周子曰:
「不如聽之以退秦兵,不聽則秦兵不卻,是秦之計中而齊楚之計過也。
且趙之於齊楚,捍蔽也,猶齒之有脣也,脣亡則齒寒。
今日亡趙,明日患及齊楚。
且救趙之務,宜若奉漏甕沃焦釜也。
夫救趙,高義也;卻秦兵,顯名也。
義救亡國,威卻彊秦之兵,不務為此而務愛粟,為國計者過矣。」
周子가 말하였다.
“요청을 들어주어 秦軍을 물러가게 함이 낫습니다. 들어주지 않으면 秦軍는 물러가지 않을 터인데, 이는 秦의 계책이 적중하고 齊와 楚의 계책이 실패한 것입니다.
더구나 趙는 齊와 楚에게 있어서 막아주는 것으로, 이에 입술이 있음과 같으니,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립니다.
오늘 趙가 멸망하면 내일 우환이 齊와 楚에 닥칩니다.
또 趙를 구원하는 일은, 물이 새는 옹기라도 받쳐 들고 달궈진 솥에다 물을 부어 식히듯이, 시급합니다.
대저 趙를 구원함은 의리를 드높이는 일이고, 秦軍을 물러가게 함은 명성을 드날리는 일입니다.
의리로 망해가는 나라를 구하고, 위엄으로 강한 秦軍을 물러가게 하는 것인데, 이 일에 힘쓰지 않고 양식을 아낌에 힘쓰니 나라를 위하는 계책으로는 잘못된 것입니다.”
齊王弗聽。
齊왕이 듣지 않았다.
秦破趙於長平四十餘萬,遂圍邯鄲。
秦은 長平에서 趙의 40여만을 쳐부수고 한단을 포위하였다.
▶ 過: 잘못.
▶ 捍蔽: 병풍. 막아 가린다는 뜻으로 적의 공격을 방어함을 말한다.
▶ 奉漏甕沃焦釜: 물이 새는 옹기라도 가져다 달아오른 솥에다 물을 부어 식히는 것처럼 한다. 즉 제때에 못할까 두려워함을 말한 것이다. 沃은 물을 붓다. 釜는 솥.
▶ 長平: 趙 上黨郡의 읍. 長平大戰은 기원전262년에서 기원전260년에 걸쳐 秦과 趙 사이에 벌어진 대규모 전투이다. 秦이 長平에서 趙의 40만 대군을 패퇴시켰다. 중국의 전국시대의 판도를 변하게 만든 대표적인 전투이다.
아래의 내용은 史記권06. 秦始皇本紀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十六年,秦滅周。
제왕 건16년(기원전249년), 秦이 주나라를 멸하였다.
君王后卒。
군왕후가 죽었다.
二十三年,秦置東郡。
제왕 건23년(기원전242년), 秦이 東郡을 설치하였다.
二十八年,王入朝秦,秦王政置酒咸陽。
제왕 건28년(기원전237년), 제왕 건이 秦에 입조했으며 진왕 政이 咸陽에 술자리를 베풀었다.
三十五年,秦滅韓。
제왕 건35년(기원전230년), 秦이 韓을 멸하였다.
三十七年,秦滅趙。
제왕 건37년(기원전228년), 秦이 趙를 멸하였다.
三十八年,燕使荊軻刺秦王,秦王覺,殺軻。
제왕 건38년(기원전227년), 燕이 荊軻를 보내 진왕을 찌르게 했으나 진왕이 알아채고 형가를 죽였다.
明年,秦破燕,燕王亡走遼東。
이듬해, 秦이 燕을 쳐부수니, 연왕은 遼東으로 도망쳤다.
明年,秦滅魏,秦兵次於歷下。
그 이듬해(기원전225년), 秦이 魏를 멸하고, 秦軍이 歷下에 주둔하였다.
四十二年,秦滅楚。
제왕건42년(기원전223년), 秦이 楚를 멸하였다.
明年,虜代王嘉,滅燕王喜。
이듬해, 代王 嘉를 포로로 잡고, 연왕 喜를 죽였다.
▶ 秦置東郡: 기원전242년, 秦이 魏의 성 20개를 빼앗고 東郡을 설치하였다.
▶ 燕使荊軻刺秦王: 진왕 정20년(기원전227년), 燕태자 丹이 秦軍이 燕에 쳐들어올까 염려하여 두려운 나머지 荊軻에게 진왕을 찔러 죽이도록 하였다.
[史記列傳]권86刺客列傳
▶ 次: 주둔하다.
四十四年,秦兵擊齊。
제왕 건44년(기원전221년), 秦軍이 齊를 공격하였다.
齊王聽相后勝計,不戰,以兵降秦。
齊왕은 재상 后勝의 계책을 들어 싸우지 않고, 軍士를 이끌고 秦에 항복하였다.
秦虜王建,遷之共。
秦이 왕 건을 포로로 잡아 共땅으로 보냈다.
遂滅齊為郡。
마침내 齊를 멸하고 군으로 삼았다.
天下壹并於秦,秦王政立號為皇帝。
천하는 秦에 하나로 합병되었고, 秦王 政은 즉위하여 칭호를 황제라 하였다.
▶ 后勝: 齊의 재상.
▶ 壹并: 통일하다.
始,君王后賢,事秦謹,與諸侯信,齊亦東邊海上,秦日夜攻三晉、燕、楚,五國各自救於秦,以故王建立四十餘年不受兵。
당초 君王后는 현명하여 秦을 신중하게 섬기고 제후들에게 미더웠고, 齊 또한 동쪽 바닷가에 떨어져 있는 데다, 秦은 밤낮으로 삼진·燕·楚를 공격하고, 다섯 나라도 각자 秦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였으므로, 齊왕 건은 재위 40여년 兵革을 받지 않았다.
君王后死,后勝相齊,多受秦閒金,多使賓客入秦,秦又多予金,客皆為反閒,勸王去從朝秦,不修攻戰之備,不助五國攻秦,秦以故得滅五國。
군왕후가 죽고 后勝이 齊의 재상이 되어 秦의 간첩으로부터 뇌물을 많이 받고 齊 빈객들을 秦에 많이 보냈으며, 秦이 이들에게도 돈을 많이 주니 빈객들이 모두 반대로 간첩이 되어 齊왕에게 권하기를, 秦에 입조하고, 공격에 대비하지 말 것이며, 다섯 나라가 秦을 공격함도 돕지 말라고 하였으니, 秦이 이러한 까닭에 다섯 나라를 멸할 수 있었다.
▶ 閒: 간첩.
▶ 反閒: 反間. 적의 간첩을 역이용하는 것으로 <孫子兵法>〈用間〉에
“反間은 적의 첩자를 이용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五國已亡,秦兵卒入臨淄,民莫敢格者。
다섯 나라가 망하고 秦軍이 마침내 임치로 침입하니 백성들은 감히 대적하지 못하였다.
王建遂降,遷於共。
제왕 건이 마침내 항복하여 共땅으로 옮겨갔다.
故齊人怨王建不蚤與諸侯合從攻秦,聽姦臣賓客以亡其國,歌之曰:
「松耶柏耶?
住建共者客耶?」
이런 까닭에 齊 사람들은 제왕 건이 일찌감치 제후들과 합종하여 秦을 공격하지 않고, 간신과 빈객의 말만 듣고 나라를 망하게 함을 원망하여 노래하였다.
“소나무인가? 잣나무인가?
제왕 건을 공 땅에 살게 한 자는 빈객들인가?”
疾建用客之不詳也。
제왕 건이 빈객을 기용함이 세밀하지 못함을 증오한 것이다.
▶ 格: 대적하다. 맞서다.
▶ 客: 빈객. 齊에서 秦으로 간 客을 말한다.
▶ 疾: 증오하다. 미워하다.
▶ 詳: 자세히 살펴보다.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蓋孔子晚而喜易。
“공자는 만년에 <易經>을 즐겨 읽었다.
易之為術,幽明遠矣,非通人達才孰能注意焉!
<易經>이란 학문은 유형과 무형의 도리가 심오하여 이치에 통달한 인재가 아니면 누가 전념할 수 있었겠는가!
笔周太史之卦田敬仲完,占至十世之後;
及完奔齊,懿仲卜之亦云。
그래서 주나라의 태사가 田敬仲完의 괘를 뽑아 점을 쳐서 10대 뒤의 일을 예견하였고.
중완이 齊로 도망쳐오자 懿仲의 점괘도 그러했다.
田乞及常所以比犯二君,專齊國之政,非必事勢之漸然也,蓋若遵厭兆祥云。
田乞와 田常이 잇달아 두 군주를 범하고 齊의 정권을 독점한 것은, 일의 형세가 꼭 그렇게 점차 진행되었다기보다는 마치 점을 쳐서 얻은 조짐에 따라 진행된 듯하다.
▶ 術: 학문.
▶ 幽明: 주역에서 말하는 유형과 무형의 물상.
▶ 遠: 심오한 이치.
▶ 通人達才: 널리 사물의 이치에 통달한 인재.
▶ 笔: 그래서. 그런 까닭에. =故
▶ 周太史之卦: 陳完은 陳厲公의 아들이다. 完이 태어났을 때 周나라의 太史가 陳에 들렀는데 진여공이 완에 대해 점을 치게 했더니 ‘觀’에서 ‘否’로 변하는 점괘가 나왔다. <史記권46. 田敬仲完世家>
▶ 田敬仲完: 춘추시대 齊 사람으로 敬仲 또는 公子完, 陳完으로도 불린다. 陳의 公子로 齊에 망명하여 제환공을 섬겨 卿이 되고, 뒤에 田으로 성을 바꾸었다. 田成子 田常의 선조이다.
▶ 完奔齊: 진완은 태자인 御寇가 살해당하자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齊로 도망갔었다.
▶ 懿仲: 齊의 대부. 齊의 대부 懿仲이 진완에게 딸을 주고 싶어서 점을 쳤더니
‘8대 이후에는 그보다 높은 자가 없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 田乞(전걸/전기): 田釐子 또는 田僖子라고도 한다. 田桓子의 아들. 춘추시대 말기 齊의 대신. 기원전489년, 景公이 죽자 전기는 경공의 유지를 뒤엎고 제도공을 군주로 세웠으며, 전기의 아들 전상은 도공을 죽이고 簡公을 군주로 세웠다
▶ 比: 연잇다. 연속하다.
▶ 漸然: 점차 그러해지다.
▶ 厭: 마음에 차다. 부합하다.
▶ 兆祥: 점을 쳐서 얻은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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