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列傳

​列傳권70.張儀列傳(張儀열전)

耽古樓主 2023. 7. 27. 20:02

 

​장의(張儀, ? ~ 기원전 309년)는 중국 전국시대 秦의 정치가·외교가이다.
친구 蘇秦과 함께 鬼谷先生에게서 수학한 적이 있었다. 그는 秦에 등용되기 전까지 갖은 수모를 겪다가 마침내 秦 혜문왕을 만나 정치 고문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재상으로 승진되었는데, 蜀를 평정하고 魏의 일부를 차지하는 공을 세웠다.
6년 뒤에 秦과 짜고 魏의 재상이 되었는데, 魏로 하여금 진을 섬기게 하려 했으나 말을 듣지 않자 秦에게 몰래 연락해 魏가 크게 지도록 만들었다. 이듬해 齊가 魏를 공격하고 마침내 秦이 魏를 공격할 목적으로 먼저 韓를 쳐, 군사 8만 명을 몰살시켰다. 이에 장의는 魏王을 설득하여 소진이 이룩해낸 합종책의 약속을 깨고 秦과 화친했으며, 장의는 다시 秦으로 돌아가 재상이 되었다. 3년 뒤 魏는 秦을 배반하고 합종에 재가담했으나, 秦이 공격하자 다시 화친했다.
장의는 강대국 楚로 달려가 楚를 망국의 위기에 몰아넣고, 다시 韓으로 가서 그 왕을 협박, 韓 역시 秦을 섬기도록 했다. 秦으로 돌아간 그는 惠文王으로부터 武信君이라는 칭호를 받고 다시 齊로 갔다. 齊王 또한 장의의 설득을 듣고 秦을 섬기게 되었으며, 趙로 간 장의는 또한 왕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燕까지 설득하여, 秦과의 연횡책을 완성시켰다. 그는 秦으로 돌아갔으나 왕이 혜문왕의 아들 무왕으로 바뀌어 있었다. 진무왕은 어릴 적부터 장의를 싫어하였을뿐더러, 이를 눈치챈 신하들이 비방하기 시작했다. 장의와 왕의 관계가 예전만 못하다는 소문이 퍼져 제후들이 연횡책을 버리고 다시 합종책을 택하였다. 이후 장의는 자원해서 魏로 간 뒤 1년 동안 재상으로 있다가 죽었다.

 

列傳권70.張儀列傳(張儀열전)

 

 

​張儀者魏人也.
張儀는 의 사람이다.

始嘗與蘇秦俱事鬼谷先生學術蘇秦自以不及張儀.
일찍이 蘇秦과 함께 鬼谷先生을 스승으로 모셨는데학술에 있어서 蘇秦은 자신이 張儀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

張儀已學而游說諸侯.
張儀는 학업을 마치고 제후에게 유세하였다.

嘗從楚相飮已而楚相亡璧門下意張儀曰 :
「 儀貧無行必此盜相君之璧
한 번은 재상을 隨從하여 연회에 참석했는데연회를 마치고 나니 재상의 (둥근 옥)이 없어졌으므로 재상의 문하인들이 張儀를 의심하며 말하였다.
"張儀는 가난하고 행실이 좋지 않으니틀림없이 이 자가 재상의 을 훔쳤을 터이다."

共執張儀掠笞數百不服醳之.
다함께 張儀를 붙잡아 매질을 수백 번 하였으나張儀가 불복하자 풀어 주었다.

其妻曰 :
「 嘻 子毋讀書游說安得此辱乎 
그의 처가 말하였다.
"당신이 독서와 유세를 하지 않았으면 어찌 이런 치욕을 당했겠습니까?

張儀謂其妻曰 :
「 視吾舌尙在不 
張儀가 그 처에게 말하였다.
"내 혀가 아직 있는지 없는지 보시오!"

其妻笑曰 :
「 舌在也
처가 웃으며 말하였다.
"혀는 붙어 있어요."

儀曰 :
「 足矣
張儀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됐소."

▶ 張儀: 당시 楚의 재상은 昭陽이다. 楚懷王 때 柱國을 역임하였다. 懷王6년(기원전 323년) 군사를 이끌고 魏를 공격하여 8개의 고을을 점령하였다. 승세를 타고 군사를 돌려 齊를 공격하려고 하자 齊王이 두려워하였다. 제왕은 秦軫을 보내 유세하여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게 하였다.

 

列傳권70.張儀列傳(張儀열전)

 

 

 

蘇秦已說趙王而得相約從親然恐秦之攻諸侯敗約後負念莫可使用於秦者乃使人微感張儀曰 :
「 子始與蘇秦善今秦已當路子何不往游以求通子之願 
당시 蘇秦은 이미 趙王을 설득하여 합종의 맹약을 맺는 데 성공하였으나이 제후를 공격하여 맹약이 실패하고 제후가 배반할까 염려하여생각해보아도 에 보내 등용시킬 만한 자가 없었으므로사람을 시켜 張儀를 몰래 자극하려 말하였다.
"그대는 처음부터 蘇秦과 사이가 좋았고 지금 蘇秦은 要路에 있는데그대는 어찌 가서 유세하여 원하는 바를 구하지 않소?"

▶當路: 정권을 잡음. 요로에 있음


張儀於是之趙上謁求見蘇秦.
이에 張儀는 로 가서 蘇秦에게 명함을 올리고 만나기를 청하였다.

蘇秦乃誡門下人不爲通又使不得去者數日.
蘇秦은 문하인들에게 주의시키기를張儀를 통과시키지 않되 며칠 동안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已而見之坐之堂下賜僕妾之食.
이렇게 한 후에 蘇秦이 그를 접견하면서堂下에 앉히고 下人과 侍妾의 음식을 주었다.

因而數讓之曰 :
「 以子之材能乃自令困辱至此.
吾寧不能言而富貴子子不足收也
그리고는 여러 차례 꾸짖었다.
"자네의 재능으로 자신을 곤궁에 빠뜨리기가 이에 이르렀구나.
내 어찌 자네를 천거하여 부귀하게 만들 수 없겠는가마는자네는 거두어 쓰기에 부족하네."

謝去之.
사절하여 張儀를 떠나게 하였다.

張儀之來也自以爲故人求益反見辱念諸侯莫可事獨秦能苦趙乃遂入秦.
張儀가 올 때 옛 친구라고 여겨 도움을 청하였는데오히려 모욕을 당하자 화가 났으나제후에 섬길만한 자가 없고오직 이 를 괴롭힐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으로 들어갔다.

蘇秦已而告其舍人曰 :
「張儀天下賢士吾殆弗如也.
今吾幸先用而能用秦柄者獨張儀可耳.
然貧無因以進.
吾恐其樂小利而不遂故召辱之以激其意.
子爲我陰奉之.」
그러자 蘇秦은 舍人에게 일러두었다.
"張儀는 천하의 현명한 선비이라서내가 그만 못할 정도이다.
지금 내가 다행히 먼저 등용되었지만능히 의 권력을 잡을 사람은 오직 張儀가 가능할 뿐이다.
그러나 가난하여 出仕할 기회가 없었다.
나는 그가 작은 이익을 즐겨 크게 이루지 못할까 염려하여일부러 그를 불러서 욕보임으로써 그 뜻을 격앙하였다.
그대는 나를 위하여 몰래 그를 보살펴 주어라."

 

乃言趙王發金幣車馬使人微隨張儀與同宿舍稍稍近就之奉以車馬金錢所欲用爲取給而弗告.
이에 蘇秦은 趙王에게 말하여 금전·禮物·車馬를 마련하고사람을 시켜 은밀히 張儀를 따르며 함께 숙박하면서 서서히 접근하게 하였다.
車馬와 금전을 제공함에 쓰고자 하는 대로 가져다주되, (그 비용이 蘇秦에게서 나왔음을알리지 말라고 하였다.

 

張儀遂得以見秦惠王.
張儀는 드디어 秦惠王을 뵐 수 있었다.

惠王以爲客卿與謀伐諸侯.
혜왕이 客卿으로 삼고제후 정벌을 謀議하였다.

蘇秦之舍人乃辭去張儀曰 :
「 賴子得顯方且報德何故去也 
蘇秦의 시종이 이에 작별의 인사를 하자張儀가 말하였다.
"그대 덕택으로 출세하여 이제 막 은덕을 갚으려 하는데무엇 때문에 떠나시오?"

舍人曰 :
「 臣非知君知君乃蘇君.
蘇君憂秦伐趙敗從約以爲非君莫能得秦柄故感怒君使臣陰奉給君資盡蘇君之計謀今君已用請歸報
시종이 대답하였다.
"저는 상공을 알아본 사람이 아니고상공을 알아본 사람은 蘇君이십니다.
蘇君께서는 이 를 공격하여 합종책이 깨질까 염려하여상공이 아니면 의 권력을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으므로선생을 격동시키고 저를 시켜 몰래 상공께 경비를 대주라고 하셨으니모든 일은 蘇君의 計謨입니다.
그런데 상공께서 이미 에 등용되셨으니 돌아가서 보고하겠습니다."

張儀曰 :
「 嗟乎此在吾術中而不悟吾不及蘇君明矣 !
吾又新用安能謀趙乎 ?
爲吾謝蘇君蘇君之時儀何敢言且蘇君在儀寧渠能乎 
張儀가 말하였다.
"이렇게 술책에 나를 빠뜨리고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으니내가 蘇秦에 미치지 못함이 분명하구려!
나는 또한 갓 등용되었으니어찌 를 도모할 수 있겠는가?
나를 대신해서 蘇君에게 사례하시오.
蘇秦의 시대에 張儀가 무엇을 감히 말하겠소.
또 蘇秦이 살아 있는데 張儀가 무엇을 할 수 있겠소!’라고."

 

 

張儀旣相秦爲文檄告楚相曰 :
「 始吾從若飮我不盜而璧若笞我.
若善守汝國我顧且盜而城 
張儀가 의 재상이 되자의 재상에게 격문을 지어 알렸다.
"일찍이 내가 그대를 따라 연회에 참석함에내가 그대의 을 훔치지 않았는데그대는 나를 매질하였소.
그대는 그대의 나라를 잘 지키시오내가 그대의 성을 빼앗으려고 생각하고 있으니!"



苴·蜀相攻擊各來告急於秦.
와 이 서로 공격하다가 각기 위급함을 에 알려왔다.

秦惠王欲發兵以伐蜀以爲道險狹難至而韓又來侵秦秦惠王欲先伐韓後伐蜀恐不利欲先伐蜀恐韓襲秦之敝猶豫未能決.

秦 惠王은 군대를 출동시켜 을 치하려고 하였으나으로 가는 길이 험하고 좁아서 가기 어렵고 이 또 을 침범할 터라 여겼다秦惠王은 먼저 을 공격하고 뒤에 을 정벌하려니 과의 싸움이 불리할까 걱정되고먼저 을 치자니 이 진의 지침을 틈타 공격할까 걱정되어주저하며 결정할 수 없었다.

司馬錯與張儀爭論於惠王之前司馬錯欲伐蜀張儀曰 :
「 不如伐韓
司馬錯와 張儀가 惠王 앞에서 논쟁을 벌임에司馬錯가 촉을 먼저 정벌하려 하니張儀가 말하였다.
"을 정벌함이 낫습니다."

王曰 :
「 請聞其說
이 말하였다.
"그 설명을 들어봅시다."

儀曰 :
張儀가 말하였다.

「 親魏善楚下兵三川塞什谷之口當屯留之道魏絶南陽楚臨南鄭秦攻新城·宜陽,
以臨二周之郊誅周王之罪侵楚·魏之地.
"·와 화친을 맺고 군대를 의 三川에 내려보내 什谷의 입구를 막고屯留의 길을 차단하고는 南陽을 끊고는 南鄭으로 진격하고그 틈에 은 新城·宜陽을 공격하고, 2의 근교로 가서 주왕의 죄를 벌하고와 의 땅으로 침입합니다.

周自知不能救九鼎寶器必.
주나라는 스스로 방어할 수 없음을 깨닫고 九鼎과 보기를 틀림없이 내놓을 터입니다.

據九鼎, 案圖籍, 挾天子以令於天下, 天下莫敢不聽, 此王業也.
九鼎의 권위에 의거하여 주나라 강역의 지도 및 호적을 조사하고천자를 끼고 천하를 호령하면천하에 감히 따르지 않는 자가 없을 터이니이것이 바로 왕업입니다.

今夫蜀, 西僻之國而戎翟之倫也, 敝兵勞衆不足以成名, 得其地不足以爲利.
그러나 은 서쪽의 窮僻한 나라로서 戎翟의 한 무리이니군사를 피로하게 하고 백성을 수로롭게 하고도 명분을 얻기에 부족하고그 땅을 얻는다고 해도 이로울 게 없습니다.

臣聞爭名者於朝, 爭利者於市.
신이 듣기에 명성은 조정에서 다투고 이익은 시장에서 다툰다고 합니다.

今三川·周室, 天下之朝市也, 而王不爭焉, 顧爭於戎翟, 去王業遠矣. 」
지금 三川과 주나라 왕실은천하의 조정이기도 하며 시장이기도 한데대왕께서는 그곳에서 쟁취하지 않고 도리어 戎翟에서 쟁취하려고 하시니왕업과는 거리가 멉니다."

司馬錯曰 :
司馬錯가 말하였다.

「 不然.
"그렇지 않습니다.

臣聞之欲富國者務廣其地欲彊兵者務富其民欲王者務博其德三資者備而王隨之矣.
신이 듣기에富國하는 자는 그 영토를 넓힘에 힘쓰고强兵하는 자는 그 백성의 부유함을 힘쓰며왕이 되려는 자는 그 은덕을 넓힘에 힘써야 하고세 조건이 갖추어지면 왕업은 따라온다고 합니다.

今王地小民貧, 故臣願先從事於易.
그런데 대왕의 땅은 작고 백성은 가난하므로신은 먼저 쉬운 것에 종사하시기를 원합니다.

夫蜀, 西僻之國也, 而戎翟之長也, 有桀紂之亂.
촉은 서쪽의 궁벽한 나라이나 戎翟의 우두머리로서그 나라에 桀紂의 亂行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以秦攻之, 譬如使豺狼逐羣羊.
이 공격함을 비유하면승냥이나 이리를 시켜 양 떼를 쫓는 것입니다.

得其地足以廣國, 取其財足以富民繕兵, 不傷衆而彼已服焉.
그 땅을 얻으면 나라를 넓힐 수 있으며그 재물을 취하면 백성을 부유하게 하고 병기를 수리할 수 있어서군대를 다치게 하지 않았는데도 저들이 복종할 터입니다.

拔一國而天下不以爲暴, 利盡西海而天下不以爲貪, 是我一擧而名實附也, 而又有禁暴止亂之名.
한 나라를 점령하였다고 천하가 난폭하다고 하지 않을 터이며서쪽의 이익을 모두 차지하였다고 천하가 탐욕스럽다고 하지 않을 터이니우리의 一擧에 명분과 실리가 따르고폭정과 혼란을 금지하는 명분도 가지게 됩니다.

今攻韓劫天子惡名也而未必利也又有不義之名而攻天下所不欲危矣.
그런데 을 공격하고 천자를 위협함은 汚名이므로 반드시 유리하지는 않으며또 不義의 오명을 가지면서까지 천하가 원하지 않는 바를 공격함은 위험합니다.

臣請謁其故 :
신이 그 까닭을 아뢰겠습니다

周, 天下之宗室也 ;
齊, 韓之與國也.
주나라는 천하의 종실이며,
는 은 동맹국입니다.

周自知失九鼎, 韓自知亡三川, 將二國幷力合謀, 以因乎齊趙而求解乎楚·魏, 以鼎與楚, 以地與魏, 王弗能止也.
주나라가 九鼎을 잃을 줄 알고이 三川의 땅을 잃을 줄 알게 되면장차 두 나라가 힘을 합치고 계략을 함께 하여와 를 통해서 와 에 구원을 청할 터이라주나라가 九鼎을 에 주고 땅은 에 준다고 해도대왕께서는 막지 못할 터입니다.

此臣之所謂危也.
이것이 신의 소위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不如伐蜀完. 」
을 정벌하는 만큼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 苴: 蜀族의 한 지파가 새운 나라로 지금의 사천성 葭萌에 있었다. 일설에는 巴郡이라는 설도 있다.
▶ 什谷: 지금의 하남성 鞏縣 동북에 있는 계곡명이다.
▶ 屯留: 지금의 산서성 둔류현 남쪽에 옛 고성이 남아있다. 산서와 산동을 가르는 태항산맥 위로 나있던 羊腸阪의 길목을 막을 수 있었던 전략상의 요충지다.
▶ 九鼎: 中國의 禹王 때에 九州에서 금을 모아 만든 솥. 夏ㆍ殷 以來로 天子에게 傳하여 오는 寶物임
▶ 羊腸坂: 태항산맥 능선 위로 난 도로 이름이다. 3 곳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첫 번째 길은 산서성 晉城縣 남쪽에 나 있고, 두 번째 길은 壺關縣 동남이고, 세 번째 길은 平順縣 羊腸塞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전국시대에 지칭하는 양장판이라는 함은 첫 번째의 진성현에 나 있는 길을 지칭하였다. 손자오기열전에 ‘夏傑의 나라는 왼쪽에서 河水와 濟源을 끼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泰州와 華州를, 남쪽으로는 伊闕, 북쪽으로 羊腸에 이르렀다.’라는 말이 있다.
▶ 上郡: 섬서성과 산서성을 가르는 황하의 서쪽 지역으로 황하와 낙수 사이에 魏가 설치한 군현.
▶ 陝: 지금의 하남성 섬현을 말한다. 서주 초기에 周公과 召公이 어린 成王을 대신하여 섭정을 행할 때 陝을 기준으로 서쪽은 주공이 동쪽은 소공이 맡아서 다스리다가 성왕이 장성하자 통치권을 돌려주었다. 이 일로 인해 陝西라는 지명의 기원이 되었다.
▶ 宜陽: 戰國 때 韓이 新鄭城으로 천도하기 전의 都城으로 韓의 중요한 요충지다. 秦惠王의 뒤를 이어 즉위한 秦武王이 주나라의 구정을 엿보기 위해 甘茂에게 명하여 의양성을 점령하도록 하였다. 감무가 이 성을 함락하기 위해 공격했으나 오랫동안 성공하지 못하자 秦武王은 철수명령을 내렸다. 이에 감무는 息壤에서의 약속을 상기시킴으로써 증원군을 얻어 결국은 의양성을 함락시켜 秦武王이 수레를 타고 주나라에 들어가 구정을 엿보게 한 고사가 있다.(감무열전 참조.)
韓는 건국에서 秦에 망할 때까지 그 도성을 平陽城( 지금의 산서성 臨汾市) → 宜陽城 → 新鄭城으로 옮겼다.
▶ 嚙桑: 齧桑이라고도 하며 전국 때 魏 령으로 지금의 강소성 沛縣 부근이다.

 

惠王曰 :
「善寡人請聽子.」
惠王이 말하였다.
"좋소 !
과인은 그대의 말을 따르겠소."

卒起兵伐蜀十月取之遂定蜀貶蜀王更號爲侯而使陳莊相蜀.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을 정벌하여 10월에 을 빼앗고마침내 을 평정하여 촉왕을 로 바꾸고陳莊을 보내 의 재상으로 삼았다.

蜀旣屬秦秦以益彊富厚輕諸侯.
이 의 속국이 되자 의 兵力이 더욱 강해지고 부유함이 두터워져서제후를 경시하였다.

秦惠王十年使公子華與張儀圍蒲陽降之.
秦惠王 10公子 華와 張儀를 보내어 의 蒲陽을 포위하고 항복을 받았다.

儀因言秦復與魏而使公子繇質於魏.
張儀가 말하여서 에 蒲陽을 돌려주고公子 繇를 인질로 보내게 하였다.

儀因說魏王 曰 :
張儀가 위왕에게 유세하였다.

「 秦王之遇魏甚厚魏不可以無禮
"진왕의 를 대우함이 매우 두터우니가 무례해서는 안 되겠지요."

魏因入上郡少梁謝秦惠王.
그래서 는 上郡과 少梁을 바쳐 秦惠王에게 사례하였다.

惠王乃以張儀爲相更名少梁曰夏陽.
惠王은 이에 張儀를 재상으로 삼고 少梁의 지명을 夏陽이라 바꾸었다.

儀相秦四歲立惠王爲王.
張儀가 의 재상이 된 지 4, (이라고 일컫던惠王을 세워 稱王하였다.

居一歲爲秦將取陜築上郡塞.
1년 후에張儀는 의 장수가 되어 의 을 빼앗고 上郡에 요새를 쌓았다.

 

其後二年使與齊·楚之相會齧桑東還而免相相魏以爲秦欲令魏先事秦而諸侯效之.
다시 2년 후사신이 되어 ·의 재상과 齧桑의 동쪽에서 회합하였고돌아와서 의 재상에서 면직되자 의 재상이 됨으로써 을 위해서 일하되가 먼저 을 섬기게 하여 제후가 이를 본받게 하려 하였다.

魏王不肯聽儀.
魏王이 張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秦王怒伐取魏之曲沃·平周復陰厚張儀益甚.
秦王이 노하여 의 曲沃과 平周를 공격하여 점령하고다시 은밀하게 張儀를 후대함이 더욱 심하였다.

張儀慙無以歸報.
張儀가 부끄러워하였는데으로 돌아가 보고할 공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留魏四歲而魏襄王卒哀王立.
에 머물기 4魏襄王이 죽고 哀王이 즉위하였다.

張儀復說哀王哀王不聽.
張儀가 다시 哀王에게 설득하였으나 哀王이 듣지 않았다.

​於是張儀陰令秦伐魏.
그래서 張儀는 몰래 에게 를 공격하도록 하였다.

魏與秦戰敗.
는 과 싸워 패하였다.

明年齊又來敗魏於觀津.
이듬해에 가 또 침범하여 觀津에서 위를 패퇴시켰다.

​秦復欲攻魏先敗韓申差軍斬首八萬諸侯震恐.
이 다시 를 공격하고자 하되먼저 의 장수 申差의 군대를 패퇴시키고, 8만을 참수하자 제후가 떨며 두려워하였다.

而張儀復說魏王曰 :
張儀는 다시 위왕에게 유세하였다.

「 魏地方不至千里卒不過三十萬.
"의 땅은 사방 1,000리가 못 되고군사는 30만에 불과합니다.

地四平諸侯四通輻湊無名山大川之限.
지세는 사방이 평탄해서 제후가 사방을 통하여 모여들 수 있으며명산대천의 경계도 없습니다.

從鄭至梁二百餘里, 車馳人走, 不待力而至.
의 도성 新鄭에서 의 大梁까지 2백여 리 길은 수레나 사람이 달림에 힘들이지 않고 도달할 수 있습니다.

梁南與楚境, 西與韓境, 北與趙境, 東與齊境, 卒戍四方, 守亭鄣者不下十萬.
은 남쪽으로 서쪽으로 북쪽으로 동쪽으로는 와 接境하여 군사가 사방을 지켜야 하므로변방의 보루를 지키는 군사가 10만 이하는 아닙니다.

梁之地勢, 固戰場也.
의 지세는 참으로 전쟁터입니다.

梁南與楚而不與齊, 則齊攻其東 ;
東與齊而不與趙, 則趙攻其北 ;
不合於韓, 則韓攻其西 ;
不親於楚, 則楚攻其南 :
此所謂四分五裂之道也.
이 남쪽으로 와 동맹하고 와 동맹하지 않으면 가 동쪽을 칠 테고,
동쪽으로 와 동맹하고 와 동맹하지 않으면 가 북쪽을 공격할 테며,
과 연합하지 않으면 이 서쪽을 공격할 테고,
와 친하지 않으면 가 남쪽을 공격할 터입니다.
이것이 소위 四分五裂이라는 말입니다.

且夫諸侯之爲從者將以安社稷尊主彊兵顯名也.
또 제후가 합종을 맹약함은 장차 社稷을 편안하게 하고 군주를 존엄하게 하며 군대를 강하게 하여 명성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今從者一天下約爲昆弟刑白馬以盟洹水之上以相堅也.
그런데 합종을 주장하는 자는 천하를 통일하여 형제가 되기로 약속하고백마를 잡아 洹水에서 맹약하여 서로 굳게 결속하려 합니다.

而親昆弟同父母尙有爭錢財而欲恃詐僞反覆蘇秦之餘謀其不可成亦明矣.
그러나 친형제로서 부모가 같아도 금전과 재물을 다툼이 있는데거짓과 속임수로 이랬다저랬다 하는 蘇秦의 계책을 믿으려 하시니그것이 성공할 수 없음은 자명합니다.

大王不事秦, 秦下兵攻河外, 據卷衍燕酸棗, 劫魏取陽晉, 則趙不南, 趙不南而梁不北, 梁不北則從道絶, 從道絶, 則大王之國欲毋危不可得也.
대왕께서 을 섬기지 않으면 은 출병하여 황하 외곽을 공격하고···酸棗에 웅거하여를 위협하면서 陽晉을 취한다면는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고가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면 도 북상하지 못하고양이 북상하지 못하면 합종의 길이 끊어지고합종의 길이 끊어지면대왕의 나라에 위태로움이 없고자 해도 뜻대로 되지 않을 터입니다.

秦折韓而攻梁韓怯於秦秦·韓爲一梁之亡可立而須也.
이 을 꺾고 을 공격한다면은 을 두려워하여 과 한편이 될 터이니의 멸망은 서서 기다리면 됩니다.

此臣之所爲大王患也.
이것이 신이 대왕을 위해 근심하는 바입니다.

爲大王計, 莫如事秦.
대왕을 위한 계책으로 을 섬김만한 것은 없습니다.

事秦則楚·韓必不敢動 ;
無楚·韓之患, 則大王高枕而臥, 國必無憂矣.
을 섬기면 와 은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와 으로 인한 근심이 없어지면대왕께서는 베개를 높이하고 편안히 누울 수 있으며 나라에는 근심이 사라집니다.

且夫秦之所欲弱者莫如楚, 而能弱楚者莫如梁.
또 이 弱化시키려는 나라에 만한 나라는 없으며를 弱化시킬 수 있는 나라에 만한 나라가 없습니다.

楚雖有富大之名而實空虛 ;
其卒雖多, 然而輕走易北, 不能堅戰.
에 비록 부유하고 강대하다는 명성이 있으나실질은 허약하고,
그 병졸이 비록 많으나 쉽게 달아나며 끈질기게 싸우지 못합니다.

悉梁之兵南面而伐楚, 勝之必矣.
의 군사를 모두 동원하여 남쪽으로 를 치면 승리는 틀림이 없습니다.

割楚而益梁, 虧楚而適秦, 嫁禍安國, 此善事也.
땅을 나누어 에 보태어 주면가 쇠퇴하여 을 따르게 되므로는 재앙을 떠넘기고 국가를 안정시키니이것은 좋은 일입니다.

大王不聽臣秦下甲士而東伐雖欲事秦不可得矣.
대왕께서 신의 말을 듣지 않으시면은 甲士를 동쪽으로 보내 를 공격할 터이니비록 을 섬기려 해도 뜻대로 되지 않을 터입니다.

且夫從人多奮辭而少可信說一諸侯而成封侯, 是故天下之游談士, 莫不日夜搤腕瞋目切齒以言從之便, 以說人主.
또한저 합종론자에게 큰소리는 많아도 믿을만한 말은 적으며한 명의 제후만 설득하면 封侯를 성취하므로천하의 유세가들이 밤낮으로 팔을 걷어 올리고 눈을 부릅뜨고 이를 갈면서 합종의 이로움을 말하며 임금을 설득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人主賢其辯而牽其說, 豈得無眩哉.
임금은 그 말을 현명하다고 여기고 그 말에 끌려가니 어찌 현혹되지 않겠습니까.

臣聞之, 積羽沈舟, 羣輕折軸, 衆口鑠金, 積毁銷骨, 故願大王審定計議, 且賜骸骨辟魏. 」
신이 듣기에깃털이 쌓이면 배를 가라앉히고가벼운 것도 많으면 굴대를 꺾으며입이 많으면 쇠도 녹이고헐뜯음이 쌓이면 뼈도 녹이니그러므로 대왕께서는 잘 살피셔서 계략을 의논하여 정하시기를 바라며또한 신이 사지과고 를 떠남을 허락해 주십시오."

▶ 嚙桑: 齧桑이라고도 하며 전국 때 魏 령으로 지금의 강소성 沛縣 부근이다.
▶ 曲沃: 원래 춘추 때 당진국이 발흥했던 곳으로 지금의 산서성 聞喜縣에 있었으나 전국시대에 이르러 하남성 陝縣 서남의 魏 령의 고을을 칭하였다.
▶ 平周: 지금의 산서성 介休縣 서쪽의 전국 때 魏 고을이다.
▶ 洹水: 지금의 하남성 동북쪽 林縣의 隆慮山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安陽市를 지나 內黃縣 북쪽에서 황하에 유입되었던 하천을 말한다. 지금의 安陽河에 해당한다. 蘇秦이 조숙후에게 제후들과 洹水에서 만나 합종을 행해야 한다고 유세하였다.
▶ 須: 기다리다
▶ 奮辭: 큰소리치다. 호언장담하다.

 

哀王於是乃倍從約而因儀請成於秦.
魏哀王은 이에 합종의 약속을 배반하고 장의를 통하여 에 화친을 청했다.

張儀歸復相秦.
張儀가 으로 돌아가 다시 재상이 되었다.

三歲而魏復背秦爲從.
3년 후에 는 다시 을 배반하고 합종하였다.

秦攻魏取曲沃.
이 를 공격하여 曲沃을 점령하였다.

明年魏復事秦.
이듬해는 다시 을 섬겼다.

秦欲伐齊齊·楚從親於是張儀往相楚.
이 를 정벌하려고 하였으나 와 는 합종하였으므로이에 張儀는 에 들어가 재상이 되려고 하였다.

楚懷王聞張儀來虛上舍而自館之曰 :
「 此僻陋之國子何以敎之 
楚懷王은 張儀가 온다는 말을 듣고上舍(상객들이 묶는 고급 관사)를 비우고 張儀를 친히 안내하며 말하였다.
"이처럼 외지고 누추한 나라에 그대는 무엇을 가르치겠습니까?"

儀說楚王曰 :
「 大王誠能聽臣閉關絶約於齊臣請獻商·於之地六百里使秦女得爲大王箕帚之妾秦·楚娶婦嫁女長爲兄弟之國.
此北弱齊而西益秦也計無便此者
張儀가 초왕에게 말하였다.
"대왕께서 진심으로 신의 말을 듣고관문을 닫아 와 합종의 맹약을 끊을 수 있다면신은 ·의 땅 6백 리를 바치고의 공주를 대왕을 위해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드는 첩으로 삼기를 청합니다그리하면 과 는 아내를 얻고 딸을 시집보내어 오래도록 형제의 나라가 될 터입니다.
이것은 북쪽으로 를 약하게 하고 서쪽에 을 두는 이익이니이보다 편리한 계책은 없을 터입니다."

楚王大說而許之.
초왕이 크게 기뻐하며 張儀의 제안을 허락하였다.

羣臣皆賀, 陳軫獨弔之.
의 신하들이 모두 하례하였으나 陳軫이 홀로 조문하였다.

楚王怒曰 :
「 寡人不興師發兵得六百里地, 羣臣皆賀, 子獨弔, 何也 ? 」
초왕이 노하여 말하였다.
"과인은 군사를 일으켜서 출병하지 않고 6백 리의 땅을 얻을 수 있어서신하들이 모두 축하하는데그대만이 홀로 조문하니 무슨 까닭이오?"

陳軫對曰 :
「 不然,
以臣觀之商·於之地不可得而齊·秦合齊·秦合則患必至矣
陳軫이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신이 보건대·의 땅을 얻을 수 없고와 은 연합할 터이니와 이 연합하면 틀림없이 우환이 닥칠 터입니다."

楚王曰 :
「 有說乎 
초왕이 말하였다.
"설명할 수 있소?"

陳軫對曰 :
陳軫이 대답하였다.

「 夫秦之所以重楚者以其有齊也.
"이 를 중시하는 까닭은 가 와 친하기 때문입니다.

今閉關絶約於齊則楚孤.
지금 관문을 닫고 와 맹약을 끊으면 는 고립됩니다.

秦奚貪夫孤國而與之商·於之地六百里 ?
이 무엇 때문에 고립된 를 탐하여 ·의 땅 6백리를 주겠습니까?

張儀至秦必負王是北絶齊交西生患於秦也而兩國之兵必俱至.
張儀가 에 돌아가면 틀림없이 대왕을 저버릴 터이니이것은 북쪽으로 와 절교하고 서쪽으로 이라는 근심거리를 만드는 것으로양국의 군대가 틀림없이 함께 쳐들어올 터입니다.

善爲王計者不若陰合而陽絶於齊使人隨張儀.
대왕을 위한 좋은 계책은속으로는 연합하면서도 겉으로는 와 절교하고사람을 시켜 張儀를 따라가게 하는 것입니다.

苟與吾地絶齊未晩也 ;
不與吾地陰合謀計也.」
진실로 우리에게 땅을 줄 때 와 절교해도 늦지 않고,
우리에게 땅을 주지 않는다면 은밀히 와 연합하여 계책을 모의해야 합니다."

楚王曰 :
「 願陳子閉口毋復言以待寡人得地
초왕이 말하였다.
"바라건대 陳子는 입을 닫고 다시 말하지 말고과인이 땅을 얻음을 기다리시오."

乃以相印授張儀厚賂之.
그리고 재상의 인장을 張儀에게 주고많은 재물을 주었다.

於是遂閉關絶約於齊使一將軍隨張儀.
이에 는 로 통하는 관문을 닫고 맹약을 끊고장수 한 사람을 시켜 張儀를 따라가게 하였다.

▶ 陳軫: 전국 때 游說家. 楚 夏邑(: 지금의 하남성 商邱市 동남) 사람. 처음에는 張儀와 함께 秦惠王 밑에서 벼슬하면서 두 사람이 서로 총애를 다투었다. 후에 秦惠王이 장의를 총애하여 상국으로 명하자 楚로 달아났다. 그러나 楚에서 중용되지 못하고 다시 예전처럼 楚의 사자로 秦에 파견되었다. 韓과 魏가 서로 싸우며 몇 년이 가도록 멈추지 않아 秦惠王이 陳軫에게 계책을 물었다. 陳軫은 대답하기를 韓와 魏가 오랫동안 싸우면 큰 나라는 상처를 입고 작은 나라는 망할 것인바 그때 가서 군사를 내어 상처를 입은 나라를 정벌하면 일거에 두 나라를 얻을 수 있겠다고 하였다. 秦惠王이 陳軫의 말을 따라 후에 큰 전공을 얻을 수 있었다.

 

 

張儀至秦詳失綏墮車不朝三月.
張儀는 에 이르자, (수레를 탈 때 붙잡는끈을 놓쳐 수레에서 떨어진 척하여 석 달 동안 조회에 나가지 않았다.

楚王聞之曰 :
「 儀以寡人絶齊未甚邪 
초왕이 이 소식을 듣고 말하였다.
"張儀는 과인이 와 절교한 것이 미흡하다고 여기는가?"

乃使勇士至宋借宋之符北罵齊王.
이에 勇士를 에 보내어 의 부절을 빌려 북쪽으로 가서 齊王을 꾸짖게 하였다.

齊王大怒折節而下秦秦·齊之交合.
제왕이 크게 노하여 맹약의 부절을 꺾어버리고 의 밑에 들어가니과 가 연합을 맺었다.

張儀乃朝謂楚使者曰 :
「 臣有奉邑六里願以獻大王左右
張儀는 조정에 나와 의 사자에게 말하였다.
"신에게 奉邑 6리가 있으니이것을 대왕의 측근에게 바치고자 합니다."

楚使者曰 :
「 臣受令於王以商·於之地六百里不聞六里 
의 사자가 말하였다.
"제가 대왕으로부터 명을 받기로는·의 6백 리 땅이지 6리라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還報楚王楚王大怒發兵而攻秦.
사자가 돌아와서 초왕에게 보고하자 초왕이 크게 노하여 군사를 일으켜 을 공격하려고 하였다.

陳軫曰 :
「 軫可發口言乎 ?
攻之不如割地反以賂秦與之幷兵而攻齊是我出地於秦取償於齊也王國尙可存
陳軫이 말하였다.
"신이 입을 열어 말해도 되겠습니까?
진을 공격함은 의 땅을 떼어 도리어 에 뇌물로 바침만 못합니다.
진과 병력을 합쳐 를 공격한다면우리가 에 땅을 내주었으나 에서 보상을 받으므로대왕의 나라는 보존할 수 있습니다."

楚王不聽卒發兵而使將軍屈匃擊秦.
초왕이 듣지 않고 마침내 군사를 일으키고 屈匃를 장군으로 삼아 을 공격하였다.

秦·齊共攻楚斬首八萬殺屈匃遂取丹陽·漢中之地.
과 는 함께 초군을 공격하여 군사 8만을 斬首하고장수 屈匃를 죽이고丹陽과 漢中의 땅을 탈취하였다.

楚又復益發兵而襲秦至藍田大戰楚大敗於是楚割兩城以與秦平.
가 다시 더 많은 군사를 동원하여 을 기습하여 藍田에서 크게 싸웠으나 초군이 대패하니는 에게 두 개의 성을 나누어 주고 화친을 맺었다.

秦要楚欲得黔中地欲以武關外易之.
은 에 요구하기를黔中의 땅을 얻고자 하니 武關의 외곽에 있는 ·와 바꾸자고 하였다.

楚王曰 :
「 不願易地願得張儀而獻黔中地.」
초왕이 말하였다.
"땅을 바꾸고 싶지 않고 張儀를 얻으면 黔中의 땅을 바치겠습니다."

秦王欲遣之口弗忍言.
진왕은 張儀를 보내고 싶었으나입으로 차마 말할 수 없었다.

張儀乃請行.
張儀가 이에 가기를 청하였다.

惠王曰 :
「 彼楚王怒子之負以商·於之地是且甘心於子.」
惠王이 말하였다.
"저 초왕이 화를 냄은그대가 ·於 땅 때문에 배반하였기 때문으로그대에게 원한을 풀려는 것이오."

張儀曰 :
「 秦彊楚弱臣善靳尙尙得事楚夫人鄭袖袖所言皆從.
且臣奉王之節使楚楚何敢加誅.
假令誅臣而爲秦得黔中之地臣之上願」​
張儀가 말하였다.
"은 강하고 는 약하며신은 靳尙과 친하며 靳尙은 초왕의 부인 鄭袖를 섬기고 있는데鄭袖의 말이라면 초왕은 모두 들어줍니다.
그리고 신은 대왕의 부절을 받들고 에 사신으로 가는데 가 어찌 감히 죽이겠습니까.
가령 신을 죽이더라도을 위하여 黔中의 땅을 얻음은 신의 첫째가는 바람입니다."

▶甘心: 품은 원망(怨望)을 풀어 없애다

 

遂使楚.
마침내 에 사신으로 갔다.

楚懷王至則囚張儀將殺之.
楚懷王은 張儀가 도착하자 옥에 가두고장차 죽이려고 하였다.

靳尙謂鄭袖曰 :
「 子亦知子之賤於王乎 
靳尙은 鄭袖에게 말하였다.
"부인은 왕에게 천대받을 것을 아십니까?"

鄭袖曰 :
「 何也 ? 」
鄭袖가 말하였다.
"무엇 때문입니까?"

靳尙曰 :
「 秦王甚愛張儀而不欲出之, 今將以上庸之地六縣賂楚, 以美人聘楚, 以宮中善歌謳者爲媵.
楚王重地尊秦, 秦女必貴而夫人斥矣.
不若爲言而出之. 」
靳尙이 말하였다.
"진왕은 張儀를 몹시 총애하므로 꼭 내보내려 합니다.
지금 곧 上庸의 6개 현을 에 뇌물로 주고미인으로 楚王을 초빙하되 궁중의 노래 잘하는 희첩을 잉첩으로 삼으려 합니다.
초왕은 땅을 중요시하고 을 존중하므로 의 여자는 틀림없이 귀하게 되고부인은 배척될 터입니다.
왕께 말씀드려 張儀를 내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不欲出之: <史記>에는 <不欲出之>로 되어있으나 <戰國策>의 <楚策>에는 <欲出之>로 되어 <不>자가 없다. 이 때 장의가 초에 잡혀 있었으므로 <不>자는 <必>자의 잘못인 듯하다
▶ 上庸: 지금의 호북성 죽산현 서남. 전국 때 楚의 고을로 원래 庸이라는 제후국이었으나 楚가 멸하고 그 땅에 상용현을 설치하였다.

 

於是鄭袖日夜言懷王曰 :
「 人臣各爲其主用.
今地未入秦秦使張儀來至重王.
王未有禮而殺張儀秦必大怒攻楚.
妾請子母俱遷江南毋爲秦所魚肉也
이에 鄭袖는 밤낮으로 懷王에게 말하였다.
"신하는 각각 그 주인을 위해 힘을 다합니다.
토지가 아직 진으로 들어가지 않았는데 진에서 장의를 보냄은 대왕을 지극히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대왕께서는 아직 답례도 하기 전에 장의를 죽이면 진이 틀림없이 격노하여 초를 공격할 터입니다.
소첩은 자식들과 함께 江南으로 옮겨가서진에 의하여 어육이 됨은 모면하겠습니다."

懷王後悔赦張儀厚禮之如故.
懷王이 후회하고 張儀를 사면하여 예전처럼 두텁게 예우하였다.

張儀旣出未去聞蘇秦死乃說楚王曰 :
張儀는 석방이 되고도 떠나지 않다가 蘇秦이 죽었음을 알고 초왕에게 유세하였다.

「 秦地半天下, 兵敵四國, 被險帶河, 四塞以爲固.
"의 영토는 천하의 절반이고군사력은 4개국을 대적할 수 있으며영토는 험지로 둘러싸여 있고 황하를 두르고 있으며사방의 요새는 견고합니다.

虎賁之士百餘萬, 車千乘, 騎萬匹, 積粟如丘山, 法令旣明, 士卒安難樂死, 主明以嚴, 將智以武, 雖無出甲, 席卷常山之險, 必折天下之脊, 天下有後服者先亡.
용맹한 무사가 백여 만이고兵車 천 승에騎馬가 만 필이며군량을 쌓아 산과 같습니다.
법령은 밝아서 군사들은 어려움도 편안하게 여기고 기꺼이 죽으려 합니다.
왕은 사리에 밝고 위엄이 있으며 장수는 지혜와 무용을 갖추고 있어비록 갑병을 출동시키지는 않지만장차 常山의 험한 땅을 점령하여 틀림없이 천하의 등골을 꺾을 터입니다.
천하 제후로서 뒤늦게 에 복종하는 자는 먼저 망할 터입니다.

且夫為從者, 無以異於驅群羊而攻猛虎, 虎之與羊不格明矣.
합종하는 나라는 양 떼를 몰아 맹호를 공격함과 다를 바가 없으니양과 호랑이는 격이 다름이 자명합니다.

今王不與猛虎而與群羊, 臣竊以為大王之計過也.
그런데 대왕께서는 맹호와 동맹하지 않고 양 떼와 동맹하니신이 삼가 생각하기에 대왕의 계책은 잘못되었습니다.

凡天下彊國, 非秦而楚, 非楚而秦, 兩國交爭, 其勢不兩立.
천하의 강국을 통틀어도 이 아니면 이며가 아니면 이어서 두 나라가 서로 싸우면 그 형세상 양립할 수 없습니다.

大王不與秦, 秦下甲據宜陽, 韓之上地不通.
대왕께서 과 동맹하지 않으면은 갑병을 남쪽으로 보내 宜陽을 차지하여 의 上郡 땅 은 통하지 못할 터입니다.

下河東, 取成皋, 韓必入臣, 梁則從風而動.
하동으로 남하하여 成皋를 점령하면 은 틀림없이 에 신하로 입조할 터이고도 대세에 휩쓸리어 움직일 터입니다.

秦攻楚之西, 韓·梁攻其北, 社稷安得毋危?
이 의 서쪽을 공격하고 ·는 의 북쪽을 공격하면사직이 어찌 위태롭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소진이 죽은 해는 齊湣王 말년의 일로 기원전 285년 직전이고 장의가 楚에 들어가 商於의 땅으로 속여 楚齊간의 합종을 깬 결과 秦楚 간에 丹水와 藍田의 싸움이 일어난 해는 기원전 312년의 일이다. 소진은 기원전 300년에 죽은 장의보다 15년 가까이 더 살다가 죽었다. 이 부분은 사마천의 오류이다.
▶ 常山: 지금의 하북성 唐縣에 있는 산으로 원래는 恒山이었으나 서한의 3대 황제 文帝의 이름인 恒을 諱하여 常山으로 개명하였다.
▶ 成皐: 지금의 하남성 滎陽市 서쪽의 汜水鎭으로 춘추 때 制邑, 虎牢 등으로 불리웠던 韓의 동쪽 변경을 지키던 전략상의 요충지다.
從風: 대세(大勢)에 휩쓸리어 좇음을 이르는 말.

 

且夫從者聚群弱而攻至彊, 不料敵而輕戰, 國貧而數舉兵, 危亡之術也.
합종론자들은 약한 제후를 모아 강한 을 공격하는데적을 헤아리지 않고 경솔하게 싸우는 것이며나라가 가난한데 자주 군사를 일으키는 것이니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망하게 하는 술책입니다.

臣聞之, 兵不如者勿與挑戰, 粟不如者勿與持久.
신이 듣기로병력이 약한 군대는 싸움을 돋구어서는 안 되고군량미가 충분치 않은 군대는 지구전을 벌리면 안 된다고 합니다.

夫從人飾辯虛辭, 高主之節, 言其利不言其害.
합종론자들은 말을 꾸미고 허황한 말로서 군주를 높임을 절조라 하되합종의 이익을 말할 뿐 손해는 말하지 않습니다.

​卒有秦禍, 無及為已.
갑자기 으로부터 재앙이 닥치면지난 일에 미칠 수가 없습니다.

是故願大王之孰計之.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秦西有巴蜀, 大船積粟, 起於汶山, 浮江已下, 至楚三千餘里.
은 서쪽에 巴蜀을 차지하고 있어서큰 배에 군량을 싣고 汶山에서 출발하여 강을 따라 내려가면에 이르는 데 3천여 리입니다.

舫船載卒, 一舫載五十人與三月之食, 下水而浮, 一日行三百餘里, 里數雖多, 然而不費牛馬之力, 不至十日而距扞關.
배 두 척을 짝지어 군사를 실음에한 쌍의 배에 50명의 군사와 3개월 치의 양식을 실어江水를 따라 떠내려가면하루에 300여 리를 가므로비록 거리가 멀지만 소와 말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열흘이 안 되어 扞關에 닿습니다.

扞關驚, 則從境以東盡城守矣, 黔中·巫郡非王之有.
扞關이 다급해지면 국경 以東은 모두 성을 지키기에 급급하여黔中과 巫郡은 대왕의 소유가 아니게 됩니다.

秦舉甲出武關南面而伐則北地絶.
이 갑병을 일으켜 武關을 나와서 남쪽으로 공격하면의 북쪽 지방은 두절됩니다.

秦兵之攻楚也危難在三月之內而楚待諸侯之救在半歲之外, 此其勢不相及也.
秦軍이 를 공격함에 위난이 3개월 이내에 생기지만초가 제후의 구원을 기다림에 반년 이상이 걸리므로이렇게 그 세력이 미치지 못할 터입니다.

夫待恃弱國之救, 忘彊秦之禍, 此臣所以為大王患也.
약한 제후국의 구원을 믿고 기다리면서강한 의 재앙을 잊어버리니이것은 신이 생각하기에 대왕의 근심거리입니다.

大王嘗與吳人戰, 五戰而三勝, 陣卒盡矣 ;
偏守新城, 存民苦矣.
대왕께서는 일찍이 와 싸움에다섯 번 싸워 세 번 이겼으나싸움에서 군사를 모두 잃었고새로 얻은 성을 기어코 지키느라 남은 백성은 괴로웠습니다.

臣聞功大者易危, 而民敝者怨上.
신이 듣기에공이 큰 자는 위태해지기 쉽고백성으로 피폐한 자는 군주를 원망한다고 합니다.

夫守易危之功而逆彊秦之心, 臣竊爲大王危之.
무릇 위태로워지기 쉬운 공을 지키느라 강대한 의 뜻을 거스르니신이 삼가 생각하기에대왕께서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且夫秦之所以不出兵函谷, 十五年以攻齊趙者, 陰謀有合天下之心.
또 이 15년 동안 함곡관 밖으로 출병하여 와 를 공격하지 않은 이유는천하를 병합하려는 속셈을 몰래 꾀하였기 때문입니다.

楚嘗與秦構難, 戰於漢中, 楚人不勝, 列侯執珪死者七十餘人, 遂亡漢中.
가 일찍이 에 난을 일으켜 漢中에서 싸웠으나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列侯와 執圭 중 죽은 자가 70여 명이고결국은 漢中을 잃었습니다.

楚王大怒, 興兵襲秦, 戰於藍田. 此所謂兩虎相搏者也.
대왕께서 격노하여 군사를 일으켜 을 습격하여 藍田에서 싸웠으니이것이 이른바 龍虎相搏입니다.

夫秦·楚相敝而韓·魏以全制其後計無危於此者矣.
과 가 서로 피폐하게 하였을 때 과 가 의 배후를 완전히 제압하면의 계책에 이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을 터입니다.

願大王孰計之.
대왕께서는 심사숙고하시기 바랍니다.

秦下甲攻魏陽晉, 必大關天下之匈, 大王悉起兵以攻宋, 不至數月而宋可擧.
이 갑병을 출동시켜 의 陽晉을 공격함은 필시 천하의 심장을 봉쇄하는 것이므로대왕께서 全軍을 동원하여 을 공격하면몇 개월 내에 을 함락할 수 있을 터입니다.

擧宋而東指, 則泗上十二諸侯盡王之有也.
을 빼앗고 동쪽을 겨냥하면 泗水 주변의 12제후국((), (), )은 모두 대왕께서 차지할 터입니다.

凡天下, 而以信約從親相堅者蘇秦.
천하가 합종의 친교를 믿음으로써 견고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 자는 蘇秦입니다.

封武安君, 相燕, 卽陰與燕王謀伐破齊而分其地.
소진은 무안군에 봉해졌고 에서 재상이 되었고몰래 연왕과 모의하여 를 깨뜨리고 그 땅을 나누기로 했습니다.

乃詳有罪出走入齊, 齊王因受而相之.
이에 蘇秦은 에 죄를 지은 척 꾸며서 로 달아났는데齊王은 받아들여 상국으로 삼았습니다.

居二年而覺齊王大怒車裂蘇秦於市.
2년 뒤에 (蘇秦의 음모가발각되어 제왕이 대노하여 蘇秦을 저자에서 거열형에 처하였습니다.

夫以一詐僞之蘇秦而欲經營天下混一諸侯其不可成亦明矣.
일개 사기꾼인 蘇秦이 천하를 경영하고자 모든 제후를 속였으니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은 自明합니다.

今秦與楚接境壤界固形親之國也.
그런데 과 는 接境하고 壤界하니본래의 형세상 친하게 지내온 나라입니다 .

大王誠能聽臣, 臣請使秦太子入質於楚, 楚太子入質於秦.
대왕께서 진실로 신의 말을 들으신다면의 태자를 에 볼모로 데려오고태자를 에 볼모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請以秦女爲大王箕帚之妾, 效萬室之都以爲湯沐之邑, 長爲昆弟之國, 終身無相攻伐, 臣以爲計無便於此者.」
청하건대秦 공주를 대왕의 청소나 하는 첩으로 삼게 하고萬戶에 달하는 성읍을 바쳐 대왕의 탕목읍으로 삼겠습니다그리하여 오랫동안 형제의 나라가 되면종신토록 서로 공격함이 없을 터이니신은 이보다 더 좋은 계책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 汶山: 지금의 岷山으로 甘肅省과 사천성을 가르는 산으로 岷江의 발원지이다.
▶ 扞關: 지금의 사천성 奉節縣 동쪽에 있던 관으로 楚의 서쪽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이다.
▶ 執珪: 춘추전국시대 때 楚 爵位 등급의 하나. 지위는 봉국의 군주에 해당한 고위직이었다.
▶ 陽晋: 지금의 산동성 鄆城 서쪽으로 전국 때 衛의 땅으로 후에 齊에 속하였다.
다시 趙가 점령하였다. 魏, 齊, 楚, 趙 등의 경계가 접하고 있는 지역으로 당시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 泗上 12제후국: 魯 지방을 남북으로 흐르던 泗水 강변에 소재하고 있던 12개의 소 제후국들인 魯, 宋, 莒, 鄒, 郯, 費, 邳, 薛, 滕, 郳, 任, 衛.
▶ 混: 속이다
▶ 一: 전부, 모든
▶ 壤界: =交界
▶ 장의가 楚에 들어가 楚懷王에게 親秦정책을 권유했던 시기는 초회왕 18년 기원전 311년이다.
그 해에 秦의 혜문왕이 죽고 武王이 즉위하자 장의는 秦을 떠나 魏에 들어가서 상국이 되었다가2년 후인 기원전 309년에 그곳에서 죽었다.
그러나 蘇秦이 齊에 들어가 燕를 위해 활동하던 중 齊 대신들이 보낸 자객이 살해되어 그 죄상이 발각된 해는 제민왕 17년 기원전 284년의 일이다.
이 기사는 기원전 309년에 죽은 장의가 25년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된다.
참고로 장의의 권유에 따라 친진정책을 채택한 초회왕은 기원전 299년 진소왕과의 회맹을 위해 秦에 들어갔다가 억류되어 결국은 귀국하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고 말았다.
▶ 湯沐邑: 원래는 고대에 제후가 천자를 조현할 때 영지의 일부를 하사하여 그곳에서 나오는 부세로 제후의 朝見費用을 충당토록 한 것을 의미했으나 漢나라 이후 황제, 황후, 공주 등의 사유토지를 지칭하였다.

 

於是楚王已得張儀而重出黔中地與秦欲許之.
이에 초왕은 張儀를 이미 얻었으나 黔中의 땅을 에 주는 약속을 무겁게 여겼으며張儀의 제안을 허락하려고 하였다.

屈原曰 :
「 前大王見欺於張儀張儀至臣以爲大王烹之.
今縱弗忍殺之又聽其邪說不可.」
屈原이 말하였다.
"예전에 대왕께서 張儀에게 기만을 당하였기 때문에張儀가 오면 대왕께서 삶아 죽이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차마 그를 죽이지는 않더라도또다시 그의 요사스러운 말을 들으심은 불가합니다."

懷王曰 :
「 許儀而得黔中美利也.
後而倍之不可
懷王이 말하였다.
"張儀의 청을 허락하고 黔中을 얻음은 대단한 이익이오.
약속하고 뒤에 배반함이 불가하오."

故卒許張儀與秦親.
마침내 張儀의 제안을 허락하고 과 화친을 맺었다.

 

張儀去楚因遂之韓說韓王曰 :
張儀는 를 떠나 에 가서 한왕에게 유세하였다.

「 韓地險惡山居五穀所生非菽而麥民之食大抵飯菽飯藿羹.
"의 땅은 험악한 산중에 있어서생산되는 오곡이란 콩 아니면 보리이라서백성의 음식은 대개가 콩밥에 명아주국입니다.

一歲不收民不饜糟穅.
일 년만 수확하지 못해도 백성은 술지게미와 쌀겨조차 먹지 못합니다.

地不過九百里無二歲之食.
영토는 사방 9백 리에 지나지 않고, 2년 먹을 양식도 없습니다.

料大王之卒悉之不過三十萬.
대왕의 군사를 헤아려 보건대모두 모아도 30만에 불과합니다.

而廝徒負養在其中矣除守徼亭鄣塞見卒不過二十萬而已矣.
잡일하는 일꾼과 군수물자를 나르는 짐꾼이 그중에 있으며변방의 徼亭과 요새를 지키는 군사를 제외하면 실제 병력은 20만 명에 불과합니다.

秦帶甲百餘萬車千乘騎萬匹虎賁之士跿跔科頭貫頤奮戟者至不可勝計.
은 帶甲이 백여 만이고兵車는 천승기마는 만 필날쌘 동작으로 투구도 쓰지 않은 채 돌격하는 자턱을 찔려도 창을 휘두르는 자 등 虎賁의 勇士는 이루 셀 수 없습니다.

秦馬之良戎兵之衆探前趹後蹄閒三尋騰者不可勝數.
의 말은 훌륭하고 병사들은 많으며앞발을 쳐들고 뒷발로 땅을 차서 세 길을 내닫는 자의 수는 셀 수 없습니다.

山東之士被甲蒙冑以會戰秦人捐甲徒裼以趨敵左挈人頭右挾生虜.
山東의 군사들은 갑옷과 투구로 무장하고 싸우지만의 군사들은 갑옷을 벗고 맨발에 웃통을 드러내며 적진으로 돌진하여왼손에는 수급을 잡고오른쪽에는 포로를 겨드랑에 낍니다.

夫秦卒與山東之卒猶孟賁之與怯夫以重力相壓猶烏獲之與嬰兒.
의 군사와 산동의 군사를 비교하면孟賁이 겁이 많은 사내와 대결하는 것 같고무거운 힘이 누르기를 烏獲이 어린아이와 다투는 듯합니다.

夫戰孟賁烏獲之士以攻不服之弱國無異垂千鈞之重於鳥卵之上必無幸矣.
맹분이나 오획과 같은 용사를 싸우게 하여 복종하지 않는 약소국을 공격함은 천균의 무게로 새알 위를 누름과 다르지 않으니 기필코 요행은 없을 터입니다.

夫羣臣諸侯不料地之寡而聽從人之甘言好辭比周以相飾也皆奮曰聽吾計可以彊霸天.
신하들과 제후가 영토가 적음을 헤아리지 못하고합종론자의 甘言好辭를 따르니유세객들은 한패가 되어 잘못을 가리며 모두 부추기기를, ‘우리들의 계책을 따른다면 천하의 패자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夫不顧社稷之長利而聽須臾之說詿誤人主無過此者.
사직의 장기적인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일시의 주장을 따름은군주를 그르치는 것으로 이보다 더 나쁜 것은 없습니다.

大王不事秦秦下甲據宜陽斷韓之上地東取成皐滎陽.
대왕께서 을 섬기기 않으면은 甲士를 내어 宜陽에 주둔시켜 의 上黨의 땅을 단절하고동쪽으로 成皐와 滎陽을 취할 터입니다.

則鴻臺之宮桑林之苑非王之有也.
그렇게 되면 鴻臺의 궁전과 桑林의 苑囿는 대왕의 소유가 아닐 터입니다.

夫塞成皐絶上地則王之國分矣.
成皐를 봉쇄하면 하수 이북지역과 두절되어 대왕의 나라는 분리됩니다.

先事秦則安不事秦則危.
그래서 미리 을 섬기면 편안하고을 섬기지 않으면 위태로울 터입니다.

夫造禍而求其福報計淺而怨深.
화를 짓고도 복으로 보답받기를 바람은계책이 얕아서 의 원한이 깊어집니다.

逆秦而順楚雖欲毋亡不可得也.
을 거역하고 에 순종하면비록 망하지 않으려 하여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故爲大王計莫如爲秦.
그래서 대왕을 위한 계책으로는을 섬김이 최선입니다.

秦之所欲莫如弱楚而能弱楚者莫如韓.
이 원하는 바는 를 弱化시킴이며를 弱化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보다 나은 나라가 없습니다.

非以韓能彊於楚也其地勢然也.
이 보다 강해서가 아니라지리적인 형세가 그렇습니다.

今王西面而事秦以攻楚秦王必喜.
그런데 대왕께서 서쪽을 향하여 을 섬기고 를 공격하면 진왕는 필시 기뻐할 터입니다.

夫攻楚以利其地轉禍而說秦計無便於此者
를 공격하여 그 땅의 이익을 취하고화를 돌려 을 기쁘게 하니이보다 더 좋은 계책은없겠습니다."

韓王聽儀計張儀歸報秦惠王封儀五邑號曰武信君.
한왕이 張儀의 계책을 따르겠다고 하여張儀는 으로 돌아와 보고하자秦惠王은 張儀에게 다섯 읍을 봉하고武信君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 厮徒: 잡일에 종사하는 군사
▶ 負養: 군수품의 져 나르는 잡부
▶ 徼亭: 국경 지역에 설치한 역참
▶ 虎賁: 호랑이처럼 용맹스러운 군사라는 뜻으로 중국 고대에 있어서 왕이나 군주의 근위병을 말한다.
▶ 孟賁: 전국 때 秦武王의 호위 무사였던 孟說을 말한다. 태어날 때부터 용력이 있어 평소에 산 소의 뿔을 뽑았다고 하였다. 그는 烏獲과 함께 용력으로 제후들 사이에 이름이 있었다.
秦武王이 용사를 좋아한다는 소식을 듣고 각지의 용사들을 이끌고 秦으로 들어가 높은 벼슬을 받았다. 武王 4년 기원전 307년 武王이 주나라에 들어가 구정 들기 시합을 맹열과 하다가 다리가 부러져 죽었다. 이에 그 죄를 추궁받아 살해되고 그 종족은 멸족되었다.
▶ 烏獲: 전국 때 秦의 역사로 秦武王의 호위무사다. 그의 힘은 능히 정을 들 수 있었다. 힘이 장사인 秦武王이 힘겨루기를 좋아하여 그는 任鄙, 맹열 등과 함께 秦의 높은 관리가 되었다.
▶ 千鈞: 일 균은 삼십 근을 말하며 춘추전국 때 한 근은 356그램임. 즉 일균은 약 10키로에 해당하니 천균이라 함은 10톤의 무게를 말한다.

 

 

使張儀東說齊湣王曰 :
張儀를 동쪽으로 보내어 제민왕에게 유세하였다.

「 天下彊國無過齊者大臣父兄殷衆富樂.
천하의 강국에 를 넘어설 나라가 없으니대신과 부형은 부귀와 안락을 누리고 있습니다.

然而爲大王計者皆爲一時之說不顧百世之利.
그러나 대왕을 위해 계책을 바치는 자는 모두 일시적인 주장 때문에 百世의 이익은 돌아보지 않습니다.

從人說大王者, 必曰,
『齊西有彊趙, 南有韓與梁.
齊負海之國也, 地廣民衆, 兵彊士勇, 雖有百秦, 將無柰齊何.』
합종론으로 대왕께 유세했던 자는 항상 말했습니다.
의 서쪽에는 강한 가 있고남쪽에는 과 가 있습니다.
는 바다를 등진 나라로땅은 넓고 백성은 많으며군대는 강하고 병사는 용감하므로설사 이 백 개가 있다 한들 를 어찌하겠습니까?’

大王賢其說而不計其實.
대왕께서는 그 말을 현명하다고 여기고실정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夫從人朋黨比周, 莫不以從爲可.
합종론자는 붕당으로 한패가 되니합종을 옳다고 여기지 않음이 없습니다.

臣聞之, 齊與魯三戰而魯三勝, 國以危亡隨其後.
신이 듣기에일찍이 와 가 세 번 싸워 가 세 번 이기고도그 후 그것 때문에 나라가 위태하더니 멸망하였습니다.

雖有戰勝之名, 而有亡國之實.
비록 戰勝의 명성이 있었지만亡國의 실상이 있었습니다.

是何也,齊大而魯小也.
무엇 때문이겠습니까는 大國이요 는 小國이었기 때문입니다.

今秦之與齊也, 猶齊之與魯也.
지금 에 대한 은 에 대한 의 경우와 같습니다.

秦·趙戰於河漳之上, 再戰而趙再勝秦.
과 는 河水와 장수의 근방에서 두 번 싸워서가 두 번 을 이겼습니다.

戰於番吾之下, 再戰又勝秦.
番吾의 성 아래에서 두 번 교전하여 또 을 이겼습니다.

四戰之後, 趙之亡卒數十萬, 邯鄲僅存.
4번의 전쟁이 끝나자 가 잃은 군사가 십만을 헤아렸고간신히 邯鄲을 지켰습니다.

雖有戰勝之名而國已破矣.
비록 戰勝의 명성은 가졌으나나라는 파국을 맞았습니다.

是何也.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秦彊而趙弱.
은 강하고 는 약했기 때문입니다.

今秦楚嫁女娶婦爲昆弟之國.
이제 과 는 딸을 시집보내고 며느리를 맞아형제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韓獻宜陽梁效河外趙入朝澠池割河閒以事秦.
은 宜陽을 바치고는 河外를 바쳤고趙王은 澠池에서 入朝하고 河閒을 떼어주고 을 섬깁니다.

大王不事秦秦驅韓·梁攻齊之南地悉趙兵渡淸河指博關.
대왕께서 을 섬기지 않으면은 과 를 앞장세워 의 남쪽 땅을 공략하고의 병력 모두 동원하여 淸河를 건너 博關으로 향할 터입니다.

臨菑卽墨非王之有也.
臨菑와 卽墨은 대왕의 소유가 아닐 터입니다.

國一日見攻雖欲事秦不可得也.
가 어느 날 공격당하면을 섬기고 싶어도 섬길 수 없겠습니다.

是故願大王孰計之也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齊王曰 :
「 齊僻陋隱居東海之上未嘗聞社稷之長利也
제왕이 말하였다.
"는 궁벽하고 누추하며 동해에 숨어 있어서지금껏 사직을 위한 장기적인 이익을 들어보지 못했소."

乃許張儀.​
이에 張儀의 제안을 허락하였다.

▶ 장의가 모셨던 秦惠王의 재위기간은 기원전 337-311년이고 당시 같은 기간에 재위했던 齊의 군주는 제위왕(기원전356-320)과 제선왕(기원전319-301)이다. 제민왕은 기원전 300년에 즉위해서 284년에 죽었으므로 秦惠王이 죽은 지 10년이 지나서였다. 당시 장의가 유세했던 齊의 군주는 제민왕이 아니라 제선왕이라고 해야 한다.
▶ 澠池會盟: 진소왕과 조효문왕이 기원전 279년에 지금의 하남성 민지에서 회동한 일을 말한다.장의는 秦武王 2년 기원전 309년에 죽었다. 이는 장의가 30년 후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 白馬津: 지금의 한남성 滑縣 동북에 있었던 중국 고대에 황하를 도하하는 나루터이다.

 

張儀去西說趙王曰 :
張儀가 를 떠나 서쪽으로 가서 趙王에게 유세하였다.

「 敝邑秦王使使臣效愚計於大王.
"敝邑의 秦王께서 신을 사자로 삼고대왕께 어리석은 계책이나마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大王收率天下以賓秦​秦兵不敢出函谷關十五年大王之威行於山東.
대왕께서 천하의 제후를 이끌고 을 배척하였기에 秦軍은 감히 函谷關 밖으로 나오지 못한지 벌써 15년이며대왕의 위엄은 山東에 두루 미치고 있습니다.

敝邑恐懼懾伏繕甲厲兵飾車騎習馳射.
폐읍은 두려워하여 겁을 먹고엎드려 갑옷을 수선하고 병기를 갈고兵車와 기마를 손질하고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혔습니다.

力田積粟守四封之內愁居懾處不敢動搖唯大王有意督過之也.
힘써 농사를 지어 양식을 비축하고사방의 나라 안을 지키며근심과 두려움 속에 살면서도
감히 동요하지 않았으니오직 대왕께서 우리 의 허물을 꾸짖는 조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今以大王之力擧巴蜀幷漢中包兩周遷九鼎守白馬之津.
이제 대왕의 덕분에 巴蜀을 얻고漢中을 병합하였으며동주와 서주를 포용하여천자를 상징하는 보물인 九鼎을 옮기기 위해 白馬의 나루터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秦雖僻遠然而心忿含怒之日久矣.
이 비록 외지고 멀리 있지만오랫동안 마음에 분함과 원한을 품은 날이 오래되었습니다.

今秦有敝甲凋兵軍於澠池願渡河踰漳據番吾會邯鄲之下願以甲子合戰以正殷紂之事.
지금 이 피곤한 甲兵을 가지고 澠池에 주둔하고하수를 건너고 장하를 넘어 番吾를 근거지로 하여 邯鄲에 모여서갑자일에 접전하려 하니은나라의 주왕을 정벌함과 같은 것입니다.

敬使使臣先聞左右.
삼가 신을 사신으로 보내 미리 측근에게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凡大王之所信爲從者恃蘇秦蘇秦熒惑諸侯以是爲非以非爲是欲反齊國而自令車裂於市.
대왕께서 합종을 믿음은 부리는 사람들이 蘇秦을 믿었기 때문인데蘇秦은 제후를 현혹시켜 옳은 것을 옳지 않다고 하고 옳지 않은 것을 옳다고 하며에서 반역하려다가 자청하여 저자에서 車裂되었습니다.

夫天下之不可一亦明矣.
(蘇秦의 합종론으로는천하를 하나로 만들 수 없음은 역시 분명합니다.

今楚與秦爲昆弟之國而韓·梁稱爲東藩之臣齊獻魚鹽之地.
이제 와 은 형제 나라가 되었고·은 의 동쪽을 지키는 신하라고 칭했으며는 물고기와 소금을 생산하는 땅을 에 헌상하였습니다.

此斷趙之右臂也.
이것은 의 오른팔을 자르는 것입니다.

夫斷右臂而與人鬪失其黨而孤居求欲毋危豈可得乎 ?
오른팔이 잘리고도 남과 싸우며자기편을 잃고 고립에 처하고도 위태롭지 않기를 바란다면어찌 가능하겠습니까?

今秦發三將軍其一軍塞午道告齊使興師渡淸河軍於邯鄲之東.
이제 은 세 장군을 보내되그 한 부대는 午道의 통행을 막고에 통고하여 군사를 일으켜 淸河를 건너 邯鄲 동쪽에 주둔하게 합니다.

一軍軍成皐驅韓·梁軍於河外.
다른 한 부대는 成皐에 주둔하면서과 魏 군대를 황하 외곽으로 나가게 할 터입니다.

一軍軍於澠池約四國爲一以攻趙趙服必四分其地.
나머지 한 개 부대는 澠池에 주둔하고네 나라가 하나가 되어 를 공격하여 항복시키고기필코 그 땅을 넷으로 나누어 가지자고 약속합니다.

是故不敢匿意隱情先以聞於左右臣竊爲大王計莫如與秦王遇於澠池面相見而口相結.
이런 까닭으로 감히 뜻을 숨기지 않고 먼저 측근에게 알려드립니다신이 삼가 대왕을 위한 계책을 생각해보니秦王과 澠池에서 회맹하고 얼굴을 맞대어 구두로써 서로 친선을 맺음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請案兵無攻願大王之定計.」
청컨대 秦軍이 멈추고 공격하지 않도록 대왕께서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 敬: 삼가
▶ 甲子合戰: 周武王이 殷紂王을 정벌할 때 제후와 그 군사들을 牧野의 뜰에 모아 놓고 誓約한 날이 甲子일이다. 장의가 조왕에게 趙를 정벌함을 周武王이 은주왕을 정벌한 것으로 비유해서 그 정벌일을 갑자일로 말한 것이다.
▶ 午道: 종횡으로 교차하는 간선도로이며 趙·齊 두 나라의 접경지대에 있었다.

趙王曰 :
조왕이 말하였다.

「 先王之時奉陽君專權擅勢蔽欺先王獨擅綰事.
"선왕 숙후 때 아우 奉陽君이 제멋대로 권세를 휘둘러 선왕을 속이고 정사를 독단하였소.

寡人居屬師傅不與國謀計.
과인은 스승에게서 공부하고 있어서그와 함께 국가의 계책을 꾀할 수 없었소.

先王弃羣臣寡人年幼奉祀之日新心固竊疑焉.
선왕께서 작고하심에과인은 나이가 어렸고종묘에 제사를 받든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마음속에 본래 의심이 들었소.

以爲一從不事秦非國之長利也.
합종책을 쫓아 을 받들지 않음은 국가의 장기적인 이익이 아니라고 생각했었소.

乃且願變心易慮割地謝前過以事秦.
그래서 마음과 사려를 바꾸어영토를 할양하여 옛날의 과오를 사과하고을 섬기기를 원하였소.

方將約車趨行適聞使者之明詔
그리하여 마침 수레를 마련하여 달려가려는데마침 사자의 밝은 가르침을 듣게 되었소.

趙王許張儀.
조왕은 張儀의 연횡책을 승낙하였다.

▶ 先王: 趙武靈王(재위 기원전 325-299)의 부왕인 趙肅侯를 칭한다.
周顯王 20년 기원전 349년에 즉위하여 326년에 죽은 전국 때 趙의 군주다. 成侯가 죽자 공자 紲과 후계를 놓고 싸워 이겨 趙 군주 자리에 올랐다. 재위 기간 중 齊와 魏 두 나라와 빈번하게 전쟁을 일으키고, 다시 북쪽의 雲中에서부터 代까지 장성을 축조하였다.
▶ 奉陽君: 태어난 해를 알 수 없고 기원전 334년에 죽은 趙의 대신이다. 이름은 成이다.
趙肅侯(재위 기원전 349-326)의 동생으로 그 밑에서 상국이 되어 봉양군으로 봉해졌다.
재임시 현자를 질시하고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趙에 유세 온 소진을 배척하여 그를 燕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가 죽고 나서야 소진은 다시 趙에 와서 유세하여 조숙후에게서 신임을 받아 합종책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후에 무령왕을 사구궁에서 아사케 만든 李兌의 봉호이기도 하다.


張儀乃去北之燕說燕昭王曰 :
張儀는 를 떠나 북쪽의 으로 가서 燕昭王에게 유세하였다.

「 大王之所親莫如趙昔趙襄子嘗以其姊爲代王妻.
"대왕께서 친하기로 보다 더한 나라는 없으며는 옛날 조양자가 그의 누이를 代王의 부인으로 삼은 적이 있었습니다.

欲幷代約與代王遇於句注之塞乃令工人作爲金斗長其尾令可以擊人.
를 병합하고자왕과 구주산의 성채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工人에게 명하여 쇠로 된 국자를 만들고 그 자루를 길게 하여남을 공격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與代王飮陰告廚人曰『 卽酒酣樂進熱啜反斗以擊之
代王과 술을 마시다가 은밀히 요리사에게 말하기를, '술자리가 한창 흥겨울 때 뜨거운 국을 올리면서국자의 자루를 거꾸로 잡아 代王을 공격하라.'라고 하였습니다.

於是酒酣樂進熱啜廚人進斟因反斗以擊代王殺之.
이에 술자리가 거나해지자요리사가 뜨거운 국을 올리고 술을 따르다가 국자를 거꾸로 잡고 왕을 쳐서 죽였습니다.

王腦塗地.
代王의 腦髓가 땅에 쏟아졌습니다.

其姊聞之因摩笄以自刺.
조양자의 누이가 알고 비녀를 갈아서 목을 찔러 자결했습니다.

故至今有摩笄之山代王之亡天下莫不聞.
그래서 지금도 摩笄라는 이름의 산이 있으며代王의 죽음은 천하에 모르는 자가 없습니다.

夫趙王之很戾無親大王之所明見.
조왕이 포악하고 인정이 없음을 대왕께서 분명히 아시는 바입니다.

且以趙王爲可親乎.
그런데도 조왕을 친하게 지낼 수 있겠습니까?

趙興兵攻燕再圍燕都而劫大王大王割十城以謝.
가 군사를 일으켜 을 공격하여 두 번이나 燕都를 포위하고 대왕을 위협하니대왕께서는 10을 떼어 주고 사죄했습니다.

今趙王已入朝澠池效河閒以事秦.
지금 조왕은 이미 澠池에서 조현하고河閒의 땅을 바치며 을 섬기기로 하였습니다.

今大王不事秦秦下甲雲中九原驅趙而攻燕則易水長城非大王之有也.
그런데 대왕께서 을 섬기지 않으면은 갑병을 雲中과 九原으로 내려보내고 를 내세워 을 공격하면 易水와 長城은 대왕의 소유가 아닐 터입니다.

​且今時趙之於秦猶郡縣也不敢妄擧師以攻伐.
또한 지금 의 에 대한 처지는 군·현과 같아서감히 함부로 군사를 일으켜 침략할 수 없습니다.

今王事秦秦王必喜趙不敢妄動.
이제 대왕께서 을 섬긴다면 진왕은 틀림없이 기뻐할 터이고 도 妄動하지 못할 터입니다.

是西有彊秦之援而南無齊·趙之患是故願大王孰計之
서쪽에는 강력한 의 지원이 있고남쪽으로는 와 의 근심이 없어지므로대왕께서는 이 계책에 대해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 燕昭王: 기원전 314년에 즉위하여 279년에 죽은 전국 때 燕의 군주다.
이름은 平 혹은 職이다. 연왕 噲의 서자로 周赧王 원년에 상국 子之에 의해 연왕 쾌가 피살되자 소왕은 난을 피해 산으로 달아나 피신 중에 주난왕 4년(기원전314) 燕 국인들에 의해 연왕에 옹립되었다. 일설에는 趙武靈王에 의해 연왕의 자리에 올랐다고 하였다. 즉위 초에 황금대를 지어 천하에 현인을 구하자 魏人 樂毅, 齊人 鄒衍, 趙人 劇辛 등 일시에 천하의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현인과 선비들을 예로써 대하고 백성들의 집에 문상하고 고아들을 돌보아 백성과 고락을 같이 하였다. 이에 시간이 지나자 燕의 국세가 신장되었다. 주난왕 31년(기원전 284년) 악의를 상장군으로 삼아 5국의 연합군을 결성하여 齊를 공격하여 70여 성과 그 도성 임치성을 점령하였다. 燕는 이로써 강국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 趙襄子: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425년에 죽은 춘추 말 唐晋國의 대부로 嬴姓 趙氏에 이름은 無恤이다. 趙簡子 趙鞅의 아들로 당진국의 육경의 한 사람이었다. 조간자가 아들 가운데 무휼이 현명하다고 생각해서 적자이며 큰아들인 伯魯를 폐하고 그의 후계자로 삼았다. 이윽고 조앙이 죽고 조양자가 집정하자 그는 智, 韓, 魏 등의 삼가와 힘을 합하여 육경 중 범씨와 중항씨를 멸하고 그 땅을 나누어 가졌다. 후에 세력이 강성해진 지씨의 종주 지백이 당진국의 군주 出公을 쫓아내고 毅公을 세워 정권을 멋대로 휘두르며 발호하였다.
이어서 지백이 공개적으로 조씨들을 향해 영지의 할양을 요구하자 조양자가 거절하였다.
이에 지백은 韓과 魏 두 종족과 연합하여 조씨를 공격하였다. 세가 불리했던 조양자는 지금의 太原의 진양으로 들어가 농성하며 대항하였다. 지백은 汾水의 물을 막아 진양성으로 흘려보내 잠기게 하였다. 이에 절대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조양자는 그의 가신 張孟談을 보내 韓康子와 魏桓子에게 당진국의 패권을 혼자 차지하려는 지백의 야욕을 설파하고 조씨와 연합할 경우의 이해득실을 논하게 하여 그들이 지백에게 등을 돌리게 하였다. 周定王 16년(기원전 453년) 趙, 韓, 魏 삼가가 智家에게 반격을 가하여 멸하고 지가의 영지와 당진국의 공실의 땅 전부를 삼분하여 나누어 가졌다. 이 일을 역사상 三家分晋이라 한다.
▶ 句注: 산서성 代縣 서북에 있는 산이름으로 지금의 雁門山을 말한다.
▶ 摩笄山: 지금의 하북성 𣵠鹿縣 동쪽에 있던 산이름이다. 탁록은 북경시 서북 쪽에 있다.
▶ 趙世家 趙襄子 조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조양자의 누이는 옛날 代王의 부인이 되었다. 양자가 그 부친의 장례를 마치고 미처 상복을 벗기도 전에 북쪽의 夏屋山에 올라 잔치를 벌리고 대왕을 초청하였다. 襄子가 요리사로 하여금 구리로 만든 국자를 들고 대왕과 그 시종들에게 음식을 바치며 술을 따르게 하였다.
이윽고 주연이 무르익게 되자, 양자가 아무도 몰래 이름이 犖이라는 요리사로 하여금 구리로 만든 큰 국자로 대왕과 그 시종들을 쳐서 죽이도록 하였다. 이어서 조양자는 代國의 땅을 평정하고 조씨의 영토로 만들었다. 양자의 누이가 본국에 있다가 그 부군의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하늘에 호소하다가, 그녀의 비녀를 뾰쪽하게 갈아 찔러 죽었다.
代나라 사람들이 이를 가엾게 여겨 그녀가 죽은 곳의 이름을 摩笄山이라고 불렀다.>

 

燕王曰 :
「 寡人蠻夷僻處雖大男子裁如嬰兒言不足以采正計.
今上客幸敎之請西面而事秦
연왕이 말하였다.
"과인이 오랑캐의 궁벽한 땅에 살고 있어비록 신체는 장부와 같으나 분별력은 어린아이와 같아서말하여도 올바른 계책을 채용할 수가 없었소.
이제 상객께서 다행히 가르치시니 서쪽을 향하여 을 섬길 터이오."

獻恆山之尾五城燕王聽儀.
이어 恆山 기슭에 있는 5개의 성을 바치고張儀의 연횡책을 따랐다.

 

儀歸報未至咸陽而秦惠王卒武王立.
張儀가 보고하려고 으로 돌아왔는데咸陽에 도착하기 전에 秦惠王이 죽고武王이 즉위하였다.

武王自爲太子時不說張儀及卽位羣臣多讒張儀曰 :
「 無信左右賣國以取容秦必復用之恐爲天下笑」​
武王은 태자 시절부터 張儀를 좋아하지 않았으므로즉위하자 신하들에 張儀를 참언함이 많았다.
"신의가 없고여기저기에 나라를 팔아서 환심을 샀으므로이 다시 그를 등용한다면 아마도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터입니다."

諸侯聞張儀有卻武王皆畔衡復合從.
제후들은 張儀와 武王 사이에 틈이 생겼음을 알고모두 연횡을 배반하고 다시 합종하였다.

秦武王元年羣臣日夜惡張儀未已.
秦武王 원년신하들이 밤낮으로 張儀를 비방하며 마지 않았다.

而齊讓又至張儀懼誅乃因謂秦武王曰 :
「 儀有愚計願效之」​
의 꾸짖는 사자가 또 오자張儀는 죽을까 겁내며 武王에게 말하였다.
"신에게 어리석으나마 계책이 있으니 대왕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王曰 :
「 柰何
진왕이 말하였다.
"무엇이오?

對曰 :
張儀가 대답하였다.

「 爲秦社稷計者東方有大變然後王可以多割得地也.
"의 사직을 위한 계책이온데동쪽에서 큰 변고가 일어나면 그 후에 대왕께는 제후의 많은 토지를 할양벋을 수 있을 터입니다.

今聞齊王甚憎儀儀之所在必興師伐之.
지금 듣기로제왕이 張儀를 매우 미워하여 張儀가 있는 곳이라면 틀림없이 군사를 일으켜 공격할 터라고 합니다.

故儀願乞其不肖之身之梁齊必興師而伐梁.
그러므로 신은 불초한 몸이 에 가기를 요청하오니그러면 는 틀림없이 출병하여 를 공격할 터입니다.

梁·齊之兵連於城下, 而不能相去.
그리하여 와 齊 군사가 성 밑에서 서로 밀고 당기고 하면서 떠날 수 없을 터입니다.

王以其閒伐韓, 入三川, 出兵函谷而毋伐, 以臨周, 祭器必出.
대왕께서 그 틈을 타서 을 정벌하고 三川으로 들어가면군사를 函谷關 밖으로 내어 싸울 것도 없이 주나라에 들어가서천자의 제기를 반드시 내올 수 있겠습니다.

挾天子, 按圖籍, 此王業也. 」
천자를 끼고 천하의 지도와 호적을 정리하면 이것이 帝王의 대업입니다."

秦王以爲然, 乃具革車三十乘, 入儀之梁.
秦王은 옳다고 여기고가죽으로 장식한 수레 30승을 갖추어 주며 장의를 로 가게 하였다.

齊果興師伐之梁哀王恐張儀曰 :
「 王勿患也請令罷齊兵
가 과연 군사를 일으켜 공격하였고위애왕이 두려워하자 張儀는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근심하지 마십시오신이 齊軍을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乃使其馮喜之楚借使之齊謂齊王曰 :
「 王甚憎張儀雖然亦厚矣王之託儀於秦也
舍人 馮喜를 에 보내서초왕의 사자라고 명의를 빌리고로 들여보내 제왕에게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張儀를 대단히 미워하시는데그런데도 후하기로는 대왕이 장의에 의탁함이 진왕보다 더 합니다."

齊王曰 :
「 寡人憎儀儀之所在必興師伐之何以託儀」​
제왕이 물었다.
"과인은 張儀를 미워하여 張儀가 있는 곳이면 반드시 군사를 일으켜 그를 공격하고 있는데어째서 張儀에게 의탁한다고 여기는가?"

對曰 :
이에 馮喜가 대답하였다.

「 是乃王之託儀也.
"그것이 바로 대왕께서 張儀에게 의탁하고 있음입니다.

夫儀之出也固與秦王約曰,
張儀가 로 떠날 때 진왕과 약속하며 말하였습니다.
『 爲王計者東方有大變然後王可以多割得地.
'대왕을 위한 계책으로동방에 큰 변고가 있고 난 후에 대왕께서는 많은 땅을 얻을 수 있습니다.

今齊王甚憎儀, 儀之所在, 必興師伐之.
지금 齊王이 신을 매우 미워하여제가 있는 곳이라면 틀림없이 군사를 일으켜 공격할 터입니다.

故儀願乞其不肖之身之梁, 齊必興師伐之, 齊梁之兵連於城下, 而不能相去.
그러니 불초한 이 몸을 에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그러면 는 필시 군사를 일으켜 를 공격할 터이고와 의 군사가 의 성 아래에서 서로 밀고 당기며 서로 떠날 수 없을 터입니다.

王以其閒伐韓, 入三川, 出兵函谷而無伐, 以臨周, 祭器必出.
대왕께서 그 틈에 을 공격하여 三川으로 들어감으로써函谷關 밖으로 출병하여 굳이 싸울 필요도 없이주나라에 가서 천자의 제기들을 틀림없이 가져올 터입니다.

挾天子, 案圖籍, 此王業也. 』
천자를 끼고 천하의 지도와 호적을 조사한다면 그것이 바로 왕업입니다.'

秦王以爲然, 故具革車三十乘, 而入之梁也.
秦王이 옳다고 여겨 가죽으로 장식한 수레 30승을 주어 로 보냈습니다.

今儀入梁, 王果伐之.
지금 張儀가 에 들어가자 대왕께서는 과연 를 공격하십니다.

是王內罷國而外伐與國, 廣鄰敵以內自臨, 而信儀於秦王也.
대왕께서 안으로는 나라를 피폐하게 만들고 밖으로는 우호국을 쳐서 널리 적국을 도와서 안으로 자신을 공격함으로써秦王에게 張儀를 믿게 합니다.

此臣之所謂, 託儀也. 」
이것이 신의 소위 張儀에 의탁한다.’라는 것입니다."

▶取容: 1.비위를 맞추다 2.영합하다 3.환심을 사다
▶鄰: 보필하다
▶臨: 치다. 공격하다.

 

齊王曰善乃使解兵.
齊王이 옳다고 여겨 군사를 해산하였다.

張儀相魏一歲卒於魏也.
張儀는 에서 재상이 된 지 1에서 죽었다.

​陳軫者游說之士與張儀俱事秦惠王皆貴重爭寵.
陳軫은 유세하는 선비였는데張儀와 함께 秦惠王을 섬김에모두 중용되어 총애를 다투었다.

張儀惡陳軫於秦王曰 :
「 軫重幣輕使秦·楚之閒將爲國交也.
今楚不加善於秦而善軫者軫自爲厚而爲王薄也.
且軫欲去秦而之楚王胡不聽乎 
張儀가 秦王 앞에서 陳軫을 헐뜯었다.
"陳軫이 많은 예물로 과 楚 사이를 사자로 왕래함은 국교를 위함입니다.
그런데 가 과 친선하지 않으면서 陳軫에게는 잘 대함은陳軫이 자신에게 하고 대왕에게는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陳軫은 을 떠나 에 가려고 하는데대왕께서는 어찌하여 이유를 들어보지 않으십니까?"

王謂陳軫曰 :
「 吾聞子欲去秦之楚有之乎 
진왕이 陳軫에게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 그대가 을 떠나 로 가려 한다는데 그런 일이 있소?"

軫曰 :
「 
陳軫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王曰 :
「 儀之言果信矣
진왕이 말하였다.
"張儀의 말은 과연 미덥구나!"

軫曰 :
陳軫이 말하였다.

「 非獨儀知之也行道之士盡知之矣.
"유독 張儀만 아는 것이 아니라길 가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昔子胥忠於其君而天下爭以爲臣曾參孝於其親, 而天下願以爲子.
옛날 伍子胥가 임금에게 충성하였기 때문에천하의 제후가 다투어 신하로 삼았으며曾參이 부모에게 효도하였으므로천하 사람이 증삼과 같은 아들을 두기를 원하였습니다.

故賣僕妾不出閭巷而售者, 良僕妾也.
그런 이유로 사내종이나 계집종을 팖에마을을 벗어나기 전에 팔리는 자는 좋은 종입니다.

出婦嫁於鄕曲者, 良婦也.
시댁에서 쫓겨난 며느리가 같은 마을에서 재혼하면좋은 며느리입니다.

今軫不忠其君, 楚亦何以軫爲忠乎 ?
그러니 陳軫이 자신의 임금에게 충성하지 않았다면가 무엇 때문에 진진을 충성스럽다고 여기겠습니까?

忠且見弃, 軫不之楚何歸乎 ? 」
충성하였으나 버림받으면이 陳軫이 에 가지 않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王以其言爲然, 遂善待之.
왕이 그 말이 옳다고 여겨 善待하였다.



居秦期年秦惠王終相張儀而陳軫奔楚.
에 머문 지 1秦惠王이 마침내 張儀를 재상으로 삼으니陳軫은 로 달아났다.

楚未之重也而使陳軫使於秦.
가 아직 그를 중용하지 않았는데陳軫을 에 사자로 보냈다.

過梁欲見犀首犀首謝弗見.
陳軫이 를 지나가다 犀首를 만나려고 하였으나犀首는 만나지 않겠다고 사절하였다.

軫曰 :
「 吾爲事來公不見軫軫將行不得待異日
陳軫이 말하였다.
"나는 국사를 위해 왔는데 공께서 이 陳軫을 만나지 않으시니저는 이만 이곳을 떠나지만후일을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犀首見之陳軫曰 :
「 公何好飮也 
犀首가 만나주자陳軫이 말하였다.
"공은 어찌하여 음주를 좋아하십니까?"


犀首曰 :
「 無事也
犀首는 말하였다.
"할 일이 없기 때문이오."

曰 :
「 吾請令公厭事可乎 
陳軫이 말하였다.
"제가 공에게 일에 싫증이 나게 해도 되겠습니까?"

曰 :
「 柰何
犀首는 말하였다.
"어떻게 말이오?"

曰:
陳軫이 말하였다.

「 田需約諸侯從親楚王疑之未信也.
"魏 재상 田需는 제후와 합종을 맺으려고 하나 楚王이 의심하여 아직 믿지 않습니다.

公謂於王曰
『 臣與燕趙之王有故數使人來曰無事何不相見.
願謁行於王
공께서 위왕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신은 과 의 왕과 친분이 있는데여러 번 사람을 보내 말하기를, <그대는 하는 일도 없으면서 어찌하여 오지 않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과 의 왕을 뵈러 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王雖許公公請毋多車.
왕이 비록 공의 말을 허락하더라도공은 많은 車馬를 청하지 마십시오.

以車三十乘可陳之於庭明言之燕·趙.」
수레 30승을 뜰에 진열하고 과 에 감을 闡明하십시오."

燕·趙客聞之馳車告其王使人迎犀首.
에 있던 과 의 들이 소문을 듣고 수레를 달려 그들의 왕에게 보고하니사자를 보내 犀首를 영접하도록 하였다.



楚王聞之大怒曰 :
초왕이 알고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 田需與寡人約而犀首之燕·趙是欺我也
"田需가 과인과 약속하고도犀首가 과 에 간다니 나를 속이는 것이다."

怒而不聽其事.
분개하여 그의 합종설을 따르지 않았다.

齊聞犀首之北, 使人以事委焉.
는 犀首가 북쪽으로 감을 알고사자를 보내어 국사를 위임하려 하였다.

犀首遂行三國相, 事皆斷於犀首.
犀首가 드디어 삼국(··)의 재상이 되니政事가 모두 犀首에게서 결정되었다.

軫遂至秦, 韓·魏相攻, 期年不解.
陳軫은 에 도착함에과 가 서로 공격하여 1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秦惠王欲救之, 問於左右.
秦惠王이 이를 구원하고자측근에게 물었다.

左右或曰救之便, 或曰勿救便.
측근의 어떤 자는 구원함이 이익이라 하고어떤 자는 구원하지 않음이 이익이라고 말하였다.

惠王未能爲之決, 陳軫適至秦.
혜왕이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데마침 陳軫이 에 도착한 것이었다.

惠王曰 :
「 子去寡人之楚亦思寡人不
혜왕이 말하였다.
"그대가 과인을 떠나서 에 갔는데역시 과인을 생각하지 않겠지요?"

陳軫對曰 :
「 王聞夫越人莊舃乎 
陳軫이 물었다.
"대왕께서는 越 사람 莊舃을 아십니까?"

王曰 :
「不聞.」
왕이 대답하였다.
"알지 못하오."

曰 :
陳軫이 말하였다.

「 越人莊舄仕楚執珪有頃而病楚王曰
『 舃故越之鄙細人也今仕楚執珪貴富矣亦思越不. 』
"越人 莊舄은 에 出仕하여 執圭이었으나얼마 지나지 않아 병이 드니楚王이 물었습니다.
장석은 본디 에서 비루하고 보잘것없던 사람으로이제 의 집규로 벼슬하여 부귀한 신분이 되었으니월을 생각하지 않겠지?’

中謝對曰
『 凡人之思故, 在其病也, 彼思越則越聲, 不思越則楚聲. 』
시종관 中謝가 대답하였습니다.
무릇 사람이 고향을 생각함은 그가 병들었을 때이니그가 월을 생각하고 있다면 월의 억양일 터이고월을 잊고 있다면 의 억양일 터입니다.’

使人往聽之, 猶尙越聲也.
사람을 보내 그가 사용하는 말을 들어보니그는 여전히 월의 억양을 사용하고 있었답니다.

今臣雖弃逐之楚, 豈能無秦聲哉. 」
지금 신이 비록 버림받고 쫓기어 에 갔지만어찌 의 억양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惠王曰 :
혜왕이 말하였다.

「 今韓·魏相攻期年不解.
"좋은 말이오그런데 과 가 서로 싸워 1년이 넘도록 해결이 되지 않고 있소.

或謂寡人救之便或曰勿救便寡人不能決.
어떤 자는 과인에게 구원함이 좋다고 하고어떤 자는 구원하지 않음이 좋다고 하니과인은 결정하지 못하고 있소.

願子爲子主計之餘爲寡人計之
그대는 그대의 왕을 위한 계책 중 나머지를과인을 위해서 써주기 바라오."

陳軫對曰 :
陳軫이 말하였다.

「亦嘗有以夫卞莊子刺虎聞於王者乎?

"일찍이 卞莊子가 호랑이를 찔렀던 일을 대왕께 아뢴 자가 있었습니까?

莊子欲刺虎館豎子止之曰
『兩虎方且食牛食甘必爭爭則必鬪鬪則大者傷小者死從傷而刺之一擧必有雙虎之名』
卞莊子가 호랑이를 찔러 죽이려고 하자객사의 종놈이 말리면서 말하였습니다.
두 호랑이가 막 소를 먹으려고 하는데맛이 있으면 틀림없이 다투게 되고다투면 반드시 싸우게 되고싸우면 큰놈은 다치고 작은놈은 죽을 터이니그때를 기다렸다가 다친 놈을 따라가서 찔러서 잡으면 一擧에 雙虎를 잡았다는 명성을 얻습니다.’

卞莊子以爲然立須之.
卞莊子가 옳다고 여겨 서서 기다렸습니다.

有頃兩虎果鬪大者傷小者死.
얼마 안 되어 두 호랑이가 과연 싸우더니큰놈은 다치고 작은놈은 죽었습니다.

莊子從傷者而刺之一擧果有雙虎之功.
卞莊子가 다친 놈을 따라가서 칼로 찔러한 번에 두 마리의 호랑이를 잡는 공을 세웠습니다.

今韓·魏相攻期年不解是必大國傷小國亡.
지금 과 가 서로 싸워 일 년이 지나도 해결이 나지 않았으니틀림없이 大國은 상처를 입고 小國은 망할 터입니다.

從傷而伐之一擧必有兩實.
상처를 입은 나라를 정벌하시면한꺼번에 틀림없이 두 가지 실리를 얻을 터입니다.

此猶莊子刺虎之類也臣主與王何異也
이것은 卞莊子가 호랑이를 잡은 따위로신의 주군과 대왕께 (바치는 계책이ᅌᅥ찌 다르겠습니까?"

惠王曰 :
「 
혜왕이 말하였다.
"옳은 말이오."

卒弗救.
결국 구원하지 않았다.

大國果傷小國亡.
큰 나라는 과연 상처를 입고작은 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秦興兵而伐大剋之此陳軫之計也.​
이에 이 군사를 일으켜 대국을 정벌하여 이기니이것은 陳軫의 계책이었다.

▶ 執珪/ 춘추전국시대 때 楚의 軍功과 爵位 등급의 하나. 공신이 이 작위를 얻게 되면 집규를 들고 국군을 朝見했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지위는 列侯에 다음 가는 고위직이었다.

犀首者魏之陰晉人也名衍姓公孫氏.
犀首는 魏 陰晉 사람으로 이름은 성은 公孫氏이다.

與張儀不善.
張儀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張儀爲秦之魏魏王相張儀.
張儀가 을 위하여 로 가자魏王은 張儀를 재상으로 삼았다.

犀首弗利故令人謂韓公叔曰 :
「 張儀已合秦·魏矣其言曰
『 魏攻南陽秦攻三川』​
犀首는 불리하다고 여겼으므로 사람을 시켜 韓 公叔에게 말하였다.
"張儀는 이미 과 가 연합하도록 만들었는데그는 말하였습니다.
가 의 南陽을 공격하고 은 의 三川을 공격하자.’

魏王所以貴張子者欲得韓地也.
위왕이 張儀를 귀하게 여김은 韓 땅을 얻고 싶기 때문입니다.

且韓之南陽已擧矣子何不少委焉以爲衍功.
곧 의 南陽은 침략을 받을 처지에 놓여 있는데그대는 어찌하여 국사를 조금이나마 이 공손연에게 맡겨 공을 세우게 하지 않습니까?

則秦魏之交可錯矣然則魏必圖秦而弃儀收韓而相衍」​
그리하여 과 의 국교가 어그러지면는 필시 을 도모하고 張儀를 버리고 을 거두어 주며저 공손연을 재상으로 삼을 터입니다."

公叔以為便因委之犀首以爲功.
公叔은 이롭다고 여기고 南陽을 그에게 맡겨 공을 세우게 하였다.

果相魏張儀去.
犀首가 과연 의 재상이 되고 張儀는 를 떠나 으로 돌아갔다.

義渠君朝於魏.
義渠(서융의 일족)의 군주가 에 朝見하였다.

犀首聞張儀復相秦害之犀首乃謂義渠曰 :
犀首는 張儀가 다시 의 재상이 되었음을 알고 시기하여義渠의 군주에게 말하였다.

「 道遠不得復過請謁事情曰,
中國無事秦得燒掇焚杅君之國有事秦將輕使重幣事君之國
"길이 멀어 다시 오기 힘들 테니중원의 사정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중원이 일을 벌이지 않으면 은 군주의 나라를 파괴하고 집들을 불사를 터이고중원의 제후가 일을 벌이면은 발 빠른 사신과 많은 예물로 군주님을 모실 터입니다."

▶ 害: [문어] 질투하다. 시기하다.
▶ 義渠: 고대 중국의 이민족 이름으로 西戎의 일족이다. 지금의 감숙성 涇陽과 涇水 일대에 분포되어 살았다. 춘추 때 스스로 왕호를 칭하고 秦과 매년 충돌하여 싸움을 벌였다. 진소양왕 37년인 기원전 270년에 비로소 秦에 의해 병합되었다.

 

其後五國伐秦.
그 후 다섯 나라가 을 공격하였다.

會陳軫謂秦王曰 :
「 義渠君者蠻夷之賢君也不如賂之以撫其志
때마침 陳軫이 진왕에게 말하였다.
義渠의 군주는 蠻夷의 현명한 군주이므로뇌물을 보내어 달램이 좋을 터입니다.”

秦王曰 :
「 
진왕이 말하였다.
"좋소."

乃以文繡千純婦女百人遺義渠君.
수 놓은 채색 비단 천 필과 미녀 백 명을 義渠의 군주에게 보냈다.

義渠君致羣臣而謀曰 :
「 此公孫衍所謂邪 
義渠의 군주는 신하들을 불러서 모의하며 말하였다.
이것이 公孫衍이 일렀던 바가 아닌가?”

乃起兵襲秦大敗秦人李伯之下.
즉시 군사를 일으켜 을 기습하여 李伯의 성 아래에서 秦軍을 크게 무찔렀다.

張儀已卒之後犀首入相秦.
張儀가 죽은 후犀首는 에 들어가서 재상이 되었다.

嘗佩五國之相印爲約長.
일찍이 그는 五國의 재상 인수를 차고 합종의 우두머리이었다.

 

太史公曰 :
「 三晉多權變之士.
夫言從衡彊秦者大抵皆三晉之人也.
夫張儀之行事甚於蘇秦然世惡蘇秦者以其先死而儀振暴其短以扶其說成其衡道要之此兩人眞傾危之士哉
태사공이 말한다.
"三晉에는 권무술수와 임기응변에 능한 유세가가 많았다.
무릇 彊秦에 대하여 합종이나 연횡을 말한 인물은 대체로 三晉 사람이었다.
대체로 張儀가 행한 일들은 蘇秦이 행한 것보다 더 심하였으나세상 사람들이 蘇秦을 싫어함은소진이 먼저 죽음에 따라 張儀가 蘇秦의 단점을 선전하고 폭로하여 자신의 유세를 도와서 連橫의 방도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두 사람은 진실로 나라를 위험에 빠뜨린 인물이다."